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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히트 No. 7 | |
고란 드라기치(Goran Dragic) | |
생년월일 | 1986년 5월 6일 |
국적 | 슬로베니아 |
포지션 | 가드 |
키 | 191cm (6 ft 3 in) |
몸무게 | 86 kg (190 lb) |
드래프트 | 2008년 드래프트 2라운드 45번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1] |
소속팀 | 피닉스 선즈(2008~2011) 휴스턴 로켓츠(2011~2012) 카하 레보랄(2011)[2] 피닉스 선즈(2012~2015) 마이애미 히트 (2015~ ) |
등번호 | 1번,2번(피닉스) 3번(휴스턴) 7번(마이애미) |
수상내역 | NBA Most Improved Player (2014) All-NBA Third Team (2014) Slovenian League Rookie of the Year (2005) Slovenian League All-Star (2006) Slovenian League Champion (2008) Borislav Stanković Tournament MVP (2010) Named Western Conference Player of the Week, 4/2-4/8 (2012) |
2014년 NBA 올해의 기량발전상 | |||||
폴 조지 | → | 고란 드라기치 | → | 지미 버틀러 |
1 소개
한때 안습이 된 줄 알았던 선즈의 새로운 에이스가 되었었으나 선즈 프런트진의 과유불급의 희생양이 되버린 선수.
별명은 "더 드레곤"(The Dragon).
2 커리어
2.1 유럽
2003년 17살의 나이로 자신의 나라인 슬로베니아의 Ilirija Ljubljana에서 뛴것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KD Slovan, 그 이후 TAU Cerámica라는 스페인 리그로 진출하나 바로 CB Murcia라는 팀으로 양도되어 한시즌을 뛴다. 다음해인 2007년 Olimpija Ljubljana라는 슬로베니아 리그로 복귀 여기서 팀이 우승하는데 일등공신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NBA 진출을 도모한다.
2.2 1차 피닉스 선즈 시절
풋풋했을 당시의 시절에 선배였던 스티브 내쉬와의 한솥밥을 먹었던 시절.
2008년 드래프트에서 드라기치는 2라운드 45번째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되나 바로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된다. 하지만 스페인리그의 Caja Laboral와의 계약문제 때문에 9월에야 정식적으로 선즈의 멤버가 되고 3년동안 스티브 내쉬의 백업가드로 3시즌 활약하며 백업으로는 적당한 성적을 내게 된다.
그 전까지는 얼굴 잘생기고 준수한 백업 가드로만 여겨지기만 했었는데 2010년 서부컨퍼런스 세미파이널 3차전에서 끝판왕이자 숙적인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보여준 4쿼터 23득점은 전 NBA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덕분에 내쉬의 후계자이자 선즈의 미래로 낙점되었다.
이 당시 내쉬한테 많은것을 배우고 있다고 언급하였고 잘 따랐다고 한다. 여담으로 내쉬의 한국 한정 별명이 승상인데, 이때 같이 뛴 드라기치도 국내 한정으로 강유라는 별명을 얻었다.
2.3 휴스턴 로켓츠
이적후 활약하는 모습.
하지만 피닉스 선즈는 그 당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리안드로 바보사, 히도 터콜루, 제이슨 리차드슨 을 모조리 트레이드 시키거나 FA로 내보낸데다가 어중간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던 때라 불혹을 바라보는 팀의 슈퍼스타 스티브 내쉬의 뒤를 이을 선수를 찾아야 했고, 내쉬 역시 이러한 어중간한 팀의 운영에 불만을 표하고 있었던지라 계속해서 트레이드 가능성에 대한 루머가 나오고 있던 상태였다.[3] 이런 상황에서 내쉬의 뒤를 이을 선수를 찾던 선즈는 결국 준수한 식스맨이었던 드라기치와 올랜도 매직으로부터 받아왔던 1라운드 지명권[4] [5] 을 내주면서 기량발전상을 수상한 포인트 가드 애런 브룩스(2015년 현재 시카고 불스 소속의 백업포인트가드)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2011년 2월에 성사시킨다.
