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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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인공 아슬란 (영화판)

1 개요

최고의 명작 판타지 소설 중 하나.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판타지 소설계의 양대산맥.

영국의 시인이자 수필가, 비평가, 소설가인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의 총 7편의 판타지 소설을 일컫는다. 사실 명석하며 신랄하기까지한 저서들로 유명한 루이스가 어린 아이들을 위해 만든 시리즈다. 때문에 스토리상 전투나 전쟁에 대한 묘사를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는 대신 캐릭터들의 성장과 소통에 중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현재까지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영화화되었고 곧 은의자가 제작될 전망이다. 연대순이 아닌 출판 년도 순으로 제작하는 듯. 나중에 연대기 순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할 듯 싶다. 문제는 언제 다 영화화되냐는 거지 외전 격인 마법사의 조카나 말과 소년은 그냥 안할지도, 특히 말과 소년...

2 시리즈

출간된 책은 총 7권이며, 각 권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영화화된 작품은 굵게 표시)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시리즈
연대기 순출판 연도영화화 연도
마법사의 조카 (The Magician's Nephew)1955년 (6)-
사자와 마녀와 옷장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1950년 (1)2005년
말과 소년 (The Horse and His Boy)[1]1954년 (5)-
캐스피언 왕자(Prince Caspian)1951년 (2)2008년
새벽 출정호의 항해 (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1952년 (3)2010년
은의자 (The Silver Chair)1953년 (4)사전 작업 중
최후의 전투 (The Last Battle)1956년 (7)

2.1 번역본

한국어판은 시공주니어에서 펴낸 7권짜리 책과, 이를 단권화한 엄청 두꺼운 양장본이 있다.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도 낱권으로 출간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희귀본이 된 듯하다. 하지만 나니아를 '나르니아'라고 번역[2]하고, '나르니아 나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묶여있었다. 각권의 순서는 시간대가 아니라 출판 순으로 되어 있다. 한길사에서도 90년대 중반경 낱권으로 발매된 바 있다.

2.2 Susan of N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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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망으로 집필되지 못한 나니아 연대기의 8번째 책.
알려진 정보로는 최후의 전투 이후의 시간대를 다뤘을 것으로 보이며, 주인공은 수잔 페번시.
소설 본편을 전부 보지 않았다면 왜 수잔만 따로 취급되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이는 마지막 권에서 지구에서 나니아를 방문한 사람 중 수잔만이 유일하게 아슬란의 나라[3]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구에 남았다. 수잔이 아슬란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확실하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수잔이 나니아를 어릴적의 환상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게 되었으며, 현실에 집착하게 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곤 한다.[4] 이는 후에 서술될 플라톤 철학, 특히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 강한 접점이 있다. 수잔은 아슬란을 통하여 나니아가 진짜 현실임을 배웠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진짜 현실세계의 그림자와도 같은 지구의 생활에 더 녹아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것이 수잔이 나니아에 들어가지 못한, 또는 "않은" [5] 결정적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아슬란의 나라에 들어간 지구인은 수잔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페번시 남매와 유스터스, 질 폴 일행 그리고 나니아의 창조를 지켜본 디고리 커크와 폴리 플러머, 총 7명이다.
언뜻보면 수잔이 버림받은 것같지만 루이스는 '수잔이 아슬란의 나라에서 완전히 쫓겨난 것은 아니며,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 책에서 그 내용을 다루게 될 예정이였던 것으로 보인다.[6] 본인이 아이들에게 남긴 편지에 따르면 연대기를 마무리할 정말 멋진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으로 보이지만, 루이스는 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너무 아쉽다.

어쨌거나 루이스가 의도했던 결말은 수잔도 아슬란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던 걸로 보인다.

3 특징

3.1 기독교적 색채

저자 루이스는 매우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 세계의 멸망과 구원, 대속제, 구세주의 시련과 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작품 내에서 강하게 드러나 있다. 루이스의 책을 읽어보면 정말 성경오마쥬(?)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기본적으로 아슬란을 예수의 위치에 두고 생각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아담의 아들과 이브의 딸이라는 호칭.
  • 디고리 커크가 따낸 사과. (사실 아담이 무슨 열매를 따냈는지 성경에 안 나오지만 사과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 말(정확히는 노래지만)을 통해 세계를 창조하는 조물주(사자지만). (마법사의 조카)[7]
  •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 죗값을 치르고, 그 후 부활하는 대인배 (사자와 마녀와 옷장)
  • 알고보니 난 좀 짱 (말과 소년)
  • 적을 피해 광야 체험 (말과 소년)[8]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새벽 출정호의 모험)[9]
  •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천국으로 생각되는 신세계 (새벽 출정호의 모험)
  • 알고보니 신이 우리와 같아. (말과 소년)
  • 아마겟돈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전투 이후 결국 모두 다 죽어서 천국에서 조물주와 같이 산다. 한 명 빼고. 야! 신난다~(마지막 전투)[10][11]

