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직

1 개요

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정확하게는 순정만화가였던 사람.

1973년 1월 29일 생.
1993년 순정지 '미르'에서 데뷔,

필명이 아닌 본명인데 역시 본명인 곽백수와 더불어 상징적인 필명(만화가는 백수이자 무직처럼 가난하다)을 쓰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여러모로 작품 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더 유명했던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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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연재했던 오컬트 소재의 만화 <라키아>. [1]

"한국에서 유일한 남자 순정만화 작가"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알고 보면 "순정만화계에 남자 작가가 별로 없다."는 생각 자체가 남자 작가들이 마케팅 때문에 여성형 필명을 써서, 혹은 실상을 잘 모르고 순정만화니까 여자가 그릴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생겨난 착각. 한국 만화계에서는 60년대에 이미 남성 작가가 순정만화에 진출하고 있었으며 남성 작가의 작품[2]이 지속적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유명한 이진주, 김동화, 차성진만 해도 남성 작가이면서 순정만화 분야로 유명했다. 다만 박무직이 당시 세대에서 유명했던 남자 순정작가였으며, 상대적으로 다른 작가들은 박무직처럼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아서 유독 그만이 흔치않은 남성작가로 부풀려진 면도 적잖게 있다.[3]

다만 박무직은 한국 여성 만화가 협회의 유일한 남성회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은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도 작가 소개를 잘 보면 분명 여성만화가 협회의 유일한 남성 회원이라고 명시했었다.

90년대 초반에 취미가 노트장 갤러리(모형잡지 취미가네오 항목 참조)에 그림 많이 그려 보내기도 했다.

2 작품 성향

한국에 흔치 않은 SF 만화를 제대로 그리는 작가 중 하나다. 배재대 물리학과를 나왔으며[4] 만화뿐 아니라 과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영화를 과학적으로 비판한 '영화를 믿지 마세요'라든지 국내 모 과학잡지에서 올컬러 학습만화 스토리를 써서 단행본까지 수권 나왔다. (만화 사이언스 시리즈) "실제로 지식수준도 매우 폭넓어 거의 교수급" 같은 이야기도 있으나 만화가 중에서 그렇다는 정도이지 전공교수 급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표작은 <TOON>, <무일푼 만화교실>[5] 등. 주로 순정만화계에서 활동했다. 다만 당시에도 박무직의 작품이 소위 말하는 순정만화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제기됐었다. 애초에 순정만화라는 분류 자체가 정확히 구분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6] 박무직의 경우 그림의 외형적인 특징 자체가 평면적인 구성에 더 공을 들이는 일반적인 순정만화와는 다르기 때문. 원론적인 내용이 가득한 본인의 작법서 등에서는 회화적 데생력이 풍부할 경우 자유자재로 그림체를 바꿀 수 있다고 공부 안 하는 만화가지망생들을 꼬셨으나 주장했으나, 박무직의 그림체는 <수리수리 맛소금> 같은 윤승운류의 명랑만화체 하나를 제외하면 실사체를 그릴 때나 순정만화를 그릴 때나 소년만화를 그릴 때나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연출스타일도 이론적인 차이는 두었으나 그림체 차이가 적다보니 독자 입장에선 딱히 '순정만화 연출'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그림체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실력 자체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받는데 주로 '전혀 흥미가 일지 않는' 스토리가 문제. 일본 측 프로듀서에게 "그림은 수준급인데 스토리는 꽝"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만화에 대해선 재미없다는 평이 많다. 대표작인 <TOON>에서는 점점 이야기가 개념화하며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는데 이게 상당히 호오가 갈렸다.[7]

<무일푼 만화교실>, <박무직 만화공작소> 등의 작법서를 냈는데[8] 그의 유명세는 대부분 이 작법서에서 왔다. 만화계 입문용으로는 상당히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혹자는 "박무직의 대표작은 어디까지나 <무일푼 만화교실>이다!" 라고 할 정도. 실제로 <TOON>을 제외하면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장기간 연재한 게 거의 전무한 실정.

주로 장편보다는 단편이 재미있고, 실험적인 시도가 강하다.(하긴 거의 단편밖에 안그렸다.장편이라고 해봐야 툰과 필링 정도 밖에 없다.) 단편을 모아 단편집도 몇 권 냈는데 장편에 비하면 평가가 괜찮은 듯 하다. 특이한 점은 각 단편마다 작가의 해설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이 장면은 이런 의미가 있고 이 페이지에서 이렇게 컷 배분을 한 것은 이런 의도다 등등. 독자마다 작품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자기가 의도한 대로 해석하지 않는 걸 못 견디는 건지도?

2001~2002년엔 'Feeling'이란 성인만화를 코믹스 투데이라는 웹진(당시 인터넷 홈페이지 명은 "X-GATE")에서 연재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신혼생활을 모티브로 해서 그렸다곤 하지만, 당시 PC통신상에선 후타리 H를 베낀 거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코믹스 투데이와 마찰이 있어서 단행본 2권을 끝으로 어중간하게 연재중단이 되었다. 이른바 "코믹스 투데이 사태". 근데 여성쪽에서는 여성 이해하는 척하면서 결국 남성 판타지나 만족시킨다고 욕도 대단히 먹었던 모양. 사실 코투 입장에서도 남자 보라고 실은건데 박무직이 워낙 '남자인데 순정만화가'라는 타이틀에 애착을 갖고있던 탓인지 결론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어느쪽이 봐도 재미없는 애매한 만화가 돼버렸다. 이 만화의 거의 유일한 특징이라면 남자의 성기를 물고기로 그렸다. 물고기'처럼'이 아니라 진짜 그냥 물고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혼생활의 리얼리티를 살렸다는 점이 유효했는지 아니면 에로물이 달리 없어서였는지, 코투에서는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여 그 당시 본인 입으로도 "내 인생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료회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고.

고래가 그랬어 초창기에 만화 공작소 비슷한 만화를 연재하고(꽤나 간단한 내용이지만 풀컬러다!) 뒤이어 '라키아'라는 만화를 연재했는데 라키아는 연재한지 몇 화 안됐는데 소리소문없이 짤렸다. 짤린 화가 마침 기계가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인지라 잡지 성향상 수위 문제로 짤린 모양.

