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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Macbook Air 11", 13", iMac 27", Mac mini, Mac Pro, iMac 21", Macbook Pro 1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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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소개
매킨토시 30주년 기념 영상 |
30년 전 매킨토시는 기술을 사람들의 손에 쥐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매킨토시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영상은 하루만에 전세계에서 iPhone으로 촬영하였습니다.
[1] 아카이브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큰 획을 남긴 안상수씨의 작업이 1988년 페이지에서 기념되고 있다.
애플에서 만든 개인용 컴퓨터 브랜드. 2006년 이전까지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던 IBM PC 호환기종이 아닌 PC였으며, 프랜차이즈가 출시된지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2014년 현재 하드웨어 기본 구조는 IBM PC 호환기종에 맞추고 있고, OS와 소프트웨어는 독자적으로 가고 있다.
줄여서 보통 맥(Mac)이라고 한다. "매킨토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과품종인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최초 구상자인 제프 래스킨이 좋아하는 사과 품종이 이거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는 이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성을 위한 자전거". 줄여서 "자전거"(!)라는 이름을 밀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컨설팅회사에다 돈 왕창 주고 새 이름을 받아 왔는데 그 이름이라는게 "Apple 40"이라든가 "Apple Allegro"같은 이름이었고, 결국 잡스는 저런 이름은 못 붙이겠다면서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최종 승인하고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쓰던 오디오 회사에 가서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얻어오게 된다. 하지만 뒤끝이 쩌는건지 어떤건지 지금의, 그러니까 인텔칩이 달려 나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예 공식명칭에 "매킨토시"라는 말이 들어가지도 않으며 간간히 제품 포장[1]에만 슬쩍 던져놓는다.
애플 시리즈의 후속작으로, 애플 리사에서 처음 시험적으로 채택했던 GUI 인터페이스를 전면으로 등장시켜 채용하면서 지금 봐도 매우 획기적인 제품으로 등장하였다. 현재 윈도우즈 등에서 사용하는 '아이콘', '창' 등을 대중에게 최초로 선보인 것이 매킨토시이다. 사실 아이콘, 창과 같은 GUI의 개념은 제록스 연구소 PARC에서 시작했지만, 위지위그형 탁상 출판 워크스테이션의 개발 도중에 나온 부산물로 GUI자체를 노리고 개발한 것도 아니었고 그로 인해 탄생한 제록스 스타의 판매량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애플은 GUI의 가능성을 보고 제록스에게 애플 주식 100만 달러 어치를 주고 필요한 기술을 구했다.
처음으로 출시된 모델은 1984년 1월 24일에 출시된 매킨토시 128K. 이 시절에는 모토로라의 MC680x0 계열 CPU를 사용했으며, 1994년부터는 IBM과 모토로라의 합작품인 PowerPC 60x계열 CPU를 사용했다. 이 시절까지의 매킨토시들은 표준 하드 인터페이스로 SCSI를 사용했고, 키보드와 마우스는 ADB[2]라는 독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등 PC와의 호환은 손톱만큼밖에 없는 완전 별개의 물건이었지만, 2006년 들어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하던 인텔의 CPU를 사용하고, 이에 따라 하드웨어 구조도 x86 아키텍처가 되어 이제는 애플의 독자적인 하드웨어 구조라고 할 만한 것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최근 2011년 라인업에 광통신 기반의 썬더볼트가 추가되기는 했으나, 이것도 사실 인텔의 기술이다.
OS는 전용의 Mac OS X[3]을 사용. OS X 이전의 OS 1부터 9까지는 "클래식"이라고 부르며, 파워PC 시절까지는 호환성 문제를 위해 클래식 모드를 일부 남겨놓기도 했지만 인텔 CPU로 오면서 클래식은 내다 버렸다. 성난 유저의 항의공세를 막기 위해 이전의 PowerPC용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로제타를 내장했었지만 Mac OS X Lion부터 사라졌다. 또한 인텔 맥은 CPU부터 기타 하드웨어 구성이 일반 PC들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또한 설치해서 쓸 수 있다. 부트캠프가 그것인데, 이것이 발표된 그 날, 나스닥에서 애플의 주가는 5%나 올라갔다(...). 합법적으로 윈도와 OS X을 동시에 사용해볼 수 있는 유일한 컴퓨터라 볼 수 있다. 윈도와 달리 애플은 OS X을 단독으로 판매하지 않고 하드웨어에 끼워팔기 때문에 해킨토시는 엄밀히 말해서 불법이다. 그러나 워낙 귀찮고 오류도 가끔 나오고 리얼맥보다는 확실히 기능이 부족하기에 결국 정말 맥이 필요하면 리얼맥으로 넘어오게 되어있다. 계획대로 잡스도 그래서 해킨토시를 그냥 방임했다. 어차피 리얼맥으로 넘어온다고 하면서.
