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선거, 대통령 선거, 미국 대통령
- 관련항목 : 미국 대통령,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목차
1 개요
미국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이다. 선거인단제를 사용하는 간선제 대통령 선거를 시행한다. 4년 중임제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공화당(미국)과 민주당(미국)이 사실상의 양당제를 이루고 있고 (이전에는 휘그당이 공화당의 위치를 대신했고, 사실상 계보도 이어진다.) 녹색당이나 자유당, 이따금 제3후보도 돌풍을 일으키나(ex.1992년 대선의 로스 페로) 2등을 거둔 경우는 1912년 시어도르 루스벨트가 퇴임 이후 재출마한 진보당의 돌풍을 제외하고는 없다.[1] 벌써 100년전의 이야기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단순히 미국민의 관심사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미국의 우방은 물론 한때 적대적 관계였던 옛 공산국가들과 중동, 제3세계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단순히 백악관의 주인이라는 자리를 뛰어넘어 사실상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초강대국 최고지도자로 그야말로 막강 파워를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전세계에 영향력이 있는 미국의 특성상 어떤 대통령이 뽑히느냐에 다라 세계가 휘청일 수도, 세계가 안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세부 규정
2.1 선거일
- 선거인단 선출
- 대통령 선출
- 12월 13-19일 중 월요일. 단, 선거인단들이 찍을 후보는 이미 알려진 상태라 형식적이다. 선거인단이 확정되었을 때 이미 대통령이 확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전국 선거인단의 표 집계와 당선자 발표는 이듬해 1월 6일에 하게 되어 있다. 물론 결과는 선거인단 선출 시점부터 안 봐도 비디오.
2.2 투표시간
- 각 주별로 개별적으로 정하며, 가장 짧은 주가 12시간의 투표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가장 긴 투표시간을 보장해주는 주는 뉴욕 주로, AM 6:00 ~ PM 9:00으로 15시간의 투표시간을 보장한다.
- 미국의 모든 주 지역 중 가장 먼저 투표를 시작하는 곳은 뉴햄프셔 주, 그 중에서도 딕스빌노치이다. 이곳은 투표 당일 0시부터 시작한다.
2.3 선거권 / 피선거권
- 선거권: 만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으로서 거주하는 주, 카운티 또는 시의 투표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
- 피선거권: 자연적인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일반적으로는 이것이 미국내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해석되어 왔다)만이 피선거권을 갖는다.[3][4]
2.4 후보자 등록
2.5 당선인의 결정
- 각 주별로 인구비례에 맞추어 선거인단을 배분한다. 선거인단은 상원(각 주 마다 2명씩 뽑으니까 총 100명) + 하원(총 435명) + 워싱턴 DC에 배정된 선거인단(현재는 3명[5])의 인원수에 맞추며, 2020년 대선까지는 538명이다.
- 미국에 속해있는 51개의 주/특별구 중 메인 주와 네브래스카 주를 제외한[6] 49개 주/특별구가 승자독식제를 사용하며, 각 주별로 선거 결과를 별도로 취합하여 해당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전부 몰아주는데 이것이 승자독식제이다. 주마다 투표용지의 형식이 다른데 어떤 주에서는 선거인단 후보 이름과 그 후보가 지지하는 대통령/부통령 후보를 같이 명시하고, 어떤 주는 선거인이 누구든 대통령/부통령이 중요하다 생각했는지, 선거인단 후보 이름은 생략하고 대통령/부통령 후보만 나타내기도 한다.
- 선거인단을 주단위로 독식하는 특성상 전국 총 득표율에서는 더 적은 표를 얻은 후보가, 총 선거인단 확보수에서 이겨서 승리하는게 가능하다. 실제로 몇 번 사례가 있었는데 가장 최근으로는 2000년 대선에서 47.9%를 득표한 조지 워커 부시가 48.4%를 득표한 앨 고어보다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해서(조지 워커 부시 271명 앨고어 265명) 승리한 예가 있다.
