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겉옷의 앞자락
순 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충청도 방언으로 앞지락이라고도 한다.
온라인 버전 쿵쿵따 한방단어 중 하나. 일단 '랖'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없고 두음법칙을 적용해도 '앞'이 아니라 '낲'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대라고 한다. 낲... 낲... 안되잖아? 어! 잇기가 안돼. 말을 이을 수가 없어. 안돼
2 참견하는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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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사회성
한국인의 특성.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어구가 있는데, 오지랖이 넓으면 그 안의 옷을 다 가리니 남들 앞에 나서서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참견하며 따지는 모양새가 이와 닮아서 나온 말이다. 이런 사람을 오지라퍼(오지랖+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친하거나 호감을 가진 사람이 도와준다고 하면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친하지 않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도와준다고 하면 오지랖이라고 인식한다. 매우 친한 사람이나 신뢰가 깊은 사람이 아닌데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던지, 그냥 친한 사이인데 상대방이 조언이나 충고를 부탁하기 전에 조언이나 충고를 하면 오지랖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A)오지랖이 넓다.
훈장질, 지적질을 한다.
참견한다.
낄 데 안 낄 데 못 가린다.
부정적으로 보일 경우 A와 같은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B)이타적이고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살피기 좋아한다.
의리가 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리더십이 있고 주도적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이야기, 상대가 잘 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해 준다.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B와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회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B와 같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A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차이는 어떤 행동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즉, 타인의 감정을 기분나쁘게 한다면 오지랖을 부린다며 배척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자신의 오지랖 지수를 확인해보자.(서울대학교 학부생들이 수업을 위해 만든 자료이며, 의학적 엄밀성을 지닌 건 아니다)
2.1 사회적 거리,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해 부족
이들은 조언이나 충고를 듣기 싫어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말을 걸다 보니 배척 당하게 된다.
- 자신과 개인적인 얘기를 주고받기 싫어하는 상대에게 오지랖을 부릴 경우. 예를 들어 직장동료, 동네주민 등 그저 지인수준일 경우이다. 이 경우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가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심한 경우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조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대개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 심한 경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조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매우 불쾌해하거나 대놓고 비웃는다.
-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우습게 보이는 행색을 하고 있으면서 타인에게 조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사회적 서열이 높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상황 이외에 조언을 하면 특히 위험하다. 무시당할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선망받는 사람이라면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적고, 낮은 신분에 실패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지랖이 넓다는 조롱을 듣기 쉽다.
2.2 원치 않는 도움을 줌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상대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더라도 상대방에게 이로운 것을 주면 상대방이 좋아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도움을 원하지 않는 상황일 때 도움을 주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몹시 위험하다.
- 인간의 본성 : 삶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1]는 틀려도 틀린 티가 나지 않고 맞아도 맞은 티가 나지 않는다. 꼰대나 나일리지나 아집과 교만 등의 원인으로 남의 이야기는 무시해버리고 자신만 옳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들도 있다. 시기심 때문에 잘 하고 있는 타인의 발목을 잡으면서 실력은 있을 지 몰라도 잘난 척 해서 밥맛이라고 덮어씌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세 가지 원인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폭삭 망하기 직전이라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기가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은 칭찬과 아부를 듣고 싶어하지, 현 상황에서 발전시켜 줄 조언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 도움의 시기 : 상대방이 질문을 하거나 어려움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할 때쯤 도와줄지 물어보고 도와줘도 늦지 않다. 가령, 질문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질문을 받을 때까지는 끝까지 충고를 하지 않는 게 좋다. 질문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사회적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나을 수도 있다.
- 도움의 방법 : 도움은 상대방에게 이로운 것이어야 한다. 가령, 일을 도와준답시고 나서서 일을 오히려 망쳐놓는다면 민폐꾼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 자기 혼자 도와줬다고 착각하며 좋아하고, 도움받은 사람이 일을 망쳤다고 화를 내면 도와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일을 망치고 있어서 말리는데 기어이 자기가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 리스크 : 사람들은 남의 행동 때문에 위험부담을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가령, 도와주려는 사람이 컴퓨터를 잘 다루고, 자기 집에서 컴퓨터를 자주 고치며, 가족이나 친척들의 컴퓨터 관련 부탁도 잘 들어준다고 하자. 그런데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 컴퓨터를 수리해야 할 상황에서 '공짜로 최선을 다해 해보겠다'라고 하면 가게 주인은 신뢰를 하지 않는다. 컴퓨터는 비싼 물건이고, 망가뜨리면 손해배상 문제로 분쟁이 생기기 때문이다. 도와줄 실력이 있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실력을 상대방이 믿을 정도의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가령 이런 사례에서 해당인물이 컴퓨터공학과 전공자라면 가게 주인은 믿고 맡길 확률이 높다.
