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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 ||||||
32대 이명박 | ← | 33, 34대 오세훈 | → | 권한대행 권영규 35, 36대 박원순 |
파일:20160117134404220gcrj.jpg | |
이름 | 오세훈(吳世勳) |
출생일 | 1961년 1월 4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수동 |
본관 | 해주 오씨 추탄공파 |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
가족 | 1남 1녀 중 장남(여동생 오세현) 부인 송현옥, 슬하 딸 2명[2] |
정당 | 새누리당 |
직업 | 변호사, 정치인 |
혈액형 | A형 |
종교 | 가톨릭(세례명 : 스테파노) |
목차
1 개요
대한민국의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이자 변호사.
1961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성동구[3] 출생. 최종학력은 고려대학교 법학 박사(민사소송법)이며, 병역은 중위 만기전역으로 병역을 이행하였다.
부인 송현옥(극단 '물결'대표 및 세종대 연극영화과 교수) 슬하에 딸 2명이 있으며 여동생은 오세현(KT그룹 신사업전략담당 전무)이다. 오세훈의 여동생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면접을 봐서 화제가 됐었다. (면접 다음날 철회했다고 한다.)역시 남매는 적이다
2 생애
2.1 정치권 입문 이전
대일고등학교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고려대학교 법학과로 편입하여 졸업하였으며, 사법시험 합격 후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장교로 병역을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4]
그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상법) 를 취득하였으며, 숙명여대 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그후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에 교환교수(Visiting scholar)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하여 민사소송법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오세훈이란 사람이 주목받은것은 이른바 '일조권' 소송 사건이다. 1993년 인천의 경남아파트에서 시공한 아파트 중 일부 세대에서, 대낮에서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그림자에 가려 일조권이 침해되었다며 암흑의 시대 단체 행동에 나선 적이 있는데, 당시 주민들을 변호하기 위해 등장한 사람이 오세훈 변호사였다. 대기업 건설사를 상대로 젊은 변호사가 소송에 나서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소송에서 오세훈 변호사는 13억원의 보상금을 받아내는 쾌거를 발휘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상에 보장된 '환경권'에 관련된 소송이였으며, 이는 오세훈의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환경전문 변호사' 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다. 그 후 TV 시사프로 '오변호사 배변호사' 90년대판 '솔로몬의 선택' 에 출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한 후, 당시 MBC아나운서였던 손석희 현 JTBC 보도부문 사장과 인터뷰를 하던 중, 한 PD가 오세훈 변호사에게 방송 출연을 제의했다. 이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오변호사 배변호사'였다. 첫 방송이 나간 후, 훤칠한 외모의 젊은 변호사의 등장으로 인해 그동한 변호사에게 박혀있었던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하여 큰 호응을 얻게 된다.
그후 방송능력을 인정받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담당하였고, 96년 SBS 뉴스 따라잡기, 98년 '갑론을박 동서남북', 99년 '오늘과 내일' 등 각종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또한 남성복브랜드 '로가디스' 와 청호나이스 정수기 등의 광고에 CF 모델을 맡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장 브랜드와 정수기 브랜드는 당시 탑 모델[5]급의 배우로 광고하는게 일반적이지만, 당시 변호사로서의 스마트한 이미지와 장신의 키(185cm), 그외 여러가지 요소로 인하여 '일반인'으로서의 광고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다.
96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결혼하고 싶은 남성'에서 무려 이병헌 우리가 아는 그 분 맞다. 을 제치기도 했으며, 당시 주간지 기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멋있는 남성'에서 10위권에 머무르기도 했다.
95년 발간된 그의 에세이인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2.2 국회의원 시절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6] 출마하여 59.4%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소장 개혁파로 주목받으며 정치개혁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키는 등의 업적[7]을 쌓았다. 오세훈이 대표발의한 정치자금법 관련 법안은 이른바 '오세훈법'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 이후 '5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다음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의정활동 잔여금 2,500만원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4년간의 임기기간 내내 시민단체에서 시상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 에 선정되었다. 2003년에는 '코리안 베스트드레서 어워드 정치인부분'을 수상하는 독특한 수상 이력도 있다.
