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근대 정부 체제

프랑스의 역사
Histoire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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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대 프랑스는 이런저런 사건이 많다보니 정부 체제가 변경되는 일이 잦았다. 정부수립 40년만에 제6공화국을 찍은 대한민국에 비해선 할 말이 없지만

이에 1792년부터 현재(2012년)까지 존재하였던 정부 체제를 역대 대통령 이름과 함께 정리해 본다.

2 목록

기간체제국가 원수비고
1792 ~ 1795제1공화정국민 공회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집권.
자코뱅당. 공포 정치
1795 ~ 1799총재 정부폴 바라스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집권
1799 ~ 1804통령 정부나폴레옹 보나파르트브뤼메르 정변으로 집권
1804 ~ 1814제1제정
1814 ~ 1824왕정 복고루이 18세나폴레옹 전쟁의 패전으로 복고
1824 ~ 1830샤를 10세
1830 ~ 18487월 왕정루이 필리프 1세7월 혁명으로 집권
1848 ~ 1852제2공화정루이 나폴레옹
(나폴레옹 3세)
2월 혁명으로 집권
1852 ~ 1870제2제정1851년 정변으로 집권
1870 ~ 1873제3공화정아돌프 티에르보불전쟁 패전으로 집권.
파리 코뮌 진압.
1873 ~ 1879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
1879 ~ 1887쥘 그레비파나마 운하 스캔들.
1887 ~ 1894사디 카르노국방장관 조르주 불랑제(Georges Boulanger)의 제거.
1894 ~ 1895장 카지미르 페리에드레퓌스 사건.
1895 ~ 1899펠릭스 포르레옹 "부르주아" 내각.
1899 ~ 1906에밀 루베정교 분리
1906 ~ 1913아르망 팔리에르
1913 ~ 1920레몽 푸앵카레제1차 세계대전
1920폴 데샤넬
1920 ~ 1924알렉상드르 밀레랑"국민 블록(Bloc Nationale)" 출신.
사회주의자 출신의 권위주의 우파.
1924 ~ 1931가스통 두메르그인민 전선(좌파)의 집권.
아리스티드 브리앙 내각.
바이마르 공화국 국제연맹 가입허용.
(1925~1930)[1]
1931 ~ 1932폴 두메인민 전선.
1932 ~ 1940알베르 르브룅인민 전선.
국무총리의 신설(두메르그#)[2]
마지노 선, 뮌헨 조약.
1940 ~ 1944비시 정부앙리 필리프 페탱나치 독일에 패전으로 집권.
파리 함락.
1944 ~ 1946임시 정부[3]
(자유 프랑스)
샤를 드 골
1946 ~ 1954제4공화정뱅상 오리올
1954 ~ 1959르네 코티
1959 ~ 1969제5공화정샤를 드 골드골주의 우파[4]
1969 ~ 1974조르주 퐁피두
1974 ~ 1981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1981 ~ 1995프랑수아 미테랑좌파/사회당;PS [5][6]
1995 ~ 2007자크 시라크우파/공화국연합.
대통령 임기 7년중임제->5년중임제[7]
2007 ~ 2012니콜라 사르코지우파/대중운동연합;UMP [8]
2012 ~ 2017프랑수아 올랑드좌파/사회당;PS

3 참고 항목

  1. 1926년 노벨 평화상 수상.
  2. 1936년 거국일치 내각 등.
  3. 단, 성립은 1940년 부터.
  4. 기본적으로 프랑스 우파들은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한 이합집산이 극심하다. 2차대전이후 비슷비슷한 이름을 가진 수십개의 정당이 선거때마다 뭉치고 흩어지길 반복해서 도저히 계보도를 그릴수가 없다... 어차피 대선과 총선에선 선거연합으로 자연스레 뭉치기 때문에 사실 정당의 의미가 그리 크지도 않다. 이는 대선과 총선 모두 결선투표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5. 1981년 대선 당시 범좌파 단일 후보(사회당+공산당)로 승리. 평소에는 이합집산하다가도 선거 때면 뭉치는 우파와 달리 프랑스 좌파의 양대축인 사회당공산당의 관계는 매우 적대적이었다.근데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 이는 20세기초 마르크스 수정주의 논쟁까지 올라가는 좌파내 대립이니 당연한 것. 1930년대 인민전선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유화정책으로 욕을 쳐먹고 레지스탕스가 대거 숙청된 뒤로 매번 선거에서 따로 출전해서 우파에 개털리다가 1974년 대선부터 단일후보를 내기 시작했고 결국 1981년 당선.
  6.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론 미테랑의 우향우에 따른 반발로 또다시 관계가 ...미테랑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미테랑은 극우였다 거기다 21세기 들어선 반자본주의신당 등 극좌들이 득세하면서 범좌파연합은 거의 힘들어보인다. 덕분에 2007년 대선 결선투표에선 프랑스 사회당은 프랑수아 바이루(당시 19% 득표)의 프랑스민주동맹이라는 제3의 길을 외치는 중도우파와 연합했고, 계속 될 전망이다. 가히 통합진보당 급 변화랄까.
  7. 자크 시라크의 2기 집권과정(2002년 선거)은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다. 프랑스 대선은 전체 후보를 대상으로 1차 선거를 치른 뒤, 과반수 득표 후보가 없으면 상위 2명의 후보가 2차 투표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1차 선거 자체에 대한 무관심("당연히 시라크와 좌파 단일화 후보(리오넬 조스팽)가 2차선거로 가겠지...")으로 인해, 장마리 르펜이라는 극우파 후보가 2위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민 금지, 프랑스 전통 고수 등 프랑스판 스킨헤드, 프랑스판 나치로 우려를 받았던(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흠좀무. 훈훈한 연합군 승전국과 추축국 패전국의 화해.. 일리 없잖아!) 르펜이 2위를 기록하자, 경악한 좌파진영은 극좌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반나치 시위와 함께 시라크 지지 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결국 시라크는 2차 선거에서 80% 이상의 득표율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8. 2007년 세고렌 루아얄과의 대결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고, 강력한 경쟁자인 세계은행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조차도 성폭행 혐의로 낙마했지만,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거센지라 재선은 힘들어 보인다. 2012년 4월 22일로 예정된 대선에선 프랑수아 올랑드(전 대표, 루아얄의 남편) 현 후후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경선 2위를 기록한 마르틴 오브리(여성후보, 현 대표, 스트로스칸 계)나 경선에서 낙마한 루아얄조차도 모두가 승리하는 예측이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