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격투기
Hybrid Martial Arts
- 상위항목 : 격투기 무술 관련 정보
1.1 개요
서로 다른 무술을 수련한 사람들이 대결하는 것을 말한다.
종합격투기와는 다른 개념으로, 어느 한가지 무술끼리의 타류시합을 이종격투라고 한다면 종합격투는 여러 무술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도를 가진 선수들끼리 대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하마드 알리 vs 안토니오 이노키'는 '복서 vs 프로레슬러'의 이종격투기라고 볼 수 있지만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vs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의 대결은 삼비스트 vs 주짓떼로의 이종격투가 아닌 아닌 '종합격투가 vs 종합격투가의 종합격투기'다. 적어도 21세기에 오픈핑거 글러브를 끼고 하는 격투기 시합은 99% 종합격투기다.
그러니까 제발 UFC나 PRIDE를 보고 이종격투기라고 하지 않길 바란다.. 물론 이것도 종합격투기다.[1]
하지만 UFC에서 10승이나 거둔 김동현이 여전히 방송에서는 '이종격투기 선수'라고 소개되는걸.. 우린 안될거야 아마
종합격투기가 보급된 현재는 역사에만 남은 사어가 되어 더이상 쓰여지지 않아야할 듯하지만 아직도 이종격투기란 이름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체육관들이 남아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지성적인 위키러라면 종합격투기를 두고 이종격투기라 쓰지말고 누군가 쓴다면 바로 잡아주자.
1.2 역사
1.2.1 고대
이종격투의 역사는 맨손격투기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어느 문명권에건 고유의 격투기는 존재했고 서로간의 교류가 있을 때마다 문화의 일환으로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술이 발달했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타류시합, 도장 깨기 등의 형태로 발견된다.
하지만 격투기가 발전하여 체계화되고 하나의 규범, 사상의 영역으로 변화함에 따라 각 유파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2] 이러한 현상은 무술이 가장 융성했던 아시아권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에서는 많은 무술이 도교사상과 융합하였고, 일본의 검술과 유술은 불교의 선종사상을 받아들여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철학과의 융합은 격투기의 사상적 기반을 튼튼히 하였고 양적 팽창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형식에 치중한 나머지 커뮤니티가 점차 연공서열화되었고, 과도한 정신적 가치의 추구로 인해 '기'의 존재 등 무술에 대한 환상이 생겨났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이 되었기 때문에 타류무술과의 교류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실제로 20세기 이전의 중국과 일본의 대부분의 무술은 타류시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3]
서양의 경우 그리스, 로마의 격투기를 주목할 만하다. 가장 고대의 형태라 할 수 있는 판크라티온, 그 이후의 베어너클 형식의 복싱, 서브미션을 포함한 레슬링(오늘날의 캐치 레슬링과 비슷한 듯), 그리고 종합격투기 개념의 스타일을 모두 포함한다. 무술 영화의 영향으로 서양애들은 무식해서 그냥 힘으로 막 주먹질이나 해대고, 힘으로 붙어서 넘기려고나 하고 이럴 것이다 하는 선입견같은게 있는데, 오해다. 고대 서양의 종합격투기(이건 정말 현대의 MMA와 비슷한 스타일을 갖는다.) 의 역사는 꽤 되는데, 이때 이미 오늘날 사용되는 많은 서브미션 기술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거의 다 정립되었다. 물론 이것은 고대그리스로마 문명의 쇠락과 더불어 그림 등으로만 전해진다. 사실상 명맥이 끊긴 것이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당시 종합격투기의 모습은 오늘날 MMA와 거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족보행 동물이 맨손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스타일은 결국 MMA 식 스타일이라고 생각된다.
1.2.2 현대의 움직임
이렇듯 경직화 되어가는 격투계에 반발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0 ~ 60년대 미국에서는 쿵후, 가라데, 태권도 등 동양의 전통무술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본국의 전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이들 사이에는 접촉의 빈도가 좀더 높았다.
1947년 아드리아노 엠페라도와 추영일에 의해 창설된 카쥬켄보(KaJuKenBo[4])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현대 하이브리드 격투 중 하나이다.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척 리델의 트레이너인 존 해클먼이 이 카쥬켄보를 수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전세계적인 쿵후 붐을 일으킨 영화배우 이소룡은 그 실전지향적인 무술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전통과 형식을 배제하고 실전에서의 효용성을 강조했으며, 복잡하고 아름다운 투로보다는 직선적이고 빠른 공격을 중시했다.
