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 남평 문씨(南平 文氏) |
관향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
시조 | 문다성(文多省) |
중시조 | 문익(文翼) |
집성촌 | 전라남도 화순군, 장흥군, 영암군, 보성군 함경남도 함흥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
인구(2015년) | 445,946명 (21위) |
1 개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한국의 문씨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감천 문씨와 정선 문씨를 제외한 대다수의 다른 문씨들은 남평 문씨의 세거지명(여러 대 동안 산 고장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한다. 감천 문씨의 일부도 남평 문씨의 분파이며 정선 문씨는 2000년 통계청 조사상 106명에 불과한 소수성이므로 사실상 한국의 거의 모든 문씨는 남평 문씨라고 할 수 있겠다.
지역 별 인구 분포로는 전라도에 본관을 둔 성씨답게 전라도에 많이 분포한다. 하지만 경남과 경북의 일부 지역에도 남평 문씨가 많은 편이다.
또 글월 文 답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고서를 소장한 문중이기도 하다.
남평 문씨의 종파로는 충혜공파, 감천군파, 남제공파, 충익공파, 순평군파[1], 판도판서공파, (충선공파)헌납공파, (충선공파)순질공파, (충선공파)의안공파, (충선공파)시중공파, (충선공파)성숙공파, 안로파가 있다.
2 설화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말에 남평에서 출생하였는데, 서기 472년(신라 자비왕 15) 전남 나주군 남평현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라는 큰 못이 있고 그 못가에는 큰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군주(郡主)가 그 바위 아래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에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신기하게 여긴 군주가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석함(石函)이 놓여 있었다. 함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피부가 옥설(玉雪) 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있었다. 기이하게 생각된 군주(郡主)가 아이를 거두어 기르니 나이 불과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聰明)하여 사물(事物)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지라 문(文)을 성(姓)으로 삼게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3 역사
시조는 문다성(文多省)으로, 생몰년대 미상이다. 생몰 시기는 신라 자비 마립간 때 사람이라는 것과 통일신라 말 때의 사람이라는 설이 있는데 종중 내에선 후자로 인식한다.[2] 태조 왕건의 밑에서 무신으로 봉직하였으며 고려가 후삼국의 통일을 이룬 후 삼중대광[3] 고려 개국 벽상공신 남평백으로 봉함을 받고, 식읍 3천호를 하사받은 것이 그에 대한 기록의 전부다. 묘소가 유실되었는지 소재는 불명이며, 그리하여 시조단을 만들어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시조일 뿐 그 밑으로는 자료가 없으므로 대수를 정할 때는 중시조 문익(文翼)을 1대로 쳐 계산한다.
고려의 개국과 동시에 새로 발흥한 호족 가문이기 때문에 고려조를 통틀어 인물이 많이 나왔다. 고려시대 땐 그럭저럭 잘 나갔는지 문벌귀족 가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 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무신정권 때의 네임드급 문신인 충숙공 문극겸(文克謙)[4], 고려 말의 목화씨로 유명한 산업스파이 문익점(文益漸)정도가 유명하다.[5]
다만 조선조 때에는 별로 가세가 흥한 편이 아니어서 조선조 때의 유명한 인물을 찾아보려면 대충 의병장이니 그저 그런 관료가 나올 정도다. 아마도 현 족보상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문익점이 여말선초에 정몽주 라인을 타서 배제당했거나[6], 후손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듯. 오히려 현대에 들어 더 잘 나가는 모양이다.
4 특이사항
지금은 많이 잊힌 이야기이긴 하지만, 순흥 안씨랑 혼인을 꺼린다. 옛날 문씨 청년이 중국에 유학을 하러 가는 길에 순흥 안씨를 만나서 길동무 삼아 같이 가게 되었는데, 두 청년이 너무나 죽이 잘 맞았던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형제니 한 집안과 같다! 라고 하여 후손들의 배우자 후보 가문을 하나 지워버린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혹시나 이런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면 참고하시길.
