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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일본 간의 관계.
상부상조하는 관계
폴란드 공 버전

양쪽 모두 현재 친미 자본주의 진영 국가이지만 양국 사이의 국민감정은 영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중 99%는 역사문제, 영토문제(역사문제의 연장선)로 갈등이 고조되고 나머지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나머지 1%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수출품목의 유사성에 의한 경쟁심리 정도인데 대부분 서로 하청을 주고 받는 등[1] 오히려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국민, 역사적인 감정상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웃국가 1순위다. 다만,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중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딱히 적다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반중정서도 매우 강해졌다. 이는 다른 이념적 대립구도와 달리 상당히 복잡한 구도를 띤다. 민족주의, 중국 중심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태도, 친미에 대한 관점, 자본주의와 반공주의, 경제지상주의, 개인적 경험과 편견, 평균적 생활수준이 낮은 국가를 비하하는 정도 등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반일이냐 반중이냐가 갈리고 둘 다 동일하게 심한 사람도 있으며 그런 감정을 극복하여 진정한 아시아주의를 이루자는 의견도 있다.[2]

비교하자면, 중국은 조공 관계로 인해 한국과 나름대로 우호(?)적으로 지낸 역사가 제법 길기 때문에 무조건 끝없이 대립해왔다기보다는 중국의 여러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마친가지로 일본과의 관계 역시 조선시대 때 통신사 파견을 통한 몆몆 교류와 삼국시대 및 남북국시대 때 서로 친하게 혹은 혈맹으로 지내던 시절처럼 서로 정부, 민간 차원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고, 정부 차원의 침략은 조선시대 중기~후기 때 거대한 침략 전쟁과 한 차례의 식민지배 정도가 있을 뿐이라서 실질적으로 크게 대립했던 시기는 그렇게 길지는 않다. 그리고 문화, 민족, 역사적인 측면에서 공유를 하는 바가 많아서 잘 모르는 외국인은 한일간의 험악한 관계에 대해서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차례의 식민지배가 20세기 들어서 일어난 가장 최근의 지배였고 그 지배 과정도 지옥이 따로 없었을 정도로 매우 폭력적이었다. 심지어는 21세기까지 들어서도 위안부나 항일 독립운동 탄압 등 한반도에서 저지른 만행들에 대해 대놓고 역사왜곡을 하거나 일부 권력, 사회층 인사들이 수시로 망언을 하고 있고, 명백한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우기면서 영토분쟁 갈등을 유발하는 등 한국인들의 감정을 공분하게 만들고 있다.

몽골의 경우에도 원나라 시기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지만 상당히 오래 된 일이고, 일본과는 달리 몽골의 국력이 한국보다 크게 뒤떨어지고 직접적인 갈등도 없기 때문에 딱히 그 이유로 반몽감정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원나라 칭기즈 칸을 찬양한다면 모를까?

일본 역시 한국이나 중국을 싫어하는 국가로 선택하긴 하지만 중국이 싫다는 의견이 한국이 싫다는 의견보다 많은 편이다. 그 격차는 한 때 상당히 좁혀졌으나,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이 심해지면서 현재는 중국이 싫다는 의견이 많게 유지되고 있다. 물론, 큰 이유는 한국보다 중국이 일본에게 훨씬 위협이 되는 국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의 한일관계를 설명하려는 가설 중에, 전통적으로 한국일본의 관계의 기반, 즉, 그 시작부터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과거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 왜구의 침입, 조선시대의 삼포왜란[3]임진왜란[4], 이런 구구절절한 원한이 쌓이고 쌓이다가[5] 강화도 조약으로 시작해, 을사조약 등을 거쳐서 결국 한일강제합병으로 시작된 식민지 통치로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주장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우선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때 일본과 관계가 나빴던 것은 신라 정도이고, 오히려 신라와 앙숙이었던 백제나 발해 같은 경우에는 우방국으로서 친하게 지냈다.[6]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시기 일본의 침입을 받은 신라를 돕기 위해 원군을 파견해 일본과 싸운 이력이 있으나, 그건 잠시일뿐 고구려의 주적은 위나라, 당나라, 수나라, 전연, 후연, 숙신, 돌궐, 부여등 중원 일대과 만주,요동 지역의 여러 국가들과 이민족들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일본에 당하기는 커녕 일방적으로 관광시키는 입장이었고 고구려의 담징이 일본 호류사의 벽화를 그려주고 선진문물도 어느 정도 전수해주는 등 지정학적인 이유로 백제와 일본, 신라와 일본만큼은 미약해도 상호간 교류는 꽤 있어서 반일감정의 기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강점기때 임진왜란에서 비롯된 반감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것 역시 16세기의 반일감정이 20세기까지 지속됐다기 보다는 일제강점기가 한국인들로 하여금 임진왜란을 상기시키게 하여 일제강점기에 대한 분노가 다른 형식으로도 나타난것에 가깝다.

더군다나 임진왜란 직후 조선은 병자호란을 겪게되어 반일보다 반청감정이 주류를 이루고, 에도막부와의 국교정상화 및 통신사 파견으로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병자호란이 지금 반중사상의 근원이 되고있지는 않듯이, 임진왜란에 대한 감정 역시 현재의 반일감정의 근원이 아닌 반일감정에 따른 부수적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왜구에 대해서는 일리가 있다. 어떤 이들은 왜구는 일본의 정규군도 아니었고, 일본인들도 오히려 피해를 입기도 했으니 조선인들은 왜구의 문제로 반일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국가간의 문제이지, 국민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해적들과 일본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왜구, 혹은 왜적이라고 불렀던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인들은 왜구와 일본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7] 왜구의 활동은 당연히 약탈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반일감정을 깊숙하게 심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간에 외교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국민들 사이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게다가 왜구와 일본을 구분하지 않은 문제는 조선보다 일본에 더 큰 원인이 있는데. 왜구의 대부분은 독립적인 해적집단이 아니라 다이묘(영주)의 정규군이 위장하고 해적질을 하거나, 혹은 수군이라고 불리우는 정규군집단이 해적질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큐슈의 다이묘들은 사실상 조선과 합법적인 무역이 가능했던 오우치씨를 제외한 모든 다이묘가 해적업에 뛰어들었다고 보면 될 정도로 해적행위가 심각했다. 아리마씨나 류조지씨 같은 다이묘가 대표적인 해적영주이며.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시마즈씨도 역시 해적영주였다. 이러한 영주들은 해적질을 통해 백성들을 강제로 노예로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거나 병사로 삼고 재물은 약탈해 전쟁자금으로 쓰는 등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이 따로 없었다. 시마즈씨 같은 경우는 해적질을 대단히 광범위하게 해서 유구국[8]을 아예 점령하다시피 하여 결국 멸망으로 이끌기도 했다. 관군이 타국을 침입해 백성을 학살하고 노예로 잡아가거나 재물을 약탈했으니, 까놓고 말해서 왜구와 일본을 구분하는 편이 오히려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이나 명나라가 왜구의 침탈행위들을 전쟁으로 인식하고 반격하지 않은 일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수백년간의 왜구의 약탈로 인해 뿌리깊게 박힌 반일감정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근대의 식민지배시대에 발생했다. 일본의 식민지배 정책들은 창씨개명이나 조선어학회 사건 등의 사례에서 볼 때 당시 조선인들의 감정에 크게 반(反)하여 동화정책을 추진했다.[9] 전쟁에도 한국인들이 강제동원되었다. 이전의 왜구의 약탈과 침략에서는 목숨과 재산을 잃어왔다면,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에서는 여기에 추가적으로 정신과 영혼마저 빼앗기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해방 이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일본정계의 극우 정치가들의 반성을 회피하는 모습이 혐일감정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이러한 극우 정치가들은 현재 일본 정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일본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통된 가치를 가지는 탓에, 이러한 일본 정계의 상황[10]은 한국인들로부터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처럼 매우 큰 분노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특성상, 전체 정치인들 중에서 극우 정치인들의 높은 비율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일본의 일반시민들도 대다수가 이러한 왜곡된 역사를 진실이라 여기면서 찬동한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일본 정부가 막장일 뿐이지, 대다수의 일본 시민은 올바른 역사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이러한 정계 상황에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노태돈 서울대 교수는 '삼국통일전쟁사'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 고위층이 일본의 정사(正史)인 일본서기를 쓰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신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역사관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심었고, 이것이 지금의 한일갈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취지의 기술을 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8세기 초에 간행된 일본 최초 역사서인데, 이 책에서 신라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대목은 그대로 일본에서 국가적, 국민적, 공식적 對신라관-對한국인관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이다. 1970년대 한국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교 평론가인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한국의 역사 및 정치에 대해 기술한 '이웃나라에서 생각한 것'이란 책에서 노태돈 교수와 비슷한 의미에서 '백제의 망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즉, 일본서기에 쓰여진 역사관을 배우고 자란 일본인들은 백제에 대하여는 좋은 감정을, 신라(한국)에 대하여 악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11] 실제로 일본서기의 집필진은 가야와 백제를 자신들의 편으로, 신라를 주적 내지 속국으로 간주하는 서술방법을 택하고 있다.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뒤에는 이런 적대감과 경멸감이 한민족에 대한 감정으로 바뀌어 오늘날 한일 민족 감정의 한 축이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백제가 멸망하기 한참 이전에도 신라는 일본과 적대했기 때문에, 멸망한 백제의 왕족이 일본서기에 끼친 영향으로 인해 일본이 신라를 비롯한 한반도 국가들에 대한 적대감이 생겼다기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역사를 보더라도 신라 이외의 한반도 국가들과는 대체로 관계가 양호한 편이었다. 허구한날 싸우던 유럽의 이웃나라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8.15 광복 이후, 정서상의 이유와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서 일본문화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정책을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 정권부터 일본문화개방이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리하여 양국 정부의 외교관계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이 순간에도, 민간 차원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으며 특히 문화적 측면의 교류는 양국 시민들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의 거의 유일한 희망의 불꽃이랄까?[12]