IBM 호환 PC가 널리 쓰이던 시대에도 그래픽작업이나 출판작업 등 특화된 기능이 PC에 비해 월등히 좋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요를 가지고 있어서 아미가, 아타리 등 다른 포멧의 PC가 몰락한 후에도 계속 IBM-PC의 대항자로서 살아남게 된다.
포토샵, 엑셀[4] 등 매킨토시용으로 뛰어난 유틸리티와 애플리케이션이 많았던 것도 매킨토시가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그런데 지금의 애플과 어도비의 관계는...)
매킨토시의 이름에 대해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애플에서 처음 매킨토시를 만들어서 판매할 때 1.의 의미로 McIntosh란 스펠링을 쓰려고 했으나 사소한 착오로 Macintosh로 잘못 표기했다. 애플 덕분에 매킨토시가 더 유명해진 지금은 사과를 뜻하는 McIntosh보다 Macintosh란 단어가 더 유명해지고 사전에까지 등재되었다. 물론 ‘컴퓨터’가 아닌 ‘사과’로...
스티브 잡스의 전기문 비슷하게 된 iCon에서는, 오디오 앰프를 제조하는 매킨토시 사에서 McIntosh의 사용권을 얻지 못하자 잡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비슷한 이름의 Macintosh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뭐 진짜라면 오디오 맥 쪽에서 소송을 걸었을테고 나중에 사용권을 얻어왔다는 말이 있으니 진실은 저 너머에...
2 설명
1980년대말-1990년대 초반에 16비트 위주 컴퓨터 붐이 일었는데, 이때 한국에서 매킨토시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엘렉스컴퓨터라는 회사가 한국의 매킨토시 총판역을 했는데, 이 회사가 한국에서 고가정책을 고수해서, 같은 사양의 IBM호환 기종의 세 배 정도의 가격을 붙여먹었기 때문이다.[5] 1990년대 초반 386급에 컬러모니터를 갖춘 용산표 조립 컴퓨터가 200만원 안팎이었고 삼성이나 금성같은 대기업 제품은 250만원 정도였는데, 비슷한 체급의 매킨토시는 600만원을 넘는 가격을 붙여놨다. 애플 본사가 당시 고가정책을 편데다가, 한국에서는 총판사인 엘렉스 컴퓨터가 값을 더 올려놓았으니 잘 팔릴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당시에 해외에 가서 맥을 사 오는게 더 쌀 지경이었다는 농담같은 전설들이 아직까지도 들릴 정도. [6]
1990년대 초반 엘렉스 컴퓨터의 광고. 광고 속 모델은 파워 매킨토시 6100.[7]
1990년대 후반까지 매킨토시는 거의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 또는 해외유학파만 쓰는 기종이었다. 이후 엘렉스 컴퓨터가 손을 떼고 나서도 큰 증가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땐 폐쇄성이 훨씬 강해서, 아예 자체 프로세서와 자체 OS만 썼는데 국내에서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가 거의 없었기 때문.[8]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나오고 애플에 대한 한국 내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경품으로 맥북 에어가 걸리는 이벤트들이 널려 있는 등 갑작스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윈도우즈가 아니면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여전히 맥 유저는 소수파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2009년 들어 정신나간 환율까지 더해져서 된장템이라는 이미지도 생기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의 맥 사용자가 1%를 넘었는데 이게 시장 점유율인지 사용률인지에 대해선 확실치 않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Active X를 쓰기 싫어도 억지로 써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넘쳐난다. 쇼핑, 인터넷뱅킹은 물론이고 관공서 홈페이지 이용도 힘들다. 좀 심한 경우에는 자기 학교 통합정보시스템에 접속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픈뱅킹을 시작으로 오픈쇼핑 등 크로스플랫폼 크로스브라우징이 가능한 서비스가 많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한국만 매킨토시 점유율이 시궁창인 건 아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 덕분에 애플 제품에 대한 관심이 급등한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매킨토시의 글로벌 점유율은 10%가 채 안 된다. 단순히 Active X 때문에 매킨토시가 밀리는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창렬한 가격과 딸리는 범용성[9]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3 트랜지션
스티브 잡스의 표현에 의하면 맥은 세 번의 '트랜지션'(transition)을 겪었다. 하나의 플랫폼이 이처럼 CPU를 두 번 갈아치우고 OS도 한 번 갈아치우는 일은 흔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경험은 애플이나 맥 플랫폼 자체에 있어서는 엄청난 유연성을 제공해주는 상당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트랜지션이 서드파티 개발자나 기업 사용자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3.1 68k에서 PowerPC로
쫄딱 망한 기존의 Lisa용 그래픽 API가 모토로라의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위한 것이었고, 적어도 매킨토시 개발 당시에는 8086보다 68000이 성능면에서 우월했기에 맥은 모토로라의 680x0 계열(이하 "68k")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68k를 계승할 모토로라의 88000이 싹수가 노랗다는 것(...)을 알게 된 애플은 IBM과 손을 잡고 모토로라도 끼워서 AIM(Apple, IBM, Motorola)동맹을 결성한 다음 차세대 맥에 PowerPC를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68k와 ppc는 전혀 다른 아키텍처이기에 애플과 모토로라는 호환성 확보를 위해 PowerPC에 68k 명령어를 일부 심고, 한편으로 Mac OS 자체에 소프트웨어 에뮬레이터를 심음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성능을 낼 수 있었고, 애플은 PowerPC용 Mac OS의 개발기간을 절약하기 위해 Mac OS에 68k 코드를 잔존시킨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OS가 부분적으로는 네이티브 코드가 아니라는 말인데, 그렇게 하더라도 전체 퍼포먼스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니 그만큼 에뮬레이터의 성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다만 끝까지 완전한 네이티브 PowerPC 버전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어디까지 잠재능력(?)을 끌어냈는지는 미지수.