2002년 이후 주로 일본에서 활동 중. 일본에서 BOICHI라는 필명으로 성인 만화를 그렸었다. 필명이 검열삭제를 연상케하기도 하다보니 문제는 "그렇게나 이상론을 늘어놓더니 결국 일본에서 19금 상업지나 그리고 있냐" 라는 것, 박무직은 그 전에 만화의 예술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같은 만화가들은 늑대, 자본에 종속된 만화가는 개로 묘사하는 작품을 그리는 등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이상론을 강한 어조로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인물이 가지는 위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질 못하는 것이다고 옹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본에서 성인물 시장이 꽤 큰 것은 사실이지만, 상업지 시장은 성인물 시장 중에서 따져도 별 볼일 없는 분야다. 한국에서는 둘 다 18금 성인용이라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상업지 시장은 "18금"으로 지정되어서 수입되는 조금 수위높은 "청년지" 연재작(흔히 "영" 이 붙는 잡지에 연재되는 만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레이블로 취급된다. 한국에서는 "아예 판매가 불가능한 수위"의 작품들이 "상업지"로 지정된다. 이런 높은 수위의 작품들은 일본에서도 널리 파는데 한계가 있는데, 서점에서 별도 서가에 놓도록 지정되고 편의점 같은 곳에서는 팔 수 없게 하는 등 판매에 어느 정도 제약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한 "성인용" 만화를 출판하는 상업지 시장은 출판사가 극도로 영세하며 (돈이 안되어서) 작품 퀄리티도 별 볼일 없는게 많다. 상업지 시장이 얼마나 열악한가는 상업지에서 시작해서 애니메이션으로 진출한 "작품"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 만큼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이나 작품 픽업 능력이 영세해서 한계가 있다는 거다. 뭐 그런게 많이 요구되는 시장도 아니지만. 당연히 사회적 인식도 나쁘다.

그러나 박무직이 상업지 시장에서 일했던 것은 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앙할 것도 아닌 것.[9] 경험삼아 했거나 혹은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한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10] 박무직 본인은 자기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이 일본 성인물 시장 진출에 대해 거론하며 이죽거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아예 홈페이지를 폐쇄해 버리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11] 어쨌든 장르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정도로 전혀 야하지 못 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현재는 일본내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라키아'를 '모닝'에서 연재하기도 했다.(고래가 그랬어 연재했던 것과는 제목만 같고 전혀 별개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극장판 트라이건 개봉 기념으로 트라이건 단편을 그리기도 했다.

2010년 일본 '모닝'에 신작 연재. 영킹에 연재했던 선캔락[12] 은 통산 판매부수가 100만부에 2011.5에 나온 12권은 초판 10만부라고 하니 나름 잘나가는듯. 한국 작가 중 황미나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모닝에 한국작가가 진입한 케이스라고 잘못 알려지긴 했는데, 실제는 박무직과 황미나 이전에도 오세호, 안수길 등이 80년대말~90년대 중반에 활동했다. [13] 2013년엔 내처 월맨으로 슈에이샤의 그랜드 점프지에도 상륙했다. 한국 있을때보다 훨씬 잘 나가고 있는 중. 라고 하는데, 막상 일본에서 토라노아나나 애니메이트등 만화전문점이 아닌 일반서점에 가면 한국작가 만화는 신암행어사만 보이고 박무직 만화는 찾기힘들다.

일본 연재중인 작품은 한국에서보다 수위가 세게 나가는 경우가 많아 한국판 발매가 요원한 듯 싶었지만, 2011년 7월에 궁극요리황제 시저가 '스페이스 셰프 시저' 라는 이름으로 정발되었다(다만 성인 드라마로 분류되어 19금 딱지). 작가 이름은 일본 필명 BOICHI와 박무직 둘 다 표기되어 나왔다.

일본 진출 초기. 메이저잡지로의 진출을 위해 제자의 작품을 가져가 재작화하여 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제자의 작품을 가져갔다는 표현보다 리뉴얼 대상이 됐던 해당작품 자체는 '박무직 화실에서 나온 작품'으로 보는게 더 맞다. 문제가 된 단편 <HOTEL>은 원안/구성 박무직에 작화는 제자인 박지홍이 하여 국내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작품. 하지만 애초에 내용 자체가 박무직의 작품이다 보니 작품자체의 컬러는 박무직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요소가 많았다. 작품에 참여한 파트를 밝힌 사항이 좀 독특한데 '원작'이나 '글' 혹은 '스토리'가 아니라 '원안'이나 '구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볼 때, 단순히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콘티 단계까지는 박무직이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박무직이 제자의 작품을 훔쳤다"는 식의 논란은 사건 자체를 키우기위한 안티들의 찌라시식 타이틀에 불과했고,[14] 실제로는 "배테랑 작가인 박무직이 사실상 모든 걸 한 작품인 <HOTEL>이 공모전 수상을 했던 것이 옳은 일이었나"에 대한 논란과 "이미 한번 나왔던 작품을 '재탕'한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논란이 더 많았다. 다만 프로작가의 참여 부분은 프로작가라 하더라도 공모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15][16]. 더군다나 만화에 한정짓지 않고 영화나 음악 같은 다른 분야와 비교하자면 재탕이라기 보다 리뉴얼 내지는 감독판이라고 보는게 맞다.[17] 실제로 일본측에서도 박무직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준급 작화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하지만 2004년 동아 사이언스 과학기술 문예창작 만화부문 수상작 리스트에는 작가로서 박지홍 이름만 있고 박무직 이름은 없었다. 출판된 수상작 모음집에도 박무직 이름은 없다.# 공모전 당선을 위해 프로작가가 스토리를 쓴 사실을 일부러 숨긴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대목.

3 성격

'만화'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내향적인 다른 만화가들에 비해 능동적인 편이라 이원복병맛스러운 순정만화 비판[18]을 적절하게 깨부수고 오히려 이원복의 그림체가 서양 카툰을 흉내낸 면[19]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대 작가들에 비해 권리를 주장하는데에 적극적인 만화가였으며 한때 도서대여점 논쟁을 주도하기도 했다.[20] 주도만 하고서 나중에 뒤로 쏙 빠져버렸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여점 이야기는 꾸준히 이야기했고 다만 본업인 만화가 일과 코믹스투데이 원고료 미지급 사건 등 여러가지 일이 겹친터라 초기 여론형성에 주력하고 빠졌다고 보는게 맞다. 실제로 이 시기 널리 퍼져서 소위 '작가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의식있는 독자들'을 스스로 뭉치도록 만든 '자유의 검은 리본'이라는 심볼은, (황미나의 양해를 구해) '황미나가 만든 것으로 하고' 사실은 박무직이 만들고 퍼뜨린 심볼이다. 현역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대놓고 활동하던 박무직이 빠진 이후에도 독자들을 중심으로 이 '검은 리본' 심볼 아래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박무직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여점 논란에서 사라졌다고 보긴 힘들다.

