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류철균 (柳哲鈞) |
필명 | 이인화 (二人化) |
생년월일 | 1966년 1월 5일 |
경력 | 소설가, 現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 | ||||||
박상우 내 마음의 옥탑방 (1999) | → | 이인화 시인의 별 (2000) | → | 신경숙 부석사 (2001) |
목차
1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 및 대학교수이다. 본명은 류철균. 필명 이인화(二人化)는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등장인물[1]로부터 따왔다. 본인의 설명으로는 창작과 평론을 겸하기 때문에 이런 필명을 쓴다고 한다.
아내는 정신과 전문의이다. 두 딸을 두었다. 2017년 1월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으로 이화여대 직위 해제되었다. 직위해제가 되면 교수 신분은 유지되지만 교육, 연구, 강의 등의 활동은 할 수 없다.#
2 행적
2.1 초기이력
1966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2 표절-셀프평론 논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문학평론 <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를 《문학과사회》에 발표하였다.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에는,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여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시 이상욱 평론가에 의해 여러 소설(무라카미 하루키, 공지영)을 짜깁기 한 표절 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이인화는 자신의 본명, 즉 류철균으로 이 소설이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2]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이라고 옹호하는 평론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필명으로 기고한 본인의 작품을 본명으로 자화자찬했을 뿐만 아니라 표절마저 옹호한 기행을 펼친 것이다. 명 4대 암군 중 1명인 정덕제를 연상시키게 하는 행태이다. 정덕제는 어느날 자신에게 '주수(朱壽)'라는 또다른 정체성을 부여한 뒤, 주수에게 벼슬과 녹봉을 주고, 심지어 병권까지 줬다. 그래서 정덕제는 '주수'의 자격으로 국경으로 출정까지 했다.
하지만 류철균이 곧 이인화라는 것이 밝혀지자, 당시 문단과 국문학계에서는 큰 파장이 일었다. 이인화, 즉 류철균은 그대로 표절작가 및 필명과 본명을 넘나들며 셀프 평론을 펼친 몰상식한 연구자로 묻혀야 했으나, 대부분의 문단 표절 논란이 그렇듯이 이 사건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문단안에서 탁상공론으로만 그쳤고[3], 다음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2.3 <영원한 제국>의 성공
이후 1993년 정조의 독살설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을 발표하였고, 100만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위의 사건이 묻혀진다. <영원한 제국>은 영화화까지 되어 1995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한 7관왕에 올랐고, 중고생 추천도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이는 노론 음모론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당시 진중권은 "이인화가 영남 남인의 후예이기 때문에,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 실제로 류철균 교수는 안동의 명문가인 전주 류씨로, 남인의 거두였던 정재 류치명의 후손이다. 여기에 소설 구성 자체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얼개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서 독창성도 떨어진다. 특히 이 작품은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에코의 외양에 역사 음모론을 버무린 "통속소설"로 평가했으나, 이인화의 언플 및 조선일보와 이문열의 극찬으로 당대 고전의 위치까지 격상된다.
<영원한 제국>은 사실 초반 판매가 신통치 않았으나, 이인화와 마찬가지로 영남 남인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문열[4]이 극찬한 서평이 조선일보에 실리자 바로 다음날 7,000권이 팔렸다고 한다. 사실상 이인화의 출세가도에는 이문열이 큰 역할을 했다. 이문열은 이인화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한듯,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리는 법”이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2.4 <인간의 길> 논란
1997년에 발표한 대하소설 《인간의 길》은 박정희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으로 '박정희 미화'를 놓고 상당한 논란과 물의를 빚기도 했다.당시기사# 이 소설은 강준만 교수에게 커다란 비판을 받았지만, 류철균은 이를 지역드립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강준만을 지역차별주의자라고 몰면서 비판을 교묘히 피해갔다. 사실 류철균의 출신지역과 박정희 미화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데도, 이를 지적하는 강준만 교수를 지역차별주의자로 몰아간 것. 뿐만 아니라 DJ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정부의 비리나 병크가 터지면, 조선일보 기고나 인터뷰를 통해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그저 정권탈취를 위한 위선적 운동으로 몰아갔다.