- 창의적인 거래 : '내가 너에게 이것을 해줄 테니 네가 나에게 저것을 해 다오. 그러면 너는 많이 이득을 보고 나는 조금 이득을 보니까 둘 다 좋은 거 아닌가.' 서로간에 신뢰가 있다면 이런 창의적인 거래를 통해 상호간에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사람들 사이, 특히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서 그런 거래를 제안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거부감을 주기 십상이다. 상대방을 도와주고 싶으면 일방적으로 퍼주든지, 아니면 아예 제안 자체를 하지 마라.
2.3 잘못된 대화 주제의 선정
설사 상대와 시기를 제대로 잡았다 하더라도, 주제가 잘못되면 배척당하기 쉽다.
- 상대가 세운 진로, 인생계획, 가치관에 대해서 폄훼하거나 부정한다면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기분나빠하기 쉽다.
- 상대의 가족, 친구, 애인을 놓고 '어떤어떤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기분나빠하기 쉽다. 그 사람들은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3.1 하소연에 대고 해결책 제시
- 상대가 단순히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상황에 대해 하소연을 하면서 기분을 풀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 여기에다 대고 '결론, 해답을 찾는 방법, 상대의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경우 싸움이 날 수 있다.
- 사회기술이 미숙한 경우 '하소연을 원하는 상황'과 '도움을 원하는 상황'을 잘 구별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이 구별이 간단하게 설명되진 않으니, 그냥 상대가 상의한 일이 아닐 경우 하지 말고, 상대에게 뭔가를 해 주기 전에 뭔가를 해 줘도 될 지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 구별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면 끼어들지 말고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2.3.2 사생활 침해성 질문
이런 이들은 상대가 이야기하기 싫은 개인사를 일부러 꺼내어 이야기한다. 일단 얘기하기 전에 자기 상태부터 좀 살피고 얘기하면 좋으련만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학교에서 몇 등 하고 있어? 넌 어느 학교 갈래? 옆집 누구는 반에서 1등한다더라 졸업하면 뭐 할래?" (공부를 못 하는 중고생에게)"살은 좀 빠졌니?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어? 살을 좀 빼야겠네." (비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살이 빠지지 않는 사람에게)
"일은 안 하니? 넌 취직은 언제 할 거니? 올해는 취직을 할 수 있겠니?" (취업준비생에게)
"애인은 여전히 없니?"(모태솔로 혹은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넌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올해는 결혼을 할 수 있겠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올해 네 나이가 몇인지 아니?" (노총각, 노처녀, 취업준비생에게)
"연봉은 어떻게 되니? 회사가 어디니?" (썩 만족스럽지 않은 직장을 잡은 사회초년생에게)
"아이를 낳아야지."(노총각, 노처녀, 딩크족, 불/난임부부에게)
"남자가 머리가 그게 뭐니? 남자니까 짧게 잘라.(젊은 남성에게)
"옷이 그게 뭐니? 아주 홀딱 벗고 다니는구나?"(젊은 여성에게)
"좀 단정하게 하고 다녀라. 하여튼 TV가 사람을 망친다니까?"넌 TV안보냐?(젊은 자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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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명절이나 가족모임에서 평범한 친척 어른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친척뿐만 아니라 부모-자식간에도 이런 대화로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을 걱정하고 위로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극받아서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냐'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컴플렉스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함부로 해 봤자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약점을 자극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가시돋힌 말이면 잔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제대로 말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하냐면...
