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돌격대


1944년 11월, 괴벨스가 참석한 베를린 지역 국민돌격대 사열식 사진.


국민돌격대 선전 포스터. "자유와 삶을 위해(Um Freiheit und Leben)"

1 개요

Der deutsche Volkssturm. Volk(s, s는 접미사)+Strum. 독일어를 직역하면 그렇다는 거고, 실질적으로 '국민' 내지 '국가'의 '민병대' 정도의 뜻이 된다.[1] 데이비드 글랜츠의 《독소전쟁사》에서는 향토예비군이라는 명칭으로 번역했다. 그게 진실이긴 하지만 국민돌격대가 정식 명칭이 된 이유는 실제로는 이들은 예비군도 아닌 민방위 이하의 전투력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말기에 나치 독일에서 벌인 최악의 병크이자 막장에 몰린 독재정권이 어디까지 발악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사례.[2]
과거보다 패전 국민에게 어찌되었든 관대하던때라... 좋은쪽으로 보자면 어떻게든 국가를 지키기 위해 징집되었다는거지만, 이게 개막장 징집이 된 이유는 국가는 커녕 의미없는 징집이였기 때문.

참고로 국민척탄병과 국민돌격대는 완전히 별개의 조직이다. 국민돌격대는 나치당에 의해 아예 새로 창설된 국민군이라면, 국민척탄병은 독일국방군 육군의 정규 보병사단, 즉 척탄병사단의 1943년 편제가 장비 및 병력부족으로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등장한 1944년 후반 및 1945년형 척탄병사단 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냥 멀쩡한 척탄병사단에서 부족한 전투지원부대들(병참, 통신, 그리고 전투병과 중에서도 포병과 공병 일부)을 대폭 삭감하고 함정과 항공기 숫자의 감소로 발생한 해군과 공군 잉여 병력 일부를 육군으로 전군시켜 부족한 보병을 보충하고, 여기에 차량부족으로 인한 기동력을 보충하겠다고 자전거를 배치한 것. 그리고 이름을 바꾸는 김에 그동안의 독일군은 국민군이 아니라 프로이센 귀족들의 사병집단에 가까웠고 이제야말로 진정한 국군이다라는 정치적 선전[3]을 위해 국민, 혹은 인민으로 번역 가능한 Volk를 추가한 것이 국민척탄병이다.

2 배경

본래 나치 정권은 과거의 독일 정권 및 국가조직 전체에 대해 비판적인 극우정당이 기반이었으며,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정당 내에서는 독일의 국방 조직인 국방군(정규군) 전체를 척결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애초에 나치 돌격대(SA)부터가 예전의 군대는 제국 시절의 잔재이자 부르주아 계급의 앞잡이이므로 국가사회주의 이념으로 뭉친 새로운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창설된 조직이었고, 무장친위대 역시 이와 같은 이념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나치는 그 정당명에서 알 수 있듯 사실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이념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내에 우파와 좌파가 공존하고 있었으며, 우파의 경우 유대자본만 기피하는 정도인 데 반해 좌파는 모든 자본가 및 구체제 엘리트 전체를 증오했다. 특히 돌격대는 후자에 가까웠고, 이런 이론적 대립은 돌격대의 수장이던 에른스트 룀의 숙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장검의 밤으로 인해 나치 좌파는 거의 다 숙청당했으나 돌격대의 군편성에 대한 관념은 히믈러에게 어느 정도 계승되어 무장친위대의 건설에 영향을 주었고, 나치당내에 퍼진 정규상비군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감정과 시민군에 대한 호감에 대한 연원은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19세기 독일 지식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시민군이라는 개념이 나치 돌격대와 무장친위대로 발현된 것이다.

심지어 헤르만 괴링공군으로 돌격대나 무장친위대와 비슷한 짓을 하려고 할 정도로, 나치 정권에서는 기존의 군부를 대체할 새로운 군을 만들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4] 그리고 이런 기존 군부 세력에 대한 불신과 그간 전쟁 수행 및 군사력 확보에 직접 기여하지 못했던 나치당 선전부장 겸 독일 국가계몽/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권력욕이 결합하여, 나치당은 1940년대 초반부터 나치당은 전국민의 총동원을 근간으로 하는 제5의 군대 창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것이 국민돌격대의 창설 기반이었다.