하이텔 만화창작동호회에서도 활동했었는데 (아이디:einsteiN) '외국에서는 모두들 만화를 망가라고 부르니 우리도 망가라고 불러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망가(manga)는 일본 만화를 뜻하는 말이지 만화 일반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던 주장이다.[21][22]

90년대 후반에는 월간 키노에 만화 관련 컬럼을 쓴 적도 있다. 박무직 본인은 이때의 컬럼 연재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듯, 당시 활동을 '만화평론가로도 데뷔'라는 식으로 자칭하곤 하는데 글의 내용은 평론이라기보다는 특정인/단체에 대한 비난이나 컬럼이라기도 민망한 본인의 단상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키노 연재판은 문장력도 떨어져서 읽기 불편했는데 나중에 단행본화되면서 출판사에서 엄청난 교정교열을 했는지 그나마 읽을만은 하게 수정되었다. 박광수의 광수생각을 비판하기도 하고 YWCA를 씹어주는 글도 싣었다가 관련 단체 반론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이걸 보고 더 비난하는 글을 올렸었다.

당시 6~70년대 한국만화계의 표절 만화 관행 관련으로 작가들을 비판했다가 되려 그 자신이 비난을 많이 당했다. 그가 매우 호평하던 아기공룡 둘리 원작자인 김수정도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23] 당시 상황에선 만화가들이 표절작을 그리지않고 먹고 살아가기 힘들었던 상황[24]임에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비난을 했다는 것이 주요골자. 특히 당시 박무직이 비난하던 만화가가 타이거 마스크를 억지로 그려야했던 이두호인데, '토속적인 필치로 제대로된 한국만화를 그리는 작가'라는─일종의 상징이기도 한 작가였기 때문에 비난여론이 더 들끓게 됐다. 뭣보다 박무직이 직접 몸담고 있는 순정만화계 역시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으며 박무직이 존경하던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월간 키노에 90년대 후반에 연재하던 단편 만화들을 보면 굉장히 좌파적인 사상 및 사회 풍자가 가득했다. 98년에 연재했던 벽이란 작품에선 여자 알몸 및 고어적인 연출이 보였는데 이를 두고 YWCA 서울 모니터회가 키노 지를 엄청 깠다.

4 원론 추구

성격과 가치관이 너무나도 독선적인데다, 자신의 의견과 대립된 주장은 모두 틀렸다는 식의 무리수가 드러날 때도 많다. 자신의 논리적 비약성은 생각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하면 끝까지 물어뜯으려는 성향도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원론을 강조하는 편. 실제로 <박무직 만화공작소>에서 사진을 이용하여 배경을 베껴그리는 일이나, 아예 사진 자체를 배경으로 삼는 일은 치욕이라고 까지 표현했다.[25] 한편으로 건물이 아예 그려진 배경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길을 망치는 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정작 일본 작가들은 박무직이 소개한 배경톤을 감정표현 하는데 주로 쓴다.게다가 깨알같은 타네무라 아리나 디스 # 다만 <만화공작소> 시리즈의 경우 만화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책이므로 굳이 다른 프로만화가들에 대한 디스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박무직과 친분이 있거나 박무직이 좋아하는 만화가 중에서도 만화공작소 등에 나와있는 내용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 말 그대로 만화를 배우겠다고 자기 책을 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원론 강조'란 것인데... 문제는 그걸 '치욕'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과 잘못된 것이고 작가를 망친다는 오류를 범한 것. 어디까지나 원론의 권장과 실력향상을 위한 노력을 어필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박무직은 작법서나 기타매체(인터넷게시판 등)를 통해 지망생들을 가르칠 때 '회화적인 데생력'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퍼진 '만화가는 그림을 그렇게 그리지만 사실 화가만큼 잘 그린다'는 원론적인 부분인데.... 사실 만화가는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다.[26] 만화는 그림 이전에 연출이 핵심이기 때문. 원론적으로만 따지자면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만 잘 배치해도 '세모가 동그라미로 변화하는 과정'의 만화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이 만화라는 매체의 특징으로, 이 말은 즉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만화"를 그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이다.[27][28] 이러한 이론적 접근의 근거는 만화 속에 포함되는 '그림'을 ─일종의 '기호'로 인식하고─ 서양회화 속의 '그림'보다는 '문자'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기 때문인데,[29] 이러한 만화 고유의 특징은 만화이론서 중 가장 유명하고 기본적인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만 읽어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 평소 만화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많이하던 박무직이 이런 "만화의 기본 개념" 자체를 오해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왜냐면 이건 만화의 기본 개념 자체에 대한 또다른 '원론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박무직의 이런 '작화에 대한 지나치게 아카데믹하고 원론적인 관점 설파' 태도는 만화가지망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위한 의도일 테지만 극단적이고 예외를 부정하는 오류로 역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30]

이러한 회화적 데생의 강조가 "만화도 회화미술과 같은 예술의 영역"으로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는 3류문화 취급받던 만화가 '만화 또한 예술의 영역입니다'라고 항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가 '그림'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당시 논란이 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원론적인 접근이라고 옹호자들이 평가하고 있는 작법서라는 것에 스스로 역행한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접근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회화와의 차이가 엄연히 있는데 그림만이 예술의 영역이라고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주장부터 오류다. 애초에 무일푼 만화교실에서도 이와 상반된 주장에 가깝다. 빠들이 무리하게 옹호하다 보니 정작 박무직 본인의 주장과 멀어져 버린 케이스. 그보다는 만화관련학과들과 학원들이 생겨나면서, 만화의 요소 중 하나인 '작화기술'에 대한 예술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다.