또한 하나의 실행 파일에 68k와 PPC 코드를 모두 포함하는 FAT 바이너리도 등장하였다. 이 정신은 뒤에 OS X의 유니버설 바이너리로 이어진다(...)
3.2 Mac OS에서 Mac OS X으로
선점형 멀티태스킹 등을 지원하는 Windows 95가 출시되었으나, 이에 대항하기 위한 애플의 코플랜드 계획이라든가, IBM과 공동으로 진행하던 탈리전트는 실패하고 결국 애플은 NeXT를 잡스와 함께 회사 째로 구입하여 동사의 NeXTStep을 Rhapsody라는 이름으로 맥용으로 포팅하게 된다. 그 랩소디가 바로 오늘날의 OS X.
OS X은 NeXTStep 시절 68k에서 작동하다가 x86 버전이 출시되었고, OS X이 되면서 PPC에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텔칩 장착 맥이 등장할 수 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으며[10], 결국 OS X으로의 트랜지션은 이후 인텔로의 트랜지션을 위한 복선이 되었다(...).
3.3 PowerPC에서 인텔로
등장 당시에는 x86을 발라버리는 성능을 보여주었던 PowerPC였으나, PC 시장에 관심을 잃은 IBM, 임베디드 PowerPC에 맛들린 모토로라는 정작 매킨토시에 장착하기 위한 버전의 PowerPC의 개발에 소극적이 되었던 반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인텔은 AMD를 따돌리기 위해 계속해서 자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넷버스트가 아무리 비효율적이라고는 하나, 미칠듯한 클럭빨(...)은 PowerPC보다 나은 성능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고, 인텔은 센트리노 플랫폼으로 저전력-고성능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준 반면, PowerPC를 개발하는 IBM은 크고 아름다운 서버용 CPU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데스크탑이야 어쨌든간에 노트북용 PowerPC의 업데이트는 난망한 상태였다. 특히 PowerPC G5는 발열 문제가 너무 심각해 노트북 등에는 탑재를 아예 포기하고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인 파워맥 G5에만 장착하였다. 심지어 수랭 쿨러까지 달았다.[11] 결국 애플은 인텔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되었다.
일단 이주를 발표하고 나면, 발표 후로부터 인텔칩을 실제로 장착한 맥이 출시되기까지 수개월에서 1년간 맥의 판매를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되므로 애플로서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이었고, 사실은 그 점이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하던 인텔로의 이주 루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결단을 내렸는데, 맥을 판매할 수 없게 되는 수개월간 그 공백을 메꾸어줄 iPod(...)이 있기에 가능한 결단이었다. 사실 클래식 맥이 이때 판매량이 좋지 못하기도 했다. 파워맥 G5 말고는 여전히 PowerPC G4 프로세서를 썼는데, 1999년 상용화된 너무 낡은 프로세서였다. 그 사이 인텔은 펜티엄 3에서 펜티엄 4 윌라멧, 노스우드를 거쳐 전설의 프레스캇까지 진화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컴퓨터 성능 상승 속도는 극단적인 수준으로 빨라져 20주년 기념 매킨토시가 나온 1997년만 해도 250MHz 프로세서에 32MB RAM을 장착했지만 2004년경에는 펜티엄 4가 3.8GHz에 수백 MB의 RAM[12]을 장착한 무시무시한 컴퓨터가 나올 정도였으니. 특히 클럭 향상이 엄청났는데, 이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반면 파워맥은 속도 향상이 더뎠다. 사실 파워맥이 원체 쎄서 인텔이 어떻게든 따라잡으려다보니 클럭이라도 엄청나게 올라간 것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파워맥에서 성능이 낮은 부동소수점 계산 파트를 그냥 살짝 손봐서 달았는데, 그러고도 당시 인텔을 이겼다. 그놈의 발열이 문제지
결과적으로 인텔로의 이주는 다들 알다시피 대성공.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낸 Universal Binary는 장차 맥이 또다른 아키텍처로 옮겨갈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번이나 옮겼는데 또 옮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근데 옮겨갈 아키텍쳐가 있긴 한가? 확실한건 AMD로 바꾸면 주가가 떨어진다. 주주들 조만간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봅시다
이 과정에서 하드웨어 구조가 x86 아키텍처로 바뀌면서, 하드웨어적으로는 IBM PC 호환기종과 같아졌다. 부트캠프를 통해 윈도우 설치가 가능해진 것도 이 때부터다.
