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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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20 2017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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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광주대구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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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원울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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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전북제주포항
K리그 챌린지 구단 사라진 구단
2017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F조
50px
서울
(FC Seoul)
60px
우라와 레즈
(Urawa Reds)

웨스턴 시드니
(Western
Sydney)

상하이 상강
(Shanghai
SP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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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마스코트
씨드
FC 서울
Football Club Seoul
정식명칭 FC 서울 프로축구단
법인명 GS스포츠
구단형태 기업구단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 1983년[1][2]
연고지 서울특별시
구단명 변천 럭키금성 황소 (1983~1990)
LG 치타스 (1991~1995)
안양 LG 치타스 (1996~2003)
FC 서울 (2004~현재)
연고지 변천 충청도 광역 연고[3] (1983~1989)
서울특별시 (1990~1995)
경기도 안양시 (1996~2003)
서울특별시 (2004~)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
(66,704명 수용)
구단 훈련장GS 챔피언스 파크
모기업 GS그룹
구단주 허창수 (GS그룹 회장)
대표이사 장기주
단장 이재하
감독 황선홍
주장 오스마르
부주장 유현
용품 스폰서 르꼬끄스포르티브
셔츠 프린팅 앞: GS SHOP[4], 뒤: KiXX[5]
상징색 빨간색 , 검정색 , 금색
공식 웹 사이트 웹페이지 / 트위터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 유튜브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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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FC SEOUL
우승 기록
K리그 클래식
(5회)
1985, 1990, 2000, 2010, 2012
리그컵
(2회)
2006, 2010
FA컵
(2회)
1998, 2015
슈퍼컵
(1회)
2001
전국축구선수권대회[6]
(1회)
1988
클럽 수상
2010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1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2012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3 ACL 페어플레이
2014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2014 FA컵 페어플레이
2015 FA컵 페어플레이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서울 오산고등학교
U-16 팀 서울 오산고등학교/오산중학교
U-14 팀 서울 오산중학교
U-12 팀 Future of FC 서울

틀:GS스포츠

1 소개

K리그 관중 기록 TOP 10을 석권하고,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관중 기록[7]을 달성한 K리그 최고의 인기구단.
그러나 복잡한 연고지 역사몇몇 팬들의 과격한 언행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 빛과 그림자과 공존하는 구단.

2 연고지 역사

FC 서울의 연고지 역사
기간1984 ~ 1989
6년
1990 ~ 1995
6년
1996 ~ 2003
8년
2004 ~ 현재
연고지충청도[8]서울특별시 (동대문)안양시서울특별시 (상암)

1983년 슈퍼리그가 출범하고 이듬해 인 1984년에 충청도를 연고로 럭키금성 황소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리그에 참여했다. 본래 모기업인 럭키금성그룹은 창단 준비때부터 서울 연고를 희망하고 있었지만[9][10][11] 당시 유공 코끼리 축구단(현 제주 유나이티드)이 이미 서울 연고[12]였기 때문에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충청도 광역연고로 자리잡게 된다.

1988년 초부터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중이었으며 1990년에 도시 지역 연고제가 시행됨에 따라 서울로 첫 번째 연고지 이전을 하여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2002 월드컵 유치와 이를 위한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에 의해 프로축구연맹의 의해 서울 연고지 구단들을 모두 없애는 방안이 추진되었고 1995년 2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강제로 의결[13] 되었으며 이 후 계속해서 서울 연고팀들이 연고지 잔류를 위해 저항했지만 1995년 11월 청와대의 서울 연고 3팀 연고지 이전 지침이 하달되면서 1996년 시행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에 의해 일화 천마, 유공 코끼리등과 함께 강압적으로 서울 연고지에서 쫓겨나 안양시로 다시 연고지를 옮기고 팀명도 안양 LG 치타스로 바꾼다. 1995년 1월 김기복 사무총장 인터뷰 기사-월간축구, 1995년 2월 이사회 직전 김기복 사무총장 인터뷰기사-스포츠신문, 청와대 개입 관련 기사 이 때 서울 구단들이 받아든 선택지는 서울에 동대문 아닌 곳에 신구장을 건설하고 서울 연고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서울을 떠나느냐였는데 LG,유공,일화 모두 연고지 이전을 선택하고, 이 신구장 건설 조건부 서울연고 허가는 추후에라도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할 경우 서울로의 연고 복귀를 허용한다라는 단서 조항으로 이어진다.[14][15][16]

안양으로 연고를 옮긴지 4년째인 2000년부터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로의 복귀 의사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17][18]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끝난 뒤 수도 서울에 축구단이 없는 것에 대해 수도에 축구단이 있을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일차적으로 시민구단 형태의 서울 유나이티드를 창단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서울시 측에서는 신생팀 창단에 따르는 비용을 들어 난색을 표하였고[19], 당초 KT, 금호그룹, 한화,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의 대기업들을 유치해서 신규 서울 연고팀을 만들기 위해 축구계에서 다각도로 유치 노력을 하였으나 과도한 서울 입성금 등 여러가지 이유로 대기업들이 참여 의사를 철회하면서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2003년에 이어서 계속해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활용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서울시에서 서울 연고팀 창단을 희망하는 대기업을 모집하는 신청까지 받았지만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한편 당시 서울시와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래도 두팀 중에서 부산 역시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두번째로 큰 빅마켓인데 서울 연고팀을 만들기 위해 부산팀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과거에 서울 연고 시절이 있고 서울 근접 수도권 팀인 안양 LG가 오는 것이 한국 프로축구 발전을 위해 낫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안양 LG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다.기사-서울시, 안양LG 연고구단 선정 그 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신규팀으로 서울 연고팀 창단이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여 기존 구단이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서 서울 연고팀을 만드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하였으며 전 구단에 2월 25일까지 서울 연고지 이전 의향서를 받았다. 이에 안양 LG 치타스부산 아이콘스가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 의향서를 마감일인 25일 제출하였으며 3월 10일 부산 아이콘스가 연고지 이전 신청을 철회하여 2004년 3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안양 LG의 서울 연고지 이전이 만장일치로 통과하였다.[20][21][22][23]

그리고 LG그룹이 2004년 LG와 GS그룹으로 분할을 시작하면서 LG가 야구단을, GS가 축구단을 가져가게 되면서 2004년 6월 1일 GS 스포츠가 공식 출범하여 현재의 모기업은 GS이다.