X : 살은 좀 빠졌니?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어? 살을 좀 빼야겠네.O : 내가 요즘 등산을 다니고 있는데 괜찮더라. 살을 빼려면 힘드니만큼 같이 하는 게 좋지 않겠니. 생각있으면 연락해. (상대가 다이어트 중인 경우)
X : 애인은 여전히 없니? 요즘 말하는 모태솔로니 뭐니 하는 거니?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
O : 과 후배 하나가 너하고 잘 통할 것 같다. 너만 생각 있으면 둘이 소개팅 한 번 해 보면 좋겠는데 어떠니? (상대가 연애의사가 있을 경우)
X :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취직을 못하니? 그 나이가 되었으면 뭐라도 해야할거 아니니?
X : 너는 외동이니까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 남들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사회성이 부족한 자신의 성격에 대해 고민한 경우)[2]
O: 너는 외동이라 외로움을 잘 타지 않으니까 그 장점을 살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O : "oo이라고 내가 아는 곳이 있는데 그 일자리를 한번 소개시켜 줄까?" (그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인기있는 일자리일 경우에 한해)
O : "내가 이번에 공무원 시험 붙어서 동사무소에 들어갔는데, 그 동안 모아놓은 시험 준비 자료 줄게. 이거 비싼 거다."
이렇게 된 경우엔 듣는 사람이 그 도움을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든지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조용히 거절하는 선에서 끝난다. 자신이 언급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강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언을 한다 하더라도 단둘이 있을 때 하면 좀 덜하다. 하지만 악의 축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몰려 있는 데서 물어보고 자극하니 욕을 먹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진심으로 하는 충고가 아니라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충격요법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교관, 교사 등의 직업군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훈육에 대한 교육을 면밀히 이수받은 사람들이며, 이를 위한 교육을 연수, 훈련 받고 필요할 경우 효율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교관의 경우에는 새로운 조직, 직장, 기술, 직업 등의 적응을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교사는 사회인재 육성 및 진로창출에 도움을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실제 교사들은 졸업생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줘서 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특히 실업계, 전문학교), 더 큰 배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입시지도, 진로 상담 등). 그런데 오지라퍼들 중에서 자기가 지적하는 사항을 개선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는 사람이 아니 애초에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지랖과 이런 충격요법 전문가 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훈육 대상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면밀한 평가, 관심의 지속 여부이다. 교관,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사람에 대한 평가와 관심을 계속해서 가진다. 하지만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에겐 책임의식이 없다. 그저 개인적인 감상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다. 책임을 가지고 신중하게 충격 요법을 쓰는 사람들과 별 생각 없이 상대의 흠을 잡아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또한 교사와 교관 같이 권한을 가진 사람들조차 역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것은 금기시 되어있다. 이런 쪽에서 전문적으로 연수를 받고 훈육을 받는 프로들도 쉽게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을 고작 일년에 한두번 보는 사람들, 면밀한 관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멋대로 쓰고 말하는 것은 결국 무책임하며 한심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도 그런 잘못을 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가족과 관련된 얘기가 그렇다.
본인의 문제는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해당 사안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소리를 하게되면 결과는 상대방이 즐겁지 않으니 대화를 짧게 끊어버리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특히 심각한 경우 이혼한 사람에게 이혼에 대해, 파혼한 사람에게 파혼에 대해, 시험 낙방한 사람에게 시험에 대해 물어보는 등 콕콕 찌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그저 질문을 가장한 갈굼이 될 뿐이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역으로 그런 질문을 받았을 시의 행동인데 그런 사람에게 역공한다고 한 번 넌지시 이야기 해 봐라. 아마 거의 대부분이 그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말까지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본의 아니게 사생활 침해성 발언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재혼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자녀임을 모르고 그러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는 경우이다. 복잡한 가족사를 자기가 먼저 얘기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앞서 언급한 외동 자녀에 대한 얘기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형제의 사망으로 본의 아니게 외동이 된 사례도 있고,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이복형제나 이부형제가 있음을 숨기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외동이니까 너는 이런 게 부족하다는 식의 발언은 그 사람의 말 못할 상처까지 건드리는 결과가 된다.
