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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독 정부의 '소련의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는 전투기'라는 의뢰를 메서슈미트 볼코스 볼름(MBB)이 받아 개발한 프로토타입 스텔스 전투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기로 이름 높았던 메서슈미트가 전후 처음으로 개발을 시도한 전투기이다.
2 개발과정과 중단, 그리고 가능성
각종 풍동시험과 RCS 측정시험 끝에 실기 모형이 완성되자 미 공군 고위인사들을 초청해서 공개했는데, 당시 F-117은 1급 기밀로 분류되어 존재조차 공개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그와 똑같은 방식의 형상 스텔스를 적용한 기체가 나타나자 미 공군 장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람피리데 전투기의 시제품은 당시 미국이 극비에 붙이고 있었던 스텔스 전투기 F-117보다 공기역학적으로 더 안정되면서도 스텔스 성능은 오히려 더 뛰어났다. 시제품 성능이 워낙 탁월했기 때문에 MBB의 연구자들은 람피리데 전투기가 곧 독일공군의 주문을 받아 대량생산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미국이 개입한다.
이후 미국의 압력으로 추정되는 모종의 이유로 개발이 중단되었고, 껍데기는 뮌헨에 있는 독일 박물관(Deutsches Museum)에서 전시되고 있다. 만약 실제로 서독 공군에 채택돼 양산되었다면 세계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뒤 독일이 통일되고 그 이후 군사 부문이 겪은 예산감축크리를 생각한다면 개발이 무사히 이뤄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개발에 필요한 시간은 적게 잡아도 6~7년은 더 걸렸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람피리데의 개발이 끝나는 시점은 1990년대 초반에서 중후반 즈음이 된다. 이 즈음의 독일은 통일로 인해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고, 실제로 람피리데 외에도 DASA의 AT-2000 MAKO 훈련기 / 경공격기[1] 프로젝트나 도르니에의 LA-2000[2] 같은 컨셉도 설계도 몇 장만 남기고 줄줄이 취소되었다.
통일 이후 독일의 기조는 군축이었으며,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거나 운 좋게 개발이 거의 끝난 일부를 제외하고는 싹 칼질당했다. 군축의 칼날은 독일군의 핵심인 지상전력 역시 비켜가지 않았으며, 단적인 예로 기갑세력의 중추인 레오파르트2 역시 정말 필요한 스테이터스인 공/수/주의 기계적 스텟만 M1A2 전차들과 싸울 수준으로만 맞춰놓고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내부 전자장비는 내버려 두었다. G11이 취소되고 HK G3와 AK-74를 교체하느라 부랴부랴 G36을 채택하는 것도 이 시기의 이야기.
3 참고
- ↑ 독일-이탈리아였다가 이탈리아가 M-346을 독자적으로 만들기 위해 뛰쳐나가서, DASA 중심으로 개발하고 이후에 관련되는 자국 및 외국업체들의 경우 하청의 형태로 참여했다. EADS가 설립되고 DASA가 그 산하로 들어간 이후 EADS Mako/HEAT로 변경되어 개발되다 취소되었다. 기체 크기나 지향하는 바가 T-50 골든이글과 거의 같아서 계획 그대로 나왔으면 한국입장에서는 수출신호에 적신호가 들어왔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겉은 4세대 레거시 기체인 T-50에 비해 Mako/HEAT의 경우 스텔스 기체의 태가 확실히 드러났으며, 성능도 보다 고성능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자체도 옛날부터 미국제 전투기들을 면허생산하였고 파나비아 토네이도, 알파 제트, X-31, A380 등의 개발사업에 뛰어든 덕분에 스스로 비행기를 만들어 띄울 수 있는 항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 ↑ 미국의 A-12 Avenger와 유사한 컨셉이었으며, 프로젝트의 결말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