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 |
RC Deportivo de La Coruña | |
정식 명칭 | Real Club Deportivo de La Coruña, S.A.D. |
창단 | 1906년 3월 2일 |
소속 리그 | 프리메라 리가 (La Liga) |
연고지 | 갈리시아 주 라 코루냐 (La Coruña) |
홈구장 | 에스타디오 리아조르 (Estadio Riazor) 34,600명 수용 |
회장 | 티노 페르난데스 (Tino Fernández) |
감독 | 가이스카 가리타노 (Gaizka Garitano) |
애칭 | Brancoazuis (청색과 백색), Turcos (터키사람들) |
리그 우승 | 프리메라 리가 (1999~2000) 코파 델 레이 (1995, 2002) |
유럽대회 | 챔피언스리그 4강 (2003~2004) UEFA컵 4강 (1995~96) |
공식 홈 페이지 | [1] |
1 소개
스페인 서북부에 위치한 갈리시아 주에서도 가장 북서 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 라 코루냐를 연고로 둔 축구 클럽. 갈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 높은 팀이다. 라이벌 RC 셀타 데 비고를 콩라인으로 만들고, 레알 & 바르샤 양강 체제를 뚫으며 프리메라 리가 우승을 해본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로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리즈 시절이었다.
● 시즌 별 현황
1988년: 아우구스토 세자르 렌도이로, 갈리시아 지역의 무명클럽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회장으로 취임.
1991년: 20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 무대로 복귀.
1991년: 렌도이로, '수페르-데포르티보'의 개막을 선언. "레알 마드리드, 바르샤, 그리고 우리가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움.
1992년: 렌도이로, 브라질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 베베토와 마우로 실바를 총 350만 유로에 영입.
92-93 시즌: 프리메라 리가 3위 등극. 클럽 역사상 첫 유럽 무대 진출. 베베토는 29골로 프리메라 리가 득점왕 등극. 클럽 역사상 첫 득점왕 배출.
93-94 시즌: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 발렌시아와의 38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종료 직전 듀키치가 페널티킥을 실축. 우승 목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타이틀을 헌납.
94-95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클럽 역사상 첫 타이틀 획득. 그와 동시에 두 시즌 연속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 스페인의 신흥 강호로 급부상.
95-96 시즌: 데포르티보, 유럽 컵 위너스 컵(현재 UEFA 컵 통합) 4강 진출. 그러나 유럽 무대 병행과 일부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로 인해 리그는 9위로 마감. 베베토는 데포르티보를 떠나 브라질로 컴백.
96-97 시즌: 프리메라 리가 3위. 700만 유로에 영입된 히바우두가 시즌 21골을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킴.
1997년 여름: 이적 시장 마감일에 바르셀로나가 히바우두의 바이-아웃 2550만 유로를 지불하며 그 유명한 '히바우두 사건'을 일으킴. 히바우두 중심으로 97/98 시즌을 구상하던 데포르티보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치명타. 데포르티보-바르셀로나 간의 관계 또한 급속도로 악화.
97-98 시즌: 히바우두 잃은 데포르티보는 프리메라 리가 12위로 추락. UEFA 컵에서도 1라운드 탈락.
98-99 시즌: 하비에르 이루레타 취임. 데포르티보를 새로운 팀으로 리빌딩하기 시작. 프리메라 리가 6위 등극 & UEFA컵 진출권 획득.
99-00 시즌: 구단 역사 상 첫 프리메라 리가 우승. 자우밍야, 로이 마카이, 빅토르 산체스, 마누엘 파블로 등이 '뉴 제너레이션' 구축.
2000년 여름: 렌도이로, '유로-데포르티보' 정책 선언. 후안 카프데빌라,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디에고 트리스탄 등의 영입에 4000만 유로 가량 투자.
00-01 시즌: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8강.
01-02 시즌: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8강.
02-03 시즌: 프리메라 리가 3위. 챔피언스 리그 16강.
03-04 시즌: '리아소르의 기적'을 일으키며 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 프리메라 리가 3위.
2004년 여름: 천문학적인 부채로 인해 긴축 정책 선언. 로이 마카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
04-05 시즌: 프리메라 리가 8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탈락.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 자신 사퇴.
05-06 시즌: 프리메라 리가 8위. '유망주들의 아버지'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을 중심으로 리빌딩 시작. 하지만 전술적·정신적 지주 발레론의 부상으로 치명타.
