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아테네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넘어옴)
역대 하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27회28회29회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
Θερινοί Ολυμπιακοί Αγώνες 2004
Games of the XXVIII Olympiad In Atenes
대회기간2004년 8월 13일 ~ 8월 29일
개최국가/도시그리스/아테네
대회 이념Καλώς ήλθατε σπίτ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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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신걸 환영합니다)
공식 주제가Olympic Dream
마스코트페보스, 아테나
참가국201개국
참가선수10,625명
(남자: 6,296명, 여자: 4,329명)
경기종목28개 종목 - 301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자콘스탄티노스 스테파노풀로스
선수 선서조이 디모스하키
심판 선서라자로스 보레아디스
성화 점화니코스 카클라마나키스
주경기장아테네 올림픽 경기장

1 개요

21세기의 첫 올림픽이다.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자 1896 아테네 올림픽 이후 108년만에 다시 돌아와 개최된 올림픽으로, 대회 주제는 '올림픽 정신으로의 복귀'이다.

2 유치전

2004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국가도시1차투표1차 슛오프2차투표3차투표4차투표결과
그리스아테네32-385266유치 선정
이탈리아로마23-283341유치 탈락
남아프리카공화국케이프타운16622220유치 탈락
스웨덴스톡홀름20-19유치 탈락
아르헨티나부에노스 아이레스1644유치 탈락

21세기의 첫 올림픽이라는 상징성을 의식한 듯이 무려 11곳의 도시가 유치신청을 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릴(프랑스), 이스탄불(터키), 산후안(푸에르토리코), 리우네데자이루(브라질), 세비야(스페인)은 후보도시 선정과정에서 탈락하였다. 원래 그리스는 올림픽 개최능력이 의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올림픽 100주년 기념대회인 1996년 올림픽 유치에 역사적 당위성을 무기로 징징거리면서 올인하다시피 했지만 투표 결과, 100주년 기념 올림픽은 애틀랜타로…. [1][2] 그러나 그리스의 징징거림이 효과가 있었는지 근대 올림픽 100주년 기념대회의 8년 후인 2004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는 성공하게 된다.

최초의 아프리카 대륙 개최를 노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최초의 남미 개최를 노렸던 아르헨티나도 명분이 있었지만,[3] 100주년이라는 좋은 명분을 살리지 못한 IOC 내부의 문제와 그리스의 징징거림이 잘 일치하며 결국 그리스에게 올림픽 개최권이 돌아갔다.

3 대회 개막 후

개회식이 대단히 인상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의 고전미술과 그 맥락을 잇는 서양예술이 총출동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면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세간에 회자되었으나, 불행히도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이전의 대회라서[4] 인터넷상에 자료가 많지는 않은 편. [5]

대회 주제에 걸맞게 올림픽 경기장 중 일부도 당시 1896 아테네 올림픽때 사용했던 경기장들을 개량 또는 그대로 사용하였다. 대표적으로 양궁 경기장의 경우, 1896년 올림픽 당시 주 경기장이었고, 마라톤의 골인 지점도 1896년 당시 주 경기장으로 선정했다. 주 경기장은 새로 신축했는데, 그 규모가 심히 크고 아름답다. 하긴, 올림픽 주 경기장을 조그맣게 짓는 나라는 없지만.. 그중에 가장 압권이 육상 포환던지기 종목이었다..[6] 원래 도로에서 하는 마라톤과 경보를 빼면 육상 경기는 주경기장에서 이뤄지는게 당연한건데 특별하게도 이때는 포환 던지기만 주경기장을 벗어나 따로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피아 경기장이라고 쓰고 사실상 공터라고 읽는곳에서 흙바닥에 줄 그어놓고 경기했다. 관중들도 잔디밭 언덕에 의자도 없이 앉아서 봤고, 선수 대기석도 딱히 없어서 유적 그늘에서 쉬다 경기했다.

