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문서 :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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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를 서술하는 항목. 안철수 문서의 방대한 분량과 이로 인한 가독성 저해로 분리문서가 되었다.
2 정계입문 이전
- 뛰어난 실적과 도덕성 등으로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함께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며 닮고 싶은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알려졌기에 정치권에서 그의 이미지를 사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장관직 제의가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그때마다 끊임없이 고사한다고 한다. 개인의 가치관과 판단의 문제이겠지만, 정치란 것은 개인의 실력과 청렴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모양. "정치가 아니어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들은 많다"
- 벤처기업을 비롯한 기술 혁신 기업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특정 정책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미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등, 실무정치에 참가했고 이 후 꾸준히 정치행보를 걷을지 모른다는 예상이 나와, 단박에 화제의 인물이 된다. 안랩의 주식이 정치테마주로 분류 된 시점도 이 쯤이라고 한다.
-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 김태호 당시 전 경남지사 등과 함께 국무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적이 있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대중들에 판단에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혔던 바 있었다. #
2.1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 2011년 9월 1일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뜨면서 정치권, 언론, 대중 모두에게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기사가 뜨기 전부터 선거테마주로 분류되어 있던 안철수연구소의 주식인 포텐이 터져 주내내 상한가를 기록했고, 안철수 본인에게 있는 주식 가치도 1000억 이상 올랐다. 9월 4일 34650원, 2012년 1월 3일 167,000원이며 약 5배 뛰었다.
- 안철수 출마설에 여야 모두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자기들 쪽으로 오기만한다면 굉장한 아군이 될 것이기 때문. 그래서 특정 정당의 기관지처럼 되버린 작금의 언론들은 조심스럽지만 호의적으로 접근했으나 "한나라당도 바뀌어야 하지만 민주당도 '역사의 물결'의 대표가 아니다."라는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고 많은 사람의 어려움을 풀어주면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발언 이후 ' 우리 편 아니구나 그럼 까야지 ' 라는 식으로 적대적으로 변한 언론도 있다.
-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이 안철수 씨와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했으나 안철수 는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9월 4일 안철수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본인은 현 집권 세력이 역사를 거스르고 있으며,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라고 하며, 이를 위하여 자신이 출마할 경우 야권 단일화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마를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로는
- 전체적인 인터뷰의 내용 상당수가 윤여준 전 의원의 인터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출마 의지가 상당히 커서 출마 하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나흘 만에 다시 못하겠다고 했다더라.. 이유는 아버지가 결사 반대를 하신다고. 어쩔 수 없이 사퇴를 해야 하는데 그냥 하면 장난하냐는 소리와 시민의 비난이 오니 박변호사에게 양보하고 빠지는 모양새와 명분을 만들라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기로 발표하면서, 사실상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이를 단일화라 부르는 언론이 있는데, 일반적인 단일화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 둘 이상이 경선 등의 방법으로 나머지 후보가 모두 사퇴하고 어느 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하기로 한 경우인데, 안철수 원장은 애초에 출마를 하지도 않았다가(고민은 했다지만) 나중에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일 뿐이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단일화한 건 아니다.
- 자신이 타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지지율이 높음에도 출마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양보한 안철수 씨의 행동에 대해 호평하는 사람이 많다.
- 그러나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9월 6일 오후 뉴시스가 긴급하게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누르는(42.4% vs 40.5%) 대 이변이 일어났다. 비록 오차범위 내에서의 근소한 우세지만 그간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 만한 야권 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로 봐야하며 차기 총선과 대선에 좋든 싫든 영향을 줄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안풍(安風)
- 이후엔 박원순 후보의 선거에 크게 지원을 하진 않았고 선거 나흘 전인 22일까진 학교 일에 전념한다며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기사가 났지만, 하루 뒤인 23일엔 박원순 후보의 선거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이미 21일에 단독 회동을 하고 30여분간 선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그리고 23일 저녁, 안 원장은 박 후보 측에 전화를 하여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지 내일까지 생각해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박 후보측의 측근이 밝혔다. 그야말로 초박빙이던 상황이기 때문에 안철수 원장의 구원등판이 서울시장 선거의 판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 그리고 24일 오후 1시 박원순 선거사무소를 방문하고 선거참여를 독려하는 편지를 전달하면서 또 한번 선거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결국 결과는 박원순 후보의 압승. 안 원장의 영향력이 다시한번 입증되었다는 평가다.