지나칠 정도로 원론적인 "회화적 데생력" 에 관해 일례를 들자면, 박무직은 <만화공작소>에서 실사체의 경우 주름 하나까지도 사진을 참고해야 하는 '것처럼' 적어놓고 있는데, 사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작가도 드물고 그럴 필요도 없다.(주름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고 익숙해지면 보통 패턴을 외우기 때문이다)[31] 박무직이 설파하는 '그래야 하는 것'들은 실전에서 현역작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극단적으로 추구할 때나 할 법한 것들에 가깝다.[32] 쉽게 말해 <박무직 만화공작소>라는 책 자체가 "만화"에 대한 이론 보다는 실전적인 기술적 테크닉 즉 '작화'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많이 할애하고 있는 것. 그렇기에 해당 작화기법을 자세하게 배워볼 생각이라면 참고할 만한 테크닉에 대한 요소라 보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만화기법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는 책에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부분을 건너띄고 필수 요소라 볼 수 없는 부분을 강조했다는 것.[33][34]

이 지나친 원론주의 때문에 일부 작가들 사이에선 박무직의 만화 학습 서적은 입문자가 봐선 안되는 책이라는 말도 나오긴 한다. 물론 책 안에서 소개되어 기술이나 정보등에 대해선 나무랄 것도 없고, 웬만한 책들 수권을 사는 것 보다도 상세히 잘 정리되어있다는 점이지만 이러한 원론주의 원칙까지 초보자가 잘못 배우게 되면 쉽게 만화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 지나치게 원론주의를 지키면서 작업을 하려다보니 만화에 대한 접근이 더 어려워지게 되는것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이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은 박무직 작가의 서적은 자료로서는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며, 이런 지나친 원론주의적 주장들만 조금 더 생각하고 걸러보면 별 문제될게 없기 때문에 박무직 서적은 웬만하면 만화에 대해 어느정도 연식이 있는 사람과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본다거나 아니면 작품에 대한 실전경험을 조금 더 쌓고 보는것이 좋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독학한다고 박무직작가 책을 무턱대고 집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어찌됐건 소위 '벽창호'스러운 성격임은 확실하고 오히려 이런 점이 박무직 스스로를 고정관념에 가두어 버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온갖 작법서를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저서나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의 문하생 뿐만 아니라 다른 만화가지망생에 대한 교육열이 강한 편인데 열정이 과해서 실전테크닉은 물론 원론적 접근이라는 명제에서도 이탈해 버린 케이스.[35] 앞뒤 꽉 막혀보일 정도로 올곧은 성격상 박무직 스스로도 그걸 지키는 편인데[36], 그러다보니 만화 자체로서의 자유로움 보다는 요소요소에만 과도하게 신경을 써서 전반적으로 만화를 다루는 방식이 경직된 인상을 주거나 스스로의 오류도 가끔 보이는 것. 그래도 만화가가 될 제자들에게 열정에 대한 충고는 만화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몇번이고 되새길 만 하다.

5 화실 운용 운영과 문하생 및 어시스턴트 대우 문제

2000년도 초중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문하생 공고도 여러모로 화제가 된 바 있다. '○○ 구합니다' 정도의 내용이 전부인 일반적인 모집 공고와 달리 일주일의 작업량과 문하생들에게 내주는 '숙제'의 내용과 정기적으로 하는 '독서토론'의 내용 등등 거의 커리큘럼 공고 수준으로 자세했던 것. 정확한 액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돈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잘 하지 않는 편인 다른 문하생 공고에 비해 문하생은 어느 정도 일을 하고 어느 정도를 받고 어느 정도가 되면 어시스턴트로 취급해 어느 만큼을 준다는 식으로 자세히 적어놓기도 했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틀릴거 없는 공고였지만 상대적으로 문하생 구하는데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만화가들과 얼마 주겠다고 확실히 적어놓을 정도로 떳떳할 수 있는 경제사정을 가진 만화가는 거의 없으니까 지나치게 빡쎄보이는(?) 내용이 거슬렸던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단순히 문하생 문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미리 고민을 하는 지망생들도 있었고, 반면 만화학원 대신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문하생 모집란을 살펴보는 지망생들도 있었기 때문. 글만 살펴봐도 '들어가기 어려워보였기 때문'에 어그로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9월 13일 일본 화실에서 1년 가까이 일하다가 나온 한국인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노동착취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허구한날 자뻑질에 자기는 명품을 사고 휴일까지 지키면서, 월급날마다 어시스턴트에게 짜증을 낸다거나 초과근무, 휴일 무시는 기본에 약속한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쫒겨나듯 나왔다고.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별 차이가 없었다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SNS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측의 물타기 시전

아래는 순서별로 네이버 카페 방방 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에서 있은 어시턴트들의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해명을 정리한 것이다. 이대로는 결국 자가당착의 일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 어시 증언 증언1 증언 2

2.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1 해명2
3. 어시 증언과 박무직 작가의 답글 해명 증언3 해명3
4.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4 해명5
5. 어시 증언 증언4 증언5 증언6
6.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6
7. 어시 증언 증언7
8. 박무직 작가 해명 해명7 이것이 박무직 작가의 이번 사태 마지막 글이다.
9. 어시 증언 증언8 증언9

이후에도 어시들의 증언이 추가되었다. 여기에서는 증언1에 이어 매니저인 박무직 작가 아내의 문제점도 나온다(증언10).
특히 증언11에서는 도쿄에 있는 박무직의 화실 두 곳 중 어시스턴트들이 생활하고 자는 화실에서 한겨울에 난방을 한 번도 안 해서 문하생 및 어시스턴트들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런데 그 글의 댓글에서는 박무직 작가가 있는 곳의 화실은 난방을 잘했다고 한다.

10. 어시 증언 증언10-방사에서 스팸글로 등록되어 블로그로 링크 증언11-이 글만 방사를 가입해야 볼 수 있다.
어시 증언11

뭐 별로 심각한 얘기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셔터올리겠습니다. 박무직이야기입니다.
그동안 계속 이상하게 생각해온 게 있긴 있지.
솔직히. 이날이 아니면. 다른 분들의 고발이 아니였으면. 나는 내가 뭘 겪었는지. 스스로 생각할 능력조차도 없었군요.
이제 좀 뭐가 일어났는지도 알 것도 같습니다.
저는 갤럭시s2가 나오던 시절 문하생으로 들어갔습니다. 존나 그런 저런 일을 겪고도. 쫓기지 않으면. 스스로는 그만둘 수 조차도 없던. 병신같은 년이 한명 있었습니다. 잘라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내가 뭘 겪었는지. 그 화실에서 뭘 겪었는지. 말하겠습니다.