- 비록 결과가 뒤바뀌진 않았지만, 1916년 대선의 경우 윌슨(민주당) 49.2% 휴스(공화당) 46.1%로 3.1%p나 득표율 차이가 났지만 선거인단 확보수는 윌슨 277명 휴스 254명이었다. 당시 경합주이던 선거인단 12명의 캘리포니아는 윌슨 46.65% vs 휴스 46.27%, 표차이는 3773표차이로 초박빙이었다. 만약 이 당시 휴스가 캘리포니아에서 2000표(당시 전국의 0.01%) 정도만 윌슨에게 뺏어와서 이겼으면 선거인단은 윌슨 265명 휴스 266명으로, 득표율에서 3.1%p가 더 적은 휴스가 당선하는 일이 가능할 뻔하기도 했다.
- 2004년 대선에서도 전국 득표율은 조지 워커 부시 50.7% 존 케리 48.3%로 2.4%p차이였지만 선거인단은 부시 286명 케리 251명이었다. 이 당시에 선거인단 20명인 오하이오에서 11만8775표 차이로 부시가 이겼는데(부시 50.8% 케리 48.7% 군소후보 0.4%) 만약 케리가 6만표(전국 0.05%)만 더 부시에게서 빼앗아와서 오하이오를 먹었으면 선거인단 총합은 부시 266명 케리 271명으로 뒤바뀌어 전국 득표율에서 2.3%p정도 더 적게 얻은 케리가 당선되는 것도 가능할 뻔하기도 했다. 즉 전국 득표율에서는 3~4%p(가능성은 낮지만 그 이상 차이도 가능)정도 더 적게 얻더라도 선거인단에서 이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국대상 여론조사, 득표율보다는 스윙스테이트(경합지역) 여론조사, 득표율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
- 거대 정당인 공화당이나 민주당 후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인 경우 인력난으로 인해 자신을 지지하는 선거인단 후보를 내지 못하는 주도 있다. 그 주의 유권자들은 표를 버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단 후보가 없으니.
- 이렇게 뽑은 선거인단이 2차 투표를 하여[7] 여기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최종적으로 당선된다.[8][9] 투표는 두 번 한다. 대통령 선거와 부통령 선거를 별도로 한다[10]. 다만 아마도 특정 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은 역시 그 당의 부통령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한 선거인은 대통령 선거 때 부통령 후보를 찍고, 부통령 선거 때 대통령 후보를 찍은 사례도 있다.
- 최다 확보자가 없이 두 명 이상의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의 수가 같거나 과반을 거둔 후보가 없을 경우 대통령은 하원에서, 부통령은 상원에서 뽑는다. 상원 ,하원 투표에서도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한 주당 한 표로 표결을 정한다.
- 선거인은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 모두 자기 주 출신을 찍을 수는 없다. 바꿔 이야기하면 대통령 후보로 자기 주 출신을 찍었다면 부통령 후보는 다른 주 출신을 찍어야 한다는 말. 아예 자기 당 선거인이 자기 당 부통령 후보를 못 찍을 수도 있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각 정당은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출신 주를 다르게 한다.
3 역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를 앞으로 배치해 주십시오. 득표수에서는 뒤졌으나 선거인단에서 이긴 경우 기울임체.
1789년 초대 대통령 선거부터 2012년 선거까지 모든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리해놓은 동영상.