《영원한 제국》과 《인간의 길》은 사실 이인화의 파시스트적인 정치관을 드러낸 작품으로, 서로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영원한 제국》은 《인간의 길》의 배경세팅을 해주고 있는 사실상의 연작이며, 두 작품 모두 일관되게 독재를 옹호하고, 박정희의 1인독재를 미화하고 있다.
이인화의 표현에 따르면 박정희는 "선악을 초월한 초인"이라는 것. <영원한 제국>에서는 정조의 왕권강화책(홍재 유신)이 노론에 의해 무너진 것이 조선 망국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주장하여, 절대주의 국가[5]만이 국가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길》에서는 이런 논리를 박정희(작중 명칭 허정훈)에게 연장시켜 적용하며, 정조의 실패한 홍재유신이 박정희의 10월 유신으로 부활하여 절대주의 국가(1인독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절망속에 살던 가난한 민족이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북한은?
사실 《인간의 길》은 박정희(허정훈)가 "민족을 구원하게 되는"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는 1951년(3권)으로 끝난다. [6]원래 류철균이 집필 초기에 박정희의 생애를 모두 다룰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 것을 보면 의외다. 즉, 인간의 길에 뒤이어, '혁명의 길', '나의 조국'까지 합쳐서 박정희의 전 생애를 다룬 연작 10권짜리 연작 소설을 내놓을 계획이었으나, 결국 3권에 그치고 만다. 조루로 끝난 이유는, 박정희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부정적인 모습이 적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필력으로는 그것마저 옹호해서 "신적 존재"로 미화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자각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많다.[7]
2.5 우파 평론가
이인화는 당시 문단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작과 비평》의 리얼리즘적 사조를 비판하며, 리얼리즘과 상극인 자신을 띄우기 위해, 속된 말로 자기가 짱 먹기 위해 1993년 잡지 《상상》을 출범시켰다. 같이 참여한 동인은 장정일 및 김탁환. 그리고 이인화의 후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문열뿐만 아니라 당시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시인이었던 이창동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장정일과 김탁환은 후에 이인화와 결별했고, 현재는 모두 정치적으로 이인화와 정 반대편에 서 있다. [8]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대립하게 되는 진중권을 본격적으로 정치논객, 정치평론가의 길로 데뷔시킨 장본인이다. 본래 진중권은 정치학이 아니라 미학 등 인문학 관련 전문가였다. 90년대 중반 진중권에게 문학계간지 《상상》으로부터 원고 의뢰가 들어왔고, 진중권은 의뢰에 맞게 '근대 유럽의 낭만주의와 악마 숭배'를 주제로 글을 썼다. 글 자체는 유럽 미술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무난히 읽히는 수준이었으나, 나중에 책을 받아본 진중권은 경악하고 말았는데, 본인의 글이 박정희와 파시즘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배치되고 만 것.
