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新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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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 요도퀴스 판 로덴슈타인(Jodocus van Lodenstein, 1620-1677)
Sola fides오직 믿음으로
목차
1 용어와 기원
캣홀릭교와 반대로 개를 좋아하는 종교라 카더라
16세기 경,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로마 교회에서 분리된 복음주의 성향의 신생 기독교 교파들을 두루 일컫는 말. ‘복음주의 교회’(독일어: Evangelische Kirche)라고도 부른다.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의 원어 표기는 Protestant 에서 유래했기에 일반적으로 프로테스탄트로 한다. 기독교에서, 어디까지가 개신교의 범주인지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개 종교 개혁 1세대 종파들로부터 거듭 파생된 종파들도 일반적으로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 = 개신교가 아니다. 개신교는 전체 기독교의 한 분파다. 기독(基督)은 크리스토스(그리스도)의 음역(한자 차음)이므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2].
하지만 개신교가 기독교와 동의어로 생각할 정도의 용어를 차지한 것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의 학교와 병원 등을 세우는 포교 방식과 해방 이후의 개신교 국가 미국의 영향 등으로 개신교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면서,기독교라고 하면 보통 개신교를 떠올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기독교보다는 천주교라고 스스로를 칭한 영향도 있다. [3]
일단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는 개신교의 출발점이라고 할수 있는 종교개혁 당시 1517년부터 나온것은 아니다.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다가 1520년 가톨릭 교회의 파문, 1521년 제국 의회의 추방령을 받고 나서도 가톨릭 교회는 물론 루터나 루터의 지지자들까지도 분열이 일시적인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몇년 후에야 실질적인 개신교회의 설립이 이어졌다.
가톨릭 교회 개혁을 주장한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기존의 교회를 개혁하는 입장에서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성경적 의문을 제기하고 교회전통보다 성경을 우위에 놓으며 전통보다는 성경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자를 자처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로마교회의 전통으로 오염된 초기 기독교를 회복하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 자체는 1529년 신성로마제국 2차 슈파이어 제국 회의(Diet of Speyer (1529))에서부터 등장했는데 마르틴 루터의 복음주의에 찬성하고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6개 제후 14개 제국도시 대표들이 "Verbum Dei manet in aeternum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는 구호를 소매에 적으며 등장하자 이들을 제국의회에서 가리켜 라틴어 Protestantes(항의자)에서 따와 항의자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기존 종교개혁 입장의 루터와 루터 지지자들이 가톨릭교회와 황제의 이단선고에 반발하여 1520년 마르틴 루터와 지지자들에게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이 내려졌고, 세속적으로는 1521년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로마제국회의에서 제국의회 구성원 400여 명의 대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톨릭교회와 황제가 루터파에게 제국추방령을 내렸지만, 황제 카를 5세가 1526년 1차 슈파이어 제국 회의에서 오스만투르크의 위협으로 대(對) 투르크 전쟁협조와 과세를 위해 기존 추방령을 번복하고 새로운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 조치를 제한하며 공의회에서 루터파가 주장하는 교회 개혁 문제를 다루기로 하였는데, 카를 5세와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이 끝나며 강화하자 다시 이전 결정을 번복하여 루터파에게 제국추방령을 다시 때렸고, 신교도 제후와 제국도시들은 이 결정에 항의했다. 루터파 제후들과 제국도시는 루터와 루터파에 내려진 제국 추방령도 적법절차에 따른 공소가 아니여서 무효이며 [4] 후속 조치 또한 당연히 무효라고 항변한 것.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인으로 절대 이단이 아닐 뿐더러, 세속적으로 여전히 황제에게 충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1529년 2차 슈파이어 제국회의 직후, 1530년에는 루터파 교회에서 루터파 교리선언에 해당하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을 제출하고, 기존 교회와 교인들(가톨릭)에게도 공존을 요구하였지만 황제와 가톨릭 교회세력이 다수 의석을 장악한 제국의회에서 거부당했고, 교회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편 14세기 중반 160여 년 전 현재 개신교와 유사한 기존 가톨릭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잉글랜드에서도 있었는데 존 위클리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톨릭 교회에선 롤라드파(Lollardy)라 불렀었다. 롤라드는 "중얼거리는자" 는 뜻으로 이들이 성경을 외우고 다니는것을 미친놈(...) 취급한 비하어 였으며, 1517년부터 가톨릭 교회 개혁을 주장한 마르틴 루터에 찬성한 세력들을 지칭하는 루터파란 용어도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며 루터를 믿는 이단이라 하여 Lutheran 즉 루터추종자라 불렀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하에서 나온말은 맞다. 프로테스탄트란 말은 좀 속된말로, 지금으로 치면 "빼애액! 거리는자들"이란 의미이다(반대로 루터파에선 기존 가톨릭 교회를 기독교가 아닌 로마추종자, 교황추종자라고 비하했다).
현재의 개신교는 대체로 16세기 이후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교황의 수위권을 부정하며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파들을 통칭해서 개신교라고 부른다. 또한 개신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들도 역시 개신교라고 불린다(다만 여호와의 증인처럼 더 이상 개신교를 자처하지 않는 종파들은 제외).
그러나 앞서 기원 자체가 서방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기독교 종파들의 집합으로 여겼기 때문에 현재에도 어디까지가 개신교 종파인가?'라는 합의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말이냐면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는 루터파, 칼뱅파(츠빙글리), 재세례파, 영국국교회(성공회) 같이 현재에도 개신교도로 묶어주는 종파들은 서로를 같은 신앙을 가진 무리로 여기지 않았고, 서로가 반목했으며 서로 자신들을 진정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로마 교회에서 이단 선고를 받았다는 점너 이단 뿐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개신교도 전체를 겨냥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5],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6], 17세기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기존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 국가와 황제에 맞선 루터파, 칼뱅파, 당시 영국국교회였던 성공회는 비로소 로마교회에 대항하는 공동의 신앙을 가졌다고 여기게 된다.
결론적으로 개신교의 정체성은 16세기 로마교회에서 이단으로 구분한 수동적 기준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후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개신교가 기존 가톨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통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개신교는 성경을 유일한 본으로 여기는데 반해 가톨릭은 전통과 성서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개신교에선 가톨릭 교회가 전통을 성경과 같은 권위로 인정하는것도 반대하지만 가톨릭에서 성경해석 권한을 전통에서 찾기 때문에 사실상 전통이 성서위에 있다고보고 비판하고 있다. [7]
같은 개신교 내부에서도 전통주의에 대한 시각은 다른다. 개혁주의와 루터주의-성공회의 차이점이라면 후자는 전통을 성서의 해석과 충돌하지 않는다면 어느정도 인정하는것이고, 개혁주의 계통에선 성서에 나오지 않은 전통은 부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크게 기독교를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면,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서방에 속한다. 가톨릭과 사이는 둘째치고 서방교회에서 갈라져 나갔기 때문에 동방교회인 정교회보다 가톨릭 교회와의 신학적 공통점이 많다. 동서방 교회의 신학적 논점에 대해선 거의 모두 가톨릭 입장과 일치한다. 애초에 마르틴 루터가 신학적으로 교조로 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서방교부로 가톨릭 교회에서 정통으로 여기지만 동방교회에선 그닥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8]
2 특징
서울시 영등포구에 있는 순복음교회다
크고 아름답다
16세기 유럽에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당시 가톨릭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오해도 있는데 비슷하긴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로마제국에서 국교화 된 4세기 이래 당시 지배층들이 교계로 편입되면서 이러한 비판은 꾸준했고 르네상스 시기가 특별히 교회의 타락상이 심한게 아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 시기 물론 그런 타락상도 비판내용에 있지만 중요한건 종교개혁자들은 면죄부 판매나 사제, 수도원 신자들의 타락상은 중세의 신학이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면죄부와 같은 현상은 부작용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초기 교회의 순수했던 신학을 되찾으려면 성경을 연구했고 이러한 움직임 점점 커지면서 개신교회를만들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당시 왕이었던 헨리 8세가 앤 불린과의 재혼을 위해서 성공회(영국 국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종교개혁의 기원은 발도파까지 기원이 올라가기도 하는데, 주요한 교리에서 지금의 개신교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많아서 개신교 내부에서도 위의 세력을 '종교개혁의 불씨'라고 하지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다.[9] 마르틴 루터 이전 성서중심 신앙을 강조한 영국의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또한 종교개혁의 선구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중세 가톨릭에서 교회의 타락만으로 개신교가 설립되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는 어느정도 설명은 되어도 완전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 16세기 독일 지역의 면죄부 판매로 인하여 마르틴 루터와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처음 성공한 것이지 그 이전부터 가톨릭 교회의 전례주의 중앙집권 성경중심의 신앙을 강조한 움직임은 계속 있어왔고 그 때마다 진압된것. 사실 초기 교부시대 이후 중세 가톨릭 교회의 타락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으며[10]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와 식자층의 증가로 바티칸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조직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오로지 성경에 모든 가치관의 기준을 둔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루터주의, 칼뱅주의, 재세례파 등은 선구자 루터의 영향은 받았으나 각자 서로 다른 정체성과 다른 신학방향으로 분화되었으며 앞서 서술하다시피 그들은 가톨릭교회와의 종교갈등으로 같은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11]
현재는 성경에 대한 해석 차이로 인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의 많은 교파로 갈라졌으나 이들은 서로를 타교로 보지 않는다. 교회 제도나 강조하는 교리가 다를 뿐이지 다른 종교로 보지 않을뿐더러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옮기는 것을 개종으로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초기 종교개혁 시기에는 마르틴 루터 쪽에서 가장 성경의 원형에 맞게 살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개신교파끼리의 성만찬 논쟁인데, 마르틴 루터는 신약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빵을 나누어주며 이것이 자신의 살이라고 한 것, 포도주를 나누어주며 이것이 자신의 피라고 한 것을 두고 빵에 예수의 몸이 내려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이론은 가톨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성체변화이론과는 차이가 있다. 빵은 빵일 뿐이며 그것이 신성한 육체로 변하지 않는 것이 큰 차이. 이에 반해 츠빙글리는 '상징적인 것'으로, 후기로 갈수록 종교개혁자들은 루터파와 개혁주의 계통에서도 활발한 논쟁이 이어졌으며 루터 생전에도 루터파의 필리프 멜란히톤, 개혁주의에선 마르틴 부처등이 둘 사이의 입장을 조절하며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한 세대 후 칼뱅주의에서는 둘 사이의 영적 임재설을 취한다. 현재까지도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개혁주의)의 차이점을 들자면 예정설과 더불어 성만찬 논쟁이다.
