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정현(李貞賢) |
출생 | 1980년 2월 7일 생, 서울특별시 구로구 |
본적 | 전라북도 부안군# |
신체 | 158cm, 40kg, O형 |
학력 | 성지고등학교 (졸업)[1]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학사) |
종교 | 무종교[2] |
데뷔 | 1996년 영화 '꽃잎' |
가족 | 아버지 이길술, 어머니 노재승[3] 5녀 중 막내 |
소속 | 에이바필름 앤 엔터테인먼트 |
팬카페트위터 |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 |||||
김현정, 조성모, NRG, 유리 그녀와의 이별, To heaven, 할 수 있어 (1998) | → | 채정안, 이정현, 샵, 코요태 무정, 와, Tell me Tell me, 순정 (1999) | → | 화요비, J.ae Lie, 어제처럼 (2000) |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 |||||||||
천우희 (2014) | → | 이정현 (2015) | → |
1 개요
본래 연기력으로 크게 주목받은 아역 배우[4]였으며, 가수 데뷔를 선언한 1999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인 '와', '바꿔' 로 크게 히트를 얻어 그 해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왕을 차지했다. 신인상 덕후 각종 CF와 '반' 같은 후속곡이나 '줄래' 같은 이미지 체인징도 시도하는 등 2000년대 초반 여러 가지로 주목을 끌게 만들었던 연예인이다.[5]
CF 활동에서 큐트한 이미지로 밀고 나갔는데 KT 016 CF에서 "잘자! 내 꿈 꿔~!" 하는 대사가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고 명실상부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이 CF 속에서 조성모와의 분위기 때문에 열애설까지 터지기도 했다.
이후 중국에 진출하여 많은 인기를 모았다. 이때 많은 돈을 벌었는지, 3,000만 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방송에 들고나왔다가 찍힌적도 있으며, 현재 강남구 도곡동의 최고급 초고가 주상복합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체구였지만 얼굴만 보면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성숙한 외모노안였다.
2 연기활동
- 1996년 4월 5일 개봉 꽃잎 (A Petal)
영화 꽃잎 포스터 | 출연한 이정현의 모습 |
장선우 감독의 작품.[6] 희극에나 나올 법한 광년이 같은 소녀가 포스터부터 시작하여 머리에 꽃을 달고 광기를 품은 채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보여준다. 이 때의 이정현은 노출까지 감행하는 등 지금과는 몰라볼 정도로 독기 어린 연기를 보여 주었다. 영화 중간에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여자 귀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그 유리를 머리로 깨고 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머리로 깼고 정말로 기절한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장 역을 맡은 문성근에게 검열삭제당한 후 장을 따라가려 하는 이정현에게 문성근은 "미친년아 꺼져!"라는 뉘앙스의 말을 외치며 돌을 던진다. 물론 이정현을 쫓기 위해 한 연출이였다. 그러나 실제로 문성근이 던진 돌이 이정현의 발에 맞았다!! 영화상에서는 편집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절뚝이며 문성근을 쫓아가는 이정현을 보며 연기력이 일품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성근이 처음 던진 돌은 화면상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돌이였지만 2번째로 던진 돌은 화면에서도 뚜렷히 보이고 약 어른 주먹의 절반 정도 크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처음 문성근이 던진 돌에 이정현이 실제로 깜짝 놀라서 왼쪽으로 피하고 문성근은 이정현을 피해서 재차 짱돌을 던진다. 그러나 진짜 놀라버린 이정현은 갈팡질팡하다 문성근이 돌을 던진 방향으로 이동, 발(아마 무릎이나 발목일 거라 보인다)에 정확이 들어맞는다. 때문에 다리에 가해진 심한 충격으로 실제 쓰러지게 되고 발에 맞은 돌은 이정현의 키만큼 튀어오른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어린 마음인지 영화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실제 절뚝이는 발을 이끌며 문성근을 쫓아간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그래도 이정현 본인도 너무 아팠는지 쫓아가다 쓰러지고 휘청거리는 등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감독이 컷 안 한 게 용하다
생짜 첫 연기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도 각종 영화제에서 여자신인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결국 여자신인상을 싹쓸이 했지만, 이렇게 두 부분 동시후보에 오른 배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1997년 9월 13일 개봉 마리아와 여인숙 (Maria and the lnn)
선우완 감독[7]의 명작. 심혜진과 김상중, 신현준 주연인 영화.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의 어두운 면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다. 여기서 이정현은 심혜진의 딸인 마리아로 등장한다. 특별 출연한 박상민과의 파격적인 베드씬이 있다. 왜 파격적이냐 하면 개봉 시기와 그녀의 출생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겨우 18살이었던데다가 학년으로쳐도 고3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이다. 당시 은행나무 침대로 여성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던 신현준이 부모의 불륜으로 폐쇄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역할을 연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상중은 지능지수가 7살인 형 역할로 나왔다. 심혜진은 이들 형제를 유혹하여 여인숙을 차지하려는 천하의 개쌍년 역할을 맡았다. 영화 분위기가 에로틱하게 진행된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작품성도 좋은 편인데 하필 한석규의 접속과 신은경의 노는 계집 창과 추석에 개봉한 바람에 흥행 스코어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고야 만다.