2006년 여름: 렌도이로, '베이비-데포르티보' 정책 선언. 자유계약 선수, 명문 클럽 유스팀 선수들 위주로 리빌딩 단행.
06-07 시즌: 후반기 옅은 스쿼드를 실감하며 13위로 시즌 마감. 선수 및 구단 운영진과 사이가 틀어진 호아킨 카파로스는 자신 사퇴.
2007년 여름: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미구엘 앙헬 로티나 취임. 하지만 안드라데, 카프데빌라 등 주축 선수들의 이적으로 믿었던 수비진도 붕괴. 렌도이로는 히든 카드로 멕시코 신성 안드레스 과르다도 영입에 700만 유로에 영입. (이후 데포르티보 재정은...)
07-08 시즌 전반기: 20라운드까지 19위에 머물며 유력한 강등 후보로 지목.
07-08 시즌 후반기: 21라운드 바야돌리드 전 로티나는 5-2-2-1 포메이션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단행. 이후 세비야 FC(홈) 승리, 발렌시아 CF(원정) 무승부, FC 바르셀로나(홈) 승리, 레알 마드리드 CF(홈) 승리를 비롯해 수직 상승세를 달리며 8위로 시즌 마감. 인터토토 컵 통해 UEFA 컵 진출.
2008년 여름: 07-08 시즌을 통해 크게 성장한 필리페 루이스와 안드레스 과르다도를 중심으로 진정한 '베이비-데포르'로 거듭남.
08-09 시즌: 프리메라 리가 7위. UEFA 컵 32강 진출.
09-10 시즌: 프리메라 리가 10위. 전반기 4위~6위를 맴돌며 밝았던 시즌 전망. 2010년 1월, 팀의 핵심 과르다도와 필리페가 동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후반기 급격히 추락.
2010년 여름: 팀의 핵심 필리페 루이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 몰락의 서막
10-11 시즌: 프리메라 리가 19위. 20년 만의 강등. 미구엘 앙헬 로티나 감독 자진 사퇴. (시즌 막판 발레론이 고군분투 했지만...)
2011년 여름: 호세 루이스 올트라 취임. 세군다 리가로 강등에도 불구하고 더 뜨거워진 팬들의 성원. 쏘시오(연간 회원)의 수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 세군다 리가 통틀어 10위. 한편 안드레스 과르다도, 디에고 콜로토, 라우레 그리고 아란수비아까지 핵심 선수들의 잔류 선언.
11-12 시즌: 세군다 리가 1위 & 승격. 최다 승점 & 연승 기록을 갈아치움.
12-13 시즌: 프리메라 리가 18위. 구단 역사 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감독이 2번 바뀜. (호세 루이스 올트라->도밍고스 파시엔시아->페르난도 바스케스). 페르난도 바스케스 부임 후 브루누 가마의 맹활약에 힘입어 연승 행진을 달리기도 했으나 최종전 레알 소시에다드에게 0:1로 패하면서 강등 확정.
2013년 여름: 극심한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 3부 리그 다이렉트 강등 위기. 말이 3부 리그지 데포르티보라는 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사건.
2013년 겨울: 투표 결과로 티노 페르난데스가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
13-14 시즌: 세군다 리가 리가 2위 & 승격
2014년 여름: 티노 페르난데스 구단주, 의견 차이로 인해 승격을 이끈 페르난도 바스케스의 갑작스런 해임. 과거 사라고사를 이끈 빅토르 페르난데스 선임.
14-15 시즌 전반기: 승격팀 치곤 나쁘지 않은 행보. 하지만 계속된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강등권으로 추락. 빅토르 페르난데스 경질.
14-15 시즌 후반기: 15년 4월, 데포르티보의 황금기를 이끈 빅토르 산체스 부임. 최종전 캄프 누에서 0:2에서 2:2 극장을 만들어 내며 기적 같은 잔류.
15-16 시즌~현재: 빅토르 산체스=레전드의 귀환. 겨우 강등을 면한 클럽 치곤 믿기지 않는 행보. 라 리가 구단 중 최소 슈팅 허용 및 바르셀로나와 함께 최소 패 기록 중. 꾸준히 중상위권에 랭크.