올림픽 전통 중의 하나가 개막식에서 각국 선수단의 입장 순서인데, 각국 선수단의 배열 순서는 각 나라의 언어나 정치적 고려 등에 따라 다양하게 결정될 수 있으나 전통적으로 그리스가 맨 먼저 입장하는 것과 개최국이 맨 마지막에 입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리스가 개최국인지라(...) 두 관례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입장순서 처음에는 그리스 국기를 든 한 사람만이 입장했고, 나머지 나라들이 모두 들어온 후 맨 마지막에 그리스 선수단 나머지가 입장했다.

이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던 이라크가 이 대회에서 참여했다는 것이고, 개회식때 이라크 선수단은 관중들에게 수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관중들의 매너는 생각보다 썩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리스 선수들이 광탈하거나 아예 불참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심기가 불편했던 탓에 남자 육상 200M 결승의 경우, 출발 신호를 방해하기 위해 할라스를 연호하는 추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유는 전 대회 남자 육상 200M 금메달리스트인 그리스 선수가 약물 도핑테스트 거부로 출전 자격이 박탈되었기 때문.

그 외에도 성적을 내기 위해 교포 3세들을 귀화시켰는데,[7] 그리스 선수이긴 하지만 그리스 말은 하나도 못하는 묘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더욱 그리스 국민들의 심기가 불편했는지도.

9.11 테러가 있은 후, 처음으로 열린 올림픽이라 테러 방지 예산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돈은 남자 마라톤 경기에서 1위를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 선수를 방해한 미친 놈[8]의 난입을 막지 못해 세계의 비웃음을 샀다.[9] 페이스를 잃어버려 3위로 들어오게 된 리마는 뛴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 광신도를 용서한다고 말해 대인배 자리에 등극. 이후 리마는 올림픽 선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광스러운 메달 중 하나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 후 리마는 12년 뒤 자국에서 개최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마지막 성화 점화 주자가 되었다.

미국은 이 대회에서 종합 성적 1위를 거두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중국은 종합 성적 2위로 준우승을 거두며, 미국과 더불어서 스포츠에서 양대 공룡으로 우뚝섰다.

4 한국 대표팀

한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9개의 성적을 거둬 8년만에 목표했던 10위권 복귀에 성공했지만 20년만에 일본에게 종합 성적에서 밀렸던 대회이기도 하며 특히나 메달이 가장 많이 걸려있는 수영과 육상같은 기초 종목에서 참담한 성적[10]을 거두었던 것이 일본에게 따라잡힌 결과를 만든 셈이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이 대회에서 종합 성적 5위를 차지하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28년만에 5위권 진입에 들었고, 근래 들어서 오랜만에 일본 스포츠계에 쾌거를 이루어냈다. 일본의 메달밭인 유도에서 룰이 바뀐 것이 컸고 일본의 스포츠에 대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일본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야구의 경우, 라이벌인 한국이 예선에서 광속탈락하여 나오지도 못했으며, 미국까지 캐나다에 밀려 출전하지 못한 반면 일본은 프로선수들이 주축이 되었기 때문에[11] '결승에 올라가 쿠바를 꺾으면 어떻게든 금메달을 딸 수 있을듯 ㅋ'라는 예상을 하면서 금메달을 유력시 하였으나 결국 예선 라운드에서 일본의 덜미를 잡았던 호주에게 또 덜미가 잡혀 결국 동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그리고 4년뒤 목메달의 베이스가 된다. 이때 호주팀으로 나온 선수 중에 크리스 옥스프링애드리안 번사이드가 있다. 특히 옥스프링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유도 메달 편식 현상은 이어지는 두 대회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다. 유도에서의 규정 변화는 일시적으로나마 금메달 과반수를 쓸어가는데 공헌하였으나, 러시아, 프랑스, 중국, 한국등이 차츰 변화된 규정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이어지는 베이징대회에서는 나름 선방하였으나, 런던 대회에서는?[12]

한국은 구기종목에서도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야구는 아예 아테네에 가지도 못하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저 안습. 삿포로의 굴욕이라 칭하는 '2003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대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예선대회'에서의 참패[13]로 인하여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14] 00년 이후의 A급 야구대표팀의 3번의 실패 사례[15] 그리고 세 참사 중 먼저 일어난 두 참사의 감독은 같다. DTD의 저주. 그밖에, 그동안 올림픽 단골손님이었던 남자배구는 이 대회 예선에서 떨어졌는데, 이 대회를 기점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4회 연속 올림픽 예선 탈락을 하고 있다. 또한 전 대회인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을 달성한 여자농구는 어김없이 올림픽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인 천하의 개쌍놈 박명수가 여자팀 감독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고[16], 성적 또한 조별라운드에서 졸전을 거듭한 끝에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내며 일찌감치 탈락했다.

