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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州旗) | 주장(州章) |
포메른의 위치 | |
국가 | 독일 -> 독일 / 폴란드 |
주도(州都) | 슈테틴 |
1 개요
과거 독일의 영토였던 지역. 2차대전 종전 후 오데르 강이 독일과 폴란드의 새로운 국경으로 지정됨에 따라 포메른 지역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오데르 강 이동(以東) 지역은 폴란드의 영토로 할양된다. 독일의 영토로 잔존한 서부 지역은 메클렌부르크 지역과 합쳐져 오늘날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로 재편성된다.
2 역사
포메른이라는 명칭은 고대 슬라브족의 언어로 바다 근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Po More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에는 바이킹 족과 슬라브족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중세 초기에는 오늘날 폴란드 인들의 먼 조상에 해당하는 슬라브 계통의 부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3~14세기 경 튜튼기사단의 정복 활동과 동방식민운동으로 이 지역의 게르만화가 상당부분 진척되었지만 1446년 튜튼기사단이 폴란드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포메른 공국은 폴란드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만 했다.
이후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독일계 주민들은 대부분 신교로 개종하였지만 이 지역을 통치하던 그리핀 가문[1]과 폴란드인들은 가톨릭을 고수하였고 이에 따라 30년 전쟁 시기 이 지역은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한편 30년 전쟁 와중에 그리핀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이 지역은 분할되어 북부지역은 스웨덴이 차지했으며 남부지역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이끄는 프로이센 공국에게로 넘어간다. 이 시기에는 프로이센 공국 역시 폴란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포메른 지방이 폴란드의 영토로 존속한다. 하지만 국력을 빠르게 키운 프로이센 공국은 1701년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하면서 폴란드로부터 독립했고 포메른 지방 역시 온전히 독일 문화권으로 편입된다.
프로이센 왕국의 성장은 계속되어서 1712년에는 스웨덴으로부터 북부의 포메른 지방을 할양받았으며, 1779년의 폴란드 분할과 1815년 빈 회의를 거치면서 모든 포메른 지역이 프로이센의 수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에 따라 프로이센은 이 지역에 포메른 주(Provinz Pommern)이라는 새로운 행정 구역을 신설했고, 이는 1945년까지 존속된다. 이후로도 프로이센 왕국의 승승장구는 계속되어서 프로이센의 주도 하에 독일 제국의 수립되자 포메른 역시 자연스럽게 독일 제국의 일원으로 자리잡게 된다. 다만 보수적이었던 귀족 대지주 융커들이 이 일대를 장악했던 탓[2]에 경제/문화적으로는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뒤쳐지고 만다. 당장 이 일대에서 공식적으로 농노제가 폐지된게 1807년의 일이며 그 후로도 이 곳 농민들은 소작농으로서 별로 농노와 다를 바 없는 생활[3]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1차대전 후[4] 포젠과 서프로이센 일대가 신생 폴란드에게 넘어감에 따라 포메른은 급작스럽게 폴란드와 국경을 마주한 최동단 지역[5]이 되고, 이러한 국경 변경은 포메른에게 뼈아픈 타격으로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농업을 핵심 산업[6]으로 하는 포메른은 농업 생산물은 근교의 슐레지엔, 포젠, 서프로이센 등지의 시장에 내다팔면서 먹고 살았는데 이 시장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불황과 더불어서 융커들의 본거지라는 배경[7]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내내 포메른의 정치 지형을 우경화하는데 일조했고, 1920년대 내내 독일 민족인민당(Deutschnationale VolksPartei)라는 극우 성향의 정당[8]이 이 곳에서 세를 떨친다.[9]
1939년 2차대전의 시작을 알린 폴란드 침공의 첫 공세가 이 곳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독일이 승승장구하면서 대부분의 전투가 독일 국외에서 벌어지면서 포메른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날[10]들을 보냈다. 그러나 동쪽에서 진격하기 시작한 소련군이 마침내 1945년 2월 8일 포메른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독일군은 소년과 노인들까지 긁어모아 동지 작전(Fall Sonnenwende)이라는 이름의 반격을 감행했지만 망했어요. 결국 1945년 4월 20일 소련군은 포메른을 완전히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2차 대전 종전 후 포츠담 회담을 통해 양국의 국경선이 최종적으로 확정됐고, 연합국 사이의 합의에 따라 전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이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으로 정해짐에 따라서 이 국경선 외부에 위치했던 오데르 나이세 선 이동이 고스란히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넘어갔다. 이에 따라 포메른도 동프로이센, 서프로이센, 슐레지엔, 포젠과 함께 폴란드에 할양되었으며, 오데르 나이세 선 서부에 위치한 지역은 구 포메른(Vorpommern)이라는 명칭으로 메클렌부르크와 합쳐져서 행정적으로 재편성된다.[11] 오데르 나이세 선 이동에 거주하던 독일계 주민들은 대다수가 폴란드와 소련 측에 의하여 강제 추방되어 독일 본토로 이주했으며, 그 빈 자리는 소련에게 동쪽영토를 뺏긴 폴란드 이주민들이 채운다. 냉전 시기 독일계 실향민들은 추방민 연합회라는 정당을 건설하고 옛 영토를 되찾을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드높이기도 했지만 1970년대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가 사실상 변경된 국경선을 승인한 데 이어서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헬무트 콜 총리가 통일을 승인받는 댓가로 구 영토의 완전한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완벽히 폴란드의 영토로 정착한 상황이다.
3 같이 보기
- ↑ 이 항목 최상단에 위치한 표 속 주기에 등장하는 붉은 독수리가 그리핀 가문의 문장이다.
- ↑ 다른 거 다 제끼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 곳 지주 출신이다. 다른 말이 必要韓紙?
- ↑ 자작농으로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던 재산권이 전혀 인정이 안됐다. 이 재산권이 제한적이나마 인정된 것은 1850년의 일.
- ↑ 정작 1차대전 와중에 포메른 지역에는 전투 한 번 안 이뤄졌다.
애초에 1차대전 당시 독일 국내에서 전쟁이 벌어진 게 얼마 되지도 않는다. - ↑ 동프로이센이 있기도 했지만 이 곳은 그냥 폴란드 한 가운데 위치한 월경지.
- ↑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낸 통계에서 포메른 인구의 51%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 ↑ 당장 1919년 독일 혁명 이후 스파르타쿠스단 봉기, 카프 폭동, 맥주홀 폭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포메른 지역의 융커들은 자유군단을 거의 사병처럼 운용하면서 좌익 세력들을 때려잡았다. 심지어 저 멀리 베스트팔렌 루르 지역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파업까지 진압하러 원정갈 정도(...)
- ↑ 1933년 히틀러를 총리로 삼는 보수 세력의 연정에 동의한 알프레트 후겐베르크가 바로 이 당의 지도자이다.
- ↑ 다만 나치당은 별로 세를 못 떨쳤다. 나치가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서 세력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다른 독일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1929년의 대공황 이후.
- ↑ 다른 지역은 산업지대라서 연합국의 공습에 죽도록 시달렸지만 포메른은 농업지대라서 그런 것도 없었다. 그나마 산업이 발달하고 베를린의 외항을 담당했던 슈테틴이 드문드문 폭격을 당했으나 그것도 드레스덴이나 함부르크가 당한 것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
- ↑ 그 와중에 포메른의 일부 지역은 뜬금없이 브란덴부르크주로 편입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