2.2 정치보복 논란
- 시장 선거 이후인 2011년 10월 25일,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유지하고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직을 사임했다. 사임의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가 나오고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으로 인해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 사실 서울대는 경기도와 함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관련 사업을 추진중이었는데 안교수의 정치행보에 경기도 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교수직을 내놓고 정치하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안교수가 원장직을 사임하자 경기도 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계속되는 문제의 발언을 내놓아 더더욱 문제가 커지고 있다.
- 새누리당 소속인 경기도 지사와 경기도 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대한 예산지원삭감 압박을 가했고, 안교수의 원장직 사퇴후 내놓은 논평에서 "상식적으로 당연한 사임이다"
상식이 비상식을 이겼습니다라고 한게 문제가 되었다. 거기에 안교수의 정치행보를 놓고 서울대 총장이 안교수를 호출해 지적개갈굼을 했다는 정황 등도 흘러나와서 안교수에 대해 무자비한 정치보복이 가해지고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되고 있다. - 안교수도 선거가 끝난뒤 27일에 "자신이 가진 생각과 다른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한뒤 서울대 총장과 면담하고 다음날 원장직을 내놓아서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성추행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쫓겨나고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18대 국회의원 강용석은 카이스트에 안철수 교수와 그의 아내에 대한 카이스트 임용과정과 세부내용이 포함된 자료요청을 7차례나 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시작된 저격수 인생그러나 카이스트에서는 목적이 맞지 않는다고 거절. 이외에도 안철수 교수가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준 것에 대해 '겨우1.5%나눠주고 생색낸다.', '출근도 안하는 주제에 배당금만 챙긴다.', '주식을 팔아 미국에 주택구입을 했다.'라는 식의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공격의 선봉장은 강용석.
- 안철수 원장에 대한 압박뿐만 아니라 안철수 연구소에 가해지는 압박도 상당하다. 정부측에서도 정부산하기관과 금융기관들에 최근5년간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사용기간,구입경로, 계약방식을 조사하고 결과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프로그램공급을 담당하던 중간판매상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제품구매를 꺼리게 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안 연구소측에서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 그밖에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평가관리원(산기평)으로부터 정부지원과제 연구성과에 대한 특별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안연구소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2010년부터 3년간 지식경제부의 지원을 받는 '모바일 악성코드 탐지 및 방어기술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통상 이런 지원사업은 연 1회 '연차 평가'를 하는데,1년차 사업에 대한 지난 9월 연차평가에서 합격점인 '계속 수행'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과 2달만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재평가를 요구한 것도 강용석이 주도했고 평가위원 7명중 강용석 의원 추천인사 2명이 포함됐다고 알려져 있고 안 연구소에 대한 현장실사때도 강용석의 보좌관들이 동행했다. 그러면서 예산도 깎아주는건 보너스.
- 2011년 11월 10일 정영모에게 공금횡령으로 고발당했다.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서울시장을 포함한 주요 이사진들에 대한 고발인데 안철수 교수 역시 이사로 참여중이므로 함께 고발당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 소식도 없다
- 또한 2012년 자유청년연합 대표 장기정에게 국보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안철수연구소(안랩)가 2000년 4월 정부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북한에 백신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것. 해명
2.3 재산 사회환원
- 2011년 11월 14일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 연구소 보유주식 절반 (약 1500억가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고 안철수 연구소 임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통해서 밝혔다. 전문 확인은 여기서.
- 이 재산환원을 놓고 설왕설래가 일고 있는데 안철수 본인이 부인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환원하여 설립된 청계재단과 비교될수 밖에 없어보인다. 참고로 청계재단은 이대통령이 자신의 사재 395억원을 출연하여 설립된 재단으로 안철수 교수가 환원하겠다는 재산은 청계재단 출연금의 약 5배가 더 많은 수치이다. 물론 안철수 교수의 경우는 지금도 왕성한 IT회사의 대주주이니 당연히 더 많긴 하겠지만.
