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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터키의 관계.
Kore-Türkiye ilişkilerinin Cumhuriyeti
1 개요
한국 전쟁에서 UN군 파병규모 4위로 참전. 심지어 터키 이슬람계에서는 한국 전쟁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지하드로 규정하기도 했다는 말도 있다. 흠좀무(...).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1949년 합법 정부 승인. 1957년 수교하였다. 아이러니한건, 한국전쟁 때는 터키가 그리 싫어하는 그리스도 대한민국에 파병을 왔다.
터키인은 스스로를 '튀르크'라고 부른다. 튀르크는 한자 가차로 쓰면 돌궐이다. 한때 돌궐과 고구려는 옛부터 동맹으로 우호적인 관계였고, 그때문에 터키의 교과서에는 고구려와 '형제의 나라'라고 실려있어 터키인들은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라 생각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이에 주터키 한국대사관에서 터키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터키 역사 교과서들을 검사하여 고구려에 대한 언급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접촉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 외의 언급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도 역시 없었다. 외교부 민원 게시판
2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은 과장인가?
아이스크림~ 유스크림~ 맛있어요! 아이스크림! 쫀득쫀득 아이스크림![1][2] 가끔 '존나 쫀득'이라고도 한다.
전술하였듯이 이 표현 자체는 터키 교과서에서도 동일한 의미의 글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로서 고구려와의 접촉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3] 사실 터키인들이 한국에 대해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이슬람권 특유 문화로서, '피를 나눈 형제(kan kardeş, 칸 카르데시)'라는 말은 한국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국에게도 흔하게 사용된다.
심지어 1차 대전 때 갈리폴리 전투에서 피 튀기게 싸운 호주, 뉴질랜드군에게도 형제라고 하고 있고이쪽은 오스만 제국 때, 지금도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4] 그리스(!)에게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헤프다. 우린 자네 같은 형제 둔 적 없네!
그래도 한국과 나름대로 우호적 국민 정서를 공유하는 만큼 좋게 표현하자면 의형제 정도? 그런데 터키에 큰 재난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적이 있다. 일본 재난은 그렇게나 신경 썼으면서. 사실 한국은 츤데레?[5]
여담으로, 이전에 터키와 일본이 형제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는 1890년 오스만 제국 군함 에르토으룰(Ertugrul)호가 일본 탐방 도중에 일본 근해에서 사고로 침몰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를 냈는데, 일본에서 이들 구조에 꽤나 열정을 기울여서 터키에서도 잘 알려졌기에 그렇다. 어투그룰 침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또한, 터키 극우들 가운데 일부는 한국과 일본을 형제의 나라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의 튀르크계 위구르인들도 동족으로 보며 그런 이곳에서 일부 튀르크인들이 한국이나 일본으로 건너가 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형제의 나라로 보기도 한다.[6] 한마디로 전 세계가 다 위 아 더 월드?
한국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지원을 보내줬다고 알려져[7] 형제의 나라로 급부상, 지금은 상당한 인지도를 지녔다. 사실, 이는 특히 반소련감정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와의 불편한 관계는 터키항목 참조.
파일:Attachment/한국-터키 관계/b0014125 4cdbf150daba1.jpg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에 관한 이야기는 금양장리 전투를 참조할 것.
이 당시 터키에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국산품 애용 운동을 하면 외국산을 쓰려면 한국산을 쓰자고 한다든가, 터키에 여행을 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대우를 잘 해 준다든가. 심지어 당시 유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많은 식당들이 한국인 학생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멀리서 온 형제에게 무슨 돈이냐고. 그리고 지금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한국전쟁 당시의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인지 여전히 한국을 굉장히 가난한 나라로 생각한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신앙의 수호자'라는 뜻인 가지(Gazi)칭호가 붙어서 코레 가지(Kore gazi)라고 칭하며, 자기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가 코레 가지라며 환대해 주는 모습도 아직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성을 한국인(koreli)으로 바꾼 분도 계시다고(...). 2002년 월드컵 당시 3, 4위전에서 대형 태극기와 함께 대형 아이 이을드즈(Ay yıldız)가 펼쳐져 터키인들이 꽤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8][9]
현재에도 여전히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좋은 편으로, 특히 해외 관광지에서 동양인을 발견하면 일본어보다 한국어로 먼저 인사하는 동네들 중 하나. 방문 경험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는 동양인을 보자마자 "꼰니찌와 미쑤비시 또요타 이랏샤이!"를 외치는 데 비해, 터키 안탈리아의 시장 골목에서 "대뜸 고등어 케밥 구경하고 가세요!"라는 또렷한 한국말을 들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감동머거써
한국이나 터키나 서로에게 해코지 한 것도 없으며, 터키 현지에서도 한류 등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높다고 한다. 특히 터키가 유럽에서 왕따(...)이기 때문에 그래도 터키인에게 호감을 가진 나라인 한국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2002년 월드컵을 보라!) 현지 터키인들에게 호감을 준 탓도 있다. 물론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사실 한국인들 중에도 터키는 잘 알면서 터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딱히 특별한 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친한 척하면서 한국을 치켜 세워주는 일부 터키인들도 있는데 조심하자. 물론, 이건 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엔 항상 발생하는 흔하디 흔한 일이긴 하지만...