1999년 8월.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쓴 "한일관계는 대등한가" 라는 기고문에 의하면 일본 공항 입국장에서 일본의 출입국 공무원들이 한국인에게 반말을 쓰며 무시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며 논란이 되었다.한일관계 대등한가, 동아일보

재밌는 것은, 이처럼 감정적인 측면에서 두 나라의 정부 차원의 갈등은 골이 몹시 깊지만, 상술했듯이 한일 양국은 현재 우방국이며 나아가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통한 간접적인 동맹국이다. 그리고 어느 모로 보나 오히려 더 협력해서 생산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절실한 두 나라이지만, 일본 극우 정권의 어그로와 몇몇 문제점으로 인해서 두 이웃나라는 가깝지만 먼 관계나 다름없는 애증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2 정치

2.1 2010년대정치상황

간단하게 일본이 병주고 약주는 꼴 떼어내고 싶지만 떼어낼수 없으면서 떼어내면 위험한 국가

말 그대로 감정적 냉전상태. 다만 둘 다 미국의 동맹국이고 기본적으로 서방 진영 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서로를 무시할 뿐 노골적으로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민간 등에서 후쿠시마 사태 당시 지원해주는 등 그래도 일본과 어느 정도 잘 지내보려고 했으나 일본이 여전히 한국에게 함부로 막 대하는 행동을 함으로 인해, 00년대 초반보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훨씬 더 고조되어 이로인해 곪을대로 곪아가고,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썩을대로 썩어가던 양국 관계는 결국 터져버렸다. 이는 올림픽 축구로 엄청 험악해진 2012년 8월 15일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사과 요구 발언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한일 관계가 바닥을 쳤으니까 더 나아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일부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바닥은 커녕 지하를 뚫고 맨틀까지 내려갈 듯... 이대로 가다가는 그야말로 견원지간이라고 해도 손색 없을 정도.

결국,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항간에서는 한일관계가 악화된 대신 한중관계에 친밀감이 짙어진다는 것과 한국일본보다는 중국에게 무게를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는데, 현재의 중국 역시 일본센카쿠 열도 문제로 갈등하고 있고 한국독도 문제와도 맞물려서 한국중국 사회에서 반일감정이 생기고 양국이 이렇게 동병상련에 있는 입장에서 양국관계가 더욱 친밀해질 것이라는 설도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게다가 경제에 있어서도 독도 문제와 맞물려서 백지화될 처지에 놓인 한일 FTA 체결 추진이나 통화 스와프를 축소한다거나 한국 국채매입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에 비해서 중국한국한중 FTA 체결 시행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하는 등, 한중관계가 활발하게 나가는 것과 비교해봐도 대조적이다. 다만, 한중간의 지정학적인 문제 때문에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중국과 어느 정도 이상으로 긴밀해지기는 어렵다. 당장 두 나라가 상대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봐도, 답이 뻔히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에게 있어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결국 중국이 아닌 일본과 손을 잡게 되어 있다. 한일 FTA도 결렬은 됐지만 한중일 FTA, RCEP, TPP등으로 우회로를 찾아서 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일부 극우단체들은 "한국단교를 해야 된다."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툭하면 "일본과 단교하자, 일본쪽에서도 단교하자고 난리치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저런 놈들과 상종을 하고 싸움질이나 하고 있어야겠는가? 1992년 대만 때처럼 일본과도 단교해야 한다. 진실도 부정하고 오리발이나 내미는 저런 잡것들과 외교는 무슨..." 이라는 주장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의 정치권에서는 절대로 이런 의견은 수용하지 못한다. 가뜩이나, 한국과 일본의 국력과 상호 결속력을 생각하면, 한 쪽이 휘청거리면 다른 한 쪽도 바로 휘청거릴 판에...

아베 신조 총리의 당선으로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였으나, 이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유는 불투명하나 다케시마의 날 지정 등의 외교공약을 하나도 안 지키면서까지 한일관계의 완화에 나서고 있다. 굳이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워봤자 피곤하기만 하고, 둘 다 국내의 경제문제를 해결봐야 하는 만큼 서로 신경을 쓸 일이 없다는게 좋다는 생각인 듯 하다. 이로써 한일관계는 다시 진정 측면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한일관계는 한국의 정권 초기에는 우호적 분위기로 흘러가고, 한국 정권 후반기에 악화되어가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인이 나온 현재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된 일이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라서 정권 교체시기가 일정치 않으므로, 기준은 한국 대선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인 2005년 독도문제가 심각하게 터졌을 때 정도가 유일한 예외이다.

그러나, 기어코 2013년 2월 22일 아베 정권이 일을 저질렀다. 시마네 현 독립 행사였던 다케시마의 날 식전 행사에서 내각부 정무관(중앙정부 차관급 인사)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를 보냈다.연합신문

이로써 양국의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미국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서 특별강연을 하던 아베가 자신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면서 한일관계의 완화를 원하는 발언도 했다한국일보

게다가 2013년 4월 22일,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각료 몇 명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 때문에 한국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서 우경화의 속도를 한 층 높였다.

여기에다 2013년 9월 일본 수산청 관계자가 한국의 수산물 금지조치에 항의하기 위해서 방한을 하고 WTO에 제소하겠다고 하자, 한국내에서 반일혐일을 부르게 하는 자초를 낳기도 하였다. 정작, 같은 조치를 위한 중국이나 미국에 관해서는 침묵을 하더니 한국에 대해서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나가고 있으니 국민들의 반일감정혐일정서도 이를 계기로 더욱 심해져 갈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일부에서는 "일본과의 완전한 국교단절,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경제투자 전면금지" 등으로 초강경으로 대응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13]

실제로 일부 어민들이나 어촌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계기로 혐일 성향을 드러내었던 경우도 있었다. 잘못은 일본 측이 한 것인데, 일본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손수 생산한 수산물 및 해산물이 팔리지 못하게 되니 어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혐일정서가 드리운 상태였으며, 특히 동해안 지역 어민들이 이 문제로 혐일성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물 종사자들조차도 일본놈 때문에 한국 어촌이나 어민들이 졸지에 죽게 생겼을 지경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다. 그래서 "쪽바리 네놈들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 이 놈들아!"하는 식의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이 심하게 폭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현직 총리로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 이어서 7년만에 기어코 야스쿠니 신사에다 참배를 하고야 말았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좋지 않던 한일관계는 완전히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으며,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후속조치까지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서 주변국들의 비판을 배로 듣고 있다. 제7함대 항목에도 나와있는 것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때 구호작전에 나섰다가 피폭을 당한 조지 워싱턴호의 승무원들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어놓은 상태다.

당분간 한일관계는 경색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도 한국은 제일 싫어하는 국가 순위 1위를 일본으로 꼽는 반면 일본은 제일 싫어하는 국가 1위로 중국을 꼽는다. 하지만 후술되겠지만 2014년 설문조사에서 싫어하는 국가 순위에서 항상 중국과 더불어 한국이 포함되며 점점 반한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뉴스에서 보도됨에 따라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어차피, 일본으로서는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굳이 한국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할 필요성과 명분도 없고, 한국도 역시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없다. 게다가, 중국과의 관계도 일단은 서로 이용해 먹는 일반적인 국가간의 관계라서 더욱 그렇다.

다만, 아베 신조 총리가 일단 말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상황이 조금은 누그러졌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한미일 3자 회담이 유력해지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일정도 있느니만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서 였을뿐,이지 한일정상회담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방침이다.

그러나, 결국 2014년 4월 4일 일본 측에서 한국에 기어코 삼연벙 3연타를 때려버렸다. 우선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사실을 삭제하고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령중인 지역"으로 왜곡해서 서술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통과했으며, 일본 외교부는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기술한 홈페이지를 작성하였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다케시마'(일본에서 주장하는 독도의 이름)는 일본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점령중임!!이라는 징징거림 망언을 날렸다.

2015년 1월부터 아베 내각은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의 서술 삭제를 허가하고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영문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다시금 수위 높은 도발을 자행해 한일 수교 50주년을 무색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한일수교 50주년 먼저 강조하면서 접근해온 새끼들이 누구였더라?

2015년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단 한번도 한일정상회담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한일관계의 외교상태가 얼마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과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5회 정상회담을 하였고 한중 FTA와 중국 주도의 AIIB 가입[14]까지 한 것과 비교한다면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대일본 정책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됨을 알 수 있다.

2015년 6월 21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1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주간지에 따르면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내가 말했잖아. 기다리기만 하면 한국이 스스로 찾아올 거라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는 3억엔이면 해결된다, 그러나 이것은 돈 문제만은 아니다” [2]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글루스 등지에서는 일본도 문제지만 한국 역시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끊임없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데도 한국인 스스로도 그 기준을 확실히 하지도 않고 계속 요구하다 보니까 물론 극우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일본 국내이 일반적인 여론조차도 질려서 그냥 한국을 무시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의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기준을 확실하게 하면? 들어주나? 아. 독일은 폴란드가 기준을 확실하게 정해줬나보네? 한국은 폴란드만도 못한 거지

2016년 북핵 국면에서 일단 협조체제는 강화되어가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3년간의 친중 정책이 그 정점을 찍었던 2015년 전승절(중국) 참석 이후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터진 북한의 4차 핵실험 사태 이후 실패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됐으며 중국과 공조를 통한 대일 강경책 또한 일본의 역사 수정 움직임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음과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대일 강경책으로 내놓은 정책들의 한계성들을 2015년 내내 체감한 상황이다.

