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들은 축구에 미친다는 말이 있다. 축구 1부 리그인 터키 쉬페르 리그(Süper lig)[1]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관중들 또한 열광적이다. 관중석이 온통 화염으로 덮여 있는 모습은 익숙한 광경이다. 리그 최고의 더비인 갈라타사라이 SK와 페네르바흐체 SK의 이스탄불 더비라든가, 최고 라이벌인 그리스와의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면 충공깽. 터키 쉬페르 리그는 유럽에서 중상위 랭킹(10위 정도, 2000년 초반 당시에는 리그 랭킹 6위까지 올랐다)이지만, 열기는 유럽 빅리그 수준이라고도 한다. 이스탄불 더비는 지옥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
이스탄불 더비 경기가 벌어지면 아주 난리가 나는데, 경기 시작 며칠전부터 스포츠신문으로 몇 면을 장식하면 승리에 대한 전망 및 양 팀 분석을 할 정도이다.
세계적으로 화려한 강호는 아니고 워낙에 강호들이 넘쳐나는 유럽이라 실력이 들쑥날쑥이긴 하지만, 1996년 유로컵에 처음 나와 3전전패 꼴지를 하다가 유로 2000에선 8강에 진출하고 유로 2004에선 약체 라트비아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가 다시 유로 2008에선 4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2010년에는 거스 히딩크를 국대 감독으로 하여 유로 2012 우승을 노렸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밀려 예선 탈락하면서 히딩크가 그만뒀다. 2012년 현재는 압둘라흐 아브지 감독(전 카슴파샤 감독)이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다.
월드컵에는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아니 사실 터키는 그 이전인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시리아(당시 유로바스켓도 그렇고 축구나 농구 대회 및 예선으로 유럽 쪽에서 시리아나 이란, 이집트같은 나라들이 참가하기도 했다)를 7-0으로 크게 이기고 본선에 진출했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터지고 소련과 국경 문제같은 여러 문제로 시끄러워진 상황에서 터키는 기권했다.(FIFA에서도 내부 사정이 어려워진 걸 감안해 터키 측의 기권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4년 뒤에서야 첫 출전을 한 셈이다. 이 당시 전대회인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4강을 기록한 스페인을 제치고[2] 처음으로 진출했다. 월드컵 본선에선 결국 그 대회 우승한 서독에게 2:7로 대패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월드컵 처음 나온 한국을 7-0으로 뭉개면서[3] 1승은 거둬 체면치레는 했다. 그 뒤론 연이어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다가 2002년 48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하여 4강까지 올랐다. 8강전에서는 1:0으로 일본을 무너뜨렸다.
과거 쉬페르리그 트라브존스포르에서 뛰었던 이을용의 회고를 보면, 처음 뛴 경기에서 이겨 관중들에게 인사하려고 했는데 팀 동료가 자기 손을 잡더니만 "너 미쳤어?"라며 서둘러 관중석 바깥으로 나갔다고 한다. 뒤돌아보니 그야말로 별별 물건들이 비처럼 경기장 그라운드로 떨어지고 있고, 동료들이 말하길 "너처럼 경기 끝나고 멀뚱히 그라운드에 남아있다가 맞아죽는다" 말하는 통에 기겁했다고 한다.
리그 더비론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흐체 경기, 이른바 이스탄불 더비가 유명한데, FIFA가 선정한 10대 세계 더비에서도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알아준다(1위가 바로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2위가 셀틱-글래스고 레인저스). 이 두 리그 경기가 있기 1주일전부터 터키 스포츠신문들은 5~8면을 꽉 채워 이 두 팀 분위기와 최근 성적, 여러 예상 논평이라든지 아주 도배를 한단다. 그리고 경기가 열리면 폭죽부터 시작해 심지어 화염병, 과거에는 총까지 쐈을 정도로 아주 지옥같은 풍경이 벌어진다.
이 더비를 본 마테야 케즈만(이전에 페네르바흐체에서 뛰었다)이 회고하길
조국 세르비아에서도 베오그라드 더비(파르티잔 베오그라드 -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더비. 여기서도 총으로 서로 쏴대고 사람이 여럿 죽을 정도이다. 케즈만은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에서 뜀)가 악명이 높은데 터키 와서 보니 베오그라드 더비가 이스탄불 더비에 견주면 얌전해보인다...
2005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올림피야트 스터디움에서 열렸을 때도, 리버풀이 결승전에서 극적으로 우승하고 있었을 때, 터키 기자들보다 해외 기자들이 더 많았고 터키 기자들은 이스탄불 더비를 취재하려 몰려가 버렸다고 할 정도.
