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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鍾雄
1953년 08월 09일 ~
1953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79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공보비서관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여 공동의장 비서, 기획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에서 통일민주당이 분당되자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공보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얼마 안 되어 서석재가 1989년의 동해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시 통일민주당 사무총장으로서 신민주공화당 이홍섭 후보를 매수하려 한 것에 대해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에 부산광역시 사하구 선거구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당 김정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국당 홍보위원장, 기획조정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8년 한나라당 사무부총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조경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부산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백의종군하였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석유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 그의 대변인격 역할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