거기다 사드 배치 국면에서 중국이 북한의 편을 들면서 한국에 대해 노골적인 하대와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예전부터 누차 제기되었던 중국위협론에 대한 인식도 매우 높아졌다. 이에 강경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포위망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한미일 국가간의 공조가 필수적이라, 그간의 강경책은 모두 접어두고 일단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는 움직임이 또 다시 한 번 반복된다면 결국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다. 당장에 일본은 체결된 위안부 협상에서도 자국 내에서 협의하지도 않은 헛소리나 하고 있고, 한국 정부에서는 이에 반발하면서 항의를 하는 것이 현재의 정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빠른 시간 내에 한일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이미 여러 번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터져나오는 역사수정주의의 움직임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대놓고 약을 올리면서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인 것은 분명히 일본이었다. 무개념 친일파들은 한국에게만 자꾸 양보를 강요하는데 이는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한국 정부에게도 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 절대로 양보를 할 수 없는 사항들이 분명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는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단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었음을 기억하자.

하지만, 문제는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일본과 한국이 바라보는 일본의 관점이 굉장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서구권의 열강들처럼 19세기부터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왔던 국가였고, 러일전쟁 이후 서구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크게 성장했다. 일본의 경제규모는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고, 3조 달러가 넘는 대외순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 역시 건재한 편이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뭘 잘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한일 간의 분쟁에서 열렬하게 한국 편을 들어주는 나라가 어디 있는 것도 아니고. [15] 아시아의 강대국이자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밑천삼아서 "니들은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라고 보는 것이 새로운 일본의 대한(對韓) 외교 스탠스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일본의 행보는 자신들은 그나마 여유로우니까 더 아쉬운 한국에서 양보하라는 꼴이다. 그 결과로서 국내에서의 반일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본에 적응을 못해서 허둥지둥대고 있다. # #

3 경제[16]

3.1 경제규모

명목 GDP로 비교한 것이다. 단위는 달러.

연도한국일본한국:일본[17]
196020억443억0.05
196530억910억0.03
197089억2,090억0.04
1975216억5,128억0.04
1980643억1조 8,69억0.06
1985985억1조 3,845억0.07
19902,704억3조 1,036억0.09
19955,311억5조 3,339억0.10
20005,333억4조 7,311억0.11
20058,448억4조 5,718억0.18
20101조 148억5조 4,953억0.18
20121조 1,295억5조 9,602억0.19
20131조 2,218억4조 9,015억0.25
2014 추정치1조 4,495억4조 7,698억0.31

3.2 대일 무역적자 추이

파일:Attachment/한일관계/KJtrade1.jpg

연도대일 무역적자
2010년361억 2,000만 달러
2011년286억 4,000만 달러
2012년255억 7,000만 달러
2013년253억 6,700만 달러
2014년215억 3,000만 달러

3.3 대일 전체 수출의존도 추이

연도일본에 대한 수출의존도
2012년7.1%
2013년6.2%
2014년 상반기5.7%

3.4 대일 전체 수입의존도 추이

연도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
2009년15.3%
2010년15.1%
2011년13.0%
2012년12.4%
2013년11.6%
2014년10.2%

3.5 대일 부품 수입의존도 추이

2013년 기준 대일 부품 수입의존도 추이 (단위: %)[18]
연도일본에 대한 부품 수입의존도
2001년28.1%
2002년28.1%
2003년28.4%
2004년27.5%
2005년27.1%
2006년25.6%
2007년24.4%
2008년23.3%
2009년25.3%
2010년25.2%
2011년23.6%
2012년23.0%
2013년20.8%
2014년18.1%
2015년16.5%

소재, 부품은 대일무역 수지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만,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수입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비해, 부품 국산화의 진척과 지진으로 인한 공급 불안정 우려로 수입선을 유럽 등 다른 곳으로 돌린 영향을 받고 있다. 관련기사 2014년에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11년만에 최저를 기록하면서 특히 소재, 부품 분야에서 대일 무역적자액은 2012년 243억달러 적자에서 2013년 205억달러, 2014년 163억달러로 감소하고 있다. 2015년 1분기 대일 부품 수입의존도는 17.1%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3.6 대일 소재부품 적자 추이

대일 소재부품 적자 추이 (단위: 1억 달러)[19]
연도부품 무역적자
2001년105
2002년118
2003년139
2004년159
2005년161
2006년156
2007년187
2008년209
2009년201
2010년243
2011년228
2012년222
2013년205
2014년163
2015년141

4 문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본문화가 개방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자, 문화적으로는 많이 가까워졌다.[20] 정부에서 일본문화를 차단하기는 했지만, 워낙 음지에서 양지로 받아들여 온것이 많은 탓이며 애니메이션의 경우, 아예 1960년대 말부터 수입을 했으며(이건 제작비 탓이 크지만) 만화, 드라마와 예능프로의 경우 2000년대 이전만 해도 대 놓고 표절을 한 것이 여백이 부족하여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여담으로, 나무위키의 대한민국 페이지는 일본 페이지보다 분량이 작다(...). 적기엔 너무 당연한 내용이나 분할된 부분이 많은 것도 감안해야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일본과 연결된 그 바닥의 문화나무위키에서 제외한다면 적어도 1/3이상의 항목이 날아가버린다.
물론 이는 애초에 나무위키가 오덕중점 위키이다보니 당연하며 한국 문화 1/3이 일본문화가 차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본의 넷 우익 사이에서는 한국 지상파 방송에서 일본 드라마가 아직도 방영될 수 없다는 사실이 논란거리다. 하지만, 사실 서류상으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완전히 이루어져있기에 지상파 방영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일드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인기가 적은데다가 심의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지상파 PD들이 굳이 시간대를 내어서 일본 드라마를 편성할 이유가 없을 뿐이다[21].

그러나 항간에서는 드라마 시청자 대부분이 성인 및 중년층이 많은 편인데다가 이들 사이에서는 일본문화에 호응적인 젊은층과는 달리 고질적인 반일감정 및 반일정서가 남아있어서 드라마 주 시청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의식하여 방영하지 않는다는 일설도 있다. 게다가 한국배우가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일본배우가 나오는 편인데다가 국내에서는 일본 배우에 대한 인식이 매우 없는 편인데다가 굳이 방영을 해도 드라마 주 시청층인 성인 및 중년층들의 이질감과 반발을 부를 것을 우려하여 방영할 이유가 없다는 일설도 있다.

애니메이션이야 어린애들이 보는 것이었고 개방 이전에는 한국식 분위기로 수정한 후 방영하도록 국내의 별도 심의를 거쳐야만 방영이 허용될 정도였지만 드라마는 실사판인데가 어린층보다는 성인층 특히 중장년층이 본다는 점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드라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중장년층 대부분이 일본문화를 자연히 받아들이는 젊은층에 비해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있는 편인데다가 개방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적개감이 있어서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방송사의 시청률 하락문제도 있는데 드라마의 시청률 대부분은 이들 중장년층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5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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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초급장교 교류행사.한국군주일미군, 자위대의 위관급 장교들이 참석했다.

일반 한국 국민들이 감정적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정부차원에서는 군사적으로 간접적인 그리고 실질적인 교류가 오고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간에, 남한북한간에 실질적인 교류가 오가는것 봤냐? 반도와 대륙과 섬이 동시에 있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다. 1950년대부터 함께 미국을 필두로 한 반공전선을 수행했으며, 자위대의 출범에는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로 파병된 주일미군의 공백이 컸다. 6.25 전쟁 이후 53년을 방위청으로 지낸 방위성이 성급으로 격상되는데는 북한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교류의 대부분은 미국의 반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일본과 대규모 군사교류를 갖는 경우는 전무하며 대부분 미국의 요청(및 좌판을 깔아 주선함)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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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인천해역방어사령관에게 경례하는 해상자위대원들. 해상자위대 소속의 연습함대가 2007년에 인천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한가운데에 잡힌 욱일기가 심히 거슬린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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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방한했을 당시 현충원에서 분향하는 일본 사이토 다카시 통합막료장.

연합작전은 하지 않지만 위관이나 영관, 사관생도 등의 인적교류는 이미 빈번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의 후보생들이나 따라온 자위관들이 현충원을 참배하기도 했는데, 현충원은 일본군과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절대 무리지만 일본에서 순직자 대체 추도시설이 생길 경우, 한국의 정부 관계자가 참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미국은 밀고 있다.