순간 화가 난 진중권은 《상상》 측에 이전 원고를 반박(보강)하는 원고를 다시 쓰겠다고 했고, 《상상》측은 승낙했으나 어찌된 셈인지 원고를 보내도 실리지 않았다. 씹힌 진중권은 결국 다른 문학계간지 《문학동네》에 반박 원고를 게재했고, 당시에 진중권의 글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당시 진중권의 반박문을 극구 반대, 거부한 상상의 편집위원이 바로 이인화였다. 이 얘기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 잘 나와 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조선일보의 왜곡 편파보도를 비판하는 안티조선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9] 이인화는 조선일보의 호위무사 역을 맡았으며, 심지어는 조선일보를 나치 독일 시대 탄압을 맏은 문학가 토마스 만으로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10] 이런 몰상식한 비유때문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이인화의 홈페이지에 몰려와 항의글 폭탄을 안겨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런 행보 때문인지 조선일보는 이인화를 팍팍 밀어줬다. 하지만 이인화는 대체로 막말을 쓰거나 오버를 일삼는 다른 극우문인들(이문열 등)과는 달리,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로 박정희를 미화하며 조선일보를 옹호했다. 결국 1990년대 후반쯤 부터 박정희 향수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지도자로서 자질이 현격하게 부족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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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실린 이인화의 박정희 찬양 기고 [11]
2.6 교수 임용 및 이후 행적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명성에다 언론플레이에 능하고, 조선일보가 상당히 띄워줬기에, 박사 학위가 없고 학문적 성과가 미진함에도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1997년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박사학위는 지도교수인 김윤식 교수가 은퇴하기 직전인 2000년에 받음). 이후 2006년부터는 디지털 미디어 학부(현 융합 콘텐츠 학과) 교수를 지냈다. 2000년에 《시인의 별》로 제24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인의 별도 이인화에게 상을 주기 위해 무리수가 있었다. 원래 이 소설은 <문학사상> 2000년 1월호에 게재된 단편이었으나, 이상문학상의 심사대상은 1999년 12월 31일까지 발표된 소설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주최측(문학사상사)이 데드라인 마감을 지나고도 이인화에게 상을 주기 위해 무리수를 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6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친일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미화한 영화 《청연》의 시나리오를 썼으나, 친일시비에 말려들어 쫄딱 말아먹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항상 강조하던 "융합 컨텐츠"에 일찌기 관심을 가지고 본업인 소설 이외에 게임이나 오페라, 영화 등 여러 장르에 손댔으나, 딱히 성공을 거둔 것은 없다. 이에 관련된 전공서적도 몇권 내기는 했지만, 높은 수준이라기보다는 그냥 트렌드를 쫓아가는 느낌이다. 이인화빠들이 항상 이인화와 비교하는 움베르토 에코와는 학문적 수준을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이인화를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처음 지칭한 사람은 이인화의 지도교수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 교수이다. 평생 파시즘을 비판해 왔을 뿐만 아니라, 미학 및 비평학 부분에서 세계적 대가였던 움베르토 에코가 들으면 기겁할 일. [12] 어쨌든 상상의 동인들마저도 결국 이인화와 결별했을 정도로 동료작가들이 대부분 이인화에 비판적이었으나, 이인화는 문단 윗선의 아낌없는 보살핌 및 비호를 받았다. 이렇게 이인화의 인맥 관리나 윗사람 챙기기는 유명하며, 출세주의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인화는 자신을 비판하는 동료나 후배 문인들의 비평은 철면피로 무시하면서도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문단권력이나 원로(김윤식, 이어령, 이문열 등등..)에는 철저히 복종하고 빨았다. 어떤 방송에서는 자신이 문학가에 접어든 계기가 이어령이라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13]
3 몰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자세한 배경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문서 참조.
자신이 강의한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 과목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대리시험, 대리수강 등 학사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참고인으로 소환되어 특검조사를 받던 중, 2016년 12월 31일 새벽 특별검찰에 의해 긴급체포되고 구속되었다.
주된 혐의는 정유라가 수강하는 온라인 과목에서 대리 수강[14]을 시키고, 조교에게 정유라의 대리 시험답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시험 답안지가 공개됐는데,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서는 맞출 수 없는 어려운 문제도 척척 답을 적어냈다.# 이것도 검찰 수사와 교육부 감사가 시작되자 뒤늦게 작성한 것이었다. 이 와중에 난색을 표하는 조교들에게는 "논문 심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 "학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 며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 이는 학자로서의 양심 뿐만 아니라 교육자의 양심마저 저버리는 행위로, 권력과 결탁한 학자는 곡학아세뿐만 명백한 범죄까지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인터뷰에서는 항상 인자한 웃음으로 교양과 철학을 논하던 그가, 한국 학계의 병폐인 지도교수의 갑질문화를 그대로 시전했을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권력에 빌붙어서 제자들에게 범법행위를 강요한 것은 인간성을 밑바닥까지 보여준 것이다.