더 찾아보면 많지만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이 정도다. 루이스가 썼던 기독교 변증서에 비해서 훨씬 고민이나 사려 깊음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다만 이 기독교적 색채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딱히 이책이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같은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므로 종교 자체를 혐오하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의 조카들을 위한, 즉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썼으므로 어린이의 입장에서 어려운 개념 따위는 없다. 그래서인지 어른이가 봐도 교훈적이다.

이렇듯 종교적 경향성을 강하게 띄는 나니아 연대기의 강력한 까였던 필립 풀먼안티테제 격으로 황금나침반 삼부작을 썼다.

3.2 작품내의 플라톤 철학

그래서 이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플라톤 철학'. 기독교적인 세계관은...위의 내용만 보고도 대강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슬란을 예수[12] 정도로 보고, 아슬란을 따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기독교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니아에 온갖 생명체가 다 있는데도 정작 왕이나 여왕은 인간만 되는 것도 이런 측면이다. 기독교 철학으로 보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인간만이 왕이 되는 모습은 플라톤 철학의 일면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철학에 따르면 이상적인 국가에서 국민들은 각자 타고난 성향에 따라 계급이 정해져 있고, 각 계급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임무만을 다한다. 다른 계급의 임무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니 나니아에 사는 온갖 생명체들이 왕 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전투를 보면 '동굴의 비유'로 대표되는 이데아론을 보여준다. 나니아가 멸망하자 아슬란이 모든 생명을 데리고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데, 그 세상은 나니아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서술된다. 그러자 그곳에 간 동물 중 하나가 '왜 이제까지 나니아를 사랑했는지 알겠어요! 나니아가 이곳과 닮았기 때문이었어요.'라고 한다. 즉, 그때까지 작품에 등장한 나니아는 아슬란이 이끌고 간 '진짜' 나니아의 그림자(동굴에 비친 그림자)였던 것이다. 이 장면은 이데아론에 대해 정말 약간만 알고 보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덧붙이자면 플라톤 철학에 나타난 위와 같은 요소는 기독교가 사상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한 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나니아 연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 기독교 알레고리로 가득 찬 기독교적 장르 문학이라는 뜻이다. 첫 작품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예수의 도래와 수난, 죽음과 부활을 아슬란을 통해 재현한다! 새벽 출정 호의 항해에서는 나니아에 올 수 없게 된다는 점에 상심하는 루시에게 자신은 다른 세계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기독교 교리나 문화적 배경에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종교 상징인지 깨닫는다면 오히려 순수한 재미를 덜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첫작품은 복음서를 한번 본 느낌이 들 정도.뒷장면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루이스의 절친한 벗이었던 톨킨은 나니아 연대기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강하게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의 오랜 설정놀음과 연구의 결실을 소설의 형태로 드러낸 것이 반지의 제왕(...)이다. 물론 반지의 제왕은 절대 기독교적 소설은 아니다.[13]

4 평가

참고로 이 책은 판타지 명작의 기준이라고 한다(...). 즉 어떤 판타지 소설이 명작인지 아닌지 알려면 이 책과 비교하면 된다. 보통 판타지 3대 산맥이라 하면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를 뽑는다. 그 이유는 판타지라는 환상문학의 장르 형성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작품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쉽죠?

판타지 중 명작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판타지 동화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이 소설을 최고로 친다. 심지어 영미권 홈페이지를 둘러봐도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개 페이지에서 최소 한 번은 언급된다. 그 둘이 그 랭킹에 없더라도 말이다. 친구 두 사람이 각자 쓴 소설인데 모든 판타지가 그 둘에 비교당하는 더러운 세상! 밸런스 패치가 시급합니다.

가장 유명한 차원이동물...이라는 평도 있다. 그렇다고 이고깽은 아니다. 일단 이 세계에는 가는데, 주역 여섯 아이들 모두 고딩이 아니고 중딩만 되어도 나이 제한 초과로 용사가 될 수 없다 카더라 , 깽판은... 치는 녀석이 응징 당한다.