하도 폭력 사태가 심각해서 아예 12세 이하 남성 어린이와 여성 관객만 입장하게 한 사례도 여러 차례 있다. 그런데 반응은 오히려 더욱 뜨거운 편. 페네르바흐체의 여성 관객 경기영상. 관중 난동만 없을 뿐이지 응원 열기는 결코 남성 관객들에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에는 여성 관객 경기에서도 폭력 사건이 터진다고 한다(...).
리그의 경제적인 면을 봐도 상당한 수준이다. 영국 컨설팅회사 딜로이트 투시 토마츠(Deloitte Touche Tohmatsu)가 매해 발표하는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 2007-08년도 매출액 집계에서 페네르바흐체가 1억1130만 유로를 기록해 19위에 올랐는데 이는 레알 마드리드(3억6580만 유로)나 맨체스터Utd.(3억2480만 유로)에 견주면 1/3 정도지만 터키 경제 규모나 물가를 고려해봤을 때,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클럽들과 다르게 해외에서 매출이 거의 없다고 봤을 때 엄청난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페네르바흐체는 터키에서 콩라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인기 1위인 갈라타사라이 SK는 더 엄청나다. 쿠르드인 저항단체 PPK의 지도자 오잘란도 갈라타사라이 광팬이라고 밝혔던 걸 보면... 게다가 7천만이 넘는 터키 인구에서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로 등록한 이들이 2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클럽 국제대회 성적은 부진한 편. 1999년 갈라타라사이가 리즈 유나이티드(지금은 리즈시절이란 말을 떠오르게 하지만 당시만 해도 리그 4강급 강호이다.)를 4강에서 제치고 아스날 FC마저 승부차기로 이기면서 UEFA컵을 우승한게 유일한 유럽 클럽 대회 우승 기록이다. 더불어 갈라타사라이는 유로 슈퍼컵에서 레알 마드리드까지 제치고 우승했다. 그리고 2001년에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진출했다. 그 뒤로 2008년 페네르바흐체가 모처럼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간 것이 최근(2012년)까지 잘한 성적이다. 참고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최다 실점패배를 당한 게 바로 터키 구단이다. 터키 3대 명문이자 역대 리그 우승 3번째인 11번을 우승한 베식타쉬 JK가 2007년 11월 17일 리버풀 원정에서 8-0 대패를 당했던 게 최다 실점 기록. 그나마 베식타쉬는 자기들 안방에서 리버풀을 2-1로 이기긴 했다. 이 베식타쉬는 2009~10 챔피언스리그 조예선에서 맨유와도 서로 1승 1패를 주고 받았다.
2010~11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전 리그 우승팀으로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이 대회 나온 부르사스포르는 안방에서 대회 역사상 첫 경기를 스페인 발렌시아 C.F.에게 4-0으로 대패당했다.그동안 터키 원정은 지옥이라는(맨유나 리버풀, 첼시같은 강호들도 최근까지 터키 원정에선 다 졌다!) 통념을 아주 흔들어놓은 결과였다.결국 부르사스포르는 발렌시아,맨유,글라스고 레인저스를 상대로 1무 5패로 첫 챔피언스리그 데뷔를 마쳤다.
2010~11 유로파리그에서도 트라브존스포르가 3차예선에서 리버풀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고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도 허무하게 본선에 가지 못하고 탈락했다.그나마 베식타쉬 JK가 조 2위로(1위는 FC 포르투)유로파리그 32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역시 16강에서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예프에게 1:8(1:4,0:4)로 크게 밀려 탈락했다.