- 청계재단은 이사진 구성부터 재단에서 내놓은 장학금 규모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만큼 안철수 교수가 어떤 방법으로 환원하는가에 따라 청계재단과 더더욱 비교가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청계재단을 만들면서 자신의 사위를 이사장으로, 자신의 인맥들은 이사로, 그리고 장학금으로 내놓는 금액이 재단을 안만들었을때에 발생하는 소득세 부과액과 정확히 일치. 기부가 아니라 절세일 뿐이며 또한 이 방법은 빌딩을 여러 채 소유한 부자들이 잘 써먹는 그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절세기법이라고 한다.
- 이를 놓고 현 정권에서 가해지는 정치보복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참여를 위한 사전준비과정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리고 11월 15일 박원순 시장과 조우하기로 하여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 한편 기자들은 역시나 집에 가 깽판놓는 중.
- 이후 2011년 12월 1일 기자회견에서 출마안한다고 이것들아 포 발사. 관련 일문일답도 일관되어 있다. 당연히 기자들과 많은 이들은 대선으로 고고할거라는 얘기.
- 2015년부터는 동그라미 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2.4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 독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 관련 행보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도봉갑의 인재근 민주통합당 후보, 경기 과천ㆍ의왕 의 송호창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상태이다.
- 2012년 4월 9일 유튜브를 통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독려 동영상을 게시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안철수 교수는 투표율이 70%가 넘으면미니스커트를 입고율동과 함께 노래를 하겠노라고 공약을 걸었다.안 원장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시즌2또한 4월 9일부터 공개되는 민주통합당의 선거광고에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서울시장지지선언 동영상장면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별 다른 태클을걸지 않아 암묵적 동의를 한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70%가 안 넘어 이런 공약은 실현되지 않았다.야! 신난다~하지만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민주통합당이 예상에 못미치는 의석수를 얻으면서 안철수 대안론이 급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3 제18대 대통령 선거
- 안철수 대안론이 힘을 얻어가자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다,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지지율이 자신을 향한 지지율이 아니라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감에 막연하게 거는 기대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밝히고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서겠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겠다'고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위에 적힌 것이 전부. 그러니까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말이 전부다. "시민들의 열망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이를 온전히 정치하라는 뜻으로 착각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저를 지지하시는 분들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 제가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라고 했으니, 대선 출마에의 의지를 밝혔다고 볼수 있지만...
하기야 워낙 당한게 많으니까
파일:724979 216062 3240.jpg
파일:680311 264382 44.jpg 안철수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
파일:680312 264383 343.jpg 기자회견장 모습.
슬로건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기자회견 전문.
- 파일:/image/001/2012/09/19/PYH2012091906940001300 P2 59 20120919152320.jpg 국회도 초미의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참고로 국회는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5분 자유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선언이 돼서(...)
어쨌거나 본회의는 또 뒷전
- 기자들과의 질답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안랩 이사회 의장,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직 출마 선언 직후로 전격 사임, 대통령 취임 시 안랩 나머지 주식 모두 사회환원, 불법사찰 발본색원 등등. 그리고 초속 200km/s 돌직구까지 대파란을 일으켰다.
3.1 출마 선언 상세 사항
- 구세군 아트홀에서 "국민보고대회"라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전까지의 모호한 태도와는 달리 여러 국민들과 다양한 인사들을 만난 결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선언했으며 대선에서 낙선하더라도 정치인으로 남을것이라고 밝혀 권력의지를 확실히 드러냈다는 평이다. 다만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기성정치권이 변화와 혁신을 수행하고 국민이 그것을 인정한다면 단일화에 응하겠다는 다소 추상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3.2 주요 공약
3.3 후보직 사퇴
파일:PYH2012112309950001300 P2 59 20121124095311.jpg 후보 사퇴 기자회견
파일:B20121123204428527.jpg 기자회견 후 질문받는 안철수.
