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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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변희재(邊便熙宰)
출생1974년 4월 22일
본관원주 변씨
신체175cm183cm[1], 67kg
학력서울대학교 미학 학사[2]
직업정치인
링크트위터

1 인물 소개

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이자 미디어 비평가정치인[3]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이지만(서울특별시 출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4] 서울 용산구서초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등학교경문고 졸). 재수해서 1994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다.[5] 병역카투사로 마쳤다.

1999년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강준만, 고종석, 김정란, 진중권, 김규항, 홍세화 등 당대의 자유주의좌파 성향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중있는 매체인 조선일보를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이라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비판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고, 여기에서 변희재는 처음에는 무명의 행동대원 정도였지만 곧 왕성한 활동으로 인터넷상에서 안티조선 운동의 전사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6] 그리고 안티조선 운동과 인터넷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속에서 변희재는 1999년 창립된 진보 성향의 인터넷언론 대자보를 포함해서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인터넷 논객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때 사적으로는 자신의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진중권을 띄어주는 글도 여러차례 썼다. 진중권은 이 사회에 보기드문 상식적인 좌파이자 유쾌하게 세상을 사는 분이라고 띄어주면서 심지어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가 자신의 학문적 길라잡이라고 칭송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대자보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하자 아예 친노사이트 서프라이즈로 자리를 옮겨서는 노무현을 찬양하면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글들을 무수히 쏟아내었다.

그러나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점점 반노 성향으로 바뀌었다. 분당 이후 쪼그라든 새천년민주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던 브레이크 뉴스로 활동공간을 옮겨서는 반노의 선봉장으로 활동하면서 '"호남을 무시하지 말라"' 같은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브레이크뉴스를 떠나서 2006년 9월 인터넷 우익언론 빅뉴스를 창립하면서 사실상 우익으로 전향하였다. 변희재는 당시 진보성향의 우석훈이 제기한 88만원 세대론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조선일보와 함께 실크세대론을 집중적으로 제기하였다. 실크세대론은 요약하면 '20대 창업론', '20대 CEO론'으로 '기성세대의 도움없이 20대 스스로 일어서자', '기회는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특히 당사자인 20~30대 사이에서 88만원세대론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7][8]

빅뉴스와 실크세대론이 인터넷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변희재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면서 조중동의 집중적인 조명속에서 일약 청년우익 논객으로 우뚝서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더더욱 우경화해서 사실상 뉴라이트와 마찬가지의 극우파로 변신해서 더더욱 활동폭을 넒혀 나갔고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개혁세력, 좌파진영과 무수한 마찰을 일으켰다. 함께 안티조선 운동을 하는 등 한때 우호적이었던 진중권한테 듣보잡이라고 까이자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등 난타전을 벌인 것도 이 시기이다.[9] 이후 자극적인 언사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이 늘어났고 이에 격분한 인사, 단체들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변듣보 소송 이후로는 변희재의 연전연패로 지금까지 보상금 물어준 것도 꽤 될듯하다.

이후 빅뉴스를 미디어워치로 확대개편하면서 단순한 언론사에서 논문 검증 등으로 활동폭을 넒혔다.

변희재 본인이 훗날 인터뷰에서 밝힌 전향 계기는 한국사회의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조선일보에 대한 반감으로 안티조선에 동참했던 개혁진보 성향의 지식인들과 시민단체들이 정작 새로운 미디어권력으로 떠오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대해선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서라고 한다. 당시 오프라인 언론사의 기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이용해서 조회수와 영향력을 높혀가는 네이버의 행태에 분노해서, 주변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오히려 '인터넷을 키워서 조선일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무시하더라는 것이다.[10] 그리고 인터넷언론과 포탈사이트의 문제점에 관한 칼럼을 쓰자 소위 개혁매체들는 하나같이 싣기를 거부했고,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와서 '안티조선'이라던 자신의 신념을 접고 투고하였고 이러면서 기존에 같이 하던 주변의 개혁/진보 성향 인사들과는 완전히 연이 끊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변희재의 주장에 의하면 당시에 안티조선보단 안티포탈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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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커뮤니티 사이트 일베저장소일밍아웃 인증을 남겼을때 사진

이전에 본 항목에 극단적인 표현이 있을 정도로 우파 성향의 일부 커뮤니티(주로 극우)를 제외하고 주로 진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까이는 인물이다. 허나 5.18 폭동설 등 주장하는것이 비슷한 일베저장소에서 아주 인기가 높고 일베왕이란 별칭을 얻은 극우보수의 히어로

2014년 1월 14일 박종진의 쾌도난마 방송에서 호남지역에 대해 과도한 비방을 한 것으로 인해 3월 12일에 채널A로부터 영구 출연정지조치를 받았다.같은 보수한테도 까이는 변희재[13]

