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외교

< 터키

1 개요

"늙은 터키인과 젊은 세르비아인을 보면 긴장해라." - 그리스 속담

"터키인들이 지나간 땅에는 100년 동안 열매가 맺지 못한다." - 독일 속담
"터키인들이 지나간 땅에는 어떤 잡초도 자라지 않는다." - 아랍 속담
"터키인들의 말이 한번 지나갔다 하면, 그곳의 풀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 - 영국 속담
"한 터키인이 '낙원'이란 말을 들었다 치자, 그는 물을 것이다. "그곳은 금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땅이오?" - 페르시아 속담
"돌풍 없이 추위는 없다. 터키인이 없으면 나쁜 손님도 없다." - 세르비아 속담
"사람이 달리면 바람과 먼지가 휘날리지만 터키인이 달리면 무력이 같이 휘날린다." - 알바니아 속담

터키의 외교 관계에 대한 항목이다. 터키는 과거부터 흠좀무하고 스펙타클했던 역사적인 문제 탓인지, 터키의 이웃나라들의 속담에는 터키인들을 욕하는 말들이 널리고 널렸다.

2 그리스 - 터키 관계

터키 입장에서는 그리스는 나의 원수다. 물론, 그리스 입장에서도 터키는 마찬가지.

그러나, 웃기는 사실은 두 국가의 현재 국민들은 중세시대부터 워낙에 혼혈로 계속 얽혀져서 현재는 인종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남아시아어떤 두 나라의 관계도 이웃나라이면서 적대관계인 점에서 비슷할지도...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사실 다 필요없고, 위의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축구 국가대항전 A매치에서 국가를 부르는 두 영상을 자세히 보자. 각각 터키 홈경기일때와 그리스 홈경기일때 터키 VS 그리스 상황에서 양국 국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았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로 야유를 하는 상황이다.

터키 국가는 1921년 그리스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가 두쪽나기 직전에 건국되었고 그리스도 역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던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두 국가 모두 사이가 정말 살벌하다. 노래로까지 서로에게 야유를 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3 터키 - 동유럽 관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헝가리등 동유럽 국가들에서 터키는 그리스보다도 인식이 더 안 좋다. 그래서 동유럽인들에게 한국인이 터키를 형제국가로 한다고 운운하는 것을 보면 아마 한국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터키가 수백년동안 동유럽을 지배하면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은근히 차별을 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으로 차별하지는 않았고 근대화 개혁 이전까지 오스만 국법에 민족의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무슬림이냐? 아니냐?"로 차별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진출하기 이전까지 동유럽인들 가운데 무슬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특히나 오스만 제국이 잘 나가던 리즈 시절에는 좋든 싫든 지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1] 16세기 후반 이후 오스만 체제가 흔들리면서 세금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하자 점차 불만이 생겨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반란을 효율적으로 진압하기는커녕 세르비아 정교의 창시자인 성 사바의 유골을 소각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1596년부터 1597년까지 세르비아인 가운데 일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한 이후, 반역자들의 기세를 꺾겠답시고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성 사바는 세르비아의 성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윗자리로, 조악하게나마 한국사로 비유한다면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일본이 태조 이성계의 묘를 파헤치고 유골을 날려버린 격이다. 즉, 반역자들의 기세를 꺾기는커녕 일단 진압한 불씨에 기름을 붓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잘 나가던 리즈 시절에 수많은 타 국가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결과 세르비아인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인, 알바니아인 등의 반란이 산발적으로 뒤따랐으며 그것들을 일일이 진압해야 했던 오스만 제국과 타국 정부와의 관계는 꾸준히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근대에 민족주의가 유입되면서부터는 지방반란이 아니라 여러 국가의 민족 전체가 단결하는 대규모 반란으로 규모가 커졌고 그렇게 독립한 오늘날의 동유럽 국가들과 터키의 사이는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여기에다 이슬람으로 개종을 강요했던 중동처럼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았다. 알바니아 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아예 민족 전체에다 "너 임마? 개종할래, 죽을래?"라는 식으로 강제 개종을 시켰다고 한다.[2] 또한, 개종자와 비개종자의 차별을 극심하게 두는 바람에 독립 이후에도 민족갈등의 요소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 등지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등등,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의 뿌리도, 사실은 터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인들을 괴뢰군으로 앞세워서 슬라브족간의 민족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종교차이만으로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이 벌어지지 않는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종교에 따라 서로를 원수로 대하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이면에는 수백년간 내려온 터키의 민족 분열정책의[3] 후유증과 빚으로 인해 서로 간에 극심한 증오와 거부감이 존재한다.