- 단일화 협상을 이어가 토론회를 2012년 11월 21일 오후 11시 개최하는 등 단일화를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단일화 방식이 계속 합의되지 않아 1987년 대선 정국이 재현되는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문, 안 양측에 단일화를 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11월 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문재인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일화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방적인 후보사퇴였다. 사실상 내부 여론조사에서 안철수가 문재인에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 존재한다. 이후 문재인 후보와 당시 '광화문대첩'이라고 불렸던 선거유세 등을 같이 하다 2012년 12월 19일
백의종군하러미국으로 출국한다.[3]
4 제19대 국회 국회의원
4.1 2013년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 귀국전부터 선거에 출마해,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걸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으며, 귀국 후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혔다. 출마한 선거구는 서울특별시 노원구병(丙).[4]
- 선거는 민주통합당은 후보를 내지 않은 채, 새누리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무소속 2명의 다자구도로 치뤄졌고 안철수 후보는 총 득표수, 42,581표(60.46%)로 당선되었다. 새누리당의 허준영 후보는 23,090표(32.78%)를 차지하는데 그쳤고, 노회찬 전 의원의 아내인 진보정의당의 김지선 후보는 4,036표(5.73%)를 차지하였다. 선거운동 초반 안 후보는 여론조사(다자구도)에서 1위를 달렸지만,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 선거이고, 허준영 후보가 의외로 선전(안 후보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여론조사도 있었다.)하여 혹시 이러다 낙선하는 것 아니냐 했지만, 막상 투표함을 까보니 다자구도임에도 60%이상의 압도적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은 안철수에게 부산 영도에 출마하라고 했으나 안철수는 노원병에 출마하고,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후보의 부인 김지선씨를 공천해 맞붙는다. 이 때문에 안철수는 야권 대권후보까지 했던사람이 왜 야권성향이 강한 노원병에 출마하느냐라는 일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노회찬에게도 바로 전 18대 대선 야권의 대선후보이자 당시 차기 대선후보 1위를 달렸던 안철수에게 리스크가 큰 결정[5]을 하라고 부추긴다 혹은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했더라도 지역구 세습이 말이 되냐는[6] 등의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안철수 당시 후보 역시 선거기간 내내 대권을 넘보는 사람이 쉬운 곳에 출마한다고 많은 비아냥을 들었다. 정치적 도의가 없다는 평도 일부 있었다.
- 그 외에도 노회찬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왜곡해 기자들에게 발표했다고 한다. 아래의 녹취록 사건과 비슷한 경우.
4.2 정치세력화 노력
-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는 새정치를 표방한 중도적 성향의 신당 창당에 공을 들였으나, 그의 기대와 달리 현역 정치 세력의 반응은 미지근하였고 스스로도 힘에 부쳤는지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제3지대에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다.
4.2.1 새정치연합
- 새정치연합 항목 참고.
4.2.2 정책네트워크 내일
4.3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와 '전격적으로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하여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공동대표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철야 회담을 하는 동안 같은 시간 측근이었던 김성식 전 의원은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민주당과의 합당은 절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말했는데 안철수 의원이 덜컥 민주당과 함께 신당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해버려 난감해졌다. 이 때문에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
과 지지율이 대부분 떠나가 버렸다는 에피소드가 최측근이었던 금태섭 변호사를 통해 공개되었다. 당시 새정치연합 쪽과 민주당 쪽의 의사결정과정이 얼마나 비밀주의에 빠져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 창당한 지 3개월도 안 되어서, 제6회 지방선거와 2014년 7.30 재보선을 당대표로서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참패(새누리당 11석 : 새정치민주연합 4석)했으며, 이후 7월 31일 대표직을 자진 사퇴하였다. 이 재보선의 패배로 인하여 안철수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동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7]
- 안철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문제(세월호 특별법 등)를 매듭짓지 못한게 가장 아쉽고, 큰 선거(제 6회 지방선거)를 앞둬 자신이 생각한 정치, 당 개혁행보를 뒤로 미룬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안철수의 '공정성장론[8]'등의 정책개발에 몰두한다.