구단 측에서는 1996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국적인 축구 열기를 확산시킨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안양으로 연고를 옮긴 축구단이 서울로 연고지 복귀를 한 것으로 해석 하고 있다.

2004년 이전의 개략적인 역사는 FC 서울/럭키금성과 LG 시절 문서에서도 볼 수 있다.

3 역대 엠블럼

120px100px100px수정중90px100px
럭키금성 황소
(1983 ~ 1990)
LG 치타스 /
안양 LG 치타스
(1991 ~ 1996)
안양 LG 치타스
(1997 ~
1999.07)
안양 LG 치타스
(1999.07 ~
2000)
안양 LG
치타스
(2001)
안양 LG
치타스
(2002 ~ 2003)
FC 서울
(2004 ~ 현재)
Lucky-Goldstar FC LG Cheetahs / Anyang LGAnyang LG CheetahsAnyang LG CheetahsAnyang LG CheetahsAnyang LG CheetahsFC Seoul

4 이모저모

4.1 경기력 면에서

모기업 GS그룹의 풍족한 지원과 서울 프리미엄[24] 으로 K리그에서 전통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2007~2009년 귀네슈 감독 시절에는 이청용, 기성용을 중심으로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준수한 미드필드 진을 필두로한 빠르고 짧은 패스축구를 구사했다. 경기 당 한번씩은 꼭 공을 받지 않고 흘리거나 다이렉트로 뒤로 차주는 플레이를 펼쳐보이는게 특징.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으로 전방에서 부터 압박해 치고 올라가기 때문에 K리그 전체에서 오밀조밀하고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서울이 K리그의 아스널 같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다. 그 시절 국가대표급 중앙 수비진을 보유했지만 한때 중앙 수비수들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이 많은 편이었으며,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스쿼드는 패기넘치고 창의적인 전술을 펼치는 데에는 큰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분위기에 쉽게 휩쓸려 경기력 기복이 심해질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이을용, 김한윤 등 노장선수들도 굉장히 거칠고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베테랑 선배로서 모범을 많이 보여주지 못하였다. 특히 2008, 2009년 시즌을 무관으로 보낸 것은 이 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2010년 부터는 베테랑들이 많이 합류하고 기존의 젊은 선수들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 조직력을 쇄신하면서 귀네슈 감독 때의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 2010년 홈경기는 개막전인 전북 전을 제외하고 모두 승리하였고 초지일관 훌륭한 경기력을 이어가면서 컵대회와 K리그 더블 우승을 일구어내었다.

암울했던 황보관 시절 이후 길고도 긴 '욘스강점기'가 시작된다. 데얀, 아디, 몰리나, 하대성, 고명진 등 뛰어난 선수가 많았던 2012시즌 역대급 성적으로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은 부임 3년차인 2014년 이후 데얀, 하대성이 이탈하고 몰리나의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아디는 은퇴했다. 대체 선수 또한 마땅치가 않았던게 데얀의 대체자로 영입된 하파에우 코스타는 키를 속이고 입단했고, 데얀의 그늘에 가려져 온 김현성, 박희성은 축구를 너무 못해 팬들에게 병신과 머저리로병머 불리우는 등 하나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때문에 공격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하게되었다. 이러한 수비 위주 전술이 자리잡고 경기 속도도 느려지면서 귀네슈 시절 재미있는 패스 축구의 팀 컬러가 희석됐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2011년부터 슬로우 스타터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시즌 개막부터 5월까지는 골 가뭄에 시달리면서 하위권에 머물지만 6월부터 서서히 경기력이 회복되어 7, 8월부터는 상위권으로 복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25] 2012 시즌을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슬로우 스타터라 해도 여름에 접어들면서 승점은 확실히 챙기기 때문에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진 적은 한번도 없다.

2016년 시즌을 앞두고 2010년에 버금가는 대규모 영입을 했는데 이적시장 계의 큰 손 전북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스쿼드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매 경기 골 폭풍을 몰아치면서 K리그, 챔피언스 리그 모두 선전하면서 2016년에는 슬로우 스타터 오명도 씻어내는데 성공했다.

2016년 서울의 스리백은 굉장히 공격적이었고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최용수 3-5-2의 핵심 엔진 역할을 수행하던 신진호의 군 입대를 시작으로 6월부터 주세종, 고요한, 아드리아노, 윤주태 등 주전 선수들이 부상이나 징계로 줄줄이 출장할 수 없게 되어 기대와 달리 매우 혹독한 여름을 보냈다. 게다가 최용수가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장쑤 쑤닝으로 떠나고 후임 감독으로 영입된 황선홍은 전술이 새로 자리 잡는 동안 3연패를 하는 등 우승권과 멀어지는 듯 했으나 서서히 전술이 녹아들면서 연승행진으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4.2 흥행 면에서

팀 운영, 마케팅 여러 면에서 K리그에서 제일 적극적인 구단이기도 하다.[26] 2005년 박주영을 내세워 스타 마케팅을 실시했고 다양한 팬 친화적인 이벤트를 선보이면서 광활해 보이던 서울월드컵경기장 좌석이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고, 빅매치 시에는 4~5만명의 관중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구단 홈페이지를 비롯해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K리그 최초로 좋아요 10만명을 돌파했다.

2012년 조사된 전 세계 축구클럽 브랜드 가치평가에서 62위를 차지했으며, K리그 클럽 가운데서는 단연 1위였다. 2015년 9월 1일 아시아 축구 연맹이 발표한 클럽 랭킹에서는 89.665점으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K리그 관중 동원 실적에서도 몇 년째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는데 2010~2012년 3년 연속 K리그 평균관중 1위를 차지했다. 2013년에는 총 관중수 1위를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내줬지만 이는 관중 동원 전략을 무료표를 줄이고 객단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잡았기 때문으로, 실제로 2013년 유료 관중 비율(85%)와 객단가(6452원)에서는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총 입장 수익 또한 20억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고 이는 2013년 K리그 클래식 전체 입장 수익중 1/4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2015년 10월 25일 K리그 최초 6년 연속 300,000 관중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또한 2015 시즌 K리그 최초로 객단가[27] 9,000원을 넘었다. 비공개된 2위 구단(6,058원)과의 격차가 크며, 프로야구 객단가 수준에 도달한 사실상 유일한 K리그 구단.[28] 유료관중 숫자와 입장수입 역시 K리그 1위이다. 2016년부턴 전 구단 최초로 100만원짜리 시즌권을 출시했다[29]

2016년은 마케팅 면에 있어서 다시 없을 역대급 시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홈 개막전을 앞두고 2월 28일 경기장 앞에 FC 서울 팬파크라는 공식 팬 샵을 오픈했다. FC 서울 유니폼, 선수단, 일반 의류는 물론 응원도구에 예전에 품절된 머플러까지 판매하고 서울이 수상한 트로피도 전시되어 있다. 홈경기 날 외에도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영업하기 때문에 그동안 FC 서울 물품을 오프라인으로는 홈경기 당일밖에 구매할 수 밖에 없었던 불편함을 해소해 주었다.