세계 각지를 떠돌며 타류시합을 했던 무인들도 있었다. 전설적인 유도가인 '콘데코마' 마에다 미츠요, 극진공수도의 최영의 등은 전세계의 무술가들을 상대한 수백회의 실전에서 승리하며 자신의 이름을 날렸다. 이종격투, MMA의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이들의 선구자적인 발자취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켰고, 그 드라마틱함으로 인해 대중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실전지향'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고, 이는 후세대의 이종격투기와 종합격투기의 근간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타이쇼 시대에 유권(柔拳)이라는 이름으로 유도와 권투의 대결을 다루는 흥행 경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유도계와 권투계의 발전 방향성이 달랐고, 흥행 자체도 일시적인 것이라 이 시기의 유권 흥행은 별다른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일본의 유권 흥행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잠시동안 다시 시도 되었는데, 이름만 남았지 전쟁 전 시기의 유권 노하우조차도 거의 체계적으로 계승되지 않았는지 복서의 주먹에 맥을 못추던 유도가들이 우연히 만난 과거의 유권 선수에게 복싱 대처법을 충고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 밀려서 유권 흥행은 곧 사라지게 된다.
1.2.3 이노키 vs 알리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미 복서와 레슬러의 대결이 수 차례 이루어졌다. 유럽 등지에서 있었던 대결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대개 레슬러의 승리로 끝이 났다.[5]
초창기 일본 프로레슬링은 어느 정도 이종격투기 전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쇼와의 간류지마 대결을 사람들은 '스모 대 유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러한 흥행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 안토니오 이노키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이종격투전은 미국의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 프로레슬링의 안토니오 이노키의 대결이다. 1976년 6월 26일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대결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결과는 최악의 졸전으로 끝났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슬라이딩킥을 날린 이노키가 그대로 드러누워버린 것이다. 복서의 펀치 테크닉을 당해낼 수 없었던 레슬러가 땅에 누워버리자, 그라운드의 상대를 공격할 수단이 없는 알리 역시 별다른 수가 없었고[6], 그렇게 15라운드가 지나갔다. 격투기 사상 최악을 다툴만한 졸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훗날 안토니오 이노키는 실전 지향적인 프로레슬링을 추구하며, 무하마드 알리 정도의 거물을 데려오지는 못헀지만, 이종격투기 전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일본 종합격투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 시합 이후로 복싱계는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로의 진출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두 선수가 시합에서 보여준 대치상황이 후대의 MMA에서도 제법 출현빈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는 원조들의 이름을 따서 이노키 알리 포지션이라고 부르게 된다.
1.2.4 브라질리안 주짓수와 그레이시 가문의 UFC
한편 브라질로 건너갔던 마에다 미츠요는 이민사업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현지의 유지였던 그레이시 가문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카를로스, 엘리오를 거쳐가며 브라질에서 번창한 그레이시 유술은 호리온의 대에 이르러서는 미국을 정복하게 되었다.
이후 90년대에 브라질에서는 발리투도라는 이름으로 지하격투장(…)에 가까운 무규칙 격투 대회가 번성하고 있었다. 그레이시 가문은 그레이시 유술을 미국으로 진출시키면서,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서 발리투도의 형식을 빌려서 격투 대회를 열기로 했다. UFC의 탄생이다
1993년의 UFC 1 토너먼트에서 거구의 복서, 가라데카, 레슬러를 상대로 호이스 그레이시가 우승을 차지하자 그레이시 유술은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레이시 주짓수는 UFC와 더불어 성장을 거듭했고, 호이스는 이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의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의 이종격투전을 종결지어 버렸다.
브라질 발리투도의 비공식 기록과 길거리 싸움으로 얻은 명성에 미국 UFC에서의 공식 전적이 더해지면서 20세기의 이종격투전은 그레이시의 이름 아래 평정되었다. 하지만 UFC는 정상적인 스포츠로 보기에는 경기가 너무나 막장이고 폭력성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오랬동안 어둠의 게임 취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1.2.5 종합격투기의 등장
그레이시가 떠난 UFC 7 토너먼트를 석권한 마르코 후아스는 종합격투기의 지평을 연 파이터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루차리브레를 수련한 후아스는 이후 주짓수, 무에타이, 레슬링, 복싱 등을 두루 섭렵해 이를 자신에게 맞는 형태인 후아스 발리투도로 개량했다. '입식타격과 그래플링 양쪽에 모두 능한 선수'라는 개념을 링 위에서 효율적으로 재현해 낸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UFC 라이트헤비급 초대 챔피언으로 5회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바 있는 '프로토타입' 프랭크 샴락은 말 그대로 MMA의 프로토타입과 같은 인물이었다. 라이언스덴 출신의 판크라스트인 샴락은 타격과 그래플링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최초의 컴플릿 파이터가 되었다.
