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9801

1 개요

일본 NEC에서 발매한 16비트 CPU를 탑재한 컴퓨터. 혹은 그 호환 아키텍처를 사용한 컴퓨터 시리즈.[1] PC-98계열이라고도 한다. 의외로 이 규격의 첫 컴퓨터가 나온 해는 1982년으로, 1981년에 첫 컴퓨터가 나온 PC-8801와는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당시까지만 해도 집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판매했던 기종은 PC-8001 및 PC-8801이고, 9801은 비즈니스 시장을 주력으로 했던 기종이라 게임 등에 필요한 기능은 매우 취약하였다. 90년대부터 98이 가정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PC의 비싼 가격으로 인해 8801조차도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가정용은 PC-8001 시리즈 및 그보다도 하위 기종인 PC-6001 시리즈가 대세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PC-98 하면 NEC V30(인텔 8086 호환의 CPU)을 탑재한 PC-9801VM 또는 인텔 80286 CPU를 탑재한 PC-9801VX 이후의 기종을 뜻한다.

상위 호환 기종으로 1992년부터 발매가 시작되고 93년부터 주력 모델이 된 PC-9821이 있다. 9801과의 차이점...은 애매하다. 256색 표시 기능이 있는 기기를 9821이라고 NEC가 정의한다. 그러나 일부 저가형 9821에는 표준 그래픽 기능이 256색을 지원하지 않고, 9801 중에서도 후기형 모델은 256색을 지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9801과 9821을 같이 설명한다.


2 역사

일본은 특이하게 다른 나라와는 달리 IBM PC 호환기종의 보급이 상당히 늦었다. 미국의 PC는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대량의 한자를 표현이 어려워서 70년대 후반부터 그래픽 기능을 중시하여 한자 표시를 가능하게끔 특화했다. 80년대를 풍미한 일본의 전자기술에 힘입어 뛰어난 성능의 PC들이 수많은 제조업체에서 군웅할거 했다. 동아시아의 PC환경이 IBM PC 호환기종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도, 일본은 자국산 PC 수요층이 유지될 수 있었다. 1984~1994년 까지는 체감성능도 IBM 호환기종 보다 좋기도 했다. 아키텍쳐 포텐셜은 IBM이 더 좋았지만 PC-98 또한 개선여지가 없진 않았다. 어쨌든 갈라파고스화 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아타리, 아미가, 그리고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매킨토시 등이 있었다. 반면 일본은 특수한 상황에 독자 아키텍처의 존속 시간이 길었다. PC-9801을 비롯하여 여러 회사에서 만들어낸 많은 독자 아키텍처가 존재했다. 타국과는 달리 1990년대 초반까지도 NEC, 샤프, 후지쯔 등에서 만든 PC는 독자 아키텍쳐였다.

하지만 DOS/V의 등장으로 IBM PC에서도 한자 표현이 간단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었던 PC98은 서서히 점유율을 잃다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가 등장하면서 사장된다. 윈도우즈 사용이 가능한 PC-9821이라는 32비트 기종도 나왔지만 별 소용없었다. 다만, NEC는 계속해서 PC-98을 지원해 주었고 최종적으로는 Windows 2000까지 발매되었다. 2000년에 마지막 모델인 PC-9821ra43(셀러론을 장착한 데스크탑)과 PC-9821nr300(모바일 펜티엄을 장착한 노트북)이 발매되었다. 사업장 작업 환경 유지를 위해 3년간(!) 판매되었다가 2003년에 단종되고 2010년 모든 지원이 끝나게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현재 NEC가 판매하고 있는 컴퓨터는 대부분 PC-9821 시절부터 계승된 브랜드이다.


3 성능

PC-98은 IBM PC 호환기종과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그래픽 처리 시스템이라든가 사운드 칩, 그리고 일본어 폰트 문제 등 때문에 차별화 되었을 뿐이다. CPU는 같은 인텔칩을 사용하며 운영체제도 커스텀 MS-DOS를 쓴다. 매우 단순한 프로그램은 일반 IBM PC 환경에서도 실행될 정도.

화면에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의 품질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처리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해상도는 높았지만 발색수가 16색밖에 안 되었고 PC-9821이 되면서 256색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도트를 찍을 때 적절한 색배합을 내느라 그래픽 담당들 땀 좀 뺐을 듯 하다.[2] 이는 PC-98시리즈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당대 하드웨어의 한계였다. IBM-PC의 VGA 규격도 256색에 저해상도가 주류였을 뿐, 고해상도로 가면 역시 16색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까지를 풍미했던 일본 국민 PC 기종이라, 지금도 중고 매물은 많다. 여러 개조와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서 튜알라틴 펜티엄3 CPU를 장착하고 나머지 부품도 그에 준하는 시스템으로 만든 용자도 존재한다(...)