2.3 서울시장 시절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했다. 2년 뒤 이명박의 뒤를 이어 2006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 열린우리당의 강금실에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2007년 민원관련 문의절차가 분산되어있어 복잡하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민원서비스인 다산콜센터(120)을 설립하였다. 또한 서울시에서만 진행되던 대중교통 환승제를 수도권 지자체(당시 경기도지사 김문수)와 협의하여 확대실시하여 교통량 분산 및 차량감소로 인한 환경개선을 추진하였다.
또한 '서울시 공기를 제주도처럼 만들겠다'는 신념을 비추어 천연가스 버스 교체사업 및 도로 물청소 등의 환경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2년 후 서울시 미세먼지 농도가 23%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서울시장 재임중 중국 사회과학원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주요도시 경쟁력 순위에서 2006년 27위였던 서울시가 2010년 9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06년 최하위권인 15위에 불과했던 성적이 ’09년과 ’11년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인사평가로 인한 하위공무원 3% 솎아내기 등의 오세훈 시장의 인사시스템은 ISO국제공인인증을 받기도 하였다. # 참고로 박원순 시장 재임기간인 2016년 기준 13위로 여전히 하락 중이다.
행정서비스의 신속성과 함께 투명성을 추구하여 전자정부 사업의 발전을 도모하였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뒤이어 4번연속 세계 100대도시 전자정부 순위에서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2010년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 (WeGO)설립을 주도하여 51개 도시를 회원국으로 두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협의체 초대 의장을 맡았다.
또한 2008년, 2009년, 2010년 3년 연속으로 UN공공행정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에는 장기임대전세주택 Shift 등의 업적을 인정받아 UN-Habitat에서 시상하는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디자인서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세빛둥둥섬, DDP 등을 건설하였고, 고척 스카이돔, 다산콜센터,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등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디자인 서울 정책은 유네스코(UNESCO) 에서 8번째로 서울의 디자인 창의도시 선정에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2010년 서울시장에 재선되었으나, 2011년 무상급식 찬반투표와 관련하여 임기 도중 자진사퇴하였다. 셀프 캐삭빵 한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2.4 서울시장 사퇴 이후
퇴임 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에서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하였다. 그후 로펌의 고문변호사와 겸하여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로 임용되어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였다.#
201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소속으로 페루 리마, 르완다 키갈리에 중장기자문단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2015년 새누리당의 재보궐 선거에 유세지원을 나서며 정계복귀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때 오세훈은 서울 관악을 지역의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는데, 1988년 이후로 처음 관악을지역 새누리당(구 한나라당)후보가 당선되었다 이게 오세훈 전 시장의 정계복귀 신호탄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2015년 초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임 자살드립 이후 공백이였던 국무총리 자리에 오세훈 전 시장이 후보로 올랐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큰일하실 분에게는 이 자리가 맞지 않을 것' 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청와대의 관계자가 했다고 한다 카더라 그후 오세훈 전 시장은 '국무총리 후보에 오른 것 만해도 영광' 이라며 언급한 바가 있다.
그 이후 2016년 1월까지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연구와 강의를 하였고, 재임 기간동안 '미래사이테크포럼'의 대표를 맡아 각종 미래첨단산업 연구와 세미나를 개최하여 활동하였다. 문과 끝판왕의 이과영역 침범
2015년 5월과 6월에 시행된 여론조사에는 차기 대권주자 7위와 5위권에 들기도 하였다. 2015년 9월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6%로 5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20대층에서는 김무성을 제치고 새누리당 계열 후보 중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일단 본인은 2016년 총선에 출마할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서울 종로구 선거구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하지만 김무성의 요청이 있어서 바뀔 수 있다. 이른바 '험지'에 출마하라는 요청에 응했기때문인데, 주로 언급되던 지역은 이 사람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구로 을. 2015년 말에는 야당성향이 매우 강한 광주지역 공영방송(KBC)에서 시상하는 '목만자치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5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와 낙선
2016년 1월 17일, 종로구에 출마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해당 기사 참조 그러나 지역기반은... 사실 종로구가 노무현, 이명박 등 대선후보와 연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선과 관련이 있다는 관점도 있다. 정치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그 자체로 서울의 핵심이기 때문에 인구규모에 비해 꽤나 중요시되는 선거구이다. 2016년 2월 중순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등록된 여론조사에서는 대부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 당내후보 지지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박진 예비후보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도 근소하게 앞섰다.), 종로구의 현역의원인 정세균 의원과 가상대결에서도 앞서고 있는 조사가 다수이다.