연도 | 후보 | 비고 |
1824년 | 존 퀸시 애덤스 vs 앤드류 잭슨 vs 윌리엄 크로포드 vs 헨리 클레이 | [11] |
1860년 | 에이브러햄 링컨(공화당) vs 스티븐 A. 더글러스(민주당) vs 존 C. 브레킨리지(남부민주당) vs 존 벨(입헌통일당) | |
1872년 | 율리시즈 그랜트(공화당) vs 호레이스 그릴리(자유공화당) | |
1876년 | 러더퍼드 B. 헤이스(공화당) vs 새뮤얼 틸던(민주당) | |
1884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뉴욕 주지사, 민주당) vs 제임스 G. 블레인(현직 국방장관, 공화당) | |
1888년 | 벤저민 해리슨(인디애나 주지사, 공화당) vs 그로버 클리블랜드(현직 대통령, 민주당) | |
1892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민주당) vs 벤저민 해리슨(현직 대통령, 공화당) vs 제임스 B. 위버(인민당) | |
1912년 | 우드로 윌슨(뉴저지 주지사, 민주당) vs 시어도어 루스벨트(전직 대통령, 진보당) vs 윌리엄 태프트(현직 대통령, 공화당) vs 유진 뎁스(사회당) | |
1920년 | 워런 거메일리얼 하딩(오하이오 상원의원, 공화당, 60.3% 득표) vs 제임스 콕스(오하이오 주지사, 민주당) | [12] |
1948년 | 해리 S. 트루먼(현직 대통령, 민주당) vs 토머스 듀이(뉴욕 주지사, 공화당) vs 스트롬 서먼드(사우스 캐롤라니아 주지사, 주州권 민주당(딕시크랫) ) vs 헨리 월리스(전직 부통령, 진보당) | |
1960년 | 존 F. 케네디(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민주당)[13] vs 리처드 닉슨(현직 부통령, 공화당) | |
1964년 | 린든 B. 존슨(민주당, 61.1% 득표) vs 베리 골드워터(애리조나 상원의원, 공화당) | |
1968년 | 리처드 닉슨(공화당) vs 허버트 험프리(현직 부통령, 민주당) vs 조지 월리스(앨러배머 주지사, 미국 독립당(딕시크랫)) | |
1972년 | 리처드 닉슨(공화당, 60.7% 득표) vs 조지 맥거번(민주당) | |
1976년 | 지미 카터(조지아 주지사, 민주당) vs 제럴드 포드(현직 대통령, 공화당) | |
1980년 |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 주지사, 공화당) vs 지미 카터(현직 대통령, 민주당) vs 존 앤더슨(무소속) | [14] |
1984년 | 로널드 레이건(공화당, 58.8% 득표) vs 월터 먼데일(전직 부통령, 민주당)[15] | |
1988년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현직 부통령, 공화당) vs 마이클 듀카키스(매사추세츠 주지사, 민주당)[16] | |
1992년 | 빌 클린턴(아칸소 주지사, 민주당) vs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현직 대통령, 공화당) vs 로스 페로(무소속)[17] | |
1996년 | 빌 클린턴(민주당) vs 밥 돌(로버트 돌 캔자스 상원의원, 공화당) | |
2000년 |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공화당) vs 앨 고어(현직 부통령, 민주당) (vs 랄프 네이더, 녹색당)[18] | |
2004년 | 조지 W. 부시(공화당) vs 존 케리(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민주당) | |
2008년 | 버락 후세인 오바마(일리노이 상원의원, 민주당) vs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 공화당)[19] | |
2012년 | 버락 후세인 오바마(민주당) vs 밋 롬니(매사추세츠 주지사, 공화당) | |
2016년 |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vs 힐러리 클린턴 (전직 국무부 장관, 민주당) |
3.1 트리비아
- 오하이오 징크스 - 오하이오 주의 승리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전통. 사실 20세기에 들어와서 생긴 전통으로, 50여년전 존 F. 케네디에 의해 한번 깨진 적이 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실이 되었다.
