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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한정으로 월트 디즈니 로고와 함께 나오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로고. 단편 증기선 윌리의 한 장면이다.
1 소개
1923년 8월 23일에 설립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 장편 영화 제작 스튜디오. 첫 작품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로, 디즈니를 대표하는 굵직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조금 주춤하기도 했지만, 드림웍스와 함께 미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곳. '백설공주'를 작업한 '나인 올드 맨'으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계의 원로들로부터 현대 애니메이션 제작법의 기초가 정립되기도 했다. 한때 월트 디즈니 피쳐 픽쳐스로 개명했으나, 픽사와의 합병 이후 스튜디오의 개편 과정에서 다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로고 역시 배급시에는 월트 디즈니 픽쳐스의 로고가 대신 삽입되었지만 최근 작품부터는 새 로고가 대신 출력되고 있다.
2 간략한 역사[1]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가 1923년 로스엔젤레스에 디즈니 브라더스 카툰 스튜디오로 설립하여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친 앨리스 단편 영화 시리즈를 약 3년간 제작했다.[2] 하지만 1928년 디즈니가 공을 들였던 오스왈드를 유니버셜 픽쳐스에 뺏기면서 새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디즈니는 영화에 음성을 삽입하기 위해 음악가 칼 스텔링과 사업가인 팻 파워즈와 접촉하면서 'cinephone'을 영화 필름에 삽입시켰다. 그렇지만 얼마 못가 파워즈랑 분쟁을 겪었고, 그 전인 1929년 12월에 콜럼비아 픽쳐스랑 새로 유통 계약을 맺었다.
3년 후인 1932년인 실리 심포니에서 '꽃들과 나무들'을 삼색 테크니컬러로 첫번째로 제작해 업계에 충격과 공포스런 여파를 남겼다.[3] 디즈니는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중을 노린 단편과는 다르게 아동층을 고려한 내용으로 단편을 제작하였고, 1934년 장편 영화의 제작을 발표하였다. 이 장편 영화의 배급은 RKO 라디오 픽쳐스가 맡았고[4] 3년 후 개봉되어 대성공을 거두어 스튜디오를 버뱅크에 있는 부에나 비스타 거리로 이전할 수 있었다. 그 영화가 바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30년대 중반 이후로 미키 마우스뿐만 아니라 도날드 덕, 구피, 플루토 등 다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편의 제작 수를 늘렸다.
1940년대엔 환타지아의 흥행 실패로 인하여 잠시동안 장편 영화 제작을 중단하다시피 했고, 피노키오에서 활약한 9명의 애니메이터(나인 올드맨)[5]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총통각하의 낯짝, 죽음을 위한 교육 같은 선전용 애니메이션들을 수십 편이나 제작해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같은 해에 스튜디오의 열악한 대우로 인해 애니메이터들이 파업을 일으켰고, 이들 중 프랭크 태쉬린, 존 허브레이, 모리스 노블, 월트 켈리, 빌 멜렌데즈 등이 독립하여 UPA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장편 제작을 재개하면서 1951년부터 부에나 비스타에서 장편 영화를 배포하게 되고, 이때부터 월트 디즈니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디즈니랜드 공사에 점차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제작은 나인 올드맨이나 그들을 보조하는 애니메이터들이 주로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쏟은 제작 비용에 미치지 못한 성과를 거두면서 디즈니 스튜디오는 1959년에 대규모로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그 뒤로 1960년대에 정글북, 101마리 달마시안으로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70년대엔 디즈니의 사망과 스튜디오 경영진 교체, 베테랑 애니메이터들의 은퇴와 더불어 인기가 잠시 하락하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 기술을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경영진의 교체와 더불어 대규모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작했던 장편 영화들이 줄줄이 실패를 거두면서 디즈니 스튜디오는 실사 영화와 TV 프로그램 생산과 테마파크 확장, 해외 스튜디오 설립 등 문제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구상해 실행시킨다. 1989년 인어공주의 흥행 성공으로 인하여 디즈니 르네상스를 개막하였고, 1995년에 토이 스토리의 배급을 맡으면서 듣보잡이었던 픽사를 메이저급 회사로 발돋움해주는데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경영진 임원들간의 마찰과 권위주의적 행태 및 영화 흥행 실적의 감소로 인해 다시 한번 침체를 겪는다. 그러나 2006년 픽사의 인수로 디즈니에 복귀한 존 라세터의 스튜디오 환경 쇄신과 더불어 라푼젤이 다시 목표 이상의 실적을 거두면서 디즈니 르네상스의 부활을 알린다.