연평도 포격 사태 동영상을 본 터키인이 "한국은 혼자가 아니다. 50년 전 내 할아버지께서 한국을 위해 싸웠고, 나도 그럴 것이다. 터키에서(South Korea is not alone. my grandfather fought for Korea back in 50's i would do to same. greetings from Turkey.)"라는 글을 올려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부라더 목매요
여담상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앙카라 공원이 있는데 공원이름이 터키 수도 앙카라 시(市)에서 본땄다고 하고 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가 터키 앙카라 시와 함께 양국 수도끼리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마찬가지로 터키 수도 앙카라에도 한국공원(Kore parkı)가 있다. 울루스역에서 바흐첼리에빌레르로 가는 돌무쉬를 타고 5분쯤 가면 보이는데, 건너편에 아타튀르크 문화센터가 있고, 공원에는 석가탑을 본뜬 조형물과 박정희 정권 시절에 세운 기념비가 있다.
다만, 1980년대만 해도 원래 관리하기로 했던 한국 측이 관리를 신경쓰지 않아서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나마 1990년대 와서 한국인도 터키에 많이 오면서 상태가 엉망이라는 비난이 속출하면서 많이 나아진 셈. 비슷한 사례로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서울 플라자도 관리가 엉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은 삼성그룹을 삼숭으로 부르는데 때론 터키 도시인 삼순(Samsun)과 거의 똑같다고 친밀감이 든다는 반응이 있다. 덕분에 터키인이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뒤집어진다. 다만 터키 사진작가 아쉬츠 아라프의 글을 보면 터키인들 중에도 삼성이 한국 그룹인지 모르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때는 한국에 거주하던 터키인 4명이 "형제의 나라"로서 모른 척할 수 없다며 희생자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 자원봉사자들에 케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잔칫집도 아닌데 케밥 때문에 사람들이 줄서고 들떠있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다고 건의, 때문에 이날 오전 중에 철수했다고는 했지만 다음 날 터키인과 생방송중 인터뷰를 했는데[10] 케밥을 나눠주는 동안 일부에서 불만이 있었고 준비했던 고기는 절반 정도밖에 나눠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음료수와 과일은 대부분 전달하지 못하고 점심 쯤에 철수하게 되었고 남은 과일과 음료수는 주변 봉사활동단에게 기증하고 철수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과 일본은 터키와 외교 담당을 아시아 부처에서 맡지만, 한국은 유럽 부처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한국도 아시아 부처로 넘기려 한 적이 있었지만, 터키 측의 결사반대에 그냥 취소해 버렸다고.
3 정책적 파트너 관계
한국에게 상당히 이익이 되는 나라. 매년 수십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37억달러를 수출하고 3억달러를 수입한다.(2008년 기준)
방위산업쪽에서는 누구보다도 큰 고객. K-9, K-2 흑표, KT-1등 한국제 무기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그 밖에도 KFX계획에 참가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국방에 있어서는 한국과 대단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1]
2012년 양국 국회에서 FTA 협상안이 통과되어 FTA협약국이 되었다. 향후 7년이내에 양국간 관세가 완전 철폐될 예정. 2013년 5월 1일 발효되었다.
또한 2013년 8월 31일부터 9월 22일까지 23일간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됐다. 이를 계기로 양국간의 문화적 교류도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 홈페이지
터키 정부는 2016년 3월 4일 한국, 중국, 베트남 등에서 수입하는 휴대전화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해당 조치 없이 종결한다고 발표했다. 터키는 현지시간 4일 오전 0시(한국시간 오전 7시) 관보에 이런 내용을 게재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세이프가드는 외국에서 특정 상품 수입이 급증해 '심각한 피해'가 우려될 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취하는 조치로, 터키 정부는 2014년 12월 현지 업체인 베스텔사의 제소로 수입 휴대전화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개시했다. 기사
4 북한과 터키
참고로 북한하고는 2001년까지는 미수교 상태였다가 2001년 6월 27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교했다.