4.3.1 6.4 지방선거
- 세월호 대참사 정국에서 치러졌던 6.4 지방선거에서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는 광주시장 자리에 안철수의 사람이었던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최측근이었다가 사실상 결별한 금태섭 전 새정련 대변인이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서 회고한 바에 따르면, 광주시장 전략공천에 대해 말이 돌긴 돌았지만 지도부에서 끝까지 별 말이 없어 후보들은 경선으로 최종 선출할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막바지에 갑작스럽게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한다고 발표해 일찍부터 준비 중이었던 강운태 후보와 이용섭 후보가 이 결정에 크게 반발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광주 민심도 극도로 악화돼 명색이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제1야당 대표들이 민주화 세력의 심장인 광주를 방문하는데 경찰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 윤장현 후보는 이런 반발 속에서도 당선은 되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안철수 공동대표가 전략공천한 윤장현 후보가 광주에서 낙선한다면 안철수 대표의 정치 생명은 치명상을 입게되므로 안철수를 버리면 안된다는 광주 민심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있다. [9] 게다가 도의원 등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는 새정연의 근거지인 호남에서 무소속 후보가 대거 당선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며 총 226명의 기초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117명, 새정련 후보가 80명(나머지는 무소속 당선)이 당선돼 사실상 참패했다. 그러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무승부가 나면서 살아남은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는 다음 달에 치러질 7.30 재보선에서 재기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4.3.2 7.30 재보선
- 7.30 재보선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정국 때문에 온 사회가 시끌시끌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정부의 잇다른 국무총리 후보 낙마와 세월호 대참사의 주범 중의 한 명인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 등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에게 불리한 이슈가 워낙 많아 새누리당 또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의 처참한 공천 실패와 전략 부재로 인해 7.30 재보선 항목에 쓰여있듯,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보궐선거에서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맛보게 된다. 총 15명의 국회의원을 뽑기로 되어 있었던 이 선거에서 '11:4'로 완패한 것이다. 이 4명 중 3명은 호남에서 당선된 후보들이었고,
랜선 효녀의 덕을 본박광온 후보를 제외하면 비호남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이 다 떨어졌다. 이 후보들 중에는 '김두관, 손학규'라는 대선 후보급 거물들도 있었는데 모두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들에게 패하는 굴욕을 맛봤고, 이 때문에 손학규 전 고문은 정계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 근데 가장 뼈아픈 패배는 정작 호남에서 일어났다. 새정련 최강세 지역인 호남의 전라남도 순천 곡성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새누리당 후보인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사실 이건 비리 전력이 있었던 친노 계열 서갑원 후보에 대한 지역 여론의 반감이 큰 탓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이 경선에서 뽑혔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리 전력 때문에 공천 취소한 것을 감안하면 지도부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정현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내기도 했던 친박계 핵심 인물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10]
-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긴 했다. 하지만 광산을 지역 투표율이 고작 20%대(..)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마음에 안 든다만 새정련 후보라니까 어쩔 수 없이 뽑아줬다'는 여론이 고스란히 드러나 당선되었어도 기뻐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정확하게는 새정연 후보라서가 아니라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라서 투표했다고 보는 게 옳을 듯. 그리고 원래 이 지역은 지금 국민회의를 창당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출마를 준비하던 곳이었다. 천정배 의원은 이듬해인 2015년 4.29 재보선에 광주 서구을 후보로 출마하려고 했다가 '경선을 거쳐 후보로 나서라'는 문재인 지도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탈당해 문재인 당시 대표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새정연 후보를 20%가 넘는 격차로 누르고 당선된 후 국민회의를 창당해 2016년 2월, 김한길 & 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당을 떠나 새로이 창당한 국민의당과 당을 합쳤다.
-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서울 동작을에서는 원래 광주 출마를 결심하고 광주로 이사까지 갔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급작스럽게 서울 동작을로 전략공천했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결정된 전략공천 때문에 10년 넘게 동작을 지역에서 살면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해왔던 허동준 새정치민주연합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극렬히 반발하였는데, 더욱이 이 두 사람은 故 김근태 열린우리당 고문을 보좌해왔던 23년 막역지우이기도 했다. 허동준 위원장은 기동민 후보가 서울 동작을 전략공천을 받아들이자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등 극도의 분노와 억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허동준 위원장이 지도부 결정에 승복해 기동민 후보를 도왔지만 기동민 후보도 정의당 노회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 단일화를 해버렸다. 결과는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49.9%의 득표율을 얻어 새정련 - 정의당 단일 후보였던 노회찬 후보(48.7%)와 노동당 김종철 후보를 꺾고 당선돼 정치적 부활을 이루게 됐다.