의 군사위원회가 정부의 국방기능을 앞서는 북한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의 군사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다. 합참 이나 문민통제 등이 그렇다. 정복도 비슷한 편이다. 요샌 중국까지 미국정복을 흉내내 비슷해져버렸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나 중국 등에 대한 견제 노선으로 한국군자위대가 손을 잡자는 주장이 있다. 다만, 과거의 역사적인 문제나 독도같은 영토분쟁의 문제 때문에 앞으로의 일본 정부가 모든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최근 한중관계가 밀월관계라고 불릴 정도로 급진적으로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일본과는 서로 못죽여서 안달난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보니 한국군과 자위대가 손을 잡는것은 꿈도 못꾸는 실정이다. 일단, 우리나라는 북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중국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일단, 중국이 북한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고, 거기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경제적 이익이 굉장히 큰 우리나라가 중국을 상대로 일본과 손을 잡을지는 심히 미지수다. 당장, 최근 일본이 반대하고 난리친 안중근 기념관 설립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이 연대체제를 구축했다지만, 이건 그냥 일본이 막장이었던 것이고... 현안을 덮어두고 군사적인 부분에서 이익만 챙기자는 식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미국이 윽박질러서 같이 하든가...?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일관계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가상 적국으로 중국을 투사하고 있는데, 주요 파트너인 한국일본이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니까 말이다. 2013년 11월 주일대사로 부임하는 존 F.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의 부임 행사에서 미 국무장관존 케리"제발 저 두 국가 좀 어떻게 해봐라."고 이례적으로 거론을 했다. 보통은 덕담 수준만 오가는 자리다.관련기사

이명박 정권 시절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사실상 이명박 정권 시기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2014년 12월에 결국 미국의 중재로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해서 양국이 미국에 정보를 요청하면 미국이 중간에서 나눠주는 식으로 공유하는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을 맺었다. 그런데 이 약정도 이명박 정권 때 정부 주도로 단독 처리하려다가 들켜서 결국 '매국노냐?'는 욕을 먹은 것처럼 국방부가 단독으로 서명한 뒤에 국회에 보고해서 국회 국방위와 네티즌들에게 욕을 무수히 먹었다.

5.1 한미일 삼각동맹

마크 리퍼트 대사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제시하였으며, 서서히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사실 중국의 팽창정책과 미국의 국방 예산 삭감이 원인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에 공동으로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미국을 중간에 징검다리로 놓고 있는 간접적 동맹관계에 불과하다. 미국의 계획은 기존의 한미+미일동맹에 한일동맹까지 완성하여 삼각동맹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동맹체제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나아가 비용도 절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미일 삼각동맹에 앞서 한일 감정을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남아 진전은 더디다.

6 인구

6.1 한국과 일본의 비교(과거)

한국의 인구자료는 두산백과를 참고하였다. 여기서는 서력기원 즈음의 한국 인구를 300만이라 추정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와 현재의 중국 동북부 지방을 합쳐서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구위키백과를 참고하였다. 일본의 인구는 기원전 3000년 경에 약 10만이었고, 기원후 1년 즈음엔 30만 정도로 추정한다. 이 때만 해도, 중국 본토를 제외한 다른 지방에선 제대로 된 고대국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반도일본 열도나 인구이동이 꽤 빈번하게 나타나던 시대였다. 일본에는 동남아대만, 류큐 등을 경유하는 인구들이 꾸준히 들어왔고, 한반도중국을 경유해서 들어오기도 했다. 한반도에도 중국이나 북방의 인구가 유입됐고, 애초에 한민족 자체가 시베리아 동남부에서 발원한 것으로 본다.

인구이동에 대한 연구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매우 부실하였다. 대략, 고려말 시기엔 400만 정도로 보고 조선 전기를 550만, 조선 중기를 700만 수준으로 본다. 일본은 200년에는 50만, 400년에는 150만에 이른 것으로 보며 715년에는 451만에 이르렀다고 본다. 인구에서는 아마 이 시점에서 일본 열도한반도를 이미 능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혼란기를 겪어 줄었다가 1150년 즈음에는 대략 600만을 넘기고 15세기를 지나 1천만을 넘긴 것으로 본다. 임란직전 조선의 인구는 1,000만에서 1,200만 정도로 추정하고, 이 시기의 일본은 1,200만으로 추정한다.

1700년경에 일본은 3,000만에 이르렀다고 보며 동시기 조선의 인구는 1,700만, 이 수치는 조선이나 일본이나 100년 가까이 큰 변화가 없다가, 메이지 유신 직후에는 약 3,700만에 이른다. 같은 시기 조선의 인구는 약 1,700만 정도로 추정한다.[23] 그 후, 일본은 1915년에 5천만을 넘겼고 조선은 1925년에 약 2,000만에 이른다. 일본은 1940년대에는 7,000만, 조선은 2,500만에 이른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 한국북한이 분단되면서 한국의 인구는 약 2,000만[24], 북한은 900만 수준이다. 일본은 1965년에는 1억을 넘긴다. 한국은 1960년에 2,500만으로 1940년대 한반도의 인구 수를 회복했고 1970년에는 3,150만에 이르렀고 현재는 5,000만까지 이른다. 북한은 2,400만 정도로 추정한다. 일본은 현재는 1억 2,800만 정도로 본다. 한반도는 현재 남북을 합쳐서 약 7,400만 정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만 해도 일본한반도의 인구 격차가 한동안 3배 가까이 벌어졌던 것을 보면 한국과 북한이 많이 따라잡은 셈이다. 다만, 일본은 초고령사회이고 한국은 고령화사회로 초고령사회 진입이 2014년 기준으로 고작 12년밖에 남지 않은지라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날 가능성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북한이 변수가 될 수 있기는 하다.

6.2 미래의 인구

특히, 한국과 일본은 인구 감소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현재의 출산율이 유지될 경우 2100년에 한국의 인구는 2천만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6천만 수준으로. 두 나라 다 현재의 인구 규모 유지는 이민 없이는 불가능. 일단, 일본은 1억 이상의 인구 유지를 목표로 하고 적극적인 인구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도 지금 수준의 인구를 유지할려고 일단 노력중이다만, 유의미한 성과가 아직까지는 없다. 두 국가 모두 올해는 역대 최저, 올해는 역대 최저 라며 하염없이 기록을 갱신할 뿐이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둘 다 똑같다. 서민층의 경우 사회 양극화로 인한 지독한 경제난. 중상류층은 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문제.[25] 따라서,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서민층에 대한 출산지원과 더불어 대외 이민 수용을 적극 추진중에 있으며 사회지도층 내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지라 성공하면 이전보다는 상황이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통일이라는 인구정책상의 거대한 변수도 있다. [26] 반면, 일본은 내부의 폐쇄성 때문에 이민에 극히 회의적이며 출산율 증가 정책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한국보다는 더 적극적이지만 그 자체가 한계가 명확하기에 인구 지키기가 날이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 일단, 2014년 현재 기준으로 보면 아베 신조 총리가 연간 20만 이민 수용 카드를 꺼내든 상태.

7 국민과 대중

인터넷으로는 앙숙이지만, 인터넷을 벗어나 한국 사람, 일본 사람과 인간 대 인간으로 섞어보면 다른 외국인에 비해 쉽게 친해지고 서로 잘 지내기는 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숨기는데 급급해하고 재특회 같은 정신나간 혐한 세력들이 활개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소의 성향차는 있을지언정, 우리와 똑같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을 하는 어머니가 계시고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아버지도 계시며 그런 부모님 밑에서 학교 다니며 배우는 딸도 있는 등.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며 국가적인 악감정을 떼어놓고 본다면 사실 서로 잘 통하는 부분도 많다. 또한 일본인은 한류문화를 좋아하면서 한국에게 대체로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꽤 있으며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일본의 서브컬쳐 문화를 접하면서 일본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사실 한국인이 사는 생활이나 일본인이 하는 생활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서 쉽게 구분이 불가능하다. 단지 일본이 한국보다 더 유명하니까, 한국사람한테도 일본어로 먼저 인사하는 것일 뿐이다. 유학생이나 관광객에게 사건 사고가 나면 일본인으로 뉴스가 나갔다가 한국인으로 정정되는 경우도 흔하고, 드물게 한국인으로 뉴스가 나갔다가 일본인으로 정정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호주나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로 놀러온 학생들도 한국인끼리 어울려서 놀지만, 한국인이 없으면 함께 어울려서 놀 일본인을 먼저 찾게 된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온 학생들도 있는데, 이상하게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의 차이로 인해 쉽게 어울리기가 힘들다. 못하는 영어도 이상하게 비슷한 발음으로 못해서, 다른 외국인들이 다 못 알아들어도 한국인만 알아 듣거나, 일본인만 알아 듣는 경우가 흔하다. 태권도가 초기에 외국에서 보급되었을 때도 가라데 도장인 줄 잘못 알고 왔다거나 현대나 대우와 같은 자동차나 삼성과 LG와 같은 전자제품도 현지인들이 이름없는 일본기업의 제품인 줄 잘못 알고 사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는 일화도 흔하다.

물론, 양국간의 기본적인 감정이 안 좋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왜곡된 역사교육 등으로 인해서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거나 그로 인해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국가간의 감정을 굳이 개인과 개인간의 인간관계에 끌어들여야 할 이유는 없으며, 오해가 있다면 무작정 다투거나 반발을 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대화와 이해를 통해서 서로를 알고 바로 잡는 게 최선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민감한 부분은 애시당초 서로 안 건드리고 지나가는 게 편하긴 하다. 애초에 한국인과 일본인 관계가 아닌 얘기를 꺼내는 것은 서로간에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일본의 장년, 노년층 중에는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를 비슷하게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라고 하겠지만,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일본인들이 다 잘 살았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대다수의 일본인들 역시 군부독재 체제하에서 고생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군부독재 체제하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우환을 표현한 대표적 작품으로 만화 맨발의 겐이 있다. 읽어보면 좋은 책이고, 권장도서이기도 하니 꼭 읽어보자. 당시의 일본이 얼마나 단단히 맛이 가버린 상태였는지에 대해서 한국에서 만든 작품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세하고 신랄하게 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입은 신랄한 피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근대화 이후의 정치체제는 명목상 민주주의 체제였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장식이었을 뿐, 치안유지법[27] 때문에 사실상 귀족중심의 독재와 지역연고 코드인사로 굴러갔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통해더욱 더 막장으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전쟁을 일으켜서 식민지를 수탈한 돈은 모두 높은신 분들과 재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인구 급증과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일본국민의 대다수의 생활수준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서민들은 만주, 몽골, 중국 등지의 개척단에 반강제로[28] 끌려나갔고[29], 태평양 전쟁에서는 막장 상관으로 유명한 일본군 장성들 휘하에서 강제징집된 젊은이들이 헛되이 목숨을 버리다가 결국 패망하게 된다. 패전 이후 식민지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이 소련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중국, 북한, 한국 등에 강제로 남게 되어서 온갖 수모를 겪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국교 정상화가 빨라서 60년대, 중국은 국교 정상화가 된 80년대에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 있는 잔류 일본인들은 생사조차도 불분명해졌다. 미군의 폭격으로 본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는 GHQ 군정 하에서 1958년 전쟁 이전의 경제수준으로 회복선언을 할 때까지 반쯤 식민지 상태를 13년 정도 경험을 한다.

