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우주력 800년, 신 제국력 2년에 일어난 신영토 반란사건의 최종결전이다.

2 경과

2.1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하다

행성 우르바시에서 우르바시 사건이 일어나고 코르넬리우스 루츠의 사망 소식을 듣는 순간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결국 반란을 결정한다. 그때 로이엔탈은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에게 욥 트뤼니히트를 부르게 하고 부름을 받고 온 트뤼니히트를 감금하게 한 뒤, 이제르론 요새에 있는 이제르론 공화정부은하제국군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할 때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제국군을 저지해 준다면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구 동맹령 전역의 지배권을 넘겨주겠다는 제안을 한다.[1] 하지만 이제르론 공화정부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는 교섭인으로 온 무라이를 통해 이 제안을 거절한다.

사태의 혼란과 정보의 무질서가 아무렇게나 뒤엉켜 우주 전체에 불길한 파문을 확산시켜 나갔다. '황제 행방불명'이라는 비공식 정보는 제국의 수뇌부를 전율의 도가니로 밀어넣었다. 새 영토 총독부와의 사이에 정중하면서도 때로는 격렬한 통신이 교환되었으나, 그것은 의혹과 초조라는 장작을 쌓아놓고 불지피기만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10월 29일. 은하제국 총기함 브륜힐트 호는 '그림자의 성채' 주변에서 출하한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 휘하 함대에 의해 발견되어, 무사히 보호받고 있었다. 낭보는 즉각 새 수도 페잔으로 타전되었다.

11월 1일.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일행은 바렌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페잔 회랑에 진입, 볼프강 미터마이어의 영접을 받았다.

그때 라인하르트는

"사령장관에게 할 얘기가 있다. 경들은 잠깐 물러가 있게."
황제의 그 말 한 마디에 나이트하르트 뮐러 등은 군소리 없이 자리를 떠났다.
"미터마이어."

"네."
"경을 남긴 이유는 알고 있을 것이다. 로이엔탈은 당대의 명장이다. 그에게 맞서 승리할 수 있는 자는 제국 전군에 단 두 사람. 짐과 경밖에 없다."
"......"
"그래서 경을 남아 있으라 했던 거다. 의미는 알겠지?"

두 번 다시 되풀이할 것도 없었다. 미터마이어의 고개가 45도 각도로 꺾이었다. 흐르는 땀이 이마에 가느다란 실개울을 만들고 있었다.
"가혹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경과 로이엔탈은 10년 이상 생사를 함께 해 온 친구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한해 짐의 명령을 거절할 권리를 주겠다. 경에게 오히려 모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미터마이어는 다시 로이엔탈 토벌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없냐는 간청을 하지만 코르넬리아스 루츠의 죽음과 허겁지겁 달아나야 했던 굴욕감으로 화가 터졌던 라인하르트의 분노어린 답변만 듣었을 뿐이었다. 더불어 이게 오해라면 왜 여태까지 사죄는 커녕 어떤 반응도 없는 로이엔탈을 꾸짖는다. 그야말로 라인하르트의 분노에 대하여 미터마이어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친우인 로이엔탈을 토벌하겠다고 한다.
소설을 기준으로 사텐부르크의 우주함대 사령부에서 지시를 내린 미터마이어는 바이어라인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토벌칙령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서 밝혔다. 바로 '카이저의 손을 더럽힐 순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라인하르트가 친정으로 로이엔탈을 토벌한다면 황제의 손에 반역자의 피가 물들게 되는 것이고, 그건 곧 장병들의 황제라는 라인하르트의 대한 순수한 신앙심이 깨지는, 소위 양 웬리에게 패배한 황제보다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대략적인 출정준비를 마친 미터마이어는 그 전에 하이드리히 랑을 손수 죽이려다가 울리히 케슬러에게 저지당하고 그 뒤 바로 랑은 체포된다[2].

