목차
1 대한민국의 영화
靑燕. 2005년에 발표된 일제강점기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다룬 한국 영화. 감독은 윤종찬. 시나리오는 이인화가 썼다.
주연인 박경원 역은 故 장진영이, 상대역인 한지혁 역은 김주혁이 맡았고, 일본인 배우 나카무라 토오루와 유민, 그리고 한지민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1.1 논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상의, 총 120억원이나 제작비를 들인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총관객은 고작 50만에 불과, 흥행은 쫄딱 망했어요.[1] 영화 자체는 조금 지루할 지언정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2] 비슷한 시기 경쟁작이 나니아 연대기 - 사자의 마녀와 옷장, 왕의 남자인것도 한 몫 한것으로 보고있다.
1.1.1 제작사 교체 논란
원래 영화 친구의 씨네라인2가 70%까지 촬영을 끝내지만 제작비 초과 문제로 인해 결국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코리아 픽쳐스가 남은 30% 촬영분을 촬영을 하였다.#
1.1.2 친일파 논란
하필이면 주인공 박경원의 친일파 논란이 불거져서 망한 것이다.
지금도 민간인이 (해외에 있는) 비행학교에서 비행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수천만원의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당시에 식민지 출신 소녀가 일본의 비행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빵빵한 후견인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의 후견인은 당시 한국에서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여론이 안좋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외할아버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郎)[3]였다. 물론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별개의 인물이다.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엄연히 박경원이란 인물 자체이다.
당시 일본의 체신상[4]이었던 마타지로는 박경원의 학비를 대주는 등 재정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퇴역한 군용기를 헐값에 불하받도록 주선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비행기가 바로 청연(푸른 제비)이었다.
박경원은 이런 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황군위문 비행을 하기도 했고, '고마운 조국(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일본의 전쟁노력에 적극 협력하자'면서 조선 전역을 누비면서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이런 친일 행적 때문에 단순히 도전정신으로 꿈을 이루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미화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 바로 박경원의 실상이었다. 영화에서 미화된 최후도 물론 사실과 달랐는데, 실제로는 도쿄를 출발하여 만주국까지 전시 위문비행을 가던 중 기상 악화로 하코네의 야산에 추락해 죽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이인화는 인터뷰에서 박경원은 사실은 반일노선을 취해서 창씨개명도 하지 않고 독립 운동에 관심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고, 최초의 시나리오도 최초의 조선인 여성 비행사이자 국제적 엘리트인 박경원의 독립운동 관련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사고로 인한 사망도 일본의 음모로 모는 안이었다. 영화에서 김주혁이 독립 운동과 관련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박경원과 고문을 받고 처형되는 스토리가 이전 시나리오의 잔상.[5]
하지만 이인화의 주장에도 반박의 여지가 있었다. 창씨개명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시행된 것은 박경원 사후의 일이었고, 후술하겠지만 최초의 조선인 여성 비행사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하튼 개봉 직전에 박경원의 이러한 친일 행적이 "제국주의의 치어걸"이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졌고, 안그래도 당시 독도 문제 때문에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던 시점이라 관객들은 이 영화를 외면했다.
1.1.3 최초 여성 비행사 논란
제작진은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박경원이 조선인 최초의 여성 비행사였다고 언플을 했고, 제작사인 코리아 픽쳐스는 청연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누리꾼 2명을 고소하겠다고 하는 등 비판 여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조선인 여성으로 처음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이 박경원(1925 도쿄 비행학교 입학, 1928 조종사)이 아니라 권기옥(1923 운남 항공학교 입학, 1925 공군 조종사)으로 밝혀지면서 언플조차 실패했다. 권기옥은 박경원과 달리 중국의 비행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친일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이후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에 참가해 일본군과 교전한 경력까지 있는 등 애국지사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고소 건도 없던 일로 해야했다.
결국 이러한 어설픈 언플과 법적 대응은 제작사 스스로 논란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 흥행 참패에 일조했고, 120억이라는 거액을 날려버린 코리아 픽쳐스는 결국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도산했다. 자업자득
1.2 영화 이후
1.2.1 배우들의 경우
영화사와 감독 뿐만 아니라 출연한 배우들도 대부분 큰 타격을 입었다.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故 장진영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선 보기 드물게 여배우 혼자서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연을 맡아 이후 충무로계의 프리미엄 배우로 거듭날 예정이었고, 실제 장진영 본인 또한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연이 가장 논란이 된 배역이 되어 버리면서 그녀가 영화계에서 쌓아온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애착이 강했던 만큼 그로 인한 상처가 너무 커서 2개월 동안이나 외출을 하지 않고 칩거하는 등 우울증이 심각했다고 한다. 결국 이듬해에 발표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 되었다.
유민도 이 영화에 일본인으로 등장하여 그냥 일본어 대사만 날렸는데, 영화의 실패 이후 한국 활동을 접고 2009년에 아이리스에 출연할 때까지 일본에서만 활동했다.[6] 그나마 김주혁은 상대적으로 욕을 덜 먹은 편이었고, 이후의 활동에도 별 지장은 받지 않은 모양이다. 배역 자체도 실존하지 않았던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
참고로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 장동건과 공동 주연이었던 일본 배우 나카무라 토오루도 극중 박경원을 비행사로 키워주는 도쿠다 교관으로 특별 출연했는데, 이 극중 배역인 도쿠다 교관의 실제 인물이 영화가 개봉된 2005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할아버지라는 소문이 돌며 이상한 방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2.2 감독의 경우
끝으로 이 영화 이전에 흥행은 미적지근했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아 유럽과 미국, 일본에 수출되어 호평을 받은 호러영화 소름으로 주목을 받은 윤종찬 감독도 이 영화가 망하면서 영화감독 생활에 타격을 받았다. 2008년에 만든 현빈 주연의 후속작 <나는 행복합니다>도 1년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고, 이것도 쫄딱 망하고 말았다. 그나마 저예산 영화였음에도 전국 관객이 2만 명도 안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오랫만인 2013년 파파로티를 감독하였는데 전국 170만 관객으로 그럭저럭 손익분기를 넘었기 때문에 감독 생활은 이어갈수 있을 듯.