사제제도를 인정하는 성공회까지도[12] 만인사제설을 받아들였고, 나머지 교파에도 성직자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사라는 지위는 목회를 이끄는 목회자에 해당하며, 교육자와 설교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칼뱅주의 장로회에서의 목사는 평신도인 장로와 같으며 설교하는 장로일 뿐이다. 장로와 감독(주교)제에 반대하는 회중교회에서는 회중(대중)에 뽑힌 자가 설교자를 할 정도로 성직자 계급을 반대한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수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13] 종교개혁자들은 소명(Vocatio)을 강조하여 세속적인 하찮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수도자와 성직자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신칭의에 따라 믿음 없는 수행과 수도행위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또한 수도원들이 대부분 타락하여[14] 특권 집단회 되었기 때문에 영국, 독일 북부와 북유럽 국가들은 상당수의 수도원들을 폐쇄 및 파괴했다.
종교개혁시기 가톨릭 교회와 가장 큰 차이점을 일으킨것은 루터가 재발견한 로마서의 이신칭의 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는 것은 성서의 사도 바울의 로마서의 핵심 문구[15][16]이며 반복되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의 통설은 교부시대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으로 가톨릭교회에서도 정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슨 차이이냐 싶지만 로마교회에선 유럽이 가톨릭으로 일원화되어 세속권력을 얻자 점차 세상사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교회가 사회에 개입하여 성서에 나와있지 않은 많은 문제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면서 윤리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이신칭의 신학을 크게 내세울 수 없었다. 그리고 중세시기 스콜라 철학의 영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약화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가들이 더욱 엄격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교도들이 개신교도들에게 행위구원론이라 공격받는것을 어이 없어 하듯이 가톨릭에서 루터주의와 개신교의 이신칭의를 선행이 필요 없는 이상한 믿음이라 주장하는 것도 역시 무지에서 비롯된다. 루터에 따르면 신자들이 복음을 믿어서 구원 받는것과 별개로 율법에서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선행은 그 결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이다. 중세 교회에서 행위를 중요시 하여 교회에서 정해 놓은 선행을 점수화 하여 사소한 일에도 수백년 수천년, 교회에서 정한 악행에 대해선 천문학적 시간 동안 연옥에 갇히는것으로 선전했고 그대신 교회에서 원하는 선행을 하면 (대부분 돈으로 면죄부 판매) 악행을 없애주는걸로 선전해왔기 때문에 중세인들은 선행을 구원론의 대가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중세시기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 믿었고 벼라별 악행을 다 져지르고 면죄부사고 과거를 통째로 용서받고 하는 짓을 종교개혁자들은 용납하지 못 했다. 죄의 용서는 고해 성사같은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해야하는것이라 가르쳤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하여 세속적 윤리를 엄격하게 강조한다.[17] 선행의 개념도 다르다 루터가 강조한 선행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한 성지순례 고행 금식 같은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선행으로 교회 전통의 성경적 근거가 불확실한 선행은 인정하지 않았다. 농부처럼 가난하고 자식이나 부양가족이 있는자는 사실상 교회의 선행을 할 가망이 없고 사제계급을 독점한 유력계층의 독점물로 여겨졌는데 루터와 칼뱅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한낱 농부가 가족들을 부양하는것이나 농부의 아내가 그리스도인의 자녀를 교육하는것이 사제들이 행위보다 더 가치가 높은 선행으로 여겼다.
이 처럼 중세가톨릭의 선행 개념은 몇 가지 오류를 범하기 쉬웠다.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하는 선행은 실생활과 동떨어진것들이었고, 보속의 대가를 선행으로 여겼기에 그동안 여러성인들의 공덕이 축적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선행의 보고'를 교회에서 독점적으로 관리하며, 신자들에게 나눠줄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세에 창설된 여러 특수 수도회가 서구사회에서 자선단체의 모태가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교육을 하거나 의료활동을 하는 식으로 수도회 바깥에서 회칙에 따라 수도 활동을 벌였다. 하늘나라에 가고는 싶으나 죄로 인한 보속은 받기 번거로운 귀족이나 부유한 평신도들이 이 수도회들을 돈으로 많이 후원하였는데, 선행처럼 어려운 일들을 사제계급에 위임하고, 때에 따라 선행에 동참하는것으로 만족했다. 특히 흑사병 이후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점점 손쉬운 보속수단[18]을 점차 제공하기 시작했고, 면죄부는 상설적으로 팔리면서 기존의 이러한 선행들 조차도 하려하지 않고, 죄와 구원에 대한 것이 선행이라는 삯으로 사고 파는것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았다. 마르틴 루터에 따르면 의인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음으로 산다. 이를 반대로 보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곧 의인이다. 의인은 성경에 따르면 구원을 받는 사람이고 이 의인은 믿음과 구원의 약속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을 그대로 지상에서 실천한다. 즉 마르틴 루터에게 구원이란 믿음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진실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행과 구원이 약속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필연적으로 구원 이전의 예정설 논란을 내포했다.)
그럼 '참된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어떻게 구분 가능한가?'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을 따르지 않았다.[19]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만이 안다 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성경에서 예수가 자신과 합한 자는 열매를 맺을 거라고 표현했기에, 마르틴 루터는 좋은 행위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닐지라도 '믿음의 증거'라는 논리를 폈다. [20]
하지만 후에 이것을 가지고 장 칼뱅이 기독교 강요에서 이전 종교개혁가 선배들의 노고를 집대성하여 정리하며 답을 제시했다. 즉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지 여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나은 구원이 예정된 사람에게 그 모습을 참된 믿음으로 발현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극단적으로 부정하고[21],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오직 구원이 예정된 사람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개신교계에서 큰 파란을 일으켰다. 장 칼뱅 본인마저도 모질게 들릴 수 있다고 인정할 정도. 이에 반대해서 아르미니우스나 존 웨슬리, 드와이트 요크 등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인이다'[22] 성화(聖化, 믿음 이후 올바르게 사는 삶), 최종적인 구원이란 여정을 말하였다.[23]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주장한 것들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개신교 신자를 흔히 볼 수 있다.예수 천국 불신지옥 문구 자체는 일단 모든 개신교에서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개신교의 구원론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것이고, 믿지않으면 지옥불속에 다이빙 한다고 협박하여 강제개종하는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신칭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종교개혁 시기엔 전 유럽이 기독교 신자였고, 딱히 잘못된 믿음이라 생각하는 가톨릭에 맞서거나 신앙을 지키려는 측면이 강했지 비종교인을 세뇌하여 개종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유럽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았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성경문구는 사도시절에만 해당한다고 보는게 통설이었기 때문.[24] 이 때문에 비교적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헤른후터(모라비아 형제회)와 감리교, 침례교가 선교활동을 먼저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1793년 인도에 파송된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라 보고 있다.