다만, 마케도니아는 터키가 독립을 지지하고 그리스랑 반목하게 되면서 많이 편을 들어주는 터라 외교적으로 사이가 괜찮은 편이다. 사실 마케도니아에서는 영토 및 나라 이름 문제로 그리스를 엄청 싫어하고 있다. 두 국가가 전쟁 위기 상태까지 있었을 정도이기에 불가리아와 같이 이웃 나라에서 무척 편들어주는 터에 터키랑 사이나쁘게 굴 일이 없다. 사실 발칸 지역 대다수가 그리스보다 마케도니아를 더욱 편들어준다.

이웃나라 아르메니아와도 사이가 매우 나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메니아가 터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터키가 벌였던 아르메니아 학살 때문이다. 그래도 21세기 들어와서는 관계를 개선하는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는 중이다.#

4 러시아 - 터키 관계

자세한 것은 러시아-터키 관계 항목 참조. 러시아도 역시 오랜 세월 싸워온 앙숙이다. 그런데...

5 터키 - 서유럽 관계

사실, 현재의 터키는 유럽에서 사실상 반쯤 왕따당하는 나라다. 그래서 "터키가 어째서 유럽이냐?"라면서 대놓고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유럽 대부분 국가의 종교는 크리스트교인데 터키는 이슬람교라서 비슷한 점도 없고, 생활문화권도 전혀 다른데다, 역사적으로도 심한 적대관계라서 사이도 좋지 않았던데다 민족으로도 상당한 이질적인 정서를 갖고 있어서 항상 따로 노는 국가이다보니 거리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터키가 지속적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유로컵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를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사실상 터키를 별로 편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국가를 편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연합 가입도 받아주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18세기만 해도 유럽세계에서 '유럽'으로 인정했다.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에서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에 대해 자신과 동등한 제국임을 인정했고[4] 오스만 제국도 18세기부터는 유럽 각국에 공사를 파견하면서 유럽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제국주의화된 유럽의 열강들이 터키를 반쯤 아시아 취급하고 덜 문명화 된,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동양문화를 가진 인종 취급을 해 왔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애초에 터키는 인종부터 시작해서 종교나 모든 것이 유럽인들과 이질적인 정서가 강한지라...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터키는 국토의 대부분이 아시아 지역에 있지만, 아시아 국가를 자처한 적도 없고 스스로 유럽 국가라고 여긴다.[5] 그래서 EU에 가입하려고 항상 발버둥을 쳤지만 터키의 지배를 수백년간 받았던 다른 EU 국가 그리스불가리아가 결사적으로 반대를 했다.

하지만, 2012년에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 장관의 방문과 더불어 송유관 사업의 영향으로 그리스가 터키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터키의 인권도, 경제도 과거에 비하면 매우 나아졌지만 그 이전에 터키가 키프로스 섬에 만들어논 괴뢰국, 북키프로스 떡밥이 있다. 이건, 터키입장에서도 건드리기가 매우 흠좀무한 일인데 그 이유는 키프로스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항목 참조.