2016년 3월 15일, 새누리당은 오세훈을 20대 총선 종로의 후보로 공천하였다. 공천 경쟁자는 박진 전 종로구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서울시정 경험 풍부' 그리고 '지역기반 탄탄'으로 대립하였었으나, 결국 공천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승리하였다.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박진 전 의원이 찾아와 축하하였고, 이후 오세훈 유세현장에도 합류하였다.
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4/14597635040db8782e85d24dc9b2eaf23331d5464bmn377583w800h450f74997__Ym201604.jpg?width=600
플래카드에서 정세균에게 디스당하였다. 참고로 이 사진의 장소는 혜화동로터리.
그후 3월 24일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는 45.8%, 더불어민주당 정세균(5선) 28.5%로 조사되었다. 다만 열흘이 지난 4월 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약 41%로 약 39%인 정세균 후보와 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치열한 접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순위는 처음으로 김무성 대표를 앞지른, 여당 내 1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후 4월 7일 발표된[8] KBS 여론조사에서는 정세균 후보와의 격차가 채 1%도 안되는 초박빙의 접전으로 나타났다. 불과 2주일 전, 같은 조사기관에서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17% 이상 여유있게 앞섰던 것을 생각하면, 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진 것. 이제 승패 여부는 그야말로 선거 당일이 되어야 알 수 있는 상황이다.
4월 13일 출구조사 결과 42.4%로 51%인 정세균 후보에 밀리고 있다. 결국 개표결과 42.4%에도 못 미치는 39.7%를 획득하면서 낙선했다.[9] 험지출마론을 거부한 3명(오세훈, 김문수, 김무성) 가운데서 서울 종로의 오세훈과 대구 수성갑의 김문수가 낙선하고, 부산 영도에서 당선된 김무성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면서 정말로 험지를 선택한 것이 맞다는 식의 농담이 돌기도 했다. 3명 모두 대선행보에는 빨강불이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적 반응. 대구 수성갑에서 25%p차이로 패배한 김문수는 정계 은퇴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오세훈 전 시장과 김무성 대표는 대선주자지지율이 선거 직후 무려 6~7%나 급전직하했다.
결국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개인적 정치행보를 위해[10][11] 시장직을 중도사퇴한 이후 재기를 노리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후 비박 김무성 대표의 대안으로서 거론되던 친박계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서울 종로에서 정세균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사실상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참고로, 해당 항목에 있는 서울시장직 중도사퇴가 총선 낙선의 주요원인중 하나라는 것은 낙선된 이후 본인이 직접 언급한 말이다. 즉, 본인조차도 시장 일을 하다 말고 도박으로 사퇴해버리는 이 맛가버린 초유의 사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같은 당 후보로 출마한 홍사덕보다도 표를 더 못받았다. 새누리당이 종로구에서 득표할 수 있는 기본표도 못 받은 셈.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자 상당수가 정권심판론에 맞물려 이탈하기도 했고, 정세균 후보의 노련한 밑바닥 선거전략이 통한 점도 있으며, 그냥 오세훈 후보를 안 좋아해서(...) 정세균 후보에게 투표한 영향도 컸다. 본인이 여론조사를 믿고 낙관했는지 자기 선거구 유세는 안하고 다른 선거구 가서 지원유세 하는 바람에 미운 털이 박혀서 밀착형 유세를 하던 정세균에게 민심이 기울었다. 그리고 당내 경선 잡음의 영향인지 박진 전 의원의 조직이 오세훈 후보를 제대로 지원 안했다는 말도 돌고 있다.