PRIDE 초대 헤비급 챔피언인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는 출중한 복싱 스킬과 신기에 가까운 주짓수 스킬로 당대 격투기의 수준을 10년은 끌어올렸다는 평을 들었다. 동시대의 강자인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BJ 펜, 조르쥬 생 피에르는 웰라운드 종합격투가의 완성형으로 일컬어진다.
1.2.6 일본의 흐름
일본에서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 이후에도 몇년간 정기적으로 이종격투기 대결을 열면서 이종격투기 개념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무사도를 자국의 전통으로 보는 일본인 특유의 살짝 막장스러운 정신 세계(…)가 이종격투기라는 개념에 잘 들어맞아 상당한 흥행을 기록하였는데, '이노키즘'은 본질적으로는 프로레슬링 단체의 홍보를 위해서 다른 격투기와의 대결을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흥행 거리로 삼는 것이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이노키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한계 때문에 나타난 마케팅 전략이었다. 일본의 프로레슬링은 '외국의 강적 vs 일본인 선수'라는 전형적인 대립 구도를 주요 흥행 포인트로 잡았는데, 당시 전일본에 비해서 인맥이 딸렸던 신일본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상품성을 가진 외국인 선수를 끌어오기 힘들었고 그 때문에 프로레슬링 선수 대신 복싱 등 다른 격투기 선수를 끌어들여서 '이종격투기'를 하는 마케팅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보다 실전에 가까운 대결을 추구하는 '실전파 프로레슬링'이 나타나게 되었고, 외국의 선수들을 많이 불러모으면서 일본에도 종합격투기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후 '실전파 프로레슬링'은 본격적인 종합격투기로 변화한다. 한 때 일본의 종합격투기 단체 프라이드는 세계적인 단체로 올라섯으나, 근본적으로 자금력이 열악하였고 야쿠자가 관련되었다는 의혹 등이 퍼지면서 프라이드가 망한다. 그 후신인 종합 단체들도 흥행에 실패하고 경영난으로 몰락하면서 일본계 종합격투기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현재로서 일본의 종합은 시장 가치를 잃어버리면서 망했다고 보면 된다. 일본 이종/종합 격투기에서 필수적인 기반이었던 프로레슬링에게 이종/종합의 마케팅 가치가 매우 낮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프로레슬러가 종합을 뛰어봤자 프로레슬링 측만 손해를 본다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었으므로 더 이상 프로레슬링이 종합과 협력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 사실상 헤비급 일본인 파이터를 구하는 것이 어렵게 되고, 일본인 파이터가 없는 이상 일본 국내에서는 이종/종합 격투기가 흥행으로서 성립되지 않게 된다.
2010년대 중반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흥행 가치를 잃어버린 종합격투기 시장을 침범한 것은 반 그레이라 불리는 양아치 집단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대충 종합격투기 스러운 회사를 차려놓고, 제대로 훈련되지 않고 검증도 안된 양아치들을 파이트머니도 주지 않고 '선수'랍시고 내보내고, 티켓 강매를 통하여 흥행을 유지하면서 사실상 변질된 삥뜯기와 저질 흥행을 돈을 버는 '지하격투기'를 만들어냈다. 일단 이런 지하격투기가 각지에 널리 퍼지기는 했으나, 이런 불법적인 집단과 연계가 강한 흥행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종합격투기의 이미지를 극도로 악화시켰기 때문에 오히려 격투기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1.3 의의
가장 큰 의의는 종합격투기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PRIDE 25에서 효도르 vs 노게이라전의 해설을 맡았던 바스 루튼은 이종격투기의 시대가 지나고 종합격투기로의 진화가 완성단계에 돌입한 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브라질리안 주짓수와 러시안 삼보의 대결이지만, 동시에 종합격투기와 종합격투기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
각자의 틀 안에서 안주하고 있던 격투기가 그 틀을 깨고 나와 부딪히고 교류했으며, 그 결과 어떤 무술과도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완전체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고 상업성을 인정받으면서 MMA가 프로 스포츠로 정착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었다.