한국에선 2014년 이전까지 100만 관객을 넘은 작품이 라푼젤 하나뿐이어서 드림웍스에 비해 3D로써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으나 2014년에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유명세가 극도로 높아졌다.
3 흥행
3.1 한국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공식 통계 기준.
- 전국 관객 수가 누락된 작품은 제외
순위 | 제목 | 전국 관객 수 | 매출액 | 개봉년월일 |
1 | 겨울왕국 | 1,029만 | 824억 | 2014년 1월 16일 |
2 | 주토피아 | 470만 | 370억 | 2016년 2월 17일 |
3 | 빅 히어로 | 280만 | 219억 | 2015년 1월 22일 |
4 | 라푼젤 | 101만 | 101억 | 2011년 2월 10일 |
5 | 주먹왕 랄프 | 91만 | 65억 | 2012년 12월 19일 |
6 | 볼트 | 75만 | 49억 | 2008년 12월 31일 |
7 | 치킨 리틀 | 58만 | 29억 | 2006년 1월 26일 |
8 | 브라더베어 | 35만 | 1억 | 2004년 1월 16일 |
9 | 보물성 | 23만 | - | 2003년 1월 1일 |
10 | 로빈슨 가족 | 11만 | 7억 | 2007년 4월 19일 |
11 | 공주와 개구리 | 10만 | 7억 | 2010년 1월 21일 |
12 | 카우 삼총사 | 1만 | 3402만 | 2004년 8월 6일 |
표에서 나타났듯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2014년을 기준으로 흥행 판도가 크게 달라졌다. 주먹왕 랄프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200만을 넘긴 작품이 없었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 크게 밀렸었다. 특히 8위부터는 초토화 하지만 2014년에 겨울왕국이 천만 관객이라는 신화적 흥행을 일으킨 뒤부터 나온 작품들은 200만은 물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뺨치고도 남을 흥행력[6]을 보여주었다.
또 겨울왕국의 흥행 이후부터 한국 시장에서 드림웍스의 흥행은 부진해진 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흥행이 강세를 찾기 시작한 동시에 다른 스튜디오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도 한국 시장에서 강세를 얻기 시작했다. 겨울왕국의 영향력이 한국 영화 시장 속 애니메이션 흥행에 엄청나게 변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4 트리비아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되고 존 라세터와 애드 캣멀(픽사 사장)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지휘를 맡게 되면서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많이 쇄신되었다. 기존 경영진 아래에서 철저히 종속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픽사와 같은 제작자의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풍토가 형성되었다고. 실제로 합병 이후 픽사와의 협업이 늘어나면서[7] 작품 자체에서도 픽사 색이 짙어졌다는 평이 많아졌다. 페이퍼맨이나 말을 잡아라! 등 극장 공개용 단편 애니메이션 역시 제작 횟수가 많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픽사 작품과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먹왕 랄프는 미국 내 매체에서 몇 번이고 픽사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최근 디즈니가 안시 애니메이션 축제에서 공개한 신작 <만찬(Feast)>의 경우 역시 몇 언론이 픽사 작품이라고 소개한 탓에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트위터로 이를 비꼬기도 했다. '기술은 예술에게 영감을 주고, 예술은 기술에 도전한다' - 제프리 카첸버그
5 관련 항목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영어 위키피디아 출처
- ↑ 이후, 1926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로 첫번째 사무소로 옮길 때까지 주소를 여러 차례 변경하였다고 한다.
- ↑ 이때 테크니컬러 주식회사와 계약을 맺었었는데, 2년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루니 툰이나 뽀빠이 단편에서 테크니컬러 도입이 늦은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 ↑ 이후 1954년까지 디즈니 단편 시리즈의 배포를 맡았다. 킹콩의 배급사로도 유명한 회사.
- ↑ 각각 Les Clark, Marc Davis, Ollie Johnston, Milt Kahl, Ward Kimball, Eric Larson, John Lounsbery, Wolfgang Reitherman, Frank Thomas로, 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은퇴한 디즈니의 1세대 원로 애니메이터들.
- ↑ 겨울왕국은 드림웍스는 물론 모든 애니메이션의 기록을 제쳤고, 빅 히어로는 같은 해에 개봉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홈을 압도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 ↑ 대표적으로 겨울왕국. 합병 전인 2006년 경부터 픽사와 공동 작업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