작가 본인은 전혀 관심도 없겠지만. 4년 전에. 일본에 화실이 두개가 있었습니다. 제가 자는 곳은. 평소에는 작업하는 화실이 아니고. 어시들이 생활하는 곳인데. 작업실도 있고요. 난방을 정말 한번도 안했습니다. 이불도. 그냥 얇은 거 하나 줬고요. 뭐 여름이불까진 아니지만. 두꺼운 이불도 아니지요. 커텐도 하나 없는 방에서. 정말 추웠습니다. 도쿄라도. 한 겨울에 말입니다. 저 혼자서만 그 집에서 잔게 아니라. 옆 방에서. 10년경력 선배도 같이 잤었는데. 그 사람은 춥다는 말도 한번도 안하고. 그래서. 저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살았습니다. 그나마.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라도 주면 다행이겠지만. 정말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목숨을 걸고 잤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것 같았거든요.

자유시간은 단 한시간도 없었고. 마트에 가서 물건을 하나 살 시간조차도 없었습니다. 한달동안 내내 말입니다.
작가 본인은 사소한 집안 심부름도 나한테 시키면서. 나는 나와 관련된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은행을 가는 것도. 그쪽에서 시켜야 갈 수 있는 거고. 근무형태가 아니였고. 그래서 하루종일 작가 사소한 뒷치닥거리나 하면서 사는 겁니다. 나는 존나 추위에 덜덜 떨어가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또 하나 더 말하겠습니다.
한국화실에서 저는 부천에 살았을때 5분 거리에 자취집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보내주질 않는겁니다. 마감 끝나고 잘때만이라도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선배새끼가. 항상 자기들이 부를 때 있어야 한다는 거지같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래서. 한달동안 10일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정말. 집세가 아까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도 처음 2,3달의 이야기입니다. 이 화실이 한달에 10일이나 쉬는 화실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오래지나서 기억이 안나는 게 한탄스럽네요. 내가 몇일 일했다. 몇시간 잤다. 말해야지. 되는데. 그런데... 기억이 안나니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감이 다 끝나고. 잘때만이라도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마감이 끝나면 또 다음 마감이 있고. 그러면 10시간정도는 자야 한다. 밤을 새고 나서. 말입니다. 이틀 꼬박 새고 10시간 자요. 뭐 그래 좋아요. 그때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 겁니다. 어디 나갈 때에도 항상 허락받고 나가야 하고. 저는 집에 가고 싶으면. 심부름 시킬 때. 뭐 사소한건 저한테 사라고 시킬거 아닙니까? 라면이나. 정말 내게 주어진 시간 내에서 의심을 받지 않고 집에 다녀오기 위해서. 정말 죽을 동 살동 똥을 쌋습니다.
그래서. 뭐 내가 대단한거 했는지 압니까? 옷 가지고 오고. 펜촉 꺼내고. 그런 거 하려고 정말. 들키면 잔소리를 들으면서 무진장 까여야 한다란 두려움을 가지고 갔단 말입니다.

하도 치이다 보니까. 나중에는. 제일 경력이 높은 어시한분이. 자유시간을 얻어서 머리를 이발하고 오는 것 조차도. 눈꼴시렵더군요. 와 저사람은 그래도. 자기볼일 주게 시간은 주는 구나. 저는. 마감이 시작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널널할때. 쉬는 시간에. 그럴 때 조차도. 항상 화실에 붙어있어야 하는 겁니다. 하는 일 없어도 대기해 있어야 하고. 그러고 6개월 생활하다가. 짤려서 그만뒀습니다. 정말 짤라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사람은 말입니다. 저를 뭐라고 생각했을 까요? 그게 정말로 듣고 싶습니다.

추신) 왜 잠을 잘 때는 나갈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기억이 났네요. 열쇠때문입니다. 가지 말라고 금지했는데. 내 마음대로 어떻게 나갑니까? 정말 저는 이 문제 때문에 많이 요구했습니다. 3번정도? 잠은 집에서 자게 해달라고 했다가.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화실 3군대를 경험해 봤는데. 한군데는 정말 열쇠때문에. 꼼짝없이 갇혀있었던 적도 있고. 그 화실에서 적지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는 부천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사정이 나았지만. 그나마 주는 시간도 자기 바빠서. 정말로 나간 것도. 5번 정도입니다. 대부분 심부름시킬때. 갔지요.

일본화실이 솔직히 개인시간은 가장 나았습니다. 왜냐면 키를 나한테 줬었거든요. 자는 시간을 쪼개어 가면서. 새벽3시의 일본을 1시간정도 산책한 적도 있고요. 그렇게 막. 갇혀서 살았던 건 아닙니다.
아뭏튼. 그랬습니다. 똥줄이 타서 쓰는데. 무플인거 보면... 제가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닌가 보네요. 뭐 뒷감당할 것도 없겠다. 잘됐습니다. 고발을 하려고 했는데. 고발도 아니고. 뒷담화 정도 되겠네요...

박무직 작가와 일하는 어시스트들의 불만은 경제적 대우, 인격 모욕, 언행불일치 등에 있다. 특히 화가 날 때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는 점이 큰데, 예전에는 작업이 잘 안되거나 불만족스러우면 어시스트나 문하생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부수거나 했고, 현재는 거기에 더해 욕까지 했다는 증언이 여럿 나왔다. 그런 것에 질려 그만두려는 어시스트 등에게는 "출판사에 못 들어가게 하겠다." 식으로 협박도 일삼았다고 한다.