이 외에도 1999년 <침향>과 2000년 <하피>가 있으며[8][9] 드라마 활동은 1996년 <마음을 열어>, 1997년 <일곱 개의 숟가락>에서 아역으로 활동하였다. 가수 데뷔 이후 성인 연기에도 발을 들였으나 2001년에 출연한 <아름다운 날들> 이외에는 한동안 드라마 출연작이 없다가 <대왕 세종>에서 세종대왕의 후궁 신빈 김씨로 출연했지만 성대 결절로 하차하였다.
2006년에는 최지우, 타케노우치 유타카 주연의 일드인 <윤무곡~론도>에서 최지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2011년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하였다. 여기서도 훌륭한 무당 연기를 보여주었다.
2012년 <범죄소년>이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간만에 대한민국 영화 연기 복귀작. 도쿄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33살짜리 엄마 역할로 나왔다. 영화 평도 좋고 연기 평도 상당히 좋아서 한국어로 연기한 작품이 적었다는 게 아쉬울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10]
배우로 활동했던 초기 영화 속에서 중견급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 미칠 듯한 연기력을 보였던 것을 기억해 배우로의 활동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있다. 또한 본인도 배우로의 복귀를 상당히 열망하고 있으며, 일본 쪽에서 활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단 2012년 범죄소년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했으며 2014년에는 최종병기 활 김한민 감독의 신작인 명량에도 출연, 연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그 김한민 감독과 열애설이 떴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 중.
2015년 SBS 주말 드라마 <떴다 패밀리>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대왕 세종> 이후 6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였지만, 시청률은 다른 방송사 드라마에 밀려 참패. 그래도 커리어의 첫번째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으로, 배우 이정현의 색다른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여동생 연기, 공항 격투신, 여자친구인 척 하기, 술 취한 연기, 신입사원 연기(?), 기억상실 연기(?) 등등.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트레일러2015년 8월 13일 개봉한 저예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 주연 정수남 역을 맡았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 줄곧 평가가 올라오고 있는데, "이정현의, 이정현에 의한, 이정현을 위한 영화다."라고 호평받고 있다. 상업 영화가 아닌 독립 영화지만, 이례적으로 상영관도 많이 늘어났고 개봉 6일만에 관객수가 2만 명을 돌파했다. 비록 관객 수는 43,685명에 그쳤지만, '독립영화의 의미 있는 행보'라며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노 개런티로 출연한 이 저예산 영화로 2015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6년 "꽃잎"으로 신인 여우상을 받은 이후 19년 만에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11] 이로 인해 이정현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 손석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그리고 뱀파이어(이정현)가 뱀파이어(손석희)에게 영화 안 봤냐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는 진짜 이 사람이 80년 생이냐는 말이 절로나올 정도로 귀엽다!
3 가수 활동
항목 참조.
4 팬덤
다음에 있는 공식 팬클럽 명칭은 'Feel2ya(필이야)'.
