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

영어 : Panama Canal
스페인어 : Canal de Panamá

1 개요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에 건설된 길이 약 82km의 운하로, 대서양태평양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위 아래로 길쭉한 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야 하는 화물선의 운항시간 단축에 큰 획을 그은 운하. 다만 요즘은 워낙 배들이 거대해져 통과 선박 크기에 제한이 있긴 하다. 4번 항목 참고. 파나막스니 포스트 파나막스니 하는 선박의 사이즈별 구분은 다 이 운하의 항행 가능 폭을 상정해 두고 만든 것이다.[1]

운하 서쪽에는 태평양, 동쪽에는 대서양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지도에서 보다시피 지형이 좀 미묘한 관계로[2] 운하 서쪽에 대서양(과 연결된 카리브해), 동쪽에 태평양이 있다.


2 역사

2.1 근세

개념 자체는 이미 16세기의 스페인 초대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그 유명한 카를 5세가 친히 주목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었다. 152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가 그 필요성을 역설하자 이걸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프랑스오스만 제국과의 전면전이 있었는데(둘 모두 승리/격퇴했다), 이때 막대한 전쟁비를 안 들였더라면 이때부터 진짜로 추진되었을지도 모른다. 추진한다는 얘기지 성공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처럼 일찍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 서부 지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은 아메리카 대륙 동부해안을 따라 남아메리카의 끝인 드레이크 해협까지 간다음 혼 곶을 찍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거리도 더럽게 멀고, 폭풍을 만나기 쉬운데다가 시간도 더럽게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의 해상무역은 계속 GG칠 수 밖에 없었다.


2.2 근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과정에서 주목받은 곳이 바로 파나마 지협이었다. 약 80km 정도를 미친듯이 삽질해서 물길을 만들면 양쪽으로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운하를 파기에 가장 매력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대공사를 벌일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1880년 프랑스가 총대를 메고 나서기 전까지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으로 입으로 떠드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래도 수에즈 운하 개통을 지휘한 기술자이자 외교관인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1805~1894)가 이끄는 프랑스 공사팀이 맡을 당시에는 세계 여론은 수에즈 운하 개통의 기술 경험을 가졌기에 파나마 운하도 문제없으리라 봤다. 하지만 이게 워낙 난공사였고 사고 및 질병으로 사망하는 인부들이 무려 2만 2천명이나 되면서 결국 프랑스도 9년만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물러났으며 책임자인 레셉스는 막대한 빚을 지며 파산하여 정신이상까지 일으켜 늘그막을 비참하게 지내며 죽는다. 또한 1892년 프랑스에서는 이 운하 때문에 대규모의 정치 스캔들이 폭로되었다.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태계 금융자본가를 내세워 복권부사채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매수했던 것이다. 결과는 수많은 국회의원 및 전직 장관들이 퇴진했고, 프랑스 정치계에 큰 불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3]