트위터에 밝힌 바로는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이상하다

저서로 《변희재의 청춘투쟁》이라는 자서전이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진보 인사들에게 돈봉투를 쥐어준 공로로 올해의 기부천사상을 수상했다 카더라

2 보수 논객으로서의 행보

각종 토론회에서 기존의 보수 성향 패널들과 달리 자세한 팩트 자료와 논리적인 어법을 구사하는, 보수 성향 사람들의 아이콘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곰TV 사망유희 토론에서 NLL을 주제로 진중권과 대결을 한 후 진중권이 직접 졌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그 실력을 실감케하였다. 다만 진보성향 측에 공격적인 발언을 많이 하거나 논란이 될 만한 언행을 자주하기에 진보 성향 사람들에겐 매우 이미지가 나쁜 편이다.

특히 위에서 설명했듯이, 일베저장소와의 연관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미지가 나빠진 사건 중 하나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는데, 2013년 100분토론 당시 5.18 민주화운동광주사태라고 표현하며,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닐수도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5.18이 지금 국내에서나 세계 역사학계에서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김대령 박사유네스코에 등록된 공식 자료를 이용해 충분히 개연성있게 정리한 주장이라는 병크를 터트렸다. 잘 알다시피 김대령유사역사학자로 사기꾼이다.

정치색을 지우고 최대한 간결하게 보자면 가장 주목도가 높은 이슈를 끌고와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포커스가 오게 하는 방식을 많이 추구했었다. 말하자면 최대한 이곳 저곳 건들며 이슈 몰이를 하는 스타일.

3 국회의원 출마

우파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인지 2013년 12월, 일베저장소에 버금가는 막장사이트 수컷닷컴을 개설했다. 일베저장소, 정사갤 등의 극우 성향 유저들을 끌어 모으려는 전략인 듯하다. 이러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0.74%(578표)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참고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면 관계 법령에 따라 300인 이상 500인 이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고로 딱 그만큼만 득표... 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을 까면서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예상대로 새누리당에 넘사벽으로 밀렸다! 사실상 이미 진 싸움일 수 밖에 없다. 결국 현실의 선거에서 중간층을 거의 얻지 못하는 강경 넷우익의 고질적인 한계점일 수밖에 없다. 넷좌익도 마찬가지, 넷우익이든 넷좌익이든 현실 정치와 떨어진 사람들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 유세 과정에서 자칭 스님인 성호를 내세워 '빨갱이를 잡으라'는 둥 과격한 연설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4 논란

2012년 INSIT TV 3분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변희재VS낸시랭 토론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3분토론 변희재VS낸시랭 이 3분 토론은 의외로 낸시랭이 변희재에게 물러서지 않는 형국으로 토론을 펼쳤다. [14] 그러나 그 후에 변희재와의 SNS설전에서 낸시랭은 자신이 주장한 BBC 초청과 아버지의 사망이 모두 거짓으로 밝혀져 변희재에게 꼬리를 내렸다. 근데 아무리 봐도 주변사람들의 인식은 피로스의 승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것 같다. 그 주변 사람들이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그리고 또한 2012년 5월경 소설가 공지영의 SNS인 트위터에 올라온 공지영의 사진을 보고 변희재는 자신의 트위터에 "총선때 공지영이 투표 독려한다고 자기 생얼 올렸잖아요. 진짜 토할뻔 했어요. 50먹은 여자가 생얼 왜 올립니까? 공주병이 확실해 보여요."라고 외모를 비하하는 글을 남겨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관련 글

2013년 편향적 서술로 물의를 빚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가 항의하자, 그분이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단 점을 들어 지금 선동 중이란 막말을 일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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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발생하자 '속보! 세월호 폭동 발생'이란 글을 올려 지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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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메르스의 유행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서울특별시장인 박원순이 긴급 브리핑을 개최한 것을 두고 "이번 사태는 친노 세력의 거짓난동"이라며 힐난한 바 있다.

국회의원 출마후 선거운동을 하던중에는 선거 노래를 MC 무현으로 하겠다.라고 하며 물의를 빚었다.[15] 서프라이즈 친노 논객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부정하고 비하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만 그것은 노무현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므로 과거의 행동에 대해서 제3자가 배신자 운운할 건 아니다. 인물과 그 행동에 판단에 있어서 당사자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은 자유이고, 그것이 이치적으로 논리적으로 옳냐, 그르냐가 문제이기 때문.

상대방에게 종북 발언 등의 공격적 발언을 많이해 여기 저기서 소송이 많이 들어오는데 지는 경우가 많아 상대방에게 지갑을 털리기가 일쑤다. 이미 배상한 사례로는 낸시랭, 김미화[16][17], 문성근, 김광진의원 등이 있으며, 이재명 성남 시장과도 소송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18] [19] [20] 이정희전 의원에게도 2심에서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고 대법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지율 승려와 함께하면 대한민국 인간 ATM의 좌우합작이 완성된다.