한편 낙선 이후에도 새누리당 내의 대권주자 인물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오세훈의 대권후보 지지도가 김무성보다 높은 여권내 1위란 거다.[12]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제안에 거절하였다.
2016년 8월 9일에 진행되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 단일 후보 주호영 의원을 공개 지지했었는데 친박계 이정현이 주호영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박’ 김무성·오세훈 대권가도 타격
전당대회 직전에 이정현 대표한테 이런 소리를 들은 것은 덤. 이정현, 오세훈의 비박계 지지에 발끈…"매우 유감"
2.6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이후
2016년 9월 21일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하여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대선출마선언과 함께 몇가지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먼저 서울시장 재직시절서울시 채무 규모가 부각된 것에 대해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투자적 성격의 채무가 많아 뉴타운 사업이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회수될 채무였다고 반박했다. 또한 세빛섬의 별명이 세빚둥둥섬이라는 점에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공기업인 SH공사가 일부 투자를 했을 뿐 서울시 예산은 한푼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한 비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재임시절 계획한 뉴타운 사업들이 모두 원안 추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사업계획이 무리가 없다는 주장에는 논란이 있고, 세빛섬 문제의 핵심은 서울시 예산의 직접투자 보다는 공공재인 공유수면상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이 부족하고 여러 사업조건이 부적정한 상태에서 사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13]
3 논란과 비판
3.1 뉴타운 도시정비사업
2013년 감사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도한 뉴타운 등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양호한 주거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지구 지정으로 오히려 서민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뉴타운 사업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 처리 문제와 세입자에 대한 미흡한 이주대책 문제까지 남긴 것으로 평가하였다.[14]
3.2 토목사업 위주의 '디자인 서울'과 평가
'디자인서울'이라는 모토로 여러 사업을 추진했으며, 이에 따른 논란과 비판도 상당하다. 오세훈 전 시장 재임 당시 이뤄진 사업중 논란이 큰 사업들은 다음과 같다.
1. 제2롯데월드의 건축 심의 및 허가 관련 책임
2. 동대문디자인플라자
3. 세빛섬
4. 고척 스카이돔
5. 뉴타운
6. 경인 아라뱃길을 잇는 서해뱃길
7. 세운 초록띠 공원
대체적으로 박원순 대에 들어서면서 업적이 재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는 주장과 착시효과일 뿐이라는 주장이 대립한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지하철 여성시대 광고 지지 이후부터는 젊은층들의 불만이 쏟아지면서 특히 서울시 고가도로 문제와 오세훈 시장부터 했던 일들을 자신으로 만들었다는 내용 등 상당히 토목관련하여 오세훈 시장은 재평가를, 박원순 시장은 비난을 얻고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경우 전임 오세훈시장때는 현재의 고가 옆에 새로운 고가를 신설 후에 원래 고가를 철거하기로 했었다.
제2롯데월드의 경우 건설 도중 불거진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건설사인 롯데측에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있고, 사업을 허가한 오세훈 전 시장의 책임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사용허가를 내린 사람은 박원순 시장이며, 이와 관련해 박원순의 사돈이 롯데호텔 임원이라는 점에 몇몇 사람들이 커넥션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DDP 같은 경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나 건설목적이 불분명했다는 비판이 있다.