당시 가장 많은 사망 원인은 모기였다. 애초에 그 지역이 말라리아 창궐지역으로 악명 높은데다가 운하 판답시고 구덩이까지 파게 되자 거기 찬 물에 모기들이 자라 모기가 무진장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에 인부들 사이에는 말라리아를 개미가 옮긴다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 있어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개미를 막겠답시고 침대 다리마다 양철 그릇을 놓고 거기다가 물을 담아 놓았었는데, 그 물 담긴 그릇에서 모기가 더 맹렬히 번식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마를 때마다 침대를 들어서 물을 비우기 귀찮으므로, 수위가 내려갔다 싶으면 그냥 웅덩이 물을 퍼다가 부어넣기만 해서 물은 썩어들어갔고, 모기가 번식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숙소에 말라리아 병원균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생물학적 무지가 낳은 비극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걸 모르고 그저 위치가 나쁘다는 주장도 많아서 파나마가 아닌 니카라과새롭게 운하를 만들자는 주장도 많았었다. 그런 주장이 타격을 받은 건 1902년에 벌어진 마르티니크 섬의 몽펠레 화산폭발 대참극이었다. 3만에 가까운 섬인구가 죽어간 이 참극의 여파로 화산재 영향이 위치,바람이나 여러 모로 위험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니카라과 운하 계획은 파기되고 그대로 파나마에서 운하를 만들자고 한 의견이 자리잡게 된 거였다. 거리는 2,500km나 떨어져 있지만, 위도가 비슷하고 풍향이 맞아 떨어진 탓에 니카라과에 화산재가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 뒤, 미국이 공사하는 동안(1910년대)에는 말라리아 매개체가 모기라는 사실이 밝혀져, 모기를 적극 구제한 덕분에 인명 피해가 대단히 많이 줄었다. 당시 윌리엄 크로포드 고르거스(1854~1920) 소장 지휘 하에 공사를 맡은 미 육군 공병대는 정면으로 이 위협에 맞섰는데, 공사 지역마다 신선한 물을 공급할 시설을 건설하고, 공사 지역 내의 건물이란 건물은 살충제로 가득 채우고, 특히 모기의 서식지가 될 연못이나 웅덩이마다 석유를 부어서 모기의 번식을 원천봉쇄했다. 심지어 고인 물이라는 이유로 성당에 들어가서 성수마저 엎어버렸다니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치들을 취하는 데에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고르거스의 상관들은 "모기 한 마리 잡는데 10달러를 쓸 셈이냐."라고 투덜대었지만, 고르거스 소장은 "그럼 그 10달러짜리 모기가 장군님을 물면 어쩌시렵니까?"라는 말로 불평을 모두 잠재웠다. 사실 고르거스 소장은 이미 1900년대 황열병 전염에도 모기가 큰 매개체라는 걸 알고 같은 방법으로 중미 여러 곳에서 황열병을 크게 줄인 활약을 하여 이 공로로 장군까지 오르고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았던 인물이다.[4] 암튼 말라리아 문제를 해결한 미국은 당시에는 생소하던 전기까지 끌어와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을 획득하게 된 미국이 해군 함대의 신속한 전개를 위한 전략적 목적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결국 1914년 8월 15일에 완공시켰다. 파나마 운하가 아니면 미국 해군은 사실상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양분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콜롬비아가 조건을 세게 부르자 파나마를 부추겨 독립시키기도 했다.

성공시킨 미국도 약 6천명 가까운 사망자를 내면서 마무리했다. 즉 이 운하 개통공사 과정에 약 2만 8천명에 달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2.3 현대

파나마 운하는 1999년 12월 14일에 정식으로 파나마로 반환되었다. 1914년에 완공된 이후 85년만에 이뤄진 일이였다.

그리고 [102년만에 확장 개통]되었다.

3 통행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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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를 통과중인 아이오와급 전함.

파나마 운하 자체는 해수면보다 수십미터 높다. 이 때문에 선박들은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간 뒤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쓰이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 쓰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갑문식 운하를 만든 이유는 운하 중간에 산맥이 있어 수에즈 운하처럼 평탄한 운하를 만들 경우 그 당시의 기술력(지금도 마찬가지지만)으로는 천문학적인 공사금액과 시간, 인력이 소모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것처럼 통과속도가 느리고 복잡한 갑문시설이 추가되며 운하의 각 지역에 수위를 조정하는 댐도 여러 곳에 설치해야 해서, 만일 댐이 무너지거나 폭파되면 수위조정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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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갑문식이라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10,000km 이상 삥 돌아서 최소 몇 주 이상을 가야되는 거리를 불과 하루면 건너갈 수 있게 되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과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이 이 운하를 이용하게 되었고, 파나마 운하는 건설비에 들어간 비용 이상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4 파나맥스와 포스트 파나맥스

다른 더 큰 원인이 있지만, 이런 이유도 있어서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파나마 운하로 재미를 본 곳은 미국이었다. 그 때문에 20세기 내내 파나마 정부와 운하 소유권을 놓고 마찰이 빚어졌으며, 결국 2000년에 운하 통제에 대한 전권이 파나마 공화국으로 넘어갔다. 권한 이양식 때 미국 현직 고위 공직자는 한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파나마 운하에 대한 미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기네들이 만든 것이니 그럴만도 하지만.. 한편 운하를 통행하는 물동량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파나마 공화국은 운하 확장공사를 계획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하였고, 2006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2007년 공사를 시작하였다.[5] 초기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운하 확장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2016년 6월 26일 개통이 된다고 한다. [100년만의 파나마 운하 확장개통] 관련된 사진은 [이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이 운하 건설로 미국 해군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는 의의가 있다. 애초에 파나마 운하 자체가 미 해군의 신속한 전개를 목적으로 만든 거였다. 다만 운하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함선의 폭을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야만 했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함선의 크기나 배수량 면에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냥 맘 놓고 군함을 크게 설계를 못한 것 뿐이지 전투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며 영향을 받은 대상도 아이오와급 전함을 비롯한 일부 대형 전함항공모함으로 한정된다. 일단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면 전폭이 33미터로 제한되는데, 미해군 최대의 전함인 아이오와급의 전폭은 32.97미터로 통과 가능하다.(…) 하지만 폐기된 전함 계획인 몬태나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덩치를 키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항공모함, 특히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인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현대의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무리 없이 통과가 가능.확장공사로 이제 니미츠급도 지날 수 있게 됐다!