풍선 색은 데뷔 때부터 금색(골드) V활동 들어가면서 풍선과 함께 처음으로 응원봉을 제작했다. '와' 시절의 모습을 간략히 나타낸 마크와 영어로 'LEE JUNG HYUN, I LOVE AVA[12]'라고 쓰여있다.
팬덤계 사이에선 전설로 꼽히는 팬덤.#
3집 반 활동 시절 엠넷 방송에서 고무장갑 응원을 했던 카밀리아보다 한 발 앞선 목장갑 응원을 선보였는데 이때 팬은 맨 앞에 앉아있던 4명 뿐이었다. 근데 이 팬 4명이서 웬만한 아이돌 팬덤들 씹어먹은 엄청난 목청을 자랑해서 전설의 응원 영상으로 손꼽힌다. 이 덕분에 방송 카메라도 보고 감동받아 이들을 두 차례나 잡았으며 이후 우스갯소리로 도는 게 '이정현 팬 2명이면 타 가수팬 50명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한 '미쳐' 활동 때는 카메라로 추정되는 마이크가 이정현의 턱으로 돌진해 가격한 사건이 있었는데[13] 해당 방송국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거의 폭주하다시피 보내 서버가 다운되어서 결국 사과문까지 받아낸 전적도 있다.
'V' 활동 당시 크레용팝 팬덤과 마찰이 일어날 뻔 했다. 엠넷 무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이정현의 'V' 무대가 시작됐는데 팝저씨들의 '크! 레! 용! 팝!'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그대로 전파를 타서 논란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정현의 무대는 사전녹화본으로 녹화본이 틀어진 상황에서 실제 무대 위에선 아직 크레용팝이 있는 상태였고 그때 응원 소리가 이정현의 무대에 섞여 들어간 것이었다. 크레용팝의 팬덤은 사과의 의미로 이정현 'V'의 노래 응원법을 외워 타 무대에서 응원해주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공연에서는 '와' 이정현이 쓰는 부채의 축소판 600개를 제작하여 관객에게 미리 나눠줬고 이정현이 '와' 를 공연할 때 관객들이 이 부채를 들고 이정현의 춤을 따라하면서 공연장을 한껏 달구는 데 성공. 역시 가수나 그 팬이나 클래스는 영원한 듯.
5 트리비아
바비인형 덕후로 알려져 있다. 집에 꽤 많은 양의 바비인형을 콜렉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도 이걸 잘 활용해서 '줄래'와 'V' 뮤직비디오 등에서 바비인형을 이용한 연출을 하기도 했다.
1999년 KTF n016 잘자 내 꿈꿔편에서 조성모와 함께 막 시작하는 연인역할로 나왔다. 이때 이정현이 광고 속 카피인 잘자 내 꿈꿔 는 대박을 쳐서 조성모와 함께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정현의 가수로서의 활발한 활동은 그의 연기력이 큰 일조를 하였다. 지금이야 다시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바꿔'의 무대의상과 안무마저 당시에는 카리스마 여전사라며 평가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눈빛 연기와 무대 장악력을 보였고, 앨범 때마다 수많은 컨셉의 변화를 줬음에도 전혀 무리없이 소화하고 가요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절륜한 가창력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의 하이톤을 댄스 음악에 맞춰 이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던 여성 가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시절이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걸 보여주며 대중이 자신에 기대하는 요구를 만족시키던 이정현은 엄정화에 이은 2세대 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각 곡에 대한 무대 컨셉과 그에 따른 의상 컨셉 등을 직접 고안하고 프로듀스하는 모습들 때문인지 '한국의 레이디 가가'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기도 하는데, 실제로 아리랑 TV에서 했던 인터뷰를 보면 <와>의 핵심 컨셉트였던 동양적인 분위기, 외눈박이 부채, 새끼손가락 마이크 등을 프로듀서가 아닌 이정현이 직접 고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톡깨놓고 보면 레이디 가가의 데뷔보다도 10년을 더 앞서서 이런 무대를 선보인 것이니 '한국의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 레이디 가가가 '미국의 이정현'이라고 해야할 판.
당시에는 한국가수들이 외국의 곡들을 무단 표절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정현은 반대로 외국에서 그녀의 곡을 따라한 표절곡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으로 1집 <와>를 이탈리아 가수 bandido가 <vamos amigo>란 곡으로 표절한 사례가 있다.
