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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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안드레 드 피나 카브랄 이 빌라스보아스(Luís André de Pina Cabral e Villas-Boas)[1][2]
생년월일1977년 10월 17일
국적포르투갈
출신지포르투
182cm
스태프 경력FC 포르투 유스 코치 (1997 - 2000)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0 - 2001)
FC 포르투 스카우트 (2002 - 2004)
첼시 FC 스카우트 (2004 - 200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코치 (2008 - 2009)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감독 (2009 - 2010)
FC 포르투 감독 (2010 - 2011)
첼시 FC 감독 (2011 - 2012)
토트넘 핫스퍼 FC 감독 (2012 - 2013)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감독 (2014 - 2016)
첼시 FC 역대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
(2009~2011)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2011~2012)
로베르토 디 마테오
(2012)
토트넘 핫스퍼 역대 감독
해리 레드냅
(2008~2012)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2012~2013)
팀 셔우드
(2013~2014)

크랙 마스터

1 소개

선수 경력이 없는[3], 유명 감독 중에서는 매우 특이한 커리어를 가진 감독.

아카데미카포르투에서 성공을 거둔 뒤 잉글랜드로 향했으나 첼시에서 실패를 겪고, 토트넘에서도 다시 경질되었으나 제니트에서 다시 성공을 거두었다.

약칭은 AVB.

2 감독의 길로의 입문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는 FC 포르투 감독이던 명장 바비 롭슨의 지도[4] 아래 불과 만 17세의 나이에 스코틀랜드에서 UEFA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내고 FC 포르투의 유스팀의 지휘를 맡았다. 만 18세에 UEFA B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고 감독으로서의 능력계발에 매진하던 그는 만 21세가 되던 2000년에 버진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기술위원장 겸 감독을 맡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북중미 예선을 지휘하였다. 당시 버뮤다를 만나 1차전 1-5, 2차전 0-9 합계 1-14라는 압도적인 대패를 당하지만 이 때의 쓰라린 경험은 훗날 그의 능력의 훌륭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3 무리뉴의 장자방

2002년, 주제 무리뉴FC 포르투 감독직에 오르자 구단에 '전력분석팀'을 조직하고 그가 코치시절부터 지켜봐왔던 빌라스 보아스를 불러들여 이 팀의 지휘를 맡겼다. 이 전력분석팀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어 상대팀의 선수, 전술 등을 낱낱이 분석한 보고서가 무리뉴 감독과 선수들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은 무리뉴 감독이 2년만에 리그 우승컵, 포르투갈 컵, UEFA컵 (현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쓸어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무리뉴 감독이 포르투를 떠나 첼시, 인터 밀란으로 팀을 옮길때도 빌라스 보아스는 전력 분석관 혹은 코치로서 함께 동행하였고 무리뉴 감독의 아이콘인 4-3-3 전술을 고안해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등 음지에서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다만 빌라스 보아스가 포르투에서 구사한 4-3-3은 무리뉴식이 아니라 매우 공격적 전술인 것은 나름 주목할 부분.[5][6]


포르투 시절의 빌라스 보아스와 무리뉴



첼시 시절의 빌라스 보아스와 무리뉴

4 감독 취임과 트리플 크라운 달성

2009년, 인터 밀란의 무리뉴 감독 밑에서 코치직으로 있던 빌라스 보아스는 독립을 결심하고 포르투갈 1부리그의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감독으로 취임한다. 그의 나이 만 31세. 빌라스-보아스는 당시 리그에서 최하위권에 쳐져있던 코임브라에 전방위 개혁을 단행하여 팀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리고 포르투칼 컵에서도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진출하였다.[7]