축구는 한국이 주최국 그리스[17]와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를 제치고 56년 만에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지만[18] 전쟁으로 신음하는 이라크가 4강에 가는 바람에 그런대로 선전한 8강도 그대로 묻혀버렸다.[19] 한편 축구 2차전인 멕시코와의 경기를 앞두고 윤은혜가 그 유명한 왜 그리스는 새벽에 축구해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더군다나 축구는 카를로스 테베스가 완벽하게 혼자 다해먹은 아르헨티나가 챔피언이 된 탓에 아르헨티나와 아르헨티나가 아닌 팀의 격차만 일방적으로 크고 나머지 팀들은 도찐개찐 수준이라 한국의 입장에서는 은메달 정도는 해볼만했기 때문에 이정도 성적이 처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실제로 8강전에서 한국의 추격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이긴 파라과이가 그대로 결승전에 진출해서 은메달을 땄기에...

오심에서는 기계체조에서 양태영이 당했는데 미국선수 폴햄이 착지에서 딱 보이는 정도의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수가 높게 나와 금메달이 되었고 양태영의 경우는 기본점수를 0.1점 덜 받았지만 이의제기를 경기종료 후 30분 지난 후에 하는 바람에 결국 동메달로 밀려났다. 폴햄과 양태영의 점수차는 0.049점으로 폴햄의 점수에 대한 의구심은 차치하더라도 심판진이 기본적인 배점착오만 안 했으면 금메달은 양태영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 와중에 폴햄에 이어 2위를 한 김대은 선수는 묻혔다. 이 오심은 체조계에서도 파문이 커서 당시 심판진들은 모두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고, 기계체조 채점 방식 자체를 뜯어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던 것도 아닌데, 여자 핸드볼에서 인상적인 결과를 펼치며 승부던지기에 가는 접전 끝에 은메달을 차지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20] 비록 어린나이에 첫 출전해서 부정출발로 탈락하기는 했지만 박태환이라는 거물급 수영선수(당시 중학생이었다...나중에 약물로 인하여 몰락하지만)를 발굴한 계기가 된 대회이기도 하다. 역도에서는 장미란이 여자 역도 최초로 메달을 따낸다. 또한 탁구 남자 단식에서는 유승민이 중국의 왕하오를 이기고 16년 만에 금메달을 따낸다.[21] 왕하오 올림픽 3연준 전설의 시작

5 대회 후유증

현재 그리스이렇게 처참하게 만든 주 원인[22]

