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일체


협력일치, 세계의 우승자
'内' 자가 적힌 일본인을 훨씬 크게 그려 놓고 주도적인 입장으로 묘사했다. 반면 '鮮' 자가 적힌 조선인은 왜소하게 그려 놓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그냥 못그렸다

內鮮一體

1 개요

일제강점기일본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해 내놓은 민족 말살 정책 중 하나. 자매품으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가 있다.

"내지(內地: 일본열도[1])와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으로 비슷한 개드립으로 이미 1930년대에 일만일체(일본과 만주는 하나다)라는 게 있었다. 또한 괴뢰국가 만주국을 만들면서 내세운 오족협화(五族協和)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본격적으로 이 말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7년 미나미 지로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이후. 를 보면 알겠지만 일제가 이 개드립을 친 이유는 아래의 문장 하나로 설명된다.

"조선과 일본은 하나이므로 조선인도 내지인과 동등한 권리는 없지만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한마디로 수탈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용도였다. 내선일체라면서 정작 참정권은 안 주고, 조선에서의 고등교육을 장려하긴 커녕 억제했다는데서 그 이율배반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인적 자원 부족 문제 해결의 의도도 있었는데 그 근거가 의무교육 실시.

사실상 일제강점기 말기의 양상인 민족말살정책의 기본적인 이념으로 작용한 개념으로 내선일체의 개념에 따라 덴노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하고 신사참배를 의무화했으며 창씨개명을 추진하고, 조선어 교육을 전면 금지했으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한글 신문들도 폐간을 유도했다. 또한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강제징용과 징병, 성노예 착취 등도 이루어졌다.

사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이라는 국가는 없어지고 한반도는 일본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조선인들은 일본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 열도만을 가리켜 내지라 이르고 한반도는 외지라고 차별하며 조선인들은 '2등 국민'이라 부르고 일본 본토의 일본인들과 동등한 일본 국민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렇게 동등한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으면서 내선일체를 주장하고 국민으로서 의무만 강조하며 권리와 대우는 해주지 않는 현상이 더더욱 심화되었다.

이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일선동조론이 있다. 이는 위의 내선일체를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인일본인이 같은 조상을 가졌으며, 그래서 일제의 조선 강점은 그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라는 황당한 주장이다. 이 주장의 핵심은 일본인의 조상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 정착한 기마민족이라는 것. 그래서 대종교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단군스사노오로 일치시키는 짓거리까지 했다. 해석: 니 애비 스사노오 그리고 이 주장을 학문적으로 합리화하려고 한 자가 바로 변절자 최남선이다. 소위 "불함문화론"이 그것이다.참 가지가지한다. 다만, 세부적인 정황이나 시기는 이견이 있지만 일본인이 한반도 지역의 농경 민족, 드물게는 기마 민족이 열도로 이주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대체로 유력한 학설[2]들의 공통점이긴 하다. 비록 이 내선일체/일선동조론이나 환빠 등으로 상당히 언급이 불편한 사실이지만. 현대의 환빠와 같은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일선 동조론에서 그 주체만 한국인으로 바꾸어서 일본은 한국에게 종속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해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서남공정서북공정을 통해 서부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티베트, 위구르) 동북공정으로 만주지배를 합리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짓거리는 청나라만주족이 먼저 시작한 것이고, 만주족 자신이 그 논리로 한족에 동화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일제에게 있어선 (사회 하층의 서민)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어떤 민족이든 똑같이 자신들의 착취대상일 뿐이었다는 것이다.[3]

2 당시 반응

2.1 조선인들의 반응

조선인들도 극히 일부 악질 친일파들을 빼면 당연히 믿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친일파들도 헛소리 취급하는 개념이었다. 당장 조선인 차별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누가 이런 개소리를 믿겠는가? 당장 그 유명한 이광수조차도 반민특위에서 자신은 일본이 아니라 조선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다라 말했을 정도다.

2.2 일본인의 반응

정작 일본인의 여론은 내선일체 정책에 매우 불만이 많았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사할린·대만·조선·관동주식민지로 만들어서 자신들이 특권을 가진 '지배민족'이었다고 착각했다.

사실 조선, 대만, 사할린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열도에서 먹고 살기 어려운 빈곤층이 많았다. 이미 일본 열도에도 산업화가 나오면서 도시로 이주하는 일이 늘어났고, 이들이 도시의 하층민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은 당연했다. 현대 사회의 '지배 민족'의 '빈곤층', 예를 들어 푸어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자존심의 근본은 단지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점 뿐이었다. 식민지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일본인이라는 점 때문에 얻는 우월감과 조그만 경제적 특권, 알량한 정치적 특권에 매우 극심하게 집착하였다.