4 하드웨어의 특징
모토로라의 680x0 계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하던 68k 시절부터 PowerPC를 사용하던 시기까지, 애플은 소니처럼 독자적인 하드웨어 규격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었다. 맥이 처음 등장했던 때에는 그래도(...) 잘하면 IBM 호환 PC에 다시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기에 굳이 당시로서는 성능이 떨어지던 IBM 호환 PC의 규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성능의 독자노선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1997년 이후 업계표준의 규격들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게 되고, 자신의 규격들도 널리 공개하여 표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오늘날에 와서는 드라이버만 지원하면 PC용 주변기기 하드웨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램이나 하드디스크, 마우스 등의 경우는 별도의 드라이버조차 필요없이 PC용 제품을 연결하여 사용가능하다.
- 초창기 클래식 맥은 롬 바이오스에 그래픽 라이브러리 등을 올려두었다.
- NuBus[13]라는 독자적인 확장슬롯 규격이 있었다. PC의 ISA와 유사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PowerPC 맥의 등장과 함께 PCI로 대체되었다.
- 저가형 맥에는 PDS(Processor Direct Slot)이라는 확장슬롯이 제공되었다. 위의 NuBus와 달리 범용 확장슬롯은 아니다. 범용이 아니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PCI나 ISA, NuBus 용 카드는 해당 슬롯이 있는 기기라면 어디에든 꽂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PDS 용 카드는 PDS 슬롯이 있다고 해서 꽂아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종을 가린다. 왜냐하면 Processor 'Direct' Slot 이라는 이름 그대로 CPU와 저수준에서 통신하기 때문에 CPU의 종류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즉, 68030 마이크로프로세서용 PDS 카드는 68040 맥에 장착할 수 없다.달리 말하면 PDS 기기는 맥의 모델별로 다 따로[14] 있다는 것이다(...) CPU와 직접 통신한다는 점, 로직보드 하나에 한 개의 슬롯만 허용된다는 점에서 AGP/PCI-E와 유사하지만, PDS는 범용성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15] 저가형 맥의 로직보드에서 NuBus를 위한 부분을 제거하여 단가를 낮추면서도[16] 일정한 사후 확장성[17]을 제공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 키보드와 마우스 등의 입력기기 연결에 ADB(Apple Desktop Bus)라는 규격을 사용하였다. 생긴 것은 PS/2 포트와 유사하지만 키보드 마우스 단자의 구별이 없고, 최대 5개 까지 직렬로 연결이 가능하다. 즉, 현재의 USB처럼 본체에 키보드를 연결한 뒤, 키보드에 달린 ADB 포트에 마우스를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단, 핫 플러깅 기능은 없다. iMac 등장과 함께 USB로 대체되었다.
- 윈도우즈 PC의 키보드에 필수적인 윈도우 키 대신 기능 키로서 ⌘ 기호의 키가 있다. [18]
- PC의 경우 대체로 SCSI가 옵션이었으나 맥은 메인보드에서 이를 기본으로 지원하였다. 따라서, 내장 하드디스크와 (내/외장) CD-ROM 드라이브에 기본적으로 SCSI 장치가 장착되었다. 성능면에서는 당시의 IDE나 AT-BUS 보다 나았으나, 가격이 비쌌다. 결국 PowerPC 맥의 등장을 전후하여 보급형 맥에는 ATA 방식 하드디스크가 탑재되기 시작했으며, ATA의 성능 향상과 더불어 파워맥 G3 후기형 이후의 전문가형 맥에서도 SCSI는 기본 I/O 인터페이스로서의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한편, 노트북 기종에서는 계속해서 IDE(ATA) 방식 하드디스크만 사용되었다.