(반론 : 오세훈 전 시장은 2007년 밀라노,파리,뉴욕 등 방문에서 파리의류조합협회장 등 패션계 인사들을 만나 패션산업 부흥을 추진하엿으며, 서울 패션위크를 세계 5대 패션 박람회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하였다. 전통적으로 동대문은 서울 의류산업의 중심지였고, 또한 서울 동북부권에는 이렇다할 컨벤션센터나 지역기반산업이 전무하다는 점도 DDP 건립 바탕으로 작용하였다. )
최초 사업계획비는 적게 잡는 것이 당연하다치더라도 800억을 넘어서 5천억을 투입할 때까지 건설목적이 불분명했다고 비판받는다. 반면에 1년 방문객이 800만을 돌파하였으니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뉴욕타임즈에서 뽑은 2015년 꼭 가봐야할 명소 52곳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신제품 홍보 전시회인 '샤넬크루즈 2016' 행사가 DDP에서 대규모로 성황리에 열리는 등[15] '패션산업'을 주력으로 삼고있는 동대문과 중구의 상권을 활성화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BMW i3 신차 프로모션,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 롤스로이스 아이콘 투어 등의 해외 명품 자동차브랜드의 런칭장소로도 환영받고 있으며, 간송현대미술전 등의 수준높은 전시회도 제공하여 '강북의 코엑스'라는 별칭까지 얻고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15년 운영비 약 321억을 자체 수익으로 조달하였다고 보고되었다. 다만 이러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박원순 시장 재임 이후 사업구조 및 용도 조정을 위한 지속적인 행정 조치가 있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DDP를 건축하기 위해 오랜역사를 가진 동대문운동장을 없애버린데다, 건설장소에서 발견된 한양도성 오관수문, 하도감 유적 같은 역사유적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는 등 지역의 역사성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순시장이 '전시행정의 대표사례'라고 지적했던 세빛둥둥섬은 2015년 9월말 기준 누적관람객이 190만명을 돌파했고 별다를 것 없이 밋밋한 강변풍경에 포인트는 확실히 주고 있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공법상 와이어에만 의지하고 있는 인공섬[16]이기 때문에 안전성의 대한 의문이 있으며 특정 기업 특혜의혹이 있는데다가, 2016년 현재까지 뚜렷한 용도를 확정짓지 못한채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채로 시설 개축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2013년 대한변협에서 이에 대해 배임 혐의로 오세훈 전 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나,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업의 소유권은 서울시에 귀속될 뿐만 아니라, 일시적 부채가 발생하였어도 장기적으로 회수가능한 이익이 발생하고 있다' 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하였다.
참고로 이 사업에 필요했던 사업비와 운영비인 1,390억원의 혈세가 들어갔다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업은 명백히 효성에서 시행하는 민간투자방식 사업이며 BTO(Building Transfer Operating) 즉, 20년간 대주주인 (주)효성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10년간은 유료로 운영한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 형식으로 넘기는 공법이다. 굳이 서울시민의 혈세가 들어갔다면, 지분구조상 서울시 산하기관인 SH공사에서 29.9%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서울시민의 혈세가 공중분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 고척동 야구장을 완전돔으로 이미 설계 변경하고 예산을 반영했기 때문에 고척 스카이돔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오세훈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우선 아마야구의 성지인 동대문 야구장을 없애버린데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현재 고척돔구장을 지은 위치에 야외 아마추어 야구장을 460억 예산으로 짓기로 약속했었는데, 2009년 3월 WBC에서 한국대표팀의 선전 이후에 야구계에 대한 대중의 인기를 의식하고 이것을 돔구장으로 변경하기로 즉흥적인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돔을 추가하는 데 400억만 추가 지출하면 된다는 현실적이지 못한 계획을 내세우고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척돔을 짓는데 400억 원이 아닌 1,948억이 들었으며, 그것도 수용 인원이 16,944석 밖에 되지 않아 수익구조 창출에 어려움을 갖는 반쪽짜리 돔구장이 되어버렸다. 즉흥적인 계획 변경으로 인해 2천 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지출하게 되었으며, 결과물 또한 야구계의 숙원인 3만 명 이상 수용가능한 돔구장에 크게 미달하게 되었다. 박동희 기사
고척돔구장의 건설 계획을 수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완전돔구장 계획으로 밀고나간 것에 박원순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척돔 기공식이 2009년 4월이었고 박원순 시장의 취임일은 2011년 10월이다. 무려 이미 2년 6개월 동안 건설된 돔구장의 설계를 바꾸는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충분한 사전계획없이 돔구장 계획을 승인한 오세훈 전 시장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목동야구장의 사용으로 가까이 맞닿아 있는 목동아파트 5단지 주민들이 소음피해와 그로 인한 재산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고척 돔구장으로 이전을 해야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연고 3구단 중 가장 만만한 넥센 히어로즈를 반강제나 다름없이 고척돔에 입주시켰다면서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이게 다 박원순 때문이다"고 우기는 몇몇 정치병 걸린 부류도 있다.