또한 앞서도 언급된 이혼의 경우, 본인 스스로 이를 창피하게 생각해서 입밖에 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혼한 사람을 나쁘게 얘기하는 것도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가 된다. 설령 그 사람이 이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그런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간에 가족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예의이다. 실제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사생활 관련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2.4 기분나쁜 표현을 함
설사 상대와 시기와 주제를 제대로 고르더라도 능숙한 말재간에 자신이 없다면 조언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눈치 부족에다 외향적이다. 다른 사람이 재미없어하고 지루해하는 말, 기분나빠하는 말은 최대한 빨리 끊는 게 좋다. 또 자신을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말을 적게 붙이는 쪽이 좋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런 미묘한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 역시 자신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혼자 착각하고 기분나쁜 이야기를 길게 이어간다. 이런 상황은 더 심하고 노골적인 배척을 불러온다.
- 유머 감각, 전달력이 부족해서, 똑같은 이야기라도 재미없고 지루하게 한다. 쓸데없고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길게 이어간다. 상대가 재미있어서 귀를 쫑긋 세우는 상황에서는 오지랖퍼로 조롱당할 일이 드물다.
- 상대를 무시하는 조언을 한다. "너는 무능하고 멍청해서 엉터리 선택을 한 거야. 너는 생각이 짧고 어리석어. 넌 틀렸어. 넌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박약이야."라고 말하면 그게 사실이더라도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기는 어렵다. 상대방이 자신의 성장환경/재산/인맥 등 현재 조건상 올바른 판단을 해왔다는 전제 하에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너보다 유능하므로 너의 판단은 틀렸으며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우월의식에 기반한 조언은 상대가 열등함을 인정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우월하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잘난 척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 상대가 반발하면 논리와 토론으로 찍어누른다. "상대가 반발한다"는 그 자체가 상대는 이미 불쾌하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설사 논리로 이긴다 하더라도 절대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상대를 꼼짝 못하게 누를 생각을 하지 말고, 차라리 져 주면서 달래는 게 낫다. 정당한 지적이라도 논쟁적 태도를 가지면 절대 사회생활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쉽게 사회에서 소외당한다.
- 상대가 '물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말로만 상대방을 날카롭게 비판을 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자기가 도와줄거 아니면 조언도 충고도 하지 말고,상대가 물어보는 것이 아니면 그냥 언급도 하지 말아라. 상대방이 물적인 도움을 친구에게 부탁하는건 자신의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다가 안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경우나 그냥 친구에게 위로되는 말이라도 들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물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부터 들어보고 도움받을 방법을 같이 찾아보는게 중요하지 앞,뒤 안보고 "네 잘못이네." "네가 알아서 해라." 등의 의지드립으로 냉소하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않는 말이고 상대방에게 절망을 안겨줄 뿐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고 말해야 한다.
- 설사 상대에게 '물적인 도움'을 준다 해도 기분나쁜 표현을 함부로 써가며 하면 돈을 쓰고도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도움을 주면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고 다닌다. 이런 경우는 도움을 주면서도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는 방법이다.
2.5 엉뚱한 대상에 감정 이입
상대방이 어떤 사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호소할 경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의 심정에는 주목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 쓸 데 없이감정 이입을 하는 것을 말한다.
-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여자 회사원이 인터넷 게시판에 회사 생활 중 남자 선배와 생긴 트러블에 대해 하소연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당연히 원글을 쓴 회사원은 남에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를 익명의 공간에 털어 놓아서 위로를 받고자 그 글을 올린 것이다.
- 하지만, 여기에 어떤 여대생이 글 속에 등장하는 남자 선배를 만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차도남으로 상상하고 열심히 남자 선배를 쉴드 친다. 남자 네티즌이라면, 자신의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리며 원 글을 쓴 이에게 공감하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어린 연령층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의 사장이 내연녀를 자기 회사에 고용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떼어 먹는 등 비리를 저지른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도 공분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식이 그런 케이스인데도 사장 편을 드는 어머니가 실제로 있다. 자식이 비난하는 악덕 사장을 어려운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그런 사람들이 겉은 무서워도 속은 그렇지 않다느니, 부인이 들들 볶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바람을 피웠을 것이다라고 쉴드를 친다.(...)
막영애 조덕제까지도 쉴드 칠 기세
- 이 경우, 알고 보면 어머니의 형제가 사업을 하다가 망한 아픈 사연이 있다거나, 어린 시절 모녀 관계가 아주 안 좋았을 가능성이 있다.