1.3 기타 이모저모
여담으로 영화의 OST는 인디안 썸머와 이중간첩에도 참가한 독일 작곡가인 미하엘 슈타우다허가 맡았고 [7], 낙소스의 한국 지사에서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 OST 음반도 낙소스 한국 지사의 첫 독자 기획 음반으로 적극 홍보되었지만, 결국 영화가 나락으로 추락하면서 사이좋게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승철이 부른 영화 엔딩곡으로 올라간 서쪽 하늘만큼은 모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덕에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 곡은 미하엘슈타우다허가 제작한 영화 공식 OST 앨범이 아닌, '청연'이란 이름의 이승철 OST 스페셜 앨범[8]에 수록되었기에 그닥 덕이 되지도 못했다.
씨네21이 8페이지가 넘는 긴 에세이를 실어 이 영화를 옹호했지만 무시당했다.'글쓰기의 나쁜예' 분량만 많을 뿐이었고 박경원을 두둔하는지, 친일이 문제인지, 친일을 위장한 민족주의가 문제인지, 심지어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에도 한다리 걸치는 등 갈피도 못잡을 말의 되풀이성인 지루한 글이라서, 박경원 후예가 잡지사 간부로 있어서 그렇게 쉴드에 열심인거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나의 실드는 이렇지 않아 되려 영화랑 별 관계도 없는 진중권이 "<푸른 제비>는 영화적 완성도는 괜찮지만 논란이 될만하다"고 같은 잡지의 맨 뒷쪽에 짧게 쓴 반 페이지 분량의 글이 훨씬 이해하기 쉬웠을 정도.
2009년 9월 이 영화의 주연이었던 장진영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당히 이슈가 되었었는데, 영화 작품으로는 그녀의 유작이었던지라 재개봉 여부가 검토되기도 했었고, 이 영화의 OST 타이틀곡인 이승철의 '서쪽하늘'이 다시 주목받게 된다.
이 영향 때문인지 슈퍼스타K3에 참가한 울랄라세션의 경우 심사위원 명곡 미션으로 이승철을 선택하여 '서쪽하늘'을 선정했는데, 유명하지 못한곡이라 대중성을 필요로 하는 생방송 무대에서는 적합하지 못 하다고 이승철은 말했으나, 리더 임윤택은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장진영이 이 노래를 좋아했다며 자신이 받았던 감정을 전하고 싶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결과는 적절한 파트 분배와 리더 임윤택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열창으로 감동을 전달하여 당시 생방송 무대 최고점을 기록하는 등 원곡의 인지도도 올리는 계기가 된다. 훗날 임윤택이 3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을 때에 다시 이 노래의 가사의 내용과 맞물려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2 포켓몬스터 DP의 등장인물.
(짤 중 최이슬을 기준으로 11번째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간에 이상한 게 보이지만 신경쓰지 말자
일본명 아오이. 성우는 히노 미호/이영란.
포켓몬 서머 스쿨에서 만난 지우를 닮은 소녀로 외모나 행동, 성격이 매우 남자아이 같다. 신수마을 출신으로 집은 다른 트레이너의 포켓몬을 잠시 맡아서 키우는 일을 하고 있어 아직 여행은 떠나지 못하지만 공부도 되고 굉장히 재밌다고 한다. 지우와는 스쿨에서 함께 생활할 포켓몬을 고를 때 시비가 붙어 그 이후로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사이가 좋아진 듯. 어느정도가 아니라 작중묘사를 보면 지우에게 반해있다. 얼굴을 잘 붉히고 말이다.
확인된 소유 포켓몬은 꼬링크와 서머 스쿨에서 대여받은 파이숭이.- ↑ 120억이면 400만 정도는 들어야 본전을 뽑는다.
- ↑ 비슷한 규모의 제작비를 들인 전해에 개봉한 역도산도 망했지만, 이렇게까지 망하지는 않았다.
- ↑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의 성씨는 본래 '사메지마(鮫島)'였으나, 준야는 마타지로의 유일한 친자식인 고이즈미 요시에(小泉芳江)와 결혼하면서 고이즈미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아내의 성씨를 따랐다. 준야와 요시에 사이에서 태어난 3녀 2남도 모두 어머니의 성씨를 따랐다.
- ↑ 당시 일본 체신상은 민간 항공의 운영과 관리도 담당했다.
- ↑ 물론 감독은 이인화의 안을 거부하고 꿈을 이루는 인물로서 박경원을 해석했다.
- ↑ 다만 유민의 경우 한국어가 서투른 탓에 그 동안의 한국 활동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던 시각의 비평이 많았음을 유념해야 한다. 2009년 한국 무대 복귀 후에도 어눌한 한국어는 여전히 약점으로 남아 있다.
- ↑ 하지만 정작 실제 영화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고 기존 클래식 음악들이 쓰였다고 한다. 관계자의 증언 요약하자면 원래 슈타우다허가 작업한 음악을 쓰려고 했으나 감독이 후반 작업 도중 다 엎어버리고 기존 클래식으로 쓰였다고.
- ↑ 이승철이 불렀던 곡들중에 영화 OST에 수록된 곡들을 중심으로 베스트 앨범 형식으로 구성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