이후 토벌부대를 맡은 미터마이어로부터 로이엔탈에게 초광속통신이 전해졌다.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른 뒤에, 처음으로 두 친구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통신장교로부터 그 보고를 받았을 때 로이엔탈은 잠시 망설였으나 통신을 자기의 개인 집무실로 접선시키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내가 말하기는 우습지만 카이저를 부탁한다[3] 는 전언과 함께 통신을 끊어버린다. 미터마이어는 통신이 끊긴 뒤 미칠 듯이 분통을 터뜨렸는데, 원작에서는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장교 같았다 고 묘사한다. 한편 로이엔탈이 지휘하는 병사들은 곳곳에서 무기를 지닌 채, 자기들의 정당성이나 싸우는 명분에 대해 토론을 일삼곤 했다.

"우린 단지 따라갈 뿐이야. 달리 무엇을 할 수가 있겠어?"

"황제와 싸운다지만 그 황제는 바로 우리의 황제 아냐?"
"황제와 싸운다는 것은 곧 우리가 역적이란 뜻이 아닌가?"
"아냐, 폐하와 싸우는 게 아냐. 폐하 측근에 있으면서 폐하를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학정을 일삼는 간신도배들을 타도하는 싸움이야."
"군무상서 말인가? 나도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진 않아. 그렇지만 그가 사리사욕이나 채우는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어."
"누가 봤어? 모르긴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서 폐하께서 와병하시면 그 사람이 국정을 제멋대로 휘두른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던데 뭘."
"어쨌든 지금 싸울 상대는 폐하도 아니고 군무상서도 아냐. 볼프 데어 슈트룸(질풍 볼프)라구."

그 말에 병사들은 약속이라도 해둔 듯이 침묵으로 돌아섰다. 서로가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시무룩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이건 우주 최대의 강적과의 단판승부구먼.'하는 나직한 소리가 실내에 감돌았다.

신제국력 2년 11월. 우주는 오스카 폰 로이엔탈볼프강 미터마이어라는 희대의 전략가, 용병가인 이 두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양 웬리의 죽음이 전쟁을 종식시켜 주었다는 기대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로이엔탈이 이때 세운 작전계획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미터마이어 군의 침공을 맞아 싸우기 위해 신영토 각처에 배치된 병력으로 몇겹의 방어선을 구축, 적에게 최대한의 손해를 입힘으로써 그 전진 속도를 둔화시킨다.

2).적이 후퇴할 때엔 각처에 배치한 병력을 재집결시켜 퇴로를 차단하는 한편, 하이네센으로부터 출동하는 주력부대를 앞뒤에서 협공하여 패배로 몰아넣는다.

첫번째 작전의 경우는 이제르론 공화정부에서 신제국에 협력해서 제국군의 통과를 허용한 탓에 실패했으며, 두번째 작전은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이 수월하게 충족했어도 준비만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두번째 작전이 미처 발동도 걸지 못한 상태에서 막을 내린 이유는 미터마이어가 주어진 별명에 걸맞게 다른 용병가들로선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속도로 진격하여 로이엔탈에게 작전을 구축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로이엔탈도 그 점을 감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예측은 했었는데 결과가 그 예측의 최악의 지점을 짚었다고나 할까.

11월 24일. 로이엔탈 군대와 미터마이어 군대는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대치했다. 지난날 자유행성동맹군의 알렉산드르 뷔코크 원수가, 내침한 은하제국군을 맞아 싸운 그곳은 전략적으로 쌍방 모두 놓쳐서는 안 될 요충지였다.(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참고.) 게다가 로이엔탈 입장에서는 이제트론 회랑을 통해 온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군대와의 협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교전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2.2 검에 살고

9시 50분, 쌍방의 거리가 5.4광초(光秒)에 접근했을 때 극히 짧은 순간의 공백이 통신회로를 가득 채웠다. 명령과 외침이 그속에서 뒤엉켜 광란의 춤을 추었다.

'제 2차 란테마리오 전투' 또는 '쌍벽의 쟁탈전'으로 불리는 이 격전에 참가한 병력은 로이엔탈 군 520만, 미터마이어 군 259만으로 전자가 양적 우세를 보였다. 그런 까닭에 로이엔탈은 공세로 미터마이어는 수세로 작전을 이끌어나갔다. 그것이 양자의 기본자세였는데 미터마이어는 직접 지휘하에 있는 기동전력을 최대한으로 활용, 로이엔탈의 침투를 그때그때 순발력있게 막아내 좀처럼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았다.