게다가, 추가하여 21세기 이후 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사회에 큰 문제로 부각되면서 EU 가맹국에서 이슬람 국가에 가까운 터키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매우 커지고 있다. EU에 가입하면 이주 및 취업이 자유로워지니까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많이 이주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오죽하면 EU 가맹국들 사이에서도 터키를 받아들이니 EU에 가입하지 못한 다른 유럽 대륙 나라들인 세르비아, 아이슬란드, 보스니아, 마케도니아같은 동유럽 국가의 가입을 받아들이자는 소리들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세르비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터키도 가입받아주면서 왜 우리는 안 되는데?"라고 불만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유럽 나라 가운데서는 과거에는 프랑스, 20세기 이후로는 독일과 관련이 깊다. 프랑스의 경우, 16세기부터 지속되어 온 우호적 관계에 힘입어서 대다수의 유럽문화를 이 나라에서 받아들여온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19세기의 기록을 봐도 이스탄불에서 목좋은 곳에 가게를 연다든지, 우대권을 받은 외국인도 프랑스인들도 많았을 정도였다. 이는 공동의 라이벌인 오스트리아의 존재 때문. 같은 이유로 오스트리아는 페르시아와 우호관계를 맺으며 서로 우대권을 공유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독일과 우호적 관계가 많아졌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과 동맹국 관계였고 근대화에서 독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치스 정권 시대에는 나치스에 반대하는 독일 학자들이 터키로 이민을 많이 가서 터키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공헌을 많이 했으며, 반대로 터키의 노동자들이 전후경제복구를 위해 독일로 많이 이민을 가기도 했다.

물론, 독일내에서는 인종차별과 악감정도 상당하긴 하지만, 독일에서 무려 400만명이 넘는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베를린에 갈라타사라이 자매팀인 베를린 갈라사타라이 창단까지 논의되기도 했다. 결국 UEFA에서 거부하여 이뤄지지 못했으나, 이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AFC 아약스는 남아공에 케이프 타운 아약스같은 팀이 있고 레드불은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비롯하여 레드불 축구단이 미국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경우는 유럽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당연히 아마추어 팀으로 터키인 축구팀도 많다. 더불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가장 많은 외국인 선수에 터키인 선수가 많은데 2015~16시즌만 해도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 터키 국적 선수는 11명이 뛰고 있으며 3부리그까지 합치면 35명이 소속되어 있다. 더불어 독일인이 터키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으로 2014년만 해도 554만명이 터키로 왔을 정도다.

그 외에는 17세기까지 동지중해를 두고 치고박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들 수 있겠지만, 현재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탈리아에 흡수된 상태라 국민적 감정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래도 베네치아 주민들은 오스만 제국의 동지중해의 지배에 맞서 기독교의 방패로 활약한 과거를 은근히 자랑스러워 한다.

터키의 경제문제는 직장의 수는 매우 한정되어있는데, 젊은층 인구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대표적으로, 터키인들이 많이 마시는 차이만 해도 차이잎, 농장이 넘쳐나는 상황임에도 한동안 싼 인건비로 서아시아 및 조지아같은 곳 노동인력을 쓰다가 일자리부족을 빌미로 2007년 법으로 금지하고 터키인 인력으로 대체하게 했지만 차이값이 더 오르고 부작용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돈도 적게벌고 몸도 힘든 3D 직종인지라 젊은층들이 일하길 거부하는 중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힘든 일 하기 싫어하는 것은 선진국 어디서나 다 똑같다. 애초에 부모들부터 그런 식의 힘들고 보수가 적게 버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1인당 GDP가 16000달러에 육박하면서도 청년실업률이 농촌의 경우는 최대 40%에 이르는 이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알아서 터키내 젊은층을 해외로 내보내는 중이며, 이것이 EU 회원국과 잠재적인 일자리 문제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터키가 유로존에 가입하면 8천만 터키인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입국해 올 것이며, 문화 자체가 다른 이슬람권인데다 동화도 잘 안되어서 터키인들이 자기네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배타적으로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터키가 공식적으론 국교가 없고 세속국가나 다름없지만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라서 실질적으론 종교국가나 마찬가지다. 종교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게 탄압하는데, 당연히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이런 탄압이 범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슬람 이민자들이 죄다 문제만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이들도 부유층이 있고 그동안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서 중동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고 여겨서인지 유럽 여러 나라 사회투자와 금융 및 자원개발같은 일에 나서면서 이젠 다른 유럽인들도 무작정 예전처럼 터키인들을 가난한 이슬람 출신 노동자라고 더 이상 깔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터키의 EU 가입에 EU 회원국도 아니면서, 그런데 마찬가지로 회원국이 아닌 미국도 터키 가입시키라고 EU에 요구하고 있다 아랍권이나 다른 이슬람 국가들이 꽤 지지를 보이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터키를 계속 마다하면 이슬람권에 대한 도전이니 반발이니 하면서 자원 문제로 심하게 다투어 서로간의 손해가 발생한다. EU vs 아랍+터키(혹은 이슬람)가 되면 좋을게 없다. 하지만, 유럽권의 反 이슬람 감정이 워낙 심한데다가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 비해서 터키는 표면상으로만 민주주의일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전혀 민주적이지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심심하면 두들겨패대기때문에 터키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심하다.