3.2 현대 미국 대선 역사
남북전쟁 이래 미국 대선은 상대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다수인 북부(+중부)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소수인 남부의 강력한 지지차이가 두드러졌다[20]. 뉴욕의 지지를 받은 그로버 클리블랜드나 후보 분열로 승리한 우드로 윌슨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은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서부의 경우는 농민이 많아 인민당 등이 세력을 떨치고 이들이 민주당과 결합하기도 했으나 역시 뉴욕 없이 공화당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것을 모두 바꾼 것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그는 자그만치 4선을 달성했으며, 의회도 압도적으로 다수당으로 차지했다(트루먼까지 합치면 같은 당이 20년간 집권) 이로서 1933년 이후 정국은 민주당의 기존의 텃밭인 남부 지지 + 북부의 서민 중산층 + 흑인 등 소수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뉴딜 동맹"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아이젠하워 역시 뉴딜정책 자체는 거의 계승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과 인종문제(민권운동)가 불거진 60년대 이후 민주당 텃밭이던 남부(딕시크랫)는 점차 이탈하여 독자출마나 팀킬행위를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극우 + 백인 우월주의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서던 스트레티지), 남방 전략)"을 펼치게 된다. 즉 민주당의 텃밭이지만 보수성이 두드러졌고 이 때문에 동부, 리버럴이 주류인 민주당에서 이탈하려는 남부를 품에 안겠다는 텃밭 맞바꾸기 전략이었던 것이다.
- 그 여러 징후는 이미 1948년부터 드러났다. 남부는 여러차례(1960년, 1968년) 독자출마나 선거인단 이탈 등으로 제3세력화를 꾀했으며, 기어이는 1968년 대선 패배에 혁혁한(?) 공로를 남겼다. 당장 남부의 강경 보수파(리버러테리언)인 골드워터에 대한 존슨의 대승으로 끝난 19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섯 주에서만 승리했는데, 모두 남부였다. 존슨이 텍사스 출신이었는데도 말이다.
이후 닉슨을 거치면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뽑아내게 되며,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남부는 명실 상부한 공화당의 텃밭이 되었다. 닉슨 이래로 레이건, 부시 부자는 남부(이념적 친밀성) + 서부(지리적 우위)[21] + 기독교 근본주의(낙태 이슈 등) + 백인 중심 + 신자유주의로 연달아 대승을 거두었으며, 끝내 남부를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1994년에는 60여년만에 하원 다수당을 차지했다. 공화당은 이 전략으로 2000년대까지 미국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민주당이 이 시대에 대선에서 승리를 간간히 거두긴 했지만, 케네디 이후로 남부 출신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린든 존슨은 텍사스 출신, 지미 카터 역시 남부의 조지아 출신 독실한 개신교도였으며, 빌 클린턴 역시 남부(아칸소) 출신이었다. 반면 낙선한 마이클 듀카키스는 매사추세츠에 그리스계 이민 2세 출신이었고, 앨 고어의 경우 2000년 대선에서 자신의 선거구인 테네시(남부)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민주당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지대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국 부시의 실정크리와 함께 오바마는 케네디 이후 최초의 북부(일리노이)에 지역구를 둔 대통령이 되며 공화당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또한 인구 3위의 플로리다에서도 두번 모두 승리하면서 고어 vs 부시 때의 설욕을 확실히 했다.
- ↑ 1955년 추가된 수정헌법 22조 3선금지 조항이 들어가기 전이라 3선 시도가 가능했다. 그래서 재임한 루스벨트가 191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
- ↑ 11월 2-8일 중에서 화요일인 날. 이 날은 선거인단을 뽑는 날이다.
- ↑ 이는 거의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몇몇 조차지 및 군 주둔지에서 태어난 사람에 미국 국적법에서 자연적인 미국 시민의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출마한 사례도 있다. 당시 미국의 조차지였던 파나마 운하 지대에 주둔중이던 군인 가족의 아들인 존 매케인이 그 예. 반대로 선거권은 귀화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거나, 미국 시민권과 다른 국가 국적을 모두 갖고 있는 경우에도 행사할 수 있다.