류철균의 이런 성적조작 위조 행위로, 다른 과목에서 처참한 성적을 얻은 정유라는 제적을 면할 수 있었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과적으로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제자를 겁박한 것은 제 무덤을 판 격이 되었다.
특검팀은 12월 30일 오후 7시 류철균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던 중, 조교들과의 대질심문에도 혐의를 전면부인하는 진술 태도 등을 고려해 이튿날 오전 6시 긴급체포했다. 결과 신년을 구치소에서 맞이했다. 특검은 증거인멸 혐의가 높다며 업무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증거위조교사, 사문서위조교사,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1월 2일 정식 구속되었다. 교통방송에 출연한 최강욱 변호사가 말하길 단순한 성적 조작 지시 정도면 대체로 불구속이지만, 조교를 위협-협박했기 때문에 증거인멸 및 조작의 가능성이 있어서 구속되었다고 한다.
류철균은 최순실의 측근으로 문화계를 농단한 차은택과 함께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설립한 ‘청년희망재단’의 초대 이사를 지내 최순실의 오래된 숨은 측근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동아일보 참고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박근혜 등이 대기업들로 하여금 청년희망재단에 620억여원을 지원하도록 했다며 고발장을 특검팀에 제출했다.
구속적부심에서 이인화는 "학점을 주는 건 교수의 고유권한"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성적을 입력한 조교도 공범"이라며, 자기가 위협한 조교에게 범죄를 전가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말을 늘어 놓았다. 채널A 당연히 개소리이다. 대리수강 및 대리시험은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체육특기자의 경우, 출석이 부실해도 최소한의 성적을 주는 것은 그동안 한국 교육계의 관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중간고사,기말고사 같은 공식 시험은 출석하며, 다른 사람의 대리 답안 작성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동안 이인화가 만든 이미지만 보고 그를 "천재소설가" 또는 "영민한 교수"로 알던 대중들은 이런 언행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이인화의 행적을 알던 문단이나 학계 관계자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이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화여대 농단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김경숙 교수의 주선으로 최순실과 정유라를 만났다고 자백했다. 김경숙은 정유라의 성적 조작을 부탁했고, 김경숙과 류철균은 교육부 감사에서 서로 말을 맞췄다는 의혹도 있다.
1월 4일, 진실의 수갑을 차고 나니 진상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는 소설가로서 문학계에서 사망선고나 받은거나 마찬가지였다.
- [채널A단독“정유라의 특혜 배후는 최경희 총장”]
4 평가
무너진 영원한 제국이인화 밀어준 조선일보가 이런 소리 할 자격은 없긴 한데
위의 약력으로 알 수 있듯이 1990년대 초반에 소설가로 반짝 했으나, 근본적으로 소설가로서의 문장력이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대세이다.