또한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무직의 부인 역시 어시스트들이 박무직 화실을 떠나는 여러 원인을 제공했다. 박무직 작가의 아내는 고생하는 어시들 앞에서 남편에게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달라거나 해외 여행을 시켜달라고 수시로 조르고, 작가도 아닌 입장에서 상관처럼 굴면서 어시들에게 화를 낸다던가 집안일 등 사적인 감정을 어시들에게 푼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여 박무직 작가 이상으로 원성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박무직 화실 경험자들은 매니저(박무직의 아내)를 화실에서 퇴출시키고, 그녀가 어시스트와 화실의 일에 간여(干與)하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

더구나 박무직 작가의 해명글이나 이와 관련된 미디어스 기사에 아내에게 외제차를 두 대나 사주면서 경제적 여유가 줄어든 것이 어시스트에게 박한 대우를 한 원인 중 하나로 나오고, 어시스트들이 박무직 아내가 기존의 옷과 가방 외에 명품의 관심이 외제차로 옮겨졌고, 평소 그녀가 그런 것을 사 줄 것을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로 볼 때 박무직 본인 외에 아내의 문제도 심각하다고(일부 어시들은 박무직보다 그 아내가 더 싫었다고 적음)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문제가 불거져 어시스트 등 한국의 만화 지망생들에게 박무직 작가의 인식은 상당히 나빠졌다. 박무직 작가의 인덕이나 대인 관계는 현재 화실에 장기 근속 어시스트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되어 언론에 기사가 실렸고, 인터넷 방송에서도 이 일이 언급되었다.
1. 2014년 9월 17일 미디어스에 성상민 만화평론가가 쓴 '그 만화가는 어떻게 '악덕 업주'가 되고 말았는가'
원문기사
2. 2014년 9월 20일 대작스멜22화-대스 헤럴드 트리뷴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10분 30초 이후부터 박무직 작가 관련 언급이 나온다.
링크는 최신 회차로 연결되니 22화를 찾아가야 한다.


결국 이로 인해 박무직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에 해당하는 인물이 되었다. 과거 월간 키노 지에서 한국만화 병폐를 그리도 성토하고 인터넷에서 지적하더니만 정작 그렇게 잘난척 하던 본인이 갑이 되자 문하생을 저렇게 착취하는 꼴은 그야말로 7~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계에서 벌이던 짓이랑 전혀 차이가 없다. 덕분에 2000년초반까지 인터넷에서 박무직을 까던 만화동호회 사이트 회원들은 이 일을 이야기하며 박무직도 그리도 잘난척하더니만 자신도 그러한 병폐를 계승했을 뿐. 여태 하던 비난이 그야말로 개소리라고 비아냥을 보내고 있다.

6 기타, 총평, 공중파 방송 인터뷰

친한 작가로는 최찬정[37]이 있다.

SF 단편 HOTEL SINCE 2079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박무직이 제자의 스토리를 표절했거나 제자가 신인공모전에 스승의 스토리로 응모했거나의 양자택일 문제라서 어느 쪽이든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네이버에 카페와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문닫았다.

사실상 한국만화계가 내친 작가. 일반독자들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워낙 까가 많은 작가다 보니[38] 한국에 활동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저렇게 꽉막힌 사고방식으로 작가활동해서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다거나, 일본 진출 초기에도 성인물을 그렸다는 점만으로도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고작 이거냐"는 식의 비난들 받기도 했다.[39] 그러나 점점 축소돼가는 한국출판만화계의 상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성과를 거둔 만화가인 것은 틀림없다.

일본 진출 관련 2012년 12월 1일자 MBC뉴스데스크 만화 천국' 일본에 도전장‥한류 붐 바통 이어받나'를 통해 공중파 방송을 탔다(55초 부분에 박무직 작가의 인터뷰도 나온다).
MBC뉴스데스크

7 작품목록

7.1 만화

7.1.1 한국

  • <TOON> - 전5권. 작법서나 인문서를 제외한 박무직의 유일한 장편 대표작. 만화가지망생이자 문하생인 주인공을 주축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만화를 주제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만화이면서 만화 그 자체를 다루는' 메타픽션적인 성격이 강햇다.
  • <하늘 속 파람 그리고 별> - 단편집
  • <BLACK & WHITE> - 단편집
  • <에피소드> - 단편집
  • <디아블로 메타트론> - 1권. 팬도 쉴드치기 힘든 캐망작. 스토리가 안드로메다로 날라가는 밀리터리물이다. 만화가 최찬정과 작업
  • <수리수리 맛소금> - 아동만화. 잡지 '팡팡' 연재
  • <Feeling> - 성애물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 1권. 예지원이 주연한 동명 영화의 미디어믹스
  • <T.R.Y> - 전3권. 스토리는 가수 김현정. 김현정이 평소 지속적으로 만화에 관심을 표하기는 했으나 직접적으로 작품을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좀 있었다. 한 소녀가 가수가 되고 성공하는 내용.
  • <레오의 공룡탐험> - 학습만화. 작화가 아니라 스토리를 썼다.
  • <만화 사이언스> 시리즈 - 학습만화. 역시 작화가 아니라 스토리를 썼다. 다른 학습만화 출판사의 동명의 장편시리즈가 있으나, 이 작품은 천문편, 우주편, 물리편, 생물편으로 완결된 시리즈.
  • <AB화실의 요리조리> - 여성만화 잡지 '나인' 연재. 단행본은 나오지 않았다. 90년 후반 당시 드문 '전문만화'로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7.1.2 일본

  • <선켄락 (サンケンロック)>
  • <라키아 (ラキア)>
  • <궁극요리황제 시저 (究極宇宙味帝シーザー)>- 국내 발매 제목은 '스페이스 셰프 시저'
  • <HOTEL SINCE 2079> - 단편 만화.
  • <월맨>

7.2 작법서

  • <무일푼만화교실>
  • <무일푼데생교실>
  • <박무직 만화공작소>[40]
  • <머리가 좋아지는 창의력 쑥쑥 만화 그리기>
  • <포토샵을 이용한 컬러 일러스트레이션 비법>