즉,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연민에 빠진 나머지 자기 인생 하소연만 하려는 타입이라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두 사례의 공통점은 오지라퍼가 잘못된 남성 판타지에 빠져 어그로를 끌었다는 것이다. 강한 남자에게 지배받고 싶은 욕망이 이런 식으로 잘못된 감정 이입을 만들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남자가 이런 케이스인 경우에 대해서는 추가 바람
2.6 지나가는 사람 머리채 잡기
이 부제목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에 끼어들어 봉변을 당하게 만드는 경우이다. 하지만 문자와 거의 일치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예를 들면, 아줌마 B의 염색 머리를 나무라던 아줌마 A가 갑자기 지나가던 20대 여성 C를 툭 치며 아줌마 B가 들으라고 쟤 좀 봐. 저렇게 까만 머리가 얼마나 예뻐라고 하는 경우이다. 비록 칭찬하려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지나가던 C의 입장에서는 봉변이다.
또한 아이들이 놀다가 생긴 사소한 다툼에 지나가던 아줌마가 끼어들어 애꿎은 아이를 나무라는 경우도 있다. 일을 처음부터 지켜 본 것이 아니면 누가 잘못인지도 알 수 없고, 굳이 모르는 사람이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결될 사소한 일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긁어 부스럼이 따로 없다.
또 다른 황당한 사례로는 목적지가 지하철 종점역이라 맘 놓고 자고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우며 우리 아들이 서울대에 다녀서 깨웠다고 하는 경우. 해당 학교 학생이 아닌 경우엔 불쾌감만 느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오지랖이 인터넷으로도 확장되기도 한다. 여성 네티즌이 이런 봉변 사례에 대해 하소연을 했을 때 남성 네티즌이 공감을 표했을 경우, 다른 여성 네티즌이 이를 여혐으로 확대해석하여, 오지랖을 떤 아줌마를 오히려 두둔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이런 일을 당했으면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라며 당혹감을 호소한 사람을 은근히 속좁은 사람으로 몰아가는 식.
2.7 최악의 상황
오지랖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잘 표현한 것으로는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녀의 빵>이 있다.
창작물의 사례로 끝판왕인 것은 추격자에 등장한 오지라퍼 아줌마가 있을 것이다.
인터넷상의 마녀사냥도 이러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2.8 오지라퍼
인터넷에선 이런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오지라퍼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마이클럽 등 여성 유저가 많은 게시판에서 주로 발생하였다. 주로 쓸데없이 사생활에 참견하는 사람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요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많다."는 식의 공감 댓글이 달리다가 영어의 -을 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의 '-er'을 '오지랖'에 붙여서 '오지라퍼'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 듯 하다. 오지랖러
2.9 적반하장으로 쓰이는 경우
위에서는 주로 평범한 집단의 경우를 언급했는데, 대상자 중 한 쪽이 범죄자일 경우 적반하장으로 나올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A는 지나가다가 B가 C를 괴롭히고 돈을 뺏거나 두들겨 패는 걸 봤다.A는 여기에 끼어들어 C를 구해주려 한다.
B는 A에게 "우리 일에 관계도 없는 니가 웬 참견이야, 쓸데없는 오지랖이야 씹새야."라고 쌍욕을 퍼붓는다.
창작물에서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높은 확률로 이런 상황인 경우가 많다. 대개 주인공이 A고, B가 악당인 경우. 특히 주인공이 정의감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디스를 당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특히 B와 C가 어떤 형태로든 가까운 관계에 있을 수록 오지랖 취급을 당하기 쉬운데, 이 쪽 분야에서 가장 정형화된 클리셰는 히로인인 C가 가족이거나 가문의 높으신 분인 B에게 학대당할 때 외부인 A가 B를 물리치고 C를 구해주는 경우. 이렇게 되면 대개 B로부터 "우리 집안하고 상관도 없는 놈팽이가 웬 오지랖이냐!" 하는 식으로 발악을 듣게 된다.
이런 식의 오지랖 속성이 강한 캐릭터로는 카미조 토우마가 있으며, 특히 이 캐릭터는 한번 오지랖을 떨 때마다 히로인들한테 플래그를 꽂는 걸로도 유명하다(...).
서로 싸우고 있을때 한쪽편만 들면 당연히 빡쳐서 오지랖이란 단어가 날아다닌다. 상황 파악을 잘 하도록 하자
2.10 왜 오지라퍼가 되는가?