만주국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만주국에서 태어나 자라나 특별대우받고 자라난 일본인들은 본국인 일본에 가서 일본인들이 막노동을 하고 가난하게 사는 걸 보고 특별우대민족인 일본인이 이렇게 사는 것에 충격먹고 일본에 살 생각을 버리고 만주국으로 가서 영원히 그 우대받을 생각만 했던 것도 유명하다. 그리고 만주국이나 식민지에서 나가야하던 이들은 대다수가 일본에서 뼈저리게 고생하고 살아야해서 세월이 지나 늙어버린 이들이 과거 우대받고 뻐기며 살던 곳으로 와서 그 세월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당연히 '내선일체' 같은 고상한 슬로건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식민지 조선인을 차별하여 자신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키려는 야욕과 착취해서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만 있었다. 심지어 통감 정치 당시 조선에서 발행한 일본어 잡지를 보면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조선인을 너무 비하 우대한다"는 기도 안 찰 비판을 실었다. 일본인들의 의식은 조선인을 같은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저열한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 이주 일본인이 되려 본토 거주 일본인보다 우월 의식이 훨씬 컸고, 차라리 일본에 살아야 낫다고 생각한 조선인이 많이 이주했다. 또한 이후 내선결혼(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장려하던 태평양 전쟁 시에도 조선 남자에게 시집 온 일본 여자들은 대부분 본토 사람이었고 조선 거주 일본인 중 조선인과 결혼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예외는 부득이하게 조선인 사회에 섞여 산 이들인데 그 수는 적었다.

당시 지배층에게는 내선일체는 통치에 유리하므로 추진할 동기가 있었던 정책이었지만, 하층 일본인에게는 동화정책과 민족말살의 과정을 거쳐서 조선인들이 자신과 동등해짐으로서 일본인이라는 유일한 특권이 사라진다는 것에 매우 불만이 컸다. 이들은 내선일체 정책이란 명목으로 조선인들이 창씨개명하고 일본어 쓰면서 일본인으로 둔갑하여 일본인과 맞먹으려 드는 정책이라고 보아 불쾌하게 여겼다.

당연히 실생활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멸시하고 얕보았으며, 공식적인 차별 만큼이나 사적인 인종 차별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내선일체는 일본 일반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할 수 없었다. 다만 머릿수 증가가 필요하고 장기적인 지배를 위해서는 식민지를 본국화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정책 자체는 이미 이전부터 논의했다.

어차피 내선일체는 차별하되 흡수하기로 동화를 한다고 차별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오키나와 인, 부라쿠민을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암암리에 여전히 차별한다. 그리고 아이누인에게는 아예 별개의 민족이란 인식도 안해주면서 차별과 강제동화정책을 계속 병행했었다.[4]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어를 쓰건 말건, 이런 저런 단서를 집요하게 조사하고 조선인을 이 잡듯이 찾아내고 끝끝내 차별했을 것이다. 이것이 터무니없는 가정이 아닌 게 실제로 현대의 혐한도 조금만 거슬려도 멀쩡한 일본인을 재일 조선인으로 몰아가고 비난한다. 지금 일본에서 자이니치가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만 봐도 이 가정은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

3 현대 반응

일본 극우들 외에도 한국의 일빠들이 자주 주장하곤 한다. 독립하지 말고 계속 식민지로 남아 일본의 일부로 완전히 통합했다면 세계경제 3위인 선진국의 국민으로서 버블경제 시대의 부유한 생활을 맛봤을 테고 그리고 몰락도 같이 따랐겠지 모국어일본어이므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을 보러 일본어를 배울 필요도 없었을거라는 무슨 마약을 빨고 한 듯한 황당한 주장.[5]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이 남북으로 안 갈라졌을 테니 옛고구려의 영광도 되찾을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한다. 심지어는 계속 일본 식민지였으면 독재 안 겪고 좀더 일찍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살았으리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현실은... 당시 일제가 과연 민주적인 국가였는지는 넘어가자.

하지만 조선이 계속 일본 식민지라는 말은 일본이 결국 2차대전에서 승리했거나 패전 이후에도 조선 지배권 유지에 성공[6] 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러고도 일본이 지금처럼 징병제고 폐지되고 민주주의가 세워졌을까? 조선과 조선인이 일본 영토와 일본인으로 남아 있었다면 지금도 부라쿠민을 차별하는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아직도 이런 막장스러운 일이 벌어지는데 이러 상황까지 오면 또 어떨까? 또 일본의 승리는 반대로 말하자면 미국과 연합군이 패배했다는 건데 이건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같은 고퀄리티의 일본 만화나 애니는 전후 민주화 때문에 가능하였음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이해가 안간다고?