애런 브룩스가 선즈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못하고 반시즌 만에 NBA 파업을 이유로 중국리그에 진출한 후 새크라멘토 킹스와 계약하는 동안 고란 드라기치는 휴스턴에서 슛팅능력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준주전으로 활약한다. 한편으로는 크리스 폴 트레이드 소동당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파우 가솔을 영입하는 조건으로 팀동료였던 루이스 스콜라와 1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뉴올리언스 호네츠로 트레이드 될뻔했지만 데이빗 스턴 NBA 총재가 트레이드에 제동을 거는 바람에 트레이드가 무산되었던 소동도 있었다. 이 트레이드의 자세한 내용은 크리스 폴 항목 참조.
2011년 NBA 파업때는 잠시 스페인리그에서 알바를 뛰기도 했었다.
2.4 2012년 피닉스 선즈로의 귀환
이제는 내쉬와 적으로 만나 매치업을 벌인다.
위에 상기한 대로 피닉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최고의 포인트가드 중 하나였던 스티브 내쉬는 컨텐더에 오르지 못하는 선즈에서의 플레이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결국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반지를 득템하기 위해 2012 오프시즌 중에 이적하고 만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1라운드에서 바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스윕당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마땅한 가드진이 없는 상황에서 선즈는 가드진을 보강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고 포인트가드 진에 드라기치를, 슈팅가드에는 당시 제한 FA신분이었던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가드 에릭 고든을 점찍고 고든에게는 4년에 5800만불이라는 거금을 오퍼하였지만 호넷츠가 계약을 매치함으로서 영입하는데 실패하였고, 역시 비제한 FA였던 드라기치와도 접촉. 4년간 3000만불이라는 금액에 계약하게 된다. 당시 로케츠는 제레미 린과의 계약에 집중하기 위해 드라기치를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드라기치는 친정팀으로 귀환하게 된다. 크리스 폴 트레이드 소동에 같이 휘말렸던 루이스 스콜라 역시 사면룰을 이용해 FA신분이 된 후 선즈와 사인함으로서, 둘은 다시 새 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재밌는 건 고든, 드라기치, 스콜라 세명이 모두 크리스 폴 트레이드와 연관이 있었던 선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드라기치의 영입은 어느정도 성공하였다. 다른 타깃이었던 에릭 고든은 인저리 프론인게 증명이 되어 시즌의 반 가까이를 결장하면서 크리스 폴 트레이드를 실패로 만들어감과 동시에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샐러리를 낭비하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반면 드라기치는 선즈의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평균 7.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 등과 함께 NBA 어시스트 부문 공동 8위, 평균득점 14.7점을 기록하며 A+급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준수한 스텟을 찍어줌으로서 내쉬의 공백을 매꾸었고 오히려 제레미 린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팀은 창단 때를 제외하고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전체 4위, 서부컨퍼런스에서 전체 1위의 성적을 내었다, 물론 뒤에서(...)
2013-2014 시즌이 25%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평균 19.0득점 6.2 어시스트로 활약하며 파트너 가드인 에릭 블레드소와 함께 팀의 탱킹을 망치고 있다하위권 팀이 될거라 예상되던 선즈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블렛소가 부상으로 오랫동안 결장하면서 여기까지인가 했으나 놀랍게도 매 경기 20득점 이상씩을 올려주면서 팀을 캐리중. 2014년에는 탑클래스까지 실력이 올라갔다. 결국 올 시즌 MIP(Most Improved Player - 기량발전상)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막판 뒷심으로 선즈는 안타깝게 플레이오프에 실패했지만 본인으로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2014-2015 시즌이 되자 팀이 영입한 아이제아 토마스와 원래 있던 에릭 블레드소가 볼을 잡아야 빛이 나는 스타일이다 보니 본인이 많이 양보를 하면서 스텟이 많이 줄었다.. 결국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지 결국 2015년 2월 17일에 선즈와는 연장계약을 하지 않을 것임을 통보하였다.# 곧이어 이어진 인터뷰에선 더이상 선즈 프론트진을 신뢰 못하겠다는 말을 선수 본인이 공식적으로 남겼다. 결국 트레이드 블록에 오르게 될 듯.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마이애미 히트, 뉴욕 닉스등이 본인이 원하는 팀이라고 한다. 선즈 입장에서도 팀에 마음이 떠난 선수를 시즌 끝까지 붙잡기보단 트레이드해서 뭐라도 받아오는게 그나마 팀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테니. 하지만 쓸데없이 많은 포인트가드들을 수집해 교통정리를 하지 못한 맥도너 단장은 까였다.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 당일인 2015년 2월 19일, 데드라인 마감을 몇 분 앞두고 동생 조란 드라기치와 함께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 되었다. 선즈는 대니 그레인저 외 3명과 2017년, 2019년 1라운드 픽을 받고 대니 그레인저와 함께 선즈로 트레이드 되었던 노리스 콜, 션 윌리엄스, 저스틴 해밀턴은 다시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존 셀몬스를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존 셀몬스는 트레이드 되어 선즈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웨이버 공시되었다.