2016년 7월 30일에 팬 파크 옆에 커피숍 FC 서울 팬카페를 개장했다. 서울 팬 뿐만 아니라 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하는 일반인들도 많이 방문할 듯하다.

5 라이벌

축구 팀에서 사이가 좋은 팀들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특히 FC 서울은 K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다 싫어하는 공공의 적 포지션이다. 상술한 복잡한 연고지 역사와 수도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고 있다는 점, 성적, 흥행 면에서 모두 최고를 달리고 있고 적극적인 마케팅은 축구를 넘어서 한국 프로스포츠의 모범사례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귀네슈 전 감독은 부임 시절 K리그 축구 스타일을 디스하면서 반발을 샀고 최용수 전 감독도 능숙한 언론플레이로 상대 팀 속을 긁어놓는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승부욕을 더욱 불태웠었다. 2015 시즌 출정식에서 가장 많은 K리그 감독들이 이기고 싶은 팀으로 서울을 꼽았을 정도.

5.1 수원 삼성 블루윙즈

명실상부한 현재 FC 서울 최대의 라이벌 수원이 박살나고 전북과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이랜드 까지 승격할 경우 앞으로는 아닐수도 있다.

경기 내외를 가리지 않고 제일 치열하게 다투는 팀이 바로 수원이다. 그들 말로는 "서울을 존재하지 않는 구단으로 취급한다."고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천상 라이벌(...). 웹툰작가 샤다라빠는 이 두팀의 관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라이벌로 인정하지 않는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서울과의 라이벌 구도 형성 과정을 살펴 보면 FC 서울의 연고 이전 당시 K리그 서포터 집단 가운데 세력이 크면서 강성했던 그랑블루가 극렬한 반대와 비난을 퍼부어 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그랑블루는 패륜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서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해왔고 그것이 양 팀 서포터들 간의 앙금으로 남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물론 슈퍼매치가 사실상 과거 안양 LG와의 라이벌 관계가 이어져온 것이지만, 수원 입장에서는 서울을 라이벌로 인정한다면, 안양 LG와 서울을 동일한 구단으로 보고 안양 시절 역사를 서울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프렌테 트리콜로는 서울을 라이벌로 칭하는 언론 보도등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FC GS', '난지도', '마포 GS'등으로 조롱하며 논다.[30] 수원의 현재 상황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FC 안양과 다시 라이벌 관계가 될 가능성도 보인다...

당연히 서울 팬들에게도 상당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켜서 양 팀 서포터 간에 여러 차례의 사건과 충돌이 벌어져왔다. 대표적으로는 수원 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불을 지르고 안양 LG팬을 사칭하며 추태를 보여준 일명 서울월드컵경기장 방화사건이랑, 2군 경기에서 한 서울 팬이 안정환에게 심각한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했던 유명한 권오크 사건이 있다.

최근 들어 물리적 충돌은 최대한 서로 피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신경전이 치열한데 슈퍼매치가 다가오면 양 팀 팬들이 게시판에서 서로를 강하게 도발한다.[31] 2010년에는 수원 원정에서 수원 서포터 중 몇몇이 장외 서포팅을 하고 욕설을 하면서 PVC 파이프로 사람을 찌르는 행위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보듯이, 양 팀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을 넘어 무조건 박살 내야할 상대 수준으로 보고 있다.

2012년 까지 전적에서 서울이 약세를 보였던 거의 유일한 팀이다. 2008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넘겨주고 윤성효 시절에는 수원에게 9연속 무승 (2무 7패)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서정원 감독 부임 후 이전까지 절대적 열세였던 분위기에서 반전하여, 2014년 4월 27일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수원 원정경기에서 2008년 10월 29일 이후 5년만에 승리를 거두는 등 13, 14, 15, 16시즌 도합 15전 8승 4무 3패(2016년 8월 기준)으로 속수무책인 옛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삼성이 축구단에 대한 투자자체를 줄이고 있어 한동안 수원의 열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박주영은 2007년 3월 21일 열린 슈퍼매치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32] 슈퍼매치 단일 경기에서 최다골 기록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가 2015년 11월 7일에 윤주태가 4골을 터트리면서 8년만에 깨지게 되었다.

2016년을 앞두고 두텁게 전력을 보강한 서울과 달리 수원은 차범근 시절부터 육성체계 무너뜨리고 돈으로 성적내온 부작용이 차곡차곡 쌓이다 터져서 단기간에 수습하는게 어려워져 2016년 슈퍼매치는 서울이 상당히 유리해질 것으로 보였으나 4월, 6월 2경기는 1대 1 무승부로 끝났다.

8월 13일 경기에서는 윤일록의 결승골로 서울이 승리하였다. 하프타임 때 초대가수로 온 전인권이 서울 팬들과 함께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는 시간이 있었는데 수원 팬 쪽에서 패륜송을 부르면서 훼방을 놓아 크게 비난받기도 했다. 수원이 하위스플릿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2016 K리그 클래식 슈퍼매치는 3경기로 끝났다.

5.2 인천 유나이티드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간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있고, 양 팀 서포터들의 충돌로도 유명하다. 실제로도 수원과 더불어 FC 서울에 가장 큰 적대감을 드러내는 구단이기도 하다. 이에 맞서 서울 팬들은 인천을 '개랑 2중대'라 폄하하기도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가 양쪽 서포터들이 K리그에서 극성으로 유명한지라 물리적 충돌사건이 꽤 많다. 한 때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최소 한 번 이상 폭행 사건이 벌어질 정도였다. 제일 유명한 것은 인천 서포터의 욕설과 도발에 서울 서포터가 철창너머의 인천 서포터들을 깃발로 찔러서 문제가 된 콕콕신 사건등, 두 구단 사이가 점점 나빠지면서 요즘은 정말로 치열해졌다. 맞붙을때마다 1년에 한번 이상은 서포터 간 충돌은 기본사항이 되었다.

