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other1@에 대해서는 @rd1@ 문서를 참조하십시오.{{틀:다른_뜻/설명문서}}
정식명칭 | 씨제이제일제당주식회사 |
영문명칭 | CJ CheilJedang Corporation |
설립일 | 2007년 9월 1일 |
업종명 | 식음료 제조업 |
상장여부 | 상장기업 |
기업규모 | 대기업 |
상장시장 | 유가증권시장(2007년 ~ 현재) |
편입지수 | 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
종목코드 | 097950 |
홈페이지 |
1 개요
대한민국 CJ그룹의 핵심 회사.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쌍림동 292번지 CJ제일제당센터에 위치해 있다. 원래의 제일제당은 CJ 지주회사가 되었고, CJ제일제당은 지주회사에서 분할되어나온 새로운 회사가 됐다.
그룹 내 위상은 그야말로 맏형이자 대들보. 사업 구조 특성상 수익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그룹의 규모를 확장하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단체급식이나 요식업체들에 대한 물량공급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걷을 수 있기 때문. 막대한 물동량과 자금동원력을 무기로 CJ대한통운을 인수해서 물류사업에 진출하거나 영화산업에 투자한 걸 계기로 미디어 산업에 진출하고, 이렇게 진출한 미디어산업 계열 회사와 제조업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상품을 바탕으로 홈쇼핑까지 인수한 데다 최근에는 미디어 쪽을 계기로 통신산업에도 진출했기 때문. 한낱 식료품회사에 불과했던 CJ가 유통과 미디어까지 꾸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한낱 식료품회사였던 CJ제일제당의 공이었던 거다.[1]
2015년 기준으로 그룹 내 사업이 다각화된 만큼 예전보다는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졌지만, 여전히 단일 계열사로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서열 1위[2]를 자랑하고 나머지 동생들의 밥줄을 제공[3]하고 있으며, 꾸준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룹의 밑바탕이 될 듯하다. 현재 CJ의 주요 사업포트폴리오가 문화나 미디어사업에 집중되어 제조업 기업보다는 서비스업 중심 기업의 면모가 더 강력해졌음에도 그 특유의 극단적 안정성과 요식업같은 서비스산업의 후방지원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마 CJ가 이 계열사를 버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것이라 보인다.
2 사업 분야
설탕, 밀가루, 식용유, 조미료, 장류, 육가공식품, 신선식품을 생산·판매하는 식품사업, 전문의약품 및 일반의약품, 아미노산 등을 생산ㆍ판매하는 생명공학사업, 동물사료를 생산ㆍ판매하는 사료사업 이렇게 세 분야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전문의약품 및 일반의약품 사업은 2014년 4월 CJ헬스케어로 분사 했으나 CJ제일제당의 자회사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대부분 설탕 제조회사로 알고 있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이름이 제일제당인 것처럼, 원래 초기에는 설탕을 만들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사업이 확장된 것.
대표 브랜드는 백설. 백설은 삼성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에서 처음 설탕을 만들었던 시절부터 내려져온 오랜 역사를 가진 상표이다.
그리고 그외에 약간 고급화한 브랜드인 해찬들[4]과 프레시안도 있고, 두부전문 브랜드인 행복한 콩, 역사와 전통의 다시다도 가지고 있으며 쁘띠첼[5], 맛밤, 맥스봉, 햇반, 인델리(레토르트 식품), 스팸(한국한정)도 CJ제일제당 제품이다.
다만, 음료 부문은 롯데칠성음료에 매각한 적이 있다.
3 역사
1953년 현 삼성그룹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창업했다.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을 설립한 종잣돈은 1951년 대구에서 출범한 삼성물산이 탄피를 수출해 번 돈에서 나왔다고 한다. # 당시 제일제당 공장은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분야 업체였다. 초기엔 설탕이나 사카린을 생산했다.