▶ 갈리시아 더비
- 가장 큰 라이벌은 RC 셀타 데 비고로, 갈리시아 더비라고 부른다. 스페인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다. 이는 정치적 성향과도 연관이 있는데 셀타의 팬들은 갈리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이 짖은 반면 데포르티보 팬들은 그렇지 않다. 셀타 팬들은 데포르티보 팬들을 향해 터키인 혹은 포르투갈인이라며 조롱한다. 데포르티보와 셀타가 한창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두 클럽과 라 리가를 대표했던 자우밍야(데포르티보)와 모스토보이(셀타)의 대립 구도는 흥미진진했고 경기 도중 말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01/02 시즌 데포르티보의 홈 구장 리아소르에서 열린 시즌 첫 갈리시아 더비에서 큰 사고가 일어난다. 셀타의 지오바넬라가 마누엘 파블로에게 거친 태클을 가했는데 마누엘 파블로는 정강이가 두 동강 나는 중상을 당한 것이다. 너무나 끔찍한 장면이라 사진이나 영상은 알아서 찾아볼 것. 이후로 과거 만큼 거칠지는 않아졌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뜨겁다.
- 셀타의 강등으로 한 동안 갈리시아 더비는 열리지 않았다가 데포르티보가 10/11 시즌을 끝으로 세군다 리가로 강등 당하며 11/12 시즌 오랜만에 갈리시아 더비가 열렸다. 경기장이 텅텅 빈 세군다 리가임에도 두 번의 더비 다 경기장이 꽉 찬 진풍경을 연출했다. 스페인의 인기 축구 방송 Punto Pelota도 이를 심도있게 다뤘을 정도. 갈리시아 어로는 O noso derbi(우리들의 더비)로 불리며 최근 들어선 과거 만큼 험악하진 않다. 가장 최근 더비를 맞아 갈리시아 정부가 만든 홍보 영상도 있다. 굉장히 훈훈하다. https://youtu.be/XgS-HDYnCsQ
- 최근 또 다른 갈리시아 지역의 구단 루고가 세군다 리가에서 안정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13/14 시즌 새로운 갈리시아 더비가 탄생했다! 더비가 무색하게 분위기는 굉장히 평화롭다.
▶ 에스타디오 무니시팔 데 리아소르
- 레알 마드리드는 리아소르를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너뜨리지 못했고, 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과 준우승팀인 AC 밀란과 유벤투스 또한 이 곳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맛봐야 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장엄함도, 누 캄프의 웅대함도 갖추고 있지 못한 이 자그마한 구장은 오직 34,000명의 관중 만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마력'을 지니고 있다. 리아소르가 갖고 있는 이 마력의 원천은 바로 '가족이나 다름 없는 12번째 선수들'에게 있다. 누 캄프 만큼의 대군은 아니지만, 클럽을 향한 애정으로 넘쳐나는 소수정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리아소르 구장을 '철옹성의 요새'로 불리우게끔 만든다. 이런 이유들로 리아소르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레알 마드리드)와 누 캄프(바르셀로나)를 비롯해 비센테 칼데론(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메스타야(발렌시아) 그리고 산 마메스(아슬레틱 빌바오)와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은 경기장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15/16 시즌 들어 과거 리아소르의 분위기를 되찾고 있다.
2 거쳐간 선수
데포르티보를 거쳐간 선수들의 특징이 있다. 하나 같이 네임 벨류는 떨어지지만 재능 하나 만큼은 뒤쳐지지 않는 선수들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흙 속에 가려진 진주들처럼 말이다.
▶베베토: 호마리우와 투톱으로 뛰면서 94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아기 안기 세레모니로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데포르티보 레전드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131경기 출장 86골을 기록했다. 베베토의 조상은 데포르티보의 연고지인 갈리시아 출신이었다. 활약도 활약이지만 갈리시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팬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데포르티보 팬들의 가슴 속엔 호마리우보다 위대한 스트라이커.
▶마우로 실바: 레돈도와 과르디올라와 함께 90년대 프리메라 리가 수비형 미드필더 삼대장. 왕성한 스태미너와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30대 중반까지 데포르티보의 중원을 든든히 받쳐줬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수비진을 보호하는 능력 만큼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수준급의 키핑력과 패싱력은 덤.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는 평. 다만 공격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의 특수성으로 인해 젊을 시절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이 늘어난 90년대 후반부터 재조명 받는 중이다.
- 존 토샥(리버풀의 스타 플레이어 & 웨일즈 출신의 명장)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적토마와 같다."