5 돌궐과 고구려의 우호관계가 한-터키 우호관계의 배경이었다?
터키의 전신인 돌궐과 고구려가 고대부터 우호관계였고, 이것이 현대 대한민국과 터키의 좋은 관계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설. 2002년 월드컵 때 터키 대 대한민국의 3,4위전 즈음 있었던 한국 김대중 정부의 대터키 무기판매 당시 한 터키 우호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런 돌궐과 고구려가 친선관계를 맺은게 현대 한-터 우호관계의 배경이 되었다는 말이 퍼진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인 고증을 해보자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는 사안이다.
고구려와 돌궐이 최초로 접촉한 사례는 551년에 돌궐이 고구려의 신성과 백암성을 선제공격하고 고구려가 이를 방어한 전쟁에서부터이다.[12] 여튼 중국측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고구려와 돌궐의 전투는 일회성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이후 유연을 몰아내고 몽골을 장악한 돌궐과 요동의 고구려가 양강 사이에 위치한 말갈, 거란 등의 부족국가들의 주도권을 두고 충돌하면서 지속된다. 이러한 대립은 고수전쟁 직전인 580년에 가서야 고구려가 돌궐을 공격하여 이르긴 샤드의 부대를 격파하면서 마무리된다.[13] 하지만 여기서 양자의 대립이 끝나지 않고 마침 돌궐이 수-당에 복속되어 휘하 용병으로 편성되면서 돌궐이 중국에 딸려 고구려로 처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진다.
초기에만 이렇게 돌궐과 고구려가 충돌했지 나중에는 통일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 고수전쟁 발발의 원인중 하나가 바로 돌궐인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수나라 황제가 돌궐에 방문했을때 돌궐측에서 돌궐에 내방한 고구려 사신을 수나라 황제에게 보여주는 바람에 수나라는 고구려가 돌궐과 손잡고 본국을 치려는줄 알고 노발대발해버려 돌궐때문에 고구려만 엿먹는 상황이 발생한 것. 물론 그 이후로도 돌궐과 고구려가 손을 잡았다는 기록은 없다. 단지 유연과 고구려가 손을 잡았으니 돌궐과 고구려도 그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되는 것. 교과서에서 돌궐과 고구려의 동맹을 강조하지만 요즘은 삼국시대 말기에 여제동맹이 없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 처럼 돌궐과 고구려의 동맹도 없었던 것 같다는 주장이 많다.
사실 돌궐은 고구려가 아닌 발해와 동맹 관계였는데 이게 와전된 것이 크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정식 국호가 고려였고 일본 등에도 고려왕이라는 이름으로 국서를 보내 외국인들은 헷갈릴 만 했다. 고구려-돌궐과 달리 발해-돌궐은 맹방으로 돌궐은 발해의 몇 안되는 우호 국가였다.
물론 현대 터키공화국의 전신은 튀르크멘 즉 오우즈 부족이고 돌궐은 아직 부족별로 분열되기 이전이다. 일찍이 튀르크 제족 중 철륵(현재의 위구르와 우즈벡)이 갈라져 나왔으며 철륵이 아닌 튀르크 중에서 카자흐, 오우즈, 타타르, 투바, 야쿠트, 케레이트, 나이만 등 나머지 종족이 갈라져 나왔다. 이 중 굳이 돌궐을 계승했다 할만한 나라는 사실 카자흐스탄이다. 어쩄든 카자흐스탄이나 터키나 모두 튀르크계 국가로 돌궐을 자신의 역사로 보고 계승의식을 갖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엄연히 발해를 계승했다 주장할 만하기 때문에 억지는 아니다.
사실,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굳이 친해지는 관계에다 토를 달 이유도 별로 없다. 터키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큰 형님 노릇을 하는 엄연한 지역강국이고 군사적으로도 가까운 관계이며 이슬람권이나 동유럽 진출 교두보로도 쓸수 있어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나라다. 더군다나, 터키는 이해관계가 충돌할만한 이웃나라도 아니니까 검증되지 않은 과거의 동맹을 따지기보다는 현재의 친한관계를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그리고 고구려나 발해와의 관계가 발전한 것이라면 남한이 아니라 옛 고구려, 발해 땅을 훨씬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이랑 형제의 나라였겠지? 하지만, 북한과는 안 친한 것으로 보인다.
