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ime for Dodger baseball!(다저스 경기 시간입니다!)"[1]
1 개요
이제는 두번다시 들을 수 없을 다저스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Dodgers).
풀네임은 빈센트 에드워드 스컬리(Vincent Edward Scully). 이 분에게는 빈스 컬리 1927년 11월 29일생.
미국의 스포츠 캐스터로 미국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방송중계 전담 아나운서이다. 2015시즌 기준으로 무려 87세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현역으로 방송 마이크를 잡고 있다. 브루클린 시절부터 마이크를 잡으신 분으로 다저스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미국 스포츠 중계 캐스터 중에서도 특정팀 최장 기간 중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야구 방송중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송해 선생님. 연세도 같으시다.
공식 홈페이지. 위 사진이 공홈 메인 사진이다.
2 설명
1927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는 잡역부, 우편배달, 식당청소 등의 일을 하면서 8살 때 스포츠 캐스터의 꿈을 가졌다고 하며,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잠시 야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2] 모교인 포덤대학에서 학교 라디오를 통해 교내 방송 캐스터이자 스포츠 기자로 활약했으며, 사실 야구중계가 아니라 풋볼중계를 먼저 시작했는데 CBS 라디오 스포츠에서 대학풋볼을 중계한 것이 시초. 그리고 23세 되던 해인 1950년에 브루클린 다저스의 TV와 라디오 중계를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대학시절까지 다저스의 철천지 원수인 자이언츠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1936년 월드 시리즈 에서 양키스에게 18-4로 진 자이언츠가 불쌍해서(...) 양키스의 홈에서 태어나서 자이언츠 팬하다가 정작 평생 직장은 다저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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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사진. 대학 졸업사진이다. 오오 미남>
그 외 사진들
스컬리가 방송일을 시작했을 때엔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4] 웬만한 팀의 감독이나 코치, 심지어는 레전드로 불리는 올드 스타들도 스컬리 앞에서는 꼬꼬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과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표현력으로 화면을 보지 않고 귀로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현장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스포츠 중계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발음도 거의 교과서 수준. 그런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몇몇 한국인들은 스컬리의 중계를 처음 듣고 중계가 지루하다, 졸리다 등등의 이유로 푸념하곤 한다(...) [6] 영어 좀 듣는 한국의 MLB 팬들 중에서도 홈런 나왔을 때 "See Ya" 라는 추임새를 넣는 양키스의 마이클 케이(Micheal Kay)[7]나 "You can put it on the boar----d. Yes!"라고 외치고 경기가 승리로 끝나면 "Yes, Yes, Yes"를 외쳐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켄 해럴슨(Ken Harrelson) 스타일의 중계를 좋아하는 사람들(혹은 양키스 팬이나 화이트삭스 팬들)도 같은 이유로 스컬리의 중계를 깐다[8]. 마치 MLB라면 당연히 홈팀의 분위기가 좋을 때 호들갑을 떨면서 톤을 높이는 그런 스타일의 편파 중계를 해야 하는 것처럼. 물론 어떤 스타일의 중계를 좋아하는 건 개개인의 취향이지만 비판을 하기 전에 스컬리의 중계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좀 알고는 있자, 그냥 취향에 안 맞는다고 무작정 까지 말고. 스컬리가 그런 식의 중계를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스컬리의 중계철학은 밑에 각주에 나와 있다. 물론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든 미국의 야구팬이나 한국의 MLB 팬이나 조 벅의 중계 스타일은 신나게 깐다.
풍부한 경험과 엄청난 독서량으로 유명한 빈 스컬리는 야구 내외적으로 전문적이고 잡다한 지식을 통해 선수들의 기록, 잘 알려지지 않은 백그라운드 스토리, 신변잡기 같은 사소한 것부터 셰익스피어같은 대문호의 문구가 나오거나, 몇몇 상황을 뮤지컬에 비유하기도 하는 등 역사, 문화, 예술 각종 분야의 트리비아를 60년이 넘는 내공을 통해 총망라해서 풀어낸다. 간혹 야구 외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얘기한다라는 불만도 있지만, 이런 걸 하나하나 캐치해서 듣고 있으면 지루해질 틈이 없다.
