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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樓夢 / Dream of the Red Chamber
1 개요
중국의 고전소설. 청나라 때 조설근이 저술한 장편소설. 그리고 중국문학의 결정체이자 끝판왕.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1715~1763)이 쓴 고전소설. 등장인물만 500명에 달하며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이 되었다. 많은 중국 학자들도 홍루몽에 대해 연구해 "홍학"(홍루몽학)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홍루몽을 중국사대기서에서 수호전의 에로 동인지 금병매를 제외시킨 '사대명저'의 하나로 친다. 사실 홍루몽의 문학적 가치는 다른 사대기서보다 더 높으며 인기도 가장 많다.
2 제목
소설의 제목인 '홍루몽(紅樓夢)'의 뜻을 직역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며, 紅樓는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여성이 거주하는 구역을 일컫는 말이며[1] 작중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여성의 비율이 높으나 이들은 거의 모두 안습한 결말을 맞는다(...). 즉 홍루몽이라는 제목은 주역들의 안습한 결말과 함께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설근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언급하였는데, 가장 먼저 언급된 제목인 <석두기>는 주인공인 가보옥이 여와가 쓰다가 남은 돌의 화신인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정승록>은 속세의 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된 <풍월보감>과 <금릉십이차(금릉십이채)>는 각각 작중에서 언급 및 등장한 보물 및 등장인물들을 의미하며,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이 <홍루몽>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청대에 일시적으로 홍루몽이 금서로 지목되었을 때는 <금옥연>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3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
홍루몽의 판본은 80회본과 120회본의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1791년 정위원이 기존의 80회본에 고악이 쓴 40회본을 결합해서 120회본으로 간행한 것이 "정갑본"이고, 이듬해에 이 120회본을 개정한 것이 "정을본"이라 한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 이전에는 필사본의 형태로 유포되었는데, 문제는 작가인 조설근이 원고가 출간되기 전에 사망해 버려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설근이 최초로 작성한 원고 중 유실된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못한 정위원은 지인인 고악(1763~1815)에게 흩어진 필사본의 내용을 수집, 보완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1791년과 1792년에 거쳐 '홍루몽'이라는 제목이 붙은 120회본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악은 자신이 쓴 후반부가 조설근의 원고를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고악이 진시를 통과하고 한림원에 들어가기도 할 정도의 정통 한학자이지만 그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조설근이 쓴 80회본까지만 읽었을 때 소설의 주제의식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조설근이 쓴 부분까지만 읽으면 이야기가 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당시에도 수많은 자칭 후속편 동인지들이 나돌았는데, 정위원이 그 가운데 가장 작품성 있는 고악의 버전을 공식 후속편으로 '지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유실된 내용이 많았던 탓에, 2006년에는 중국에서 고악이 후반부 40회의 내용을 변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기사 링크
4 국내 출판본
국내의 홍루몽 번역은 1884년 역관 이종태를 위시한 문사들이 120회본을 처음 완역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최초로 홍루몽이 완역된 사례이다. 그 이후에도 국내에 여러 차례 번역되었으나 대개 불완전한 번역 내지는 일어 번역본의 중역인 경우가 많았는데, 1990년대에 연변대학의 조선족 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된 현대어 완역본이 예하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청계출판사 판과 나남출판사 판이 2000년대에 들어 출간되었다. 번역의 정확성은 1990년 나온 예하출판사 판이 좋은 평을 듣고 있으나,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절판된 상태라 그 희소성 때문에 인터넷 헌책방에서 책팔이들에 의해서 100만 원도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나남출판사 판본과 비교할 때 둘 중 하나가 떨어진다기보다는 각 판본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정도라 굳이 일부러 저 가격을 지불하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에 올재에서 연변대학 번역본이 교보문고에서 한정으로 풀렸고, 같은 번역집단의 수호지가 2015년에 한정으로 팔다 2016년에 상시판매로 풀린걸 보면 홍루몽도 상시판매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2013년에는 솔출판사에서 7권으로 구성된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5 줄거리
홍루몽의 줄거리는 난징인 금릉을 기원으로 둔 부유한 가(賈)씨 일족에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는 영국공 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차남 가보옥과 똑똑하지만 몸이 약한 가보옥의 고종사촌 임대옥, 그리고 건강하고 가정적인 이종사촌 설보차(설보채)[2]의 세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3]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4]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5]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병크들[6]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진시황이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다, 그의 아들인 가진 및 가진의 손자인 가용, 영국공 가사,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잉여들이었다.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조카인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남성 가문원들이 대부분 잉여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가모)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 가정의 정실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4대 가문의 세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 못했다.