여기에 한국 개신교에 대한 부가 설명이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장로교가 절대과반이고 나머지 대부분을 감리교가 차지하여 큰 부류의 종파가 생각보다 다양하지는 않다.[25][26]이 양대 종파가 서로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헐뜯고 싸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개신교 종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이 잦은 상황에서 문제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밝힐 때에만 개신교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특정 교회 및 인물의 잘못이 전 종파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것은 옳지 않으나, 또한 절대 다수의 장로회가 다른 개신교 교단들과 다른 점을 아는 신자들도 적다. 장로교는 개교회중심주의라 교회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27]
개신교 종파에 따라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공경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데, 개신교 에큐메니컬 진영의 교단에서도 일단 이것은 성경과 거리가 먼 이단취급하는 교회도 있으며, 더 비판적인 교단(반 에큐메니컬)은 잘못된 전통을 넘어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선포된[28] 가톨릭의 마리아론 교리를 심각하게 보며 "이단도 아니라 이제 이교다" 라며 더더욱 부정적으로 본다.
사실 이문제는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를 가로막는 커다른 장애물 까진 아니었다. 자세한것은 해당항목 성모 마리아 항목 개신교 입장 참조
가톨릭의 개신교 비판중에는 개신교가 가톨릭과는 달리 교리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교황과 교황청이 중심인 반면,개신교는 읽는 이에 따라 성경의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종파가 갈리게 된다. 단일한 권위체계가 존재하는 가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해석의 권위가 없어 분열이 필연적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성서해석과 역사를 잘 모르는 의견일 뿐이다. 일단 성서 해석에 있어서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주장은 16세기 종교개혁시기에도 나왔는데 가톨릭 교회에서 공인한 신학박사과정을 나온 마르틴 루터는 물론이고 개혁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장 칼뱅 조차도 가톨릭 교회의 기존 성서해석이 명백히 틀리지 않은 이상 기존 해석을 인정했다. 당시 개혁자들의 성서 해석 문제 제기는 중세후기 스콜라 철학의 연구와 방법론은 물론, 14세기부터 제기된 인문주의의 연구성과를 이어 받은것이고 구체적으로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나 에라스무스등의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 연구가 뒷바침 된 것이지 당시에도 이미 여러 연구성과로 인하여 이의제기가 된 내용을 바탕으로 라틴어 불가타판의 오역과 필사본 전수시 오류나 첨삭등을 발견하여 원전연구를 재시도 한것이지 개인이 멋대로 해석한다는 주장은 비난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론 가톨릭 교회가 로마시대부터 현재까지 같은 모습일것이라고 생각하는(비록 전승상은 그렇다고 주장하나)것은 대단히 무리이며 좁게봐서 교리상으로만 봐도 로마시대부터 영지주의, 도나투스파[29], 펠라기우스 주의[30] 시작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니케아 공의회부터 아리우스파 단성론등 주장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교회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동서 분열 이후 서방교회에서 조차 교부시대때부터 다양한 의견들이 나뉘었고,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개신교에서도 인정하는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대교부들의 입장이 통설로 정리되어 온 과정이 교회의 역사이다. 그리고 발도파처럼 개신교의 선구자급으로 가톨릭 교회의 내부 개혁을 주장하던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으면 열심히 이단으로 사냥하여 태워 박멸한것이 성공한것이지[31], 가톨릭 교회가 교황아래 한치의 의문점도 없이 2천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그것이 역사상 사실도 아니며 ,꼭 옳은 점이라 여기지도 않는다.[32]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전통의 권위에 의존하여 초기 기독교와 멀어진 근본 원인이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 해석권한을 교황에 있다하여 (평신도에게 성경 금지, 성서 번역금지등) 지식을 독점하다 인문주의와 그에 영향을 받은 종교개혁에 공격을 받은것 처럼 권력있는이나많은이가 따르는것이 옳은것이 아니며 로마교회는 권한 독점을 해온것과 별개로 역사상 많은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일원화 된 조직의 중앙집권제를 선호하지도 않는다. 따라서인문주의 모토인 ad fontes(근본으로 돌아감)을 통하여 일반사제는 물론 평신도까지 성경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명백히 잘못된 가톨릭 전통주의와의 결별을 통해 , '전통에 대한 맹종이 올바른 신앙인가'가 종교개혁시기 논제였고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의 권위로 대체하려는것이 당시 종교개혁 주의자들의 목표였다.
한국 개신교에 수백개의 교파들이 있음을 근거로 또한 세계적으로 등록된 개신교의 교파수를 과장하여 분열을 강조하지만 한국 수백개의 교단중 신도수가 유의미하게 측정되는것은 20여개 미만이고 절대 다수인 장로회가 60%를 차지한다. 장로회 내부에서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부르크 신앙고백등을 공통의 믿음으로 선언하고 이런 선언에 동참하는 교단만 같은 장로회 교단으로 인정하지 수백개의 교단이 나뉘어 삼국지 찍듯이 교세다툼 하는것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또한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 교회를 타교로 볼지언정[33] 같은 개신교인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은 서로를 타교로 보지 않으며 교회제도(감독제), 강조하는 교리(침례)등이 조금씩 다를 뿐 이같은 다양성은 분열되었으니 무조건 나쁜것 그리고 서로 나뉘어서 반목 타령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히 루터교도 타교로 보지 않으며, 개신교 교파의 분열상 자체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다.[34]
그리고 통일된 중앙권위가 없음을 아쉬워 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이것은 가톨릭 교회의 중앙집권화 된 역사 이래 수많은 오류와 범죄들을 보면 꼭 좋은것만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도 일제시대 신사 참배로 교단이 분열되었고 선교사들 까지 분열되고 선교사의 모국 교단 까지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지만 교단과 선교사의 신학적 의견을 절대 거부한 신도 2천명이 체포되고, 50명이 순교했으며 ,200여개 교회가 강제 폐쇄되면서 이땅의 빛과 소금이 되지 않았는가? (반면에 가톨릭은 1933년 로마 교황청과 일본 천주교의 의견에 순종하여 그러한 일이 없었다.)[35] [36]결정적으로 신학적 교파적 다양성을 싸그리 무시해버리고 일치 타령 하면서 교단을 통합해버린 북부 유럽 개신교는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몰락중이다.[37]
종교개혁 시기 가톨릭의 금육 금식[38]을 비판한 역사에, 오로지 성경만을 신조로 삼는 교리상 신약성서 바울의 서신에서 유대인의 율법중에 음식에 대한것은 지킬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 현재 개신교는 전 세계 종교들을 통틀어서 시크교와 함께 육식에 매우 관대한 종교이기도 하다.오오 고기 오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도 개신교 문화권은 고기 요리가 발달한 경우가 많다.[39] 대표적으로 영국(…)과 북유럽[40]. 그리고 장 칼뱅의 청부(淸富)사상이나 막스 베버의 영향으로 다른 종교 입장에서는 현세적, 속물적(…)이라고 까이기도 하지만 이것도 교파마다 다르니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하지 말자. 참고로 칼뱅은 루터를 우습게 여겼을 정도의 금욕주의자였다. 스위스 목사로 있을 때도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전력이 있다.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에 대해선 종파마다 달라서 애매한 편이지만 가급적 피하는 종파가 많다. 특히 미국이나 그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경향이 강하다.[41] 현재는 구한말 시절 외국 선교사가 보기에 지나치게 술 담배 노름에 빠져있던 민중들에 거듭난 삶을 보여주길 바라는 측면에서 술담배를 금지했는데 현재에는 이전보단 많이 풀렸다. 적어도 술 담배 한다고 지옥간다고 하는 목사는 없다. 다만 장로회에선 목사들은 술 담배 금지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한다.
진보, 중도 성향의 교단 한정으로 성(性)에 관한 교리가 (이혼, 피임, 낙태를 절대 금지하는 등의) 가톨릭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다. 다만 동성애의 경우, 진보 교단은 가톨릭보다 유연하고(일부 교단에서는 동성애자가 목회자/성직자가 되는 것도 허용할 정도), 보수 교단은 가톨릭보다도 빡빡하다(예를 들면, 동성애자가 평신도로 입교하는 것도 금지).
개신교 교단 중 대부분은 성호긋기, 십자고상, 제단에 촛불 놓는 것,[42] 니케아신경 낭독, 성만찬의 화체설등을 가톨릭의 잔재 혹은 비성경적인 행위라 하여 배척한다.[43]
상술했듯 대체로 전통이나 인습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반면,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외관적인 면에서 당대의 최첨단 기술과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아니, 자유민주주의[44]나 산업 혁명 등을 비롯한 현대 문명이 만들어지는 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영향이 매우 강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다.
세계에서 건물 크기가 가장 작은 교회는 크로스 아일랜드 채플.[45]
3 한국의 개신교
대한민국의 7대 종단(한국종교인평화회의) | ||||||
불교 | 개신교 | 천주교 | 유교 | 원불교 | 천도교 | 한국민족종교협의회 |
대한민국/종교 |
- 자세한 것은 개신교/대한민국 문서 참조.