- 스페인 언론들 "근래 역사를 통틀어, 클로드 마켈렐레 만큼 훌륭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마우로 실바 정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 당시 마켈렐레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무쌍을 쌓을 시절
- 리아소르의 기적 당시 카카를 완전히 지워버린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카카는 21살, 마우로 실바는 36살.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자우밍야: 브라질 출신의 희대의 테크니션. 화려한 발재간으로 큰 명성을 떨쳤는데 호나우지뉴가 등장할 당시 제2의 자우밍야라고 불렀을 정도. 우리가 봤던 호나우지뉴가 했던 등 패스나 필립 플랩 같은 기술은 이미 자우밍야가 먼저 하고 있었다. 사포를 가장 실용적으로 쓴 선수기도 하다. 스페셜 보면 레알 수비진을 바보로 만드는 사포 패스가 나온다. 어쨌든 99-00 시즌 데포르티보의 라 리가 우승을 이끈 장본인이다. 98-99 시즌 6위하던 팀을 우승으로 이끈 정말 신들린 활약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 시즌 활약상만 놓고 봤을 때 자우밍야>히바우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승선이 유력했으나 당시 데포르티보 감독 하비에르 이루레타에게 훈련 도중 박치기를 했다. (지단보다 박치기도 먼저 했다!) 이 사건으로 스콜라리 감독에게 미운 오리로 전락하며 최종 명단에서 탈락당했다.
▶도나토: 브라질 출신이나 스페인 국대를 지낸 수비형 미드필더 겸 중앙 수비수. 데포르티보 우승 당시 나이가 36세였지만 왕성한 스태미너로 우승을 견인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 받던 모로코 국적의 누레딘 나이베와 아프리카 최고의 골키퍼 송고 역시 우승 멤버로 데포르티보의 첫 황금기를 이끈 장본인이다. 이 외에 모로코가 낳은 테크니션 무스파타 하지와 바시르도 있다.
남미: 우루과이 국적의 스트라이커이자 비운의 아이콘 왈테르 판디아니,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베컴 발등을 부러트려 유명해진 알도 두세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지낸 멀티 플레이어 리오넬 스칼로니가 있다. 뉴캐슬의 주장 파브리시오 콜로치니도 데포르티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유럽 출신으론 아재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추억의 선수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임팩트가 강한 선수들만 추려보았다.
▶파울레타: 포르투갈 부동의 원톱 그 파울레타가 맞다. 로이 마카이에 가려지고 디에고 트리스탄이 새롭게 이적하면서 보르도로 팔려갔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41경기 12골을 기록했다.
▶디에고 트리스탄: 라울과 함께 당시 가장 재능 있는 공격수. 정말 재능 만큼은 모리엔테스<트리스탄이었다. 01/02 시즌 21골로 라 리가 득점왕에 오른 경력이 있다. 떡대지만 보기와 달리 매우 기술적인 선수였다. 15년 전, 사커라인의 한 아재는 디에고 트리스탄을 보고 최전방 호나우지뉴라고 칭하기도 했다. 제공권은 물론 드리블 돌파도 되고 가끔 터지는 중거리 포는 통쾌상쾌 그 자체였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스페인 대표팀의 No.10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펠레가 2002년 월드컵 득점왕 후보 0순위로 디에고 트리스탄을 뽑는 대재앙이 발생한다. 귀신 같이 트리스탄은 조별 예선 첫 경기 파라과이 전에서 부상으로 실려나갔고 이후 퇴물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펠레의 저주라기 보단 선수 시절 이미 게으른 천재로 유명했으며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것이 크다. 퇴물 소리를 듣던 때도 간간히 예전 클래스를 보여주며 팬들을 희망 고문했다. 전성기가 짧았지만 짧았던 만큼 굵기도 했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237경기 출전 101골을 터트렸다. 데포르티보를 떠난 후에도 꾸준히 리아소르에 경기를 관전하러 오는 선수 중 한 명. 빅토르가 감독이 된 후로는 더 자주 보인다.
▶로이 마카이: 바이에른 뮌헨 시절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데포르티보의 우승 멤버기도 하다. 잠수를 타다가도 골 찬스가 있으면 귀신 같이 나타나 골망을 흔드는 선수로 유명했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02/03 시즌 29골로 라 리가 득점왕에 오른 경험이 있다. 로이 마카이와 디에고 트리스탄 투 톱에 발레론 내지 자우밍야가 받쳐준다면 라 리가 최고라는 떡밥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저렇게 나온 적이 있지만 결과는 딱히 좋지 않았다. 긴축 정책으로 신음하던 데포르티보는 고심하던 끝에 디에고 트리스탄 대신 로이 마카이를 이적시키기로 결정하고 결국 2003년 여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여기서 한 번 더 느끼는 트리스탄의 위대함. 어쨌든 로이 마카이는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163경기 87골을 터트렸다.