4.1 고기 먹튀 논란 (변리바바 사건)

2013년 12월 17일에는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고깃값 300만 원을 계산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관련기사 식당 주인이 밥값을 깎아주지 않자 변희재는 식당 주인이 종북 편향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망언을 했다. 2014년 초 밥값 300만원을 돌려주고(이자는 개나 주고) 소송을 건 병크를 터뜨렸다. 그러나 소송은 변희재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아직도 배가 아팠는지 당시 기사에 자신에 대한 비판 댓글을 단 사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병크를 또 터트렸다. [1] 해당 댓글들로 인해 자신의 직장대체 언제 직업을 탤런트로 바꾼건지인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으니 150만원을 물어내라는 것인데, 기사에 써 있는 것처럼 “좌파 쪽에서 일베나 수컷닷컴 회원들 소송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맞대응 차원에서 우리가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 소송을 걸겠다고 해서 한 것이다” “내 개인의 피해구제보다 우리(보수진영)를 음해한 사람들에 대해 600명 정도 고소를 했었다. 미성년자나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한 이들, 사과를 한 사람들은 취하도 해줬다”라는 헛소리를 내세우고 있다. 즉 자신이 고기집에 돈을 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에 따른 비판때문에 방송에 출현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변희재 본인의 책임이 명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와 특정 인물들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국회의원 선거까지 출마한 사회적, 정치적 공인으로서 본인의 경솔한 행동은 무시하고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상대에 대해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없다.

4.2 응답해라 1988, 정치적 논란

2015년 12월 25일 오후 11시 10분에 트위터에서 성보라가 통진당이정희의 모델이라고 헛소리를 했다.출처

4.3 윤한봉의 무기고 답사가 '광주사태'에 대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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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는 트위터에 이런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럼 '윤한봉 사령관' 주장은 사실인가?

일단 그 출처가 된 게 윤한봉 자신의 증언인데 정작 그 증언 안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4월 1일인데 아무도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 뭔 쓸데없는 소리 한다느니 회의 분위기 깬다느니 여 다른 나라 이야기 하고 앉았다느니 그런 식으로 우스워 보인거지. 내가 잔뜩 다급해가지고 그래도 지방에서는 부산은 부마항쟁으로 피해를 많이 봤으니까……근데, 아무도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고. 돌아와 가지고 아예 4월 달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 개똥이를 만나면 이 이야기, 또 두셋이 만나면 이 이야기,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를 안 기울이고, 아 쓸데없는 소리 왜 자꾸 해싸요,아이고 그런 날이 좀 왔으면 좋겠소 내가 봤을 때는 어림 반푼어치도 인자 어림없다 이거지, 민중들이 무슨 들고 일어나야 그러지. 우리가 뭐 부마항쟁은 예측이라도 했었냐. 아 그건 어떤 특수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거지, 아이고

윤한봉은 무기답사를 주장하긴 했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씹혔다.

다 잡아간거다. 기습 당한거죠. 아 이거. 와 눈 앞에 캄캄해져불죠. 왜 그냐면 기습을 예측을 못했으니까. 뭐 뜬 눈으로 밤 새우고 새벽에 이제 집에서 빠져 나가 가지고 시내 용화 후배네 집에 가서 잤어요. 안전한 곳에 가서 동태를 살펴 보니까 엉망이지. 다 잽혀들어가불고. 전대 조대 할 것 없이 전부 접수되어버리고 학생회 간부도 일부 도망가고 일부 다 잽혀불고. 긍게 인제 박살나분거야, 박살이. 아무 준비없이. 와 그때처럼 내가 후회스러웠을 때가 없었어. 왜냐면 나는 21일부터 25일로 봤지, 17일날 밤에 당할 것을 생각을 못하고, 기습에 대해서는 예측을 못했거든. 그래가지고 19일날 아침에 새벽에 빠져나갔지, 광주로. 뭐 인제 연락할 길이 없는 거야.[21]]

그런 상황에서 윤한봉은 대비도 없이 당했다고 한다.

윤한봉 증언을 근거했는데 정작 윤한봉 증언에서도 폭동설은 반박이 된다.