일단, 여기서는 가족이나 친구인 경우가 아닌 생판 모르는 사이인 경우로 한정해서 설명하겠다.
아는 사이일 경우에는 어디까지가 오지랖인지 분간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오지랖의 경우 같은 이슈에 동참함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려는 심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모자 사건을 비롯한 각종 헛소문이 좋은 예. 게다가 헛소문임을 알기 전에는 나름대로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보람까지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정 욕구이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함으로써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인정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관계 맺기 방식이 미숙한 경우이다.
앞서 언급한 지나가는 아줌마들의 오지랖이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자신의 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보살피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정을 받았다. 즉 자신의 삶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게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이 당대에는 여성 화가로 유명했지만, 성리학이 보수화되면서 이이의 어머니로 더 유명해진 게 좋은 예이다.
따라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아줌마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아들이 서울대 다녀서 서울대 입구역에서 깨웠다는 아줌마는 평소에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인식해 왔지만, 그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이 없어지자, 생판 모르는 젊은이를 자기 아들과 동일시하여 실례를 범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이 아줌마는 인정 욕구는 강한 반면 관계 맺기 방식이 매우 미숙하다고 볼 수 있다.
오 헨리의 소설 <마녀의 빵>에 나온 나이 많은 미혼 여성의 경우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40대 미혼 여성이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비록 작은 빵집이긴 하지만, 모아 둔 재산도 있고 어쨌든 사장님 소리는 들으니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위치인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묘사되어 있듯이, 당시에는 아무리 사업에 성공해도 시집을 못 가면 여성으로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여성성을 과하게 어필하려는 마음에서 지나친 친절을 베푼 것이다. 더군다나 저 당시에는 여성의 솔직한 고백을 좋게 보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빵 속에 버터가 있으니 맛있게 드세요라고 분명한 메시지를 남길 엄두를 못 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지금 시대의 사람이라면 원작과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며, 결말이 이처럼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이성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강했지만, 제대로 관계 맺는 방법을 몰라서 생긴 비극이다.
흔히 오지랖 하면 아줌마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런 사회 구조와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것이다.
2.11 한국의 오지랖
위에 서술했다시피 한국인의 성향이기도한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단점이 뭔지 물어보았을 경우 거의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게 바로 이 오지랖이다.
11분 17초부터
해당 영상은 문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인데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여러가지 부분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2분 17초부터
이 영상은 한국인은 왜 남들을 그렇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과 한국 여성들의 답이 있다.
북미나 일본의 경우 살이 찌거나 여드름이 나도 그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는데[3] 한국은 바로 만나자마자 그 사실을 바로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서 물어보지도 않은 해결방법에 대해서 말해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남에 대해서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
남녀 모두 마찬가지지만 여성을 예로 들면 여성들끼리 쓸데없이 몸매와 성형수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적을하고 남성들은 외모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평가를 하다보니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은 자존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져 성형수술로 이어질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보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게 된다.
한국의 패션이나 화장법 같은 것이 심하게 유행을 타는 것도 어느정도는 이 오지랖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오지랖에 의한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최대한 최신의 스타일을 살리려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
크게 보자면 악플이 유난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이 심한편에 속하는데 이것도 유명인에 대한 일종의 오지랖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없애기 위해선 오지랖이 줄어드는게 한국의 가장 큰 숙제라고 볼 수 있는데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3 관련 문서
- ↑ 연애, 결혼, 이직, 인간관계, 사내 정치, 창업, ...
- ↑ 얼핏 듣기에는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동에 대한 편견을 깔고 있는 말이다. 외동도 성격이 다 제각각이라는 건 80~90년대에 출생한 위키 니트들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 세대의 경우 외동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외동이면 엄청 특이할 것이라는 편견이 심하며, 심지어 실제로는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70년대 후반 출생자가 80년대 초 출생자를 자기네들과 엄청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 ↑ 일본의 경우엔 남에게 극도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지나친 오지랖을 부리는 한국의 성향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을듯.
- ↑ 14번째 표적 방영 당시 원판은 이름에 5가 들어가서(毛利 小五郎) 그냥 방영했지만 한국판은 그런게 없어서 그냥 오지랖이 넓어서 5번째겠거니 정도로 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