작가인 루이스가 애초부터 애들을 대상으로, 동화를 컨셉으로 잡은 작품이기 때문에 취향에 안 맞는 사람은 뭐 이리 유치하냐고 불평하면서 책을 덮을 수도 있다(특히 새벽 출정호의 항해). 세계관 곳곳에 숨어있는 기독교의 오마쥬, 동심을 불러 일으키는 동화적 풍경과 능수능란한 서술 방식[14]에 심취한다면 이 소설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4권까지는 말 그대로 논스톱으로 읽어제낄 수 있다.

작가가 직접 만든 종족이나 환상종이 거의 없다는 게 특징이다. 굳이 찾자면 의자 편의 개구리를 닮은 종족인 마슈위글 정도가 있다. 자신만의 거대하고 치밀한 세계관, 게다가 새로운 언어까지 개발한 톨킨스와 이 점에서 비교 당하기도 한다. 지못미.

4.1 비판

4.1.1 인종차별 논란

나니아 연대기의 치명적인 단점은 인종차별 논란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말과 소년'의 경우, 동양인(아랍인)=야만인으로 일반화하고 그들의 도시인 타쉬반을 퇴폐적으로 묘사하는 등, 당시의 인종차별 묘사까지 그대로 가져왔는데 이것이 논란의 주요 핵심이다. 그 외에도 1930년대~194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약간 납득이 안 가는 묘사도 몇몇 있다. 예를 들어 5권의 유스터스와 페미니즘, 신식 교육에 대한 묘사는 이런 미치광이 교육 같으니라고! 라는 수준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루이스의 친구기도 했던 톨킨에 의해 쓰인 반지의 제왕에서도 인종차별 논란이 존재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아래는 논란에 대한 의견들.

  • 옹호론

하지만 둘 다 가상의 악의 왕국을 심판하는 내용의 판타지 소설이고,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위해 주인공들과 대칭에 있는 세력은 반드시 악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이런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 그리고 가부장적인 묘사와 남성우월주의적인 시각 등은 사실 현대의 소설들에도 간간히 나타나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이런 인종차별 논란은 이들 소설이 학문적으로 분석될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에 걸리는 시비라고 볼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애초에 이런 소재의 소설은 보는 관점에 따라 태클 걸 거리가 무궁무진하며, 당장 인간과는 명백히 다른 종임과 동시에 독립된 문화권임을 명시한 오크의 경우에도 몽골인이나 아랍인을 야만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시비에 휩싸이는 형편이다.
작가와 작품의 괴리가 나는 이유는, 권선징악형 소재의 판타지 소설 자체가 '착한 편 VS 나쁜 편' 구도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쁜 편'은 마지막엔 자비 없이 처단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악할 수밖에 없고 현실의 온갖 부정적인 소재로 점철되곤 한다. 이런 구도로 나가다보니 당대의 부정적인 시선이 가미되기도 하는 것이다.

  • 반박

다만, 이 문제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나니아 연대기와 루이스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은 반지의 제왕과 톨킨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단,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우론의 수하들인 오크들이 아랍인(또는 오스만 제국)이나 몽골을 야만인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석되는 경우도 있지만, 소련볼셰비키, 그보다도 히틀러나치를 은유한 것이라는 해설이 정설로 여겨진다. 작가 본인제1차 세계대전 때 전투병으로 참전해 독일군과 맞서 싸웠으며 그의 셋째 아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과 싸웠으니 이들을 악으로 묘사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 지도... 인간족인 이스터링 역시 "난쟁이처럼 도끼를 사용한다", "전차몰이족이 그들의 일부이다"처럼, 특정 문화권을 연상하기에는 무리인 것들 뿐이다. 하라드림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북아프리카인들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반지전쟁 이전에는 악역이 아니었다가 사우론에게 속아넘어간 듯한 서술, 그리고 곤도르인들과의 전투에서 객사한 하라드림 전사들에 대한 동정적인 서술이 나오는 걸로 어느 정도 무마가 가능하다.[15] 결국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오크들은 영국과 서유럽 기준으로 동쪽에서 온 침략자[16] 이미지를 다 한 번씩 뒤집어 쓴 적이 있는 셈이다. 이는 작중에 등장하는 오크의 이미지가 현존하는 특정한 문화권을 직접적으로 암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현실의 이미지를 투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톨킨은 최소한 특정한 문화권이나 인종을 직접적으로 비하했다는 논란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으로, 인종차별 논란 역시 주로 작품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다. 또한 톨킨 자신도 작품 외적으로 수 차례에 걸쳐 아파르트헤이트 등의 인종차별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작품 내적으로도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세력이나 인종들이 현실이나 실제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히기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 역시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즉, 톨킨의 작품들은 직접적인 비하 논란에 휘말린 것은 아니고, 간접적인 비하 논란에 대해서도 톨킨 자신이 어느 정도의 해명을 제공한 상태에서 이해 가능한 부분이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톨킨은 인종 차별 혐오주의자라고 한다.