3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그리고 이런 국민돌격대의 소요가 실제로 제기된 것이 1944년 말이다. 1944년 11월까지 독일은 총 누적 영구손실 500만을 입어, 이때까지 동원한 전 남성 인구의 1/3 가까이가 죽거나 부상당하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다. 일단 1944년 11월까지 독일이 동원한 총 인구는 약 1,200~1300만으로 추산된다. 이중 사망, 실종, 영구 장애는 약 650만(이 중 장애가 약 200~250만)에 달했으며, 이 중 100만 이상이 영구 장애 상태에서도 아직 동원 상태에 있었다. 사실 상 이제는 군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한 나라의 남자 씨가 마르기 직전에 이른 셈이었다. 현재 동원이 유지되고 있는 인원은 거의 600만이었으나, 이중 군인으로서 동원 가능한 인구는 이제 겨우 300만을 넘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괴벨스 이하 일부 급진주의자미친놈들이 주장한 것이 바로 모든 남성을 총동원해서 전쟁터에 내보낸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미 독일은 전체 남성 인구 3천 500만 중 1300만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다가 손실된 상태였다. 이는 18~30세 남성의 전부와 40세 이상 남성의 거의 1/3 이상, 수적으로는 1939년 기준 남성 전체 인구의 45%였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타격인데 나머지 남성 대부분은 산업 생산에조차 기여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산업현장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숙련노동자 및 지도층이었다. 이런 상태인데도 전선의 병력은 부족하고 국가는 사실상 패전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으니, 어차피 망할 거 전국민이 다같이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은가라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냥 항복을 하시져 이렇게 해서 국민돌격대의 창설이 현실화되었고, 결국 1944년 10월 18일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명의로 국민돌격대의 창설 명령이 떨어졌다. 소집 대상은 16~60세까지의 모든 남성[5]이었으며, 공식적으로는 독일국방군의 일원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일국방군의 군수지원 및 작전협조를 받는 나치 정당의 군대였다. 훈련 또한 소집지역 인근의 육해공군 부대에서 맡았다.

쉽게 말하자면, 남자란 남자는 죄다 있는대로 징병해서 전쟁터로 다 내몰았는데 죄다 죽고나니 더이상 징집할 젊은이가 없어서 이전에는 징집대상으로도 안 넣던 노인과 어린이, 후방의 근로자들까지 아무 무기나 쥐어주고 전쟁터로 몰아넣으면서 국민돌격대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물며, 최종 결정권자는 군인도 아닌 나치당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였다.

참고로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국민돌격대는 예비군이 아니다. 예비군은 이미 약 30대 남성들로 따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예비군들은 이미 1940년 5월 시점에서 거의 전원 동원된 상태였다. 1944년 시점이면 아예 예비군으로도 등재된 적 없는 30대 후반 남성까지 이미 거의 다 동원된 뒤다.

이런상황이다 보니 농담도 나왔다고 한다.
Q: 국민돌격대가 귀중한 자원인 이유는?
A: 머리카락은 은이고(백발), 이는 금이며(금니), 사지는 납이기 때문(연세드신 분들이니 사지가 무거우신...)이지!

나중에 가면 이게 더욱 발전해서 독일 국민은 전원 전투병이란 정신나간 선언을 때려버린다. 전원 전투병이 돼버린 상황에서 후퇴하면 사살한다는 명령까지 내린지라, 피난민=탈영병으로 피난민이 되면 아군에게 사살되고, 전쟁터에선 소련군에게 죽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뭐병. 하지만 동부전선의 국민돌격대원들한테는 독일이 그동안 한 짓도 있고해서 항복하나 싸우나 다를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정규군 군대나 SS대원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싸웠다.