4 직분(한국 기준)
- 목회자
- 목사 - 만30세 이상인 자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합격한 뒤 목사안수를 받은 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목사고시를 패스하지 못해전도사로 남는 사람도 있다. 몇몇 교단에서는 추가로 기혼자로서 자녀를 두고 있어야 안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 전도사 -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에 목회활동을 하는 자 또는 목사고시 미이수자.
- 강도사 - '준목사', 또는 '목사 후보자'. 장로교(합동)를 포함한 몇몇 개신교단에서 채택한 직위이다. 강도사 고시를 합격해야 한다. 설교는 할 수 있으나 교회 운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 예장합동에서는 강도사, 예장고신과 기장에서는 준목이라 한다. 예장통합에는 없다. 대체로 주일학교나 청년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 목사 - 만30세 이상인 자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합격한 뒤 목사안수를 받은 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도
- 신도
- 기타
5 비판
6 교파(한국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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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재세례파, 오순절교회, 재림파[46], 성결교, 침례교[47], 개혁교회, 장로교, 조합교회론, 청교도, 감리교, 성공회, 경건주의, 루터교회 |
개신교는 성경 해석, 기본 교리, 전례 및 교단 조직에 따라 여러 분파가 존재하므로,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가 매우 애매모호한 실정이다. 따라서
- 1.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 2. 신학적, 교회사적으로 서방 교회의 전통 계승을 주장하며
- 3.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아 교황과의 일치가 끊어진 교파들로서,
- 4.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으면[48]
일반적으로 개신교로 간주한다.
문화체육부에서 발간한 '2011년 한국의 종교현황'에서는 이단으로 치부되는 교단 포함 총 118개의 교단이 등록되어 있다.
- 구세군
- 구세군 대한 본영
- 그리스도의 교회
- 그리스도의 교회 협의회
-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 협의회
- 루터교회
- 기독교 한국 루터회
- 복음교회 -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교파다.
-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 성결교회
-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 대한 기독교 나사렛 성결회
-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
- 기독교 한국 성결회
- 성공회
- 대한 성공회
- 가장 먼저 생긴 분파.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갈라져나왔다.[50] 현재는 합동과 함께 보수적인 신학을 대표하는 교단이 되었다.
-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 에큐메니컬 운동과 WCC 가입 문제로 합동과 갈라졌다. 굳이 말하자면 중도적인 교파. 그러나 신학적 의미의 기계적, 산술적 중립은 아님에 주의할 것.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 합동-통합으로 갈라진 이후로 교권 문제로 인해 계속 갈라져서, 정식으로 등록된 분파만 200개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개신교가 전래된 이후에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구분이 생겼지만, 한국에는 이미 갈라진 상태에서 들어왔다보니 더더욱 분파가 많이 생긴 것이다. 사실 어지간한 신자들은 고신-통합-합동-기장의 분류는 알지만 합동 내부의 분파는 잘 모르며, 아무래도 합동 교단내 정치 싸움이다보니 다른 교파인 경우 목회자들조차 내막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 한국 기독교 장로회
- 통합과 합동이 갈라지기 전에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갈려나온 교단이다. 그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분파가 아니다. 분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성서무오설[51]과 축자영감설을 가능한 한 존중하지만[52], 기장은 성서비평학을 수용함으로써 성경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한 것인데, 이런 이유로 한국기독교장로회 설립자인 김재준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직에서 제명 처리되었다.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인 교파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해당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다룬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틀린 주장이다.[53] 해당 교단은 신정통주의를 다루고 있다.[54]
- 침례회
- 기독교 한국 침례회
- 성서 침례교회: 아래의 성경침례교와는 다르다.
6.1 이단, 사이비 종교로 간주되는 교파 - 한국 장로회의 기준
출처 : <교회와 신앙> 2009년 10월호 발표, 이단/문제단체 목록 중 교파만 간추림. 단 이 명단은 한국 개신교중에서도 장로교의 기준이다. 해당 인터넷 신문의 발행주체가 장로교이기 때문. 애당초 한국은 세속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특정 종파를 주류 종파와 핵심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을 규정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해당 목록 중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같은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이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편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계에서는 가톨릭을 이단으로 본다.(…)[55] 야이 대표적인 이가 합정동교회 김효성 목사. 김효성 목사의 천주교 비평.[56] 어쨌든 상기의 이유로 적당히 걸러 볼 것.
6.1.1 시한부 종말론
6.1.2 귀신론, 무속신앙 결부
- 서울성락교회(김기동) - '베뢰아'. 무속신앙과 접목된 귀신론을 주장하는 단체. 그간 해온 성경 해석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한다는 조건으로 예장통합으로부터 사면되었다가 예장통합 내부 문제로 다시 철회.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 항목 참고.
- 예수중심교회(이초석) - 교주 본인의 신격화 및 귀신론 주장.예수중심교회의 소위 귀신 퇴치 영상
- 진주초대교회(전태식) - 귀신론, 이중아담론 등 이단적인 주장. 헌금 강요.
- 레마선교회(이명범) - 양태론, 창조론, 이중아담론 등 이단적인 주장을 함. 이명범 목사는 문제 제기된 부분을 돌이키고, 예장통합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가 예장통합 내부 문제로 다시 철회.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 항목 참고.
- 할렐루야기도원(김계화) - 무속에 가까운 비기독교적인 기복신앙 및 광신적인 집회 등.
- 대한예수교 장로회(전도총회) - 일명 류광수 다락방. 양태론, 기독론 등 이단적인 교리가 문제시 됨.#[57]
- 부산제일교회(박무수) - 4단계 회개론이라 하여 회개의 단계 중에 헌금을 집어넣고 헌금을 해야만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주장
6.1.3 인간의 신격화
- 지방교회 - 불교에 가까운 인간의 신격화 등을 주장. 기존 교회 부정. 이 교파는 이단 논란으로 말이 많은 교파이니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 한농복구회 (구 엘리야복음선교원) - 인간이 신이 된다는 주장. 집단농장식 경영.
6.1.4 신앙치료, 영성치료
- 밤빌리아추수꾼 - 영성치료를 주장하며 인간을 신격화
- 만민중앙교회 - 무안단물 사건으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함. 방송국 점거사건
- 인천주님의교회(김용두) - 교주 본인의 신격화 및 비성경적인 신비주의적 주장.
-
왕의기도(손기철)- 온누리교회에 계신 그분 맞다. 정식으로 이단처리된 건 아니지만 다수 장로교 교단에서 경계, 참여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6.1.5 안식일, 유월절 교리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 안식일, 영원 지옥 부정, 영혼 멸절, 계시
-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증인회) - 안식일, 유월절, 어머니 하나님(장길자) 설파
6.1.6 구원파
- 구원파 - 기독교의 구원관을 왜곡, 회개할 필요없이 구원됐다고 믿는 것만으로 구원된다고 주장. 믿음이라는 것도 주류 종파와는 다르다. 특히 처음에는 일반적인 성경 해석 등을 가르쳐주며 문제없는 곳으로 위장하지만, 어느정도 관심을 얻은 후에는 바로 구원파 교리로
공략들어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구원파에는 3가지 분파가 있다.-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 권신찬/유병언파. 그 유병언 맞다.
- 구원파/기쁜소식선교회 - 박옥수파.
- 구원파/생명의말씀선교회 - 이요한파.-생명의 말씀 선교회는 유병언이 속한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기업가가 교회돈을 횡령하고 종업원신도에게 주일을 지키지 못하도록 연장근로를 하는 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이요한목사에 의해서 나온 교회이다.
6.1.7 신비주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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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와 천부교는 공통적으로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에서 분파하였다. 이스라엘 수도원은 다시 그 뿌리를 찾자면 일제 강점기 이용도의 신비주의, 김성도의 새주파 등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정득은의 피가름 교리도 합쳐졌다. 이들 교파는 대개 일제강점기에 활동했으며 현대에는 없어졌으나, 통일교와 천부교 그리고 그 분파들을 남기며 오늘날까지 한국 신흥종교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6.1.7.1 통일교에서 분파
6.1.7.2 천부교에서 분파
6.1.8 국외에서 유입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
- 여호와의 증인 - 삼위일체의 부정 , 지옥의 부정 및 수혈거부 , 집총거부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함.
- 스베덴보리 - 예수재림, 종말론 등을 주장함. 그외 이단적이라 알려진 주장들을 설파.
- 신사도 운동(피터 와그너) - 기적이나 방언을 과도하게 강조. 광신적인 집회.
- 성경침례교
- 크리스천 사이언스
- 유니테리언
- 라엘리안 무브먼트
6.1.9 기타
- 대한예수교 장로회(혁신총회) - 산하에 남서울신학교를 가지고 있다. 연옥교리 주장으로 이단취급.