현재, 많은 터키인들이 서유럽국가에서 정착을 하고 살고 있지만, 애시당초 동유럽에 비해서도 훨씬 문화가 다르며, 세속국가를 표방하나, 이슬람권이나, 아랍권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민족성에 대한 평가도 유쾌하고 잘 융화된다는 평인 반면, 터키인만의 커뮤니티로 배타적인면도 보인다. 또한, 서유럽권에서는 터키인은 장사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이민자 범죄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서유럽권의 EU가입 반발은 역사적, 지리적인 문제를 떠나, 현재 터키인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최근 아랍권의 혼란스런 정국과 이민자, 테러 문제와 맞물려서 완화될 조짐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6 터키 - 아랍 관계 : 우리가 너네편은 아니란다.

그러나, 정작 필요할 때는 터키의 편을 들고 근처에 있는 아랍권의 국가들마저도 터키를 좋게 보는 나라가 거의 없다. 아니, 그리스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반감보다도 더욱 심하다! 그래서, 아랍인들도 터키인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아랍에서는 터키를 이슬람 믿는 나라도 아니고, 이란, 이스라엘과 더불어 터키를 각자 튀르크인, 페르시아인, 유태인 3대 민족 나라들로서 아랍을 지배하고 악랄하게 대하는 적이라고 간주하고 매우 싫어한다. 여기에는 다음의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사실 오스만 제국 시절 주로 행정이나 권력의 핵심에 오르는 자들은 아랍인들이 아니라 주로 이슬람교로 개종한 그리스인 혹은 슬라브인이고, 아랍인들은 그 다음 축에도 별로 끼어들지를 못했다. 즉, 1순위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그리스인 혹은 슬라브인이거나 그 후손이면 2순위는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은 (아직 기독교인이었던) 그리스인 혹은 슬라브인이었다. 이 2순위들은 자기네들 동네에서나 큰 소리 치는 정도다.

그리고 1순위들은 대부분 토착 투르크족들과 자유롭게 통혼했다. 시파히들이 주로 중세시대의 기사 같은 개념이었고 대체로는 부계 세습이었으나, 간혹 시파히 아저씨들이 자기네 수중에 들어온 그리스인 남자 노예들 중에서 좀 잘생기고 똘똘한 놈이 있다면 이슬람교로 개종시켜서 자기 딸하고 결혼시킨 다음에 후계자로 만들어서 봉토를 물려줬다. 물론, 2순위들이 자주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처분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오스만 제국은 뭐 하나 잘못하고 수틀리면 투르크족이든지 누구든지 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모두 다 짓밟아버리고 엄혹한 형벌을 내리는 습성이 강해서 이것이 기독교를 믿는 서방 신민들에 대한 차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어쨌든 아랍인들은 그런 대우를 받을 일이 없었던 것이 되겠지만 이 친구들이 권력 핵심부에 여간하면 접근하지를 못하니까 수뇌부에다 그다지 밉보일 짓을 할 일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 무렵에도 아시아나 아랍 지역을 다스리는 터키 제국 출신 엘리트들은 오스만 제국 붕괴 때에도 그렇게 많이 대체되지 않은 반면, 발칸 반도의 그런 이들은 대부분 다 축출당했다. 아마도, 자민족 (투르크) 출신 엘리트 역사가 수백년이 넘으니까 그런 게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르메니아 학살 당시, 아랍인들도 덩달아 학살당하거나 대대로 살던 곳에서 오스만에 의하여 강제로 내쫓긴 게 허다하다. 항목보면 알겠지만 아르메니아인 말고도 오스만 민족주의에 대항할 거 같으면 같은 무슬림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뭉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인들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영국이 독립시켜주겠다고 요청하자 군말 없이 영국과 손을 잡고 오스만 제국에게 맞설 정도로 엄청나게 터키에게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심지어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터키군도 다국적군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가 이라크 현지의 여론이 "터키놈들을 데리고 오면 저항세력이고 정부군이고 뭐고 간에 다같이 손잡고 터키놈들과 맞서서 싸우겠다!"고 반발을 심하게 하자, 미국 정치계나 조지 워커 부시도 깜짝 놀라서 없던 일로 하고 입을 싹 씻은 적도 있다!