가장 성공한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를 모방한 《영원한 제국》 하나뿐이지만, 이것은 좋게 말하면 패러디, 나쁘게 말하면 표절 혐의가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전혀 천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자신이 시바 료타로 류의 "고쿠민쇼세츠"(국민소설, 류철균 본인표현)로 만들어 보겠다던 《인간의 길》은 재미도 없고, 너무나 정치적인 의도가 노골적이라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으로 커다란 업적을 높이 쌓은 것도 아니다. 게임에 빠진 이후부터 국문학과로부터 융합컨덴츠관련 학과로 옮기고 게임 스토리 창작 관련 저서를 몇권 냈으나, 실제 게임 제작 일선과는 무관하며 마치 문학 평론과 비슷한 이론적이며 관념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인화의 게임관련 서적을 읽는다고 해서 과연 게임제작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나 문단권력과 유착하여 그들이 입맛에 맞는 행보를 하면서, 우아한 이미지를 유지했기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에는 천재 소설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천재 소설가' 라고 비춰진 것은 이인화의 학벌적 배경(서울대 국문과 학-석-박사) 및 자신이 만들어내고 조선일보가 띄워준 이미지 메이킹의 결과이며, 실제로 이인화의 작품들은 대부분 범작에 불과하다.[15] 즉, 작품 대부분의 문장이 자연스럽지도 않고, 플롯이 기발하지도 않으며, 묘사가 유려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소설의 주제, 플롯, 기교 모두 평범하다. 소설가적 재능만 따지자면, 비슷한 이념을 가진 이문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인화가 2000년대 이후 사그라든 이유는 이러한 소설가적인 한계 때문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 [16]이 표절로 튀고, 독재권력을 옹호하면서 문단 권력이나 거대 언론과 야합하여 만 29세[17]에 엄청난 명예와 고액의 연봉,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는 명문대 교수가 되었으니 더 이상 입지가 불안한 소설가 코스프레를 할 일도 없었고,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셈. 대문호 소리를 듣는 소설가는 타고난 천재적 재능이 있거나(예: 미시마 유키오) 아니면 보통 작가를 뛰어넘는 월등한 부지런함이 있거나(예: 시바 료타로) 혹은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인생의 굴곡을 처절하게 겪는, 소위 영혼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예: 도스토예프스키)이 대부분인데, 세 가지 모두 아닌 사람이 20대 후반부터 편한 자리에 앉았으니 소설가로서 발전할 수가 없었다.
5 성향
- 평소 강연이나 인터뷰 등에서 자신은 "X알 두 쪽만 차고 서울에 올라와 성공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흙수저임에도 박정희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아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라 말하기도 했으나, 그의 아버지 故류기룡(1935~2014)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고 퇴직 후 명예교수까지 지냈을 정도라 이인화는 국문학계의 금수저였다. 국문학계로 좁히지 않더라도 4년제 명문 지방거점국립대학교 정식 교수의 아들 정도면 1966년생인 이인화의 성장기 기준으로는 충분히 금수저라 할 수 있다.
- 이화여대의 한 수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고 이화여대 익명게시판에 학생의 제보가 올랐다. 인문학자로서는 심하게 부적절하고 교양은커녕 개념조차 없는 발언이며, 더군다나 본인이 이화여대라는 명문 여학교의 교수라는 점에서 학생들에게는 인격모독적인 말이다. (출처: 2017년 1월 2일자 JTBC 정치부회의 )
세상은 돈과 권력과 섹스로 돌아가는 겁니다. 설마 아가페적인 사랑은 믿는건 아니죠? 사랑 믿음 같은 건 아무 힘이 없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라구요.
여성이 강간을 당한다고 해도, 그런 일 좀 겪는다고 사는데 지장이 있습니까? 그것 역시 반성의 계기가 되고 인격적으로 성숙시킬 계기가 됩니다.
- 문단 데뷔 초기부터 권력-출세지향적인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고, 표절-셀프 평론 논란도 이런 출세지향성의 연장선에 있다. 사석에서는 "나는 힘있는 사람이 좋다"고 거리낌없이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가장 힘있는 최순실과 야합했다가 결국 국문학계-문단에서 퇴출될 위기에 서 있다. 마광수와 같이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필화사건도 아니고, 김지하와 같이 독재정권을 비판했다가 탄압받은 사건도 아니라 부정한 비선권력에 줄댔다가 같이
쫄딱 망한몰락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인화의 복권이나 문단복귀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5.1 이미지 메이킹
소설이 아닌 글을 쓸 때도, 완화되고 주지주의적인 어휘[18]로 파시스트적인 주제를 포장했기 때문에, 그런 주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식인 (진중권, 강준만 등등) 들만이 비판에 나섰으며, 대중에게는 그저 "베스트셀러 작가", 또는 "천재 소설가" 정도의 우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에 극우적 논평을 쓰면서도 동시에 진보적인 한겨레에도 이인화의 글이 실리곤 했다.