- 새생활영성훈련원(박철수) - 이단적 사상운동으로 문제시됨.
- 여호와새일교 - 말일복음이라 하여 사탄이 공산당이라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함.
새일이라는 이름으로 봐서 무언가를 sale한다는 건 아니고 New work인 것 같다이 교회 소속 전도사로 보이는 노인 2명이 알몸으로(…) 트럭 위에 서서 '모월 모일 북한은 반드시 남한을 침략한다'라는 식의 선전을 한 장면이 짤방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광화문 일대에서 확성기로 반공설교(?)하는 새일계열 트럭이 랜덤 인카운터한다. - 사랑하는 교회(舊큰믿음교회) (변승우) - 성령 운동, 부패한 기성종파 비난 등.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고 함. 믿음에 따르는 행함이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함. 반(半)펠라기우스주의처럼 보이지만 웨슬리안 아르미니우스주의다. 서울에 개척한지 10년 만에 2만 명에 육박하는 초고속 성장세로 인해 기득권 교단들로부터 이단시비를 당함.
- 원래 이름은 큰믿음교회였으나 부목사가 마트에서 여성을 몰카 도촬하는게 걸려 사회문제가 되기도하였고, 그 부목사는 교회 자체의 자정작용을 위해 출교하였다.
- 2015년에 교회가 송파로 이전하면서 사랑하는 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 문제 제기된 부분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예장 통합교단에서 특별사면하였다가 예장통합의 내부 문제로 다시 철회. 이부분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 항목 참고.
7 교회 협의체
개신교란 단일 종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여러 교파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영국 성공회, 북유럽 루터교회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국왕이 교회의 수장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불교의 조계종처럼 교계 전체를 대표할 만한 대다수 종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학파가 있는 이슬람의 순니파랑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외적으로 개신교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회 협의체가 있다. 한국 개신교에는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진보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있다. 2013년에는 한기총의 급진적인 이단 해제 및 선거 부정 등으로 인해 반발한 교단들이 갈라져 나온 한국교회연합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예장통합은 NCCK와 한국교회연합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 한국교회연합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혹은 KNCC)
- 1924년 9월 24일 결성된 조선 예수교 연합 공의회를 전신으로 하며,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에 따라 각국별 교회 협의회(NCC)로 개편되었다. 사회 운동,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교회 일치(에큐메니컬) 운동 및 타 종교 간 대화 운동 등에서 대체로 진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58]
- 회원 교단
- 구세군 대한 본영
- 기독교 대한 감리회
-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 기독교 한국 루터회
- 대한 성공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 한국 기독교 장로회
- 한국 정교회 - 개신교는 아니지만 교회 일치 운동 차원에서 회원으로 가입.
- 보다시피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및 한국 기독교 장로회, 예장 통합, 합동, 고신을 제외한 교단들은 한기총에 가입해 있다.[62] 한편 위의 교단 이외에도 케이블/위성 채널인 기독교TV(CTS) 등도 한기총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한때 구호 단체인 월드비전과 대학생 선교단체인 CCC 및 한국창조과학회(!!!)도 회원이었으나 월드비전과 ,CCC는 각각 2011년과 2014년에 탈퇴, 한국창조과학회는 회비를 안내서(...) 탈퇴당했다.
8 세계의 개신교 통계
이 부분은 영어 위키백과의 Protestantism by country 항목을 토대로 하여 작성되었다.
- 세계 최다 개신교 신자 보유국은 역시 미국으로, 약 1억 6,500여만 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전체 인구 대비로 봤을 때는 100명 중 46명이 개신교 신자로 주류이긴 하나, 사회적 다수는 아닌 편이다. 서, 북유럽 개신교는 과거에 비해 사실상 쇠퇴한 추세이기 때문에(이에 대해서는 후술) 미국 이외에 실질적으로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파워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을 들자면 개신교가 성장하고 있는 중남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국가들 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인구가 매우 적은 투발루를 제외하고, 전체 인구 대비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100명 중 91명 꼴인 덴마크다. 그 뒤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 있으며 핀란드도 7위[63]를 기록하고 있어서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의 5개국이 모두 10위권에 들어 있게 되었다.
- 권역별로 나누어 보면 개신교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북아메리카이며, 전체 인구 대비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북유럽이다. 반면 북아프리카는 전체 개신교 신자 수로 보나 인구 대비로 보나 꼴찌이다.
- 개신교회에서 종종 세계 기독교인이 많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있다. 전세계 인구 70%가 기독교인이라느니~ 이런 과대광고를 하며 종교적 우월의식을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 신자는 전 세계 인구의 32% 정도이며, 이는 개신교만 집계한것도 아니고 모든 기독교 교파들을 전부 합친 것. 고든콘웰신학교 부설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에 따르면 개신교인 숫자는 7억 남짓으로 추정되는데, 전세계 인구 12% 수준이다.
8.1 서, 북유럽의 개신교
북서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개신교가 한국의 유교처럼 열성적으로 믿어야 할 종교라기 보다는 그냥 하나의 문화적 요소 정도로 녹아들어가 버렸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대다수가 개신교랑 소원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호구 조사 등 관료제적 편의나 그냥 늘 그래 왔으니 태어났을 때 교회에 이름을 등록하고, 교회 출석도 주로 크리스마스, 부활절 혹은 관혼상제시에만 하는 경우가 많아 유로바로미터등에서 내놓은 설문 조사를 보면 제대로 된 크리스천보다 무종교인 내지는 나이롱 신자들이 많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64]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약하며, 대도시의 교회들은 신자수 감소로 인해 노인정화되거나 아예 문닫고 다른 용도의 건물로 개조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브레이크 풀린 세속화 경향에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신앙을 지켜내려는 진정으로 독실하고 신실한 신자들도 당연히 많다.[65] 거기에 지역별로 들어가면 좀 차이가 있으며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같은 경우 국지적으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이 많고 사회적 영향력도 미국이나 비유럽권 못지않은 곳이 존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유럽 교회의 쇠퇴 현상이 '한국 개신교계에서 과장이 된거 아니냐?'는 주장도 존재한다.
8.2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신교
중남미는 잘알다시피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 문화권으로 알려져 있다. 단, 실제로 와 보면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라고 말은 하면서 성당에 안 가본지 10년이 넘은 사람들이 태반이다.[66] 모태신앙으로서 다들 세례는 받고,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자각은 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매주 성당에 다니고 미사를 드리는 것과는 다른 개념.
반면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교도들에 비해 신앙심의 정도나 정기적 예배 비율이 월등히 높다. 사실 멕시코 뿐 아니라 20세기 말부터 계속된 근래의 중남미 아메리카 지역의 기독교 종교분포가 대부분 이런 추세[67]이다. 최근 중남미 지역의 전반적인 추세에 따라 주류 가톨릭 교세는 주춤하고 서서히 낮아지는 반면, 개신교, 독립교회나 기타 그리스도교 종파 인구가 늘어나기도 한다. 개신교가 비공식적 집계로 거의 20~30퍼센트 가깝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있다. 아울러 그동안 잊혀졌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개신교 역본인 레이나-발레라 성경과 아우메이다 헤세비다 성경의 수요가 나날이 늘어나는 중. 이정도면 거의 21세기판 종교개혁 수준이다.
아프리카 역시 기독교, 그 중에서 복음주의적 교회가 급속도로 폭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미 여러 통계에서는 개신교의 중심이 서, 북유럽, 북미의 북반구에서 중남미, 아프리카의 남반구로 이동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개신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당연하지만 가톨릭의 권위주의와 경직성에 실망한 사람들이 대거 이동해 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성장하는 개신교를 엄밀히 살펴보면 흔히 생각하는 정통 개신교보다는[68] 오순절교회 및 그 파생교파의 비중이 더 높은 편이며 일부 토착신앙적인 요소와 섞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순절주의나 복음주의 교파들은 대체로 누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그 어떤 개신교 교파들보다 더욱 강조하는 편인데 이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상당히 잘 먹혀들어가는 요소이다. 말하자면 196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남미에서 가톨릭은 침략자에 의해 강요받은 종교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강하다는 점도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중남미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스페인과 가톨릭에 원한을 가진 원주민들도 상당하다.