그래서 양 팀 서포터들 중에 슈퍼매치를 언론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더비라고 폄하하고, 경인 더비야말로 진짜 더비 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33]

거의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서울과 주로 중위권을 기록하는 인천 간의 경기이지만 맞붙으면 꽤 팽팽한 경기가 펼쳐진다. 다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서울이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10월 31일[34]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년 FA컵 결승전에서 서울이 인천 유나이티드를 3대1로 제압하고 1998년 이후 17년만에 FA컵 우승을 들어올리면서 극적인 경인더비를 연출하였다. 16시즌 인천 성적이 너무 안좋아서 17시즌엔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양 구단은 사이가 나쁘지만 의외로 선수 왕래가 활발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데얀, 이재권, 이석현, 유현(축구선수)이 인천에서 서울로 이적했고 김원식은 인천으로 임대 가서 크게 성장했다. 조수혁, 이규로, 김동석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적했다. 자금력 차이가 꽤 되는 양팀임에도 현금 20억 원+이정열, 김태진과 맞바꿔 이적한 데얀을 제외하면 인천이 손해본 이적이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

5.3 전북 현대 모터스

  •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
  • K리그의 데어 클라시커
  • 향후 케이리그의 흥행을 책임질 빅 카드이자 최고 라이벌

서울과 전북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서로 2번씩 리그 우승을 양분했고 이후에도 상위권에서 경쟁하고 있다. 우승을 향한 길목에서 가장 큰 경쟁자인 셈. 전북 전은 항상 리그 우승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명 승점 6점짜리 경기가 되며 이에 따라 경기가 굉장히 과열되곤 한다. 서울이 열세였던 수원과 달리 이 쪽은 서울이 대체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반면 수원은 전북에게 약세. 서울 < 수원 < 전북 < 서울의 구도가 꽤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었지만 2013년 이후론 서울이 수원을 잡고 전북이 서울을 잡고 수원이 전북을 잡는 등 이러한 구도가 조금씩 깨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35]

2010년 전북을 상대로 한 서울의 홈 개막전에서 초대가수인 티아라가 전북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의상을 입고 하프타임 공연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또 공교롭게도 이 경기는 서울의 1:0 패.

2011년 7월 3일, 후반기 리그를 시작하는 16라운드에서 전북은 FC 서울을 홈에서 상대하였다. 전북이 2:0으로 앞서다가 후반 2:2로 동점이 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전북 서포터스들이 그라운드를 가로 질러 원정 서포터석으로 달려가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까 보이면서 추태를 부리는 한편 돌을 던져서 한팬의 머리에 맞는등 원정팬들을 위협했다. 여기에 그치치 않고 FC 서울 원정버스를 포위하고 출발을 못하게 막았으며 일부는 고속도로 상에서 위협운전까지 하였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수비위주 축구를 했던 2014년에 최강희 감독이 서울같은 팀은 공격축구를 해야한다고 서울의 스타일을 비난하고 최용수 감독은 상대 팀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받아치면서 사이가 더욱 안 좋아졌다. 디시인사이드 FC 서울 갤러리에선 전북 최강희 감독을 찬양하는 척 까는게 일상.

2016년 시즌을 앞두고 그런 최강희 감독의 말을 비웃기라도 한듯 대규모 영입을 해서 전북에 뒤지지 않는 선수진을 갖췄으나 막상 전적은 3경기에서 3패. 그것도 홈에서 2-3, 1-3의 완패를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36] 그리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중국 을 이기고 올라온 양 팀이 동아시아의 대표를 가리는 자존심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물론 2차전에서는 서울이 전북을 2:1로 이겼으나 1차전 1:4 로 패하면서 4강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스플릿 A 마지막경기가 전북 대 서울이다. 2016 클래식 개막전이 전북 대 서울로 시작된걸 보면 묘하다...

2016년에는 북과 서울을 줄여서 말하는 별명인 에서 따와 전설이나 설전 등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정착된 이름은 아니다. 대중화되려면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5.4 포항 스틸러스

  • 세로 검빨 VS 가로 검빨

포항 스틸러스는 창단 이래로 경상북도 포항에서 터를 잡고 있으며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리그에서 누구보다 강한 클럽이기 때문에 연고이전 논란에 대해서도 반감이 크다. 포항 팬들은 서울 전만 되면 "족보없는 축구는 가라"라는 걸개를 걸 정도다.[37][38] 게다가, 포항으로 입단을 약속한 박주영이 뜬금없이 서울에서 데뷔를 하면서 골이 더 깊어졌다. 팀 컬러가 동일한 검빨이라는 것[39] 조차 싫어할 정도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마찬가지로 상암에서는 서울이 압도적인 승률을 보이고 있고 스틸야드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률이 낮다.

이후 박주영 사건외엔 접점이 없던 두 팀에 재미난 스토리가 생겼는데, 현역시절 한국 공격진을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의 라이벌 구도다. 2011년부터 친정팀 포항의 지휘봉을 잡으며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고, 최용수 감독도 2011년 4월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고 하위권으로 떨어진 팀을 점점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면서 명감독으로도 자존심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2014 시즌 두 팀은 한 시즌에 무려 6번이나 만났다. 리그 3전, FA컵 1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전. 전적은 1승 4무 1패, 승부가 났던 두 경기 모두 1대 0 한골차이 승부일만큼 박빙이지만, 속내를 보면 4무 가운데 3경기는 토너먼트 경기였고 ACL 1차전을 제외한 2경기 모두 승부차기 혈투 끝에 서울이 이겼다. 특히 김용대의 부상을 틈타 주전으로 발돋움한 유상훈이 매경기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먼저 경기였던 FA컵에선 승부차기에서 한차례 선방을 보여 승리를 이끈 데 이어 ACL 경기에선 상대 키커 3명을 다 막는 정신나간 활약을 보여주며 승리로 이끌었다. 재밌는건 유상훈이 포항 전에만 5경기나 출전했는데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40] 특히 단 2실점만을 허용하고, 승부차기 선방도 4차례나 해내는 등 새로운 포항 킬러로 떠올랐다.