이 곡은 아예 이탈리아 가수 저작권으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와"가 표절이라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 국제변호사가 선임되어 500만 달러(60억원) 정도의 손해배상 청구를 계획하기도 했으며, 결과는 저작권라이센스를 구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되려 <와>도 표절논란이 있는데 브레이브하트 ost(1995)와 DJ Sakin & Friends - Protect Your Mind(1998)을 각각 표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참고로 작곡가는 최준영이며 그 이전에도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를 Shaggy - Oh, Carolina를 표절한 전력이 있는지라 의심이 간다.
LG 트윈스에서 2차례 시구를 했다.
6 필모그래피
6.1 영화
연도 | 제목 | 배역 | 관객수 | 비고 |
1996 | 꽃잎 | 소녀 | 21만 명 | |
1997 | 마리아와 여인숙 | 특별 출연 | ||
1999 | 침향 | 임선희 | 197명 | |
2000 | 하피 | 손수영 | 2만 명 | |
2010 | 파란만장 | 무녀 | 단편 영화 | |
2012 | 범죄소년 | 효승 | 1만 명 | |
2014 | 명량 | 정씨 여인 | 1,713만 명 | |
2015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수남 | 4만 명 | |
2016 | 스플릿 | 희진 | ||
2017 | 군함도 | 말년 |
6.2 드라마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96 | 일곱개의 숟가락 | 정혜 | |
1999 | 야망의 전설 | 이정희 | |
2001 | 아름다운 날들 | 김세나 | |
2006 | 윤무곡-론도 | 최유희 | 한일 합작 |
2008 | 대왕 세종 | 신빈 김씨 | |
2011 | 공자 | 난쯔 | 중국 드라마 |
2015 | 떴다! 패밀리 | 나준희 |
- ↑ 명덕여자고등학교 재학중에 선생님의 소개로 오디션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디션 합격 후 연예활동으로 인해 수차례 전학을 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성지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 ↑ #
- ↑ 아버지는 당시 나이 47세에 막내딸 이정현을 보았다고 한다. 참고로 그당시 아버지와 어머니 나이차이가 무려 11살이나 된다고 한다(!!!)
- ↑ 꽃잎이 개봉했던 1996년 그 해에 이정현은 양대 영화제라고 불리우는 대종상과 청룡영화제에서 모두 신인상을 거머쥐며 순식간에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다.
- ↑ 이 무렵 음악 프로그램의 순위권은 대부분 여성 솔로 가수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연예계 여성 솔로는 이정현, 김현정, 백지영, 박지윤, 제이 등이 독식하고 있었다. 아예 다섯 사람만으로 구성된 BIG 5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짜서 단독으로 내보냈을 정도.
- ↑ 이 감독의 커리어는 정말 범상치 않다. 한국 영상자료원 선정 한국 영화 best 100안에 들어가는 작품인 경마장 가는 길, 우묵베미의 사랑,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 상 수상작 화엄경부터 익히 알고 있는 희대의 괴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정말 다이나믹하다. 해당 항목 참조.
- ↑ 80년대 장선우 감독과 함께 '서울예수'를 제작했다.
- ↑ 공포 영화로 이정현이 가수로 뜬 다음 출연한 첫 영화기도 하다. 그 당시 등장한 듀오백 의자도 이걸 밀었지만 금새 묻혔다.
- ↑ 하피는 해괴한 연출력으로 유명해져 2000년대 초반 망한 한국 호러영화들 중에서도 나름 인지도는 있는편이다.
- ↑ <꽃잎>에서의 열연과 <와>의 대히트로 인해 계속 신들린 역할이나 귀신 역할만 제안이 오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배우로서의 공백기가 있었다.
- ↑ 1996년 당시 청룡영화제와 대종상에서 둘 다 신인 여우상을 받았다.
- ↑ 이정현의 영어 예명. 발음은 '에이바'.
- ↑ 하지만 이정현은 턱에 맞고도 대단한 프로 정신으로 무대를 끝까지 이어나갔다. 흠좀무.
괜히 '독한 여자라 하지마'란 부분이 들어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