가보옥은 본래 신화 시대에 여와가 축융,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7]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의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지나가던 신선에게 부탁을 하여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은 그거 먹는 건가요? 취급을 하며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기를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보옥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임대옥은 돌이 가보옥으로 태어나기 전에 신영시자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선계를 돌아다니던 중 물을 주었던 풀인 강주초의 화신으로, 물을 머금은 끝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영시자는 이미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풀이었던 자신의 눈물로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자신도 인간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어머니인 가민이 사망하자 관직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가씨 가문에 의탁하였으며, 시 짓기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갖춘 미소녀였으나 병약한 탓에 신경질이 잦고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설보차(설보채)는 가보옥과는 이종사촌지간[8]으로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문장이 적힌 금목걸이를 항상 착용하였는데, 가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태어났던 구슬에 새겨진 문장과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고 두 명이 서로 인연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옥을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차분하고 단정한 외모와 성격을 갖추고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황제의 후궁이 되어 귀비의 봉호를 받은 가원춘은 특별허가를 얻어 친정을 방문하였는데, 대관원의 모습을 보고 빈 공간으로 두기 아깝다고 여겨 가보옥 등에게 대관원에 거주할 것을 명하였고 가보옥은 임대옥, 설보차와 또래 소녀들과 함께 대관원 안에 각각 거처를 두게 되어 시와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단란한 시절을 누렸다.
나이를 먹게 되자, 가보옥은 설보채에게도 일정한 호감이 있긴 했지만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했다. 그러나 병약한 임대옥을 탐탁치않게 여긴 가보옥의 할머니 사태군은 임대옥보다는 설보차가 신부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왕희봉과 왕부인이 동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다니던 구슬이 돌연히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 가보옥은 정줄놓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귀비 가원춘도 같은 시기에 병사하자 사태군 등은 불길한 기운을 액땜한다는 명분으로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을 강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보옥의 측근 시녀였던 화습인을 통해 임대옥에 대한 감정이 보통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왕희봉은 가보옥에게는 신부가 임대옥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설보채와 결혼시킨다.[9] 가보옥이 설보채와 결혼한 날, 임대옥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나중에서야 모든것을 알게된 가보옥은 멘탈붕괴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문원들의 병크가 겹친 결과 가씨 가문은 공작위들과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몰락해 버렸고[10], 가보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카와 함께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으나 응시장을 떠난 후 실종되어 버렸다. 이후 가보옥은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재회하지만 가보옥은 한마디 말도 없이 목례만을 한채 승려와 도사의 무리들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6 등장 인물
등장인물의 수는 주역부터 조역, 이름만 언급되는 단역까지 포함하여 500여 명에 달하며, 주요 인물들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다. 남성 인물들도 여럿 등장하지만 대부분 막장이며 주색잡기에 빠져 지내는 잉여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왕희봉의 남편인 가련과 설보차(설보채)의 오빠인 설반.
그리고 비중 있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결말이 영 좋지 못하다(...). 왕희봉의 경우 일족이 몰락하고 후원자인 가모(사태군)마저 노환으로 사망하자 권력을 잃고 병까지 겹쳐 안습한 죽음을 맞은데다가 딸인 가교저는 인신매매단에 팔려갈 뻔 했으며[11], 영국공 가사의 딸인 가영춘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요절했고 가보옥을 짝사랑했던 비구니인 묘옥은 도적단에게 검열삭제당한 후 행방불명, 가보옥의 측근 시녀 중 한 명인 청문은 다른 하인의 모함을 받고 쫓겨난 후 병사[12]했으며 임대옥은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병이 악화되어[13] 선물받았던 손수건과 자신이 쓴 시집을 태우고 죽어 버렸다(...).