파나마 운하 통과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 사이즈로 지은 배를 "파나맥스"(Panamax)급 선박이라고 부른다. 통상 폭 32미터, 만재배수량 9만톤 내외의 선박이 이에 해당. 현재는 파나맥스 규격을 뛰어넘는 커다란 컨테이너선을 많이 건조해서 배 자체가 파나마 운하를 넘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파나마 운하의 통행량 자체도 포화상태이다. 하루에 30여척에 불과한 운하 통행을 기다리느라 바다에 투묘한 채 시간을 보내는 선박이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파나마 운하의 북쪽 가까운 곳에 폭이 2배정도 되는 신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새로운 파나마 운하는 대략 폭 49미터, 12만톤급 선박도 통항이 가능하다고 하며, 이미 각국 조선소에서는 새로운 포스트 파나맥스(Post Panamax) 규격에 맞춰 선박을 열심히 팔고 있다. 가툰 호수의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호수의 확장공사도 했다.


5 기타

개통된지 100여년이 되었지만 운하 운행이 중단된 것은 단 2번이다. 큰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 번, 미국이 1989년 12월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기 위해 침공 했을 때 한 번. 그나마 전쟁 상황에서도 단 6시간 멈췄을 뿐이다. 나라가 망해도 돈은 돈다

통행료는 선박의 길이와 화물 적재량 혹은 승객 수 등에 의해 차등이 심하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간다. 평균 비용은 5000만원 선. 가장 많이 낸 경우는 259m 길이의 "디즈니 매직 크루즈 라이너"라는 배로 2008년 5월 16일에 통과할 때 33만 1,200달러 (우리나라 돈 약 3억 4600만원[6])였다. 반대로 가장 적게 낸 경우는 1928년에 리처드 핼리버튼이라는 미국 모험가가 이 운하를 수영해 지나갈 때로 39센트를 냈다. (...) 운하 유지에는 해마다 1500억원 정도 들어가지만 연간 수입이 2조원 규모에 달해 여러모로 파나마 재정의 중요한 요소.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항로가 개통되면 파나마 운하는 수요 면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7][8]


5.1 창작물의 파나마 운하

맥스 페인 시리즈 중 3편의 챕터 11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챕터 11 한정으로 등장하는 적들인 콜롬비아의 무장단체 AUP가 이곳에서 해적질을 하는 남의 나라에서 온갖 민폐를 끼치는 장소(...). 해적질에 참가했던 AUP는 전원 끔살당했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 AUP에게 살해되어 맥스 페인에게 또다른 트라우마를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 시간상 그 이후인 챕터 5의 뉴스를 보면 여전히 파나마 운하 주변에서 민폐를 끼치고 다닌다고 나온다(...). 여담으로 "내가 뻗어 있는 동안 달까지 상승할 기세" 라는 맥스의 개드립이 압권(...). [9]


5.1.1 대항해시대에서의 등장

대항해시대 2에서도 포르토벨로, 파나마 등 파나마 인근 지역 항구에 기항하면 NPC 중 한 명이 "여기에 운하가 있었으면…."이란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삥 돌아가야 되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캐공감. 여담으로 지금 운하가 있기 때문에 저런 대사가 삽입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술했다시피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는 16세기 카를 5세때부터 제시되고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배경도 딱 그 시점이니 어느정도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육상탐험이 가능하여 그리 절실한 수준까진 아니었으나(거기에 추가로 원양항해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교역의 중요성은 줄고 그래서 굳이 태평양을 횡단해야할 이유가 무대륙 찾을때 아니면 없었다) 그래도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이와 이구아나나 이스터섬의 모아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무대륙같은 발견물을 찾기위해선 마젤란해협을 건너야 했기에 이 때는 꽤나 절실했다.