이러한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FC 포르투는 리그 3위에 그친 팀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빌라스-보아스에게 감독직을 맡긴다. 자신의 축구커리어가 시작되었던 애정어린 팀을 이끌고 2010-2011 시즌을 시작한 빌라스-보아스는 이때까지 갈고 닦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헐크, 팔카오, 하울 메이렐레스, 주앙 무티뉴 등을 앞세워 포르투갈 리그 우승컵[8], 포르투갈 컵 우승컵,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컵을 싹쓸이 하여 미니 트레블을 달성하며[9]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특히 UEFA 유로파 리그 4강 비야레알과의 1차전에서 1-0으로 뒤지며 전반전을 끝냈다가 후반에만 5골을 몰아쳐 승리한 경기는 빌라스-보야스의 공격축구의 진가를 세계에 보여주기에 충분했다.[10]

5 첼시 FC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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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쩌는 소년명수
2010-2011 화려했던 시즌이 끝난 후, 카를로 안첼로티가 해임되어 떠나 공석이던 '독이 든 성배' 첼시 FC의 감독직에 전 유럽의 관심을 받으며 취임하였다. 다른 유력한 후보이던 거스 히딩크 당시 터키 국가대표팀 감독은 먼저 제의를 받았으나 터키와의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기로 하고 정중히 거절했다고. 첼시 FC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FC 포르투에 1500만 유로(한화 약 215억원)나 되는 위약금을 지불하면서 까지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로 보아 로만이 빌라스-보아스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해보인다. 첼시팬들도 빌라스-보아스가 드라마 같은 성공스토리를 이어가 첼시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을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첼시에서 리그 초반 성적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현지 언론들에게선 초반부터 경질설 까지 나왔다. 12라운드까지 7승 1무 4패로 리그 5위로 내려앉았는데,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던 퀸스파크 레인저스 원정경기 패배를 제외하면 나머지 3경기 패배는 리그 우승을 어둡게 만드는 경기였다. 아스날 FC에게 안방에서 무려 5점을 헌납하며 5:3으로 패했고, 리버풀 FC에게도 안방에서 2:1로 패했다. 맨유 원정에서 3:1로 패한 것을 비롯하여 4강급 상대에게 아직 경기가 없는 맨시티를 제외하고 죄다 1패씩 당했다.

2011년 11월 24일 챔피언스리그 32강전 예선 바이어 레버쿠젠 원정에서 2:1로 패하면서 마지막 6차전 예선을 단두대 매치를 벌이게 되었다. 발렌시아 CF와의 안방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거나 골을 넣고 비기면 조 3위로 탈락하여 유로파리그에나 나가게 된다. 발렌시아와 똑같은 승점 8점인 상황에 골득실도 밀려있으나 겨우 발렌시아 원정에서 1:1로 비겼기에 원정 득점으로 앞서 조 2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만약 마지막 조리그에서 1:1로 비기면 골득실로 뒤쳐진 첼시는 탈락한다.

11월 26일 약체 울버햄튼을 안방에서 3:0으로 이기며 간만에 승리를 거뒀지만 리그 17위로 강등권인 울버햄튼이었기에 큰 문젠 없었다. 일단 리그 5위를 지켰으나, 6,7위인 아스날과 리버풀과 승점이 2점이라서 7위까지 추락할 수도 있다. 11월 29일에는 리버풀과 풋볼 리그 컵 8강전 안방경기에서도 2: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리그컵이야 리그보단 격이 밑이라고 해도 리버풀 2연전을 연패한 셈.

그리고 12월 3일에 벌어진 뉴캐슬 원정에서 3:0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열렸던 11-12 챔피언스리그 32강 예선 6차전에서는 발렌시아의 상승세 및 첼시의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인해 얕보기 어렵다고 여겼더니만 2골 1도움을 터뜨린 드록바의 신들린 맹활약으로 3:0으로 가뿐하게 완파하고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2월 13일에 있었던 맨시티와의 홈경기에서는 2: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맨시티에게 첫 리그 패배의 아픔을 안겨줬다. 대체로 보아스의 터닝 포인트는 로메우의 기용과 맞물렸다는게 중평.