6 관련 항목
- ↑ 관광하면서 길거리 다닐 때 몇몇 아이스크림 상인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어로 저렇게 말한다. 하지만 놀려먹는 건 한국에서나 터키에서나...
심지어 터키에서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아이스크림!이라고 외친다 - ↑ 관광 상품 팔 때도 "원 달러!"가 아니라 "일 달러!"라고 외칠 정도다. 그럼 다들 피식 대면서 사준다.
- ↑ 고대 돌궐에서 세운 비문에서 고구려를 뵈퀼리(Böküli)라는 이름으로 동맹국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기는 하다.
- ↑ 오스만 때는 글리스가 지배를 받았지만 19세기 말에 독립, 그러다 오스만 제국이 해체될 때 그리스가 덤벼들어 아타튀르크가 이를 막아내며 터키 공화국을 만들었고, 요즘에도 키프로스를 두고 다투는 사이다. 미승인국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을 만들어 사실상 분단.
불곰국이 이걸따라하고 있나?? - ↑ 1999년 이즈미르 대지진 당시 한국 정부가 보낸 구호금은 7000만 원(...) 외환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시기라서 실드 칠 여지는 있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라 이걸 보고 국민들이 따로 구호금을 모금해서 보내기도 했다.
- ↑ 경주 설씨(卨氏)같은 경우 위구르에서 온 조상 설손이 시조다.
- ↑ 사실 2위가 아니라 4위였다. 1위는 말할 필요도 없고, 2위는 영국, 3위는 캐나다
- ↑ 이때 한국은 '그냥 훈훈한갑다.'하고 끝났지만 터키에선 한 달 이상 이 사실을 주요 뉴스로 내보냈을 정도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어야 할 판에 터키 국기를 흔들며 친선을 도모했으니 터키 사람들 입장에선 엄청난 충격이였다. 이는 당시 터키 선수들도 경기 시작 전 충격을 먹고 믿기지 않아했던 장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무튼 이때를 계기로 한국과 터키간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 ↑ 참고로 한 위키러의 지인이 정말 우연찮게 터키로 출장을 갔는데 호텔에서 직원들이 '당신 한국 사람?' 이라고 질문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최상급 스위트룸으로 방을 바꿔주고 주위에 있던 터키인들이 흥분해서 연신 형제님 고맙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악수해줬다고...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 한다.
- ↑ 이 때 인터뷰를 했던 터키인이 바로 영화 초능력자와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에네스 카야. 당시 에네스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에 앵커가 놀라워했다고 한다.
- ↑ 하지만 방위산업쪽에서의 터키가 마냥 물주만인것도 아닌게 K-9자주포 기술과 부품을 사가서 자기나름대로의 자주포를 개발해 배치하는거야 당연하지만 타국에 수출도 했다고 한다. KFX도 이미 인도네시아를 끌어들인 한국입장에서 터키가 너무 많은 지분을 요구해서 협상에 난항이 있었다고 한다. 즉, 부족한 개발비분담등을 위해 참여국들이 있는건 좋지만 개발 주도권은 한국이 쥐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될 상황이 초래될까봐(...). 그밖에도 대응구매(터키가 한국제 무기를 사면 한국도 터키제 방산물자를 어느정도 구매해야 한다.)요구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 터키도 생각없이 구매만 해가는 건 아닌 셈. 근데 사실 이게 정상이다.
우리가 미국에게 꼬불쳐 온 것을 생각해 보자 - ↑ 이때 몽골초원의 서쪽에 있던 돌궐이 자신을 지배하던 몽골초원의 유연을 밀어내지도 못했는데 어찌 유연의 동쪽에 있는 고구려까지 처들어왔냐는 의문에 근거하여 551년이 아니라 좀더 뒤의 일인데 삼국사기 기록 당시 연도를 분실하여 551년에 끼워맞춘게 아닌가하는 주장도 있다. 이 기록은 중국측에는 없고 오로지 한국측에만 존재하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기록이다.
- ↑ 샤드가 동돌궐의 2인자인 점으로 보아 꽤 크게 충돌했던 것 같다. 참고로 이때 신라와 백제가 북진하여 죽령 이북의 땅을 빼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