2.5 마이애미 히트 시절
드라기치가 선호하는 팀 중 한 팀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히트는 1라운드 픽 2개와 동생 조란 드라기치의 2년계약까지 떠앉는 조건으로 드라기치를 영입하였다. 기존 포인트 가드였던 마리오 찰머스, 노리스 콜, 샤바즈 네이피어의 실력에 질려버렸던 히트 팬들은 드라기치가 영입되자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정작 히트에서는 웨이드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과 플레이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고전 중.
보쉬가 부상으로 빠지자 공격 시도 수가 좀더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점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기타
동생 조란 드라기치 역시 농구선수이다. 형이 휴스턴 로켓츠에서 뛰었을 당시, 같은 팀의 써머리그에 참여해서 잠시 뛴적이 있다고 한다. 모국 슬로베니아와 스페인리그를 걸쳐서 활동하다가 2014-15시즌부터 피닉스에 합류해 형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지만 한시즌이 끝나기도 채 전에 형제가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되었다. [6]
대한민국과는 2008년 아테네에서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때 슬로베니아 국가대표로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만난 인연이 있다. 여담으로 여기서 드라기치를 상대했던 선수는 정영삼. 정영삼은 이 경기에서 18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김주성 다음의 득점을 올렸고 드라기치는 11득점 4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당시 성적이 정영삼이 더 나았고 드라기치를 효과적으로 수비했다는 평을 들어, 드라기치가 NBA에서 성공한 이후 정영삼이 세삼 주목을 받게 되었다.[7] 마 니 드라기치 잡아봤나?그리고 이런 대한민국과의 인연은 2014년 농구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슬로베니아가 같은 조가 되면서 이어지게되었다. 출장시간 25분에 22득점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을 무너트렸다.영삼이는 인천에 있었다
그가 어렸을 당시 존경했던 선수는 마이클 조던, 앨런 아이버슨, 그리고 스티브 내쉬였다고 한다. 내쉬하고는 잠깐 한솥밥을 먹기도 했었다.
슬로베니아 출신인데 모국어인 슬로베니아어는 물론이고, 세르비아어, 그리고 스페인과 미국에서 뛰었던 점 때문에 스페인어와 영어역시 구사할줄 아는 4개국어가 가능한 선수이다.
슬로베니아에선 gogi로 불렸다던데, 당연히 그 고기가 아니라 gogi 뜻이 슬로베니아어로 Goran과 비슷하다고 해서라고 한다.- ↑ 지명 후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 ↑ 스페인 리그 팀으로 2011년 NBA 파업중 잠시 뜀.
- ↑ 결국 1년이 지나서 내쉬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팀을 옮기게 된다.
- ↑ 히토 터콜루와 제이슨 리차드슨 등이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 될 당시 피닉스 선즈는 빈스 카터, 마씬 고탓등과 함께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왔었다.
- ↑ 휴스턴 로켓츠는 2011년 전체 23번째 픽에 당첨되면서 Nikola Mirotić을 지명하였으나 바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 다시 미네소타는 이 지명권을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
- ↑ 이로서 피닉스는 두 형제를 보유한 유일한 NBA팀이 되었었는데, 고란-조란 드라기치 형제와 마키프-마커스 모리스 형제. 이 외에도 당시 피닉스의 센터이자 현 밀워키 벅스 선수인 마일스 플럼리의 동생인 메이슨 플럼리는 브루클린 네츠에서 활약중이다.
- ↑ 심지어 아예 정영삼 드라기치가 자동검색어로 나오며, 이 두 선수를 검색했을때 연관검색어로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