2016년 6월 중에 최용수 감독이 갑작스레 중국으로 떠나고 후임으로 황선홍 감독이 선임되었다. 최용수 감독 VS 황선홍 감독의 라이벌 관계 이후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올 듯 하다.

5.5 FC 안양

  • 만약 성사된다면 전례없는 위험한 더비 만약은 만약이다 가능성은 굉장히 낮음

K리그판 북런던 더비

2013시즌부터 안양 시의회와 안양 축구 팬들의 주도로 FC 안양이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창단때부터 지속적으로 서울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심을 내비치고 있다. 어서 빨리 서울과 만나 연고이전의 원한을 갚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중. 물론 자기들을 증오한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서울 팬들도 안양을 마찬가지로 싫어한다.

당장 리그에서 만날 일은 없을 듯 하다. 서울은 클래식 상위권이고 안양은 챌린지 중하위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FA컵에서 만나게 되거나 안양이 승격하거나 혹은 서울이 강등되어 경기가 벌어지면, 안양 LG시절부터 K리그에서 가장 폭력적인 서포터로 악명을 떨쳤던 ASU RED와, 역시 사고 경력이 화려한 수호신간의 폭력 사태가 우려된다.[41] FA컵에서 만나는 경우는 조금만 신경을 써서 대진표를 짜면 그럴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진다. 하지만 정말로 서울과 안양이 맡붙게 되면 서포터들간의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슈퍼매치 이상으로 많은 경찰력이 동원될 것이다.

이러한 적대감의 근본적인 원인인 연고지 문제에 대해선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참조.

5.6 서울 이랜드 FC

  • 서울 더비

2015년 서울 동남권에 이랜드 그룹이 새로 팀을 창단하면서 급부상한 라이벌 후보. 지리적으로도 서로 정 반대에 있기 때문에[42] 사실상 서울시의 축구팬들을 양분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일단 두 팀 다 서울특별시라는 최상의 입지에, 두 구단의 모기업이 GS그룹이랜드그룹이라는 국내 유수의 재벌들이라는 점, 거기에 팀의 상징색 또한 각각 빨간색파란색이라는 서로 정반대의 색깔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성사될 경우 팬들의 기대가 상당히 높은 더비이다.[43]무엇보다도 이랜드그룹이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승격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생각보다 1~2년 내로 서울 더비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까지는 만날 일이 없어서인지 특별히 나쁜 관계는 아니다. 같은 서울이면서 리그가 다르다보니 두 팀을 다 응원하는 서울 시민들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팬덤의 격차는 아직 큰 편인데, FC 서울과 서울 이랜드 FC가 서울에 자리잡은 세월 차이도 어마어마하고, 서울 이랜드 FC의 경우에는 홈구장인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의 일반석을 쓰지 않고 별도의 가변좌석을 써서 관중을 많이 모으기 힘들기 때문.

2016년 부활한 2군 리그인 R리그에 FC 서울과 서울 이랜드 FC가 함께 참여했고, 조까지 같은 조로 편성되면서 1군이 아닌 2군에서 서울 더비가 먼저 열리게 되었다. 첫 경기는 3월 29일 낮에 열렸으며, 서울 이랜드 FC가 1:0으로 이겼다.

6 시즌별 일람

'FC 서울 시즌별 일람 '
20092010201120122013
201420152016

7 역대 감독

초대 - 박세학(1984~1987)
대행 - 고재욱(1988~1993)
2대 - 고재욱(1989~1993)
3대 - 조영증(1994~1996)
4대 - 박병주(1997~1998)
5대 - 조광래(1999~2004)
6대 - 이장수(2005~2006)
7대 - 세뇰 귀네슈(2007~2009)
8대 - 넬로 빙가다(2010)
9대 - 황보관(2011~2011.04)
대행 - 최용수(2011.04~2011)
10대 - 최용수(2012~2016.06)
11대 - 황선홍(2016.06~)

8 선수단

FC 서울 2017 시즌 스쿼드
등번호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비고
1유현GK30px1984년 8월 1일
2황현수DF30px1995년 7월 22일
3심우연DF30px1985년 04월 03일
4김동우DF30px1988년 2월 5일
5오스마르MF30px1988년 6월 5일
6주세종MF30px1990년 10월 30일
7김치우DF30px1983년 11월 11일
8이상호MF30px1987년 5월 9일
9데얀FW30px1981년 7월 27일
10박주영FW30px1985년 7월 10일부주장
11윤일록FW30px1992년 3월 7일
13고요한MF30px1988년 3월 10일
14조찬호MF30px1986년 4월 10일
15김원식MF30px1991년 11월 5일
16하대성MF30px1985년 3월 2일
17신광훈DF30px1987년 3월 18일
19심상민DF30px1993년 5월 21일
20정인환DF30px1986년 12월 15일
21양한빈GK30px1991년 8월 30일
22윤승원MF30px1995년 2월 11일
23이석현MF30px1990년 6월 13일
25전호준DF30px1994년 2월 3일
26김주영MF30px1997년 5월 5일
27김정환FW30px1997년 1월 4일
29황기욱MF30px1996년 6월 10일
30김철호GK30px1995년 10월 25일
31손무빈GK30px1998년 5월 23일
32김한길MF30px1995년 6월 21일
33박민규DF30px1995년 8월 10일
34마우링요FW30px1989년 12월 10일
35임민혁MF30px1997년 3월 5일
36박성민FW30px1998년 12월 2일
38김근환DF30px1986년 8월 12일
40김원균DF30px1992년 5월 1일
43윤종규MF30px1998년 3월 20일
45신성재MF30px1997년 1월 27일
55곽태휘DF30px1981년 7월 8일width=30&align=center
88이규로DF30px1988년 8월 20일

9 유니폼

FC 서울/유니폼

10 사건사고

FC 서울/사건사고 항목 참고바람.

11 응원

FC 서울/응원가, 수호신(서포터즈), 이범형[44] 항목 참조.

하프타임이 끝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올 때 전 관중들이 핸드폰 플래시를 키고 전인권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12 그 외

세뇰 귀네슈 감독 시절 터키어 통역사로 JTBC 비정상회담의 전 출연자이자 흑역사 에네스 카야가 일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동북고 축구부를 유스팀으로 운영했고, 박주영이 교생실습을 온 적도 있다. 2012년 계약이 만료된 이후 현재는 오산중학교와 오산고등학교에 유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구단 유소년 팀 '리틀 FC 서울'도 2012년 말부터 '퓨처 오브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고 더 박차를 가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 FOS는 전문적으로 유스를 육성하는게 아니라 유소년레포츠에 더 가까운데 만단위로 회원을 끌어모아 팬을 늘리고 수익을 창출해 구단 자생률을 높이려는 장기 프로젝트로 서울 각지에 30개가 넘는 구장을 확보해 야심차게 진행중이다. 현 회원수는 5~6천선.