그리스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엄청난 빚을 져가며 시설을 짓고 운영비용을 쏟아부어 그 후유증으로 인해 딱히 좋지도 않았지만 재정이 어려워졌다. 그리스는 올림픽을 통한 소비 촉진으로 내수시장을 활발히 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그리스 국가대표가 광탈&출전 금지를 당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23] 게다가 1996년부터 무리하게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거기에 탈세와 부정행위가 기본소양인 그리스인들에 의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스가 올림픽을 위해 처음 책정한 예산은 16억 달러(원화 기준으로 약 1조 8,100억원)이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쓴 돈은 무려 160억 달러(원화 기준으로 약 18조 1000억원)이었다. 그 결과 적자액은 원화 기준으로 환산해 10조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가 나왔고, 그리스의 재정은 파탄 직전에 몰리게 된다. 수치상의 경제성장[24]과 부동산 거품으로 일단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경제성장 속에서도 빈부격차 문제와 청년실업이 문제시 되었고, 2007년 산불사태가 일어나면서 재정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산시장이 붕괴된 데다가 안 그래도 문제가 되던 청년실업이 폭증하여 청년층들을 중심으로 결국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핵폭탄으로 자라났다. 올림픽의 저주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참상이다.
  1. 하지만 이때 워낙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상징성 덕분에 당연히 아테네가 될 줄 알았으며 3차 투표까지는 우위를 점치다가 마지막 2차에서 밀리게 된다. 이것 때문에 애틀랜타에서 뇌물을 먹였을거라는 의혹을 낳기도 하였다.
  2. 항간에서는 1992년 동계 및 하계올림픽과 1994년 동계올림픽 모두 유럽에서 연이어 개최한다는 점 때문에 IOC의 대륙순환 개최에도 부정적이거나 유럽이 독식을 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1996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미국 역시 1984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12년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였다는 것도 무리가 있거나 독식성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3. 최초의 남미 올림픽은 브라질의 리우네데자이루로 넘어가게 되었다.
  4. 유튜브는 2005년에 생겼다.
  5. 이곳에서 개회식 영상을 볼 수 있다.2004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
  6. 원래는 고대 올림픽때도 했던 원반 던지기를 여기서 하려고 했는데, 그러려고 보니 현대 선수들이 기록이 너무 좋아서(...) 경기장 규격이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고대 올림픽땐 없었지만 당연히 멀리 못날리는 포환 던지기를 여기서 했다.
  7. 대표적으로, 야구의 경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구단주인 화력덕후 피터 앙헬로스가 그리스 야구 대표팀 운영비용을 다 대주고, 거기에 당시 O's 산하 마이너리그 AAA에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기다리고 있던 닉 마카키스를 포함 몇몇 그리스계 선수를 그리스 대표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8. 광신도였다고 한다. 후에 ESPN에서 이 인간을 인터뷰 하였다. 이미 1년전인 2003 포뮬러 1 영국 그랑프리에도 서킷에 난입하여 마셜에 의해 끌려간 전적이 있었다. 그후 그 사람은 벌금형에 아테네 입국금지형에 처해진 듯.
  9. 하지만 이건 돈으로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원래 마라톤은 코스 옆에 수많은 관중이 줄지어 있는데 그 긴 코스 가운데 갑자기 뛰쳐나와 선수를 밀치는 인간을 어떻게 막겠는가?
  10. 하지만 수영은 남유선이 사상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했다.
  11. 물론 시기가 시기였던지라 올림픽 브레이크 시즌이 되었다.
  12. 일본은 이어지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로 8위, 런던 올림픽에서는 7개를 획득하였으나 은메달 수에서 호주에 밀려 빅10에서 탈락하였다.
  13. 대만전 4:5 패, 일본전 2:0 패.
  14. 이는 2004년 야구계를 뒤흔들었던 병역 사건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5. 나머지 2번은 도하 참사타이중 참사
  16. 박명수 감독은 또한 자신이 맡고 있던 소속팀 춘천 우리은행 한새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할 뻔 했다. 이때문에 법정 구속형을 언도받고 사실상 여자농구계에서 퇴출을 당했다.
  17. 불과 두달전 치뤄진 유로 2004의 우승국이다. 그런데 1무 2패로 광탈.
  18. 특히 조별리그 3차전 말리전의 경우, 0-3으로 지다가 3-3을 만드는 투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8강 파라과이전도 0-3에서 2-3까지 쫓아갔지만 아쉽게 패배.
  19. 그리고 조지 W.부시는 재선에 도전하면서 바로 이 이라크의 올림픽 4강이 부시님 덕분에 이뤄졌다능~ 개드립으로 써버려 이라크 여론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이라크 선수들은 축구 아니었다면 저항군 들어가서 미군 죽였을지도 모른다며 멋대로 우릴 부시의 재선에 쓴다며 분노했을 정도.여담으로 전번 대회에서 8강에 오른 일본은 이번에는 조 꼴찌로 광탈했다.
  20. 후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
  21. 여담으로 결승전 당시 경기장에서 관람하던 한 어린아이가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격하게 환호하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자국선수가 아님에도 열광하는 모습이었기에 이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김제동이 개그소재로 쓰기도 했다.
  22. 물론 이거 말고 다른 원인들도 있었다....
  23. 사실 올림픽이란게 관광객 오고 대외적으로 이미지 개선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
  24.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평균 4%대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