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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될 당시의 메리 셀러스트 호를 묘사한 판화.
왼쪽에서부터 벤자민 스푸너 브리그즈 선장, 아내 사라, 딸 소피아
배 이름은 Mary Celeste[1]인데 80년대 서적에선 마리 세레스트[2]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나왔다. 지금도 메리 셀레스트, 메리 셀레스테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희대의 선박 유령선 미스테리 사건. 아직까지도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아 많은 창작물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1 사건의 전조
메리 셀러스트 호의 처음 이름은 '아마존 호'였으며, 군함이나 어선이 아니라 처음부터 무역선으로 건조된 범선이었다.
이 배는 1861년에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주의 스펜서 섬에서 조슈아 듀이스(Joshua Dewis)라는 사람에 의해 건조되었다. 첫 번째 선장 로버트 맥렌런은 소유주 중 한 명의 아들이었는데, 임명된 지 9일 만에 폐렴에 걸리고 처녀 항해에 나서자마자 죽었다. [* 배에 올라탔다 죽은 선장은 총 3명이나 된다. 다음 선장인 존 너팅 파커는 어선을 들이받았고, 수리를 위해 항구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수리 중 배 가운데에서 화재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유럽으로 가는 첫 대서양 횡단 항해 역시 재앙 그 자체였는데, 영국의 도버 해협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고 결국 새 선장은 해임되었다.
시작은 좀 불길했지만 이 배는 노바 스코샤의 소유주들 하에 6년간 이윤을 남기며 순탄한 항해를 한다. 이 동안 서인도 제도, 중앙 아메리카와 남 아메리카를 왕래하며 다양한 종류의 화물을 운반했다. 1867년 폭풍으로 배가 좌초되었고, 구조된 후에는 뉴욕의 리차드 하인즈에게 $1,750에 팔려 $8,825.03를 들여 수리 되었다.
1868년 미국 선박으로서 등록되고, 그 다음 해 '메리 셀러스트'로 개명되었다. 소유권을 가진 사람 중 한명은 J.H.윈체스터[3]였는데 배에 관련된 저주를 의식해서인지, 배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배의 밑 부분 일부가 썩어있는 걸 보고 뱃바닥 부분에 구리판을 깔고 갑판의 선실을 길게 하는 등 배를 튼튼하게 개조했다.[4]
이렇게 아마존 호는 메리 셀러스트 호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경험이 아주 풍부한 벤자민 브리그즈 선장을 메리 셀러스트 호의 선장으로 임명했다. 메리 셀러스트 호는 알코올 원액을 잔뜩 싣고 제노바까지 갈 계획이었다. 1872년 11월 7일 브리그즈 선장의 지휘 아래 메리 셀러스트 호는 뉴욕을 출항했다.
그러나 이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메리 셀러스트 호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의 궁금함과 두려움은 증폭되었다.
2 사건 발생
2.1 배의 발견
메리 셀러스트 호가 출항하고 한 달이 지난 1872년 12월 4일(몇몇 기록에서는 5일, 해양시로 따지면 4일과 동일) 대략 오후 1시경, 영국 디 그라티아 호의 조타수 존 존슨은 아조레스 제도와 포르투갈 사이의 북대서양에서 두 개의 마스트를 단 수상쩍은 범선 한 척을 발견한다. 디 그라티아 호의 위치는 대략 북위 38°20′, 서경 17°15′도, 포르투갈에서 100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그 배는 8km 정도 디 그라티아 호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배는 좌우로 약간씩 흔들리며 움직이고 있었고, 뱃머리의 삼각돛대와 앞 돛대의 스테이 세일만을 펼친 채 달리고 있었다. 배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보았어도 이상했을 것이다.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그 배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 배는 바로 메리 셀러스트 호였다. 참고로 디 그라티아 호의 데이비드 모어하우스 선장은 메리 셀러스트 호를 알고 있었는데 브리그즈 선장과 개인적으로 술자리도 가진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배보다 앞서서 출발했었기 때문에, 모어하우스 선장은 배가 어째서 아직까지 이탈리아에 도착하지 않았는지 의아해 했다.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366미터 정도까지 접근하여 두 시간 동안 배를 세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배는 항해 중이었지만 우현 방향으로 불안정하게 항해하고 있었고, 천천히 지브롤터 해협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조타석이나 갑판에 아무도 없었고, 선원들은 배가 표류 중이라고 결론지었다.
디 그라티아 호의 일등항해사 올리버 데보(Oliver Deveau)는 선원 몇몇을 이끌고 그 배에 올라탔다. 그는 배에 아무도 없으며, 배 전체가 완전히 젖어 엉망인 상태라고 보고 하였다. 갑판들 사이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화물칸에는 물이 1.1미터 높이로 차 있었다. 작동 가능한 물펌프가 하나 있었고 다른 두 개는 분해되어 있었다. 구명정 한 척이 사라져 있었으며, 선원들이 매우 급하게 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배는 가라앉고 있지 않았으며 항해가 가능한 상태였다.