물론 당시 일본인들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식민지였던 조선인, 중국인의 생활수준보다야 훨씬 나았고, 생활이 어려워서 개척을 하러 갔다는 농토 역시 식민지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서 사용한 것이다. 식민지였던 조선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일본인 세대들은 한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민지인 조선에서 부유하게 살며 재산을 모았으나 일본 패망 이 후 일본으로 쫒겨갈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빈털털이로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일본에서 차별에 시달렸다고 한다. (보통은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규슈 쪽에 정착했다고 한다.) 어총독부와 자국 정부의 도움이 매우 컸음에도 자신들은 맨주먹으로 조선에 와서 자수성가했다고 느끼고 있으며, 지금도 본인 재산을 완전히 몰수를 당하고 쫓겨난 생각을 하면 이를 간다고 한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모은 재산의 당위성은 둘째치더라도 일본인들의 재산을 몰수한 주체는 남한의 경우 주한미군이니 아이러니할 따름. 당시에는 한국에 귀화를 시도하려는 일본인 대지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정의 반응은 쿨하게 '"No. 그냥 꺼지세요."'라는 반응이었다고. 미군정은 이렇게 몰수한 재산을 신한공사란 형식을 통해 대한민국에게 돌려줬고, 이는 농지 개혁 등의 밑바탕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마모토 가문 1편 2편3편 4편 .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선을 떠나며 라는 책도 읽어볼만 하다.

일본 국민도 전쟁으로 인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았으며, 한국인이 듣기에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만 들리는 '우리도 전쟁 피해자.'라는 일본인의 항변은 이러한 일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스스로 피해자 운운 하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제대로 반대하기는 커녕 전쟁으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좀 얻어먹으려고 침략 전쟁을 옹호한 사람들이 당시 일본 국민이므로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대에 와서도 반성은 커녕 일제가 저지른 흑역사를 미화하고 얼버무리며 피해자인 척하는 몰지각한 일본 정부와 혐한 세력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더 나아가 일본 국민 개개인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야 그 개개인이 병신이라 그렇다고 넘어간다 치더라도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이끄는 정부가 이런 몰상식한 주장을 대놓고 주장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0년~2011년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인 60%정도가 한국을 좋아하고 있었으며 한국이 세계에 미칠 영향이 부정적인가에 대한 대답도 당시 설문에 응한 나라 중 제일 최저치인 9%였다. 거기다, '신뢰할 수 있는 나라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대한 설문에 한국이 '자국민인 일본인보다 더 신뢰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이 대다수였으며[30] 스포츠 경기 때 제일 지기 싫은 나라에는 1위를 차지했었다.[31] 이처럼 이 시기에는 일본은 한국을 매우 좋아하고 있다. 거기다 이 당시에 중국이 센카쿠 열도 문제로 한창 격한 반일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여서[32] 일본 입장에서는 이러한 중국보다는 한국이 더 낫다고 생각한 여론이 대다수였다. 실제로 저 당시 일본인이 한국인을 신뢰한다는 여론조사는 무려 60%이상 반면 한국은 일본이 싫다는 응답만 70%가 넘었으며 일본에 대한 신뢰도도 25% 정도 밖에 안됐다. 이 정도면 진짜 일본이 짝사랑하고 있었던 수준(...). 하지만 위에서 서술했듯이 여러 요인에서 양국관계가 악화되어서 2013년 11월, 일본 국민 58%가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 당연히 이를 본 국내의 반응은... 다만 여기서 말한 '친근감'이라는 게 상당히 애매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한국인들만 하더라도 일본인들과 별탈없이 지내더라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친근감을 갖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 일본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을 신뢰한다'는 사람이 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은 못 믿을 나라라는 응답이 72%로 조사되었다. 이제는 비단 아베 신조의 문제만이 아니라 보통의 일본인들조차 한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 중국의 초강대국화에 따라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이나 냉전 시기의 핀란드처럼 일단 중국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본에 반격할 기회를 노리자는 의견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긴 하다.

거기다가 2015년 1월쯤에 조사한 결과에는 60%가 넘는 일본인들이 한국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이 통계자료를 본 한국인들도 일본을 향해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나빠지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의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2014년 3월 한국 프레시안한국을 위협할 국가에 대한 여론조사를 통계한 결과 한국 국민 사이에서 한국을 위협할 국가 1순위로 일본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33][34]

그리고 2014년 4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 67%가 일본을 혐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같은 결과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본일본인을 보는 시각이 반일감정을 넘어서 혐일(嫌日)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결과로 온라인 뿐만 아니라 실제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혐일이 생겼음을 입증하고 있고, 이와는 반대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도는 불과 4%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니 결국 실제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단순한 반일감정을 넘어서 점차 일본일본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결과이기도 하다. 2014년 기준으로 봤을 때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국민정서상으로도 '자신들이 아시아 최강인 양 떠드는 놈들'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한국 정서상의 대대적인 혐일화(嫌日化)가 시작되었다는 수치다. 여기에 미국이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35] 일본이 진짜로 한국을 침략하여 철저하게 파괴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근 친중국 지지 여론이 높아진 건 이런 점에서 일본과 미국 둘 다 나쁘고 미국이 지켜줄 가능성이 없으면 차라리 상대적으로 나은 중국에 붙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국방백서나 군 장병 정신교육에도 북한과 함께 일본도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위협하는 주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적개심은 강하게 퍼져있다. 즉 대적관 교육이 없어도 적개심이 번질 정도로 일본정부의 태도가 막장이라는 것이다.

2015년 2월에는 일본 공명당에서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혐한 정서와 한인들의 피해 조사를 실시할 정도로 일본 내의 혐한 정서와 그에 대한 위험수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관련기사 거기다 이 기사의 덧글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한국 내 혐일감정도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니 적어도 현재로선 한일 관계의 개선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위에 통계자료가 일본 국민, 한국 국민 전체가 아닌 일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이며, 일본 국민 1억 2천만, 한국 국민 5천만 중 기껏해야 100명~1000여 명 정도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이기 때문에 대표성이 없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 이전버전의 말과 달리 100~1000명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만 한정시키고 하고 진행해버리면 그만인데다가(무슨 수로 대표성을 인증하고 누가 그 설문조사의 신빙성에 대해 그렇게 집착하며 조사하려 하겠는가(...).) 통계에 대해 조사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설문조사 할 때 사람들이 잘 응해주던가? 완벽한 학문이란 없으며 그렇게 정확하다면 여론조사가 틀리는 경우는 무었으로 설명해야 하나?

멀리 갈 것 없이 현재 양국 관계가 매우 좋지 않고 양국 국민들의 상대에 대한 분위기가 서로 나쁘다는 건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확실한 상황이다.

2015년 2월 갤럽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17%에 불과했다. 이는 역대 조사 중 최악인 수치로, 현재 한일관계가 얼마나 나쁜지 알려주는 것. 그러나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는 40% 정도로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보다 높다. 아마 일본 시민 개개인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세대별로 보았을 때에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20대(29%)에서는 20%를 넘겼으나, 가장 낮은 60대 이상(9%)에서는 한자리 수로 떨어졌다.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의 경우 20대(56%), 30대(43%)에서는 호감이 비호감보다 높았으나, 60대 이상의 경우 67%의 응답자가 일본인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호감이 간다는 비율은 25%에 불과했다.[36]

광복절 날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한국을 위협할 위험한 국가 투표에서 일본이 13%를 차지했는데, 이는 북한56%, 중국 16.2%보다 낮은 수치다. 북한의 경우에는 최근에 도발은 물론 사건사고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고 중국은 일본보다는 강대국인데다가, 외국인 범죄 비율도 가장 높아서 그런듯. 일본은 일단 최근들어 양심인들의 아베를 향한 발언과 집단자위권에 대한 일본 내 국민들의 반감을 보고 조금 누그러진듯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일본의 군사력을 대단하다고는 생각해도 무섭다고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일본과 설사 전쟁이 나더라도 그럭저럭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민족 우월주의로 가득한 중국이나 세계가 인정하는 꼴통집단인 북한과 달리 그나마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기도 하고.