5 선거이력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15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구 을)무소속578 (0.74%)낙선 (5위)

6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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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6년 10월 10일

또라이라고 했다고 탁현민 교수를 고소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하므로 해서 법이 인정한 공식 또라이라고 불려도 됨.
  1. 키가 꽤 큰 편인데, 그래서 진중권을 키를 가지고 놀리는 트윗을 하기도 했다. 진중권은 165cm 언저리.
  2. 진중권은 같은학교, 같은과 11년 선배다(...)...
  3.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선관위 후보자 정보 참고.
  4. 일단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서울 출신으로 나와있다. 출신지에 대한 확인바람.
  5. 진중권도 서울대학교 미학과 출신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6. 하지만 처음부터 우연치 않은 계기로 시작되서, 명확한 노선과 행동강령이 없었던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환경의 변화나 조선일보의 영향력 쇠퇴보다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활용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했던 지식인들은 2002년이후 각자의 신념에 따라서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7. 사실 88만원 세대론도 정작 진보/좌파 성향 학자들한테는 가루가 될만큼 까이고 있다. 통계적, 실증적 연구가 전혀 없이 그냥 끼어 맞춘 이야기에 불과하며 오히려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20대와 50대간의 단순한 세대갈등으로 치환해서 진짜 핵심적인 상위 1%와 99%간의 계급갈등이 가려졌다는 것이다.
  8. 88만원세대론에 대해서는 인터넷 상에서도 상당히 많은 반론이 쏟아졌으며 개혁진영에서는 2012년 대선 뒤에 지나치게 세대갈등론에 집착해서 20~30대만 주목하다가 50대를 모두 놓쳐서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 학계나 언론의 분석을 보면 한국 사회의 노년층 빈곤율은 OECD국가들중 최고 수준으로 위험 수위에 달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를 모두 기득권으로 규정하는 세대갈등론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위 수저계급론이 등장하였다.
  9. 이 소송 자체는 진중권이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변희재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변듣보'라는 멸칭이 붙어버린 건 혹.
  10. 이 과정에서 소위 민주언론 운동을 한다던 최민희 민언련 대표를 포함한 시민운동가들한테 폭언을 들었다는 주장도 인터뷰에서 했다.
  11. 다만 이문제에 대해선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개혁/진보 성향을 계속 고수하면서도 인터넷언론의 폐해와 포탈사이트의 여론독점에 관해서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12. 한편 안티조선 운동 초창기부터 무조건 안티조선=노무현=진보개혁식의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다가 2003년 민주당 분당 이후 점점 반노무현으로 돌아서면서 "나는 반노무현=반진보=보수우익"식의 논리로 전향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극단적인 흑백논리, 이분법에 사로 잡혀 있다는 비판.
  13. 검색결과관련기사 참조. 덤으로 관련 프로그램도 징계를 받았다.
  14. 사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토론 내내 윽박지르는 변희재와 토론 내내 깐족거린 낸시랭의 대결이었다. 낸시랭이 변희재를 농락했다기 보다도 그냥 두명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토론했다. 사실 애초에 3분토론 자체가 100분토토론이나 끝장토론, 심야토론처럼 장시간을 갖고 설전을 벌이는 프로그램이 아닌지라 짧은 대화 속에서 누구의 승리냐, 패배냐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고, 어찌보면 낸시랭이 여유있는 토론을 하는 것 같지만 변희재가 그 페이스에 말려들거나 이성을 잃어 흥분을 한게 아니라 본인 스타일로 조목조목 말했을뿐이다. 물론 보는 이들에게는 낸시랭의 태도에 변희재가 딥빡해서 소리만 지르다가 끝나는 것으로 보이는건 정치성향에 따라서 그럴수도 있고 아니면 기분탓이겠지.
  15. MC 무현은 원래 합성 필수요소 갤러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를 이용해 만든 음악 등에 붙은 이름이나, 노무현 대통령 사후 고인드립의 소지가 있어 합필갤에서조차 사용을 꺼려하던 소스였다. 오히려 일간베스트에서 고인의 희화화를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합성 소스이다.
  16. 김미화 소송건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시켜서 다시 재판에 들어갔다. 근데 중요한건 이게 변희재가 이겨서 파기환송된 게 아니다.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서 2심 재판부는 아예 재판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이 잘못되었으니 정상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라고 파기환송한 것이다. 고법이나 대법 모두 변희재가 배상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살펴본 적이 없다.
  17. 결국엔 12월 22일 손해배상 청구소송 조정을 통해 김미화에게 ‘친노좌파’, ‘종북’ 등의 표현을 쓰지 말라는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이 나왔다. 조정 확정일 전까지 저 표현을 쓰면 건당 500만원 지급하기로 되었다. 또 초상권 침해건으로 8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해야된다. 기사
  18. 이렇다 보니 생긴 별명이 BTM(...)
  19. 다만 소송 문제에서 매번 진것은 아니고 진중권 교수가 예전에 변희재에게 "듣보잡"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소송을 내, 진중권 교수에게 벌금 300만원형이 내려진 적이 있다. 다만 민사 손해 배상은 해당 사항이 없는듯.
  20. 2016년 1월 28일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4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1. 연구소 자료총서 3권에서 확인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