- 08-09 시즌 UEFA 컵을 통해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로이 마카이는 리아소르로 돌아왔다. 당시 팬들은 "Te quiero Makaay!(사랑해요 마카이!)"를 외치며 그를 뜨겁게 맞이했다.
▶알베르트 루케: 원래는 스트라이커지만 03/04 시즌 왼쪽 윙어로 보직 변경 후 포텐이 제대로 폭발했다. 당시 세리에 A의 신성이 카카였다면 라 리가의 신성은 알베르트 루케였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와 강력한 왼발 슛 그리고 투우 세레모니는 루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리아소르의 기적 당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AC 밀란을 박살냈다. 스페인 대표팀으로는 2002 월드컵과 유로 2004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2006 월드컵 조별 예선 리투아니아 전에 중거리 슛으로 스페인을 탈락 위기에서 구해내는 등 2000년대 중반 스페인 최고의 왼발 잡이로 떠올랐으나 뉴캐슬 이적 후 이적한 후 소리 없이 증발했다. 말라가에서 10-11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후 2011년 스페인의 인기 축구 방송 Punto Pelota의 패널로 활동할 때 갈리시아 더비 관련 영상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루케는 "내 축구 인생 중 가장 행복했고 리아소르의 기적, 셀타 비고와의 갈리시아 더비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백만 데포르티보 팬들의 근원, 백만 데포르티보 팬들의 상징, 데포르티보의 혼 그 자체다. 마치 스타크래프트 해설위원이었던 김캐리의 캐리어 같은 존재라 보면 된다. 김캐리가 송병구 그리고 허영무의 캐리어에 열광했듯 3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서도 발레론이 보여주는 볼 터치, 패스 하나하나에 데포르티보 팬들은 열광할 정도로 클래스는 여전했다. 데포르티보 팬들에게 발레론은 이토록 큰 존재였다. 12/13 시즌 최종 라운드 레알 소시에다드 전이 끝난 후, 그가 두 번이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한 책임감에 눈물을 흘리던 마지막 모습은 팬들에게 너무나도 가슴 아픈 순간으로 남아있다.
- 현역 시절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선수였다. 스페인 언론에선 "스페인은 두 가지 팀이 존재한다. 하나는 라울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과 다른 하나는 발레론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전성기 시절은 대단했다. 다만 소속 팀의 네임 벨류와 라울의 절대적 영향력으로 인해 주목을 덜 받았을 뿐. 그를 지도한 이루레타는 발레론이 데포르티보가 아닌 다른 클럽에서 뛰었더라면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 이니에스타와 다비드 실바, 사비 알론소가 선배이자 동료로 영감을 받은 선수로 유명하다. 특히 다비드 실바와는 동향으로 가까운 이웃이다. 다비드 실바는 자신이 21번을 고집하는 이유로 바로 발레론을 뽑았다. 발레론은 데포르티보 시절 그리고 지금 라스 팔마스에서도 21번을 달고 있다.
- 데포르티보 팬들에겐 지네딘 지단이나 후안 로만 리켈메보다 더 위대한 플레이메이커로 남을 레전드. 12/13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우리 형 호날두는 발레론의 조율 능력에 놀라움을 표했고 나이에 한 번 더 놀란 장면이 El Dia Despues에 잡혔다.
- 흔히 리켈메가 최후의 플레이메이커라 하지만 최후의 플레이메이커는 발레론이다. 두 번의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은퇴의 기로 앞에 서기도 했으나 만 40세가 된 지금도 라스 팔마스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기 때문. 최근 캄프 누 원정에서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만 40세가 되도록 현역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기 관리가 뛰어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정도면 세리에 A의 토티처럼 라 리가의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드레스 과르다도: 무너져가던 데포르티보를 잠시나마 끌어올린 멕시코의 간판 스타. 당시 소속팀 아틀라스 및 멕시코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으로 특급 유망주로 명성이 자자했다. 과르다도의 입단식엔 3,000명의 팬들이 몰려왔고 멕시코 전역에 생중계 되기도 했다! 큰 기대 만큼 성장하진 못했지만 필리페 루이스와 함께 2000년대 후반 데포르티보의 아이콘. 특히 과르다도-필리페의 왼쪽 라인은 라 리가 최고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10-11 시즌 강등에도 불구하고 잔류하는 충성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맹활약으로 데포르티보의 승격에 크게 일조했다.