- 직렬/병렬 포트의 모양도 달랐다. PC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니어서 하위호환성은 가지고 있었으나, 어쨌든 포트 모양은 다르고 PC용 프린터나 외장형 모뎀을 바로 연결할 수는 없었다. iMac 이후 USB를 채택하게 되면서 직렬/병렬 포트 자체가 맥에서 사라진다.
- 애플의 독자적인 규격은 아니지만, 전동식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도 맥의 특징이었다. 데스크탑(=윈도의 바탕화면)의 플로피 디스크 아이콘을 마우스로 끌어다 휴지통에 버리면 모터음이 들리면서 탁하고
마치 토스터기에서 식빵 튀어나오듯디스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는데 이는 참으로 간지나는 모습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 모니터 연결 단자의 모양이 달랐다. '맥마스터'라는 컨버터를 이용하면 IBM 호환 PC용으로만 만들어진 모니터를 연결할 수 있었다. iMac의 등장과 함께 D-Sub와 DVI로 대체되었다.
- 파워맥 G4 ~ G5 시절에는 모니터 연결에 ADC(Apple Display Connector)라는 단자를 이용하였다. DVI와 USB 연결[19], 전원공급을 하나의 케이블로 할 수 있는 규격이긴 하나, 모니터의 전원을 맥이 담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리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현재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 대체로 확장성이 시망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축출된 이후에 만들어진 맥들은 NuBUS 확장슬롯이나 램 추가 슬롯 등이 준비되어 확장성이 부여되었고[20], 1997년 스티브 잡스의
재림복귀 이후에 만들어진 맥들의 경우 PC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확장규격을 채택하여 저렴하게 확장을 위한 부품을 수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본체의 디자인 자체도 손쉽게 분해 및 조립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쉽다'는 것은 애플에서 사용자가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의도한 부분에 한한다. 예컨대 iMac G3의 경우 사용자가 업그레이드가능한 부분인 램의 추가를 위해서는 동전 하나만으로 케이스를 열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인 하드디스크의 교체를 위해서는 수많은 나사를 풀어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친절하게 분해 설명서(단, 애플이 열도록 허락한 부분까지)도 제공한다. 다만, 2013년 2월 현재 레티나 디스플레이 맥북프로나, 맥북 에어처럼 램조차도 로직보드에 납땜되어, 주문시 사양 변경을 제외하면 확장의 여지가 없는 제품들이 몇 존재한다. - 놀랍게도(?) CPU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다만 NuBus나 PDS, PCI 슬롯에 신형 CPU가 장착된 확장카드를 꽂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당연히 소켓에 새 CPU를 꽂는 것과는 다르다.[21] 당연히 이러한 업그레이드를 대체로 달가워하지 않는 애플은 OS 업데이터에 해당 확장카드를 무력화시키는 코드를 숨겨두거나 하기도 해서 문제가 되었다. OS의 판매용 패키지의 요구사양에는 CPU를 업그레이드한 경우를 제외한다는 문구가 명시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 x86칩이 장착된 확장카드도 있었다. 486은 물론 펜티엄 버전까지 출시되었다. 확장카드 위에 IBM 호환기종의 메인보드와 VGA, 사운드카드(사운드 블래스터 호환)를 집적한 다음 맥의 로직보드 위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것(RAM)은 공유하는 방식. 출고 당시부터 이러한 확장카드가 기본으로 장착된 맥을 애플이 직접 판매하기도 하였다.
- 본체의 전원 버튼이 아니라 키보드의 전원 키/버튼으로 on/off가 가능했던 것도 올드 맥 유저들이 기억하는 맥의 간지나는(!) 특징 중 하나.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애플 USB 키보드에 전원 버튼이 존재하였으나, 이후 원가절감(...)을 이유로 사라졌다.
5 성능
CPU 성능은 어차피 비슷한 인텔칩을 사용하니 특별히 뒤떨어질 이유는 없으나, 과거에는 가격 대비 몹시 창렬한 그래픽 성능[22]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그래도 최근 1-2년 새 인텔 내장 그래픽이 엄청난 성능 향상을 이루어낸 결과로, 맥북 프로 레티나 모델은 동시대 경량 노트북 모델과 비교 시 평균적인 수준까지는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는 평.