3.1 게임

그래픽의 품질은 나쁘지 않았지만 처리 속도가 느린 편이었어서 PC-98용 게임은 빠른 그래픽 처리 속도가 필요한 액션 게임은 드물었다. 액션게임도 움직임이 대부분 딱딱했다.[3] 대신 삼국지 등의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에로게가 많이 있었다. PC게임=에로게 라는 일본 PC게임 시장의 특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4]

게임처럼 복잡한 프로그램들은 IBM과 호환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어떤 유저가 PC-98용 드래곤나이트4의 바이너리를 수정해서 DOS/V 환경에서 실행할 수 있게 만든 적도 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천사들의 오후3 번외편도 이런 식으로 개인이 바이너리를 수정해서 이식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하드웨어적 차이가 비교적 좁아지고, 소프트웨어-하드웨어간에 API를 통해야 하는 윈도우 시절부터는 별 문제없이 프로그램 호환이 된다. 다만 PC-98용으로 따로 발매된 윈도우즈를 깔아야 했다.


4 IBM PC 호환기종과의 차이점

  • ISA 대신 C버스라는 독자 확장 카드 버스를 사용하였다. ISA 카드보다 좀더 넓직하며 쉽게 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 이후 9821 초기에는 32비트 버스인 98 로컬 버스라는 32비트 독자 버스가 탑재되었지만 얼마 못가고 PCI를 채택하게 된다.
  • 그래픽은 초창기에는 고정 8색만을 지원하는 그래픽이었지만, 이후 흔히 알고 있는 4096색 중 16색의 화면을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 기능이 표준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9821이 되자 256색 화면을 표시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Windows 3.1이 발매되고 나서 색상이나 해상도, 처리 속도 면에서 떨어져서 Windows를 돌리기에 부적합하여 그래픽 가속기(이름은 거창하지만 그냥 그래픽 카드)가 여럿 발매되었다.[5][6] 여하튼 그래픽 성능은 PC-98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양대산맥(...) 중 하나인지라 PC-98을 업그레이드 한다 하면 무조건 그래픽 가속기부터 업그레이드한다. PC-98에서 본좌취급 받는 그래픽 가속기는 바로 부두 밴시. 다만 일부 기종의 경우 칩셋의 성능이 딸려 PCI 대역폭이 제대로 안나오는 문제가 있어서(...) 장착해도 제 성능이 안나온다는 안타까운 후문이... 그외에도 S3나 매트록스 등, IBM 호환 기종에서 인기있던 그래픽 카드들이 PC-98용으로 많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Windows 2000이라면 더 상위의 그래픽 카드를 사용 가능하다.
  • 사운드는 사무용으로 시작한 기종답게 비프음만 지원했었지만 PC-9801-26이라는 FM 음원 사운드 카드가 등장하였으며, 이후 9821의 발매와 함께 상위호환 FM음원 카드인 PC-9801-86이 발매되었다. 도스 게임을 즐기려면 이만한 카드가 없으나 DMA를 사용하지 않고 PCM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가져오는지라 하드웨어 부하가 심해서 Windows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다. DMA를 통해 PCM 데이터를 전송받는 사운드 카드가 속속들이 등장했지만 문제는 이런 것들은 FM음원을 빼버리거나 호환성이 막장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DOS와 Windows 모두에서 원활하게 사용 가능한 WaveStar라는 사운드 카드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IBM 호환기종의 사실상 표준 사운드 카드였던 사운드 블라스터 16도 PC-98용으로 발매되었으나, 호환되는 게임이 별로 없어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사블16을 지원하는 게임으로는 같이 서양 게임의 이식작이 대다수이며, 일본 게임 중에서는 은하영웅전설 4, 영웅전설4둘다 영웅전설에 4다가 대표적으로 지원하는 게임들.