경인 아라뱃길을 잇는 서해뱃길도 비판을 받는다. 오세훈 전 시장은 인천바다에서 김포까지 있는 아라뱃길을 서울로 이어 여의도에 서울항을 만들겠다는 서해뱃길 사업을 서울시 디자인 정책의 하나로서 정력적으로 추진하였고, 사업 추진 이유로서 중국으로 가는 화물 수요를 처리하고 중국 부자들이 이용하는 크루즈 여객선이 서울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관광 수익원을 발굴하겠다는게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여러모로 무리한 점이 많았는데, 우선 아라뱃길을 지나갈 수 있는 배의 무게의 한계는 5천 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이용하는 크루즈 관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7만 톤 이상의 크루즈선은 아라뱃길과 서해뱃길을 지나갈 수 없었다. 화물 수송도 인천항에서 트럭에 실어 보내는 게 훨씬 운임이 싸다. 이 점은 감사원에서도 지적된 문제점이다. 게다가 최초 예산 책정이 1,400억 원이 넘었으며 양화대교를 선박이 통과할 수 있게 4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국 수익성 부족이라는 판단을 한 서울시의회가 68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삭감하였고, 서해뱃길 사업은 박원순 시정부터 전면 백지화되었다.
세운 초록띠 공원도 비판 받는다. 당초에는 세운상가를 헐고 재건축해 복합 문화상업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종묘 앞의 경관을 해친다는 문화재청의 권고 때문에 사업 진행이 늦어졌고, 결정적으로 2008년 시작된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해 자금 유입이 막혀버려서 사업 진행 자체가 불투명해져버렸다. 결국 세운상가 일부를 헐고 녹지공원을 조성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애초에 세운상가에 대한 보상비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민간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었는데, 서브프라임 사태를 위시한 세계구급 불황이 닥쳐올 것이라는 걸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다. 결국 녹지공원을 만들기 위해 무려 1,300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게 된 셈이 되었다. SBS 기사 넓은 공간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하며 호평받기도 하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건설하는 데 약 5천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는 것에 비교하면 감이 올 것이다.(...)
뉴타운은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 미관에 긍정적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있으나 금융위기와 부동산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사업 상당수가 해당 지역 주민 갈등만 일으키고 취소된 경우가 많았으며, 원주민들의 재산을 일괄적으로 수용한후 시세에 못미치는 감정평가 결과를 토대로 보상을 진행해 결국 살던곳을 떠날수밖에 없어 본래 목적이었던 주거환경개선이 원주민들보다 일부 부유층에만 혜택이 돌아갔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무리한 공공토건 사업을 통해 서울시의 부채비율을 증가시켜 서울시 재정의 부담을 안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공공사업과 부채 / 채무에 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 주장이다. 이는 마곡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하여 발생된 부채가 대다수이며, 이는 후에 마곡지구 택지분양으로 인한 수익금으로 회수하였다. 또한 당시 서울시 부채의 60%를 지고있었던 SH공사의 경우 공사 신용도가 AAA로 SK텔레콤과 삼성전자와 같은 신용등급이여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었으며, 박원순 시장의 오른팔이였던 김형식 서울시의원 살인교사로 현재는 감옥에 계신다 은 서울시 시정질문에서 어린이 도서관 등의 복지사업을 토목사업이라며 예산에서 빼버린 박원순 시장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서울시 재정보고 분석을 잘못 이해하고 계신것 같아요. 저희는 서울시 부채가 많아서 위기라고 주장한적은 없습니다.