'천재 소설가'는 이인화의 이화여대 임용 초기시절 조선일보가 붙여준 별명. 은제 담배케이스에 담배를 넣어 다니며, 항상 정장을 입는 식으로 본인의 우아한 이미지를 메이킹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항상 우아한 모습으로 독서의 중요성 및 교양과 인문정신을 강조하는 등으로 자신을 포장했으나, 실제는 어떻게든 출세하기 위해 표절이나 셀프 평론 같은 무리수까지 범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부정한 권력에까지 아부하는 출세주의자의 모습을 보였으며, 이인화의 속마음은 위의 JTBC에서 수업시간에 했다던 "세상은 돈, 권력, 섹스로 돌아간다"는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언론플레이나 이미지 메이킹에 상당히 능하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신작의 프로모션 때문에 불가피할 때를 제외하면, 언론 인터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지만, 이인화는 여성이나 청소년 대상 잡지에 자주 등장하고 일종의 연예인과 같은 이미지를 가꾸어 나갔다. 심지어는 아이돌들이 자기 홍보에 사용하는 네이버 캐스트에까지 나와서 썰을 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캐스트 [19]
이렇기 때문에 이인화의 실제를 잘 알고 있는 문단-국문학계의 평가와 이인화가 만든 이미지만 보는 대중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대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5.2 일빠
대부분의 극우인사들이 그렇듯이 상당한 일빠다. 일본어에도 상당히 능하다. 일본 역사, 특히 메이지 유신에 매우 심취해있다. 1990년대 중반 한겨레에 문학과 역사를 다루는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는데, 러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 장성인 노기 마레스케를 미화한 글을 기고했다가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단된 바 있다.일본사 연구가의 반박글
박정희를 미화한 소설 <인간의 길>도 시바 료타로와 시오노 나나미 [20]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 역사를 재미있게 각색할만한 소설가적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졸작이 되어 버렸다.
5.3 게이머
리니지를 즐기고 있으며, 여기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기사 사실, 상당한 하드 유저로서, 실제 게임 사전을 대표 집필했는데 리니지의 내용이 다른 게임 항목들보다 많아 논란이 있었다. 심지어 게임 중독법 사태 때 그렇게 사이가 안좋았던 진중권과 함께 한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냈다.
본인조차 <지옥설계도> (2012)를 펴내면서 하루에 3시간 이상, 8년간 게임폐인으로 살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 실제로 게임에 빠졌던 200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창작활동은 두드러지게 부진해지며, <지옥설계도>조차 범작이라고 할 수 있다. [21] 여가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것은 자유겠지만, 본업인 연구나 창작에 소홀하면서까지 게임을 즐겼다는 것은 교육자로서 실격임을 보여준 것이다.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해 많은 관심과 활동을 보였으며, 관련 저작도 3권 정도 썼다. 엔씨소프트에서 개발한 스토리 창작툴 스토리헬퍼 링크 의 개발에도 깊이 관여한 바 있다. 이인화의 저작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 「리니지 2」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 YES24 링크 는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2010년,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웹 전쟁게임 열혈삼국이 반사회적이고 패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비판하는 컬럼을 조선일보에 게재하였다. 링크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류철균 본인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거대 길드와 분쟁이 일어나 참패하자 국민신문고에 신고하고, 이마저 통하지 않자 신문 컬럼을 통해 비난했던 것. 동아일보 기사 전형적인 언론플레이 행위로 대중의 빈축을 샀다. 이런 찌질함은 사실 데뷔초기에 표절판정을 받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서 셀프평론으로 자화자찬 및 표절옹호를 할 때부터 드러난 바 있다.