2.2 의문점
배는 상당한 양의 물이 차 있었지만 여전히 항해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물펌프 세 대가 꺼내어져 있었는데, 두 개는 분해된 상태었고 하나는 발견된 순간까지도 작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선장의 항해일지를 제외하면 모든 서류가 사라져 있었고, 항해일지는 11월 25일까지만 기록되어 있었다. 배의 시계는 고장 나 있었고, 나침반은 부서져 있었으며 육분의와 크로노미터(정밀하게 시간을 측정하는 항해 도구)가 사라져 있었다. 배의 유일한 구명정(yawl, 작은 돛단배)도 사라져 있었다. 배의 주 돛을 올리고 내리는 밧줄(peak halyard[5])도 없었고, 밧줄 하나(앞서 말한 peak halyard 일지도)가 배에 아주 단단하게 묶여 있었는데, 밧줄 반대쪽은 물에 드리내려져 배 뒤쪽을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 끝이 매우 해져 있었다.
화물인 알코올 통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 중 아홉 통은 비어있었다. 그 아홉 통은 붉은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나머지는 흰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차이점이었다. 참고로 붉은 오크로 만든 통들은 투과성이 강하기에 알코울이 휘발하여 그 가스가 밖으로 나오기 쉽다.
선원들의 개인 용품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기에, 해적들의 노략의 가능성은 극히 작아 보였다. 어떠한 형태의 싸움이나 폭력의 흔적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어쨌든 메리 셀러스트 호는 11월 25일 이후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채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유령 같은 항해(라기보다는 표류)를 했던 것이다.
메리 셀러스트 호에는 브리그즈 선장과 7명의 선원 외에 브리그즈의 아내 사라와 2살 된 딸 소피아 마틸다도 타고 있었다. 모어하우스는 그들이 배를 포기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난감해졌다. 데보 일등 항해사는 디 그라티아 호에 두 선원을 파견하여 메리 셀러스트 호를 지브롤터로 인도할 것을 제안했다. 모어하우스는 기분이 나뻐서 그냥 가려고 했다. 하지만 데보가 조난당했어도 멀쩡한 배를 예인해오면 기본으로 5천 파운드라는 큰 돈을 보상금으로 받을 수도 있고 배를 그냥 놔두고 가면 더 비난받을 것이란 충고를 하여 내키지 않는 동의를 하게 되었다.
결국 두 척의 배는 6일 후에 지브롤터에 입항했다. 그러나 데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영국의 관료는 메리 셀러스트 호를 즉시 억류했다.
영국은 즉시 메리 셀러스트 호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2.3 진상조사
처음에는 선장과 선주가 배에 걸린 보험금을 노리고 한 자작극이라고 생각했다.[6] 그러나 그 자작극 혐의는 곧 풀렸다. 그렇게 자작극을 한다고 하더라도 배를 팔아서 오는 이득보다 더 돈을 못 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자작극이라도 그렇게 사람들이 귀신같이 없어질 수는 없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의 항구에 브리그즈 선장 일행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조사관 중 한 사람은 메리 셀러스트 호는 모어하우스 일행과 만나서 가볍게 술자리를 나누다가 싸움이 벌어져 살해당했으며 모어하우스 일행이 시체들을 바다에 처넣고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것으로 위장했다는 주장을 고집했다. 물론 모어하우스 일행은 분노했고 증거를 대보라고 반발했다. 그 어디에도 뒤엉켜 싸운 흔적이 없었거니와 모어하우스에 대한 수사에서도 돈이 그리 급하지도 않았으며 빚도 없던 게 드러났다. 결국 모어하우스 일행이 저지른 짓은 아니라고 결정났다. 하지만 모어하우스 일행을 범인으로 의심하던 조사관은 죽을때까지 그 의심을 버리지 않았기에 모어하우스 일행은 그 조사관을 죽도록 싫어했다고 한다.
그 다음은 다국적으로 이뤄진 선원들이 각자 국적에 따라 다툼이 벌어져 반란이 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선원 7명 중 독일인 4명, 덴마크인 1명, 미국인 2명으로 이뤄져 있었고 가장 수가 많은 독일인들이 의심받았지만 조사결과 선원들의 반란 가능성은 역시 없었다. 발견당시 도끼 자국과 더럽혀진 칼, 약간의 혈흔이 발견되었지만 혈흔은 정말 약간이라 반란이 있었다고 보기엔 힘든 수준이었고, 특히 내부가 매우 잘 정돈되어있어, 그 어떤 반란의 가능성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몇 달간의 수사 끝에 결론이 나왔다. 불명. 즉 "도저히 알 수 없음"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생긴 선상 불명 사고였다. 한편 선주 측은 보험사를 통하여 구조비로 5천 파운드를 모어하우스 선장 일행에게 지불했다.
