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로

1 이탈리아어 단어

Libero.

자유로운, 고정돼있지 않은, 무료 라는 뜻으로 영단어 Free, Liberty에 해당한다.

2 삼국지 천명의 유비군 군함

조조군 포세이돈,손권군 스팅레이와 동급 테크 함선. 셋 중 가장 많이 현대 전함에 근접하게 생겼고, 멋있다.

3 현대자동차 경상용차

현대 리베로 참고.

4 스포츠 용어

4.1 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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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의 다이빙 디그 장면

1997년부터 FIVB 월드 리그부터 처음 도입 되었다

후위에서 수비만 전담하는 선수, 다시 말해 지명수비이며 팀 내에서 한 명을 지정해서 그 선수만 가능한 포지션이다. 대체로 리그에선 교체 리베로까지 2명 보유 가능하다. 이들은 포지션 구분을 위해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는다. 리베로는 세트 내에서 선발 출전한 선수가 제2 리베로로 교체되면 그 세트가 끝날 때까지 코트로 들어올 수 없고, 만약 제2 리베로마저 부상 등으로 교체되면 다른 선수가 조끼를 입고 리베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로 센터 공격수가 후위로 간 뒤 서브를 넣고 상대 팀이 득점해 서브권이 넘어갔을 때 센터 공격수와 교대된다. 이 센터가 후위에서 전위로 이동하게 되면 리베로는 아웃된 뒤 원래 교체했던 센터의 대각에 위치한(즉, 서브를 넣으러 들어오는 2번째 센터) 선수가 서브를 넣고 서브권을 넘겨줄 때까지 대기하다가 넘겨주면 다시 들어온다.

후위에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공격(점프해서 오버핸드로 백테 위쪽에서 공을 치는 행위)과 블로킹이 일절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위에서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양손 토스를 할 경우 후위 공격 반칙에 걸린다. 로테이션상 세터와 라이트 공격수보다 앞선 순서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당연히 상대팀이 서브를 넣을 때 세터를 보호하며 서브리시브 받아 세터에게 넘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상대팀의 볼 꼬리가 긴 공격을 후위에서 디그로 막아낸다. 또한 세터가 디그를 하느라 세팅을 못하는 유사시에 주공격수가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후위에서 전위로 넘기는 2단 연결토스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리베로 제도가 자리잡은 이후에는 수비 포메이션의 지휘까지 책임지는 역할까지 추가됐다.

결과적으로 과거에 리베로가 없었던 시절에 후위에 있는 센터가 수비에 가담하지 않고 잉여가 되는 것[1]을 리베로 제도 도입 이후 이 역할을 리베로가 대체했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상대편의 서브를 받아 세터에게 넘기는 공격의 시작점으로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 됐다. 이 리베로 포지션의 도입은 스파이크 서브, 랠리포인트 제도 도입과 더불어 2000년대 이후 스피드 배구를 태동하게 만든 주요 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상대의 서브와 강한 공격을 받아내야 하고, 자기 진영 코트 바닥에 떨어지는 공을 디그를 하여 건져내야하기 때문에 키가 큰 선수들보다는 대체로 키 작은 선수들에게 유리한 포지션이다. 보통 남자부는 180cm 이하, 여자부는 175cm 이하로 신장이 최적화되어있으며, 공격수로서는 키 때문에 공격패턴이 아쉬운 선수들이 리베로로 전향하는 사례가 꽤 있다. 거기에 세트 후반에 수비보강을 위해 제2의 리베로로 투입되는 선수들[2]의 경우 강서브 구사가 된다면 원포인트 서버로서 꽤 매력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3]

수비를 전문적으로 하다보니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것 빼면 세터와 함께 선수수명이 긴 포지션이기도 하다. 벌써 30대 중반을 넘은 여오현(현대캐피탈)이나 최부식(대한항공)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고, 비록 원포인트 교체요원이긴 하지만 이호 역시 2012-13 시즌에 다시 복귀하여 마흔살이 넘었지만 세트 후반 교체요원으로 코트에서 활발히 뛰었다. 여자부의 경우 남지연김해란이 대표적인 노장 리베로로 손꼽힌다.

