禰衡
(173년 ~ 198년)
1 개요
Yes Brother
후한 말의 선비. 자는 정평(正平). 청주(靑州) 평원군(平原郡) 반현(般縣) 사람. 희대의 독설가이자 비평가. 한마디로 말해 어그로의 달인.
2 정사
예형의 이야기는 후한서, 세설신어 등에 적혀있다.
재능이 뛰어나 중원에 그의 이름을 알렸으나, 그는 너무나 오만하였고 독설이 심해 남의 의중과 시선을 개의치 않아 하였으며, 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나누려고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북해 태수 공융과 양수와 친분이 있었는데, 특히 공융과는 서로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공융을 가리켜 큰 아이라고 불렀고, 양수는 작은 아이라고 불렀다. '兒' 자는 기본적으로 젊은, 어린이라는 뜻을 지닌 한문자니, 적어도 연배가 있는 사람을 부를때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이러한 그의 낱말 선택은 예형의 성향을 잘 시사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순욱과 조융이 당대를 대표할 만하냐고 묻자, 예형이 답하기를, 순욱은 그의 얼굴을 빌려 초상집에 조문하게 할 만하고 조융은 주방을 감독하게 하며 손님을 맞이하게 할 만하다고 말했다. 예형의 그와 같은 답을 풀이하자면, 순욱은 그저 얼굴만 잘 생겼고 조융은 고기를 먹는 것을 탐한다는 것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이었다. [1]
건안 연간 초[2]에 그가 북방을 유람하던 중, 어떤 사람이 그에게 도성의 부귀한 자에게 가보라고 권하여 예형은 명함 하나를 가슴에 품고 부귀한 자를 만나러 갔는데, 도중에 명함을 잃어버려 끝내 부귀한 자를 찾아가지 못했다. 뒷날 공융이 여러 번 표를 올려 그의 재주를 칭찬해 이에 예형에 대하여 궁금해진 조조가 그를 만나보고자 했지만, 예형은 질병을 핑계로 조조와의 면담을 피하였고, 도리어 조조를 여러 번 비판하였으므로 조조는 이를 매우 분하게 생각했다.
자신을 만나려는 조조를 조롱한 까닭은 자신은 미친병을 앓아 이렇다 때문임을 들어 자신을 변론하자, 조조는 화가 났다. 하지만 예형의 재주가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조조는 인망을 잃을까하여 차마 그를 죽이지는 못했고, 대신 예형에게 망신이라도 줄 요량으로 그에게 고사(鼓史 : 북 치는 사람)의 직책을 주어 과연 예형이 음악에도 기량이 뛰어난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예형은 음악에 대한 조예가 놀랍도록 깊었기 때문에 그에게 망신을 주려던 조조의 계획은 틀어졌다. 이번에 조조는 예형의 복식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이에 예형은 그 자리에서 옷을 홀라당 다 벗은 뒤 복장을 바꾸어 입고 나서 다시 북을 쳤다고 한다. 이에 조조는 민망한 듯 실소를 보이며, '내가 예형을 욕보이고자 마련한 자리인데 오히려 욕을 본 사람은 나로군!' 이라고 말하였다고 전한다.
예형은 조조의 미움을 받아 북을 치는 관리를 한 뒤, 정월보름에 북연주 시범을 보여 어양참과곡을 연주했다. 길고도 장중한 금석의 소리가 나자 사방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는 옷매무새를 고쳤다고 한다. 공융은 조조에게 간하기를, "예형의 죄는 서미의 형에 처한 부열과 같지만 명군의 꿈에 나타날 수 없었을 뿐이다."라며 설명했고, 조조는 이를 듣고는 부끄러워하면서 그를 사면해주었다고 한다.