시리아와도 터키 내에 자리잡고 있는 '이스켄데룬 지역' 영유권 문제로 다툼이 있다. 한국에서는 보통 '안티오크(안디옥)'으로 알려진 하타이(Hatay)도 시리아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서, 1998년에는 터키가 댐을 만들려고 하면서 이 일이 시리아 내 물을 관리한다고 전쟁 분위기까지 갔을 정도였다. 시리아 내전 때 시리아군이 터키 공군의 전투기를 격추시켰던 사태도 있어서 주변국인 시리아와는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다. 그 때문에 양국간에 긴장감이 오간다는 일설도 있다.

또한, 쿠르드족에게는 천하의 개쌍놈들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아타튀르크가 집권하던 시절부터 터키는 강력한 민족통합정책을 시행해왔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도 민족의 구분은 그들의 소속종교만이 고려되었을뿐, 다른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르드나 아랍이나 터키나 같은 종족으로 여겼었다.

그래서 아타튀르크는 "누구든 터키어를 말하고, 터키에 살고, 터키 문화에서 자라났으면 그의 인종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터키인"이라고 주장했고, 때문에 쿠르드인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터키 정부의 통계에서는 소수민족란이 빠져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이유로 1970년대에 쿠르드인들이 독립운동을 펼치자 터키에서는 그들을 국가에 대한 반역자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잔인하게 진압하고 강경하게 대처해왔다. 심지어 이라크전때 미국 정부가 쿠르드족 자치정부를 인정하자, 바로 미군 항공기의 영공통과를 거부하고 공항 사용을 금지시켰을 정도였다. 뭔가 비범하다.[6] 다만, 터키가 EU 가입을 준비하면서 기존의 쿠르드어와 문화에 대한 탄압정책도 한결 누그러졌으며 터키 국영텔레비전 방송에서 쿠르드어 방송도 들을 수 있게 많이 변했다.

그나마 이웃 나라에서는 아제르바이잔과 가장 친한 편이다. 자세한 것은 아제르바이잔 항목 참고. 근래에는 중앙아시아 튀르크 계열 국가들과도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고 있다.

7 터키 - 이란 관계

이쪽도 러시아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감정의 골이 아주 깊이 파여있는데, 일단 이란은 1501년에 사파비 왕조가 창건되면서 수니파에서 시아파로 국교가 바뀌었다. 그런데, 터키는 오스만 제국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수니파 국가라서 일단 종파가 다르기때문에 마찰이 심하게 생겼고, 거기에 메소포타미아. 즉, "오늘날의 이라크를 누가 영유할 것이냐?" 하는 영토분쟁이 겹쳐버렸다. 이에 따라 양국은 1514년에 처음으로 무력충돌을 벌인 이래 사파비 왕조가 멸망하는 1736년까지 싸웠다가 잠시 화해했다가를 반복했으며, 사파비 왕조의 뒤를 이은 아프샤르 왕조, 카자르 왕조도 오스만 제국이라고 하면 이를 심하게 갈았던 나라들이었다. 결국, 사이가 좋아지기는 커녕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란이 급격한 세속, 서방화를 추진하던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비록 정치체제는 다르더라도 세속주의를 추구하던 동지로서 형제애를 과시한 적도 있었다. (샤와 아타튀르크가 어깨동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회교혁명으로 인해 신정국가로 퇴보한 이후로는 사이가 다시 미묘해졌다.[7] 터키는 친서방 국가에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수니파이고 이란은 반서방 국가에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시아파라 서로 앙숙일 듯하지만, 회교혁명 이후에도 의외로 큰 충돌은 별로 없다. 중동 국가 중에서 그나마 세속주의가 정착한 터키와, 겉으로는 신정국가이지만 정작 국민들은 그렇지 않은 이란 사이에서 국민감정이 별로 나빠질 이유도 없다. 이란과 서로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비하면 터키 - 이란 관계는 그나마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란은 터키랑 역사적 사건으로 이를 가는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좋은 편이다. 아르메니아가 과거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페르시아인이랑 거의 형제처럼 지내던 역사도 있고 이란에서 더 좋게 봐주는 점도 있고(역사적으로 둘이 신나게 싸우던 역사도 있으나 그게 1천여년 전 일이다) 되려 중세 근대를 거치며 아르메니아인들을 많이 받아주고 호메이니 정권조차도 아르메니아계를 우대했다.