다만 종합격투기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직 그 정체성이 완벽하게 확립되어있지 않다. 때문에 종합격투기 선수들조차 자신의 기량을 종합격투기 자체에서 추구하기보다는 각자의 베이스가 되는 격투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강렬한 테이크다운 후의 묵직한 파운딩, 얽혀들어가서 상대를 강력하게 억누르며 관절기로 제압, 근본적인 펀치와 킥을 위주로 한 호쾌한 타격 등 스타일이 상당히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슬러와 복서의 대결처럼, 타격가와 주짓떼로의 경기가 빈번히 일어난다.
따라서 현대의 MMA조차 어느정도는 이종격투전의 양상을 띄고 있으며, 두 개념의 분리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애초에 이종격투기니 종합격투기니 하는건 경기의 양상을 편의상 분류한 것에 불과하고, 룰의 차이는 전혀 없다. 그냥 MMA룰 자체가 본디 무규칙룰에 선수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만 제한해놓은 것에 불과하며, 그 룰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관없이 이기면 장땡인 것이다. 예를 들어 전 UFC헤비급 챔피언 산토스의 방어전을 보자. 주짓떼로 미어와 붙었는데, 산토스는 미어가 누워버리면 일어나라며 뒤로 물러서버리며 전혀 그라운드 게임은 하지 않았고, 심지어 킥조차 거의 쓰지 않고 자신의 주무기인 복싱만으로 미어를 떡실신 시켜버렸다. 그런다고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기면 그만인 것이다.
즉, 현대 UFC라고 모든 무술의 마스터가 되야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전 UFC헤비급 레스너처럼 타격스킬은 딸리지만 괴물같은 레슬링실력 하나로 발라버려도 그만이고, 혹은 산토스처럼 복싱이 워낙 강해서 복싱게임만으로 끝낼 수 있다면 끝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단지 다양한 무술 베이스의 파이터와 싸우려면 다양한 무술에 대해 알아야 하니 다양한 무술을 섭렵하며 종합격투가스럽게 변하는 것이지, 이종격투기나 종합격투기의 종목 차이란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타격젬병 레스너가 타격이나 주짓수를 배운 것은 종합격투기의 정체성을 위해서가 아니고, 단지 MMA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물론 레슬링 실력 하나로 다 발라버릴 수 있다면 굳이 다른 무술을 배울 필요가 없으나, 주짓떼로 미어와 붙었을때 다 이긴 경기에서 어이없이 서브미션에 걸려 탭아웃하며 패하지 않았던가? 또한 복서의 정체성이 뚜렷한 산토스 역시 과거에 서브미션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즉, 이들이 타 무술을 섭렵했던 것은 종합격투기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베이스 무술을 발휘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실제 레스너와 미어의 2차전을 보면 미어의 서브미션을 완벽히 차단시켜버리고 레슬링으로 떡실신시켜버렸다. 산토스는 미어의 그라운드 게임을 아예 회피해버리고 복싱만으로 떡실신시켜버렸다.미어안습
2016년 현재 UFC헤비급 챔피언은 베우둠이다. 베우둠은 알다시피 정체성이 극단적인 주짓떼로인데, 너무 강력한 주짓떼로라서 주짓수만으로도 중간 이상은 하는 파이터였고이노끼 알리시절에나 볼법한 벌러덩 전법 등 사실 주짓수만으로 챔피언이 될 수 있다면 굳이 다른 무술을 배워야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타격없이 주짓수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타격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래서 포텐 터지자 최근엔 물오른 타격으로 K-1챔피언 출신의 헌트를 플라잉 니킥으로 KO시키는 등 완전체가 되어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베우둠만 봐도 그냥 승리하기 위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것일 뿐인데 그러다보니 모든 무술을 다 잘하는 종합격투가스럽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적으로는 부족한 무술을 보충한 이종격투가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 베우둠의 타격 스킬도 주짓수빨을 상당히 보고 있다. K-1챔피언 헌트와 K-1룰로 붙었어도 이길 수 있었을까? 