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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성현 |
출생 | 1969년 7월 14일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1] |
가족 | 2남 1녀 중 장남 |
신체 | 170cm, 68kg, B형 |
학력 | 대림대학교 (컴퓨터학과 87학번)[2] |
범죄유형 | 연쇄살인 |
1 소개
2007년 12월 25일, 두명의 초등학생을 성폭행 시도하다가 죽여 토막낸 뒤 암매장 한 살인자.
추가로 4년 전인 2004년 한 여인을 폭행치사로 숨지게 한 뒤 수사 과정에서 온갖 거짓말로 위장해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로 풀려난것.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살인 범죄자인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김길태, 김해선, 정두영, 우범곤, 온보현의 계보를 잇는 한사람이다.
2 성장배경
1969년 7월 14일,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버스 운전기사인 아버지와 미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서울로 상경, 이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상위권 성적을 기록하며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가정불화가 시작되었고, 급기야 부모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그 후 어머니는 정성현 곁을 떠나고 아버지는 어린 3남매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같은 보령 출신의 새어머니를 들여 재혼한다.
새어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한 정성현은 '어머니에게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 이복남매 2명이 생기게 되자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이복 형제들과의 편애로 인해 심한 폭력이 더해져 그의 마음은 점차 삐뚤어져 가기 시작했다. 정성현은 유년기에도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하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재학 당시에도 친구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하여 고등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러한 상처들을 이겨내었는지 1987년 대림대학교 컴퓨터학과 합격 후 별 문제없이 졸업도 했다.
정성현은 3명의 여성과 꽤 깊은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는 결혼을 전제로 사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 모두에게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후 부터는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상처도 있었던 것 같다. 2006년 동거녀[3]의 사망이었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밝혀졌다.이것도 뭔가 냄새가 나는(...) 당시 38세 노총각이었던 정성현은 동거녀가 죽은 뒤 혼자 살면서 포르노 동영상에 탐닉했다. 결국 정성현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 여자친구에 대한 증오 등을 겪으며 점점 더 여성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다.
검거 당시 집 컴퓨터에서 발견된 야동 파일만 무려 1,400개였다. 그중에서도 하드코어에 속하는 아동 음란 동영상과고영욱 보고있냐?? 스너프 필름[4]이 유독 많았다
3 범행
정성현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2007년 크리스마스날, 정성현은 새벽 대리운전을 마치고 아침부터 대학 선배와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몰라도 자리를 옮겨 생맥주를 2000cc를 마셨다고(!!)
그것으로도 역부족했는지 급기야 비닐봉지에 본드흡입까지 했다고 한다. 정성현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성인 여성은 상대하기 벅차다고 판단했는지 대신 그는 어리고 약한 초등학생을 택했다. 때마침 동네에서 놀고 있던 두 여자아이, 이혜진 양과 우예슬 양을 발견하고 정성현은 미행후 그 들의 집에서 성폭행을 시도하게 되는데 반항하던 아이들을 제압하고 모두 처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냈다.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성현은 시신훼손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는 시신의 발목부터 무릎, 허벅지 순으로 잘라냈다. 정성현은 이혜진 양의 시신을 빨간색 플라스틱 통에 담아 렌트해 온 차량(ef 쏘나타) 트렁크에 싣고 수원시 권선구 인근에 야산, 그리고 근처 하천으로 가 암매장하였다. 12월 26일 새벽 4시쯤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우예슬 양의 시신을 아까와는 달리 시흥시 군자천에 버려진다. 그리고 정성현은 아침이 밝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를 찾아가 태연히 컴퓨터를 고쳐줬고 오후 3시 쯤에는 렌터카를 반납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78일 후, 2008년 3월 11일. 수원시 권선구에서 훈련 중인 예비군이 여아의 시신 머리부분이 땅 밖으로 노출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시신은 30cm 깊이로 암매장 되어 있었고 무려 10토막으로 잘려 있었으며 일부 신체 부위에서 톱 자국이 발견되었다.
국과수의 DNA 검사결과 시신은 이혜진양으로 확인되었고 이혜진양의 생환을 기다리던 가족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시신 상태로 미뤄 실종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 정확한 사인과 사망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혜진 양은 1남 2녀 중 막내딸로 온 가족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는지라 충격이 더욱 컸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찰은 살인범 정성현이 사건당일(25일) 렌트카 회사에서 차량을 빌린 후 다음날(26일) 반납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두 어린이와 자동차가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발견했다.
경찰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정성현은 25일 크리스마스날에 집안에만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렌트 차량의 트렁크에서 혈흔을 확보, 혈흔의 DNA 감식 결과 두 어린이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2008년 3월 16일, 정성현(40세, 대리운전기사)을 충남 보령의 정성현 어머니(새어머니) 집에서 검거했다.
정성현은 체포 후 수사 과정에도 계속된 거짓말과 허위 진술로 수사당국의 혼선을 유발했다. 그 중 대표적인 거짓말이 두 어린이들 차로 치어 죽게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정성현은 두 아이를 교통사고로 숨지게 한 후 당황하여 시신을 유기하였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경찰이 교통사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고 거기다 혈흔 및 렌터카 대여 기록을 증거로 대면서 압박을 주자 3월 17일 낮 12시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자백 후에도 진술이 오락가락해 수사가 원활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사망이 확인되었지만 시신이 없어 실종상태였던 우예슬 양을 시화호에 묻었다고 하다가 다시 오이도에 묻었다고 하다가 오락가락했었다.