8 범튀르크주의

터키뿐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까지 널리 퍼진 튀르크 민족의 공동체를 추구하려는, 이른바 범튀르크주의는 19세기 말엽 이스마일 엔베르를 위시로 하는 청년 튀르크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에서부터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제법 오래된 이념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터키의 국력이 범튀르크주의를 감당하지 못하고 러시아-소련과의 마찰이 불가피했으므로 케말 아타튀르크는 범튀르크주의는 일단 접어두었다.

그러다가 소련이 붕괴하고 튀르크족이 사는 중앙아시아에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이 부재하게 되자, 터키가 다시 그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우호관계를 추구하는 나라들로는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유라시아 튀르크계 나라들이 있다. 터키에서는 정부차원에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국가들과 우호를 다져나가는 한편, 매년 새해같은 기념일날 앙카라바쿠, 이스탄불사마르칸트 동시 생방송 같은 방식으로 이벤트를 열고 있다.

9 그 밖에 다른 나라들

중국과는 위구르 문제로 국민들 간의 악감정이 있긴 하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않기 때문에 큰손으로 등극한 중국과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되도록 큰 분쟁은 삼가는 편이다. 직접적인 전면전은 아니지만, 터키와 중국은 한국 전쟁에서 전쟁한 경험도 있다. 터키가 남한에 파병하고 중국이 북한에 파병했던 시절이다.

아타튀르크는 서기 559년 괵튀르크 제국(돌궐을 터키에서 부르는 이름)이 중국 한족을 물리친 것을 근대 튀르크 제국 시발점이 된 계기로 여겨 역사 교과서에서 싣도록 했으며, 1959년 터키 정부는 14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에 대하여 당시 마오쩌둥은 무척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중국에게는 돌궐도 지들 역사 일부로 보는데, 터키의 이런 행사를 두고 불안해하면서 동북공정과 마찬가지인 서북공정을 벌이면서 위구르나 과거 돌궐에 대한 튀르크민족주의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2007년쯤 중국에서 위구르족을 탄압했을 때, 터키 에르도안 총리는 방송에서 중국에 사는 우리 형제들이 탄압받고 있다(...)며 터키 국민들을 선동하는 발언을 했는데 중국 측에서 강하게 항의하자 바로 깨갱(...)했던 적이 있다.[8] 물론, 그건 그거고 무역이나 여러모로 경제적 교류를 맺고 외교관계가 있긴 하다.

일본은 1890년 6월 16일 오스만 제국 대형 군함 에르투으룰(Ertuğrul)호가 일본을 탐방하다가 귀로하던 길에 폭풍을 만나 침몰하자 일본에서 해군 구조에 크게 기여(그래도 656명 승무원 가운데 생존자는 겨우 69명)하여 현지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을 비롯하여 이 일로 일본과도 형제 국가 이야기가 나오던 바 있다. 일단 일본과 사이는 괜찮은 편이다. 한국과 터키가 우호관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흠좀무한 일이다. 잘해주면 다 형제였던거였어? 실제로 형제 드립의 가치는 매우 싼 편이다. 심지어 그리스에게도 형제 드립쳤을정도잖아. 세계에 적들이 워낙 많으니 아쉬워서 그렇슴.