6 작품 목록
6.1 소설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 1992, 등단작
- 영원한 제국 - 1993, 영화화
- 인간의 길 -1997
- 초원의 향기 - 1998
- 잊혀진 자의 고백 - 1998
- 시인의 별 - 2000,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 초원을 걷는 남자 - 2000, 제2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자선 수록작
- 려인 - 2001, 제8회 21세기문학상 수상작
- 하늘꽃 - 2002
- 하비로 - 2004
- 지옥설계도 - 2012
6.2 기타 저서
- 디지털 스토리텔링 - 2003, 전경란 등 공저
-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 2005, 부제에서부터 바츠 해방 전쟁에 대한 내용임을 밝히고 있다.
- 피닉스의 불 - 2007, 과학 학습만화 스토리 담당
- 스토리텔링 진화론 - 2014
-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이해 - 2015, 한혜원 등 공저[22]
- 게임사전 - 2016
6.3 번역한 책
-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살림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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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중화자이기도 하다. 도쿄 유학까지 한 엘리트고, 식민지하의 조선인 차별에 분개하지만, 겁쟁이에다 속물이기 때문에 일제에 항거할 생각은 못하며, 어떻게든 식민 체제에 순응하여 출세를 도모하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 여기에 조선에 남겨둔 병든 아내 (결국 사망)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도 일본인 여급(호스티스)들에게 껄떡대는 작자다.
묘하게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듯 - ↑ 이 용어는 정식 문학 용어도 아니며, 공인된 소설 기법도 아니다. 즉 이인화가 자신의 표절을 옹호하기 위해 어거지로 끌어온 개념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특히 이인화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무관한 상업주의적 (즉 통속) 작가로 보는게 적절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지향점은 시바 료타로 류의 일본식 대중 역사소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평론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이문열 사단의 일원인 서강대학교 김욱동 교수만이 "이인화의 작품은 표절이 아니라 포스트 모더니스트적 기법"이라고 열렬히 옹호하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 ↑ 이런 점에서 보듯 한국 독자들이나 문단은 가요계보다도 표절에 대해 더 관대하다. 이인화보다 더욱 심각한 표절을 저지른 신경숙만 보더라도 옹호자들이 있을 정도이니..
- ↑ 범 안동권 양반 가문인 재령 이씨.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張桂香)은 재령 이씨 가문에 시집 온 여성으로, 이문열의 조상이다.
- ↑ 절대권력자가 다스리는 독재국가
- ↑ 작중 마지막에서 공산군에 포위되어 생사의 기로에 선 허정훈은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음으로써 저 하늘에 대한 모반을 수행한다. 인정승천(人定勝天). 인간의 의지가 하늘을 이기리라. 이 무참한 하늘을 이겨 내기 위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웬지 본인의 출세주의를 말하는 것 같다. - ↑ 이인화가 지향점으로 생각하는 시바 료타료는 대체로 역사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묻힌 사람(예를 들어 사카모토 료마, 이시다 미쓰나리 등등)을 을 발굴해서 영웅화시켰다. 이렇게 미화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대중의 기억속에서 사라졌거나, 그와의 동시대인이 모두 죽어 사라진 경우다. 하지만 박정희는 역사속에서 묻힌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에 의해 탄압을 받은 사람들이나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가족 상당수가 눈이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기 때문에, 절대로 당대에서 미화할 수가 없는 인물이다. 만약에 이인화가 계속 집필을 해나갔다면 북한의 선전물과 같이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미사여구로 가득한 졸작이 되었을 것이고 이인화도 그정도는 알기 때문에 3권으로 끝을 냈을 것이다.
- ↑ 장정일은 문재인 지지자이며, 김탁환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소설 <거짓말이다> 를 펴낸 바 있다.
- ↑ 당시 안티조선 운동은 현재의 진보진영의 논객들이나 인재들이 데뷔하는 통로였다. 진중권, 홍세화, 고종석, 유시민, 강준만 등등의 여러 쟁쟁한 논객들이 여기에 참가하고 있었다.