남자부의 이호, 여오현, 여자부의 구기란 등의 선수는 리베로 도입 초창기 국제무대에서 미친 존재감을 선보여 '월드 리베로'라는 닉네임을 인정받았다. 특히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경우, 리베로 제도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공수 능력은 출중한데 공격수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 종종 리베로를 보곤 했다. 대표적으로 한국 여자배구의 레전드 중 한 명인 최광희2000 시드니 올림픽 때 주전 리베로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남자배구에서는 여오현이 너무 대단해서 2010년대 들어 여오현의 후계자감이 보이지 않고, 여자배구의 경우는 이상하리만치 디그는 잘하는데 서브리시브나 수비지휘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아서 한국 여자배구의 수비력을 오히려 깎아먹는 수준으로 비판받고 있다. 게다가 여자부 국가대표 리베로 자리도 남지연, 김해란이 10년 넘게 활약 중인데, 그에 반해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남자배구에서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지역예선이 열리기 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여오현을 대한배구협회에서 막무가내로 선발을 하다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여오현의 후계자로 이강주(삼성화재)[4]부용찬(LIG손해보험), 정민수(우리카드), 오재성, 정성현(OK저축은행)이, 여자배구에서는 김해란이 지목한 나현정[5], 김연견[6] 손꼽히고 있으나 문제는 이들 모두 국제전 실전경험이 많지 않다.

4.2 축구

스위퍼의 특별한 역할. 혹은 스위퍼를 다르게 일컫는 명칭.
수비 라인의 뒤에 위치하며 공격의 전개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 피치 위의 모든 선수를 통제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 스위퍼 앞의 중앙 수비수는 스토퍼라 불리며 대인적 역할을 맡게 된다. 따라서 스토퍼는 피지컬 능력이 뛰어나야 하며 전투적으로 수비하여야 한다. 그와 반대로 스위퍼 위치의 선수는 수비의 전반적 흐름을 읽고 적절한 수비 위치 선정으로 공과 선수의 길목을 막는 것이 주 임무.

공격 전개시에 스위퍼의 리베로로서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최후방의 위치에서 경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고 판단 후 지시하여 현대의 중앙 미드필더, 레지스타, 때로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런 전술 사용시 자연히 수비와 공격의 전권이 리베로 한 명에게 집중되게 되며 이에 따라 리베로에게는 천재적 축구지능이 요구된다.

리베로 전술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기본적으로 최종수비수를 마크할 선수는 없다는 것. 오버랩을 깊게 해도 섣불리 마크하기 힘들다. 또한 수비의 프리롤을 가진 선수가 동시에 공격에서도 프리롤을 수행하기 때문에 리베로를 제외한 다른 선수가 전술적 이해도가 떨어져도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매끄럽다. 리베로의 지휘를 믿고 충실히 이행하는 전술인 셈이다. 반대로 단점은 전술의 중심이 맨 아래에 위치하다보니 유연성이 떨어지고 페널티 박스에 많은 선수가 위치함에 따라 그 반대급부로 페널티 박스 위의 공간이 위험지역으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후 페널티 박스 앞에서부터 수비하는 전술적 변화와 상향평준화된 축구선수들의 전술이해도에 따라 스위퍼, 리베로가 무용하게 되었고, 포어리베로, 즉 수비형 미드필더 형태로 변화한다.

나름 권위 있는 영국의 축구 잡지 월드 사커에서는 역대 리베로 순위를 이렇게 선정했다. 베켄바워, 바레시, 시레아, 파사렐라, 잠머, 한센, 네스타, 크롤, 피게로아, 셰스테르노프