2011~12 챔피언스 리그에선 승부조작에 휘말려 우승한 페네르바흐체 대신 트라브존스포르가 챔피언스리그에 나와 인터 밀란 원정을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팀에게 밀려 아쉽게 승점 1점차로 3위로 밀려 유로파리그로 떨어졌다. 그리고 유로파리그 32강전에선 PSV 아인트호벤에게 밀려 탈락했으며 베식타쉬 JK가 그나마 16강까지 올라왔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1차전에선 1:3으로 패하면서 이번에도 16강에서 멈춰서는거 아니냐는 예상을 얻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저 증오스러운 그리스를 이대빵으로 발라버리면서 똥씹는 기분으로(자기들은 못 나갔으니까) 경기를 관람하던 터키인들을 광희시켰다. 어느 한국인은 같이 경기 보던 터키인 룸메(남자)에게 키스 세례를 받고 정신줄을 놨다고... 하지만 이 나라에선 동성끼리 키스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누는 인사다. 그리고 세속화되었다지만 터키는 엄연히 이슬람국가인지라 공공장소에서 이성간의 키스는 금기시되고 있다. 특히 어른의 손등에 키스하고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대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존경심을 담은 표현이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2010~11 리그 중반에는,K리그 FC서울 전 감독이던 세뇰 귀네슈가 이끄는 트라브존스포르가 리그 1위를 달리기도 했지만 막판에 밀려 아쉬운 2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리그 승부조작이 터지면서 리그 우승팀인 페네르바흐체 SK가 출전금지당하는 처벌을 받기도 하였다(자세한 건 터키 쉬페르 리그 참조)
2012~13 챔피언스리그에선 갈라타사라이가 11년만이자 터키 구단으로선 5년만에 16강에 진출했고 8강까지 올라갔으며 라이벌 페네르바흐체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유로파리그 4강까지 진출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에선 D조에 편성되면서 네덜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안도라와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네덜란드가 1위로 예상되는 가운데 루마니아와 2위 자리를 두고 가장 격돌을 벌일 걸로 예상되었다. 2012년 9월 7일에 벌어진 1차전 경기 네덜란드 원정에서 0-2로 완패했다. 그나마 승점자판기 1 에스토니아를 안방에서 3:0으로 제압, 10월 12일에 있을 루마니아와의 안방경기 여부가 관심사였는데 0-1로 패하면서 3위로 내려가버리더니만 17일에 벌어진 헝가리 원정에서도 1-3으로 완패하면서 1승 3패로 4위로 내려가면서 탈락위기에 처했다. 이후 약체이자 승점자판기 2 안도라를 2-0으로 이긴 뒤로 헝가리에게 안방에서 1-1로 비기면서 리그 4위로 사실상 예선 탈락 분위기였다가 아브지 감독이 경질되고, 파티흐 테림 감독이 부임하여 8차전에서 루마니아 원정을 2:0으로 승리,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2위인 헝가리와 겨우 1점차이면서 플레이오프가 걸린 2위 자리를 남은 2경기 여부에 따라 희망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네덜란드 경기를 0-2로 패하면서 4위로 추락,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플레이오프조차 못 오르고 탈락해버렸다(2위 플레이오프는 루마니아가 차지.).
최근 서포터들의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는 쉬페르리그의 팀들뿐만 아니라 2부리그 격인 PTT 리그에서도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3년 5월 12일 페네르바흐체를 응원하는 20살 부락 이을드름 군이 갈라타사라이 서포터 2명에게 칼에 맞아 사망한 사건, 2013년 9월 22일 발생한 베식타쉬 서포터들의 경기장 난입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2013년 11월 30일에 벌어진 타브샨르 리니이트스포르 - 데니즐리스포르 경기직후 일어난 서포터 간 폭력사태로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사냥용 라이플(!)까지 발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태들때문에 터키축구협회에서는 2014년부터 전자티켓(E-빌렛), 일명 파쏘리그라는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이것도 문제가 많아서 축구팬들이 반발하고있다.
샤다라빠도 터키 축구를 관람한 후(오로지 축구를 보기 위해 터키로 여행갔다고 한다) 관련 웹툰을 그린 적이 있다.
2011년 1편
2011년 2편
2011년 3편
2011년 4편
2011년 5편
2012년 1편
2012년 2편
2012년 3편
2012년 4편
2012년 5편
2012년 6편
2012년 7편
2012년 8편
2012년 9편
2012년 10편
- ↑ 과거에는 터키 쉬페르 리가라는 검색어로도 이 항목으로 연결되기도 했지만 옳지 않은 표기법이라 이젠 삭제되었다.
- ↑ 당시 27개 유럽 나라(이집트도 유럽예선에서 뛰었다)를 10개조로 나누다보니 터키 : 스페인이 단 2경기만으로 예선을 치뤄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 이 예선 결과는 지금이라면 스페인이 진출했다. 스페인은 4-1로 안방에서 터키를 이기고 원정에서 0-1로 졌으니까. 하지만 당시엔 골득 우위가 없었고 1승 1패일 경우 재경기를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재경기가 어려워져 한 동전 추첨에서 터키가 이기고 스페인이 탈락했다. 이에 당시 스페인 독재자인 프랑코는 분노하여 스페인 감독을 일시적으로 투옥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그렇게 하진 않았다. 물론 감독은 모가지당했지만.
- ↑ 한국이 당시 터키를 상대로 이렇게 고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시아의 월드컵 도전사를 봐도 알겠지만 6.25가 끝난지 1년이 겨우 지났고 교통도 엉망으로 왔던 상태였다. 결국 당시 우승후보 헝가리에게 0:9로 처발리고 모든 힘을 쏟아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담인데 1961년 이스탄불 원정으로 가진 한국-터키 친선경기에선 한국이 0-1로 졌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