  • PC-9801에 하드를 그다지 많이 달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9801가 대히트 칠 때는 잃어버린 10년 이전이었다. 사무용은 그다지 달지 않는 케이스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하드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편이었다. 성능적인 부분도 1998년도에 ATA-4(UltraDMA - 33)가 표준이 되어 ATA-4가 대중에게 보급이 되기 전까지는 PC-98[7]의 속도를 넘지 못했다. 실례로 SCSI는 SCSI - 1(1985년 기준)은 이론상 5MB/s 를 지원하며 SCSI - 2(1988 기준) 은 20MB/s 를 지원했다. ATA-1가 대중에게 보급 되기 전까지는 IDE는 IBM XT XT-IDE가 용량도 속도도 한참 떨어지는 ST-506/ST-412 이다. 이것마저도 속도가 느리다 못해 기어가는지라 이것을 개선한 MFM가 나왔는데 이마저도 2.5MB/s 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ATA-1의 최종 개량 속도인 8.3MB/s 의 속도를 생각하는데 초기에는 4.3MB/s 속도였다. IBM-XT 및 PC-9821 발매년도와 그 당시 컴퓨터의 주된 목적을 생각하면 생각하면 PC-9821 이 뛰어 났으면 뛰어났지 못하진 않았다.
  • PC-98의 갈라파고스 문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별 상관이 없으나, 성능적 문제는 좀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당시 국내에 IBM 붐이 떴을 때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조차도 반일감정으로 PC-98의 성능을 제대로 비교하지 않고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용량문제도 굉장히 과장되고 잘못된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EIDE(웨스턴디지탈 : 1994 발표)가 나오기 전인 당시 ATA-1 지원용량은 504MB 이다. 실제 1993년 1월 PC-9821 Mate A(PC9821 고급형)을 선보일 때 SCSI - 2 인터페이스 카드인 PC-9801-92[8] 를 같이 선보였으며, 당시 SCSI - 2 탑재형인 92호환 모델은 55호환(SCSI - 1) 모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8.4GB 문제를 해결하였다. 물론 초기 55호환 제품의 SASI 나 SCSI-1이 8.4GB의 용량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92호환이 나오고 나서도 55호환을 오랜동안 사용하면서 크게 문제된 문제였지 실제 일반 퍼스널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저들에게 8.4GB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95 이후였다. 95 쯤에는 Mate B(저가형)[9]에서 Mate X[10]로 넘어가면서 매우 폭넓은 라인으로 인해 저렴한 가격으로도 92 호환을 갖추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가정집에서 골동품으로 보관하는 92호환들은 대부분 MATE X 시리즈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부분인데 PC-9821이 IDE를 지원하는 건 덤이었지, 주된 지원은 SCSI였다. NEC 에서 PC-98을 IDE로 표준을 잡을 때는 PC/AT 호환인 97년 10월의 PC-98NX부터이다.
  • 플로피 디스크에 A:\와 B:\를 할당하고, 하드 디스크와 광 디스크에 C:\ 이하를 할당하는 IBM 호환기종과는 달리 부팅 디스크를 A:\로 할당한다. 예를 들어 하드디스크에 OS를 설치하고 부팅하면 하드디스크가 A:\, 플로피 디스크가 B:\, CD-ROM 드라이브가 C:\가 되는 방식.
  • OS는 IBM 호환기종과 마찬가지로 MS-DOSMicrosoft Windows를 사용하였다. WIndows의 경우 1.0부터 2000까지 발매되었는데, 하드웨어와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Windows의 경우 IBM 호환기종과의 프로그램 호환성이 많이 좋아졌으며, 아예 멀티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NT 커널계 Windows(NT 3.51, NT 4.0, 2000가 발매됨)의 경우 일부 IBM 호환기종의 확장 카드와 드라이버를 사용 가능하다. 상술했듯이 부두 밴시 이상의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려면 Windows 2000을 사용해야 한다.
  • 확장성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일반적인 가로형 데스크탑 케이스는 PCI 슬롯 2개, C버스 슬롯 3개가 있는데, C버스는 그렇다 쳐도 PCI 슬롯이 턱없이 부족하다. 상술했듯이 그래픽과 디스크 컨트롤러 성능이 부족하기에 그래픽 카드와 디스크 컨트롤러 카드를 끼면 더이상 PCI 슬롯을 사용할 수 없다. 더 문제는 케이스 규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기종을 사도 똑같다(...) 극소수의 타워형 기종만 PCI 슬롯 3개, C버스 슬롯 4개이다. 그래서 PC-98 주변기기 회사에 가능한 한 여러가지 기능을 넣은 카드(예를 들어 SCSI+USB+LAN이 통합되어 있는 확장 카드라든가... 참고로 이 카드의 이름은 짬뽕이다.)가 발매되는 경우가 흔했다.