7.3 일반

  • <박모 씨[41] 이야기 - 나는 만화인이다>
  • <영화를 믿지 마세요 - 만화로 찾아가는 영화 속 과학의 명쾌한 진실>
  1. 표지에도 표시되어 있듯이 일본인 스토리 작가가 있는 오리지널 작품으로, 국내에 연재했던 <라키아>와는 이름만 같은 다른 작품이다.
  2. 명랑만화가로 알려진 김진태조차도 순정만화를 여럿 낸 바 있다.월간 모션과 인터뷰에서 김진태는 명랑만화를 그릴 때 구경도 못한 팬레터가 순정만화를 연재하니까 엄청 와서 놀랐다고 했다.
  3. 동시기 대표 남성작가 중에는 잡지 오후에 <미스터 레인보우>를 연재했던 故 송채성도 있다.
  4. SF를 그리기 위해 물리학과를 선택했단 이야기가 있다.
  5.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 작법서'중 하나이다.
  6. 그래서 한때 '여성만화' 같은 대안이 제시되고 잠깐 사용되기도 했으나 페미니즘 만화 같은 인상을 주는 탓에 폐기됐다. -> 오류: 여성만화는 나인 창간과 함께 기존 소녀취향 위주의 순정 만화와 차별화하기 위해 제시된 용어. 실제 페미니즘 성향의 만화도 다수 였고, 페미니즘 만화와 같은 인상이라니 그게 어때서?
  7. 순정만화 잡지에서 아메리칸 히어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8. <무일푼 만화교실>에서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지니아'가 <박무직 만화공작소>에서는 (마감에 시달리는) 순정만화가가 되어 있다. 실제로 <무일푼 만화교실>과 <박무직 만화공작소>의 발행기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내용도 <박무직 만화공작소> 쪽은 여러모로 하드하다. <무일푼..>보고 만화의 자유로움에 눈 떴다가 <공작소> 시리즈 보고 학을 뗄 판..
  9. 작품 및 시장선택은 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선택권이다. 자신이 주장하고 비판했던 것에 역행할 경우 그에 대한 비난은 감수해야겠지만. 그리고 한국 만화 시장이 극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국내에서는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초토화 된 것도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박무직의 유명세는 작품에 기반한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일본 메이저 시장에 바로 진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0. 실제로 성인물 시장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작품의 질에 대한 요구도 요구이지만,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외국작가가 가장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부분이고 실제로 필명을 써서 트라이하는 경우도 많다.
  11. 폐쇄 자체는 처음이 아니었다.
  12. 일본 고교생 키타노 켄이 한국에 가서 '조폭'이 된다는 내용의 조폭물이다. 한국 출간은 쉽지 않을듯....
  13. 모닝은 원래부터 대만 만화가 쳉웬의 <동주영웅전>을 1990년에 연재하는 등 해외작가에 대해 호의적인 잡지였다.
  14. 일반독자들 뿐만이 아니라 만화계에서도 박무직을 싫어하는 분위기는 있었다.
  15. 진흥원 지원작 공모 같은 것 역시 공모전이고 데뷔경력이 없는 만화가들만이 아니라 기성작가들도 지원작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로 프로 참가 금지 조항이 없다면 자기가 참여하는 공모전에 프로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면 신인 등용을 위한 공모전은 명문화 되어 있지 않아도 프로 참가를 암묵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셈.
  16. 재탕문제는 조금 더 까다로운데 공모전이 출품작에 대한 작가의 권리를 어느정도로 보장하느냐 따라 다르다. 괜히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출품작 권리를 주최측이 가져간다고 명시된게 아니다.
  17. 근데 이러면 더욱 더 공모전의 규약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주의가 필요.
  18. 한국, 일본 순정만화는 동양인 인물도 서양인처럼 그린다는 주장을 하며 깐 적이 있다. 그림체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일본만화나 그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만화들의 머리색깔-흑발과 백발의 문제는 테제안티테제의 관계에서 시작돼 발전한 부분으로, 이걸 '서양인 흉내'라는 개념으로 보는건 잘못된 시각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이원복 뿐만 아니라 탈망가를 주장하는 만화가들이나 독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다. 다만 서구적 미의 기준이 식민지배와 대중매체를 통해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사실이고, 일본 만화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머리색의 문제가 아니라 외모의 문제. 그런데 재미있게도 모에한 그림체가 유행하면서 과거의 서구적 외모의 요소가 대부분 사라졌다..거유 빼고
  19. 표절 논란도 많다. 벨기에 및 유럽 만화 장면을 그대로 베꼈기에 이원복 비판론자들은 일본 만화 표절을 그리도 비난하던 이원복은 정작 유럽 만화를 베끼냐고 까댔다.이에 이원복은 영향을 인정하긴 했어도 표절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도 일본 만화에 대한 표절 논란에서 종종 보이던 것이라 더 까였다.
  20.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현역작가. 발단이 된 글도 그렇지만 다른 작가들의 경우 본인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작품활동이 바빠서라도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함께하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다.
  21. 이 주장은 <NEW 무일푼 만화교실>의 부록에도 등장한다. 우리나라 만화가 가진 특질은 서구권만화와 달라 그들처럼 comics로 번역할 수는 없고(근데 일본의 그 '망가'도 서양에서 manga로 부르기도 하지만 Japanese comics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나라 만화의 직접적인 뿌리격인 일본만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차라리 manga라고 부르는게 낫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였다.
  22. 한국만화의 뿌리가 일본만화라는 주장 자체는 나올 수도 있다. 국내주류 만화계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만화의 페이지 연출, 컷 연출, 기호 표현, 내러티브 전개 방식의 대부분은 그 방식 자체의 기원은 어찌됐든 한국은 일본만화에서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주류를 이루는 만화잡지 연재-단행본 형태의 만화 시스템에 국한된 것으로 서양 만화나 흔히 말하는 카툰 쪽에 영향받은 영역을 싹 무시하는 형태다. 매체의 한계로 시장이 크지 않았을 뿐이지 개별 작품으로 따지면 사회적 영향은 무시못할 정도로 큰게 시사만화 같은 장르다. 이들은 피너츠나 신문삽화, 소설 삽화 등의 서양매체에서 영향받은 것이 더 많다. 또한 기존에도 일부는 영향받더라도 독자적이거나 기존에 내려오던 만화가 아닌 회화의 기법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가 없던 것도 아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박무직은 이런 것들을 싸그리 무시한 셈.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한국의 만화가 100% 일본만화의 계보였다고 하더라도 만화(애초에 망가의 직역이기도 하다)를 manga로 부를 이유는 없다. '미국'를 국내에서 'United states'나 'America'로 고쳐 쓸 이유가 있나? 애초에 서양에서 manga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자국의 comics와 구분해서 쓸 단어가 필요할 때 원어를 음차한 것 뿐이다. 한국에선 같은 한자문화권이니 한자를 그대로 들여와서 한국어로 발음할 뿐이고.