▶프란 곤살레스: 라 코루냐에서 태어나 축구 인생 한 평생을 데포르티보에 바친 레전드. 데포르티보의 10번이자 주장으로서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빠르진 않았으나 재간둥이 스타일의 왼쪽 윙어였다. 그가 스페인 대표팀으로 데뷔하던 날, 라 코루냐 시민들이 갖는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인구 20만의 소도시 라 코루냐에서 프란은 누군가에겐 친구이자 누군가에겐 친아들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은퇴 후엔 뚜렷한 행적이 없다.
▶빅토르 산체스: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 라싱 산탄데르를 거쳐 데포르티보에 입성한 후 루이스 피구, 호아킨 산체스와 함께 꾸준히 라 리가 최고의 우측 자원으로 평가 받았다. 면도날 크로스와 속 시원한 중거리 포는 빅토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06년 데포르티보를 떠나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 그 후 세군다 리가의 엘체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당시 헤타페의 감독이었던 미첼의 수석 코치로 세비야, 올림피아코스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작년 여름 미첼과 결별한 후 감독직을 구하다가...
강등 위기에 직면한 데포르티보로 9년 만에 돌아왔다. 감독 경력이 없었음에도 팬들은 빅토르가 팀을 강등에서 구해낼 것이라 굳게 믿었다. 빅토르는 14/15 시즌 데포르티보를 잔류시킨 후 15/16 시즌 데포르티보를 중상위권으로 이끌며 팬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야말로 레전드의 귀환.
▶마누엘 파블로: 지난 10년 간 데포르티보의 주장 완장을 차고 있다. 투철한 프로 정신을 바탕으로 만 39세인데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이번 15/16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절친 발레론과 함께 누가 더 먼저 은퇴하는 지 내기를 했다고 한다!
- 마누엘 파블로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카푸, 하비에르 사네티와 함께 세계 최고 라이트 백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01/02 시즌 갈리시아 더비에서 정강이가 부러진 중상을 당한 후부터는 평범한 선수가 되어버렸다. 2002 월드컵 당시 수비 능력이 부족한 미첼 살가도, 2% 다듬어질 필요가 있는 푸욜보다 한 수위라는 평가를 받으며 닥주전인 듯 했으나... 큰 부상 한 번에 훅 가버렸다. 어쨌든 그의 부상이 스페인 우측 풀백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것만은 확실하다.
▶필리페 루이스: 과르다도와 함께 무너져가던 데포르티보를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렸던 구세주. 원래 수비력이 부족하다고 까였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미구엘 앙헬 로티나 지도 하에 수비력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08/09 시즌을 기점으로 프리메라 리가 최고의 레프트 백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동안 데포르티보 팬들은 필리페 루이스를 엄청 그리워 했지만 팀이 잘 나가다보니 요즘은 덜 해졌다. 본인도 데포르티보보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더 좋아하는 듯.
▶후안 카프데빌라: 비야레알 시절로 잘 알려져 있지만 데포르티보에서도 7년 간 활약했다. 엔리케 로메로에게 밀려 오랜 시간 로테이션에 그치다가 05-06 시즌부터 뒤늦게 포텐이 폭발해 06-07 시즌에 이르러선 라 리가 최고의 레프트 백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시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넓혀가며 유로 2008과 2010 월드컵 우승 당시 주전 선수였다. 03-04 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한 프리킥은 그가 남긴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다. 데포르티보를 떠난 후에도 꾸준히 리아소르에서 관전하러 오는 선수 중 한 명.
▶조르제 안드라데: 유벤투스 팬들에겐 사이버 선수. 그러나 데포르티보 시절엔 정상급 수비수였다. 잠시 포르투갈의 주장이기도 했으나 그 시절이 하필 게임에만 존재하던 유벤투스 시절이라 안타까울 뿐. 여담으로 발렌시아의 전 감독 누누도 데포르티보 소속이었는데 누누 같은 경우는 부상도 아니었는데 경기장에서 보기가 힘들었다!
▶프란시스코 몰리나: 유로 2000 노르웨이 전 저지른 실수로 인해 스페인 국대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라 리가에선 언제나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였다. 포효하는 모습이 멋있다. 고환암을 이겨낸 인간 승리자라고도 유명한데 호나스 구티에레스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그러고보니 호나스 구티에레스도 데포르티보 소속.
3 근황
티노 페르난데스가 구단주로 부임한 후 2014년부터 데포르티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맨 출신 답게 사업 수완이 뛰어나다. 그로인해 재정이 안정을 되찾았다! 이번 여름엔 루카스 페레스 영입에 150만 유로나 투입했다. 라 리가 대표 거지 구단에서 이젠 어느 정도 돈을 쓸 수 있는 중산층으로 신분 상승.