놀라운 것은 80이 넘은 연세에도 한번 경기시작 마이크를 잡으면 몇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중계를 한다는 점과 그 동안에 옆에 해설자 따위는 두지 않고 1회초부터 경기 종료까지 오로지 혼자서 모든 상황을 다 중계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계가 가능한 원인은 스컬리가 1950년대 라디오 시절부터 마이크를 잡아오면서 방송중계 스킬을 갈고 닦아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TV중계라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에 방송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표현력과 발음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다만 너무 억양이 너무너무 차분한 나머지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긴 하다.[9] 그 전설적인 9회 백투백투백투백 홈런 + 연장 끝내기 투런으로 다저스가 승리한 2006년 9월 18일 경기에서도 [10]침착한 목소리로 해설하던 것만 보더라도... 그래도 인상적이긴 했던지,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끝내기 홈런이 나오자 '언빌리버블!' 을 외치긴 했으나.. 홈런만 쳐도 괴성부터 지르는 다른 팀 아나운서같았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빌리버블 다음에 구장이 떠나갈듯한 환성이 울려퍼지고 카메라가 관중석을 돌아가면서 비춰주는데, 한 1분 30초정도 말없이 조용히 있다가 마지막 클로징 멘트로 "By the way, I forgot to tell you. The Dodgers are in first place." 라고 쿨하게 한마디 하고 방송을 마무리하는 센스까지... 차분하면서도 분위기를 살리는 그만의 중계 방식이라고나 할까. # 그런 중계 스타일 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에도 목 관리를 위해 중계부스에 에어컨을 틀지 않을 정도로 중계 외적으로 프로 의식도 상당하다고 한다.
나이가 있어서 홈경기와 서부지구 내의 샌디에이고나 샌프란시스코 등 근거리 원정. 그리고 특별히 플레이오프 때만 원정을 다닌다. 나이와 건강 때문에 2000년대 말부터 계속 은퇴설이 나오기도 했고, 2012년에는 시즌 초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 홈 개막전을 놓쳤다가[11] 4월 15일 재키 로빈슨 데이에 맞춰 겨우 복귀한 일도 있었다. 일단 2012년 다저스가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칼 크로포드와 아드리안 곤잘레스, 조시 베켓을 데려오는 빅 트레이드를 성사하면서 강해진 전력에 자신도 고무되었다며(...) 현역 연장을 선언하면서 2013년에도 다저스의 중계 캐스터로 남게 되었다. 시즌 초의 졸전을 보면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가 나올 뻔 했지만 다행히 반등에 성공했다
2013년 시즌 중에도 LA 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시즌 막판 팀의 대분전에 고무된 듯 중계를 하는 것에 신이 나있다며 2014년에도 다저스의 중계를 계속 할 것이라는 의향을 내비쳤다.#
중계 커리어가 스컬리보다는 짧지만 비슷한 급으로 존경받던 인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속 아나운서 해리 칼라스가 있었다. 칼라스는 2009년 4월 13일 다저스의 홈 개막전에서 스컬리가 시구한 날 필리스의 워싱턴 내셔널스 원정경기를 준비하던 내셔널스 파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스컬리는 경기 도중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애도하였다. ESPN에서 칼라스의 추모 기사를 낼 때 스컬리와 인터뷰를 했는데 2008년 필리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보고 간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편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중계팀에도 연배로 따지면 스컬리옹이 방송계에 입문할 시절 태어난지라 스컬리옹에 비하면 꼬꼬마이긴 하지만 존 밀러라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캐스터가 있는데, 이분은 SF 자이언츠의 중계 뿐만 아니라 ESPN에서 명예의 전당 2루수 조 모건과 함께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 전국방송을 20년간 중계하면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스컬리처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들이다.