물론 서부전선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히틀러 유겐트를 비롯한 몇몇 광신자들이 "패배주의자는 사형"이라며 사람들을 목메다는 일도 벌어졌지만, 대다수는 별로 싸우지도 않고 미군이나 영국군에 항복하거나 그냥 탈영(?)해서 민간인으로 돌아가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가끔은 방금 전까지 총쏘면서 미군들을 사살한 사람이, 총알이 다 떨어지니까 그 자리에서 완장 버리고 "나 민간인이예염. 웰컴 G.I." 하고 걸어나오는 대담한 뻔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거 보고 뚜껑 열린 부하들이 이 새퀴 때려죽이겠다고 펄펄뛰는 걸 말리느라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 기록한 미군 지휘관도 있었다. 다만 이 경우는 1차 대전에도 참전한 예비역 베테랑 출신이 소집 연령을 한참 지난 뒤에 투입된지라 정규군과 수준이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4 막장 중의 막장

4.1 무장

당연히 장비 보급은 형편없어서 정규군 쓰기도 부족한 MG42MG34는 사실상 지급할 계획 자체가 없었고 대부분은 폭격기용으로 생산되었으나 폭격기가 없어 장착할 수 없게 된 항공기용 기관총 MG15나 과거 제1차 세계대전때 쓰던 수랭식 MG08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지급할 계획이 없었다.[6]

소총도 부족해서 Kar98k, StG44, G43, MP40 등의 제식 총기는 정규군 수요도 맞추기 턱없이 부족한 양이어서 노획한 총기나, 과거 1차대전때 쓰이던 구식 Gew88, MP18이나[7] 심지어 9mm 파라벨럼탄이나 22구경 탄환 등을 사용하는 민간용 엽총도 징발 혹은 소유자가 소집시 자체 구비하여 사용하였으나, 이것도 턱없이 부족하여 비밀병기 독일군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각종 국민돌격대용 급조병기가 만들어졌다.

  • 위 사진의 상부에 있는 VG-1 소총은 10연발 탄창이 달려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반자동 소총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밑의 VG-98과 같이 볼트액션 소총이다. 탄창은 G43에서 쓰이던 탄창으로써, 어디까지나 재고로 쌓여있던 G43 소총의 탄창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위 사진의 하부에 있는 VK-98은 다른 이름으로는 VG-5인데, Gew98의 극단적인 간략화 버전으로 탄창 따위는 없고 그냥 1발 쏘고 장전하는 식이었다. 불량 부품까지 때려넣은 것도 모자라, 가늠자-가늠쇠도 소총이 아니라 그냥 권총 수준.

  • MP3008스텐 기관단총을 강하게 참고해서 만든 기관단총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오히려 더 개악한 물건이었다.

  • VG 1-5은 다른 급조병기와는 달리 반자동 소총이라고 말하니 위의 총기들에 비해 좋아보일진 몰라도 현실은 시궁창. 당장에 간단한 작동방식을 위해 총몸 윗부분이 권총의 슬라이드처럼 앞뒤로 왕복하며 장전하는 블로우백 방식에다가 가늠쇠-가늠자는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붙인, 총구 방향이나 지향해 줄 초단순 형태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30연발 탄창이라곤 하지만 국민돌격대가 30발이 넘을 만큼 탄약을 지급받을 일도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였다.

심지어는 남아도는 공군용 기관총열[8]을 사용해 국민돌격총을 만들거나마치 모신나강 총열을 반으로 잘라 PPSh-41을 만들던 전쟁 초기 소련군이 생각난다, 제식도 아닌 온갖 외국제 노획 무기들도 지급했다. 그러나 이런 노획 무기도 보급 1순위는 정규군이었는데다 이미 많은 숫자를 손망실해버려 실제 지급은 개미 눈물만큼 이뤄졌다.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하면서 얻은 소총 등을 억지로 독일의 7.92mm탄을 쓸 수 있게 개조하기도 했는데, 이러니 탄창은 쓸 수가 없고 총열은 억지로 넓혀 명중율은 극악으로 떨어진 단발총이 돼버렸다나.

결국 민간용 산탄총이나 소총까지 박박 긁어모은 것도 모자라 온갖 구식 총기까지 나왔다. 아무리 볼트액션 소총의 시대라지만 민간용 사냥총으로 군용을 대신하기는 무리, 절대 무리다.

더구나 국민돌격대 전용의 저가형 총기들 역시 생산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권 다툼이 발생하는 바람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지방 정당 지도자와 그 당수가 후원하는 기업체들끼리 자재를 사이에 두고 싸우고, 독일 국방군을 위한 생산시설을 멋대로 뜯어가는 등의 병크를 연발한 끝에 제대로 생산조차 못 하고 국방군을 위한 무기 생산까지 차질을 빚게 만들었다.