팬들과 소통을 중요시한다. 티노 페르난데스는 구단주이기 앞서 데포르티보가 무명일 때부터 좋아했던 열혈 팬이다. 그래서 구단주지만 같은 팬의 입장에서 선수들과 팬들이 가까워 질 수 있는 각종 행사를 라 코루냐 시나 일반 기업들과 협력해 자주 열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 유투브,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구단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팬들과 한 층 가까워지다보니 평균 관중수도 지난 시즌들에 비해서 상당히 많아진 편이다. 최근에는 홈 경기가 있을 시 라 코루냐 교외에 거주하는 팬들의 교통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셔틀 버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구단주로서 열정이 대단하다.
신흥 강호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했다면 최근엔 동네북에서 다크 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감독인 빅토르 산체스. 선수 시절 대부분을 데포르티보에서 보낸 만큼 구단의 상황에 빠삭하다. 그래서 적응 기간 없이 빠르게 팀을 잘 추스릴 수 있었다. 레전드다 보니 구단 운영진에게도 말빨이 사는 느낌인데 스페인 구단의 특성이 있다면 구단주나 운영진이 선수 영입에 있어 입김이 쎄다는 점이다. 근데 이번 여름 영입건들을 보면 빅토르 산체스 감독이 원하는 선수들만 골라서 샀고 시즌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전력 보강의 90%를 마쳤다. 물론 스포팅 디렉터와 얘기가 오갔겠지만 과거와 달리 감독의 의견이 크게 반영한 느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빅토르가 데려온 선수들이 모두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데포르티보는 15/16 시즌 꾸준히 유로파 리그 순위권에 걸치고 있다. 조직적인 압박과 빠른 역습이라는 확실한 팀 컬러가 있다. 여기에 리그 최소패와 경기 당 최소 슈팅을 하고 있는 수비진의 맹활약과 루카스 페레스의 득점 행진이 더해지며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했다. 놀라운 점은 데포르티보가 프리메라 리가에서 예산이 스포르팅 히혼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팀이라는 점이다. 저비용 고효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빅토르 종신하자.
▶ 후반기 전망
1. 루카스 페레스의 이적?
최근 스페인에서 가장 HOT한 공격수 루카스 페레스의 이적은 2,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없을 것이라 티노 페르난데스 구단주가 못 박았다. 루카스 페레스 본인도 데포르티보 열혈한 팬이라 구단을 생각해 당장 나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유로 2016을 앞둔 상황이라 꾸준한 퍼포먼스가 중요한 상황이니 굳이 이적해서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결론은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루카스 페레스의 이적은 없다는 것. 후반기 선전에 있어 가장 큰 걱정을 던 셈이다.
2. 얕은 선수층?
하위권 팀일 수록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데포르티보의 경우 다르다. 골키퍼 헤르만 룩스, 중앙 수비수 시드네이 그리고 루카스 페레스를 제외하곤 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없다. 데포르티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수비의 경우 로테이션 멤버들이 다들 라 리가에서 검증된 선수들이다. 공격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좌우 측면 두 자리를 놓고 카니, 호나스 구티에레스 같은 베테랑 선수들과 카르타비아, 카르도주, 루이스 알베르토 같은 유망주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
다만 루카스 페레스의 부상이 있을 경우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리올 리에라가 라 리가에서 두 자리 수 득점에 성공한 적이 있지만 최근 폼을 보면 한 숨도 안나온다. 루카스 부재 시를 대비해서인지 데포르티보는 최근 FC 포르투의 알베르토 부에노 영입을 원한다는 기사가 꾸준히 뜨고 있다. 여담으로 루카스-부에노 투 톱이면 정말 데포르티보가 유로파 생각해도 될 것 같다고 본다.
3. 전술적 한계?
빅토르 산체스는 '조직적인 압박+빠른 역습'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상대팀에 맞게 적절히 변화를 준다. 빅토르에겐 플랜 B와 플랜 C가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사실은 이게 상당히 잘 먹히고 있다는 것. 가장 좋은 예는 시즌 처음으로 4-3-1-2를 들고 나온 바르셀로나 전. 캄프 누 원정임에도 라인을 올려 메시의 공격 시발점을 낮춘 한편 1에 위치한 선수에게 계속해서 부스케츠를 압박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는 주효했다. 데포르티보의 동점골은 계속된 압박에 지친 부스케츠가 치명적인 백 패스를 저지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 (빅토르 종신!!!)