하지만 그 뒤론 절망에 빠졌다. 4경기 연속 무승, 3무 1패를 기록했다. 3위 토트넘 핫스퍼 FC 원정 경기 무승부를 제외하고 풀럼,위건 애슬레틱 경기 무승부에 13위이던 아스톤 빌라에겐 안방에서 3:1로 지면서 리그 4강까지 불안할 지경이라 벌써부터 보아스도 모가지 당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2012년 2월, 시즌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에버튼에게 2:0으로 짜진 뒤 무능한 감독에 화난 선수단이 들고일어나는 등 로만제국 첼시의 역대 최악의 위상과 함께 그야말로 막장가도를 달렸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지속될 지 궁금해질 정도. 27차전에선 10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에게 지면서 리그 5위로 확 떨어졌고 이제 그도 이 경기 전부터 경질되어도 뭐라고 할 말 없다며 포기한 상태의 인터뷰까지 했다.

허나 반대로 나이와 함께 실력은 떨어지고 자아만 남은 스타 플레이어들과 젊은 감독의 부조화라는 의견도 많다. 그리고 예전같았으면 벌써 잘리고도 남았을 성적으로도 살아남아 있는데다 구단주가 별 불평도 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보아스를 밀어주기로 했다는 해석도 있다. 만약 여름까지 잘리지 않는다면 첼시 스쿼드에는 피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많았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빌라스-보아스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기사가 여러번 나오며 여름 이적시장때 피의 숙청이 시작되나 싶었으나…

로만 "감독에 대한 반항은 나에 대한 도전"
로만 첼시 구단주 "애슐리 콜 나가!"

그러나 결국 2012년 3월 4일, 웨스트브롬위치 전 패배 이후 집에도 가지 않고 훈련장에서 먹고 자며 전술 구상에 전념하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는 결국 경질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본인도 예전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에선 나도 경질될 수 있다." 라고 말할정도로 어느 정도 경질의 위험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겠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자 빌라스-보아스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경질' 보아스, 눈물 속에 첼시 떠났다

결국 빌라스-보아스 마저도 경질당하며 역대 첼시 감독의 수난시대를 이어나가자 전 첼시 감독이기도 했던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은 빌라스-보아스의 리빌딩 작업을 백업해주지 못한 첼시 구단을 비판했다. 스콜라리, "첼시 감독직은 지옥 같다" 맹비난

공석이 된 감독직에는 일단 임시로 소년 명수로베르토 디 마테오 1군 코치가 감독대행이 되어 잔여경기를 지휘하기로 했다.

첼시는 다음 감독으로 펩 과르디올라 전 바르셀로나 감독, 주제 무리뉴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 전 인터밀란 감독 등 유력 감독들과 링크가 걸렸다. 그러나 디 마테오 임시 감독이 FA컵 우승과 더불어 마침내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게 안김으로서 2년 재계약에 성공하여 정식 감독이 되었다.

첼시 시절 선수단과의 불화, 전술을 팀에 맞추는게 아니라 팀을 전술에 맞추는 고집 등이 누구를 닮았다고 해서 보광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경질된 후 첼시가 나폴리를 4-1로 꺾고 챔스 8강에 진출하자 보아스를 비판하는 쪽에선 역시 보아스가 문제였다고 하는 중.

그리고 첼시가 챔스 4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에 1:0으로 이기고, 2차전에서 2:2로 비겨 결승전에 진출한 이젠 그 누구도 빌라스 보아스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의 영입 자체가 첼시의 이번 시즌을 말아먹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는 더 이상 이견이 없는 수준. 오히려 그를 더 빨리 경질시켰으면 첼시가 리그에서도 챔스 진출 순위권에 들었으리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리그 승률은 디마테오 아래에서 더 낮으며, 디마테오가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냈으나 리그에서의 모습은 형편없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건 보아스가 싸질러 놓은 똥이 워낙 컸다는 점과, 2개 대회를 병행해야 했던 첼시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1]

영국 축구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그가 너무 '오타쿠적'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야전에서 선수들을 지휘하고 함께 호흡하며 전술을 짜는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펜과 데이터가지고만 전술을 짰다는 것. 이러니 선수들과 소통이 제대로 될 수가 없었고, 선수들에게 맞는 전술을 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술에 선수들을 끼워맞추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경기력이 안좋은 건 자연스러운 결과.