2014년 7월 29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경기 도중에 중대발표가 전광판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스컬리가 2015년에도 중계를 담당할 것이라는 뉴스. 이 뉴스는 류현진과 푸이그, 남가주 토박이 터너 세 선수가 각각 한국인, 히스패닉, 미국인들을 대표해 3개국 언어로 읽어주었다. 다저 스타디움에 있는 관중들도 스컬리 옹의 현역 연장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12]
2015년 8월 28일(현지시각), 2016년에도 다저스 경기를 중계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6년을 끝으로 은퇴하신다. 다저스는 그를 위해 현지시간으로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올시즌 마지막 홈 3연전을 Vin Schully Weekend로 지정하고 마운드도 그의 퍼스트 네임인 VIN을 그려 놓고 그의 은퇴를 성사하게 치뤄주었다. 그러나 스컬리의 방송 커리어가 거기서 끝난 건 아니었다. 스컬리의 마지막 방송은 2016년 10월 2일, 스컬리 본인을 야구의 세계로 인도한 팀이자 다저스의 숙적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이다. 67년동안 다저스 팬과 고락을 같이한 전설의 마지막 방송을 위한 최적의 상대. 적지인 AT&T 파크에서도 스컬리의 은퇴를 안타까워하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동안 스컬리의 중계를 들어왔을 수많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작별인사 후에 67년에 걸친 방송 커리어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 했다.
"So this is Vin Scully, wishing you a pleasant good afternoon wherever you may be.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지 즐거운 오후가 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빈 스컬리였습니다.)"
이는 평소에 스컬리가 낮경기를 마무리할 때 쓰는 멘션이며 은퇴경기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하는 스컬리의 방송철학이 압축된 마지막 한마디라고 하겠다. 그 와중에 다저스 선수들은 스컬리 옹의 마지막 방송 경기에서 숙적인 자이언츠에게 싹쓸이 3연패를 당해주며 자이언츠를 포스트시즌으로 보내줬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3 빈 스컬리가 중계한 특별한 경기들
1950년대 이후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수많은 스타들이 스컬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플레이를 했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수많은 명승부들이 스컬리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탔다. 스컬리가 중계한 퍼펙트 게임만도 무려 4번. 그 중에는 월드시리즈 유일의 퍼펙트 게임인 돈 라슨의 게임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행크 애런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깨는 715호 홈런을 친 경기도 스컬리가 중계했다.그리고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의 생애 첫 노히트노런도 그가 직접 중계했다
- 1965년 9월 9일 샌디 쿠팩스의 퍼펙트 게임(시카고 컵스 vs.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1974년 4월 8일 행크 애런의 715호 홈런(로스앤젤레스 다저스 vs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3]
- 198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vs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나온 아지 스미스의 끝내기 홈런.
- 1986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나온 빌 버크너의 알까기(...)
- 1988년 9월 16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 투수 톰 브라우닝이 달성한 퍼펙트 게임.
- 1988년 10월 1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vs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 데니스 에커슬리를 상대로 커크 깁슨이 쳐낸 끝내기 홈런.
- 1989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vs 시카고 컵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미치 윌리엄스를 상대로 윌 클라크가 쳐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타.
- 1990년 6월 2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달성한 노히트 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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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3일 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경기. 바로 한만두가 나온 날이다.
- 2004년 5월 19일 알렉스 코라의 18구 용규놀이 후 홈런.
- 바로 위에도 언급된 2006년 9월 1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4타자 연속 홈런을 쳐내며 역전한 경기.
- 2008년 6월 29일 다저스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전에서 제러드 위버, 호세 아레돈도를 상대로 채드 빌링슬리, 조나단 브록스턴, 사이토 다카시가 이어던지며 기록한 1:0 무안타 승리. 위버와 아레돈도는 (다저스 홈경기였기 때문에) 8이닝 동안 합작으로 노히트를 던졌지만[15], 5회말에 맷 켐프의 투수앞 땅볼에 안타인지 실책인지 애매한 플레이로 출루를 허용했다. 기록원이 처음에는 내야안타로 기록했다가 노히트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해서 실책으로 정정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또다른 의미의 대기록을 만들게 했다.그리고 맷 켐프가 도루를 시도 했는데 포수의 송구가 악송구가 되면서 3루까지 진루하고 다음 타자인 블레이크 드윗의 희생플라이로 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도 다저스는 안타 한 개를 치지 못했고, 에인절스가 한 점도 못내면서 패한 것이다(...) 참고로 퍼펙트 게임을 네번이나 보신 스컬리 옹이 자신도 80년 평생 처음보는 경기라고 했다. 그만큼 진귀한 기록이다.
