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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mg.maniadb.com/images/album/101/101840_lpa_f.jpg젊은 시절.육촌 형님처럼 미남이시다.느낌도 조금 비슷한듯
1 기본 정보
이름 윤형주(尹炯柱)
출생 1947년 11월 19일
본관 파평 윤씨
가족 슬하 1남 2녀, 6촌형 윤동주
학력 연세대학교 치의예과 중퇴
2 소개
1960~1970년대에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과 같이 활약한 세시봉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포크 가수이자 작곡가, 작사가. 시인 윤동주의 6촌 동생이다.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의 DJ를 시작으로 방송 활동도 많이 했는데, KBS 2TV의 연예가중계 MC, SBS "콘서트 음악세상"의 진행자,[1] K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음악앨범의 DJ[2]로 활약한적도 있다.
잘생긴 얼굴, 좋은 학벌, 집안, 뛰어난 작곡 능력, 부드럽고 가녀린 미성 덕에 쎄시봉 멤버 4인 중에서 김세환과 함께 여성팬이 가장 많은 가수였다.
3 CM송
CM송 분야에서 윤형주는 김도향처럼 매우 유명하다. 윤형주가 만든 CM송은 무려 1,400여 개나 되는데, 유명한 상품은 다음과 같다.
최근 롯데껌 CM 송이 반주 리메이크로 다시 나오는중 주로 음악 FM(경북 포항기준 97.9Mhz)의 광고 타임때 나온다 특히 오전때.
부산교통공사 부산 도시철도 출발 방송에서 나오는 CM송도 윤형주의 작품. 자세한 것은 해당항목 참조.
그 외에도 2008년부터 법무부 로고송 '지킬수록 기분좋은 기본'을 작곡한 바 있다. 검찰청 전화 시나 퇴근할 때, 심지어 교도소 내에도 로고송이 나오며, 한때 교정본부 웹사이트에도 해당 로고송이 흘러나왔다.
4 이야기거리
- 경기고등학교[4]를 졸업하고
육촌형님의 모교연세대학교 의예과에 진학하는 등 당시로서는 수재였다. 의대에 진학한 이유는 부친인 故 윤영춘 교수가 윤형주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후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예과 과정만 수료하고 중퇴하였으며, 이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경희대학교 의학과(본과) 3학년으로 편입했지만 결국 경희대학교에서도 중퇴하게 된다. 그래서 윤형주는 학력상으로 엄밀히 말하면 고졸이지만, 대학교 입학을 중요시 여기는 대한민국의 여건상 졸업하지 않았더라도 연세대학교, 경희대학교 두 학교로부터 모두 동문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동문 행사에도 나가곤 한다.[5] 참고로 정대철 국민의당 고문과 절친이다. - 쎄시봉에서 조영남, 송창식 등과 활동하다가 송창식, 이익균과 함께 트리오 세시봉을 결성하였지만 이익균이 방송 2일 전에 입대하는 바람에 송창식과 듀오로 데뷔하게 되는게, 이가 바로 전설적인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 이 트윈폴리오로 대한민국 포크계를 휩쓸었지만, 부친의 압력으로 해산하고 만다.
-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연예계를 한번 손 보겠다는 목적으로 대마초 단속을 벌였는데, 이때 윤형주가 대마초 소지 혐의로 시범타로 체포당한 일이 있었다. 구치소에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는데, 방송 출연이 금지되었다가 1979년에 겨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사이키델릭 록 이후에 뮤지션들이 약물에 손을 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나마 윤형주의 경우는 다행인 케이스인데, 이 때 실형을 살던 연예인들은 한참 뒤에야 활동을 재개하거나 연예계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 6촌형인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려고 했으나, 아버지 윤영춘 교수가 시도 노래라는 말을 하면서 그걸로 노래를 만들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윤형주 본인은 윤동주의 시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놀러와 세시봉 특집에서 서시로 노래를 만든 조영남을 디스했다. - 20대 시절엔 굉장한 미성의 소유자였다. 한때 미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후배 윤종신, 유영석, 박학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맑은 미성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드문 목소리였기에 당시 윤형주하면 미성의 목소리를 떠올릴 정도로 굉장히 유명했었다고 한다.[6]
-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을 진행하던 시절, 푸른집의 그 분 외아들인 박지만 씨가 그 분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바비 셔먼의 '리틀 우먼(little woman)'을 신청곡으로 엽서를 보낸적이 있다. 당시 동아방송이나 윤형주는 이 엽서가 장난인지 진짜인지 여부를 파악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카더라.
- 마찬가지로 0시의 다이얼 DJ 자리를 이장희(세시봉 프랜즈의 이장희다)에게 넘겨 줬는데 이장희씨가 윤형주 씨의 비의 나그네를 호우 주의보, 호우 경보가 터진 날 밤에 틀었는데 가사가 문제되었다.
님이 오시나 밤 비 내리는 소리님 발자욱 소리 밤 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 보다 밤 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 비 그치는 소리밤 비 따라 왔다가 밤 비 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 주룩 내려라 끝없이 내려라(...)님이 가시나 보다 밤 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 비 그치는 소리
- 아니 온 나라가 물 난리 났는데 이건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덕분에 담당 PD, 작가등 스텝들 날 밝고 불려가서 죄다 경위서 쓰고 비오는날 한정 금지곡이 되었다 한다.
가뭄일 때면 대 환영 받았겠지.이 이야기는 놀러와에서 진행한 세시봉 콘서트 특집 때 소개되었다. MC들 패널들 관객들 할것없이 모두 빵빵 터졌다. 너무 황당해서....
- 아니 온 나라가 물 난리 났는데 이건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덕분에 담당 PD, 작가등 스텝들 날 밝고 불려가서 죄다 경위서 쓰고 비오는날 한정 금지곡이 되었다 한다.
- 1980년대에 해태와 롯데는 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했었는데 이 때 윤형주는 두 경쟁회사에게 모두 CM송을 만들어주면서 양다리를 걸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윤형주의 CM송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해태와 롯데는 껌팔아서 프로야구를 했다 카더라.그러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해태제과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최종 승자는 롯데제과가 되었다.근데 그 시절 롯데는 껌팔아서 비밀번호를 찍었었지 아마... 껌이라면 역시 꼴데껌!
- 아직까지도 불리는 유명한 곡인 '조개껍질 묶어' 는 대학시절 해수욕장에서 미팅을 하다 떠나려는 여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30분 만에 작사 작곡을 했다고 한다. ㅎㄷㄷ
- 술자리나 신고식에서 노래를 시키기위해 부르는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가지'는 윤형주의 '미운사람'이다,물론 아~미운사람과 멜로디만 따왔으며 가사는 완전히 다르다.
- 전주기전대학의 이사 중 한 명이다.
- 종교는 개신교로 장로이다.
- ↑ 현재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임상아와 함께 진행했다. 1996년에 종영.
- ↑ 참고로 현재의 음악앨범의 DJ는 그랜드현우(..) 그래서 현재의 프로그램 이름은 이현우의 음악앨범이다.
- ↑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재편곡 없이 그대로 사용중일 정도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곡이다.
- ↑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존재하지 않았고 고입 시험이 있었던 당시로서는 국내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라 할 수 있다.
- ↑ 윤형주는 이장희와 함께 2014년 5월 연세대학교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 여담으로 세시봉으로 함께한 김세환이 경희대학교를 나왔다.
- ↑ 현재에는 목소리가 20대 시절보다 많이 굵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