이해 비해 나니아 연대기와 루이스는, 일단 논란 자체가 직접적인 비하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사막 국가인 칼로르멘의 경우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모발은 검은색인 사람들이 사는데, 그 땅의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언월도로 무장하며 머리에는 터번을 얹고 다닌다. 그리고 화폐에는 초승달 무늬를 새겨놓고 산다. 이 사람들이 과연 현실의 어떤 문화권을 연상시키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칼로르멘인들을 잔인하면서도 비열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면, 이는 명백한 비하로 여겨질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칼로르멘인들이 믿는 신인 타슈는 인신 공양을 요구하는 사악한 신이며, 따라서 연작의 마지막 이야기인 최후의 전투에서 타슈와 아슬란을 동일시하는 태도 역시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행태가 된다. 물론, 칼로르멘인이라고 모두 다 사악할 리는 없으니 최후의 전투의 종반부에서 한 젊은 칼로르멘 군인이 아슬란에게 구원받기는 하는데, 이는 그 청년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타슈의 이름을 부르며 타슈를 숭배했더라도 실제로 그 청년이 믿은 것은 악한 신인 타슈가 아니라 선한 신인 아슬란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칼로르멘이 어떤 문화권을 암시하는지가 뻔하다면 타슈가 어떤 신을 암시하는지 역시 뻔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또한 특정 종교에 대한 비하로 여겨질 소지가 매우 다분하다.

이 문제에 대해 작가인 루이스 자신이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곤란했나보다, 나니아 연대기의 인종차별이나 특정 인종, 종교에 대한 비하는 가볍게 여기기 힘든 문제이다. 권선징악적인 구도의 이야기에서 나쁜 편을 확실히 악하게 묘사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문화권과 인종, 종교를 연상시키는 소재들이 잔뜩 사용되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나니아 연대기는 20세기 중반의 작품이다. 현대와 같은 정치적 올바름 개념이 널리 퍼진 시대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문화상대주의는 보급된, 즉 함부로 남의 문화를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것이 잘못된 태도라는 인식 정도는 확립된 시대였다. 이 점에서 같은 기독교 종파들에게는 개방적이었던 루이스였지만 이슬람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문제들 때문에 톨킨의 작품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는데 비해,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대해 같은 문제가 제기될 경우 마땅한 반론이 거의 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자주 나오는 반박이 시대적 한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든가, 연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니 보는 관점에 따라서 시빗거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정도이다. 이의 근거로써 동시대에 출간되어 나니아 연대기 이상의 유명세를 얻은 작품인 반지의 제왕 역시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는 점이 제시되는데, 사실 이런 반박은 물타기에 가깝다. 애초에 두 작품의 인종차별 논란 수준 자체가, 나니아가 T.O.P라면 반지의 제왕은 커피잔 씻은 물 정도에 불과하다. 당장 옹호론을 보더라도, 반지의 제왕 관련 논란에서 사용된 옹호론을 끌어와 나니아 연대기 관련 논란도 마찬가지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심각성이 훨씬 덜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가지고 더 심각한 문제에 대해 비슷한 경우로 이해하자는 것은 몹시 억지스럽다.

영화판에서는 칼로르멘이 언급만 되었고, 별다른 칼로르멘인도 등장하지 않아서 일단은 그나마 논란이 될만한 소지가 없다.

4.1.2 종결자 아슬란

전편에 걸쳐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장을 잘 묘사하고 있지만, 마지막에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항상 아슬란이라는 점에서도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다. 거의 기-승-전-사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대쪽은 아슬란은 노력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고, "마지막 전투"에서처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대립각을 세우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슬란이 킹왕짱 이런 이미지를 부여하는 정도가 좀 센 편이라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아슬란이 예수의 위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종결자 아슬란이라는 구조를 취한 이유를 이해 못할 것까지는 아니다. 게다가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도 자기 마음대로 사라지고, 결국 모든 갈등의 주체는 인간이란 점에 있어서 일각에서는 맥거핀 정도로 취급받기도 한다.