젊은 시절에는 다저스 중계 뿐만 아니라 월드시리즈 중계도 알바로 뛰곤 했다. 1986년 월드시리즈의 빌 버크너의 알까기라든가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나온 커크 깁슨의 끝내기 홈런[16] 등 주옥같은 명승부들이 스컬리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었다. 야구 중계만 한 것도 아니고 미식축구 중계도 해서 NFL 역사상 손에 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인 The Catch도 그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탔었다. 빈 스컬리 옹 트리뷰트.
4 이모저모
- 2001년부터 다저 스타디움 기자실(Press box)의 명칭이 빈 스컬리 프레스박스로 명명되었다.
- 야구중계만 한 것이 아니라 1975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프로풋볼(NFL)중계를 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테니스와 프로골프(PGA 투어)를 중계하기도 했다.
- 역대 최고 스포츠캐스터 50인 중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1982년 포드 C. 프릭 상을 수상하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라디오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999년작 야구 영화 <For Love of the Game>에서 본인 역으로 출연하였다. 9회말 빌리 채플이 마지막 이닝을 위해 마운드에 오르던 장면에서 명대사를 하기도 했다. Vin Scully로 검색하면 나온다.
- 연봉이 순수 보장금액만 약 300만불에 이른다고 한다. 2천만불을 호가하는 다저스 주전 선수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지만 메이저리그 주전급 선수들이 연봉조정을 통해 받는 수준과 맞먹는다는 점에서 스컬리의 위엄을 알 수 있다.
- THE X-FILES의 작가 크리스 카터는 다저스 팬이어서 엑스파일 드라마의 한 캐릭터를 스컬리 옹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었는데, 그 캐릭터가 바로 데이나 스컬리다.
- 스컬리 옹에 대한 인기 때문에 아직도 다저스의 라디오 중계는 3회말까지는 스컬리 옹의 TV 중계를 그대로 받아서 전달한다. 스컬리 옹은 TV화면을 보면서 중계를 함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중계만 들어도 충분히 상황을 그려낼 수 있으며 스컬리옹의 박학다식함 때문에 눈앞에 경기화면이 펼쳐져 있지 않더라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즐겁다.
4회부터 중계를 시작하는 것도 서러운데 항상 스컬리 옹과 비교되면서 욕만 먹는 다저스 라디오 중계 담당 찰리 스타이너는 안습.위에서도 기술했지만 2000년대 이후 스컬리 옹은 연세에 따른 체력 부담 때문에 홈 경기와 근거리 원정만 다닌다. 따라서 다저스의 원정경기는 중계진이 따로 있으며, 2010년대 초까지는 아나운서 에릭 콜린스와 해설 스티브 라이언스의 2인조가 지극히 특색없는 평범한 스타일의 중계를 해서 LA의 골수 다저스 팬들에게 중계 못한다고 까였다. [17] 지금은 홈경기4회부터라디오 중계 담당인 찰리 스타이너와 오렐 허샤이저,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해설진으로 원정 중계팀을 꾸리고 있다. 아나운서 찰리 스타이너는 다저스 팬들로부터 별로 평이 안 좋지만그리고 누가 아나운서를 하든 평생 스컬리 옹과 비교되며 까이겠지만그나마 해설진이 다저스의 레전드 오렐 허샤이저와 LA 지역출신 슈퍼스타 노마 가르시아파라라서 에릭 콜린스-스티브 라이언스 조합만큼 까이지는 않는 편.
- 2005~2006년 보스턴 출신 막장 구단주 프랭크 맥코트가 양키스, 레드삭스 등 동부지역 팀들의 흉내를 낸답시고 유니폼에 선수명을 없앴는데[18] 최근에는 선수이동이 빈번해서 매년 팀의 로스터가 바뀌는데 유니폼에 이름이 없어 새로 들어온 선수를 알아보기 어렵다고 말하여 다시 선수명을 넣게 하였다.
대인배
- 2015년 한팀에서 가장 오래 경기를 중계한 인물로 기네스에 등록됐다. 그 햇수가 65년 5개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