여기서 미터마이어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먼저 도전을 시도한 것은 로이엔탈이 각개격파를 목적으로 나올 것을 예상, 지구책(持久策)을 버리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전술적으로는 단기결전, 전략 차원에선 아군이 후속병력이 확보될 때까지 수비를 고수함으로써 최종 국면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겠다는 것이 미터마이어의 기본자세였던 셈이다.

전력이 균형을 이루는 시기는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11월 25일 8시 30분.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이 전장에 도착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전속 항진하는 바람에 탈락자가 더러 생기긴 했지만, 1만여 척이 넘는 새 전력의 참전은 당장 전국 전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미터마이어에게 아침식사 할 시간을 남겨주자며 비텐펠트의 기함 쾨니히스 티거는 병사들의 선두에 서서 맹추격을 시작했다. [4]

기함 트리스탄의 브리지에서 슈바르츠 란첸리터 참전 소식을 들은 로이엔탈이 크게 혀를 찼고, 그런 혼전중에 그것을 노리고 있기라도 했던 듯 미터마이어 주력함대가 주포 3발을 연발로 쏘아댔다. 그러면서 고밀도의 화력을 집중시키며 빈틈없는 전진자세를 취했다. 시각은 정각 9시 15분이었다.

슈바르츠 란첸리터 함대는 파렌하이트 함대와 섞인 혼성함대에다가 또한 유능하고 개성이 강한 부대인 만큼 다른 부대와의 융합도 쉽지 않아,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제국군 동지끼리의 싸움이니 똑같은 형태의 함정이 뒤섞여 피차 적과 아군을 구 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제 2차 란테마리오 전투의 특징이 바로 이 혼전이었다. 또한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장군이 전사한 원인은 '회랑의 전투'에서 비텐펠트가 저돌적으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병사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3년 전 '립슈타트 전투'때에 로이엔탈이 이끌었던 라인하르트 군과 싸웠던 자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는 점이 사기앙양에 지장을 주기도 했다.

25일 19시. 슈바르츠 란첸레이터 함대에 이어 봐렌 함대도 작전을 개시함으로써 양군의 전력비(戰力比)는 거의 대등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 동안 밀리면서도 인내로써 수세를 고집했던 미터마이어로서는, 이제 우세를 확신해도 좋을 만했다. 그러나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함대가 적의 일부 병력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추격하다가 너무 깊이 들어가는 바람에 바로 그 양동부대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한 것이었다. 바이엘라인에게는 로이엔탈의 계책에 말려들지 말라고 미리 주의를 해두었건만, 정신없이 추적하다가 공세에 미처 제동을 걸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로이엔탈은 그걸 보며 "풋내기에게 용병술을 가르쳐 주면서까지 싸워야 하다니, 짜증이 나는군 그래. 안 그런가, 레켄도르프?"라고 말했다 반면에 바이어라인은 필사적으로 반격을 시도하며 그곳에서 빠져나가려 했으나, 선수를 빼앗기고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바이어라인 함대는 미터마이어에게 구조되기까지 많은 손실을 입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큰 타격은 부사령관 레머 중장을 위시한 세 명의 장군을 잃은 것이었다.

"힘껏 해보았습니다만, 결국은 이 꼴이 되었습니다. 기꺼이 군법에 의한 처벌을 받겠습니다." 통신스크린에 나타나 고개를 떨구는 바이어라인에게, 미터마이어는 웃지는 않았지만 부드럽게 말했다."그렇게 완료형으로 단정하는 것은 좀 성급한 것 같다. 그 후의 접속사가 남아 있으니 힘을 내게."
이 상황에서 미터마이어는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의 배신이나 거기에 브루노 폰 크나프슈타인이 말려들어간 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로이엔탈과 생사를 함께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전력을 집중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 11월 29일 06시 09분에 크나프슈타인은 이 내전에서 타산에 맞지 않는 가장 낭비적인 죽음을 당했다. 더구나 그것을 아는 자는 단 한 사람, 그를 이중의 반역행위로 유인한 그릴파르처 뿐이었다.
그의 부보(訃報)가 로이엔탈에게 알려진 것은 10분 후였다.