4.2 기독교계의 입장

여담인데 일부 기독교에선 기독교적 판타지 소설이라며 추천하기도 한다.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데, 극렬 개신교도들은 지은이가 성공회 쪽이라고[17] 싫어하는 이도 있으며, 반대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소설을 사탄으로 매도하는 이들이 그래도 나니아 연대기가 낫다며 추천하기도 한다. 아니 근데 반지의 제왕은 대체 왜??? (실제로 일부 개신교 서점 및 개신교 월간지에서도 추천한 바 있다.) 반대로 판타지 자체를 종교로 따지는 걸 비웃는 기독교도도 있다.

가톨릭의 입장은 판타지를 읽든 마도서(...)를 읽든 양심에 찔리면 고해성사에서 밝힐 일,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님이다. 우와 대인배(...). 거기다가 이 책을 한국에 냈던 출판사 중 하나인 성 바오로 출판사는 가톨릭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출판사다. 이쯤 되면 읽는 걸 권장하고 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사실 작가인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차치하고서라도 '스크루테이프 편지', '순전한 기독교' 등 교파를 초월한 근본적인 기독교에 대한 변론서를 여러 편 집필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책은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대부분 취급하고 있었다가 현재는 개신교계 출판사인 홍성사에서 출판 중이다.

5 영화화

1979년에 나온 애니메이션판이 있다. 참조

1988년에 BBC에서 드라마화 되었다. 참조

반지의 제왕 영화 대박에 힘입어 영화로도 나왔다. 실사영화에 관해서는 나니아 연대기 실사영화 시리즈 문서 참고.

6 세계관

등장 국가 및 종족에 관해서는 나니아 연대기/세계관 문서 참조.

7 등장인물

나니아 연대기/등장인물 문서 참조.
  1. 패번시가의 아이들이 나니아를 다스리던 시절의 이야기이므로 위치상 2권의 외전격이다.
  2. 나니아의 철자는 Narnia이다. r을 '르'로 읽으면 나르니아가 되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 다들 '날니아' 비슷하게 발음한다. 영국책이기 때문에 r발음이 탈락해서 결과적으로 발음은 나니아에 더 가깝다. 고질적인 한국의 영문 음차 오류.
  3. 이 세계관에서의 일종의 천국 비슷한 개념이다.
  4. 수잔을 제외한 나니아 방문자들이 아슬란의 나라로 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마지막 권에서 나니아와 관련한 일로 모두 모이려다 기차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때 일부 인원은 기차에 타고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나머지 인원은 역으로 나와 있었다. 나니아를 믿지 않는 수잔은 이들과 함께 있지 않았고, 따라서 혼자 살아남은것.
  5. 수잔의 자유의지로서 선택하였던 결말
  6. 이는 성경의 예수 재림 또는 rapture때 믿는 자들이 승천한 이후 지구상에 남은 자들 remnants의 구원을 위해서도 신이 따로 계획을 세워두었다는 요한 계시록의 구절을 연상시킨다.
  7. '기독교에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창세기의 천지 창조에서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은 '있으라'라는 말씀만으로 자동 생성되었다고 서술된다.
  8. 신/구약 모두에서 광야는 고통을 겪고 성장하는 장으로 묘사된다.
  9. 돌아온 탕아
  10. 들어가지 못한 이유도 곱씹어보면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
  11. 다만 작가에 따르면 들어가지 못한 한 사람도 영원히 못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이에 대한 뒷이야기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가 사망하는 바람에... 잠깐 이러면 앞의 주석과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12. 성부 하느님이 아니라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델이라 한 것은, 아슬란이 '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칭 바다황제의 아들이라고 칭한다. 물론 모티브가 모티브이다보니, 본질로는 바다황제와 같을 수도 있다.
  13. 톨킨은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작품에서 그리스도교적 영향을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으나, 톨킨은 자기 작품에 대해서는 내내 '이야기는 이야기로 즐기고, 내 작품에서 알레고리 운운하지 마라'는 쪽이었다.
  14. 중간중간 괄호 안 작가의 설명이나, 장면 바꾸기, 인물 서술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비슷하다. 물론 시대상으로 이쪽이 앞선다.
  15. 여기에 덧붙여서 곤도르인들이 백인으로 묘사되지 않는 것도 한몫 한다. 로한인들은 백인으로 묘사되지만 이들은 애초에 모티브가 톨킨의 모국인 영국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16. 모르도르의 위치가 동쪽이므로.
  17. 정확히 말하면 성공회도 엄연한 개신교다. 더군다나 전세계 개신교 중에서 최대의 신도 수를 자랑하는 거대 교파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주류인 장로회와 비교하면 교리적 차이가 많아서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는 별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