이후 이병철 회장의 3남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결정되고,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장남 이맹희쪽의 몫으로 삼성그룹 중에서 제일제당의 지분이 이병철 사후에 승계된다. 당시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에서 전통적인 주력계열사로서 그 비중 또한 삼성전자 못지 않게 컸는데[6],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이맹희 쪽으로 승계가 가능했던데에는 당시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의 입김이 컸다고 전해진다. 아무리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다고 해도 장남은 장남인 만큼 그 몫은 어느정도 챙겨줘야 한다며 강하게 어필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병철도 이에 어느정도는 공감하였는지 자신의 유언장에 이맹희에게 직접 경영권을 승계하도록 하지는 않았어도 장손이자 이맹희의 아들인 이재현에게 제일제당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형식으로 그 뜻을 대신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병철 본인도 장손에 대해 어느정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지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이맹희 회장이 본가에서 쫓겨났음에도 이재현씨와 그 모친인 이맹희 회장의 부인은 이병철 회장과 본가에서 함께 살았었다고 한다. 이병철 당시 회장이 직접 이재현씨에게 후계자 수업을 했다고도 한다. 장손인 이재현이 능력적으로 엄청난 역량을 발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삼성 주력 계열사인 제일제당을 승계하여 독립할 수 있었던건 바로 이러한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3년부터 이맹희의 아들이자 이병철의 장손인 이재현과 그의 누나인 이미경을 중심으로 2세대 경영이 본격화되어[7]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하여 4년뒤인 1997년에 법적으로 완전 독립하여 별개의 기업이 된다. 이때 정해진 그룹의 명칭 CJ는 제일제당의 영어 표기인 Cheil Jedang의 약자이다.왜 앞은 ch이고 뒤는 j인지는 따지지 말자 이후 CJ가 여러 분야에 진출하였지만 CJ의 이름부터 정신까지 그 근본은 여전히 제일제당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실제로 CJ는 제일제당을 내세워 이병철 회장의 후계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의 2대주주이기도 하다
4 논란
4.1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인턴 투신자살 사건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 인턴으로 입사한 김 군(19세)이 사내에서 상습적으로 행해지는 폭행과 강압 근무 등에 시달리다가 2014년 1월 20일 오전 7시 40분경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김 군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주 원인이 되었던 가해자는 상사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입사동기(27세 혹은 28세 추정)였다. 유족 측에서 불특정 다수의 직원들에게도 시달렸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주로 음주 강요와 이를 거부했을 때의 보복성으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뺨을 수차례 맞거나 단순히 얼차려에 그치지 않고 몸이 흔들렸다는 이유로 머리를 발로 차거나 밟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이 모든 범행이 입사동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폭행 사실을 알리지 말라며 협박까지 당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설 대비 물량을 맞추기 위해 추가 근무도 강요당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굿모닝충청 경향신문
2015년 3월 4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청소년 조기 취업생에 대한 산업재해 사망이 최초로 인정받게된 사례가 되었다.
관련기사 국제신문 경향신문
해당 사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기사 CJ다니던 고3 동준이는 왜 목숨을 끊었을까
5 기타
대검찰청(@spo_kr)과 동원참치(@dongwon_tuna), 한국민속촌(@koreanfolk), 홈플러스(@homeple)과 함께 기업 트위터(@CJcheiljedang)가 재미있기로 유명하다.
여담이지만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맞게 되는 링거도 생산하고 있다. 입원실 침대에 잉여롭게 누워서 할 짓이 없다면 (...) 링거에 써 있는 제조 회사를 보자. CJ제일제당이라고 써 있는걸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거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입원하려면 당장 그만 둬라! 하지만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가 CJ헬스케어로 분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표기를 보는 것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집밥 백선생의 식재료가 전부 이 회사 제품이다. tvN의 모태가 어느 회사인지만 알아도 이해될 것이다.
만약 전쟁이나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이 기업의 대부분의 시설들이 국가중요시설과 물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기도 하다. 밥이 주식인 한국인 특성상 긴급상황에 주식으로 활용될수있는 햇반을 생산하고 있으며, 장기보관이 가능한 스팸등 각종 간편식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 게다가 위에도 서술했지만 환자들에게 없어선 안될 물건중 하나인 링거 수액의 국내 물량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 ↑ 대박도 안나지만 쪽박도 안나는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가진 회사의 존재는 그룹의 생존에 중요하다. 큰 표시는 안 나지만 불황에 강하기 때문. 물론 그걸 너무 믿고 통 크게 사업 벌였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 ↑ 2015년 5월 15일 기준으로 시가총액 약 5조 6천억 원. CJ대한통운이 약 4조 4천억 원, CJ E&M이 약 2조 4천억 원, CJ오쇼핑이 약 2조 6천억 원. 지주사인 CJ 주식회사 제외.
- ↑ 물류, 광고, 쇼핑판매상품. 이 이상 필요한가?
- ↑ 前 삼원식품의 브랜드. 2000년에 CJ에 흡수합병됐다.
- ↑ 다른 쁘띠첼 제품은 홈페이지에 있지만, 음료수인 스퀴즈는 첨가물을 넣지 않다 보니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는 데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며 생산을 중단해서 없어졌다. CJ 쁘띠첼 스퀴즈 생산중단
- ↑ 1993년 이건희의 신경영체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삼성전자는 가전 중심의 산업구조에 반도체 산업을 넓혀가던 중이었으며, 해외에서도 일본의 유수 전자업체들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는 등 지금처럼 규모와 영향력이 엄청나지 않았다.
- ↑ 사실 이 당시 이재현과 이미경은 30대의 초중반의 나이였기에 대기업을 이끌어 가기에는 연륜이 부족한지라, 경영일선에서 손을 뗀 아버지 이맹희 대신에 외삼촌인 손경식이 후견인 역할로 공동회장을 역임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