3 사건 이후
그 이후 메리 셀러스트 호에 탔던 선장과 선원, 선장의 가족들은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J.H.윈체스터는 사건 이후 배를 처분할까 고민했는데 , 배가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아버지인 헨리 윈체스터 빈터즈가 미국 보스턴에서 익사 사고로 죽는 걸 보고 이 배를 처분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배를 엄청난 헐값에 넘긴다. 다음 13년 동안 17명의 선주가 거쳐갔고 그 때쯤 되어서는 배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메리 셀러스트 호의 마지막 선장이었던 길먼 C. 파커 선장은 이 배를 굴려서 도저히 이득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파커 선장은 이 저주받은 배를 보험 사기의 희생물로 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메리 셀레스트 호의 저주는 아직 계속되었으니… 파커 선장은 부츠나 고양이 사료 같은 잡동사니에 과도한 보험을 붙여 배에 가득 싣고 고의로 배를 암초에 부딪히게 만들지만 결국 침몰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애매하게 부서져서 항해만 곤란하게 되어버린 메리 셀러스트 호에 이번에는 불을 질러 보았지만 타고 남은 잔해마저도 꿋꿋하게 물에 떠 있었다.금강불괴? 잘 생각해보면 이 녀석 이전에도 유령선이 될지언정 침몰하지는 않았잖아, 안될거야, 아마…
결국 파커 선장은 있지도 않은 화물을 더 추가해서 터무니없는 보험을 신청했는데 그만 덜미가 잡혀버렸다. 망했어요. 파커는 $500에 인양권을 팔았고, 다른 여타 물건들과 함께 125통의 술, 957통의 청어, $1000 상당의 식기류가 적하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배와 적하는 다섯 보험 회사에 의해 총 $34,000 상당의 보험에 들어있었다. 당시 외양에서 선박을 고의로 침몰시키면 교수형이었고, 증거가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파커 선장의 재판은 제자리 걸음만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12명의 배심원단 중 5명은 사람을 사형대에 올려 죽이는 것을 머뭇거렸기 때문이었다. 사형이라는 중형 때문에 당시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배심원단이 유죄를 선언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선장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결국 3개월 후에 죽게 된다.
이후 메리 셀러스트 호는 도저히 수리할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고, 1923년 바다에서 스스로 침몰할 수 있도록 해안에서 떠내려 보냈다.
4 가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가설이 존재하며, 이 위키에 적힌 가설들은 그 일부다.
밧줄 하나가 단단하게 배에 묶여져 있었고 반대쪽 끝이 심하게 해진 상태로 물에 담긴 채 배에 끌려가고 있었으며 배의 유일한 구명배가 사라져 있었기 때문에, 선원들이 어떠한 응급사태를 맞아 밧줄로 선체에 묶은 구명 보트로 옮겨 타 피신을 했다가 밧줄이 끊어진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배가 최속력으로 항해한다면 그 힘에 의해 밧줄이 끊어지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가설은 2008년 한 TV 다큐멘터리의 조사에서 상세하게 다뤘다.
비어있는 9개의 드럼통과 관련된 또 다른 설명으로 화물인 알코올이 폭발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붉은 오크로 만든 드럼통은 흰 오크로 만든 드럼통보다 액체를 쉽게 머금고는 하는데, 메리 셀러스트에서는 알코올 원액을 머금어 버렸다는 것이다. 혹은 오크통에서 기화한 알코올이 점점 새어 나와 화물칸을 가득 채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나서 드럼통을 유지하는 철제 밴드가 서로 부딪히면서 마찰로 인한 순간적인 스파크를 만들어내어 이 알코올을 점화시키면서 시밤쾅! 했다는 논리[7]. 이 굉음을 듣고 브리그스 선장이 아, 배가 폭발하는구나!하고 사람들 대피시켰으나, 메리 셀러스트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떠나갔다는 슬픈 이야기. 나는 전설따윈 믿지 않아. 혹은 오크통에서 기화한 알코올이 점점 새어 나와 화물칸을 가득 채웠고, 화물칸을 열어본 선원들이 뿜어져 나오는 가스 연기와 스파크에 놀라 배가 곧 폭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구명배로 옮겨 탔다는 것이다.