1930년대 일본 대중문화에서 검열은 혹독했고, 자유라느니 제국주의에 대하여 부정적인 게 보인다면 만화고 책이고 싸그리 금지하고 관련 인물은 특고라고 불리던 검찰 기구에 넘겨져 매국노 취급당하던 시절이다. 아예 1940년대에 이르면 프로파간다 일본 제일주의 선전물 영화나 애니와 책이 허용될 지경이었다. 이런 시절을 일본이 이겨서 그러한 풍토가 그대로 남았더라면 일빠 오덕들이 바라는 만화나 애니가 과연 나올까? 일본 극우들이 심심하면 지금 일본 애니나 만화들이 문제라고 검열해야 한다느니 개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후자의 경우, 즉 일본이 패전했지만 한반도 식민지를 지킨 경우라면? 전후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지금 오키나와 현 출신 사람들처럼 차별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일본이 패전하면서도 한반도를 여전히 보유한다는 가정은 가능성이충분하다 히틀러가 패망하기전까진 연합군측에서 협상카드로 계속제시한것이 항복하면 한반도는 계속 소유하게 해주는 것이었다.히틀러와의 싸움에 전력하기위해 나온카드이고당연 히틀러 패망이후 없어짐) 오키나와인들은 주변 나라들이 독립하자마자 혼란과 함께 공산화되거나 군사독재로 치닫는 모습을 보며 일본에 반환되면 2차대전 이전과 달리 영국령 홍콩마냥 잘 대접받겠지 생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 되었고 결국 류큐 독립 여론은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반대로 이 이론을 뒤집어(?) 한국이 일본을 정복해 진정한 내선일체를 실행한다는 일본을 공격한다 개드립도 있다(...).이러면 조일일체라 불러야겠다 일체 이쪽은 반일감정에서 온 때가 많다.

또한 한국과 일본이 같은 병크를 저지를 때 비꼬는 의미로 내선일체라 말하는 경우도 있다.무서운 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둘이 같은 병크를 터트리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이 너무나 한심할 때는 아예 한 단계 업그레이드로 쪽바리 + 조센징 = '쪽센일체'라는 표현까지(...) 쓰곤 한다. 보통 동조선, 서일본 등의 드립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는 몇 가지 예시

4 다른 나라들의 사례

보통 아일랜드 공화국이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류큐왕국도 마찬가지로 일유동조론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한국과 달리 류큐와 일본은 같은 민족인데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학술적으로 혈통, 언어, 유전적인 면이 비슷한 것과 문화적, 종교적, 감정적인 원인으로 온 원수지간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일부 유럽 국가들의 사례가 바로 그러한데 범슬라브, 범게르만 운운하다가 여러가지 문화적, 종교적 현실을 무시하는 병크만 일으키고 거하게 실패로 끝난 일이 아주 많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그러한 경우였고, 1990년대의 구 유고슬라비아의 분열 과정, 또한 21세기에는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동서분열 사태도 어떻게 보면 독립적 민족주의와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스코틀랜드사이에 켈트족관련으로 친근감이 있다. 여담으로는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축구경기할 때 스코틀랜드가 프랑스를 응원한다. 심하면 아스테릭스마저 스코틀랜드 독립에 참여한다#영국때문에 적의 적은 나의 친구 그러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도 짤막하게 나온 이야기지만 그 프랑스조차 과거에는 진짜 켈트족인 브르타뉴인들을 2등국민 취급하고 브르타뉴어를 탄압했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1. 당시 일제가 말하는 일본은 조선 등 외지(식민지)까지 포함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일본열도만 한정해서 가리키는 용어로 내지라는 말을 썼다.
  2.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제대로인 학계에선 이 이주가 어디까지나 고대에 잠시 존재했던 혈연적인 연관 관계에 불과하며, 한국사와 일본사의 독자성과는 무관한 별개의 요소로 본다.
  3. 같은 일본인인데 뭔 착취대상이냐 싶겠지만, 그 당시 일본 지도층이 전쟁 말기에 일반 병사들을 가미카제 등으로 써먹고, 미군이 일본에 쳐들어오면 '1억 총옥쇄를 하자' 같은 망언이나 내뱉은걸 보면......
  4. 아이누인을 정식 소수민족으로 인정하고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바뀐 것은 어디까지나 2000년대 이후의 일이며 그것도 북방 4개도서 관련해서 마지못해 인정한 것이라는게 정설.
  5. 당연한 얘기지만, 식민지로 남았으면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문화적으로 평등히 대해 줄리 없기 때문에 일빠 본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도 함부로 못볼 게 뻔하다.
  6. 이런 경우가 가능하겠는가는데, 류큐만 하더라도 패전 이후에 미국의 신탁통치 받다가 데탕트 분위기에 일본에 반환되었다. 지금의 오키나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