대항해시대 4에서도 자동항해 기능의 강화와 신대륙 서해안에 단 하나의 정식항구를 두지 않을 정도로(페르남부쿠 아래로는 아예 정식항구는 없고 죄다 보급항만 있다)신대륙 서해안을 홀대한 탓에 절실한 수준까진 아니었으나 몇몇 아이템의 경우 서해안에서 탐색해야 했기에 이 때만큼은 절실해졌다.[10]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2,3,4 시리즈를 통틀어 운하 떡밥이 많았는데, 파나마 또는 인근 항구에 투자를 해서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면 운하가 열린다느니, 실제로 운하가 개설되는 20세기까지 플레이하면 운하가 열린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100% 구라. 단, 대항해시대 4에서는 어떤 유저가 운하를 구현한 모드가 있긴 하다. 그리고 2012년 경 어떤 용자가 지도 파일의 헥스 데이터를 뜯어 고쳐서 대항해시대 2에서도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뚫는 쾌거를 이룩했다! 진정한 신세계의 개척자

이후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드디어 게임속에 구현되었다(!). 역사적 사실과는 반대로 업데이트 하다보니 수에즈 운하보다 먼저 구현되었다.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양대 운하로 활약하는데, 통과에 걸리는 시간은 10분 전후[11]이며 100만 두캇 약간 안 되는 통행료가 있는데다가, 교역품을 싣고서는 통과할 수 없으며, 시간제한이 있는 퀘스트를 받아서도 안되는 등 게임의 밸런스를 위해 현실과는 다른 제약이 매우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해가 굉장히 편해졌다. 한 3번만 타보면 운하가 왜 필요했는가를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게 된다.

사실 실제 파나마 운하는 별도의 동력이 없는 범선이 태평양과 대서양과 호수의 수위 문제 때문에 예인선 없이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현대에도 범선은 세계일주 시에 혼 곶 남단으로 다닌다. 이를 클리퍼 루트라고 하며, 대략 40도 전후의 위도에서 강력한 편서풍을 타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상의 지리가 메르카토르 도법을 기준으로 해서 남극해 근처로 갈수록 둘레가 비정상적으로 멀어지는 관계로 실제 범선의 루트대로 움직이기는 힘든 형편이다. 오로지 유저 편의를 위해 설정을 파괴한 것이다.

  1. 그 밖에 다른 기준이 되는 운하로는 수에즈 운하가 있다. 이 쪽의 명칭은 수에즈막스. 이 급의 선박은 통상 120,000~160,000DWT의 톤수에 선폭 약 70m 정도의 규모를 가진다. 수에즈운하 문서에 가 보면 놀랍게도 항공모함이 떠 다니는 사진이 있다.
  2.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자]
  3. 1912년 모리스 르블랑아르센 뤼팽 의 다섯 번째 단행본인 "수정마개(Le Bouchon De Cristal)"에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다루게 된다.
  4. 초급장교 시절 황열병 에 걸려 죽을 뻔 했었다. 당시 간호사가 헌신적으로 간호하여 운좋게 살 수 있었는데, 고르거스가 황열병에서 치료되자 이번엔 이 간호사가 황열병에 걸려버린다.(...) 미안한 마음의 고르거스는 이 간호사가 황열병이 나을때까지 잘 대접했고 이 인연으로 둘은 결혼하게 된다. 황열병으로 맺어진 집안 하지만 황열병에겐 가차없다
  5. 이 소식을 들은 이집트가 곧바로 수에즈운하 확장에 들어가 2015년 먼저 개통했다.
  6. 이 때 당시 환율이 약 1045원/달러 정도였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계산한 값이다.
  7. 만일 실현되면 뉴욕-도쿄간의 바닷길이 기존 파나마 운하 경유 18,200km에서 북서항로의 14,000km으로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망했어요가 될 듯
  8. 그나마 뉴욕-센프란시스코 간의 항로가 10,000km 대 14,000km로 약간 우위에 있지만 미국내 물류는 기차를 사용할테고, 미 해군이나 사용할까... 헌데 시속 5~60km로 하루에 1200~1400km를 주파하는 해군 함정들에겐 고작 2~3일(3~4일 - 운하통과에 소요되는 시간 하루)을 줄여줄 뿐이다.
  9. 정확히는 맥스가 술에 취해서 자고 일어나보니 요트가 AUP에게 점거당한데다 겨우겨우 밖까지 나와보니 파나마 운하인 상황. 자신이 자는 사이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에 대해 맥스는 '이것 참 대단하군. 나중엔 자는 사이 달까지 갈 수도 있겠어'라고 독백한다(...)
  10. 다만 교역이 목적이 아니라 탐색을 목표로 한 경우에는 의외로 일본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이, 카리브해에서 남미대륙 남단을 거쳐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다.
  11. 게임속 시간으로 10일. 자신의 국가의 플레이어들이 운하 관련 퀘스트를 수행한 정도에 따라 소요시간이 약간씩 변동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