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7

러시아(소련)의 제트전투기
도입/개발미그수호이야코블레프라보츠킨기타 제조사
1940년대MiG-9 파고
MiG-15 파곳
Yak-15
Yak-17
Yak-19
Yak-23 플로라
Yak-25(1947)
Yak-30
Yak-50
La-150
La-15 팬테일
La-168
La-160 스트렐카
알렉세예프
I-211/215
1950년대MiG-17 프레스코
MiG-19 파머
MiG-21 피쉬배드
Su-7
Su-9 피쉬포트
Yak-25La-250 아나콘다일류신 IL-28 비글
1960년대Ye-150
Ye-151
Ye-152
Ye-8
Su-11 피쉬포트
Su-15 플라곤
Su-17 피터
Yak-28 파이어바
Yak-32
투폴레프 Tu-28
1970년대MiG-23 플로거B
MiG-25 폭스배트
MiG-27 플로거D
Su-24 팬서Yak-38
Yak-45
1980년대MiG-31 폭스하운드
MiG-29 펄크럼
MiG-33 슈퍼펄크럼
Su-20
Su-22
Su-27 플랭커
1990년대MiG-MFI (Project 1.44)Su-30 플랭커C
Su-32 풀백
Su-33 플랭커D
Yak-141
(Yak-41M)
2000년대Su-37 터미네이터 (플랭커F)
Su-35 플랭커E (Su-27M)
Su-47 베르쿠트
2010년대MiG-35 펄크럼F
MiG-29K 펄크럼D
Su-34 풀백
Su-35S(Su-35BM)
수호이 T-50(PAK-FA)
Yak-130
2020년대MiG-LMFSSu-FG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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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공군소속 Su-7

Sukhoi Su-7

NATO 코드명 <Fitter-A>.

수호이 설계국 전투기 계보
Su-7Su-9
운용과 퇴역
초도비행1955년 9월 7일
도입1961년
퇴역북한 공군 운용중
생산1,847기

1 제원

Su-7BKL 제원
분류 : 단발단좌 터보제트 전투기
전장 : 16.80m
전폭 : 9.31m
전고 : 4.99m
주익면적 : 34m²
공허중량 : 8937kg
최대이륙중량 : 13,570kg
엔진 : 률카 AL-7F-1 후연소기 장착 터보제트 1기, 후연소기 작동 시 추력 94.1kN

성능
최대속도 : 2,150km/h (1,160 kn, 1,335 mph)
항속거리 : 1,650 km (890 nmi, 1,025 mi)
실용상승한도 : 17,600 m (57,740 ft)
상승률 : 160 m/s (31,500 ft/min)
익면하중 : 434.8 kg/m² (89.05 lb/ft²)
추력대 중량비 : 0.71

무장
기총 : 30mm NR-30 기관포 2문 (주익 내측 2문(1문당 탄약 80발))
하드포인트 : 주익 하면 4개소, 동체 하면 2개소
최대 2,000kg 폭장 가능(S-5 무유도 로켓, 8U69 5킬로톤 핵폭탄, 600리터 혹은 950리터 보조연료탱크, 250kg 혹은 500kg 통상폭탄 등)

2 개요

Su-7는 수호이 설계국(Sukhoi OKB)가 재건된 이후 설계 및 실전배치한 최초의 전투기이다. Su-7는 60도에 달하는 급한 후퇴각을 자랑하는 후퇴익과 쇼크콘을 탑재한 초음속 전투기로 당초 최전선의 저공에서 도그파이팅을 위하여 설계되었으나 성능상의 문제가 발견되어 소폭 개량을 거쳐 전투폭격기로 전용되어 개발 및 실전 배치되었다. Su-7는 소련 공군이 IL-2의 후속기로 개발해서 사용하였던 IL-10을 대체하고 1960년대 초반 소련 공군의 주력 전투폭격기로 사용되었으나 적은 무장탑재량, 짧은 항속거리 등의 문제로 인하여 운용 상의 문제가 있었다.

3 설계

1953년 스탈린 사후 당해 여름 수호이 설계국이 재건되었다[1]. 수호이 설계국은 최전선에서 사용할 후퇴익 전투기를 설계하게 되고 사내 번호 S-1이라 명명되었다[2]. 본 전투기는 60도의 급한 후퇴각이 적용된 후퇴익, 쇼크콘, 률카 AL-7을 탑재 및 적용한 전투기로 소련 최초의 전체가동식 수평미익, 가동식 쇼크콘을 탑재한 본격적인 초음속 전투기가 될 예정이었다.

S-1은 1955년 9월 1일에 최초로 비행했으며 1956년 4월 소련의 항공기 속도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당시 기록은 2,170 km/h (1,170 kn, 1,350 mph, Mach 2.04)였다. 프로토타입은 N-37 37mm 기관포 3문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동체 하면의 하드포인트에 S-5 무유도 로켓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뒤이어 공력적인 측면을 개선한 두번째 프로토타입 S-2를 만들었다. 그러나 첫번째 프로토타입인 S-1은 엔진 문제로 1956년 9월 1일 추락하였고 탑승하고 있던 테스트 파일럿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련의 문제로 인하여 첫번째 양산형인 Su-7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132기만이 생산되었고 1959년에 실전배치되었다.

4 전투폭격기로의 개량

1958년 7월 31일 소련 전술공군은 Su-7에 지상공격 임무를 부여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에 맞는 개량형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였다. 지상공격에 맞는 개량형은 퇴역 중이던 IL-10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수호이 설계국은 새로운 프로토타입인 S-22는 기존의 프로토타입과 비교해 고속 비행을 위하여 동체를 강화하고 저공 비행 능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본 프로토타입은 1959년 3월에 초도비행을 마쳤고 1961년 Su-7B라는 이름으로 실전배치되었다.

5 문제점

상술하였다시피 Su-7은 급한 후퇴각을 갖춘 얇은 주익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착륙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착륙 각도 또한 매우 급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이착륙 시에 지면충돌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불량한 전면시야와 ILS의 부재는 이착륙 시의 문제를 더욱 키우기에 충분하였다. 이로 인하여 날씨가 불량하거나 비행장의 노면 상태가 불량할 경우 운용하기 어려운 결점을 가지게 되었다. 수호이 설계국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양력 장치를 주익에 추가하는 등의 실험을 하였으나 성과는 미진하였고 결국 JATO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보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가변익을 채택한 개량형 Su-17을 내놓게 되었다.
  1. 수호이 설계국은 원래 2차대전 이전부터 있었던 설계국이었다. 그러나 Su-2 등 실패작들만을 내놓게 되면서 설계국이 폐쇄되고 설계국 직원들은 굴라그로 끌려갔던 흑역사가 있다.
  2. 수호이 설계국에서 설계한 프로토타입의 경우 후퇴익을 적용한 모델은 S, 델타익을 적용한 모델은 T로 시작하는 일련 번호를 붙이는 전통이 있다. 그 예로 Su-47의 사내 번호는 S-47이었으며 Su-27의 사내 번호는 T-1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