- 사실 재보궐선거는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아, 보수 정당이 이기기 쉬운 선거로 불린다. 게다가 이 7.30 재보궐선거는 여름 휴가 시즌에 치러졌기 때문에 청년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 선거는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편이었고, 유병언 검거 실패와 국무총리 낙마 등등 정부 여당의 잇다른 병크가 있었으며 4.29 재보선 때처럼 야권이 심하게 분열된 곳도 없었다.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는 자기들 스스로도 마지노선을 5석으로 잡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헛발질과 무능함 때문에 이 마지노선 5석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특히 새정련 후보는 무혈 입성할 수 있는 호남 지역 선거구가 4곳이나 있었고, 후보들 중에는 대권 주자급들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호남에 '친박계 핵심 인사'가 당선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김한길 & 안철수 공동대표는 결국 '사퇴'를 표명할 수 밖에 없었으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주승용 사무총장도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김한길 의원은 자신만 물러나고 안철수 의원은 대표직에 남겨두려고 했었지만 안철수 의원이 동반 사퇴를 하면서 무산됐다. 김한길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표직 사퇴를 밝혔고, 안철수 의원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문자메세지로 공동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4.4 2015년의 행보
안철수/2015년 문서로.
5 제20대 국회
5.1 2016년의 행보
안철수/2016년 문서로.
6 안철수와 문재인, 문재인과 안철수
이랬던 두 사람이
파일:Anmun.png
미묘한 사이를 거쳐
이렇게 됐다.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들
어디서 본 거 같지만, 기분 탓이다
안 의원 탈당 이후의 사진들 어색함의 끝판왕 꾼 돈 안갚아서 삐진 표정
'화성' 재인, '금성' 철수[11]
6.1 개요
넓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 사망, 좁게 보면 18대 대선으로 대한민국 야권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2명의 정치인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는 항목.
6.2 두 사람의 성격 탓?
현직 정치인이며 두 사람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영선 의원은 자신의 저서인 <누가 지도자인가>에서 안철수 의원은 꼭 필요한 말만 에둘러 표현하는 편으로, "대화 중 자신의 생각이 잘못 이해되는 듯 해도 곧바로 지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문재인 의원은 "상대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에 동의한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면 굵게 표현한 내용은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을만하다. 따라서 두사람의 이러한 기본적인 성격차로 인해 나타난 불신 등이 오늘날의 사태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물론 반박도 있다. 바로 두 사람 모두 현실 정치인이라는 것. 정치인이다보니 자신이 대표하는 지지층, 세력이 서로 융화하기 어려워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반박의견이다.
6.3 상세
2015년 12월 초, 둘 사이에서 펼쳐지는 끝모를 일종의 핑퐁게임은 2012년 대선의 불완전했던 단일화의 앙금을 해소하지 못한 탓에 나온 공산이 크다. 비록 단일화가 불완전했더라도 18대 대선 야권 단일 후보였던 당시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으면 이 정도로 심각한 분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대선에서 패배했고 그 결과로 양측의 앙금이 곪아터지다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대선이 끝난지 한참 지났음에도
- 대선 당시 친노지도부 2선 후퇴
- 문재인의 안철수 자택 방문시 문전박대 논란
문재인측과 지지자 일부는 안철수의 협량함을 비난했으나 안철수측은 자신이 자택에 없음을 사전에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반박한다. - 유세, 선거지원 논란
- 앞의 내용을 종합한 18대 대선 책임론
- 일부의 문재인 측과 지지자는 '안철수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서 대선해서 패배했다!'라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반박으로 일부의 안철수 측과 지지자는 '더 높은 지지율에도 대선후보를 양보했음에 불구하고 대선 패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7 비판 및 논란
안철수/비판 및 논란 문서로.
8 루머
팩트체크 보는 기분이다.