덕분에 국민돌격대는 무장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판처파우스트 같은 대전차화기는 비교적 충분히 지급되었다. 말하지만 비교적이다. 이것도 선전사진 찍을 때는 근처 군 부대에 빌려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만 판처파우스트를 들어서 그 숫자가 많게 보이는 훼이크를 썼다고 한다. 물론 촬영 끝나면 반납. 잘 보면 사진 뒤편의 잘 안보이는 군중들은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히틀러 유겐트 따위가 이거 들고 쏴댔다는 걸 감안하면 지급은 된 것 맞다. 기왕 빌리는 거 어자피 사진찍고 돌려주면 되는데 소총같은 것도 빌리면 좋을 텐데. 어자피 선전용이니까. 괴벨스가 전쟁 말에 돌대가리가 됐나보다.

심지어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육군도 모자라 국민돌격대를 태워 연합국 공군을 물리친다는 계획하에 국민전투기라는 발상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제트기 He 162로. 시제기가 나오고 전투비행단도 하나 꾸렸지만, 정작 이 기체는 국민돌격대가 몰기엔 난이도가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에, 일부 유소년기에 항공 클럽 등에 가입했던 일종의 예비 조종자원인 소년병 몇을 빼면 그냥 정규 공군에서 운용했다. 국민전투기에 대한 자세한 내역은 불타는 하늘 - 그레이트 워 플레인 - 독일공군 항목의 He162 항목을 참고하도록 하자.[9]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데는 나치당과 아돌프 히틀러의 캐삽질이 겹치고 겹친 것이 가장 주효했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듯 나라가 다 망한 시점에서도 지방 정당 지도자와 군수기업체, 지방 유지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갖은 삽질에 삽질을 거듭한 탓에 생산 가능한 무기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국민돌격대의 무장 자체가 실현되지 못했던 것. 어떤 의미로는 덕분에 독일인이 훨씬 덜 죽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삽질이었다.

만약 국민돌격대에 충분한 무기가 주어졌다면 도망칠 명분조차 없으니 계속 싸워야 했을 테고, 어차피 조직도 엉망이고 수적으로도 적에 밀리는 상황이라면 적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아군의 군수 지원 능력에만 부담을 주어 독일 국방군 전체의 몰락을 몇 달은 더 앞당기는 한편, '훨씬 많은 전사자와 더불어 멀쩡한 민간인 대부분을 소련군 및 복수심에 불타는 동유럽인들의 손에 넘겨주었을 가능성조차 존재한다. 참고로 이 때 희생되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조기 석방된 서방 지역 억류 독일군 포로들과 더불어[10] 전후 독일 사회의 주축이 되었고, 나중에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내게 된다.

4.2 피복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군복이었다. 무슨 소리냐 하면 만약 총기만 없다면 동부전선은 몰라도 서부전선에서는 포로수용소로 가서 거기서 일 좀 하고 전쟁 끝나면 나오면 그만이였다. 그러나 만약 군복이 없이 잡히면...그 사람은 군인이 아니므로 제네바 조약에 의한 포로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심하면 테러리스트로 간주되어 처형되어도 군말할 수 없다는 소리다! 정규군에게 줄 군복도 모자란 판에 예비군이라 하기도 뭣한 집단에게 옷을 나누어 줄 수도 없었기에, 결국 나치는 완장을 제작하여 나누어 주었다.

완장의 디자인 도안. 독일 국민돌격대 국방군이라는 뜻이다. 쓸데없이 멋있다. 대다수가 사복 차림이라는 것을 감안, 표시를 용이케 하기 위해 1인당 2개씩 지급해 양팔에 모두 두르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단 이 완장이 있으면 준군사조직으로 간주돼서 국제법상으로 교전권이 있다고 인정되므로 사로잡히면 포로취급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사실, 국민돌격대가 전혀 군복을 지급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나치 관료들이 막장이었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군인인데 군복은 입혀 줘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높았고, 실제로 소수지만 군복을 지급받은 인원들도 있다. 다만, 정말 소수만이 지급받았고 그 조달 방식도 실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새 군복은 앞서 말했듯 정규 군인들 주기에도 모자랐으므로, 우선 정부는 민간에게서 군복류를 기증(...)받았다. 당시 민간에는 전사한 가족의 유품이나 전상으로 군복무가 불가능해 퇴역한 군인들이 집에 갈 때 입고 온 군복, 혹은 폐지되어 더 이상 입지 않은 군복[11], 제1차 세계대전 시기나 바이마르 공화국 때의 구형 군복 등을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제법 됐고, 이것들을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징발받아 동네 아줌마들을 동원해 부착물들을 제거하는 등의 개량을 하여 지급했다.