- ↑ 이 사건은 2001년 DJ정부가 조선일보에 세무조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DJ정부가 조선일보에 악감정을 가지고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세무조사 자체는 정당한 법집행일 뿐더러 (즉 조선일보가 탈세와 무관했다면 정부의 세무조사로 불이익을 받을일은 없었다.) 이인화가 군사독재시절 친여적 입장에서 항상 김대중 및 민주화운동을 친북 또는 좌경으로 흑색선전을 일삼던 조선일보를 나치에 탄압받은 양심적 문학가로 비유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 ↑ 한겨레신문에 이런 컬럼이 실린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박정희 신드롬에 대해 진단하는 기획기사를 내면서 박정희 찬양측의 입장으로 이인화의 글을 실어준 것이다. 반대측 입장으로는 홍세화의 글이 실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 김윤식은 국문학계의 거장이긴 하지만, 말년에 표절논란에 휘말려 들었다. # 다만 위에서 말한 표절에 관대한 문단 및, 국문학계를 지배하는 서울대 국문과 인맥 때문에 이런 사실은 대중에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 ↑ 이화여대 교수가 될 때에도 이화여대 국문과의 태두였던 이어령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 ↑ 다른 사람이 대신 인강을 들은 것이다.
- ↑ 이인화의 가장 성공작인 《영원한 제국》은 《장미의 이름》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며, 진정한 천재 소설가는 이인화가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다.
- ↑ 인문학 전공 학자들은 설령 명문대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해도 대학에서 정규 교수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인문학 분야는 정규직의 수가 매우 매우 적기 때문에, 웬만한 연구 업적을 가지고서는 명문대 교수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며, 중간에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공대나 상경계보다도 더 어려운 사정이다. 이인화와 비슷한 레벨의 인문학 전공의 국내박사 학위자라면, 30대 중반까지는 박사를 막 받고 시간강사로 돌다가, 30대 후반에 연구에 탁월한 업적이 있거나 혹은 운이 엄청나게 좋으면 지방대 전임강사부터 시작하고, 그 자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부교수에서 정교수 승진할 때인 40대 중후반쯤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직하는게 그바닥의 테크인데, 이인화는 20대 후반부터 남들이 40대 후반에야 올라가는 자리를 꿰었으니 이인화가 얼마나 출세지향적으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줄타는 것도 넓게보면 능력이긴 하다. 학문적으로는 무관하지만 - ↑ 대체로 10여년 가량 빨리 학계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즉, 전임강사나 조교수 같은 정식 교수로 위촉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30대 후반 ~ 40대 초반인데, 이인화는 그걸 10여 년이나 빨리 달성한 셈
- ↑ 소위 먹물의 글. 대표적인 극우문인인 이문열이나 복거일과 같은 사람들의 글은 감정의 과잉이나 소설가적 과장으로 선동하듯이 좌파를 공격하지만, 이인화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문장으로 "좌파의 위선"을 지적하는 식이다.
- ↑ 물론 이 네이버 캐스트의 서재 시리즈에는 많은 명사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진짜로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가 한강(소설가)도 있다. 하지만 이인화는 이런 시리즈를 자신의 겉과 속이 다른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하는데 적극적이었다.
현실은 린저씨 - ↑ <인간의 길>을 관통하는 주제는 마키아벨리즘과 영웅사관인데 체사레 보르자와 카이사르를 숭배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사관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재미는 시오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 ↑ 교수초기시절 곱게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에 항상 외출시 넥타이에 바바리코트 차림의 우아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게임 폐인으로 살면서부터 헤어스타일도 더벅머리에 넥타이는 생략하고, 심지어 옷차림마저 간소화되는 등의 스타일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즉 린저씨가 된 것. - ↑ 특이하게도 이 책만은 본명인 '류철균'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