작중에서 죽지 않은 캐릭터도 안습한 결말을 맞는 게 대부분이며, 가보옥은 계략에 휘말려 설보차를 임대옥으로 착각하고 아내로 맞았다가 멘붕에 빠진 후 아내를 두고 가출해 버렸고 녕국공 가진의 여동생인 가석춘은 현시창스러운 상황을 보고 비구니가 되었다. 가보옥의 형수인 이환은 아예 시작부터 과부로 등장했으며 사상운은 결혼 직후 남편이 요절해 버렸다. 이환과 사상운, 그리고 설보차의 경우 과부의 개가를 금지하던 풍습과 맞물려 그야말로 현시창인 상황.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간 수호전의 양산박 108호걸들처럼 한꺼번에 많은 인물들이 사망 또는 퇴장하지는 않지만, 작중에서 인물들이 죽거나 퇴장하는 내용이 대부분 구체적으로 처절하게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가 임대옥과 왕희봉으로 여러 회에 거쳐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그 외의 정보는 홍루몽/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할 것.
7 작가에 대하여
작가인 조설근은 팔기군 정백기에 소속된 한족 출신으로, 선조는 오늘날의 랴오닝 성에 거주하다가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정복되어 한인 팔기에 편입되었다. 이후 조설근의 증조모가 강희제의 유모가 되면서 황실과 연이 닿게 되었고, 조설근의 할아버지인 조인(삼국시대의 조인과는 당연히 다른 인물이다)의 대에 이르러서는 난징일대를 관리하는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다른 가문들과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영하였다.
하지만 강희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가 즉위한 후, 조씨 가문은 옹정제가 벌인 숙청작업에 휘말려 망했어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조설근의 대에 이르러서는 베이징으로 가문 전체가 이주하였으며 조설근 자신은 베이징 외곽의 기인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며 홍루몽을 집필하게 된다. 그러나 조설근은 이 소설을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필사본으로 유포되던 홍루몽이 활자본으로 출간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30여 년이 지나서였다.
민국시대의 학자인 후스(胡適, 1891~1962)등의 연구로는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전적인 소설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조설근이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8 홍학(紅學)의 역사
본격 대륙의 설정싸움
홍루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당대 중국의 독자들은 임대옥vs설보차 중에서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와 같은 VS놀이에서부터 조설근 및 홍루몽에 최초로 평론을 단 지연재[14]의 실존인물 여부, 판본 연구,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 및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 사회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논쟁을 벌였고 홍루몽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홍학(홍루몽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겨난 홍학계의 분파는 평점파와 색은파였는데, 평점파는 홍루몽의 내용에 대한 감상, 평론을 통해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색은파는 책의 내용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해석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반청복명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거나 강희제~옹정제 교체기간의 권력다툼에 대한 은유, 심지어 순치제와 후궁 동악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등의 괴랄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후스(胡適, 1891~1962)는 기존 홍학, 특히 색은파의 해석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였고 홍루몽은 조설근의 자전소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후스의 견해를 지지한 이들에 의해 고증파라는 분파가 생겼는데, 고증파는 연구를 통해 조설근의 실존여부를 밝히는 한편 홍루몽의 판본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같은 시기에 루쉰 등은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홍루몽을 평가하려 했고 이들은 비평파로 불리게 된다.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도 홍학의 명맥은 계속 이어졌으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어서 홍학의 여러 분파들 중에서 특히 고증파가 집중포화를 맞고 말았고 4인방은 홍루몽을 반봉건적 내용이 담긴 소설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해석을 강요하였다. 이후 4인방이 실각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홍학 연구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9 대중매체에서
1998년에 대만에서 <紅樓夢之十二金釵>#라는 제목의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제작된 적이 있으며, 2009년과 2010년에는 중국에서 <红楼梦:林黛玉与北静王>이라는 제목으로 비주얼 노벨화되기도 했다.##
1977년에는 쇼 브라더스에서 금옥양연홍루몽(金玉良緣紅樓夢)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임청하의 초기 주연작이기도 하며, 이 작품에서 임청하는 남주인공인(…) 가보옥을 연기했다.
또한, 1977년과 1987년, 2010년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는데, 1987년판 드라마에서 임대옥을 연기했던 진효욱(陈晓旭,1965~2007)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뒤 암으로 사망하자 중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북한의 피바다가극단에서 리메이크한 홍루몽의 가극판이 이듬해 중국에서 순회 상연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 측의 기록으로는 1961년에 조령출의 대본과 이면상의 작곡으로 완성되었고, 평양예술단에서 상연했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저 두 인물 모두 친일파-월북 루트를 타면서 능숙한 처세술로 평생 잘 먹고 잘 산 케이스로 손꼽힌다.)