게다가 전에 첼시에서 코치와 스카우트로 일했었다는 사실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 되고 말았다. 선수들 입장에서 전에 스카우트로 일하던, 새파랗게 젊은 코치가 갑자기 와서는 감독이라고 하니 권위가 설 수가 없었던 것.

특히나 첼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이후로는 선수단의 입김이 굉장히 강한 팀이라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빌라스-보아스에게 반항을 주도한건 프랭크 램파드와 존 테리였으며 이들은 라커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임 감독들의 경질에도 한 몫을 했었다.

경질 후 그의 주가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인터 밀란 감독직에 링크가 걸리며 명불허전 제 2의 무리뉴답게 무리뉴가 걸어간 포르투 - 첼시 - 인터밀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한창 이야기가 나오던 도중 인터밀란 보드진이 공식적으로 빌라스-보아스는 인터밀란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여 흐지부지.

리버풀 FC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경질되면서 공석이 된 감독직에도 링크가 걸렸으나 그 자리는 브렌던 로저스 당시 스완지 시티 감독에게 돌아갔다. 빌라스-보아스가 첼시에서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구단 수뇌부에 전권 위임과 계약 기간 보장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6 토트넘 핫스퍼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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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3일, 토트넘 핫스퍼가 빌라스-보아스를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3년. 팀이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내는데 실패하자 구단이 개혁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벤치에 앉혀놓고 저메인 데포를 원 톱으로 세우고 공격형 미드필더들과 꼬꼬마 공격진을 두터운 중앙 미드필더들로 지원해주는 역습 위주 전술을 들고 나왔으나 12~13 시즌 초반 3경기에서 2무 1패를 거두면서 말이 많았다. 물론 그 이후 레딩과 퀸즈 파크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8위까지 순위를 올렸다. 새 감독의 적응기간과 더불어 이적 시장 기간 동안 원하는 선수를 못 데려온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한 수준이지만 팬들은 전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

그러다 9월 29일에 벌어질 맨유와의 원정 경기에서 3:2로 승리를 거두며 수많은 팬들을 자기 편으로 돌려놓았다. 전반에 2:0으로 순식간에 앞서간 후, 후반엔 적절히 잠구면서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89년 이후로 처음이며 프리미어 리그 이후로는 처음으로 승리하였다. 전술적인 문제로 새 감독을 까던 사람들도 이 결과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세를 몰아 아스톤 빌라전서도 승리를 거두며 리그 4연승과 함께 어느새 리그 5위까지 팀을 올려놓았다. 앞으로 얼마나 선수들을 잘 운용하는지에 따라서(특히 로테이션) 전임 감독 해리 레드냅과의 견줌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시각 2012년 10월 20일,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에서 첼시와 맞붙었다. 첼시 시절 그의 수석코치였던 디 마테오와의 지략대결에서 누가 이길지에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후반 9분까지 2:1로 앞서고 있다가 후안 마타와 스터릿지에게 내리 3골을 내줘 4:2로 패배했다. 리그 13차전까지 순위는 7위. 하지만 4위 첼시와 승점 차는 5점이다.