- ↑ 2016년 대선으로 인해 이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자연적으로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이라는 것이 "Natural American" 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이것이 명확하게 미국 출생자를 지칭하지 않는다는게 관건이다. 특히, 현재 공화당 티파티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 중 한명인 테드 크루즈의 출생지가 캐나다라는 것이 밝혀져서 앞으로 논란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 미국 헌법에 의해 가장 선거인단이 적은 주와 같도록 되어 있다.
- ↑ 이 두 개 주는 하원 선거구 결과대로 선거인단을 나눈다. 주 전체의 승자가 2명, 각 선거구마다 승자가 1명씩 가져간다.
- ↑ 자기가 출마한 그 주에서 투표한다. 그리고 투표 결과만 워싱턴으로 보낸다. 모든 선거인이 모이는 일은 없다.
- ↑ 선거인은 당초 지지하기로 한 후보를 의무적으로 찍도록 규정한 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주도 있다(보통 의무적으로 찍도록 규정한 주는 위반시 주에 따라 다르지만 벌금을 내거나 그 표를 무효로 하고 다른 선거인이 대신 투표하도록 한다). 그래서 당초 지지하기로 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찍거나(심지어는 출마를 하지 않은 사람을 찍기도) 무효표를 내는 경우가 있어서 확보한 선거인단과 투표 결과가 완전 일치하진 않을 때도 있다. 단 그 때문에 당선자가 바뀐 경우는 지금까지 없다.
- ↑ 18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공화당(이때 미국 민주당이 당내 내분사태로 후보를 못 내는 참사가 발생한다.(...) 나중에 자유공화당은 공화당으로 재흡수.)의 호레이스 그릴리가 공화당의 율리시즈 그랜트에게 투표에서 참패하고(선거인단으로는 286 그랜트 vs 66 그릴리, 투표에서는 그랜트 55.6 vs 그릴리 43.8)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을 하는 바람에 선거인단 투표에서 그릴리를 찍은 선거인단은 단 3명에 불과했다. 42명은 후보로 출마하지도 않은(...) 민주당의 토마스 헨드릭스를 찍었고 18명은 자유공화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벤자민 그라츠 브라운에게 투표한 적이 있다.
- ↑ 그래서 미국 대선은 사실상은 러닝메이트 제도지만 명목상으로는 아니다. 정, 부통령 짝을 한꺼번에 뽑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따로 부통령 따로 뽑는 것이므로. 그래서 이론상은 대통령 당선자는 공화당 후보, 부통령 당선자는 민주당 후보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오히려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인단 선거 때가 러닝메이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이 4명이라 쳤을 때 이쪽 4명과 저쪽 4명 중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니까.
- ↑ 존 퀸시 애덤스항목을 참고. 정당표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후보 전원이 민주공화당 소속이라서
- ↑ 48개주 전체에서 여성 유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최초의 선거. 그래서 투표자수가 직전 선거의 1854만에서 2677만으로 급증했다. 1916년에는 30개주만 여성 유권자의 참여가 가능했다.
- ↑ 출마하지 않은 해리 F. 버드 - 스트롬 서먼드로의 반란표가 있었다.
- ↑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이 남성 유권자를 따라 잡은 최초의 선거
- ↑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인 제럴딘 페라로와 런닝메이트였다.
- ↑ 역사상 유례가 없는 네거티브 선거이기도 했다.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항목 참조.
- ↑ 미국 역사상 최초의 3자 TV 토론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마지막 3자 TV 토론이다.
- ↑ 고어 낙선에 큰 영향을 미친 제3후보
- ↑ 러닝 메이트는 사라 페일린(...)
- ↑ 사실 이런 지지차이는 미국 건국 이후부터 늘 전통이었다.
- ↑ 흥미롭게도 닉슨과 레이건 모두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있다(닉슨은 아예 고향이 캘리포니아, 레이건은 주지사를 지냈다.). 부시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것이 92년 대선의 패배 원인이 아니냐... 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