팀 정책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으며 해외진출에 성공한 선수들이 대체로 제법 큰 업적을 남기고 있다. 김동진,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이 대표적인 예. 이들은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국가대표로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2015년 8월 28일 손흥민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함에 따라, FC 서울 소속으로만 K리거 시절을 보낸 기성용, 이청용과 더불어 FC 서울 U-18에 적을 둔 적이 있는 손흥민까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3인이 FC 서울 출신으로 채워지게 되었다.[45] 손흥민 본인도 "K리그 클래식에서 뛴다면 서울에서 뛰고 싶다"고 하는 등 서울에 애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 10대1 인터뷰 FC서울 볼보이였던 손흥민 “청용이형 보며 프로 꿈 키웠죠” 단, 이적에 따른 연대기여금은 손흥민이 뛰던 당시 유스팀이었던 동북고의 손에 쥐어졌다.

또한 장사 수완이 좋아서 트레이드를 잘 하는 구단 중 하나로 꼽힌다. 주력 선수들을 헐값에 외국팀에 빼앗기기 일쑤인 다른 구단들[46]에 비해 이적료를 확실하게 받고 판다.[47] 리그에서 경쟁 상대가 될 강팀에는 함부로 주력 선수를 팔지 않으며, 팀의 기타 자원들을 상대팀 주전, 준주전들과 바꿔서 손실은 최소화하고 효율은 극대화 시키는 트레이드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이행[48]하며 현장과의 소통도 나쁘지 않아서 감독이 원하는 선수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곧잘 물어다준다. 다만 이런 하이재킹 능력 때문에 다른 팀들 입장에서는 주가가 오르는 선수를 언젠가는 FC 서울에 뺏길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게 생기기도 한다. (...) 다만 2016 시즌에는 영입한 대부분의 선수들을 자유계약으로 물어오는 케이스가 많아[49] '트레블을 달성하라'는 구단의 거창한 멘트에 비해선 이적료를 투자하지 않은 채 번 돈을 마케팅하는 데에만 쓰냐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다만 팬파크, 팬카페, 푸드파크로 대표되는 마케팅은 나날히 발전중이고 단순히 유스가 아니라 수익사업을 바라보고 육성중인 FOS가 돈이 한 두푼 드는게 아니라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자생력 못키우고 모기업만 바라보던 클럽이 모기업의 지원이 줄었을때 어떻게 기우는지는 2016년의 수원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나같이 서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고 실력만으로도 K리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레전드 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외국인 선수 영입의 굴곡사가 많았다. 많은 서울팬들의 사랑을 받던 히칼도가 떠난 이후 생긴 히칼도의 저주는 유명하다. 2008년 무삼파와 제이훈, 2009년 케빈과 안데르손, 2010년 에스테베즈까지 3년 연속 실패를 거듭했다. 2009년까지 제 값을 해준 외국인 선수는 히칼도, 아디, 데얀 뿐이었고 이 중에서 데얀은 인천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선수였다. 이 징크스는 2010시즌 임대 영입된 제파로프가 맹활약하면서 깨지게 됐다. 이후 2011년 마우리시오 몰리나, 2012년에는 세르히오 에스쿠데로가 들어오면서 안정적인 외국인 4인방을 형성하면서 2013년까지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2013년이 끝나고 아디는 은퇴하고 코치로 전업, 데얀은 중국으로 이적, 몰리나의 부진으로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데얀의 대체자로 데려온 하파엘[50][51]은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채 6개월만에 임대 이적했으며,[52] 성남 출신 에벨톤을 데려와 공격진을 보강했지만 초반에만 조금 반짝하고 역시 마찬가지로 골 가뭄에 시달렸다. 히칼도의 저주에 이은 10번의 저주 그나마 아디의 뒤를 잇는 수비수 오스마르는 팀의 중심이 되어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53] 2015년 몰리나도 말년에 노익장으로 거듭나며 부활했고, 새로 들어온 다카하기와 대전에서 새로 합류한 아드리아노도 훌륭한 플레이로 팀을 이끌고 있으며 2016년에는 몰리나가 떠난 대신 데얀이 돌아오면서 용병 수난사도 끝나게 되었다. 외국인 선수들의 팀에 대한 충성심이 K리그 클래식 타 팀에 비해 높은 편인데, 연고지가 서울에 위치한 것도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서포터즈 수호신은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에 이은 K리그에서 가장 거대한 서포터즈이다. 초반에 클린 서포팅을 모토로 삼고, 소모임 위주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해 K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여러가지 사고가 터지면서 마찬가지로 좋지 않는 눈초리를 받고있다. 흑역사로는 위에 서술한 것처럼 안정환 도발 사건등이 있는데, 수원과의 2군 경기에서 한 서울팬이 수원 소속이던 안정환과 가족을 타겟으로 인격모독적인 발언과 욕설을 했던 사건이다. 분개한 안정환은 경기 도중에 관중석으로 뛰어 올라갔다가 퇴장을 당했으며, 언론에도 보도되며 서울 서포터들이 한동안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내부 강경파 리더격 소모임인 타나토스는 명실상부한 K리그 서포터즈계의 공공의 적.

2011년까지 아디다스에서 용품 후원을 받았으나 2012년 부터는 르꼬끄스포르티브와 함께하고 있다. 르꼬끄와 연계해서 전국 각 르꼬끄 매장에서 유니콤과 트레이닝복 등 각종 상품을 판매하고있다. 계약할 때 4년간 80억원 이는 축구 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이다.

KBS2 우리동네 예체능 2014년 8월 12일 방송분에 최용수 감독을 비롯해 조광래 전 감독, 이을용, 이민성 등이 FC 서울 올드 스타로서 출연했다. FC 서울 팬이라면 여러모로 즐거운 장면들이 많은 방송. 다시보기

GS그룹 산하에 있는 관계로, 홈페이지 회원으로 가입하면 FC 서울 GS&포인트 카드를 우편으로 배송해 준다. GS25나 GS 주유소에서 적립용으로 쏠쏠하게 쓸 수 있다. 그리고 신한카드와 제휴해서 유소년 축구사랑 카드도 출시했다. 신용/체크 둘 다 발급이 가능하다.