확실히 미드필더진에 여유가 많은[12] 토트넘 핫스퍼 감독을 맡은 이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트라이커들이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 맨유 원정 경기에서 3:2로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특유의 4-3-3이 아니라 4-4-2를 통해 자신의 축구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첼시에서의 실패가 좋은 경험으로 남은 듯.[13] 1월 2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비기며 맨유에게 시즌 1승1무를 거두는 위업(?)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가레스 베일에게 프리롤을 부여한 후 쏠쏠한 재미를 맛보고 있다. 베일의 포텐이 대폭발하여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트려주어 토트넘의 최근 무패행진[14]을 이끌고 있다. 첼시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그러나 결국 위건 등 약팀에 발목을 잡혀 리그 5위에 그치며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4위 아스널에게 내주고 말았다.DTD? 그러나 모드리치가 떠난데다 아데바요르가 완전 영입 이후 귀신같이 형편없는 폼을 보였고, 보아스의 첫 시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평균은 해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보아스 감독과 토트넘은 레알 마드리드가 노리는 베일을 지키고, 시즌 내내 고질적인 문제였던 스트라이커 진을 보강하면 다음 시즌에는 충분히 4위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해하고 있다.

첼시에서와는 달리 토트넘에서의 보아스 감독의 입지는 탄탄해보였다. 또한, 첼시에서의 경질 후 심해로 가라앉았던 그의 주가가 다시 상승하며 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세리에A의 나폴리는 실제로 보아스를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시도했으나 바이아웃이 무려 1,170만 유로(약 171억 원)이라 포기하고 대신 베니테즈 감독을 선임했다. 또한, 무리뉴 감독이 떠나 감독직이 공석이 된 레알 마드리드와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건강 문제와 전술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바르셀로나도 보아스 감독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보아스 감독은 2013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가레스 베일을 팔고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12라운드가 지나도록 팀에 융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12경기 9득점이라는 빈곤한 공격력이 문제라는 평.[15]일단 30m이라는 거액을 주고 영입한 솔다도가 팀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서 스코어러가 실종이 되어 버린 게 큰 이유 중 하나이다. 2012년에는 가레스 베일이 위기 상황에서 꾸역꾸역 골을 집어 넣어서 성적이 나왔지만, 2013년에는 골을 넣을 선수가 없어서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12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시티 FC에게 6-0이라는 스코어로 떡실신. 그래도 짠물 수비로 11라운드까지 6실점으로 수비 조직력은 잘 지키고 있었지만,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11경기 동안 했던 실점을 한 경기만에 다 해 버렸다. 현지에서는 경질 여론이 팽배해졌다. 그리고 홈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경기에서도 5-0 으로 참패하면서 결국 경기 다음날 토트넘 감독직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첼시에서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 결국 전술의 유연성이 부족한 면을 고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보아스는 수비 라인을 끌어올리는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하는데, 시도때도 없이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다 보니 수비 뒷공간이 털리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대패한 맨시티전에서 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는데, 맨시티 골대 앞에서 시작된 롱패스가 단번에 토트넘 골대 앞까지 날아가서 실점으로 연결됐을 정도. 일반적으로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는 공격적인 전술은 수비수들의 스피드와 활동량이 아주 중요한데, 토트넘 선수들로는 제대로 구사하기가 힘든 전술이었다.[16] 결국 다시 자신의 전술에 선수들을 끼워맞춘 셈. 베일이 있던 시절에는 꾸역꾸역 승리로 승점을 챙겼으나, 베일이 떠나고 새로 영입된 선수들의 조직력이 완성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토트넘의 경기력은 바닥을 치게 됐다.

7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감독 시절

2014년 3월 20일 제니트 감독에 취임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간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취임한 후 헐크가 되살아나며 7승 1무 1패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2차예선 티켓을 취득하며 2013/14 시즌을 마무리 했다.