헌트와 베우둠의 경기는 타격전으로 펼쳐졌으나, 실제적으로 헌트는 베우둠의 그라운드를 극도로 경계하여 심하게 위축된 상황이었고, 반면 베우둠이야 오히려 그라운드면 땡큐고 오직 타격만 신경쓰면 되니 자신있게 다양한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 헌트가 당한 플라잉니킥도 아이페이크에 당한건데, 태클할 것처럼 속인 뒤에 헌트가 태클 방어자세를 취하자 냅다 플라잉니킥으로 KO시킨 건데, 물론 K-1챔피언을 플라잉니킥으로 KO시켰다라는 사실만 보면 타격도 만능인 종합격투가처럼 보이겠으나, 실제적으로는 부족한 타격을 보완한 주짓떼로가 자신의 극강 주짓수로 K-1챔피언을 극도로 위축시켜 태클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격을 제대로 할 수도 없게 위축시킨 후에 태클할 것처럼 속여 빈틈을 이끌어낸 뒤 타격으로 끝낸 거니 이 승리전략엔 주짓수빨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종합격투가는 각자의 베이스가 되는 격투기에 의존하면 안되며 다 잘해야 한다? 이 말은 야구선수라면 투수,1루수,포수,야수 등 다 잘해야한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물론 다 잘하는 완전체스런 인물도 있겠으나, 그래도 각자 가장 잘하는 베이스가 있기 마련이다. 타격,그라운드 다 잘한다고 해도, 더 잘하고 자신있고 좋아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고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훈련하므로 시간이 지나면 어느 한쪽의 무술에 편중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메이저리그 투수도 야구선수인만큼 간혹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되기도 하니 일반인들 틈에선 홈런타자수준이며, 주짓떼로 베우둠도 플라잉니킥으로 K-1챔피언을 KO시킬 수도 있을 정도이니 일반인들 틈에선 최강 킥복서수준이므로 종합격투가가 맞다. 단지 현대MMA에서 이종격투스런 모습이 나오는 것은 상대의 수준이 워낙 높다보니 그러다보면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무술로 승부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치는 투수들도 결국 본업이 투수인 것은 투수가 자신이 가장 자신있고 경쟁력있는 보직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초창기 메이저리그에서는 다 잘하는 만능이 대세였으나 점차 야구가 발달하며 세분화되어 보직이 정해졌는데, 마찬가지로 현대MMA도 처음엔 이종격투기에서 출발했으나, 그러다가 점차 만능이 대세이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만능에 더해 확실한 필살기하나가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 문지기급 파이터에 대한 위키의 설명을 보면 이것저것 다 잘하긴 하는데 확실히 내세울만한게 없다 이런 설명에서 드러난다. 이것저것 수준급으로 다 잘하긴 하는데 확실히 승부를 끝낼만한 필살기가 부족하다는 것. 실제 UFC현 헤비급 챔피언인 베우둠은 '주짓수', 전 챔피언인 케인은 '레슬링' 이전 챔피언인 산토스는 '복싱' 등, 이것저것 다 잘하는 거는 기본이고 확실한 필살기 하나씩은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들 무술 하나씩만 갖추고 있던 시절엔 다양한 무술 갖추는 것 자체만으로 경쟁력이었으나, 이젠 너도나도 다 다양한 무술 갖추다보니 그건 기본이 되었고, 그 기본에 더해 강력한 필살기 무술 하나를 갖추고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단 의미다. MMA는 상대 때려눕히면 장땡인 종목이고, 이종격투기스럽게 이겼냐, 종합격투기스럽게 이겼냐하는 점은 전혀 상관없다.
1.4 사고
과거 가수 이상민이 김미파이브를 차렸는데 이 곳에서는 트렌스젠더쇼와 이종격투기 시합 등 풍성한 볼거리 소재를 제공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그러나 바다이야기 설치 및 이종격투기 시합중 선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김미파이브는 이 여파로 파산하고 말았다.
2 Daum 커뮤니티 카페
대한민국의 이종격투기 관련 정보 커뮤니티. 줄여서 이종이라고 한다. 남초 커뮤니티의 성향이 강하다. 이종격투기(카페) 항목 참고.- ↑ 비록 대외적으로 관심을 끌기 위해 조폭 vs 북파공작원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내걸었지만, 두 선수의 기량은 어디까지나 종합격투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잘 포장되었다 뿐이지 이 시합 역시 종합격투가 vs 종합격투가의 대결이다.
- ↑ 이러한 현상은 격투기 자체가 보수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기의 발달로 전쟁에서 체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술이 살아남기 위해 기술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 ↑ 물론 안전에 관한 문제라든지 다른 이유도 있었다.
- ↑ Karate-Judo-Kenpo-Boxing의 이니셜.
- ↑ 1887년과 1890년 2차례의 대결에서 그레코로만 레슬러가 복서에게 승리를 거두었고, 1936년에도 프로레슬러와 복서의 대결이 있었으나 프로레슬러가 승리했다.
- ↑ 당시 이노키는 대부분의 프로레슬링 기술을 봉인당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썼다. 이에 대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