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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世直
1933년 9월 18일 ~ 2009년 7월 27일
역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 ||||||
22대 고건 | ← | 23대 박세직 | → | 24대 이해원 |
1 소개
1933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육군사관학교 제12기 출신이다. 박희도[1] 박준병[2]과 함께 하나회 회원이었다. 그리고 박희도, 박준병, 박세직 등을 가리켜 쓰리 박이라고 하였다.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영어를 비롯해 불어와 일어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2 군인 시절
1976년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1979년 군사정보 참모를 지냈다. 박희도나 박준병과는 달리 하나회였음에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지 않아서 김영삼 정권 때 화를 겪지 않았다.
1980년 보병 제3사단 사단장을 역임하다가 그 해 8월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에서 예편하여 대통령이 되고 제8대 수도경비사령관이던 노태우가 국군보안사령관이 되자 노태우의 뒤를 이어 제9대 수도경비사령관(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냈다. 이 때까지는 잘 나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3 민간인 시절
그러나 곧 다시 전두환에게 중용되어 1982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1983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에 임명되어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보좌하였다. 그러면서 노신영과 함께 그 해 5월에 일어난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을 해결하였다.
1985년 2월 노신영 내각이 출범하자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86년 제4대 체육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제24회 1988 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조직위원장으로서 환영사를 낭독하는 박세직. 왼쪽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
1988년 12월 안무혁의 뒤를 이어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으로 임명되어 1989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 1990년 서울특별시장으로 임명되었으나 1991년 2월에 사직하여, 2개월의 단명시장에 그쳤다. 이것도 1991년 일어난 수서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모로 루머가 많았는데, 특별히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았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부터, 민주정의당 내에서는 대권주자로 발돋움 할 뻔 했으나 조직을 모으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3당 합당 이후에는 더이상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신한국당 공천후보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재홍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1998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부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6년 재향군인회 회장이 되었다.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있던 중 2009년 급성 폐렴으로 별세하였다.- ↑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으며, 1985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 ↑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으며, 이후 국군보안사령관과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소속)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