임기중 강남역 등지에서 역대급 침수가 임기중 해마다 일어났는데 '파도 치는' 강남역?...침수 피해 속출 그 원인으로 특혜로 건축허가를 내준 삼성전자 사옥이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기되었다. 서울환경연합, “강남역 침수, 서초구가 삼성전자 특혜줬기 때문” 건축 허가와 설계에서 특혜를 준 주체는 서초구이고 서울시는 2차 책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쨋든 시장 임기중 사옥 설계부터 완공까지가 마무리되었고 서울시측에서도 해마다 이어지는 홍수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데다 정확히 그 시점에 무상급식과 주민투표 이슈에 몰두하고 있었다 임기중 추진하던 한강 르네상스를 한강이 아닌 오히려 강남 한복판에서 현실화했다는 의미로 오세이돈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서울시 가장 번화가에 이정도 홍수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대단위 토목사업을 지양하던 박원순 시장이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도 '강남역 종합 배수 대책'이다.대단위 토목공사지만 모두 지하시설이라 돈으 많이 드는데 돈쓴 티가 잘 나지않는다는 것은 함정
3.3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시장직 사퇴
여당과 여권지지층에서도 서울시장직을 걸고 정치적 모험을 하여 결국 시장직에서 사퇴한 것을 비판받는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자신의 시장직을 건다는 것을 한나라당 내에서도[17] 반대했었지만 독단적으로 선언했다. 주민투표가 패배로 결정되고 나서 당에서 "적어도 정치력을 추스르고 새로운 후보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다음해 상반기 보궐 선거시기로 미룰 수 있게 45일 정도만 더 시장직을 유지하고나서 사퇴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오세훈은 이를 단칼에 거절하고 곧장 사퇴해버렸다.
준비가 부족했던 한나라당은 두 달 후 있던 10월 재보선에서 십 년 넘게 유지하고 있던 대한민국 제2의 상징적 권력을 가진 서울특별시장 자리는 박원순과 야권에게 넘어간다. 안철수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덤.
이 때문에 같은 여당 내에서도 비토정서가 상당했으며 오세훈의 정치적 컴백에서 시간이 걸리게 된 원죄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오세훈의 정치생명이 정말 끝장날 뻔했으니까.. 오세훈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컴백하기 위해 종로구에 출마했다. 당시 선거 이전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10%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이 예상되었지만, 막상 선거날 출구조사에서는 반대로 10%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낙선되었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을) | 한나라당 | 64,516 (59.39%) | 당선 (1위) |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 한나라당 | 2,409,760 (61.05%) | 당선 (1위)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 한나라당 | 2,086,127 (47.43%) | 당선 (1위) | 민선 최초 서울시장 연임 2011년 8월 26일 사퇴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책임)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종로구) | 새누리당 | 33,490 (39.7%) | 낙선 (2위) |
5 저서
-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싶다 : 1995년 작
-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 2005년 작. 오세훈, 강원택, 김호기, 이영조 공저.
- 시프트 - SHIFT,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라 : 2009년 작. 서울특별시장을 할 때 처음으로 펴낸 책.
- 오후의 서울 산책 - 오세훈의 마지막 서울 연가! : 2011년 작.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이후 서울특별시장을 사직하고 펴낸 책.
파일:2015-05-04-08-45-21-side-png.png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 페루 리마 일기 / 오세훈,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 르완다 키갈리 일기 : 2015년 작. 페루와 르완다 봉사활동을 갔다 오고 나서 쓴 책.- ↑ 여담으로, 이 문서에서 다루고 있는 오세훈과 한자까지 똑같다!
- ↑ 장녀는 2015년 비밀리에 결혼했다.
- ↑ 네이버 인물정보와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서울 성수동 출생으로 나와 있고, 오세훈 본인도 스스로 서울 달동네 출신으로 소개하는 만큼 일단은 서울 출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전라남도 담양군 출생이라는 모 언론사의 기사에 대해 오세훈 측은 낭설이라며 부인했다. 기사 해주 오씨 집성촌인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吳山里,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오(吳)씨들의 집성촌이 있는 리다.) 인근에서 10대째 살아왔다고 하며, 조부모의 선산은 용인 인근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있었다. 기사 자세한 것은 확인바람. 더불어 출생지 정보에 대한 본 기술에 대한 이의는 신빙성 있는 근거를 함께 제시 바람.