13 FC 서울 갤러리

FC 서울 갤러리
  1. K리그 홈페이지 공식 구단 소개.
  2.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년도이며, 이 역사를 인정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기록상 FC서울의 창단년도 역시 1983년이다. 간혹 엠블럼에 2004년이 있다고 2004년을 창단연도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부천 FC 1995 등 다른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구단 역사에서 의미깊은 연도일뿐 1983년만이 구단, 한국프로축구연맹 등등에 공인된 공식 창단연도이다.
  3. 1983년부터 1986년까지는 순회경기시절로 형식상으로만 연고가 있던 때이다.
  4. 주식회사 GS홈쇼핑의 브랜드
  5. 주식회사 GS칼텍스의 브랜드
  6. 대한축구협회 FA컵의 전신 격인 대회.
  7. 2010년 5월 5일 쏘나타 K리그 2010 10라운드 FC 서울 vs 성남 일화. 60,747명 기록 이 기록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8. 충청지역 광역연고 대전, 청주, 천안 포함이며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모든 구단이 전국투어방식으로 경기를 하던 시절이라 실질적인 충청도 연고 기간은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이다.
  9. # 경향신문, 1980년 03월 19일자
  10. 구단 창단 주체가 창단을 희망하고 추진해 온 연고지에 자리잡지 못하고 연맹에 의해 연고지가 배정되는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모기업이 서울 연고를 희망하는 이유로 연고지 분배를 하는 협회/연맹은 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KBL이 96년 출범할 때 초기 서울을 공동 연고지로 묶은 것도 같은 이유. 이는 야구 등의 타 종목도 마찬가지여서, 창단 당시 서울로 가고 싶어했던 OB에게 차후에 보내준다는 조건으로 억지로 충청도로 보냈다던가, 호남에 야구단을 맡을 기업이 없자 반강제적으로 해태에게 맡겼다던가 하는 등.
  11. 특히 애초에 연고 구단이 있는 지역에 추가 연고권을 내주는 건 기존 구단에 대한 권리 침해이므로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내 야구의 경우에도 SK가 현대에게 (인천), 다시 현대가 두산과 LG에게 연고권 침해 보상을 지불한 전례가 있다.
  12. 정확히는 서울+인천+경기 연고. 서울만을 연고로 한 최초의 프로축구팀은 일화였다.
  13. 이사회는 각 구단 구단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LG 포함 서울 연고구단의 구단주들 역시 의결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이사회 의결당시 서울 연고구단들의 반대가 있었다는 정황은 리그베다 시절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문서 토론에서 제시된 자료들로 입증되었다. 대표적인 자료들은 1995년 1월 당시 사무총장인 김기복 사무총장이 원래 1994년 12월에 의결되어야 하지만 서울 연고 3개팀 특히 LG의 반대가 심해서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1995년 2월 이사회 바로 직전 계속해서 서울 연고 3개팀의 반대가 있을시 다수결로라도 강제로 통과시키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이와 관련된 당시 월간축구와 스포츠 기사들은 나무위키 토론창에 있는 리그 시절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강제성 vs 자발성 토론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다.
  14. 경기장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기간, 조건 등을 고려해볼때 사실상 구단 입장에서 서울에 남는 것이 불가능한 조항이며 '시키는대로 나가라'라는 표현을 돌려한 것에 불과하다.
  15. 포스코가 모기업 자금으로 이미 전용구장을 두 곳이나(포항, 광양) 지었기 때문에 이걸 못 짓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포스코의 전용구장들은 전부 포스코가 소유한 공장 부지에 건설되어 있으며, 지방 도시들과 서울의 경기장 건설 조건을 같은 선상에서 놓는 것도 부적절하다.
  16. 애당초 이 논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건 다른 구단들에게 요구하지 않은 축구전용구장 건설을 당시 동대문 연고 3구단에게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다른 구단들 또한 포항과 전남을 제외하면 모두 종합운동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축구전용구장 건설을 동대문 3구단에게만 요구하는 것부터가 형평성에 어긋난다. 전용구장이 많아진 현재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전용구장을 짓지 않으면 연고지를 비우라는 요구는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17. # 베스트일레븐 2000년 5월호
  18. # 베스트일레븐 2000년 6월호
  19. 당시 운영중이던 서울시청 축구단조차 "남자축구는 이미 활성화될 대로 활성화되었으니 대신 여자축구를 육성하겠다"는 괴랄한 명분을 들어 해체시킬 정도였으니 당시 서울시가 축구에 쓰는 돈을 얼마나 아까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한국의 시민구단은 축구 잘 모로는 지자체가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하는 지자체 구단이다.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등 대도시에 열악한 시민구단들 집어넣는 바람에 팀은 팀대로 수시로 흔들리고 야구에게 흥행참패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유나이티드로 서울 연고 K리그 구단을 만들었으면 가장 큰 서울 시장을 날려먹는 결과가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
  20. 당시 YTN 뉴스 보도 전문 -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부산아이콘스의 연고지 이전신청 철회에 따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안양LG의 서울 연고지 이전을 만장일치로 최종 승인했습니다. 지난 95년 이후 9년만에 서울로 복귀하는 LG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 시민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유명선수 영입과 구단의 수익구조 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LG는 앞으로 서울시와 연고협약을 체결한 뒤 다음달 3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부산 아이콘스와 K리그 개막전을 갖습니다.
  21. # 안양 LG 치타스의 연고이전 공고문
  22. FC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연고를 옮기며 서울 연고 입성비(사실 상암의 서울월드컵경기장 사용료 명목이었지만 점차 서울 연고구단의 입성비처럼 의미가 변질되었다.)의 반액뿐인 75억원을 납부하였다. 위에 언급된 축구전용구장 건설시 서울로의 연고 복귀를 허용하겠다는 당초의 조항을 백지화한 것.
