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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007년 12월 25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우양파크빌 놀이터에서 오후 3시 30분경 명학초등학교 친구 2학년 우예슬 양과 명학초등학교 4학년 이혜진 양이 친구들과 헤어진 후 실종되었다가 다음해인 2008년 3월 11일 이 양, 3월 19일 우 양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다.[1] 더불어 3월 17일 용의자 39살 정성현[2]이 검거되어 이 사건은 '정성현 사건'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정성현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인간 폐기물이자 인간말종. 다만 워낙 화려한 네임드 들이 많아서 똑같이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들 중에서는 다소 지명도가 약한 편이다.[3]
2 범인 정성현
정성현 항목 참고.
3 행적
실종 당일 오후 3시 30분 경, 우 양과 이 양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헤어졌으며 16시 10분경 안양문예회관 앞 야외 공연장 CCTV에서 포착되었다. 이들은 오후 5시경 안양문예회관 인근 상가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이후의 행적을 찾지 못하자 익일 오전 0시 30분경 두 어린이의 가족이 경찰에 미귀가 신고를 한 것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4 수사
그러나 마지막 목격자 이 후 목격자와 제보가 전혀 없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12월 31일 공개수사로 전환된다. 하지만 그래도 성과가 없자 다음해 1월 8일 신고보상금을 2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올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사건은 사실상 2달동안 공백이 되었다.
3월 6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원점에서 재수사를 지시함에 따라 재수사는 시작되었고 그 결과 3월 11일 오후 4시 경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호매실IC 칠보산에서 동원훈련 중이던 예비군에 의해 암매장된 여아의 토막시신이 발견되었다. 3월 13일 국과수의 DNA 검사결과 시신은 이 양으로 확인되었고 이 양의 생환을 기다리던 이 양의 가족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우 양의 생존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 다음날에는 경찰이 이 양의 집에서 130m쯤 떨어진 곳에 혼자 살고 있던 정성현이 사건 당일 동안구 관양동 렌터카 회사에서 현대 쏘나타를 빌렸다가 그 다음날에 반납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해당 차량의 트렁크에서 혈흔을 채취하였다. 이틀 후, 혈흔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우 양과 이 양이란 것이 드러나면서 두 어린이는 모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일 오후 9시 25분경에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어머니의 집에서 있던 용의자 정성현을 검거하였다. 정성현은 검거 당시에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억울하다는 식의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 후 정성현은 두 아이를 교통사고로 숨지게 한 후 당황하여 시신을 유기하였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경찰이 교통사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고 거기다 혈흔 및 렌터카 대여 기록을 증거로 대면서 압박을 주자[4], 3월 17일 낮 12시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자백 후에도 진술이 오락가락해 수사가 원활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사망이 확인되었지만 시신이 없어 실종상태였던 우 양을 시화호에 묻었다고 하다가 다시 오이도에 묻었다고 하다가 오락가락했었다. 아무튼 3월 18일 정성현은 영장이 발부되었고 7시간 후 정성현이 사체를 유기했다고 지목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을 수색하던 해병전우회 한 회원이 오후 4시 43분경 군자천 군자7교에서 군자8교 사이 제2간선 수로에서 어린이의 시신이 돌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서 오후 6시경 상류쪽으로 1㎞쯤 떨어진 군자6교와 군자7교 사이에서 시신 일부를 추가로 발견했으며 오후 6시30경에는 군자5교 인근에서도 찾아냈다. 3월 19일 국과수는 이 토막 사체들이 우 양이 맞다고 발표하면서 우 양의 사망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3월 24일 오전 7시 50분경 시화호 군자천 주변 갯벌 지역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이 것 역시 치아 구조와 DNA 분석 결과 우 양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성현은 이 양의 시신은 토막낸 후 야산에 한 곳에 매장했지만 우 양의 시신은 군자천에 버리는 바람에 시신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것이다.
시신이 이미 발견되었던 이 양은 3월 17일 안양의 메트로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룬 후 다음날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었다. 우 양의 경우 시신 대부분이 발견되었지만 상반신 몸통 일부는 끝내 발견되지 않아 장례식이 늦어졌고 4월 17일 오전 6시 50분경 관이 안양 메트로병원을 나와 모교인 명학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모교에서 추모 속에 오전 8시 40분경 화장터인 경기 수원 연화장으로 가서 화장되었다.
5 범행 동기
정성현은 유년기에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하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재학 당시에는 친구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하여 고등학교도 적응하지 못하였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성들로부터 원인 모를 배신감과 혐오증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범행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집단따돌림과 아동학대가 이 사람을 살인자로 만든 것.
이후 안양시의 한 자취방에서 은둔하며 지냈던 정성현은 사건 당일 성탄절 예부 후 두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여 안양 시내를 구경시켜준다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성추행을 하려다 저항하자 살해 후 시신을 토막내어 각각 호매실IC 인근 야산에 암매장하고 시흥 군자천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6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번 범인이 연쇄살인범의 유형과 닮았다는 기사가 떴다. 다만 혐의를 부인한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정성현은 자기 집 하드디스크에 수 만장의 포르노가 들어 있었던 것도 있고 이 사건 이전에 다른 성폭행 혐의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아 연쇄살인범의 유형과 닮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드 디스크에 수만장의 포르노 운운하면 찔리는 사람 여럿 있을 것 같은데?