- ↑ 이전 판에는 "고려대 학군단에 입대하여 장교로 임관하였으며 대위(진)으로 전역했다"고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세훈은 학군단 출신이 아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본래 군법무관에 지원했으나, 학업성적 미달로 선발되지 못하여 일반 장교로 복무한 것이다. 또, '대위(진)'이란 현 계급이 '중위'이고 다음 해에 진급예정자 명단에 포함된, 즉 '대위'가 되는 예정자를 지칭하는 것인데, 전역 전날이라도 진급 후 전역하였으면 대위 전역이고, 진급 못한 상태에서 전역하면 중위 전역이다. 따라서 '대위(진)'으로 전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선관위에 제출한 병역사항 신고서에 따르면 88년 5월 28일 입영으로 학군단 입영일자와 다르며, 전역일자는 91년 2월 28일로 학군단 2년 4개월 의무복무를 한참 지난것으로 사유는 '원에 의한 전역', 계급은 중위로 찍혀있다. - 원에 의한 전역)
- ↑ 로가디스의 경우 차인표, 정우성, 장동건 등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이후 모델이였고, 청호나이스 정수기의 2014년 광고모델은 김수현이다.
- ↑ 당초 집권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제안을 받아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한나라당으로 출마하였다.
- ↑ 선거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후원회 폐지 개혁.
- ↑ 4월 3~5일을 대상으로 집계된 것이며, 선거법상 4월 8일까지는 4월 7일 이전에 집계된 여론조사에 한하여 공표가 가능하다.
- ↑ 여담으로 이날 EXO 팬들 사이에서는 20대 총선 후보 네 명(김종인(더민주), 김종대(정의당), 김민석(민주당), 오세훈)이 멤버들과 이름이 같아서 국회 엑소 또는 '세훈이를 국회로' 등등이 성행했다(...).
비례 SM타운당 당선률 50% 달성. 성 빼고 이름만 따지면 67% - ↑ 당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 목적, 이미지 관리를 위한 사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이 건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임기 2기 무렵 야당소속이 상당수 점유했던 서울시의회와 구청장 간의 마찰과 갈등과 연관이 있었다. 당시 특히 서울시의회 시의원으로부터 여러번 청문회 및 질의에 소환되어 여러차례 탈탈 털렸던 적이 많았는데,
너무 털려서 심지어는 직무유기성으로 피한 사례도 빈번했다.오세훈 자신은 이러한 처신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것) 오세훈은 여러차례 당과 합의도 없이 시장직을 걸고 캐삭빵을 했음에도 한나라당에선 이를 더이상 탓하지 않고 사퇴 일정이라도 당과 합의한대로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오세훈이 당과의 합의를 거부하고 중도사퇴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미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선거준비... 그리고 그 결과는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입성과 안철수 원장의 정계 입문. 사실상 2010년대 정치판의 구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 ↑ 이 때문에 지지자들 중 실망한 사람도 많았는데, 무상급식이 과연 시민들이 뽑아준 시장직을 내다버릴 정도로 중대사안이냐 하는 것. 임기가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던 때라 책임감이나 계획성이 없어 보인다는 말도 많았다.
- ↑ 반기문 정도를 제외한 주요 대선후보를 모두 넣은 여론 조사를 하면, 문재인과 안철수가 1, 2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오세훈이 비교적 큰 차이로 3위, 4위에 박원순, 5위를 김무성과 유승민이 오락가락하는 순으로 나온다.
- ↑ 2012년 세빛둥둥섬 감사결과, 민간사업자가 30년 후 서울시로 세빛섬을 기부채납하는 소유권 이전 방식은 재산가치가 없는 노후 시설 이전이 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서울시 재정부담을 초래하는 조건이라고 지적하였다. 일반적으로 공유수면에는 민간영리시설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에 민간투자로 사업을 유치하는 경우 민간이 사업권을 갖고 공공기관이 소유권을 양도받는 형태가 많다. 그런데 세빛섬의 경우에는 그 조건이 서울시에 불리하게 설정되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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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수행원들과 동대문 평화시장앞을 활보하는 모습도 연출되었다.
- ↑ 서울시에 등록은 '부선' 즉 떠있는 배로 되어 있다.
- ↑ 당시 유승민을 의원을 비롯한 수뇌부 상당수가 당과의 상의 없이 주요지자체장 자리를 걸고 도박을 하는데 분명히 반대하며 힐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