2014/15 시즌 20승 7무 3패로 CSKA 모스크바를 승점 7점차로 따돌리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스리그는 2차예선에서 키프로스의 AEL 리마솔을 3차예선에는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에서는 바이어 레버쿠젠, AS 모나코, SL 벤피카와 같은 조에 배정되었고 2승 1무 3패로 조 3위를 기록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유로파리그 32강에서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 16강에서는 이탈리아의.토리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8강전에 진출했지만 세비야에게 원정에서 1-2패배, 홈에서 2-2무승부를 기록하며 합계 3-4로 8강에서 탈락했다. 러시안 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2015/16 시즌 초 전 시즌 FA컵 우승 팀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의 슈퍼컵에서 승부차기 승을 거둬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정규리그 시즌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장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예정대로 2015/16 시즌을 끝으로 제니트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제니트는 2015/16시즌에서 17승 8무 5패 승점 59점을 기록하며 리그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위까지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 티켓은 놓쳤고 2016/17시즌은 유로파리그에서 시작해야 한다. 반면 15/16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5승 1패의 성적으로 조1위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으나 16강에서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만나 탈락했다. 러시안 컵에선 결승전에 진출하여 CSKA 모스크바를 4: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5/16시즌을 마무리하고 예정대로 팀을 떠나 러시아에서의 감독 생활을 마감했다.

8 기타

흔히 "제2의 무리뉴"라고 불리지만 본인은 그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고, 언론에서도 자신은 무리뉴와 다르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17] 그외에 무리뉴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빌라스 보야스의 스승은 어디까지나 바비 롭슨이고, 무리뉴와는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무리뉴의 코치를 수행하던 시절도 제자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관계이지 사제 관계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스타일부터 수비적인 무리뉴와는 반대로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 전 인터뷰에서 빌라스-보아스가 무리뉴와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다"라고 말한 걸 보면 둘 사이의 친분관계는 깨진 걸로 보인다.* 둘이 인테르에 있던 시절 빌라스-보아스는 전력 분석관을 그만두고 코치직을 수행하길 원했으나 무리뉴가 거절한게 원인이 되어 둘 사이의 갈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보아스는 무리뉴의 곁을 떠나 포르투갈로 돌아가 감독직을 얻었다. 8월에 있던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의 모임에서도 둘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니 둘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보인다. 그런데 토트넘 감독직에서 물러난후 무리뉴가 보아스를 위로해줬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청소년 시절 fm의 전신이었던 cm의 매니아였다고 한다. 덕업일치

별명으로는 보아스+스카우터인 보카우터가 있는데, "꿀영입의 귀재"라며 팬들이 붙인 별명이다. 다만 이 별명에는 거품이 많이 끼어 있는데, 일례로 마타의 영입은 보아스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첼시 보드진들이 점찍어서 협상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자신이 주도해서 자신이 원하는 선수의 영입이 100% 가능한 감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3/14 시즌 시작 전 베일을 팔고 영입한 선수들이 모두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선수들의 영입 역시 보아스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보드진에서 이 선수들의 영입을 제안했고, 보아스도 이에 동의했다는 것.

토트넘과의 계약해지가 경질이 아닌 선수영입과 관련된 견해 차이인것이라는 기사가 올라와 재평가를 받고있다.

몇몇 축구 팬들은 빌라스 보아스의 첼시 감독 부임이 너무 일렀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주제 무리뉴가 포르투 FC에서 첼시로 부임했을 때는 39살로 무리뉴 역시 젊은 나이에 첼시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이미 1992년 부터 1997년까지 6년동안 바비 롭슨의 수석코치로, 1998년 부터 2000년까지는 루이 판 할의 수석코치로 활동하며 빅클럽의 유명선수들을 지도한 경력이 있었다. 수석코치로 활동하던 1992~2000년까지 무리뉴가 지도한 선수들을 나열하자면 호나우도, 펩 과르디올라, 루이스 엔리케, 히바우두, 루이스 피구 등이 있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벤피카를 거쳐 2002년 포르투 FC의 감독으로 부임 하여 UEFA 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첼시로 이적한 것이었다. 빌라스 보아스 역시 2010/11시즌 리그, FA컵, 유로파 리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긴 했지만 무리뉴와는 달리 빅클럽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없었다. 게다가 무리뉴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한 2003년에는 빅 클럽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선수들 역시 세계적인 인지도, 유명도 등을 가진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2011년 빌라스 보아스가 첼시로 부임했을때는 이미 빅 클럽이었고 기존 선수들 역시 2003년과는 다르게 이미 프라이드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첼시의 기존 1군 선수들 입장에선 불과 5년전만 해도 무리뉴 밑에서 상대 팀 관찰하고 전술 분석이나 하던 나이어리고 선수경력도 없었던 젊은 스태프가 갑자기 감독이라고 부임했으니 어지간한 리더십이 아니고선 선수들을 단합시키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스 보아스를 옹호하는 축구팬들은 차라리 포르투에 3,4년 더 남아서 확실한 경력을 쌓고 천천히 빅 클럽의 감독 자리를 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말하기도 한다. 3,4년 더 포르투에 머물렀다고 해도 빌라스 보아스의 나이는 겨우 37~8살이었을테니...