  • 유명한 리베로
  • 프란츠 베켄바우어 - 리베로의 창시자이자, 세계 축구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발롱도르 수상은 물론이고 축구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커리어를 남겼다. 감독으로서도 충분히 명장임을 증명했고, 바이에른을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든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선수다. 별칭은 '황제'
  • 가에타노 시레아 - 유벤투스 그 자체인 레전드. 82년 월드컵 우승멤버.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 마티아스 잠머 - 동독 최고의 선수. 수비수로 발롱도르 수상. 도르트문트 레전드. 인테르에선 폭망했으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도르트문트에 리그와 컵의 더블, 종래에는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안겨준다. 국가대표로서는 유로 우승과 준우승을 거뒀다. 아쉽게도 부상 때문에 일찍 은퇴했다. 사실 주특기는 이른바 포어 리베로로서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리베로 역할도 못 하는 건 아니고, 워낙 위대한 선수라서 넣은 듯 하다. 아님 포어 리베로도 리베로로 취급했던가.
  • 페르난도 이에로 - 레알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캡틴이자 레전드로 수트라이커의 원조라고 불릴만큼 수많은 골을 터트렸던 선수.
  • 앨런 핸슨 - 퍼거슨의 숙적. 퍼거슨은 평생을 두고 앨런 핸슨을 까고 까고 또 까다가 문득 생각나면 땅콩 먹다가도 또 깐다. 퍼거슨과 같은 스코틀랜드인으로, 리버풀 전성기적 레전드. 현재는 BBC에서 축구 방송 진행을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외국인은 도저히 못 알아먹을 정도로 구사한다. 앨런 핸슨이 대선수이긴 한데 그래도 토탈, 아약스, 네덜란드의 루드 크롤이나 월드컵 먹은 파사렐라보다 위인 5위로 선정한 건 월드 사커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브리튼 프리미엄인 거 같다.
  • 뤼트 크롤 - 아약스 황금시대와 네덜란드 토탈 사커의 주역. 레프트백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네덜란드의 월드컵 준우승 2회, 아약스의 7번 리그 우승, 4번의 컵대회 우승, 3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어낸 전설. 레프트백으로 시작했지만 리베로로서도 활약이 대단했다.
  • 다니엘 파사렐라 - 별명 자체가 위대한 주장. 베켄바워에 비길 만하다는 뜻으로 황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인으로, 아르헨티나 명문인 리버 플레이트의 레전드. 리버 플레이트는 항상 강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컵이 없었으나, 그의 입단 후 거의 20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이후로도 밥 먹듯 함께 들어올렸다. 남미의 챔스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역시 거의 20년 만에 우승에 성공하며, 그와 함께 한 8년 동안 6번 우승에 3연패라는 업적을 달성해 냈다.
이후 세리에 A에 진출해 좋은 모습을 보인다. 수비적 능력만 갖춘 게 아니라, 거의 헤더와 프리킥, 페널티킥을 바탕으로 3, 4 경기당 1골씩 박아넣는 엄청난 득점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74년과 75년, 파사렐라의 합류를 기점으로 카를로스 모레테가 32골 31골씩을 넣는 기염을 토하자 스페인의 라스 팔마스에서 모레테를 채어간다. 그러자 파사렐라는뭐? 우리 스트라이커가 이적했다고? 그럼 내가 넣으면 되지 뭐. 76년 35경기 24골이라는 미친 것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에 반해 노장 스트라이커인 오스카 마스는 13골밖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은퇴. 아...스트라이커 꺼져 나보다 골도 못 넣는 게. 주득점포의 이적으로 포지션 변경한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국가대표로서도 아르헨티나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어 냈고,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우승에서도 주장으로서 마라도나와 함께했다. 가히 남미 최고의 수비수.