그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점점 밀리다가 패주직전 상황까지 갔는데 비텐펠트가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놈은 쾨니히스 티거의 주포로 날려버려라! 그러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란 발언으로 부하들에게 E를 클릭호통을 쳤고 부참모장 오이겐 소장이 진로를 차단하고 좌우로 질주하면서 쌍욕이 섞인 불호령을 퍼부어댔다. 그 결과 각 함정이 다시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슈바르츠 란첸리터 함대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로이엔탈 왈, "악명 높은 것도 쓸모있군."

더군다나 "고(故) 파렌하이트 원수의 용맹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 슈바르츠 란첸라이터 멧돼지 놈들에게 뒤져선 고인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 진격, 진격이다!"라고 파렌하이트 휘하의 용장으로 알려진 호프마이스터 중장이 선두에 나서서 반격으로 나서는 바람에 오히려 더 용전했다.

11월 30일. 아직도 전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쌍방의 지휘관은 호각지세의 역량을 갖고 서로 상대방의 전술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따라서 그때그때 신속하게 대처하다 보니, 피해를 입어도 치명적인 상태에는 이르지 않아 차츰 지구전의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2월 1일 16시. 항상 전화(戰火)의 중심부에 있던 비텐펠트가 일시 후퇴하여 함렬을 재편하는 바람에 로이엔탈 군이 적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로이엔탈은 정면의 전력을 줄인 다음, 집중 포화를 퍼부어 미터마이어 군의 전진을 저지했다. 그러는 한편 기동력 중심의 직속부대를 지휘, 적의 왼쪽 측면을 찌르려고 했다.

그 작전이 성공하면 반포위의 고리에 의해 미터마이어 군은 좌우로부터 화력의 세례를 받아 꼼짝달싹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함몰될 것이었다.하지만 이 극적인 공세는 아우구스트 자무웰 봐렌 상급대장이 신속하게 맞서 나오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릴파르처도 사령관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그의 전 부하가 미터마이어에게 과감하게 응수해서 이번에도 배신을 할 타이밍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5] 그 와중에 미터마이어 군은 약 60만 킬로미터의 긴 거리를 후퇴했다.

2.3 검에 죽다

12월 3일 율리안 민츠가 중립을 결정한 결과물이 모양을 갖추어 전장에 전달되었다. "이제르론 회랑 방면으로부터 행성 하이네센을 향해 대부대가 전진하고 있습니다."로이엔탈의 부관 에밀 폰 레켄도르프 소령이 중대한 보고를 올리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치닫기 시작했다.

에르네스트 메크링거의 부대가 증원으로 도착한것이었다. 이때 로이엔탈은, 허공을 향해 혼잣말로 논평을 했다."이제르론 쥐새끼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전략적 시야를 가진 게 분명해. 아니 그 거꾸로야. 좋은 참모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겠지. 그 메르카츠 노인의 입김일 거야." 사실 그건 빗나간 상상이었다. 로이엔탈이 말하는 이른바 '이제르론의 쥐새끼'는 그 혼자 검토하고 판단하고 선택한 다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적어도 살아서 말을 할 수 있는 자의 의견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로이엔탈은 율리안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선 정확하게 파악했다. 말하자면 제국군에게 빚을 지게 한 다음, 그것을 장래의 정치적 재료로 사용할 것이다. 또한 메크링거를 통과시킴으로 해서 회랑의 제국 본토쪽 출구에서 전쟁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실로 정확한 판단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으니 싸움을 계속해 나간다는 건 진 셈이나 다름없었다. 메크링거까지 가세했으니 이제 병력 수로는 로이엔탈군이 밀리게 되어 후퇴를 결정했지만 미터마이어는 좌․우 양 날개에 봐렌과 비텐펠트를 완전히 자기 관제하에 두고서 로이엔탈 군의 좌우 양쪽을 교대로 공격하여 손해를 입힘으로써 확실하게 압박하는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이엔탈은 직속부대를 이용한 포화로써 적의 전진을 일시 정지시킨 다음 그 틈을 이용하여 병력을 순차적으로 전선에서 이탈시켜 별다른 희생없이 후퇴를 해냈던 것이다. 동시간대에 메크링거의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율리안 민츠에게 길을 터준 고마움을 잊지않았다.