물론, 이 피복들도 수요에 비해 한참 모자랐으므로, 최소 분대장 이상의 계급장이 있는 간부 대원[12]들에게 지급했고, 나머지는 그냥 위와 같이 완장만 주고 땡이었기에 대부분은 대충 입고 총이라고 부를만한 게 주어진 소수의 사람들이라면 그걸들고 싸워야 했다. 그나마 지급한 군복들도 시기나 소속 등에 따라 차이가 커서 누구는 회색 누구는 황색 같은 식으로 뒤섞여 있었다. 심지어 사진 중에는 어느 창고에서 털어왔는지는 몰라도 오래전에 숙청당한 나치 SA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경우도 있다. 세일러복 등 해공군 기본 피복을 받았단 기록은 없다. 아주 운 좋은 극소수는 지급 중단으로 창고에 쌓여있던 육군 병사용 정복에서 부착물을 제거하고 주머니를 다는 개조를 한, 대전 말기 물자 부족으로 재질이 구려진 정규 전투복보다 훨씬 좋은 원단으로 된 군복을 입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공군 부대에서 훈련받은 소수의 인원들에게 공군의 작업복용 검정색 커버올[13]#이 지급된 사례도 있다.


국민돌격대 대대장의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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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를 입은 국민돌격대 중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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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돌격대의 계급 체계. 왼쪽 상단부터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이다. SS계급장과 유사한 형태로, 제복 칼라에 부착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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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부분의 대원은 제복이고 계급장이고 그런 거 없었다. 오른쪽 제복입은 사람은 이들을 인솔하는 경찰관[14]이다.

하지만 군복을 입었건, 사복을 입었건 인정사정 봐줄 생각이 없던 동부전선의 소련군에겐 당연히 무의미한 조치였다. 나중에는 소련군도 국민돌격대가 아무련 군사훈련도 못 받고 전장으로 내몰려졌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는 몰라도 이들에게 정규군 대우를 해야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이 나왔을 무렵에는 이미 독일이 항복한 후였다. 그나마 이 완장의 장점이라면,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눈을 피해 탈영 후 민간인으로 탈바꿈하려면 군복을 처리하는 것에 비해 완장만 팔에서 쏙 빼서 주머니에 숨겨버리면 될 정도로 간편했다는 정도다. 게다가 간부 대원들은 계급장도 SS삘나서 포로가 되면 필요 이상으로 욕볼 수도 있었다.

5 매체에서의 등장

베를린 전투 때 국민돌격대의 비참함이 등장하는 영화는 몰락이 있다. 투입되자마자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소련군에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보다 못한 방어사령관 빌헬름 몽케가 지휘권자인 괴벨스에게 철수를 요청하자, 괴벨스는 그 유명한 "그들은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라는 허탈한 대사로 화답한다.

영화 지옥의 영웅들에서는 비무장한 국민돌격대 어르신들이 히틀러 초상화와 피켓을 들고 미군 주인공 분대 앞을 가로막는다. 그들은 셋 셀 때까지 해산하지 않으면 쏘겠다는 미군의 경고에도 아랑곳않고 히틀러 만세를 외친다. 하지만 빡쳐버린 미군의 경고 사격에 그들은 그대로 굴복하며 해산한다. 이럴 거면 뭣하러 왔냐 민주주의가 왔다 전체주의 꺼져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의 소련군 시나리오는 임무가 진행되면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다가 마지막 임무는 아예 베를린에서 싸워 적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다만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고 더미 데이터로 남았으며 그 흔적만이 Eviction 미션 인트로, 빅토르 레즈노프의 대사로 언급된다. 적들은 이제 노인, 어린아이, 허약한 자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 대신 등장하는건 SS 의장대, 제국 의사당까지 소련군이 처들어 왔음에도 항복은 커녕 죽어라 저항하지만 결국은 다 쓸려나간다.