한일 경제관계는 가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던 일본 오타쿠 문화에 갈수록 극우적 색채[37]가 짙어지면서 비교적 호의적이던 일본 서브컬쳐물에 대한 적개심과 경각심이 이전에 비해 심해졌으며, 일본 음악 아티스트나 미디어 등의 매체의 대중적 인지도들도 이전보다도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어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가끔식이나마 볼 수 있었던 일본 음악가, 가수 등의 초청 및 공연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한류의 성지' 신오쿠보에서도 거리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보기 힘들어졌다. 한국 관련 가게가 차례차례 문을 닫기 시작했고, 한식 전문점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점점 일본 내의 혐한 감정이 높아지고 더욱이 한국의 국민 감정 악화로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면서 친한 일본인과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자리를 잃은 것이다. 반대급부로 중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 자리를 중화요리점과 중국 관련 상점, 면세점 등이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또한 한때 잘 나갔던 한국 스마트폰(삼성 갤럭시 등)들도 '한국 상품이라면 안 산다.'라고 하는 등 극단적인 반한 불매의식이 커지면서 삼성 측은 결국 신형 갤럭시 S6 상품에 삼성 로고를 빼는 극단의 조치를 써서야 일본에서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로고를 빼는 정책은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정책이긴 하다.해당 기사

7.1 내셔널리즘 문제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비교적 근대사가 짧은데에다 분단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민족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한국은 분단 상태를 이용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흐르는데, 이로 인해 국적만을 기준으로 삼는 유연한 피아구분은 아직까지 보편적인 것으로서 여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굳이 한국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유연한 피아구분을 완전하게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까지 아예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결과적으로 외국인과 내국인을 태생적으로 구분하게 되는 경향을 따르는데, 여기서 한국이 뚜렷하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방향 중 하나가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과의 민족성을 구분하는 것이다.[38]

다만 현재 한국은 민족을 혈통이 아닌 한국 국적을 갖고 한국의 가치관을 수용하는 국민으로 전환하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은 차이점은 있다. 이게 가능한 건 한국이 혈족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가 식민지 시대와 자국 내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면전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식민지배를 겪으며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 민족을 배반하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했고,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 차이로 서로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혈통도 혈통이지만 무엇보다 뜻이 맞아야 우리편이라는 의식이 한국에서는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혈족에 대한 가치관을 근대적인 차원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문화로서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한민족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서 두고 있긴 하지만, 사회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주를 당연한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 민족의 기준을 혈족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이질적인 부분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에는 없는 유연함이 있다. 일본은 그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한데, 당장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는 다문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유럽이나 미국과 비슷하게 민주적 가치관을 무시하는 일부 타자에 대한 반감, 그리고 노동과 사회적 계층 문제를 포함한 경제적인 원인이 큰 반면, 일본은 아예 외부인을 내부로 받아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39]

물론 현실적으로 이걸 유전학적인 방향에서 구분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서부터 서양인들과 꾸준한 교류가 있었던 데에다 패전 이후 미군 점령기에 비공식적으로 적잖은 혼혈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이야기하자면 일본은 혼혈을 하더라도 이름과 가문을 통해 동종으로서 환원시킬 수 있지만 한국은 자국의 암묵적인 사회적 배경을 받아들이고 그걸 따르기만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원인에 대해서는 모두 파악하기 어렵지만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타자를 내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고 그들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공공성이 있고, 한국은 이를 구분하는 한에서 가능한 공공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이는 구 일본 제국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기 때문에 타당한 근거를 가진다. 인도인이 영국식 사회구조를 따라가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민족성을 따르듯이 한국 또한 그렇게 본래 자신들만의 특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굳이 미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여타 선진국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까지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는 하지만 이들 또한 예외는 아닌데, 한일 간에는 민간 교류도 잦다 보니 그 구별 지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흐름은 막대한 힘으로서 작용한다. 이 힘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소수 상위 계층과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소수일 뿐이기 떄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동조하게 된다.

하층민으로 갈수록 이러한 흐름에는 면역이 없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상대적으로 현실 정치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갖추지 못한 계층의 경우에는 내셔널리즘 말고는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없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결벽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말을 필터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일단 그렇게라도 하면 최소한 자기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는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40]

최근 들어서는 수출 위주의 경제로부터 구축한 정치 판도에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어서 기존까지 고수해오던 가치관이나 정치적 스탠스가 위기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내셔널리즘을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타자와 자신을 구분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으로서의 타 민족에 대한 증오가 다시 중요한 코드로서 작용하고 있기도 한 것. 현재 신 자본구조가 구 자본구조와 부딪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기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있던 지역들이 하나 둘 터져나오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에 대한 반발로부터 성립시키는 작용으로서의 내셔널리즘 뿐만이 아니라 미국식 판도를 따라가고 있었던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반이슬람주의와 이와 정반대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개신교와 같은 종교를 공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내셔널리즘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종교를 향하는 반발과 일본에 대한 반발에는 국가를 통합하기 위한 내셔널리즘의 구성이라는 구조적인 상동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요구가 현실 정치에 반영되기도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국가의 기본이 되는 전제조건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은 절대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정언명령이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수용조차도 민족의 개념에서 혈통주의만을 포기할 뿐, 기본적으로 독일식의 동화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현 시점에서의 한국은 이 지점을 굳이 타고 넘어설 만큼 필요한 이해관계를 다른 곳에서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이유로 만들어지는 절실함에서 비롯된 뚜렷한 정치적 흐름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을만큼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이 상태는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원래 강대국 옆에 붙어있으면 억울하다. 아일랜드, 핀란드, 폴란드, 그리스, 불가리아, 우크라이나,캐나다]등을 봐도...불가리아와 그리스는 터키, 핀란드,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아일랜드는 영국, 폴란드는 독일, 캐나다는 미국.

8 체제의 차이

한국은 공화제이자 대통령 중심제인 반면 일본은 입헌군주제이자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민 사이에 의식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냥 체제가 다른 것뿐이라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윗동네보단 낫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입헌군주제인 영국이나 스페인 등에 대해서 한국은 이렇다 할 불편함은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공화제이자 대통령 중심제인 프랑스와 입헌군주제이자 의원내각제인 영국이 상호 국민 감정은 어떨지 몰라도 서로의 체제에 딴지 거는 거 봤는가. 그런데 한일관계에서 이런 차이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이 과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실행했던 방식이 덴노를 중심으로 만들어낸 전체주의 체제였다는 것이다. 패전 이후에 반성을 했다고는 하지만 식민지배를 당한 국가에서 그들이 자신의 대표자로서 여긴 덴노가 그리 좋게 보일 수는 없다는 점, 패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 당시 책임을 져야 했던 덴노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은 전후 일본 내에서도 비판을 받은 문제이기도 하다.왕을 제외한 말을 전부 잡았는데 스테일메이트

또한 영국 등 유럽의 왕실은 스스로 관광상품화 되어 그저 놀고 먹는 플래티넘 수저라는 인식을 스스로 개선하면서 군 자원 입대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실천하는 등 왕실 유지를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 왕가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고대 신정 사회의 우두머리와 같은 종교적 상징으로서 폐쇄적 지위만을 누리며, 또 일본 국민들은 이런 자들을 천황이라 부르며 따르는 모습을 봤을 때, 한국인들의 눈에 이러한 일본은 시대에 뒤떨어진 중세봉건적 사회라 비춰질 수 밖에 없다.[41]

물론 이제 일본도 덴노의 존재 자체를 하나의 문화적 형식으로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극우파들이 이따금씩 덴노를 내세워서 구일본제국 시절을 상기시키는 망언을 하기라도 하면 그게 단순히 문화가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섬나라 체제와 반도국 체제가 다르다는 것도 그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인데, 섬나라는 주어져 있는 섬으로 곧 영토가 규정되는 반면 반도는 영토로서의 형상이 반은 주어져 있고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즉 바다와 맞닿은 부분은 눈에 보이는 한계선으로서 확실하게 그 경계를 보여주지만 대륙과 맞닿은 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영토를 규정하고자 하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포함된 섬이기 때문인데, 섬나라에게 영토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임에 비해 반도국에게 영토는 뺏길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반도국은 대륙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마찬가지로 독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을, 일본은 그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갯벌까지 메워서 땅을 만드는 나라에서 땅을 빼앗으려 하는 건 식민지배까지 한 나라가 할 짓이 아니다 2차 대전 이후에 협상 과정 속에서 독도를 한국 정부에 반환하라는 명기를 서류상에 표기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긴 하지만 그 원인으로부터 드러나는 양국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은 서류에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우리땅이라는 거고, 한국은 옛날부터 자연법상으로 인정받은 땅이었으니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봤을 때는 양국 모두 겹쳐지는 경제수역 안에서는 공평하게 조업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도 않은데도 넘어오는 중국에 비하면 실제로 경제적인 이해관계 안에서의 충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두 나라를 암묵적으로 성립시키는 정치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9 다른 주변국가들과의 관계 및 비교

우선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게 되는데, 이는 북한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느끼는 체감상의 접근성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설계자는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면 좋은 게 당연하게 만들어놓은 동맹은 안 맺고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은 북한에 대해 한국이 느끼는 위협과 일본에 대해 한국이 느끼는 위협이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실질적인 적대적 수준에서 보면 북한이 일본에 비해 훨씬 크지만 승산으로 놓고 보면 일본은 북한에는 없는 승산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일본 군대를 한반도 내에 들이는 일 자체도 국민 정서상 불가능한 일에 가까우며, 되려 일본의 신 군국주의에 빌미를 줄 공산이 있는 것으로 보여도 한국 입장에서는 이상할 게 없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미약한 가능성보다 이 가능성 자체를 일본이 카드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가능성에 대해 한국은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 마치 절대 쏠 수 없는 핵[42]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도발을 하면서 외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듯이, 일본의 경우에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지만 반도와 대륙과 섬이 동시에 있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다. NO.2 일본에서는 그에 대한 자각이 없이 정한론 등의 사상을 가지고 일본을 겨누는 칼 드립을 치면서 한반도를 노렸던 전례가 있다. 물론 애당초 우리가 지켜주고 싶어서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리상 그렇게 되는 것뿐이니 그쪽한테 감사받을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도 해일이나 지진, 태풍을 일본이 막아주고 있으니 기브 앤 테이크다. 문제는 중국인데, 중국의 경우에는 지상뿐만 아니라 해상에서도 확장을 지속하고 있어 현재 서태평양 연안의 중국 포위망은 자연스럽게 남쪽은 미국 주도 하의 호주 등 동남아 국가. 조어도 중심의 중부는 일본이 맡는 쪽으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제주 서쪽의 남-서해 중심의 북부는 한국이 맡는 것을 바란다)

북한군의 미약한 전력을 이유로 들어서 그 위협을 무시하는 면도 있는데, 물론 북한군의 전력은 상당부분 과대평가되어져 왔고 대한민국에 있어서 북한군 따위가 무서운 게 아니긴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전쟁이라는 그 자체가 무서우니까 이러는 것이다[43]. 이에 대해서는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한국군 vs 북한군항목 참조.