그러나 본격적인 게이밍에 활용하기는 아직 부족함이 있다. 심지어 최상급 기종인 맥 프로마저도 그래픽 성능이 가격 대비 상당히 떨어진다. 오죽하면 오큘러스 리프트 CEO가 맥 컴퓨터를 지원하고 싶어도 맥 제품중 성능이 제일 높은 맥 프로조차 그래픽 권장사항에 미치지 못할 정도라고 말할 정도. iMac의 경우 21.5인치 제품은 인텔 Iris, 27인치 제품은 AMD M380 내지 M390을 사용하니 VR제품의 살인적 요구사양에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다. 맥 프로를 보자면... 여기에 들어가는 AMD FirePro는 애초에 게임하라고 있는 물건도 아니고.[23] [24]
게다가 밸브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등 macOS 지원을 잘 해 주는 제작사가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맥을 지원하는 게임 소프트웨어의 수 자체가 PC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데다, 그 중에서도 AAA급 타이틀의 경우에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수준이다.[25] 게다가 맥 특유의 고해상도로 인한 그래픽 성능 부하 문제도 있어서, 맥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요구사양이 낮은 인디 게임이나 최적화가 잘 된 캐주얼한 중저사양 게임 정도로 한정되는 것이 현실.
6 기타
매킨토시 128k 발표 키노트. 캐치프레이즈가 매킨토시, 존나좋군?(Macintosh - Insanely Great)이다... 최첨단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 스피치 기능을 탑재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
영화 월E에서 주인공 월E가 태양광으로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나오는 효과음이 바로 매킨토시의 시동 알림음이다.
2014년 1월 24일로 출시 30주년을 맞았다. 애플 공식 사이트에 이를 기념하는 페이지가 신설되었다. 보러가기[26][* 단, 현재는 그냥 이곳으로 연결된다.
6.1 시동음
후면이 투명한 1세대 iMac의 부팅음은 쿼드라 800번대를 우려먹으며 현재의 매킨토시까지 내려오고 있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바탕이 검정색[27]이고, 애플 로고가 중간에 있는 화면이 나오면서 시동음이 나온다.
이 시동음은 미국의 특허상표국에서 애플의 등록 상표로 인정되었다.
또한, 이 시동음은 POST후 나오는 것으로, 시동음 대신 아래의 신호음이나 경고음이 울리는 경우에는 맥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 1개의 신호음이 5초마다 반복: RAM이 설치되지 않음
- 3개의 연속음 이후 5초간 멈춤(이 신호음이 반복): RAM이 데이터 무결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음
- 전원 버튼을 누르는 동안 1개의 긴 신호음: 2012년 전에 제조된 컴퓨터에서 EFI ROM 업데이트가 진행 중임을 나타냄
- 3개의 긴 신호음 뒤에 3개의 짧은 신호음, 다시 3개의 긴 신호음: EFI ROM 손상이 감지되었으며 컴퓨터가 EFI ROM 복구 모드에 있음을 나타냄
자세한 것은 애플 홈페이지 참조
시동음이 꽤 크고 소리 자체도 상당히 잘 들리기 때문에 도서관등에서 울리면 난처하기에 끌수도 있다. 제일 간단하게 끄는 방법은 전원을 끄기전에 맥을 음소거 상태로 놔두는 방법이 있으며, 기타 OnyX같은 설정 변경 앱을 통해 아예 안울리게 만들수도 있다. 또한 시동음의 크기는 마지막으로 맥을 사용했을 때의 음량과 같다. 최대 음량 상태로 사용하다 껐는데 도서관에서 켜야 한다면? 지못미화장실에서 켠 다음 가져오면 안되나?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우고 써도 된다
6.2 Sosumi
말 그대로 나 고소해라(So Sue Me). 그당시 애플 컴퓨터와 애플과의 트레이드마크 분쟁속에서 애플 사운드 매니저 엔지니어였던 Jim Reekes가 새로이 만든 경고음에 이 이름을 붙였다. 1991년 시스템 7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은 경고음이며, 또한 애플 웹 페이지의 법적 항목의 CSS 클래스 이름이 Sosumi이기도 하다(...) 너 고소가 괜히 너 고소가 아니었다 참고로 윗항목의 시동음도 Jim Reekes가 만들었다.
7 모델
7.1 1984년 ~ 1989년
- 매킨토시 128K (1984) - 맨 처음 모델. 최초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컴퓨터다. 길다. 램 용량이 128K고 CPU는 8Mhz MC68000으로 요새 보면 웃기는 스펙이지만 당시로써 크게 부족한 스펙은 아니었다. 다만 램은 많이 부족해서 나중에 512K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 매킨토시 XL (1985)
- 매킨토시 플러스 (1986)
- 매킨토시 II (1987 ~ 1992)
- 매킨토시 SE (1987 ~1989)
- 매킨토시 포터블 (1989) - 흑역사
7.2 1990년 ~ 1997년
- 매킨토시 클래식 (1990 ~ 1993)
- 파워북 1xx (1991), 파워북 듀오 (1992), 파워북 5xx, 파워북 1400, 2400, 3400, 5300
- 매킨토시 LC (1990 ~ 1993)
- 매킨토시 쿼드라 (1991)
- 매킨토시 퍼포마 (1992 ~ 1997) - 별개의 기종은 아니고, 기존에 있는 모델들을 백화점 판매용으로 리네이밍한 것. 파워 매킨토시 시기까지 나왔다.