6 유사사례

독소전쟁 때 소련군은 모스크바가 함락 위기로 몰리는 등 막장 상황 때 10대 청소년과 노인들까지 동원해 노동 사단을 편성한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독일군 앞에 총알받이로 내몰지는 않았고 참호 건설이나 물자 운반 등의 작업을 시켰다. 이후 전황이 나아진 후에는 대부분 집으로 돌려보냈다.(군대가 민간보다 배급이 잘 나오는 편이기도 하고 애국심이나 혁명정신이 투철한 일부가 편법을 써가며 끝까지 남아 있으려 한 사례도 없진 않다.) 영국군은 독일의 프랑스 침공 이후 영국 본토가 침공 위기에 몰렸을 때 40대 이상 중년 및 입대 불가 판정된 젊은 남성 자원자들로 이루어진 민병대 성격인 홈가드를 조직한 적이 있다. 물론 강제 징집은 아니었고 대부분 자발적으로 지원한 조직이었으며, 오히려 나라를 지키겠다는 열의가 지나쳐 소소한 사고를 일으켰을 정도로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영국 정부도 Home guard 라는 이름 그대로 후방 방어의 일부를 맞겼을 뿐이지 총알받이로 전장에 몰아세운 적은 절대 없으니, 국민돌격대와 홈가드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홈가드에 지원한 용사들과 영국 정부에 대한 크나큰 모욕이다.
  1. 흑기사 이야기에서는 바우어가 이를 두고 "민족의 폭풍?"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Volkssturm은 해석하기에 따라 정말 '민족의 폭풍'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
  2. 그런데 사실 영국도 1940년 프랑스가 무너지자 홈가드라는 독일의 국민돌격대와 별반 다를게 없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따라서 흔히들 말하는 독재국가만의 발악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지구 반대편 열도 국가에는 1억 총옥쇄가 있었다.
  3. 이에는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구 프로이센 체제에 대한 혐오감(사람들이 자꾸 잊곤 하지만, 나치는 제대로 된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구 지배층에 대한 극단적 반감을 무기로 삼은 짝퉁 사회주의 정권이다.)이 7월 20일 히틀러 암살미수사건 때문에 결정적으로 폭발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4. 물론 여기에는 이념적 이유 이상으로 각 분야의 수장들(괴링, 히믈러, 룀 등등)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충실히 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념적 이유는 사실은 핑계에 불과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5. 시각이나 청각장애, 팔다리 등이 없는 중증 장애인 일부는 면제받았다.
  6. 다만 기록으로 남은 사진 중 MG34를 들고 있는 사진들도 간간히 보인다.
  7. 이건 그나마 헌병 등 후방 주둔 정규군 일부도 쓰던 물건이라 차라리 나았다.
  8. 전쟁 후기에 루프트바페는 사실상 사라졌다. 기관총을 달 비행기가 없으므로 이 총열들은 그저 재고 물자에 불과했다.
  9. 해당 페이지를 바로 옮겨오기 어렵기에 이렇게 설명한다.
  10. 실제로 서방 측은 전쟁범죄자만 아니면 독일군 포로들을 의외로 쉽게 풀어줬다. 물론 프랑스처럼 독일 포로들을 전후 복구에 적극 동원하여 이거 저거 건설한 사례도 있긴 하다.
  11. 개전 직전부터 육군은 중사 이하 군인에게 정복 착용 및 지급을 중단시켜 피복비 절감을 추진했는데, 이전에 받은 사람들 혹은 민간 행사에서 꼬까복으로 입으려고 자비로 맞춘 군인들이 가진 정복류도 꽤 많이 있었다.
  12. 주로 장교나 부사관 등 군 장기 복무 경험자들 중에 선발했다.
  13. 공군에선 항공기 정비 특기들이 많이 입었으나, 육상 전투 훈련 등을 할 때에도 많이 착용했다.
  14. 정확히는, 남색 제복의 소방경찰이다. 당시 독일에선 독립된 소방 조직이 없고, 경찰 내에 소방경찰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