다만 아무래도 신학적, 교리적 기반은 아직 탄탄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 현지 개신교인들 중에도 성장세인 건 좋은데 잘못된 교리로 막나가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가톨릭이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좌경화되었다 생각한 친미 독재정권이 개신교를 지원한 경우도 있어서 민주화 운동가들이나 야당이 반서방과 함께 반개신교 성향을 겸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출처)
9 종교인 과세 논란
세금 내겠다니까요? 그러니 법제화는 하지 마시고...[69] -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박××개뿔 내겠네
국민개세주의, 누구나 세금을 낸다 이런 원칙에 저희가 동의하기 때문에... -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남전 스님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교인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려고 추진 중이다. 현재 천주교와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는 모두 찬성하고 있는데 거대 개신교회만 반대를 고수하는 중이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유이하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개신교에서는 유일)와 천주교, 이 둘은 교단 차원에서 모든 성직자(목사, 신부 등)가 많지 않은 월급을 받고, 이미 교단 차원에서 수십 년 전부터 세금을 자진납부해 왔다. 그리고 성공회도 2012년에 성직자의 자진 납세를 교단 차원에서 결의했다. 또한, 개신교에서도 몇몇 교단의 경우에는 자진납세를 교단주체로 실시하고있다.
사실 개신교 목사 중에서도 세금 납부에 찬성하자는 의견도 상당수가 있지만 몇몇 힘있는 대형교회들에 돈 벌려고 목사하는 먹사들이 자기들 세금 내기 싫어서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다.무슨 지거리야 일단,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교회가 80%가 넘고, 100명이 넘지 못하는 교회는 그 수치를 상회한다. 평균임금이 250만원 정도인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연소득 4,000만원이 되지도 않는 사람들이 4대보험등의 혜택을 거절하고 반대할 리가 없다. 교회들의 모습이 어딘가와 너무도 닮았다
타 종교와 다르게 개신교 거대교회의 경우 상당수 먹사들은 청빈은 사실상 밥말아먹고 생활하는 편이며[70] 연봉 1억이 넘는 먹사들도 있다. 거기다 무슨 명목으로든 수십~수백 억의 돈을 챙기는 먹사도 있다. 따라서 이들한테 세금을 물리는 것은 당연한 일. 또한 예수 그리스도조차 세금 내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71] 목사들도 성경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 정도는 당연한 상식이다.
거대 교회의 먹사들은 종교의 본질을 침해한다(이중과세라느니 가난한 목회자도 많다느니)고 하는데 그냥 돈내기 싫다는 헛소리다. 그렇지만 어디에나 정상적인 사람과 미친 사람이 존재하듯이 개신교에도 개념있는 사람들은 있다. 2015년 12월 국회에서 드디어 종교인 과세 조항을 넣은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시행은 한참 뒤에 하게 되어 있으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10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가상 인물인 신도
- 목사 캐릭터나 성공회 신도는 해당 항목 참조. 원칙상 천주교나 정교회에 비해서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온 전통과 전례를 기피하고 현대주의적이고 즉흥적인 것을 가까이하는 게 원칙인 교파여서[72] 신비로운 면이 부족해서인지 그런지 비교적 수가 적은 편이다.
- 개신교를 소재로 한 소설, 영화의 등장인물 대부분[73]
- 대털 - 교강용, 황산[74]
-
돌아온 럭키짱 - 전사독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사쿠라 쿄코[75]
- 심슨 가족 - 네드 플랜더스, 마지 심슨[76], 바트 심슨
- 울퉁불퉁 삼총사 - 제갈찬, 주몽탁, 안경태 외 다수
- 쿠로코의 농구 - 요센 고등학교[77]
- 학교생활! - 사쿠라 메구미[78]
10.1 기타
10.1.1 교회
10.1.2 관련 인물 및 개신교 신자인 실존인물
- 강원용 - 대한민국의 목사.
- 김회권 - 숭실대학교의 기독교학과 교수. 가향교회 신학지도목사.
- 데즈먼드 투투 -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주교. 198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 마르틴 루터 -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신학자.
- 마이클 패러데이 - 장로교 칼뱅주의 신자. 독실한 신앙심과 과학자로서의 냉철한 사고가 공존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문익환 - 대한민국의 목사. 민주화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 박주영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79]
- 브라이언 휴스턴 - 호주의 목사. 모던워십의 대명사로 불리는 찬양사역단체 힐송의 원로목사이다.
- 비와이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지?
- 빌리 그레이엄 - 미국과 세계 복음주의의 제일가는 유명세를 자랑하는 거물급 목사.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종교적 조언자로도 유명하다.
- 손양원 - 대한민국의 목사. 6.25 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순교.
- 알리스터 맥그라스 - 북아일랜드 출신의 신학자.
- 얀 후스 - 본격적으로 개신교가 분열되어 나오기 이전 사람이지만, 체코의 후스파 및 기독교 역사에서는 개신교의 선구자 정도로 치는 경향이 많다.
- 옥한흠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의 목사. 사랑의교회를 세웠다.
- 울리히 츠빙글리 -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 장 칼뱅 -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 정종철 - 옛날 개그콘서트에서 옥동자로 유명한 연예인.
- 조너선 스위프트 :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성공회 사제이기도 하다.
- 조대현 - 울퉁불퉁 삼총사의 작가.
- 조용기 -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국민일보 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명예회장.
- 존 녹스 - 장 칼뱅의 칼뱅주의 신학을 스코틀랜드로 가져가 장로교를 더욱 발전시킨 중요인물.
- 존 스토트 - 영국의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80] 신부[81].
- 존 웨슬리 - 개신교 주류 교파 중 하나인 감리교를 시작한 인물.
- 팻 로버트슨 - 미국 남침례교 목사.
- 한경직 - 대한민국의 목사.
- 함석헌 - 한국에서 보기 드문 퀘이커 파 개신교 신도였다.
10.1.3 관련 기관, 단체
10.1.4 관련 문서
- 반기독교
- 근본주의
- 교인 수평이동
- 교회 수련회
- 예리코의 전투
- 기도원
- 목사
- 군목
- 전도사
- 버틀러 법
- 스코프스 재판
- 복음성가 - 가스펠
- CCM(음악)
- 복음주의 - 근본주의
- 성서무오설 - 축자영감설
- 부흥회
- 부흥사
- 사경회
- 새벽기도
- 신정통주의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장로(2번 항목) / 감독(2번 항목)
- 집사(3번 항목) / 권사
- 찬송가
- 창조설
- 채플
- 청교도
- 통성기도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한국의 개신교
- 해석학 - 3번 항목.
- ↑ 가톨릭 교회에 저항하여 생겨난 종파라는 의미로 라틴어어 prōtestārī를 따서 명명되었다.
- ↑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종교라는 것이 의미상으로 더 명확하다
- ↑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사이의 신도수 역전은 1905년 이후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개신교인들이 많이 연루되어서(105인 사건중 92명, 민족대표 33인중 16인, 김구, 안창호, 김규식, 여운형등 독립운동가들) 개신교가 사회적 주류 종교로 올라왔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초기 개신교 인구는 1.1~1.3%에 불과했다. 1950년대 후반에도 개신교 인구비율은 3% 대였다. 개신교는 물론이고 천주교 신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건 1960년대 이후 이다.
- ↑ 카를 5세는 1519년 황제 선거시의 공약과 1520년 대관식 때 재차 서약하여 적법한 절차가 아니면 제국추방령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 ↑ 16세기 후반 가톨릭 예수회와 펠리페 2세의 주도로 스페인 치하 베네룩스와 프랑스내 스페인령, 남독일과 폴란드에서 개신교도 색출을 위한 마녀사냥이 성행했다.
- ↑ 교황청에서 모든 로마 교회의 종을 울리며 기념주화까지 찍어낼정도로 바오로 4세가 매우 기뻐했다. 이런 반응은 오히려 개신교의 결집을 가져와 종교갈등이 더 심화되었다.
- ↑ 이는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에서 반대 입장의 큰 논거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전통을 근거로한 교리를 하나라도 철회 할수 없다고 미리 선포했기 때문.
- ↑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은 10세기 경에야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동방에 소개 되었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 ↑ 다만 현재 후스파와 발도파는 개신교로 편입되어 있다. 참고로 후스파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 교회로는 1918년에 루터교와 칼뱅교가 통합되어 생긴 체코 복음주의 형제회(Českobratrská církev evangelická)와 1920년 천주교 내 일부 개혁적인 성직자들이 천주교를 빠져나온 뒤 만든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Církev československá husitská)가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발도파는 발도 복음교회(Chiesa Evangelica Valdese)로 발전했다.
- ↑ 교황 연대기 저자 존 줄리어스 노위치는 르네상스 시대 15~16세기 보다 11~12세기가 더 타락했다고 본다. 그 이전에도 중세 교회의 타락상은 여전했다.
- ↑ 다만 재세례파 일부는 예외이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에서 나란히 박해했다. 유니테리언도 마찬가지.
- ↑ 고해성사가 필수가 아니라는 것 =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
- ↑ 다만 유럽의 루터교회는 20세기 이후 수도회, 수녀회를 부활시킨 사례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실레아 슐링크가 바로 독일 루터교 자매회 수녀이다.
- ↑ 쉽게 생각해서 고려말 사찰과 조선시대말기 서원의 폐해를 생각해보면 된다. 면세혜택과 치외법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생긴 폐해다.