끝내 자신이 손을 쓰면 뒷말만 무성해진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은 조조가 그를 유표에게 보냈고[3], 강하팔준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던 유표는 호승심이 들어 자신의 재주를 예형과 비교하기 위해 밤낮으로 토론을 벌였으나, 예형의 학식이 높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예형은 유표의 글을 잠깐 훑어보고 찢은 뒤 다시 그대로 적는 가공할 만한 기억력을 선보였다. 이후 유표는 예형의 글을 소중히 보관할 만큼 예형을 높이 평가했으나, 예형은 그의 성격대로 유표에게 여러 차례 모욕을 주었다.[4]
유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예형을 황조에게로 보냈다. 그 뒤, 예형은 황조의 서기로 일했다. 그의 문장을 본 황조는 그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 버릇 남에게 못 준다고 예형은 황조의 아들인 황역과 친했다고 하나, 손님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즉석에서 앵무부(鸚鵡賦)를 지어 황조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화가 난 황조는 예형을 죽였다.(...) [5][6]
그래도, 사실 황조는 홧김에 예형을 죽였지만, 황조는 이내 이를 후회하고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앵무부를 따라 그를 앵무호라는 호수에 떠있는 앵무주라는 작은 삼각지에 장사지냈다. 그의 묘는 세월이 흐르며 지형이 바뀌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지만, 도시 외곽으로 이장되어 아직도 문화 사적지로 유지되고 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사와 비슷하지만 예형은 한실에 충성하였기에 조조를 모욕하였다고 그려진다.
예형이 조조 휘하의 인사들을 모욕하자, 분개한 장료가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조조가 장료를 말리고 예형에게 북 치는 사람 일을 맡겼다. 장료는 조조에게 나아가서 "왜 저 썩을 놈을 죽이게 안 하셨습니까?"라고 따졌다.
이후 나체 음악회(...)에서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에게 내린 평을 정리하자면
- 순욱 - 초상집 문상객
- 순유 - 묘지기
- 정욱 - 수문장
- 곽가 - 유행가 작사가
- 장료 - 북이나 징 치는 사람
- 허저 - 마부
- 이전 - 우체부
- 악진 - 조서 읽는 이
- 여건 - 대장장이
- 만총 - 술지게미나 먹고 살 인간(...)
- 우금 - 막노동꾼, 공사장 작업부
- 서황 - 개백정
- 하후돈 - 완체장군[7], 의사의 수술도구를 들어주는 조수
- 조인 - 은행 직원[8]
- 그 밖의 인물들 - 옷을 걸기 위한 옷걸이, 고기를 담기 위한 자루, 술을 담그기 위한 술독 등일 뿐이다.
(김홍신 평역판 기준으로) 이후 예형을 사신 자격으로 유표에게 억지로 보낼 때, 순욱을 필두로 한[9] 조조의 신하들과 예형 간의 욕배틀도 진국이다.(…)
예형이 유표를 만나러 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침 대문 밖에서 술상을 준비하고 배웅하라던 명령을 받은 순욱이 옆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예형이란 놈이 오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예형이 오자 정말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예형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통곡을 했다. 궁금한 순욱이 묻자 예형이 답했다. "죽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어찌 곡을 하지 않겠소?" "우리가 죽은 사람이라면 그대는 머리가 없는 미치광이가 아닌가?" 조조의 신하들이 우루루 따지자 예형이 간단히 받아쳤다. "나는 한조(한나라)의 신하고 자네들은 조조의 신하가 아닌가. 어찌 머리가 없다고 하는가?" "당신만 한조의 신하요? 우리도 한조의 신하요." 이에 예형은 비웃으며 말했다. "하하, 조조는 한나라를 거스르는 역적인데 어찌 한조의 신하인가. 그리고 그대들은 그 역적 아래에 빌붙어 있으니 자네들의 머리는 내일을 기대할 수 없지 않겠나?" 이에 분노한 장수들이 화를 참지 못해 순욱에게 소리쳤다. "저 놈을 죽여야겠소. 당장 넘기시오." 하지만 조조조차 참고 유표에게 보내는데 그들이라고 어쩔 수 없었다. 순욱 역시 화가 치밀었지만 억지로 참으며 그들을 달랬다. "쥐 같은 놈 때문에 어찌 칼을 더럽히겠소." 그러자 예형이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쥐 같거니와 너희들은 모두 똥통 속에서 꾸물거리는 구더기가 아닌가?" 이에 모든 장수들이 이를 갈았다. |
진정한 독설가의 모습이다. 이후 예형의 행적은 정사와 비슷하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이문열이 조조빠라 그런지 예형을 헐뜯는다는 느낌을 글에서 느낄 수 있다.[10]
4 평가
서로 친했던 공융, 예형 그리고 양수는 모두 조조의 손에 죽었는데, 이는 그들 셋 모두 조조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다.[11][12]
예형은 호종전에도 등장하는데 말은 청산유수이나 능력이 안 따라주는 마속이 아닌 은번이라는 사람에 관해 손권이 묻자 호종이 답하기를,
'은번이 올린 상소에서 과장된 언어는 마치 동방삭(東方朔)과 같음이 있고 교묘한 언어와 궤변은 마치 예형(禰衡)과 같음이 있지만, 재능에 있어서는 모두 이 두 사람에 미치지 못합니다.'