5 기타

일본 독자 아키텍처 PC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98NOTE라는 브랜드명으로 노트북이 발매되었다.[11][12] 다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몇몇 기종을 제외하고는 전부 흑백 액정을 채용.[13] 몇몇 게임에서 존재하는 '모노크롬' 등의 명칭으로 불리워지며 (에뮬같은)일반적인 컬러 화면에서 색상이 괴상해지는(...) 화면 모드는 바로 이 흑백 액정 노트북에 최적화된 화면.

국내에서 이 기종으로 발매된 게임 중(에로게를 제외하고) 유명한 것을 꼽자면 삼국지 시리즈,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 등이 있다. 당연히 국내에는 모두 IBM PC 호환기종으로 컨버전되어 들어왔다.

덕후 계열에서는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 중 동방영이전부터 동방괴기담까지 이 기종을 통해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통칭 구작이라 하며, 이후 윈도우즈 기반으로 나온 동방홍마향부터는 신작이라고 칭한다.

여담이지만 삼성전기[14]가 1987년 NEC와 기술제휴로 사무용 PC를 들여오려 했을 때 이 기종을 들여와 국내에서 생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년 버전업을 하는 NEC의 기술력으로 볼 때 삼성전기가 업데이트 기종을 계속적으로 발매할 기술이 없다고 판단, NEC의 좀 인기 없는 다른 기종을 들여왔었다. [15]

PC-9801/9821는 국내에 정식 발매 되지는 않았으나 알게 모르게 국내에 은근히 들어와 있는데 주로 공장에서 과거에 일본산 장비를 도입하면서 산업용 장비 제어용 PC로 같이 도입한 것들이다. 현재도 그 장비들이 현역으로 돌아가는곳이 은근히 많다보니 PC-9801/9821 기종들이 여전히 장비 제어용으로 현역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산업용 PC 수리 전문 업체 중에 PC-9801/9821를 전문으로 취급하는곳도 있고, 국내에서 PC-9801/9821 중고 기종들이 산업용 장비 제어용으로 꽤나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NEC에서는 아예 공장에서 산업용 장비 제어용으로 최적화된 FC-9801/9821 시리즈 라는 파생형을 만들기도 했는데 당연히 이 파생형들도 국내에 산업용 장비 제어용으로 제법 들어왔다.

  1. 호환기종을 제작한 회사는 엡손뿐이었다. 참고로 유명한 PC-98 에뮬레이터 중 하나인 Anex86은 NEC의 정식 기종이 아닌 엡손의 호환 기종을 바탕으로 만든 에뮬레이터.
  2. 실제로 PC98게임 스크린샷, 특히 90년대 중후반대의 에로게를 확대하면 그 처절함(...)을 느낄 수 있다. 도트 노가다로 훌륭한 결과를 뽑아낸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3. 사실 IBM-PC 호환기종도 액션 게임의 움직임은 딱딱했다. 따로 스프라이트 처리를 못했기 때문. 결국 뛰어난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극복했는가, 아니면 못했는가의 차이가 된다. 예를 들어 XT/AT시절 뛰어나고 부드러운 스크롤 처리 능력을 보여 주었던 커맨더 킨 시리즈의 프로그래머는 존 카멕이라든지...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이 호환성을 위해 초기 사양인 80286 10Mhz에도 동작하도록 설계된 것도 있다. 커맨더 킨은 극히 예외적이고 DOS게임 중 움직임이 부드러운 게임 상당수는 386/486 이상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4. 이와 관련해서, PC통신 당시 하이텔의 고전게임 동호회에서 뜬금없게도 사실상 에로게에 대해서 다루는 게시판이 있었는데,(소모임 등을 제외하면 아마 하이텔에서 가장 큰 에로게 포럼일것이다) 그 게시판이 맨 처음에는 PC-98계열 게임에 대한 게시판이었지만 소프트웨어 특성(...)으로 인해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것.
  5. 참고로 그래픽 가속기를 지원하는 기종은 그래픽 가속기의 출력 단자와 표준 그래픽 컨트롤러의 입력 단자를 연결하여, 부팅때나 DOS를 사용할 때는 표준 그래픽이 작동하고, Windows가 실행되면 그래픽 가속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6. 기본적으로 그래픽 가속기는 Windows를 쾌적하게 돌리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일부 DOS 게임에서도 지원이 가능한데 코에이앨리스 소프트가 대표적으로 그래픽 가속기를 지원한 게임을 많이 만들어낸 회사다. 그래픽 가속기를 지원하는 노부나가의 야망삼국지 시리즈는 최대 1024x768의 해상도까지 지원하였다! 다만 이런 고해상도 모드로 게임을 하면 C버스의 전송속도 한계로 병목이 일어나서인지 표준 해상도보다 화면 표시가 느려진다고.
  7. PC-9801-92 포함
  8. 보통 92호환 이라고 하면 이것을 말한다.
  9. Mate A, B는 같은 해에 나왔다.
  10. 1994년 7월 출시
  11. 참고로 도시바는 그때 당시에도 IBM PC 호환기종 노트북을 만들었다.
  12. FM TOWNS도 노트북 모델이 딱 하나 나오긴 했는데, TOWNS가 지향하던 교육 시장 전용 모델이고,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제조된 모델이라 배터리가 없다.
  13. 9801 시절에는 딱 한 모델만 컬러였고, 9821부터는 거의 대부분 컬러 액정으로 발매되었다.
  14. 삼성그룹 산하 전자부품회사. 지금은 삼성전자가 삼성그룹 내 타 전자계열사보다 월등히 크지만 80년대만 해도 전자업종을 사업영역별로 쪼개놨던 시절이라서 삼성전기의 위상도 삼성전자보다 크게 낮지는 않았다.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커진 것은 삼성반도체통신(별도 회사였다) 등을 통합하고 삼성전기 등 타 전자계열사의 중복되는 사업영역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15. 출처: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8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