또한 북한이 가진 지하자원에 대해서는 북한/지하자원문서에 기술되어 있는것처럼 사실상 떡밥 수준을 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뭔가 대단한 가능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북한의 인력을 단지 저렴한 노동력으로 생각하는 것도 너무 단순한 발상이다. 애초에 같은 나라의 국민이 된다면 당연히 임금 기준도 같아져야 하므로 저렴하지도 않다. 물론 인구 자체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는 쓸모가 있기 때문에 아직 남북통일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다.

게다가 이는 그 땅에 있는 인력과 자원에 대한 이야기이지 그렇게 본다면 북한이라는 체제는 오히려 커다란 벽일 뿐이며 애시당초 통일 자체가 얼마나 걸릴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야 하는지 가능하기는 한건지 통일이 되더라도 어떤 위험성과 변수가 도사리고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인 상황이다. 남북통일이 한국에 있어서 최대의 도박이라는 평가나 통일반대론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대한 군사적인 도발을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써먹으면서, 한국을 인질삼아 미국에게 원조를 해달라는 식으로 써먹는 북한은 한국에 있어서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북핵문제를 생각하면 한국과의 관계를 넘어서 세계적인 골칫덩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과거사 부정이나 역사 왜곡, 영토 분쟁 등의 문제로 걸고 넘어지는 작금의 일본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단순히 영토 분쟁에서 편을 들어준다는 정도를 가지고 북한을 좋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는 북한을 일본보다 더 경계하고는 있지만 일본이 한국과 동떨어진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된다면 한국도 이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국의 경우, 현재 중국은 한국 입장에서는 개입하기 좋은 발전 단계 중인 시장이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의 무역규모는 한국과 일본의 무역규모보다 커지게 되었다. 물론 대중무역은 실제 시장에 대한 수출보다는 중간재가 많고 중간재의 성격상 언제든 대체할 수는 있지만 한국 경제가 중국 경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긴밀하게 내부에서 연결되어 있는 자본의 존재로 인해 미국의 글로벌 기업이나 대형 펀드조차도 철수를 하고 있는 상황에 한국 경제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없다.그런 거 없다 그런 한국에게 있어 일본의 시장은 중국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시장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중요도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

문제는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제 시장의 룰을 자의적으로 조절할 가능성을 가진 세력에 대해 견제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곧 이러한 판단에 근거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과 이어진다. 즉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개입해 한국과 함께 싸웠던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이란 나라는 자신들이 지키게 된 나라라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을 마냥 못마땅하게 취급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문제는 그 상대, 즉 중국이 국제 시장의 룰을 자의적으로 조절할 가능성을 가진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미국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되었던 것. 이에 더해 미국 자신이 그렇게 나서서 싸워온 결과로서 안정된 무역체제와 국제적인 자본망의 존재로 인해 하드파워로 인한 직접적인 견제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고, 그 결과로 외교와 자본에 대한 개입이라는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와중에 한국이 AIIB에 먼저 가입을 해버렸고, 일본은 이에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니 미국입장에서 일본은 당장 급한 불은 꺼주고 있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최근에는 그렇게 우선순위가 변동한 결과로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비난마저 하게 되었다. 동시에 중국에 대한 외교적 견제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역사 문제에 대해 마찬가지로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은 역으로 일본을 견제하기에 더없이 좋은 카드다. 전세계에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이 아닌 현재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나쁜 나라는 한국 외에도 많지만, 일본에 대해 강하게 나갈 수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는 중국과 러시아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센카쿠 열도의 영토분쟁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을 견제할 대상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것. 물론 중국은 본질적으로는 반서방 국가이기 때문에 가까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러시아도 쿠릴 열도의 존재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영토분쟁 문제가 있지만,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실제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기때문에 일본이 먼저 건방지게 나대지 않는한 굳이 먼저 강하게 나올 일이 없다.

10 결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많이 받고 있고 많이 받을 이웃 국가이며 두 국가는 옆에 있는 한 싸우며 가거나, 웃으며 가거나 어쨌든 살을 맞대고 가야 할 운명이다. 일본과는 정도 이상으로 멀어지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사이가 상당히 악화된 2015년에도 4년만에 국방장관 회담이 열릴 예정이고 2년만에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44]

가까운 국가끼리 영향을 많이 받는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두 나라를 둘러싼 여러가지 요인과 역사적인 문제, 두 나라의 특성으로 인해서 더욱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이미 두 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도저히 서로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이며, 둘 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나토 주요 협력 국가들이다. 다만 한미방위조약같이 계약으로 직접적으로 묶이지 않았으므로 동맹국이 아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론조사에서 72%가 일본은 한국의 동맹국이 아니라고 했다. 한일 동맹은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덕분에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한국와 일본의 미 대사관은 서로 바빠진다. 대신 본국에서는 어느 한쪽만 편들 수가 없어서 그냥 악화만 안 되도록 지켜보는 느낌이 강하지만.[45]

문화 부문에서도 두 국가는 계속 친밀해지고 있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국민들 사이에 만연한 반일감정과는 별개로 일본의 애니메이션,게임같은 서브컬쳐 문화가 엄청난 인기를 몰고 있으며,나무위키의 일본 애니메이션 항목만 봐도 알 수있다. 일본 역시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아이돌이 수십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기도 한다.[46]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입장에서도 한국은 매우 좋은 파트너이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 대다수가 한국인에게 하청을 의뢰하기도 하며 한국도 일본과 공동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만 수십개이다. 거기다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 수입국도 한국이며, 한국 가수들이 제일 많이 찾아가는 외국도 일본인 동시에 한국 가수들에게 제일 열광하는 나라도 일본이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 부문에서 떼어놓기 힘들다. 주력산업이 상당부분 겹치기 때문에 경쟁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은 B2B로 얼키고 설켜 있어서 당장 한일관계가 끊기기라도 하면 양국 모두 경제가 휘청인다.[47] 관광 산업에서도 그렇다. 국적별로 따져보면, 일본을 가장 많이 찾는 관광객은 한국인이며, 엔화가 강세이던 시절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 관광객 또한 일본인이었다.[48]

그리고 위에서 다소 부정적인 방향으로 서술했지만 말했듯이 일본인 모두가, 한국인 모두가 서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한국인,일본인이 서울-도쿄 릴레이 프리허그 캠페인을 열었으며 일본인 혼자서 이 캠페인을 연 적도 있다. 일본 본토에서도 혐한 넷우익 보고 철없다고 욕하는게 괜히 그러는게 아니다.

또한 전후 몰락했던 일본이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다름아닌 한국전쟁이었고, 일제강점기로 끔찍한 세월을 보내고 상처입었던 한국이 일본의 경제발전을 종종 벤치마킹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으며[49] 현재도 양측이 서로의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처를 보면서 자국의 고령화 대책에 참고한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힌 관계이면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느낌을 준다.