삼국지 팬덤 사이에서는 자기 똑똑한 것만 믿고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 죽은 악플러, 혹은 고결한 이상을 가졌으며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풍자한 문인으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5 미디어 믹스
5.1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0,11 |
삼국지 시리즈들 중 초창기 시리즈들에서는 그가 공융과 친했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평원 등지에서 재야로서 등장하거나 공융에 소속된 일반 무장이었는데. 중후반기 시리즈들에서는 특수 무장으로서 게임에 등장한다. 주변으로부터 핀작을 듣는 예형의 성격이 반영되어 매력은 낮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20/92/88/23. 지력이 90 이상, 정치가 80 이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군사가 되어 2만명의 군대를 부릴 수 있으며 참모로서의 능력도 역시 출중하다. 그는 재야로 하북일대를 오가는데, 공융이랑 상성이 좋아 예형을 얻는다면 공융의 부족함 점을 채울 수 있는 문사다.
삼국지 6에서는 일반 장수로서 게임에 등장하며,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 평원을 수색하면 찾을 수 있다. 그의 능력은 통솔 77/무력 31/지력 95/정치 87/매력 20의 A급 모사로, 조조나 원소 또는 손책과 같은 세력이 아닌 이상 바로 군사 자리를 꿰찰 수 있다. 다만 꿈이 은둔이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명하든지 무조건 불만을 가지니 그저 조언을 듣는 역할로만 부리는 것이 좋다.
삼국지 8에서는 명사로 등장하며, 도발을 비롯한 특기를 가르쳐 주는 NPC로 등장하는데, 독설가 다운 면모를 보인다. 역사적으로도 그는 조조와 그 수하들에 대하여 독설을 날렸지만, 게임 내에서는 특별한 소속이 없는 NPC이다 보니 모든 인물들에게 면박을 준다. 하지만 예형이 인물에 대하여 독설을 하는 것은 다른 장수의 능력에 대해 알려주기 위함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상대방의 악명이 높을 경우에 예형은 "오오, 그대는 악명높은 여포님. 건강해 보이는 것 같군." 과 같은 답을 해준다. 단 인물의 악명이 1000 이상일 경우에는 아예 방문이 거부된다.. 다른 장수들과 다르게 특별한 비판 없이 사실을 말하는 것 뿐인데 더 기분이 나쁘게 느껴진다(...) 여포에 대한 고증
삼국지 9에서는 지역을 탐색하는 중에 불쑥 나타나 면박을 주는데, 이를 무시하면 실행장수의 지력이 2 상승한다. 별개 이벤트로 술값이 모자라다며 금 200을 뜯어가기도 하는데 이 경우 신망 2가 상승한다. 두 경우 모두 처단을 고를 경우 실행장수가 부상을 입고 신망이 떨어진다.
삼국지 10에서는 면박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인 설전 30연승이 성취된 상태에서 예형에게 계속 대화를 걸거나 술을 함께 마셔 친해지면, 예형과 설전을 벌일 수 있다. 설전에서 이기게 되면 굉장한 특기인 면박을 습득할 수 있다. 다만 설전은 상황이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예형은 설전의 고수고, 그가 내뱉는 말들은 매우 불쾌하여 플레이어를 분개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소용없다. 너는 내 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쳇, 방심했군. 가르쳐주마. 감사하게 생각해라!' 등등... 물론 반론이 있으면 쉽지만 자주 안 나와.
그러나 면박은 예형만 가르치는 특기가 아니다. 좌자도 이를 가르친다. 좌자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등장하니, 당신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면 좌자에게 청하여 배우기를 권한다. 설전 난이도도 같으니 해가 되는 것은 없다. 다만 예형은 주로 하북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반면, 좌자는 하남지방이나 오월지방 같은 남부 지방에서 만날 수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지력 71 이상인 장수로 인재 탐색을 실행하면 가끔 나타나 설전을 신청한다. 설전에서 이기면 유명한 자신을 이겼다며 기교 포인트 10을 플레이어 세력에 준다. 논쟁에서 지더라도 물리적인 손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정신적인 손해를 주기 위해 플레이어 세력의 기교 포인트 1을 깎는다. 예형을 무시할 경우 실행장수의 매력 경험치가 약간 상승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예형의 성격은 '저돌'이며,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면 강력한 일격을 날린다. 그리고 가끔 유적을 파괴하면 예형이 '네가 유적을 파괴했구나. 알려야지!' 라고 말하며 플레이어가 지배한 도시의 치안을 70으로 내린다. 만일 무덤을 파괴하는 사람이 조조라면 적절하다. 당연히 에디터에서는 친애무장이 공융과 양수, 혐오 무장이 황조이다. 에디터상 설정된 특기는 없다. 어? 논객이 아니라고?
