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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海永
1915년 09월 19일 - 2005년 11월 11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호는 해석(海石)이다. 종교는 원불교이다.
2 상세
1915년 경상남도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양산업, 대동연탄 등의 기업을 경영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자유당 당내 분규로 제명되어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중당, 신한당 등의 정당에 속하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반대로 윤보선, 김도연, 서민호, 정성태, 정일형, 윤제술, 김재광 등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신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최두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1년부터 197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임식 후보와 동반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신민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1974년 8월 유진산 총재의 별세로 치러진 총재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하였으나 1차 투표에서 낙선하였다.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임식 후보와 동반당선되었다.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가 5.17 내란를 일으킨 이후 일부 신민당 국회의원들처럼 구 태평로 국회의사당 별관으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85년 원불교중앙교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 별세하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재문(제12대~16대 국회의원)이 있다. 친동생 정일영(1926년~2009년)은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역임해서 형제간에 소속 정당이 다른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