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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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姜基甲 機甲
1953년 6월 7일 ~

대한민국의 前 국회의원이다. 경상남도 사천군 출신의 농민운동가, 정치인이다. 종교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로베르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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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랑 농장 홈페이지[1]

2 정계 입문 전

한때는 천주교 수사(수도자)였으나, 종신서원이 반려되고 수도생활을 그만두었다. 한국 가톨릭 농민회[2]에 참여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80년대 말에는 '농촌총각장가보내기' 운동을 전개한다. 1991년 우루과이 라운드 수입 개방 반대 시위에 나갔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1998년 전국농민총연맹의 대의원이 되었고, 1999년에는 본부 부의장까지 올라갔다.

3 정계 입문

17대 총선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들어갔으며 특히 농민 출신으로 항상 수염을 기른 외모에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신는 독특한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2004년 7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 국회 윤리위원회 위원에 동시에 선출되어서 겸임하였다.

2008년 18대 총선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경상남도 사천시에 출마, 한나라당이방호 후보(이명박의 측근)와 대결해 단 179표 차이로 승리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애초 이방호 의원이 일방적으로 앞섰던 데다가, 지역 주민의 성향을 감안하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기적이어서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이는 사실 당시의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서 빚어진 기적이었는데, 가장 큰 요인은 계파 갈등이었다. 한나라당 내에서 친이계에 의한 공천 학살이 발생한 데 대한 친박계의 강한 반발이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박근혜 팬클럽 회원들이 친이계 후보를 찍을 바에 아예 야당 후보를 찍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당시 친박연대 소속 및 친박계 무소속 후보가 없거나 지지율이 낮은 곳에서 조직적으로 친이계 후보의 낙선을 위해 정치 성향까지 한 수 접어 버린 것. 강기갑은 선거 승리후 박사모,친박연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한다. 정신 차려라!

그래서 사천시에서는 친이계의 실세이자 사무총장으로 친박계를 밀어낸 핵심 인물인 이방호의 낙선을 위해 강기갑에게 표를 몰아 준 친박 성향의 유권자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사천시가 1995년 구 사천군 + 구 삼천포시의 통합으로 구성된 도농복합시인데 이방호는 삼천포시, 강기갑이 사천군 출신이었기에 구 사천군 지역에서 강기갑에게 몰표가 쏟아진 것도 한몫했다. 이런 조건들이 겹친 결과, 서부 경남권 최초의 야당 의원 당선이라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그야말로 희대의 정치 코미디였다.

이후 한미 FTA 반대 투쟁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분당 사태로 인해 지도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2012년 총선 때 여상규에 밀려 낙선한 뒤 정계에서 은퇴하게 된다.

4 정계 은퇴 이후

정계 은퇴 이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매실나무를 심고 염소를 키운다고 한다.# 강달프 매실마을 사이트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의 상임고문,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고문단이 되었다[3]. NL의 입김이 강한 전농 출신의 강기갑이 정의당을 지원하는것은 의외의 일이다.[4] 그런데 진보운동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지만, 강기갑은 애초에 NL은 아니었다. [5]

5 트리비아

여담으로,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박성호가 입고 있던 한복 패션이 바로 이 사람의 의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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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홈페이지([1])에 소개된 어린시절 이야기로 빈축을 산 적이 있다. 전학생을 왕따시키는 듯한 내용을 어린시절부터 비범한 지도력을 뽐냈다는 것으로 포장했기 때문. 학교 왕따 문제가 현재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된 상황에서 전학생을 왕따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내용을 마치 영웅담처럼 묘사해 놓은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강기갑 대표 측은 “이 글은 현재 홈페이지 관리자가 아닌 예전 관리자가 17대 초반에 작성했던 글”이라며 “우리도 처음 봤을 때 수정의 필요성을 느꼈다. 곧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늦었다. 당시부터 보고 불편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강기갑이 직접 작성한건진 몰라도 고연령대의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6]