11 관련 항목

  1. 예를 들어 삼성 스마트폰 등 첨단기기의 부품 하청을 일본 기업이 담당하거나,애니메이션 선화 하청을 한국 기업이 담당하는 등.
  2. 이는 안중근의사나 현대의 동아시아 평화주의 좌파의 생각과 유사하다.
  3. 물론 한국 쪽도 그저 얻어맞기만 한 게 아니라, 제법 두들겨 팬 적도 있었다. 삼국시대의 왜는 (백제 한정이지만)먼 친척 수준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자 동맹이었고, 도래인이니 뭐니 하는 것도 말타고 철들고 가서 두들겨 팬 것이고, 해적질도 제법 많이 했다. 고려시대의 여몽연합군도 우리나라야 억지로 끌려간 것이래도 맞는 쪽에선 사실 또 다른 느낌이고... 조선의 삼포왜란도 삼포에서 조선인들이 하등 오랑캐 왜구를 때리고 죽이면서 학대하고 멸시하다가 쌓인 분노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왜구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맞기만 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물론, 삼포왜란에 한정된 이야기다.
  4. 한국과 일본의 그 이전까지의 전쟁은 국지도발급으로 특정지역에 국한되어 치고박기만 했지만 임진왜란이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국가 VS 국가의 정식 전면전을 벌인 것이다. 기존에는 해적의 약탈과 나와바리 쟁탈전이었던 한일간의 싸움이 임진왜란으로 인해 한쪽이 망하는 단두대 매치이자 전면전이 된 것이다.
  5. 일본이 한반도 강점을 시도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분로쿠의 역'(임진왜란)으로 인한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라고 하기도 한다.
  6. 사실 발해와 신라도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 관계만큼은 아니었지만 서로 사이는 안 좋았다. 당나라가 발해와 전쟁을 벌일 무렵에 당나라와 연합하여 발해 남부 영토를 공격한 이력도 있었고 일본도 남북국 시대 당시 신라와의 사신 파견을 끓고 한반도의 왕조 국가들 중 유일하게 발해에만 사신을 보낼 정도였다.
  7. 혹은 못했다.
  8. 현재의 오키나와 제도
  9. 무리하게 한국인이라는 민족감정을 없애려고 한 정책들이다.
  10. 역사왜곡을 진실이라 주장하는 극우 정치인들이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보다 많은 상황이다.
  11. 일본이 백제를 얼마나 좋게 대접하고 있는지는 일본말 "구다라나이"란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이 말은 직역하면 "구다라(백제)에 없다."란 말인데 실제로 이 말은 "백제에 없는 물건은 시시한 것"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는 설이 있으나, 주류 학설은 아니다. 일단 한자부터가 틀리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쿠다라나이 항목 참조.
  12. 물론 혐한초딩 같은 부정적인 예외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부류는 절대 주류라고 볼 수 없으며 국가 간 외교문제를 제노포비아로 승화시키려는, 비정상적인 일부일 뿐이므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
  13. 물론 이 요구가 이뤄질 확률은 거의 없다. 미국이 가만 있을 리 없는데다 국교가 단절될 경우 현재로서는 한국이 불리하다.
  14. 일본은 창립국 가입은 포기했지만 나중에 가입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15.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압박한다는 것도 북한 핵실험 사태 이후 민낯을 드러낸 중국의 고압적 태도와 내정간섭에 완전히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렸고, 사실 한중의 협공에도 일본은 눈썹 하나 깜짝 하지 않았으며 중국의 열병식에까지 참여한 한국을 서방세계는 비난을 쏟아냈다. 그 결과로 한국을 찾는 국빈방문(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라는 게 끊어진 것이다.
  16. [1]
  17.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
  18. 출처: 2013년 7월 19일 산업자원통상부-보도자료, 사무관 김형태
  19. 출처: 2013년 7월 19일 산업자원통상부-보도자료, 소재부품정책과장 김선민
  20. 사실, 일본여행이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도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2005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여행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러던 것이 2005년 아이치 세계박람회 때 일본정부가 한시적으로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뒤, 이듬해부터 90일 이내의 체류에 대해 무비자입국을 완전 허용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일본여행이 국내여행처럼 쉬워졌다.
  21. 그러나 일본의 만화나 드라마를 한국판으로 로컬라이징 하는 등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느데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하얀거탑올드보이(2003). 이 중 올드보이는 성공적인 실사영화화로 인해 원작이 재조명된 경우이다.
  22. 저건 세계 2차 대전때 일본제국의 국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해군 자위대의 국기다그래서 더 논란 인거 잖아
  23. 멜서스의 한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정체 혹은 감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 시기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 조선의 산은 함경도와 강원도같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민둥산으로 변화하였고, 경작지의 넓이가 일본을 추월하기까지 한다.
  24. 월남귀국 등으로 늘었다.
  25. 국가 차원에서는 이걸 좋아하지 않지만, 사회 구조가 새로 창출되는 직업 자체가 양질의 좋은 일자리 일부와 열악한 일자리 다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전히 해결이 안 되고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굳어졌고, 일본은 외환위기는 겪지 않아서 한국보다는 시기가 좀 늦었지만 결국 피하지 못한 것은 똑같다. 실제로 두 나라의 출산율 추이를 보면 공무원이나 서민이나 교사나 상류층이나 다 비슷비슷하다. 즉, 경력단절이나 경제난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맞지만, 출산율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26. 실제로 UN은 한국이 현 상황을 유지할 경우 2100년 기준 인구 2,200만. 외부 이민 수용 등이 이뤄지면 3,700만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27. 일본판 국가보안법. 애초에 이 쪽이 원조다. 한마디로 일본 내의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해서 만든 법이다.
  28. 지역마다 인원을 할당해서 할당된 인원을 채우지 못할 경우, 세금 감면을 안해주거나 자치단체 보조금을 깎았다.
  29. 이 때 떡밥으로 내건 것이 세금 감면, 농토 지원(물론 중국인, 조선인에게서 빼앗은), 군 면제였다. 하지만,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이후에는 농토 지원 그런거 없었고, 개척단이고 뭐고 얄짤없이 다 징집해갔다.
  30. 참고로 신뢰 못할 나라 1위가 중국이었다.
  31. 물론 나쁜 쪽이 아닌 선의의 라이벌 쪽으로 응한 대답이였다.
  32. 어느 정도였나면 일본 기업이면 전부 다 때려부수는 데다가 일본 물건, 일본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던 사람을 때려 죽였을 정도.
  33. 2위가 중국이고 3위는 북한이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이뤄진 후 설문된 조사였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보다 위협도가 하락했다.
  34. 단 북한의 경우는 어차피 국력 수준이 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측면도 있다. 당장 김정은이 수시로 정전협정 파기, 전쟁 준비 등을 떠들지만 한국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 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35. 이는 미국의 명백한 동북아 외교 실패다. 미국에서도 오바마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에서 꼭 한번씩 언급하는 수준으로 불거졌다.
  36. 사실 세대별 경향은 옛날(1992년) 여론조사를 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6페이지 참조
  37. 이건 일본의 서브컬쳐 시장이 과포화된 것도 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인터넷은 2ch 여기서도 혐한들은 욕 먹지만 이 반쯤 점령한 상태인데, 서브컬쳐는 이들을 주 타겟으로 보고, 거기다가 이 서브컬쳐 시장이 과포화 상태가 되다 보니 이들에 입맛에 맞는, 더욱 자극적인 작품을 만들게 되고, 이하 생략.
  38. 일본도 미국에 철저하게 깨지고 식민지를 해방시켜야 했던 경험 때문에 한국과 민족성이 섞이는 것을 경계한다.
  39. 물론 외부인을 내부로 받아들인다는 발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나 중국을 중심으로 외교는 물론 인적교류가 활발했던데다 1858년에 일본과 미국 간에 체결된 통상 조약인 미일 수호 통상 조약과 유럽 5개국과의 협약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1899년 폐지되기 전까지 츠키지, 요코하마, 카와구치, 고베, 나가사키, 하코다테 등 여러 지역에 외국인 거류지가 존재하였으며 근현대에 들어선 지금도 일본에 오는 외국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외국인과의 통혼도 잦아짐에 따라 혈통으로 기준을 보는 것이 점점 옛말이 되어가는 추세이다.
  40.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왜 사람들이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계급투표는 암묵적으로 자신의 스탠스를 하위 계급으로 환원시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평등을 요구한다. 누구나 네이션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이 내셔널리즘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41. 하지만 이 부분은 서양과 동양의 이른바 '귀족층'에 대한 인식 차이라 볼 수 있다. 태국의 경우만 해도 화폐에 그려진 태국 국왕의 얼굴을 훼손할 경우 처벌을 받을 정도로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다. 또한 일본이 폐쇄적 지위라고 하기엔 일본 매스컴에서 일본 덴노 가문일원에 대한 취재나 가십이 많이 게재되고 있다. 또한 장년층 외엔 일본 덴노 가문에 대한 인식은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편은 아니다.
  42.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을 쏘는 순간 미국이 북한을 향해 가지고 있는 모든 가용전력을 동원해 보복에 나설 것이고, 외교적으로도 수세에 몰리게 되고 UN을 적으로 돌리게 되기 때문에
  43.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래야 정상이다. 전쟁으로 잃어버리는 것도 많거니와 그 피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피혜국가들인 유럽국가들이 겪어야 했던 후유증과 재건에 걸린 시간등을 생각하면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같이 경제라는 것이 국력의 그 자체라는 개념으로 여겨지는 현재에는 "전쟁 = 국가의 패망"과 같은 인식이 박혀있다. 당장 베트남 전쟁살수대첩 항목들을 보면 무모한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4. 애시당초 영화 일본침몰같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급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한민국 전체가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건국을 하지 않는 한 이웃국가로서의 운명은 피할 수가 없다. 더구나 궁극적으로도 중국과는 친숙한 우방으로서 삼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만큼, 일본과의 관계는 유지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일본도 그걸 잘 알기에 경색국면에서도 한일관 실무회담은 계속되고 있다.
  45.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지만, 이 역시 드러내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다만 요즘은 중국이 날이 갈수록 팽창주의 성향을 드러내면서 이전보다는 필요성이 좀 더 강조되는 편. 미국의 입장에선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야 되는데 언제나 개판 5분전이니 답답하기만 한 상황. 기사 : 美, "과거보다 지금 중요".. 한일관계 개선 '압박' 아무튼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나라이며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46. 참고로 둘 모두 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47. 삼성전자가 자사 제품에 쓰일 부품을 생산하는 일본 중소기업들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려고 서로 경쟁까지 할 지경. 한국도 일본 부품이 없으면 자국에서 구하기 힘든 부품이 굉장히 많고 유럽에서 구할 수는 있겠지만 수송비용에서 이익을 많이 까먹는다. 또한 일본의 기업들도 한국에서만 구할수있거나 한국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다만 이제는 중국 시장이 성장해나가면서 중국과의 협력에서 얻는 이득 또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기술력과 자본력, 시장 규모 등은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보자면 일본보다는 중국과 손 잡는게 이득일거라 생각하는 사업자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48. 다만 엔저 현상, 양국 관계 악화로 인해 2015년 현재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 관광객은 중국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인 관광객이 적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에 서술했다싶이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여행을 오는 일본인도 많은 편.
  49. 물론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경제 발전에 있어서 좋은 기회였을 뿐이고. 한강의 기적 또한 일본의 사례를 적절한 참고 자료(?)로 삼았다 뿐이지 그걸 이룬건 전적으로 한국인 스스로 해낸 것이다. 서로 도우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딱히 누가 누구한테 감사받을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