그 후 3월 19일 수원지법은 정성현을 구속한 뒤, 3월 22일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3월 24일, 공사장 인부 김모씨에 의해 우예슬 양의 머리를 발견했다. 그러나 우예슬 양의 몸통 윗부분은 끝내 발견하지 못한 채 유족들은 우예슬 양의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뤘다. 따라서 국과수는 이 토막 사체들이 우예슬 양이 맞다고 발표하면서 우예슬 양의 사망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여담이지만 정성현은 사망한 두 초등학생과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평소에 잘 알던 이웃집 아저씨였으며, 꽤나 안면이 있었다고.
4 또 다른 범행
이 사건이 터지기 4년 전인 2004년 7월 17일 새벽 1시경 경기도 군포시의 한 전화방을 찾은 정성현은 도우미인 정모(44, 1961년생)씨와 전화로 음담패설을 나누면서 성적 흥분을 느꼈다. 당시 36살이었던 정성현은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정씨에게 성매매를 제안했다. 정씨가 동의하자 두 사람은 금정동 금정역 인근 W모텔에서 만나 성관계를 시도했는데 대가를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정성현이 거절하자 정씨가 그를 모욕했고 분노한 정성현은 수차례 폭행을 했다. 결국 44살 정 모 여인은 숨을 거두었고 시신을 집 근처 야산 등에 버렸다.
정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정성현에게 주먹을 얻어맞은 뒤 방바닥으로 넘어지면서 생긴 뇌출혈이었다. 정성현은 7월 17일 새벽 2시쯤 시신을 모텔에 끌고 나왔으며 모텔 주인은 그저 술에 만취해 쓰러져 업혀 나갔나 보다 했지만 정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정성현은 모텔 골목에 숨진 정씨를 잠시 앉혀 놓은 다음 차를 가져와 집으로 옮겼다. 4년 뒤 두 아이들에게 저지른 짓을 정성현은 정씨에게 그대로 행했다. 정성현은 시신을 토막 낸 뒤에 검은색 비닐봉지에 나눠 넣고 집 근처 야산에 묻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다시 야산으로 가 군포에 있는 다른 야산에 옮겨 암매장 하는 등 치밀한 수법을 보였다.
정씨 실종 직후 경찰은 정씨가 정성현과의 마지막 통화 이후 종적을 감췄음을 확인하고 정성현을 소환했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통해 거짓 반응까지 얻어냈지만, 정성현은 "대리운전 때문에 통화한 것" 이라고 진술하며 완강히 부인했다. 또 휴대전화 위치확인 시스템 등을 근거로 알리바이를 입증하자, 하는 수 없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부질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때 경찰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 정성현의 범행을 밝혀냈더라면 어린 두 생명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니라 상해치사로 처리되었다.
5 여담
- 범행 당일 정성현과 같이 술을 마시던 선배 A씨에 따르면 정성현과 그는 전문대 야간을 다니면서 서로 알게되었는데 어느 학생이 "옆반에 술 주벽이 심한 놈이 하나 있다"는 말에 역시 술은 좋아하는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계가 시작됐다. 그 이후 우연히 정성현과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일정량의 주량을 초과하면 사람들을 괴롭히고 밤새도록 끌고다니는 행동을 하는 등 주벽을 부리는 정성현과 형, 동생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정성현은 주벽이 심할 때면 교수에게 폭언을 가했다고도 한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말없다가 술만 마시면 용기 백배한 행동 그것도 그간 쌓였던 분노와 불만들을 쏟아 내는 것은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자'의 범주에 든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매우 위험한 사람, 이를테면 범죄 보균자라고 보면 된다.
-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떠 화제가 되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어났던 사건이다. 한 네티즌의 추측이긴 하지만, 화성 사건의 용의자가 J씨이며 정성현과 이니셜이 동일하다는 점, 또한 당시의 용의자 나이가 20대였던 걸로 보아 약 10년 후인 2008년인 이 범인의 나이도 39세이니 비슷하다라는 점 등이 있다. 더불어 J군의 혈액형이 B형, 169cm인것과, 정성현 역시 혈액형 B형에 170cm인것도 비슷하다. 그리고 J군과 정성현은 단순강도로 교도소를 들어간 경험이 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J씨와 정성현은 자기 집 하드디스크에 수 만장의 포르노가 들어 있었던 것도 있고 이 사건 이전에 다른 성폭행 혐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무척이나 황당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하나 화성 부녀자 실종사건의 두번째 피해자가 묻힌 곳과 도마교동은 불과 1.2km거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군포 전화방 여성의 사체가 묻힌 곳과 이혜진 양의 사체가 묻힌 곳의 가운데쯤 두번째 피해자의 사체가 있어서, 정말이지 정황만 본다면 정성현이 화성 부녀자 실종. 살인사건의 범인이라 해도 믿을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경찰은 J씨와 정성현은 차이점이 있는데, 범행방법, 신체적 특징[5] 게다가 판이하게 다른 범행 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정성현과 J씨가 동일인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분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