-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개역개정판)
-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개역개정판)
- ↑ 다만 이러한 점 때문에 20세기 이후 북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경직성에 학을 때고 개신교를 멀리하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 ↑ 15세기 초반 교황청 분열시기를 마무리하며 황폐화된 로마 재개발을 위해 재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희년을 자주 선포하며 순례객들을 모았고 교회에선 면죄부를 팔고, 탁발수도자들은 성유물을 팔았다. 특별한 이벤트로만 팔던 면죄부는 그 영역을 넓혀가며 과거행위에 대한 면벌수단, 죽은자를 위한 면벌로 확대되었고 16세기 무렵엔 상설판매 된다. 95개조 반박문의 직접적인 원인이던 도미니코회 요하네스 테첼은 아직 짓지도 않은 미래에 지을 죄까지 사면한다고 선전했다.
- ↑ 과격 재세례파들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고난받는자가 선택된 백성이라면서 지배계급을 처단하는것을 정당화 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스 뮌처의 농민전쟁때 농민들의 폭동에 대해서 비판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받으나 고난받는이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며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는 그분만이 아신다"라며 지지를 거부했다.
- ↑ 다만 믿는다고 해서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날수 없다. 복음을 믿음으로 의인으로 칭해지지만 여전히 율법아래선 죄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가톨릭 처럼 때에 따라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씼는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회개하며 살아야 하는것이다. 루터 신학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의인인 동시에 완전히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율법적 죄를 부정하는 것은 초기교부 시대부터나 종교개혁시기에도 비판받은 이단 논리였고, 17세기 이후 이전의 종교개혁 신앙의 선배들의 열정에 비하면 현저하게 영성이 내려간 상태에서 등따습고 배불러지자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라며 느슨한 신앙을 유지했었고 서로간에 죄, 회개, 구원 이라는 말을 교인들에게 말하는 자체가 금기시 된 시절이 있었는데 이는 종교편의적 발상( 불편한것은 외면하고,믿고 싶은것만 믿는것) 이라며 역시 크게 비판받은 태도이다.
- ↑ 사실 칼뱅의 예정설은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자유의지와 유사한데 이는 자유의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의지중에 선한것이 있으나 균형추가 악에 크게 기울어서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다 본다면 루터는 자유의지는 악으로 완전히 타락하여 죄를 지을수 밖에 없다는 견해. 일단 칼뱅의 예정설을 한 마디로 잘라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이론이고 그 갈래도 매우 다양하며 칼뱅 이후에도 보충적인 해석을 덧붙인 신학자들이 많았다. 사실 칼뱅 본인은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구원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 ↑ 일부 침례교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를 이단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피해를 보고 있는 교회들도 많다고 한다.
- ↑ 성화가 성경에 없다는 소리가 있는데 중생(重生, 거듭남)과 성화 (거듭남 후의 삶)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단순 발음 드립이면 할말이 없다.
- ↑ 칼뱅조차 선교는 기독교 국가의 영역이지 교회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루터주의나 칼뱅주의나 기존 가톨릭 신자나 사제를 대상으로 개혁신앙으로 변모하길 바란것이지 지평선 넘어 이교도들을 찾아다니는걸 생각하지 않았다. 출처: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그 위험 한 사상의 역사》/ 그리고 조선시대 서학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명청에 선교 목적으로 유교경전과 동양식 세계관을 바탕으로 천주교 교리를 제시한 《천주실의》가 유학자들에게 중국을 통해 자발적으로 들어온것이지 선교사가 들어온건 훨씬 나중이다.
- ↑ 물론 이는 큰 주류의 종파로 한정했을 때이다. 작은 부류로 나누면 장로회 안에서도 수많은 종파들이 있다. 참고로 개신교의 맏형인 루터교회는 1950년대에 제일 늦게 들어온데다 교회 수도 압도적으로 적어서 듣보잡 취급이고, 세계 개신교 최대 종파인 성공회는 매우 미묘한 취급을 받는다(...).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교리적으로는 이신칭의와 유일구원설을 믿고 마리아를 공경하지만 성모승천설, 무염시태설. 평생동정설 등 마리아 숭배적 교리들은 거부하며, 마리아가 성도들을 대신해 중보기도를 한다거나 중보자 노릇을 한다는 가톨릭 교리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예배 형태나 건축, 의복 등 하드웨어 상으로는 가톨릭과 유사하며 특히 대한성공회는 고교회파여서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하드웨어상의 이질감이 루터교나 성공회가 아무래도 따로 노는 듯 보이는 분위기 형성에 기여했다.
- ↑ 단 루터교는 좀 애매한게, 일단장로회,침례회등 다른 개신교 교단 신자들이 보기에는 생소하거나 어색(?)한 요소들이 많기에 좀 다르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루터교에서 개혁개정 성경을 주로 쓰고, 예배에 쓰이는 용어도 타 교단과 크게 차이가 안나며, 다섯 솔라등을 강조하는 등 개신교적인 정체성에 꽤나 뚜렸하기 때문에 크게 이질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또한, 고교회파 위주인 한국 성공회와는 다르게 예배당을 가르키는 말도'교회' 목회자도 '목사'이고, 교회 인테리어도 몆몆 교회에 십자고상이 있는 정도를 제외하면 장로회,감리회등과 대단히 차이가 큰건 아니기도 하고... 또한, 한국의 루터회는 신학적으로 대체로 중도적이기도 해서, 예장 고신 등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들과도 은근 교류가 있기도 하고 진보적인 교단들과도 교류가 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 색체가 강한(그래서 타 개신교 교단과 이질감이 없지 않은) 성공회보다는 이질감이 적은 편이다.
- ↑ 그런데 한국 개신교의 이신칭의론은 엄밀히 따지면 아르미니우스와 칼뱅의 신학이 혼합된 양상을 띄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나 한국의 개신교, 근본주의의 병폐 그리고 한국 교회의 타락이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신광은 저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참조)
- ↑ 그것도 교황무류성으로 선포된 교리이기 때문. 이 교리에 반발하여 가톨릭에서 분리된 교파가 복고 가톨릭교회.
- ↑ 북아프리카에 농촌과 산악지역에서 로마 국교화 이전 배교자 출신 주교들을 거부하며 로마국교화로 타락한 기독교를 거부한 세력
- ↑ 브리튼섬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은혜없이 선행으로 완전해 질수 있다 주장. 일시적으로는 로마에서 인기를 끌었다.
- ↑ 사실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에도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선고했고, 이단은 두들겨 패서라도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는게 교부들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단일화된 목소리가 항상 옳았다 주장하는것은 별개다.
- ↑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개신교 출현이전 공의회주의 출현, 19세기 교황 무류성 교리 선포 이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며 일갈한 영국의 가톨릭 신자역사학자 액턴 경의 경우처럼 가톨릭 내부에서도 절대 단일한 목소리만 나오는것은 아니다.
- ↑ 특히 반에큐메니컬 계열 보수 교단
- ↑ 사실 같은 교파라고 해서 교회 분위기나 목사의 신학 스타일이 다를수도 있고 다른 교파 교회랑 더 같을수도 있다. 개교회 주의가 강하다.
- ↑ 한국 기독교의 역사2 (기독교문사) 참조
- ↑ 또한 나치독일 치하에서 독일 가톨릭도 교황청과 나치독일의 정교협약 준수를 촉구하는 나치독일 정권의 주장때문에 뮌스터 주교 폰 갈렌 처럼 나치에 비판적인 입장의 사제들도 정교협약 때문에 입을 막아야 했다. 반면 독일 개신교는 반나치 성향 고백교회 목사들이 2천명이 결성하여 700명이 체포당하여 수용당했다.
- ↑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러한 연합교단 안에서도 보수적인 신학관을 가진 인물이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 금요일엔 금식, 사순절 기간엔 고기는 물론 버터 금지 양고기를 먹을땐 양젖금지 등 계율을 어길경우 중죄로 거의 지킬수 없는 보속을 요구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스스로 발가벗겨서 회초리로 피가나도록 매질하고 성벽 몇바퀴 몇일동안 돌기., 강제 성지순례등..
- ↑ 애초에 종교개혁 3인방중 하나인 울리히 츠빙글리가 금육일을 어기고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을 옹호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 ↑ 독일도 마찬가지다. 루터교회권인 니더작센 요리랑 가톨릭권에 속하는 라인란트 요리를 비교해 보자.
- ↑ 하지만 유럽 개신교도 완전금지까지는 아니나 술, 담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이다. 일례로 덴마크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은 술을 아무데서나 살 수 없는데 이는 국교인 루터교회의 영향이다.
- ↑ 루터교와 성공회도 십자고상을 포함한 성미술은 의무사항이 아니며, 제단을 꾸밀 때도 촛불을 놓지 않거나 조그마한 꽃병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 ↑ 화체설은 모든 교단이 부인하나 성공회의 경우 딱히 말리진 않는다.