9 기록

  •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3/14 - )

10 개인 수상

  • 포르투갈 축구 협회 올해의 약진 감독상[20] (1) : 2010
  • 포르투갈 축구 협회 올해의 감독상 (1) : 2011
  • 포르투갈 골든 글러브 (1) : 2011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 2012년 12월, 2013년 2월
  1. 이름이나 성에 -가 붙어도 하나의 이름이고, 성이므로 따로 -를 붙이지 않고, 붙여 쓰는 것이 현행 외래어 표기법상 맞는 표기다.
  2. 한때 비야스-보아스나 비야-보아스라고 표기가 됐었으나 이는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표기다.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와 달리 'll'이 '이(/ʝ/)' 발음으로 나거나 프랑스어처럼 끝자음이 묵음처리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비야스-보아스나 비야-보아스는 틀린 표기. 무리뉴의 이름 표기가 호세가 아닌 주제인것과 마찬가지.
  3. 10대 시절 아마추어로 축구를 하기는 했다. 단 프로를 할 수준은 아니었으며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듯.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고 한다.
  4. 계기가 되었던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아파트 이웃집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만나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롭슨은 그에게 흠뻑 빠지게 되었다.
  5. 단 무리뉴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축구를 자신이 하고있지 못하다고 말한적이 있다.무리뉴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축구보다 팀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스타일축구를 하는편이다.
  6. 오히려 펩 과르디올라 스타일의 전술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도 의 바르셀로나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7. FC 포르투에게 버저비터를 허용하여 아쉽게 탈락하였다.
  8. 27승 3무 무패우승 달성, 포르투갈 리그 역대 최다 승점 우승, 포르투갈 리그 역대 최다 연승
  9. 시즌 130골을 돌파했다.
  10. 2차전에서 3-2로 패했지만 합계 4-7로 결승에 진출하였다
  11. 거기에 첼시는 리그를 포기하고 챔스에 올인했으므로 이걸 가지고 리그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며 보아스가 디 마테오보다 나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12. 산드로, 허들스톤, 파커, 뎀프시, 뎀벨레, 시구르손 등등 적절한 영입 및 로테이션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13. 무엇보다도 토트넘에는 가레스 베일이라는 EPL 최강급의 크랙이 있으니까.
  14. 12월 10일 에버튼전 2:1패배 이후 8승4무로 3달동안 무패행진이다
  15. 이 득점량은 루이스 수아레스가 7경기 동안 만든 득점과 같다...
  16. 토트넘 수비수들이 지난 시즌에에 비해 눈에 띄게 폼이 떨어진 이유도 있다. 특히 베일과 함께 토트넘을 먹여살렸던 베르통헌의 폼이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토트넘은 나락으로....
  17. 물론 무리뉴 감독 본인과는 지금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이다.
  18. 포르투갈 FA컵
  19. 포르투갈 슈퍼 컵
  20. Breakthrough coach 상 , 선수로 가정하면 올해의 유망주 상 같은 상으로 적절한 번역있으면 수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