- 매킨토시 센트리스 (1993)
- 매킨토시 TV (1993) - 흑역사.
- 파워 매킨토시 (1994)
- 파워북 5300 (1995) - 최초의 Power PC 장착 모바일 기종. 최초로 소니제의 리튬이온전지를 채택하였으나, 잇다른 화재로 리콜되어 결국 니켈-카드뮴 축전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 파워북 듀오 2300 (1995) - 파워북 5300과 같이 등장한 기종으로 이쪽은 최초의 Power PC 기반 장착 서브노트북이며 파워북 듀오 라는 명칭을 사용한 마지막 기종이다.
- 파워북 1400 (1996)
- 파워북 3400 (1997)
- 파워북 2400 (1997) - IBM과 공동작업을 통해 디자인되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 노트북. 맥북 에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동안 서브 노트북이 없었던 매킨토시 시리즈였던 관계로, 이 제품을 그리워하는 맥 사용자들이 많았다.
- 20주년 기념 매킨토시 - 1997년에 나온 애플 20주년 기념모델. 전 세계적으로 12000대만 생산된 한정판.
7.3 1997년 ~ 2006년
- 파워북 G3/G4 (1997 ~ 2006) G4 기종은 티타늄과 알루미늄 소재로 되어서 TiBook. AlBook 등의 별명이 붙었다.
- 아이북 (1999 ~ 2006)
- 파워 맥 G3/G4/G5 (1997 ~ 2006) 2013년까지 생산되었던 타워형 맥 프로의 디자인이 여기서 이어진 것이다.
- 아이맥 G3/G4/G5 (1998 ~ 2006)
- 아이맥 G4 (2001)
- 맥 미니 G4 (2004 ~ 2006)
- 엑스서브 G4/G5 (2003 ~ 2006)
7.4 2006년 이후 제품 중 단종된 모델
- 엑스서브 (2006 ~ 2011)
- 맥북#s-1.1 (2006 ~ 2011)
7.5 현재 모델
8 참조 문서
- ↑ 2009년 이후로 iMac의 새 포장에 나온다고 한다
- ↑ 이 물건에서 PS/2 따위는 건너뛰고 바로 USB를 채택.
- ↑ 공식 발음은 "오에스 텐"이다. "엑스"가 아님
- ↑ Microsoft Office에 들어 있는 그 엑셀 맞다. 지금은 윈도우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되었지만 초창기만 해도 맥의 중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 ↑ 이 회사는 1980년대 초,중반에도 삼보컴퓨터의 8비트 컴퓨터 및 엡손 프린터를 판매해 왔는데 이 때에도 닥치고 고가정책으로 유명했다. 단순히 애플 II 호환기종 이상도 이하도 아닌 컴퓨터를 똑같은 타 중소기업(세운상가 매장 수준이 아닌 중소기업 수준의 회사. 80년대 초에는 삼보컴퓨터도 대기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품보다 2배 이상 되는 가격으로 판매했음은 물론 EPSON 프린터도 현지 가격보다 상당한 고가로 팔았다. 참고로 엡손 프린터의 가격은 80년대 말 병행수입품이 들어오면서 가격이 내려갔다.
- ↑ 단 이것은 비행기값같은 걸 제외하면 현재도 일부는 유효하다. 다만 당시에는 비행기표 값과 공항에서 무는 관세를 감안해도 맥을 한국에서 사는것보다 그편이 더 쌌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 ↑ 참고로 당시 광고 모델은 배우 박형준이다.
- ↑ 여담이지만 이후 엘렉스 컴퓨터는 애플코리아가 생긴 이후 맥에서 손을 떼고 다른 사업에 손을 댔지만 큰 타격을 입고 회사가 쪼그라들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사명은 변경되었다. 당시 엘렉스는 비싸기만 한게 아니라 서비스도 평이 좋지 못 했기에 당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엘렉스가 어려워졌다는 말을 듣고 환호했다.(...)
- ↑ 일단 업무용으로 쓰기에는 윈도우에 한참 못 미치고, 그렇다고 리눅스 계열처럼 서버로 쓰일 수 있을만큼 개방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폐쇄성의 극을 달리고 있으니. 그나마 믿던 그래픽 부분도 서서히 윈도우로 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QuarkXPress. 클래식 맥만 써야하는데, 클래식 매킨토시 마지막으로 나온것이 2003년의 파워맥 G5. 게다가 수랭식 쿨러가 터져서 전체가 맛이 가는 경우도 흔하다. 그 이전 모델은 90년대 물건. 1GHz도 못 넘는 경우가 많다.