10 결론

여러모로 이렇게 서구권에게도 밉상에다 주적 취급을 받고, 아랍-이슬람권에게도 영 좋지 않는 취급을 받는 터키는 과거 역사적으로 스펙타클한 사건들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아리송한 정체성이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정말로 친한 나라는 미국이나 대한민국, 캐나다같이 전통적으로 일면식이 별로 없는 국가들 정도다. 하지만, 지리상으로나 역사로 볼 때 방관했다가는 여러모로 위험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도 터키와 외교를 할 때 조심하는 편이다. 오히려 터키와 같이 엮었다가 영 좋지 못한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뻑하면 쉽게 외교문제가 터질 국가를 뭐하러 상대하겠는가?

그래서, 터키인들은 1990년대만 해도 유럽과 아랍권 지역 입국이 엄청 까다로웠다. 그래도 앞서 언급했듯이, 2011년 통계로 터키인 해외입국 (터키 입장에선 출국) 수가 1154만명이나 되고 절반 가까이가 유럽 해외여행으로 조사될만큼 터키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상당히 인적교류가 늘어나면서 터키인들을 감정적으로 싫어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우선 입국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다. 역시 돈이 깡패다

11 관련 문서

  1. 이전 항목에서는 오스만이 동유럽을 '압제' 로 다스렸다고 되어 있었지만, 역대 재상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럽인들이며 재상에 앉으려면 당연히 지방 총독직을 거쳐야 한다. 즉, 비유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오스만의 압제는 지금 터키인의 압제가 아니라 동유럽인들 스스로의 압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 그래서, 알바니아는 보스니아와 함께 유럽에서 드문 양대 이슬람 다수 국가가 되었다.
  3. 그런데 이 분열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흔하게 써오던 방법이기도 하다. 근현대 식민지를 가진 나라들은 죄다 이 방법을 써왔으며 과거 로마나 중국도 얼마든지 이런 방법을 써왔다. 이른바 이이제이. 대표적인 예시로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의 내전이나 르완다 학살을 비롯한 참혹한 일들은 유럽 식민지 시절 유럽 제국들의 민족분열 정책에서 근원을 찾을 수가 있다.
  4. 다만, 오스만 제국을 유럽 국가로 인정한다고 하면 상당히 사정을 봐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이전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이 감히 '동등한 제국' 운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16세기 중엽에 오스만 제국이 쉴레이만 1세의 치하에 최전성기를 맞이했을 때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으로서 대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황가의 황제 카를 5세도 황제 직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스페인 왕' 이라고만 쓰여있는 조약문에 서명해야 했다. 또한, 1606년의 지트바토로크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도 황제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에 비해 다소 삭감된 액수이더라도 계속해서 연공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역사를 살펴볼 때 신성로마제국이 오스만 제국을 '자신과 동등한 제국임을 인정' 한 것은 오스만 제국에게 명예는 커녕 수치스런 치욕이었고, 이후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을 자신들보다 뒤떨어진 국가로 여기게 된 것은 이러한 흐름과 관련이 깊다.
  5. 재밌는 것은 서유럽 측에서도 유럽 전체를 놓고 통계를 작성할 때 터키를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유럽국가로 넣어서 내보낸다.
  6. 아르메니아 학살사건이나 쿠르드족 관련 이야기를 하면 터키에서 평생까임권 획득. 이걸 인터뷰하던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도 그래서 구속당했다가 외교마찰로 풀려나고 2012년에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터키가 비민주적인 국가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7. 하지만, 이란으로 밀수입 되는 술의 원산지는 거의 터키이고, 반대로 이란인들은 터키 내에 있는 이슬람 성지에 순례를 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은 상호사증면제를 실시하고 있다.
  8. 웃기는건 자기들이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돌궐족들도 위구르족에게 학살당한 전력이 있다. 위구르는 반란을 일으켜 동돌궐족을 학살하고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돌궐족이 서쪽으로 쫓겨나, 다시는 동쪽으로 돌아가지 못한 원인. 자세한 건 돌궐항목 참조. 중요한건, 아무리 혈통적으로 가까웠다 치더라도, 갈라선지 오래되어 교류도 거의 없었던 위구르족에 큰 외교적 이슈가 될수 있는 상황에서 형제 드립을 친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