경제 성장보다 평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같은 동유럽 국가랑 연대하자는 거나 무역 모델을 쿠바베네수엘라로 잡자는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우파적인 관점이 거의 대다수의 매체와 정계에서 노출되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좌파적인 입장에서는 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물론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가 개판 오분전이 난 꼬라지를 보고도 이런 소리를 한다는 건 한국 좌파 쪽은 80년대 386운동권 시절에서 전혀 발전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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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제대로 놀아보자!
공중부양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이 사람 우고관절 습관성 탈구로 병역면제 받았다는 사람이다.(...) 미디어법 날치기 시도때문에 벌어진 국회 공성전때 일어난 사건으로, 강기갑 의원은 이 사건으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됐지만 무죄선고를 받았다. 사실, 강기갑 의원 말고 당시 민주당의 강기정의원 역시 이 때 폭력사건으로 징계를 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이 사건을 회고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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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스? 기갑하르트?
대체적으로 소박하고 검소한 이미지가 있지만, 이런 사실과는 다르게 목축업으로 수십억의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실, 강기갑은 실제로도 자수성가로 돈을 벌었으며 매사에 검소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재산이 많더라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투기라던가 부동산이든가 쓸데없는데 돈을 쓸 여유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목축업의 특성상 재산이 많지 않으면 제대로 경영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소 한마리가 몇 백만원 단위인데 소를 오직 한 마리만 키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러다보니 재산도 많아야 되고 소 사료값만 해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재산이 많다고 해서 꼭 생활수준이 동급의 재산을 지닌 강남건물주같이 여유로운 수준인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서 거액의 빚으로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괜히, 도박 항목에서 농사가 도박의 일종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양권에서는 "도박을 하려면 카지노에 가지 말고 농사를 지어라."라는 농담이 있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린가?" 라고 하겠지만, 서양권의 농부들 사이에서는 진짜로 이런 농담이 있다. 농사라는 것이 사람이나 기계가 아니라 자연과 경제가 상당부분의 영향력을 관할하는 일이다보니까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 해 농사가 풍작이라고 해도 오히려 돈을 못 버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이런 뉴스도 있겠는가?

물론, 국회의원도 당선되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재산의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사회 및 정치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당선 이후, 여성계와의 인터뷰에서 "가부장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여성문제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과거에는 의식이 모자랐지만 많이 배워 가고 있다."는 답변을 하였다.

기갑 갤러리 제 6회 인기투표에서 T-62, K-1 전차와 함께 공동 8위를 하셨다.

6 선거 이력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04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6번)
민주노동당13.0%(2,774,061표)당선
2008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경남 사천시)
민주노동당47.69%(23,864표)당선서부경남에서의 진보 정당 의원 최초 배출[7]
2012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통합진보당24.05%(27,653표)낙선 (3위)
  1. 강기갑이 정계 은퇴 이후 차린 농장이다.
  2.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의 피해자 오원춘이 소속된 그 단체 맞다!
  3. 역시 정계은퇴를 선언한 권영길도 평당원으로 정의당에 입당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정의당은 지역구에 당선된 심상정, 노회찬을 제외하면 정계은퇴한 평당원 3인방, 강기갑, 권영길, 유시민을 능가할 인물이 별로 없다는 엽기적 상황이다. 하지만 이 은퇴 3인방이 정계로 완전히 복귀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은 편.
  4.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사태 때 겪은 경기동부의 패권주의에 염증을 느껴서 일 수도 있다. 실제로 전농의 다른 주요인사들은 통진당 해산 이후 경기동부가 중심이 되어 창당한 민중연합당에 들어갔다. 정의당 내에서 영향력이 큰 NL계 인천연합(정파)과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인천연합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광주전남연합과 동맹관계였고, 이들과 가까운 전농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통진당에서도 여성농민운동가 윤금순을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로 당선시켰다.
  5. 따지고보면 전농에도 PD계열이나 신좌파 계열도 존재한다. 단지 NL의 영향력이 크고 다루는 주제 자체가 반제국주의, 반미와 겹칠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만... 사실 반미좌파들도 당연히 베이스로 깔고 가는 것이다. 반미=종북이 아니다.
  6. 사실 요즘 학생들이 폭력적이 되어가고 청소년 범죄가 늘어가고 있다는 기성세대와 청년들 모두의 오해와 달리, 청소년 범죄는 과거에 비해 감소한 편이다. 사회적 문제인 학교폭력 역시 과거라고 지금보다 덜했던 것은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집단 패싸움 등 현재로는 일진들도 거의 안할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말죽거리 잔혹사친구(영화)를 생각해보면 된다.) 현재의 중년이나 노인들은 그러한 학창시절을 낭만화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또한 과거에는 폭력적인 사회였지만, 전체주의의 반면급부로 공동체주의적인 면도 있었기에 현재의 공동체가 없는 이기주의적 문화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과는 좀 달랐다.다르긴 개뿔이 다르냐 결국에는 폭력적인 방식일지언정 공동체에는 끼워 주게(혹은 끼워 넣게)되었고, 아예 배제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식의 병신같은긍정적 시각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싸우면서 죽는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학부모로서 자녀가 피해를 보는 일을 겪어보지 않는 한 현재의 고연령대들은 학교폭력에 대해 인식이 모자란 부분이 있다.
  7. 강기갑이 당선되기 전에는 서부경남에선 창원, 마산 등 동부경남과 달리 진보정당이 배출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