  23. 74~76년에 김수정이 그린 만화를 보면 그림체도 전혀 다르고 야구 및 여러 스포츠 만화를 그렸는데 김수정 본인도 이건 내 작품이 아니다(억지로 그려야하던 표절작들)라며 79년에 그린 1남 4녀 막순이가 진짜 내 첫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24. 이해가 안간다면 합동출판사 항목을 보자. 당시 한국만화계를 움켜쥔 대기업이란 곳이 표절을 명령해야 하던 시대이다. 여기 맞서던 많은 만화가들이 고생해야 했고 아예 만화계를 떠나기도 했다.
  25. 하지만 요즘엔 NANA, 아이 앰 어 히어로, 소라닌 등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만화중에도 사진을 배경에 직접 넣은 작품이 늘어났는데, 박무직이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26. 전통적인 회화 기준에서의 '잘'이다.
  27. 이 시점에서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떠올릴 사람도 많겠지만 그 정도면 잘 그린 수준이고 사이바라 리에코 등 그 미만인 작가들도 많다.
  28. 박무직 또한 전통적인 명랑만화에 대한 철저한 오마주로 <수리수리 맛소금> 등 명랑만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이런 명랑만화 작품들의 경우 '제대로 된 연출'을 제거하고 단순히 '그림 자체만' 본다면, 섣불리 일반인 수준의 작가라 평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만화의 개념은 배치방법 즉 연출의 문제이고, 박무직 또한 작가인 동시에 만화교육자로서 그걸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9. 동양회화는 전통적인 서양회화와 달리 실제보다는 개념을 표현하는데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에 '문자'에 가깝다.
  30. 또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회화적인 데생력에 치중한 작가의 작품이 그림은 잘그리는데 어색하다 거나 스토리가 잘 짜여 있더라도 이상하게 재미없다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원론과는 별개로 회화적 데생의 중요성은 작화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지 정지된 그림으로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만화에선 절대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
  31. 장편만화는 예술이기 이전에 이미 노동의 영역이다. 거기에 연재라는 시스템 아래에 있다면 매컷 주름을 그릴때마다 철저하게 사진을 참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다. 사진을 참조하는 편인 미국의 히어로코믹스 작화가들도 매컷마다 그러지는 않으며, 관련학과에서 회화데생의 기본교재로 자주 삼는편인 앤드류 루미스나 잭 햄의 책을 보더라도 웬만한 주름 패턴에 대해서는 외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32. 즉 원론적 영역을 다소 벗어난 거다. 이걸 원론적이라고 하면 이를 쓰지 않으면 원론을 지키지 않는단 소리가 된다. 즉 기교에 일종일 뿐이지 원론적 접근은 아니다.
  33. 당연한 소리지만 학습을 위한 서적은 넓은 영역을 기초적인 것위주로 소개하거나 특정영역만 다루는 대신 세부적인 것까지다룬다. 입문서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하는게 당연한 것인데 영역은 넓게 다루면서 정작 특정요소를 너무 강조해 버렸다. 그것도 '이래야 한다'는 방향으로.
  34. 만화테크닉과 관련한 교육을 할 때에 나타나는 박무직의 이런 경직된 태도 덕에, 그가 질색팔색을 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있는 '사진활용'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박무직은 히로스에 료코의 엄청난 팬인데, 만화 내용 중에 배경에 히로스에 료코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들이 있었다. 이것 역시 박무직이 지망생들을 가르칠 때 하는 원론적은 이야기로 따지자면, '히로스에 료코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박무직 본인이 직접 그려야하는 것'인 것. 하지만 박무직 본인은 그렇게 하지않는다. 원론적인 것이 어쨌건간에 단순한 이스터에그로 '료코'를 나타내는 것에는 jpg를 축소해서 붙여넣는게 더 '효율'적임을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 오해가 없도록 못 박아두자면 히로스에 료코의 사진은 거의 썸내일 수준으로 축소한 상태였으며 팬이 아니라면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사이즈였다. 초상권은 '그 사람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발생하는 것으로, 이 경우 박무직은 히로스에 료코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이다.)
  35. 보통 작법서 수준이란게 실전적이기 보단 원론적이긴 하지만, 박무직의 작법서의 경우 원론적인 설명이 너무 자세해서 더 독이된 케이스.
  36. 즉 스스로도 굳이 안 지킬 때가 있기는 하다는 이야기이다. 각종 예술이론서들이 괜히 막판에 가서 이론을 잊으라느니 작법을 버리라느니 하는게 아니다
  37. Love+ing 이 그나마 알려진 작품.박무직의 툰이나 여러 만화에서 카메오나 작가 후기에서 나오기도 한다. 말투가 독설적인 듯 싶은데 월간 키노에서 YWCA를 까던 박무직에게 전하길 "씨발, 너부터 잘해."라는 말로 응원(?)해주었다...이건 욕이 아니라 최찬정과 친구이기도 한 애니 평론가 겸 번역가인 김세완이 그 무렵 유니텔 만사동에 남긴 글로도 '그 친구 성격이 원래 그래요' 확인해주었다. 더불어 동인 만화 활동 당시 최지룡과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38. 정확히 언급하지는 않겠으나, 싫어하던 사람이 '일반독자'들만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원론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성격과 위에서도 언급한 원로작가들의 표절 경력을 비판한 사건 등도 있고 스스로도 비판받을 행위를 자초한 것도 있겠지만 출판사와 작가간의 갈등에서 최일선에서 나서서 활동한 점, 독자들을 대상으로한 대여점 논란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던 '현역'작가였다는 점 같은 긍정적인 활동에 소위 '탄압'에 가까운 사안도 있었다. 당장 간만에 나온 스페이스 셰프 시저도 삼대 메이저 만화 출판사가 아닌 씨앤씨미디어라는 마이너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이쯤되면 알수 있을듯.
  39. 다만 박무직의 경우 까가 많아서 주시당하고 있던 탓이 클뿐.. 일본 쪽 성인물을 한 한국작가는 박무직만이 아니다. 언어/문화/스토리 관련 진입장벽이 낮은 것에 '비하면' 한국의 자잘한 단편 원고작업에 비해 원고료가 '훨씬' 세기 때문. 사실 그런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까웠기에 애초 성인물 그렸다는 자체로 비난받았던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고고한 투사로 자신을 묘사하며 시대적 상황에 꺾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을 비난한 것은 박무직 본인이기도 했다.
  40. 이 단행본의 컷 중 일부가 패미통에 연재되던 전뇌유기 한국방문편에서 나오기도 했다. 서점에서 "한국의 만화 작법서인가봐!"하고 책을 집어드는데 빼도박도 못하는 박무직 그림체...
  41. 박무직이 자주 사용하던 자칭. 이영도가 자칭하는 '타자'와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