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hy of Normandy
9세기 초 바이킹(노르만족)들의 침략으로 프랑스를 마구 약탈하면서 피해는 심각했다. 그들은 845년 파리를 점령하고 철수하는 댓가로 막대한 배상금을 챙기기도 했다. 이에 911년 서프랑크 왕국 왕 샤를 3세는 바이킹들과 싸우느니 차라리 그들의 힘을 인정하고 봉신으로 부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들 중 한 무리의 두목이었던 롤로[1]에게 센 강 하류의 노르망디 지역을 주고 백작으로 삼아 건국되었다. 대신 롤로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로베르(Robert)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 후 다수의 노르만인이 이 지방으로 이주하여 영지를 확장하고 특수지역을 만들어 실질적인 독립국을 만들었다.
롤로는 훗날 잉글랜드를 정복한 정복왕 윌리엄 1세의 고조할아버지이다. 롤로가 처음 임명될 때는 백작이었지만 증손자였던 리샤르 2세 때 선정과 공적을 인정받아 공작으로 승격되었다. 롤로 이 후 기욤 1세, 리샤르 1세-리샤르 2세-리샤르 3세를 거쳐 로베르 1세가 즉위했다.[2] 로베르 1세는 원래 아들로는 기욤 하나뿐이었는데 하필 기욤의 어머니 에를르바가 로베르 1세와 정식 결혼하여 기욤을 낳은 게 아니었고 그녀의 출신도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기욤은 훗날 사생아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생겼다.
롤로의 고손자였던 기욤은 사생아였지만 전대 공작이었던 아버지 로베르 1세의 유언에 따라 뒤를 이었으며 그가 기욤 2세이다. 기욤 2세는 친척들의 견제와 방해해도 불구하고 노르망디 공작 직위를 유지하고 1066년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죽이고 승리함으로써 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가 되었다.[3] 이로써 노르만 왕조가 잉글랜드에 성립한다. 윌리엄 1세 사후에는 봉건제도의 관습지에 따라 상속지였던 노르망디 공국은 그의 장남 로베르 2세에게, 정복지였던 잉글랜드 왕국은 그의 삼남 윌리엄 2세에게 넘어갔다.[4] 로베르 2세는 호시탐탐 잉글랜드를 노렸고 윌리엄 2세 사후에는 그의 동생 헨리 1세가 뒤를 이었다. 로베르 2세는 막내 동생 헨리 1세를 공격하여 잉글랜드를 뺏을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사로잡혀 되려 노르망디 공국을 잃었다. 이 후 대대로 노르만 왕조의 왕이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을 겸하게 되었는데 원래 노르망디가 프랑스 영역이었고 잉글랜드 왕 스스로도 형식으로나마 프랑스 왕의 봉신을 자처했기에 노르만 왕조 이 후 잉글랜드 왕들은 프랑스 왕의 신하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영국과 프랑스간 분란의 불씨가 되었는데 훗날 백년전쟁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노르만 왕조 멸망 후 그 뒤를 이은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들도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지만 존 왕 때 프랑스 필리프 2세의 공격으로 영토는 나날이 줄어들어 1204년 채널 제도를 제외하고 모두 상실해 버렸다. 훗날 백년전쟁 때 잠시 소유했다가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는 채널 제도를 제외하고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백년전쟁 후 잉글랜드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프랑스 내 영토는 칼레뿐이었는데 이마저 1558년 메리 1세 때 상실함으로써 프랑스 내의 영토를 모두 상실한다. 하지만 당시 지금도 채널 제도 (저지 섬, 건지 섬)는 여전히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로서 영국 왕실에 속해 있는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