12월 7일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의 함대가 오스카 폰 로이엔탈을 배신했지만 잠시후 그릴파르처의 배신행위는 즉각 노도의 반격을 받았다.

"비겁한 놈, 너에게 공을 거저 안겨줄 순 없다. 죽음의 동반자가 생기다니, 그렇지 않아도 원했던 바다. 저승에 가서 전사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신상에 좋으리라." 그렇게 외치며, 더욱 열광적으로 반격한 부대가 크나프슈타인의 옛 부하들이었다는 사실은 정말 해학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전사한 자기들의 사령관을 애도하는 마음을 그릴파르처를 향해 폭발시키려 했던 것같이 보였다.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 전 생애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그릇된 행동을 취함으로써, 그때까지 어렵게 쌓아올린 공적이 하루 아침에 무산되고 마는 불행한 인간군상들의 대열에 그는 끼고 말았던 것이다.

에밀 폰 레켄도르프를 포함한 로이엔탈의 부하들은 그를 응징하자고했으나 그는 그릴파르처가 어떻게 될지 잘 알기 때문에 냅두었다.[6]

그가 항복교섭의 상대로 바렌 장군을 선택한 것은, 미터마이어가 로이엔탈과는 너무 가까운 친구 사이여서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교활함을 변명할 수는 없었고, 또 그것을 상대방에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미터마이어는 더러운 놈이라고 욕을 퍼부으면서 투항자와 얼굴을 맞대기를 거절했다. 그를 만나면 사죄의 말을 듣기 전에 자기가 살인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 결말

이 싸움은 이렇게 끝나고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자신이 죽은 뒤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율리우스 엘스하이머에게 뒤를 부탁하고 호텔 유포니아의 신영토 총독부에서 지구교와 함께 은영전 내에서 천하의 개쌍놈 1위권을 다투던 욥 트뤼니히트를 쏴죽이는 마지막 선행을 하고 숨을 거둔다.

그리고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에 이은 상관의 죽음에 슬퍼하며 자살하여 미터마이어를 우울하게 하고 폴카 악셀 폰 뷔로를 절망시켰다.

볼프강 미터마이어는 이 싸움의 승자로 불릴 때마다 "나에게는 비텐펠트바렌이 있었지만, 로이엔탈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쪽이 승자라 불릴 가치가 있는지는 이론의 여지도 없다."라고, 자신이 사실상 졌다며 정정했다.
  1. 로이엔탈은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덤으로 욥 트뤼니히트를 끼워준다는 조건까지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이 조건은 빠졌다.
  2. 우르바시 사건을 전후처리하던 신영토쪽의 제국군의 전후처리 시간대와 더불어 루츠가 죽기 전에 했던 조사가 올린 쾌거였다.
  3. 이 마지막 전언은 을지서적판에서 잘렸다. 을지서적을 죽입시다 을지서적은 나의 원수
  4. 이 때 풍문으로는, 비텐펠트는 아침 식사로 프랑크 소세지에 머스터드 소스를 잔뜩 발라 씹어먹으며 지휘봉을 휘둘렀다고 한다. 애니에서도 머스타드 소스는 갖다 버렸지만 소시지를 들고 이빨로 부러뜨려 먹는 것이 인상적.(...) 에에이! 제국의 소시지는 강철인가!
  5. 더군다나 회선으로 배신하려해도 근처에 로이엔탈이 있어서 실패했다.
  6. 그릴파르처는 5중의 추태를 드러내고 말았다. 즉 첫째 황제 라인하르트에 대한 로이엔탈의 모반에 가담한 것, 둘째 표면적이라 하더라도 일단 로이엔탈과의 맹세를 배신한 것, 셋째 배신한 시기를 잘못 택했다는 것, 넷째 배신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고 로이엔탈에게 격파당했다는 것, 다섯째 그 어떤 결실도 맺지 못한 상태에서 진압군에게 두 손 들고 항복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