5 유명인물
유명인들 중 확실하게 남평 문씨라 판가름난 인물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프로필 혹은 위키백과에서 본관이 남평이라 밝혀진 인물들만 적었다. 문(성씨) 항목도 참조바람. 근데 거의 다 남평 문씨라서
- 문국현 - 제 18대 국회의원, 現 기업인.
- 문규현 - 야구선수
- 문극겸 - 고려 의종, 명종 때의 문신.
- 문근영 - 배우.
- 문다성 - 남평 문씨의 시조.
- 문익점 -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유학자.
- 문재인 - 제 19대 국회의원.
- 문지애 - 아나운서.
- 문창극 - 언론인, 前 국무총리 후보자.
- 문채원 - 배우.
- 문학진 - 前 정치인. 제 17, 18대 국회의원.
- 문희상 - 정치인.
- 문희갑 - 前 정치인 겸 광역단체장.
- 문희준 - 가수.
어쩐지 문재인이랑 얼굴이 비슷하다.
6 집성촌
- 서울특별시 강동구 강일동
-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7]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8]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
-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송지리
-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안봉리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 경상남도 합천군
-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매수리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 전라남도 화순군
- 전라남도 장흥군
- 전라남도 보성군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진덕리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서산리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이천리
- 전라남도 광양시 옥곡면 원월리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대사리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 전라북도 군산시(전 옥구군)
- 충청남도 서산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전 북제주군)
- 황해도 봉산군
- 황해도 장연군
- 함경남도 함흥시[9]
7 항렬표
30세 | ○호鎬, ○현鉉, ○흠欽 |
31세 | 제濟○, 승承○, 홍鴻○ |
32세 | ○식植, ○모模, ○상相 |
33세 | 희熙○, 형炯○, 병炳○ |
34세 | ○주周, ○기基, ○균均 |
35세 | 종鍾○, 용鎔○, 련鍊○ |
36세 | ○영泳, ○수洙, ○흡洽 |
37세 | 동東○, 학學○, 환桓○ |
38세 | ○노魯, ○섭燮, ○훈勳 |
39세 | 재在○, 시時○, 규圭○ |
40세 | ○선銑, ○일鎰, ○석錫 |
41세 | 택澤○, 태泰○, 해海○ |
42세 | ○표杓, ○근根, ○목穆 |
43세 | 석재○, 선銑○, 시諡○ |
순평군파와 판도판서공파는 항렬이 조금 다르다.[10]
28세 | ○주柱, ○동東, ○식植, ○환桓 |
29세 | 병炳○ |
30세 | ○곤坤, ○균均 |
31세 | 종鍾○ |
32세 | ○연淵 |
33세 | 상相○ |
34세 | ○환煥 |
35세 | 규奎○ |
36세 | ○호鎬 |
37세 | 위渭○ |
- ↑ 순평군파는 4세 유철 선조의 후손들을 순평군파로 불러왔으나 1995년 대동보에서는 파주와 전주가 집성촌인 9세 달한공의 후손을 순평군(후순평군)으로 하고 합천지역이 집성촌인 8세 근 선조의 후손들은 판도판서공파로 분리하였다.
- ↑ 나주에서 태어났는데 신라에서 수 대를 섬기며 봉직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하다.
- ↑ 향직의 첫번째 품계. 중앙 관직으로도 있으나 앞에 설명한 향직이 맞다.
- ↑ 딸이 이의방의 제수다. 이의방의 동생 이린의 아내. 참고로 이린의 6대손이 이성계
- ↑ 초명은 익첨(益瞻).
- ↑ 그나마 목화 버프로 사후 공신은 됐지만 중앙 정계에선 멀어져서 당장 그 아들만 해도 빈곤해져 문익점의 동문인 권근이 태종에게 문익점 아들에게 벼슬하나 주라고 했을 정도
- ↑ 문정동에 문(文)자가 붙은 이유가, 이 성씨의 집성촌인데서 비롯되었다.
- ↑ 문희갑 前 대구시장이 이곳 출신.
- ↑ 문재인의 부모가 이곳 솔안마을 출신.
- ↑ 이로 인해 과연 남평 문씨의 모든 파가 한 뿌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이 있다. 참고로 저 두 파는 다른 파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경상도에 본적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