아예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뉴스도 있다! 항목에서도 서술하겠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건 언론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한 네티즌의 추측이긴 하지만 일단 화성 사건의 용의자가 J씨이며 이번 사건의 정 씨와 이니셜이 동일하다는 점, 또한 당시의 용의자 나이가 20대였던 걸로 보아 약 10년 후인 2008년에의 이 범인의 나이도 39세이니 비슷하다라는 점 등이 있다. 그러나 판이하게 다른 범행 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정성현과 정 모가 동일인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였다.
7 진술 번복
앞서 언급했다시피 정성현은 자백할 때 부터 '내가 안 했다'고 했다가 '했다' 이렇게 진술이 오락가락 했었는데, 그 후에도 이번에는 어떻게 살해를 했는지에 대해서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죽었다더니 나중엔 벽에 밀어서 살해했다고도 진술한 것이다. 다만 살해한 것 자체는 인정했다.
8 결과
정성현은 사망한 두 초등학생과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이웃집 아저씨였으며 평소 안면이 있었다. 따라서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우리 속담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만드는 사건 중 하나로 경찰도 이 사건이 부실수사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후 정성현은 2009년 2월 사형을 선고받았고, 사형 집행이 사실상 모라토리엄 상태라 실질적으로는 가석방 없는 무기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9 군포 부녀자 상해치사 사건
이 사건이 터지기 4년 전인 2004년 7월 17일 새벽 1시경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금정역 인근 W모텔에서 성관계 대가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44살 정 모 여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집 근처 야산 등에 버렸다.
참고로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니라 상해치사로 처리되었다.
10 중랑천 하수구 토막 시체 유기 사건 해결
이 사건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어떤 미제사건을 해결하는데 공헌을 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22일 서울특별시 중랑구 중랑천 하수구에서 몸통만 있는 여성 변사체가 발견되었는데 신원을 알 수 없어 수사는 답보였다. 당시 경찰은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머리와 손 등을 끝내 찾지 못해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몸통은 부피 때문에 철망에 걸려 흘러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된 것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건 추정됐지만 수사는 답보였다.
미궁으로 빠져드는 이 사건은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 사건을 계기로 각 경찰서에 실종전담팀이 설치되면서 급진전을 보기 시작했다. 실종전담팀은 각 경찰서에 실종전담팀은 3명 가량이 배치됐고 변사자와 유랑자의 신원을 적극적으로 확인해 가족을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 성동경찰서 전담팀은 2년 전 실종되었던 40살 김 모씨의 어머니가 실종 신고를 낸 것을 주목하고 김 씨의 어머니와 변사체의 DNA를 비교한 결과 가족 관계라는 사실을 2008년 7월 들어 확인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김 씨의 남편 41살 김 모씨가 사건 발생 직후 잠적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용의자 김 씨는 휴대폰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아파도 건강보험 사용 기록이 남아 소재지가 드러나는 걸 두려워해 병원, 약국을 방문하는 것도 피할 정도로 치밀한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경찰은 일용직 노동자인 김 씨가 연고지인 대구광역시에서 생활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7월부터 2개월 동안 공사판을 전전하며 탐문한 끝에 지난 2008년 9월 17일 밤 김 씨를 체포했다. 김 씨는 은둔생활에 지친 듯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이유로 2006년 5월 17일 중랑구 자택에서 아내와 다투다가 목을 졸라 살해했으며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절단하고 3개의 비닐봉지에 담아 중랑천 하수구에 버렸다'는 혐의 사실을 경찰에서 모두 시인했다.
11 그 후
2014년 3월 3일 오후 5시45분경 안양시 만안구 자택에서 故 이혜진 양의 아버지 이창근 씨가 향년 53살의 나이로 사망한 것을 부인 49살 이 모씨가 발견했다. 원인은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사건 이후 이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6년동안 하루하루 술에만 의존했다고 전해진다. 이 양은 이 씨가 어려웠던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졌을 때 얻은 소중한 막내딸이었으며 애교도 많아 그만큼 딸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에 딸이 죽자 슬픔을 견디지 못했다. 이로 인해 고인은 지병을 얻어 결국엔 숨을 거두게 되었고 시신은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어 앞서 딸이 묻힌 안양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2014년 10월 10일 정성현은 몇몇 언론사들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민사소송을 냈는데 관련 기사 정성현은 이들 언론사가 보도한 기사내용중 '정성현은 2009년 2월 3명(안양 초등학생 2명, 군포 부녀자 1명)을 살해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는 문장은 군포 에서 정 모씨를 때려 죽인 혐의가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판결을 받아서 언론사가 사용한 '살해'라는 표현은 잘못되었고, 이 부정확한 단어로 정성현이 명예훼손을 입었다며 명예훼손죄로 각 언론사 마다 배상금 200만원씩을 청구했다.
그러나 판사는 '일반적으로 살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반드시 고의에 의한 죽임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언론사들이 상해치사와 살인을 구별하지 않았다고 허위사실을 보도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 외에도 정성현은 유죄를 선고받은 '강제성추행'이라는 혐의 대신 '성폭행'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 역시 판사는 '성폭행이라는 용어는 국어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그 개념은 사용하는 사람에 다를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잊혀졌던 안양 초등학생 유괴 살해 사건이 재조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