4. 결론
간략히 말해 '강등권 치고 두터운 선수층+전술적 플랜 B, 플랜 C가 있는 빅토르=후반기 DTD는 상상불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유로파 리그 순위권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난 시즌처럼 강등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 빅토르 산체스의 경우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마르셀리노, 우나이 에메리를 잇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젊은 명장으로 평가받을 것 같다.
4 선수단
2016-2017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1군 스쿼드 | |||
번호 | 포지션 | 국적 | 이름 |
1 | GK | 아르헨티나 | 헤르만 룩스 |
2 | DF | 스페인 | 후안프란[1] |
3 | DF | 스페인 | 페르난도 나바로 |
4 | MF | 스페인 | 알렉스 베르간티뇨스 |
5 | MF | 스페인 | 페드로 모스케라 |
6 | DF | 스페인 | 라울 알벤토사 |
8 | MF | 터키 | 엠레 촐라크 |
9 | FW | 콜롬비아 | 마를로스 모레노[2] |
10 | FW | 루마니아 | 플로린 안도네 |
11 | MF | 스페인 | 카를레스 힐[3] |
12 | DF | 브라질 | 시드네이 |
13 | GK | 폴란드 | 프제미스와프 티톤 |
14 | MF | 스페인 | 알레한드로 아리바스 |
15 | DF | 스페인 | 라우레 (부주장) |
16 | DF | 포르투갈 | 루이지뉴 |
17 | MF | 스페인 | 보르하 바예 |
19 | MF | 모로코 | 파이찰 파이르 |
20 | MF | 브라질 | 길레르미[4] |
21 | MF | 포르투갈 | 브루누 가마 |
22 | MF | 코스타리카 | 셀소 보르헤스 |
25 | GK | 스페인 | 루벤 마르티네스 |
- | MF | 스페인 | 알바로 케이헤이로 |
5 기타
- 스페인 축구 팀 중 최초로 '레알'이라는 칭호를 받은 팀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이고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 베티스, 레알 사라고사등보다 먼저 황실에게 칭호를 하사받은 팀이다.
- 보통 데포르티보라고 알려져 있지만 데포르티보는 스페인어로 체육 활동을 의미하며, 일종의 접두어에 가깝다. 포르투갈어로 치면 스포르팅 리스본같은 팀에 붙는 스포르팅과 같은 의미. 그래서 데포르티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스페인 리그의 축구 클럽이 여럿 있지만, 이들 중 가장 유명하며 국내 인지도가 높아 그냥 데포르티보 하면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국내 및 해외 축구팬들은 이해한다. 보통 스페인에선 데포르(Depor)로 줄여부른다.
- 03/0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희대의 명경기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스탄불의 기적과 함께 아재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리아소르의 기적. 8강 상대는 AC 밀란으로 1차전 산 시로 원정에서 데포르티보는 1:4로 영혼까지 털린다. 센터백 말디니까지 오버래핑 나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당시 AC 밀란은 네스타, 카푸, 파울로 말디니 등 역대급 수비진을 비롯해 주전 선수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점이었다. 그야말로 AC 밀란의 리즈 시절이었다. 아아 밀란이여. 어쨌든 이런 AC 밀란을 상대로 데포르티보가 1:4의 스코어를 뒤집고 4강에 진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예를 들자면 지금 아스날 FC가 FC 바르셀로나를 만나 1차전에서 1:4로 털린 후 2차전에서 4:0으로 역전하는 것을 상상하면 밸런스가 맞을 것 같다. 어쨌든 데포르티보는 그 시절 AC 밀란을 상대로 닥공을 퍼부었고 전반에만 3골, 후반전엔 No.10이자 주장 프란 곤살레스가 의미있게 쐐기골을 터트리며 경기는 4:0으로 끝이 난다. 당시 해축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 놀랍게도 데포르티보도 한국 팬 카페가 있다. 생긴 지 무려 5년이나 되었다. 두 번의 강등 속에도 살아남은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 최근 데포르티보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카페 분위기는 어둡다. 310명 정도의 회원 중 활동하는 회원은 10명 남짓. 대체로 나이가 20대 중반부터 30대를 넘어가기 때문에 눈팅 족이 대다수다. 그래도 경기가 있을 땐 채팅방에 모여서 소수의 인원이 경기를 같이 보는 듯.
카페 주소는 cafe.naver.com/deporc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