삼국지 12에서는 관로, 교국로, 우길, 허소과 함께 삭제되어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5.2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본편에서는 짤려서 언급만 가끔씩 되는 정도고, 단행본에 이야기가 실려있다. 테스타먼트의 드러머였던 존 템페스타가 사우스 파크 스타일로 그려진 캐릭터를 하고 있다.
5.3 고우영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굳이 이름 있는 선비를 죽였다는 오명을 남기기 싫던 조조가 일부러 유표에게 보내 죽게 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 악명 높은 누드 연주회(...)에서 북을 치자 북 치는 소년처럼 '라팜팜팜' 하는 소리가 나오며 자신의 알몸을 조각품이라고 표현하는 비범함을 선보인다. 왜 오글거림은 우리의 몫인가 게다가 성인용 만화라는 특성을 한껏 살려 라임까지 맞춰 가며(...) 신명나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비속어 또한 압권. 결과는 연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표를 거쳐 황조에게로 가게 되는데, 유표가 그를 떠나보내면서 황조를 소개해 주자 예형의 말이 압권이다.
"그건 또 어디 사는 개OO요? 어차피 가 봤자 똑같을 테지 뭐."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나레이션 왈 예형의 말은 유표도 개OO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흠좀무.
결국 예형이- ↑ 배송지는 이에 대하여 "남의 욕 밖에 하지 않는 예형도 순욱의 외모가 뛰어난 것은 부정하지 못하였다"라고 평하였다
- ↑ 196~220년이다.
- ↑ 조조는 유표와 휘하 장수들이 예형의 독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추측하여, 조조가 남의 손을 빌어 예형을 죽였다는 의견이 많고 또한 신빙성이 있다.
- ↑ 장소전에서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유표가 손책에게 보내려고 직접 글을 쓴 뒤 예형에게 보여주었더니, 예형은 '이 정도 글은 손씨의 어린아이들에게나 보여줄 만한데 장소에게 보여주려 하시다니 말이 됩니까?'라며 비난했다고 한다.
- ↑ 예형이 황조를 조롱했던 앵무부는 예형 자신이 정든 고향을 떠나 위험한 곳(성격 더러운 황조가 태수인 강하)에서 앞날의 기약 없이 근심하며 대체 자신이 뭔 죄로 이런 박복한 처지에 놓였냐는 내용의 시였다.
- ↑ 삼국지에서는 황조에게 "죽어서 제사는 받아먹어도 영험이 없는 귀신"이라고 비꼬아 단칼에 죽였다는 말이 등장한다.
- ↑ 하후돈의 한쪽 눈이 없으므로 완벽한 몸이라 놀리는 것.
- ↑ 조씨가문 재산 1위를 오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쪽눈을 잃은 하후돈에 대하여 사지가 멀쩡하다며 반어법으로 조롱했던 것처럼, 조인의 검소함을 가리켜 인색하다고 조롱한 것인지도 모른다.
- ↑ 공교롭게도 이 때 예형과 실랑이를 벌이던 순욱은 조조의 미움을 사 자결한다.
- ↑ 만화 삼국지에서도 그런데 아얘 조조에게 삿대질하며 "승상의 부하들은 밥주머니,고깃자루라 부를 이들뿐 아니오?" 라는 식으로 한다던가 "나는 공자에 비할만하오" 라며 자만하는등 좀 예형을 까내리는 느낌이 난다.
- ↑ 조조는 이 세 사람을 죽이고 유장의 사신 장소를 매질하는 등, 글로써 이름이 알려진 학식 높은 선비에게 유난히 까닭모를 적개심을 품었다.
열등의식? - ↑ 다만, 양수는 조식의 심복이었던 사실이 있으므로, 이 역시 그가 죽임을 당한 까닭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