  23. 당초 서울시에서 책정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 건설비 중 서울 연고 프로구단의 분담금은 총 150억이므로 나머지 75억원을 납부하는 또 다른 팀이 나오고, 그 구단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결정한다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2팀이 사용하는 구장이 된다.
  24. 서울특별시는 생활여건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편해 선수들에게 메리트로 작용하고 인구도 제일 많아서 관중몰이에도 유리하다.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아시아 최대의 축구전용구장이다. 사실상 K리그 전 구단 중에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다.
  25. 물론 상위권으로 복귀해도 초반에 승점을 많이 쌓지 못해 리그 1, 2위는 어렵고 3, 4위정도에 머물면서 내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내는데에만 그친다 .
  26. 마케팅에 투입하는 인원 부터가 타팀과 3~5배 차이가 난다. 또한 채용, 연수과정도 철저해서 스포츠마케팅 전공한 고학력자들을 채용해 현장에서 철저하게 굴리면서 학습시킨다고 한다.
  27. 티켓 1장당 평균 매입 금액. 즉 티켓 1장의 가치라고 볼 수 있고, 공짜표가 적다는 의미도 된다.
  28. 비수도권 구단 중엔 가장 높은 전북의 객단가와 비교해도 5,000원 차이난다.
  29. 최고가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출시한 1100만원짜리 시즌권
  30. 상기한 서울의 비칭은 수원 서포터들로부터 시작된 명칭들이다.물론 수원보다 FC 안양 서포터들이 더 싫어할테지만.
  31. 아이러브사커같은 커뮤니티는 슈퍼매치를 전후하여 이러한 도발전으로 여러 명의 서울 팬과 수원 팬들이 활동 정지를 당한다.
  32. 하우젠컵 경기로 박주영의 해트트릭과 정조국의 골로 코너킥 상황에서 마토가 한골을 넣는데 그친 수원을 4-1로 격파했다.
  33. 다만 이것은 서울과 수원이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분위기로 보나 뭘로 보나 슈퍼매치가 더 격렬하고 관심을 끄는 매치이다. 게다가 경인더비도 처음에는 서포터들에게 언론이 만들어준 더비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천 관중동원력이 수원보다 훨씬 약한데도 지금의 위상을 갖춘데는 언론의 지원사격 덕이 컸다.
  34. 차두리의 마지막 홈경기이자 은퇴경기가 되었다.
  35. 여담으로 서울, 전북, 수원의 팀컬러와 이러한 상성이 절묘하게 포켓몬스터와 맞아떨어져서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빨간색 서울은 불꽃 타입, 초록색 전북은 풀 타입, 파란색 수원은 물 타입에 대응된다.
  36. 2-3는 스코어로만 보면 박빙의 경기처럼 보이지만, 1-3 상황에서 오스마르가 종료 직전에 넣은 골 때문에 점수만 2-3이었지 경기 나용은 열세였다.
  37. 모기업 회장님이 축구광으로 부지내에 전용구장까지 지어줄 정도다보니 K리그 초창기 멤버들중 연고이전과 일절 상관없는 유일한 팀이다. 부산은 연고이전 시도를 했다 실패한 케이스.
  38. 여담으로 연고이전을 강하게 반대하며 서울에 온갖 비칭을 가져다 붙인 수원은 서울을 비롯한 팀들이 10년 넘게 구르며 만든 리그 판에 들어온 후발주자이고 이것이 서울팬들이 수원을 더욱 아니꼽게 보는 이유이다.
  39. FC 서울은 세로 줄무늬이며 포항은 가로 줄무늬이다.
  40. 1승 4무, 4무 가운데 2경기는 승부차기 승
  41. 팀을 불문하고 서포터중에는 이런 충돌을 미화하거나 바라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상식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건 폭력은 범죄고 리그의 흥행을 떨어뜨리는 요소이며 강성 서포터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유럽 땅에선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부디 착각하지 말자.
  42. FC 서울은 서북권, 서울 이랜드 FC는 동남권을 주요 팬 베이스로 삼고 있다. 홈 경기장이 각각 상암(마포구)과 잠실(송파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43. 그리고 두팀의 홈경기장은 우리나라의 큰 스포츠 이벤트가 열린 곳이다. 서울 이랜드의 잠실종합운동장은 86 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이 열린곳이며, FC 서울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02 한일월드컵 개막전, 준결승전 한국 대 독일전이 열린곳이다.
  44. E석 응원단장
  45. 다만 손흥민은 프로팀 데뷔가 아닌 동북고 시절 1년만 재학하고 바로 함부르크 SV으로 넘어간 사례라 만 FC서울 출신 프리미어리거로 인정하고 손흥민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46. 성남은 팀 에이스이자 K리그 MVP였던 김두현을 11억원에 웨스트 브롬위치에 팔았고 포항은 이적료 없이 이동국을 미들즈브러로 보냈다.
  47. 김동진 23억, 박주영 32억, 이청용 41억, 기성용 약 38억.
  48. 예를 들어 2016시즌 대비 겨울 이적시장에서 부산의 에이스 주세종과 열외 취급이었던 김현성을 트레이드했다. 주세종은 부산의 멱살을 잡고 이끈 소년가장인데 비해 김현성은 박주영, 아드리아노의 주전 투톱이 막강하고 윤주태가 슈퍼서브로 굳어지면서 사실상 서울의 전력 외 자원이었다.
  49. 몰론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선수 면면은 데얀, 정인환, 곽태휘 등 굉장히 화려하다. 하지만 시즌 전부터 서울과 함께 2강으로 불리며 우승 경쟁을 다투는 전북이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투자에 선수들을 쓸어담는 것을 보아하면 씀씀이가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50. 영입했을때부터 가루 단위로 까였다. K리그 최고의 공격수에 몬테네그로 대표팀까지 했던 데얀을 대체한다는게 고작 브라질 하부리그에서 반짝 활약한 무명선수를 데리고 왔으니 팬들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
  51. 게다가 그 시기에 하필 옆나라에선 대형스타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한 바람에 더욱 비교당했다. 게다가 하파엘 전에 불가리아 대표팀 공격수 출신 보지노프가 서울 이적설이 나와서 많은 기대감을 줬지만 루머로 끝난 바람에 아쉬움이 매우 컸다. 진짜로 왔으면 이름 때문에 난리가 났었겠지만
  52. 그래도 체격이 탄탄하고 좋으니 믿어보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FA컵에서 2군을 내보낸 인천을 상대로 선발로 나왔음에도 OME급 플레이를 보여주는 바람에 결국 그를 감싸주는 팬들마저도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하파엘 사진은 FC 서울 갤러리에서 혐짤, 금지짤로 통하게 되었다.
  53. 2016 시즌에는 FC 서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까지 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재계약 안하냐 현기증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