  • 엘리아스 피게로아 - 칠레 최고의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 우루과이의 명문 페냐롤, 브라질의 명문 인테르나시오날을 거친 후 고향인 칠레로 돌아가 CD 팔레스티노와 콜로콜로에서 뛰었다. 우승컵도 꽤 들어올렸으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3연패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비록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지금보다 월드컵 문호가 훨씬 좁던 시절, 남미에서 5번 월드컵에 도전해 3번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피게로아 이후 칠레는 98년 딱 한 번을 제외하곤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펠레는 피게로아가 월드컵을 들었다면 그가 세계 최고의 수비수일 것이라며, 올타임 칠레 베스트 플레이어이고 미주대륙 최고의 중앙수비수라 평했다. 베켄바우어조차 내가 유러피언 피게로아라며 피게로아를 추켜세웠다. 피게로아 자신 역시 자신감에 차는 발언을 남겼다. 이 영역이 나의 집이고, 누가 방문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 알베르트 셰스테르노프 - 러시아와 CSKA 모스크바 레전드. 이반 뇌제. 17세에 데뷔한 건 CSKA 역대 최연소 데뷔 기록이며, 21세 캡틴은 역대 최연소 캡틴 기록이다. 31세에 은퇴할 때까지 원클럽맨. 70년 소련 우승 때는 최소실점 우승을 달성하며 그 해 소련 최고 선수로 꼽혔다. 러시아 대표팀을 이끌고 3번의 월드컵과 2번의 유로 대회에 참가했다. 월드컵은 4강까지 이끌어 봤으며, 유로는 4강과 우승을 한 번씩 거뒀다. 유로 4강은 그에게는 한스러운 일일 것인데, 왜냐면 아직 승부차기가 없던 시절이라 4강 경기에서 이탈리아와 0-0으로 비기자 결승 진출은 동전던지기로 결정났고 실패했다...아...소련은 멘붕했는지 4강에서 잉글랜드에게 패배하고 만다. 1994년 모스크바에서 작고했다.
  • 라파엘 마르케스 -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살아있는 전설. 2002년부터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2014년 까지 4회 연속 주장완장을 차고 월드컵을 출전한 선수이며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고가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AS 모나코FC 바르셀로나에서도 인상깊은 실력을 보여줬다 지금도 멕시코 국가대표팀의 최고참으로써 출전하고 있으며 나이를 잊을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 알레산드로 네스타 - 파올로 말디니의 뒤를 잇는 이탈리아의 외계인 수비수. 현역 당시 유일하게 리베로 플레이가 가능했던 선수이며, 현재로서는 둘 다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다. 전성기 시절 그는 높은 점프력과 파워풀한 헤딩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장악, 신적인 위치선정과 예술적인 수비라인 조율능력과 정확한 패스 배급 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센터백을 논할때 절대 빠지지 않던 인물. 수비력으로는 공격수의 슈팅 타이밍을 뺏고 공만 쏙 빼내는 극도의 정밀한 태클로 대변되며, 공격 조율 능력은 현역 센터백들 중에 단연 최고여서 마티어스 잠머 은퇴 이후에 리베로 플레이를 완벽하게 구현 할 수 있는 마지막 선수였다.
  • 홍명보 - 수비수 지만 단신에[7] 그리 빠르지도 않고 몸싸움도 강하지 않았지만 대학교 까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덕분인지 게임리딩 능력과 패싱이 절륜해 한국 축구계 에서 전무후무한 수비수로 취급받았고 일본에서 오래 뛰어 일본 축구팬들 사이에서 가장 인지도 있고 스타대접을 받았던 한국선수였다.[8] 특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에서 양 사이드에 뛰어난 몸싸움과 헤딩능력을 갖춘 최진철과 터프한 태클능력을 갖고있던 김태영을 두고 수비와 공격 전부를 지휘해 4강신화를 이끄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3/4위전은 그냥 잠깐 정신 놓았던 걸로 감독이 되서 전부 다 처 말아먹지만
  1. 물론 과거에도 후위에서 수비는 안하고 잉여가 되는 센터와 교체하여 수비를 전담하던 선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수비전담 선수를 세트 후반부에나 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현재의 리베로와는 다르다.
  2. 원포인트 플레이어로서, 주전 리베로와는 달리 공격수들과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으나, 수비에 특화된 선수들이기 때문에 공격할 기회는 거의 없다.
  3. 이런 원포인트 서버로 스페셜리스트 역할을 하는 선수가 여자배구의 오지영(도로공사), 김주하(현대건설) 등이 있다.
  4. 12-13시즌 종료후 FA 제도로 삼성 복귀 하였으나 먹튀의 느낌이 짙어서 국가대표로는 차출을 못한다.
  5. GS칼텍스 소속의 리베로이며, 14-15시즌 베스트 7에 선정될 정도이다.
  6. 답이 없는 수비라는 내력으로 유명한현대건설의 주전 리베로이며, 2015 아시아선수권 U-23 배구대회 당시 이소영과 더불어 대회 베스트 7에 선정되었다.
  7. 182센티미터 인데 물론 일반적인 인식으론 단신이 아니지만 기본 185는 넘기는 중앙수비수 란 포지션 자체로 보면...
  8. 물론 박지성도 상당한 유명세지만 그것도 2002년 월드컵 후 그리고 맨유 이적 후에 아 저 선수가 우리 리그에서 뛰었었지 하는거지 교토퍼플상가 시절에는 그냥 팀 내에서만 유명했던 선수였다. 반면 홍명보는 J리그 자체에서 스타선수 대접을 받았고.
  9. 그런데 항목을 보면 전혀 농담으로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게 함정. 자세한 것은 노이어 항목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