- ↑ 한국, 미국의 근본주의 개신교 세력이 깽판을 쳐 이미지가 나빠져서 그렇지, 중세 가톨릭의 신정정치, 권위주의를 타파하려고 나온 것이 개신교다. 그 정신적 사조가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여담으로 영국 내 노예제 폐지에 개신교(성공회)의 기여가 컸다.
- ↑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은 교회(이를 개신교에서는 초교파 교회라고 부른다.)이며, 전례적으로는 성공회를 따른다고 한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가톨릭 성당은 텍사스에 있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 성당'이다.
-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여기에서 출발했다.
- ↑ 침례교 내에서는 종교 개혁기 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이미 가톨릭의 약식 세례에 반대하며 침례를 주장했다고 하는 곳도 있다.
- ↑ 가톨릭은 외경들 중 7권을 제 2 정경으로 부르고 있다.
- ↑ 계열 교단이 너무 많으므로 각 교단별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해당 교단의 분열이 현재의 장로회 교단 분열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만을 기재함. 자세한 각 교단의 현황은 '장로회' 항목에서 확인 바람
- ↑ 사실 60년에 합동 측과 합친 적이 있다. 애초에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서 '합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때 두 교단이 '합동' 한 것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러나 양측 교단 사이의 의견 차이로 결국 2~3년 만에 다시 양 교단이 분리하였다.
- ↑ 단 극단적인 근본주의자가 아닌 이상, 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한 성서무오설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으로 보긴 힘들다. 대부분의 경우 축자영감설보단 유기체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일반적인 경우가 더 많으며 구원의 지침으로서의 성경의 무오를 주장하는 것에 가깝다.
- ↑ 분파에 따라 이에 관한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 보수적인 고신과 합동계열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비교적 중도에 가까운 통합에서는 그보다는 덜하다.
- ↑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신학을 해명하려고 한 시도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학, 기술에서의 발전을 바탕으로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뜻이 맞아 제국주의를 옹호하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도외시되어 몰락했다.
- ↑ 신정통주의는 되려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지나치게 과학적, 이성적 접근을 하는 입장에 대해 반대하였고 다만 신학을 하는 일부 방법론에 있어서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 ↑ 물론 천주교 보수파에서도 개신교를 지옥행 익스프레스행으로 간주한다.
에라이 - ↑ 엄밀하게 따지면 이단이냐 아니냐를 따질 것도 없이 천주교는 제대로 된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참된 기독교는 정통적인 개신교 교파들 뿐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개개의 교인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같은 개신교라 하더라도 교단마다 천주교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일단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조하는 진보~중도보수 교단들은 천주교를 이단으로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예장통합은 2014년 총회에서 천주교를 '우리와 다른 전통의 교회이자 교리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는 있으나 이단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개신교를 신앙의 형제들로 인정하지만, 사도전승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아니라고 본다. 천주교와 정교회가 교회로 인정하는 것은 서로뿐이다.
- ↑ 2011년 6월 21일 해체 후 대한예수교 장로회(개혁)으로 영입되었다.
- ↑ 물론 예장 통합 및 기하성(순복음) 계열은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적어도 교회 일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 ↑ 정작 그들은 모두 떠났다.
- ↑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기성)는 한때 KNCC 회원 교단이었으나, 1960년대에 탈퇴함. 성결교 역시 예장과 마찬가지로 WCC 가입을 놓고 교단이 분열되었는데, 이때 기성 교단의 방침에 반발하여 갈라져 나온 게 바로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예성)다. 후에 기성은 예성과의 재통합을 위해 KNCC를 탈퇴했으나, 양 교단의 재통합은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 기독교대한침례회 탈퇴....인줄 알았는데 탈퇴를 보류했다고 한다.
- ↑ 그러나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합동, 고신이라는 big 3 교단들이 2012~2013년 차례로 떨어져 나가면서 개신교에 대한 대표성을 급격하게 상실하였다.
- ↑ 투발루를 순위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는 6위.
- ↑ 심지어 형식적으로 기독교인이라 답한 사람들도 막상 신이 존재하냐고 또 물어보면 불가지론이나 무신론자처럼 답하는 경우도 있다.
- ↑ 이슬람 이민자와 난민 급증으로 인해 이러한 위기감은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 ↑ 일례로 중남미 국민들의 정기적 주일미사 성당 출석율은 40~50퍼센트 정도 된다
- ↑ 활력을 잃어가는 가톨릭과 성장하는 개신교
- ↑ 물론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와 같은 정통 개신교 교회들도 늘어나는 편이다.
- ↑ 법제화하지 말라는 얘기는 시간이 지나서 잠잠해지면 예전처럼 세금 안 내겠다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 ↑ 천주교 신부님은 말할 것도 없고 개신교의 중소교회 목사들이나 불교 승려들도 어디어디 보살이라고 간판 내걸고 점쳐주는 사이비 외에는 정말 가난하게 생활한다. 어떠한 종교건 종교인의 청렴함을 강조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올바른 종교인이라면 재산을 대거 축적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줘라"고 말한다. 즉 세금 제대로 내라는 얘기. 그리고 베드로에게 자신의 세금도 납부하라고 지시한 내용도 있다.
존 도미닉 크로산 등 예수세미나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제국세 납부 거부운동이라 해석한다. 납세를 옹호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소극적 식민통치 거부 운동으로 본다. - ↑ 하지만 개신교라도 성공회는 타 종파에 비하면 보편교회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 편이라 얘기가 달라진다. 이러다보니 아예 성공회를 개신교의 분파인 줄 모르거나 가톨릭의 한 갈래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사실 무조건 개신교는 수수하고 천주교는 화려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은 먼나라 이웃나라 등의 매체에서의 단편적인 설명에서 기인했을 공산이 크다. 당장 중세시대 역사만 보더라도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천주교 수도원도 있었고, 개신교회면서 화려하고 웅장하며 허례허식을 중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 ↑ 예를 들면 <To Save a Life> 같은 영화들이 있다.
- ↑ 개나리에게 당한 이후 시장통에서 개신교의 찬송가 테이프('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개역찬송가 기준으로 445장)를 틀어놓고 구걸을 했다. 진짜로 '개신교도가 되었다'기보다는 개나리에게 당해 불구가 된 이후 의지할 곳이 없어 기댈 차원에서 귀의했을 공산이 크다. 「조폭아가씨 2부」에서 등장한 평행세계의 황산도(여기선 조폭 두목) 야사희에게 '새벽기도 가야한다'고 말한 걸보면 이 작품의 황산도 개신교도일 공산이 있다. 조폭은 어떨지 몰라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일진의 경우 자신들이 악행을 저지른다는 걸 알아서 속죄(?)한다는 느낌인지는 몰라도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으니 아주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의외로 김성모의 작품 여기저기서 개신교의 영향이 보이는데 예를 들면 「쾌산고」에서는 강건마가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직접 읊기도 하고(물론 작품 특성상 이상한 결론을 도출해냈지만(...) 「럭키짱」의 풍호는 노아의 방주이야기를 꺼냈으며(정경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외경이나 유대전승에서 나온 이야기를 인용한 듯하다) 「돌아온 럭키짱」에서도 강건마가 '난 교회는 안 다니지만(...) 믿음은 알아.'라는 대사를 날리고 반강제로 대동고로 전학을 간 전사독은 스스로 성격을 고치기 위해 '교회를 다녀볼까?'라고 독백을 했다. 이외에도 개신교도가 아니면 모를만한 표현들이 종종 등장하는 편인데 실제로 김화백이 개신교도인지 아니면 그저 한때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지는 확인 바람. 대털 2부에 의하면 교강용의 캐릭터 모티브가 된 김강용씨가 출소하면서 손을 씻고 개신교도가 되었다고 했으니 여기서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 ↑ 아버지가 자살하기 전엔 분명히 개신교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는 불확실하다.
- ↑ 네드는 말할 것도 없고 마지도 꽤 독실하다. 사실 네드가 '난 비틀즈가 예수보다 좋다(…)'라는 발언을 한 걸 보면 실질적으론 마지가 더 독실할 지도 모른다.
- ↑ 단 이쪽은 그냥 개신교 미션스쿨이라고만 나와서 불확실.
- ↑ 십자가 목걸이 및 십자가와 관련된 연출, 이름 및 순교자적인 역할로 볼 때 기독교인일 가능성이 높다. 단 교파는 단정짓기 어렵다.
- ↑ 단 출석하는 교회가 한국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지목된 류광수 다락방 교회라 이단 시비가 많이 붙는다.
- ↑ 성공회 복음주의파(저교회파)
- ↑ 성공회 내 저교회파 사제를 '목사'로 칭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고교회파 사제는 그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