다만 저 가극도 북한에서는 한동안 찬밥 신세였는데, 북한과 중국이 우호 관계였을 때 창작되었다가 이후 문화대혁명이 터지고 난 뒤 양국 관계가 악화되자 공연 목록에서 버로우하고 말았다. 이후 1970년대부터 뽀글이가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기존 가극이 가진 봉건성을 타파하겠네 어쩌네 하면서 '혁명가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밀어주게 되자 거의 듣보잡이 되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작품을 최고 권력자의 지시로 다시 리메이크해서 북한 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가서 순회공연을 한다는 것은 북한 음악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북한이 중국에게 더욱 시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씨왕조 치하의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작중 가씨 일족의 막장행보가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과 묘하게 연관되어있다. The Garden of the Forking Path라는 작품은 유 춘이라는 중국인 스파이가 독일에게 정보를 흘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인데, 이 유 춘이라는 캐릭터의 묘사가 홍루몽에 나온 비슷한 이름의 캐릭터와 흡사하다.
영화 스잔나(1967년)[15]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주인공이 극중극으로 홍루몽의 임대옥을 연기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영화는 유독 국내에서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인기를 크게 끌었고, 여주인공 스잔나 역으로 출연했던 이청(李菁) 은 이 영화 한 편으로 국내에서 인기스타가 되었으며, 내한하여 몇 편의 영화를 찍기도 하였다. 올드팬들에게는 이청이라기 보다는 리칭이라고 부르는게 더 친숙하겠지만......
문명 5의 두 번째 확장팩인 멋진 신세계에서는 위인의 유형으로 위대한 작가가 추가된 후 랜덤으로 출현하는 작가의 이름 중에 조설근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동방프로젝트 온리전 행사 중 관서지방에서 개최되는 동방홍루몽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이름이 똑같다. 딱히 큰 관련은 없지만 이름 자체는 여기서 따온 듯하다.- ↑ 절대 홍등가가 아니다! 중국에서 홍등가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 단어는 청루이다.
- ↑ 이름에 쓰인 釵(비녀 채)는 채 또는 차로 읽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국내에 번역된 홍루몽의 번역본들에서는 설보채 또는 설보차로 표기가 제각각이며 청계출판사는 설보채, 나남출판사와 솔출판사는 설보차로 번역했다.
- ↑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임대옥<가보옥<설보차의 순서로 1~2살씩 많다.
- ↑ 형제 중에서 형이 녕국공, 동생이 영국공의 작위를 받았다.
- ↑ 가보옥이 늦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부모자식뻘이었다.
- ↑ 작중에서 묘사된 모습은 주색잡기와 사치는 기본인데다 밖에서는 권력을 악용하며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뇌물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가며, 안에서는 똥군기, 내리갈굼, 근친상간, 집단괴롭힘 신부 속이기와 같은 막장이 벌어지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
헬게이트 - ↑ 여와는 36,501개의 돌을 만들었으나 하늘을 복구할 때 36,500개의 돌이 사용된 탓에 한 개가 남아 버렸다.
- ↑ 가보옥의 어머니와 설보차의 어머니는 친자매였다.
- ↑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의 전통 혼례에서 신부는 면사포를 푹 눌러쓴 채 얼굴을 가려야 했던데다가, 왕희봉 등이 진짜 신부가 설보차라는 것에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에 가보옥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 ↑ 나중에 작위를 돌려받긴 했다.
- ↑ 다행히 팔려가기 직전에 왕희봉에게 신세를 진 사람에 의해 구출되었다.
- ↑ 병에 걸려 앓아누운 상태에서 말 그대로 맨몸으로 쫓겨났으며, 가보옥은 "그 몸으로 쫓겨난 건 난초를 돼지우리에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한탄했다.
- ↑ 작중에서 얼굴에 열기가 올라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거나, 피 섞인 가래를 뱉고 각혈을 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결핵으로 여겨진다.
- ↑ 지연재에 대해서는 조설근의 가족설, 친척설, 지인설 등의 가설만 제기되었을 뿐 평론을 제외하면 자료가 부족하여 실존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다.
- ↑ 홍콩 영화이며 1976년작인 사랑의 스잔나와는 다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