- 가장 유명한 간첩 발언.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습니까?"라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근데, 출처는 전혀 없다. 심지어 이 '발언'을 비판하는 극우 언론인 뉴데일리조차 간첩의 유무에 치중할 뿐, 발언의 실재 여부는 넘어간다.(...)#
구글링하면 특정 사이트만 나온다.
이에 대해선 부친인 안영모 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관해서 "박원순 시장이 빨갱이 같은 인상을 준다는 평이 세간에 나온다."라고 한 것에 대해 "그런거 아니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있느냐"라고 한 것이 와전된 것이 시작인 듯 하다. 단순히 박원순 시장을 옹호하다가 나온 말이 확대 해석된 듯.안 의원의 변론 - "내가 민주당을 먹었다"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자중해야 할 공당을 사유화한다고 여겨질 수 있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카더라. 기사# 과거 이 문서에서도 한 동안 있었을 정도.
하지만 기사라고는 뷰스앤뉴스 기사 하나 뿐이며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서 증언하는 기자도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걸 '건너 들었다' 정도 이상의 증언은 하지 못하고 있다.(...)
- 노유진의 정치까페에서는 이 말을 윤여준과 통화에서 했던 말이라고 한다.(위의 기사에서는 원로 정치인이라고 나옴) 심심할 때 마다 이 말을 언급하면서 안철수를 깐다.
-
정치를 하면서 인상이 변했다고 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수준...
9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2013 |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서울 노원 병)[13] | 무소속 | 42,581 (60.5%) | 당선 (1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0대 국회 서울 노원 병) | 국민의당 | 53,930 (52.3%) | 당선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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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박원순 변호사 주도의 시민단체 '아름다운 가게' 참여로 처음 만난뒤 지금까지 8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 ↑ '이 때문에 이후 박원순 변호사가 단일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지원유세는 불가능하다.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이라고 적어놓았는데 정당법22조에서는 대학총장과 교수에 대해서는 정치활동금지예외대상으로 정해놨다. 따라서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은 할수 있다.
- ↑ 이 때문에 안철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안철수는 스스로 문재인 후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밝혔고 문재인 후보도 이를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하였다. 사실 당시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가 낙선할거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기사참조
너도 그렇고 나도 그랬다... - ↑ 이곳은 원래 당시 진보정의당의 공동대표였던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해 당선된 지역구로,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자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 ↑ 최근 민주계열정당의 약진이 돋보인다고는 하지만, 부산은 3당합당 이후 명백한 야권의 사지이다. 특히 영도구는 단독 선거구가 된 1988년 이래 단 한 차례도 민주계통 정당들에게 의석을 내준적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상대 후보는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였다.
- ↑ 심지어 진보정의당 내에서도 이런 비판이 있었다.
- ↑ 그래도 지방선거의 경우 안 전 대표 덕분에 선방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당 내부에 많다.
- ↑ 야권에서 거론되는 3대 성장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머지 2가지는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론, 박원순의 복지성장론
- ↑ 이후 문재인 지도부 때 치뤄진 2015년 상반기 재보궐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서 반친노, 반문 정서로 인해 새정연 후보는 30% 득표에도 미달하며 참패했다.
- ↑ 다만, 이정현 의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정현 의원이 해당 지역의 지역 일꾼으로서 여론이 좋았던 건 감안해야 한다. 해당 지역에선 오히려 예상보다 적은 득표수 때문에 화제가 됐다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다고 여론이 안 좋은 서갑원 후보를 공천한 어리석음이 정당화되는 건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관심만 보였어도 분명히 이길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호남권'이었으니까.
- ↑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따서 둘을 비유하는 말
- ↑ 20~40대까지는 노무현에 대한 선호도가 높거나 같고 50대는 차이가 조금 나기 시작하고 아아... 586의 배신...60대 이상부터는 박정희의 압승 http://www.ma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33 참고 자료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이명박은 퇴임 시 김대중의 기록을 깨고 역대 최고 지지율로 퇴임했다. 심지어 넷상에서 거의 사람 취급도 안해줄 정도로 험한 말까지 오가는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도 30%의 탄탄한 지지율을 자랑한다.
- ↑ 전임자 노회찬 피선거권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