- ↑ 사실, 클래식 Mac OS 시절부터 인텔 칩 위에서 돌아가는 Mac OS가 개발중이라든가 하는 루머는 끊임없이 있었고, 심지어 거의 실제로 작동하는 버전이 나왔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죽였다(...)는 등의 루머도 있다. x86 버전이 정식으로 출시되었던 NeXTStep이었기에 인텔칩 장착 루머는 더욱 힘을 얻게 된 것이다.
- ↑ 2010년대 CPU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지금은 수랭 쿨러 자체를 잘 안 쓴다. 냉각 효과는 좋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냉각수가 새면 컴퓨터가 빠른 전멸을 시전한다. 가격도 상당해서, 공랭식 쿨러는 금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10만 원을 넘는 물건이 희귀하지만 수랭은 집에서 락앤락과 어항펌프로 만들어도 10만 원이 우습게 넘는다. 커세어같은 유명 업체의 완성품은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한편 파워맥도 누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해서, 실제로 누수로 인해 녹슬어 고장나는 파워맥이 많았다.
- ↑ 128MB에서 많게는 1GB까지도 나왔다.
- ↑ '누 버스'라고 읽는다.
Nu ABO? - ↑ 물론 일부 모델들간의 PDS 슬롯은 규격이 같기도 하다.
- ↑ AGP/PCI-E 카드는 해당 슬롯이 장착된 기기라면 일단은 꽂아서 사용할 수 있다. 드라이버가 있다면 말이지만. 더구나 PCI-E는 더 범용적이다(요즘 나오는 메인보드만 하더라도 PCI-E가 최소 2개 이상 존재하며, 크로스파이어/SLI를 위해서 PCI-E 16x 슬롯이 복수 존재하는 모델도 많음을 상기하자).
- ↑ NuBus와 달리 PDS는 그저 CPU에서 선을 하나 뽑아놓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 ↑ 예컨대 TV 수신 카드. 1990년대 중반에는 멀티미디어 붐으로 인해 TV 수신카드나 AV 출력카드가 인기있는 옵션이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기능이 기본제공되면 본체 가격이 올라가고 당연히 소비자는 구입을 주저한다.
- ↑ 컴퓨터 보급의 아주 초창기부터 애플 제품을 사용해온 나이 지긋하신 올드 유저들 중 일부는 이 키가 하필이면 당시 여당이었던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 로고와 비슷해 '민정당 마크'라는 흠좀무한 이름으로 불렀다.
- ↑ 애플이 제작하는 모니터에는 USB 허브가 장착되어 있었다.
- ↑ 원래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확장성을 부여하기 원하지 않았고, 가전제품과 같은 맥을 만들기 원하였다. 확장성이 생기는 순간 하드웨어의 통일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임기들이 PC보다 낮은 하드웨어 사양으로 성능을 100% 뽑아내고, 골치아픈 설정 따위 필요 없는 것은 하드웨어의 통일성 때문이다.
- ↑ 어차피 PowerPC 칩을 개인이 사는 것도 불가능하고, 상당수의 맥은 CPU를 로직보드에 납땜하는 식으로 만들어졌기에 PC와 같은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했다.
- ↑ 맥은 OpenGL기반인데 매버릭스 이전까지 OpenGL3.x대 버전만 지원하고있었다.
심지어 라이언 이전에는 2.1까지만 지원ㄷㄷㄷ이미 4.x버전이 출시되고 맥에 들어가는 그래픽카드도 전부 4.x를 지원하는데도 os에서 지원을 안해줘서 못쓰는개같은 경우. 동시대 리눅스보다도 그래픽성능이 딸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현재는 최신버전을 지원하면서 같은 OpenGL기반인 리눅스등의 OS와 동등하다. 단 opengl보다 윈도우 전용 그래픽 라이브러리인 directX가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이 문제. - ↑ http://macnews.tistory.com/4234
- ↑ http://petapixel.com/2016/04/25/4k-pc-trounces-4k-imac-photography-speed-test/
- ↑ 대표적으로 블리자드의 2016년 히트작인 오버워치가 맥을 지원하지 않는다.
- ↑ 여담이지만 타임라인에서 1988년을 보면, 한국 시각디자이너 안상수씨의 이야기도 나와있다.
- ↑ 원래 회색이었지만, OS X v10.10 요세미티부터 신형 모델들을 중심으로 검정색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