2007년 스미소니언 TV 다큐멘터리에서 설명한 '시기상조 배 포기론'도 있다. 심한 푹풍우를 만나 배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고 물펌프 3개를 돌려 물을 빼기 시작했는데, 그 중 두 개의 물펌프가 이물질[8]에 막혀 고장이 난다. 이렇게 하면 물펌프 2개가 분해되어 있었던 점을 설명할 수 있다. 물펌프가 하나만 동작하고 있었기에 육안으로는 선체에 물이 얼마나 들어차 있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고, 결국 배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구명배에 옮겨타 산타 마리아 섬을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구명배가 가라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선장의 크로노미터(시간을 측정하는 정밀 항해 도구)가 늦게 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실제 위치에서 보다 훨씬 동쪽에 배가 있다고 오판을 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는 마지막 5일의 선장의 일지에 따른 배의 이동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사고설도 있는데, 메리 셀러스트 호 선장의 딸은 돌고래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메리 셀러스트 호에도 선장의 딸이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 또다른 갑판을 배의 외곽에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가설로 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위에서 돌고래를 구경하다가 갑판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서지면서 전부 사망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도 구멍이 있는게 아무리 돌고래가 신기하다고 배의 모든 인원이 갑판에서 구경을 할만큼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반론이다. 실제로 항해 중에는 최소 배를 항해할 항해사나 선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기본상식이라고 한다.
또 다른 가설로 자메이카에서 1916년 어느 선원이 목격한 일화인데 자신이 메리 셀러스트 호의 선원이란 노인을 어느 술집에서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메리 셀러스트 호는 항해하던 어느 날 표류하던 어느 배를 발견했는데 그 배에 있던 사람들은 병으로 다 죽어있었고 배 안에는 금괴가 가득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다들 그 금괴를 나눠갖고자 메리 셀러스트 호에서 내렸고, 그 배를 타고 가고자 메리 셀러스트의 화물인 알콜을 뜯어 소독했다는 것이었다. 실제 메리 셀레스트 호의 화물인 알콜중 9통은 뜯겨져서 내용물이 비어있었다. 하지만 금괴가 가득 실린 배에 소독만 하고 먹을 것이나 물은 죄다 놔두고 갔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는데 그 노인은 그 배에 먹을 게 통조림으로 있었고 물도 밀봉되어서 한동안 견딜 수 있었기에 차라리 메리 셀러스트를 포기하고 다 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던 선원은 웃으며 그럼 40년 넘게 당신은 뭘했냐고 하자 알 것 없다며 그냥 나갔고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밖에 1953년 북중미 어느 무인도에서 표류하던 프랑스 국적 선원들이 섬에서 해골을 발견했는데 해골의 헐거워진 옷에 꽂힌 이름표에 '벤자민 브리그즈'라는 이름이 쓰여서 또 화제가 된 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진짜인지는 누구도 확증할 수 없었고 진짜라고 해도 그 벤자민 브리그즈인지 알 수 없다.
식량으로 실었던 빵에 핀 곰팡이가 승객들의 환각을 유발시켰다는 설, 해적들, 특히 바르바리 해적들이 그들을 습격했다는 설[9]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UFO의 외계인에 의해서 납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먹을 것이나 물을 죄다 두고 사라졌다는 점에서 외계인이 납치한게 아니냐는 것이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SF소설에 불과한 이야기다.
5 관련 작품
코난 도일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을 쓴 바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나온 설정들을 진짜 사건에도 있었던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항해일지에 마지막으로 "아내 써니가…"라고 적혀있다든지, 주방에는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세면실에는 면도한 수염이 붙어있던 면도칼이 그대로 있다든지.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 소설 속의 허구들로 실제 사건에서는 전혀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참고로 90년대에 국내에서 책으로 나온 세계 괴기실화 모음집에서는 이러한 일이 이 실화랑 섞여서 소개한 바 있다.
1978년에 만들어진 영국 괴수영화 워로즈 오브 아틀란티스[10]에선 1890년대가 배경으로 나오는데 메리 셀러스트 호 승무원들이 바다 밑에 있는 아틀란티스 제국에 납치되어 노예로 일하는게 나온다.
영국의 유명 SF 드라마인 닥터후에서 1965년 6월 5일 방영된 "Flight Through Eternity"에서는 닥터 일행을 쫓아온 달렉들을 본 선원들이 겁을 먹고 바다로 뛰어든 것으로 나온다.
소년탐정 김전일 소설판 2권인 유령선 살인사건이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을 배경에 깔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6 서프라이즈 방영
2012년 12월 23일 방영분에도 관련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여기선 '보험사기'와 위의 '가설'들을 싸그리 씹어드시고 억울하게 죽은 흑인 노예의 '저주'가저주할테다 이 배에 저주를 걸어 사고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서 코난 도일이 '콘힐'이라는 잡지에 '제이 하버쿡 젭슨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메리 셀러스트호의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했을때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사실로 믿어 백인을 증오하던 흑인이 배를 탈취한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는 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프라이즈는 2002년 9월 15일 역시 관련 에피소드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방영한 내용의 위의 내용과 완전히 다른데 당시 방영내용은 메리 셀러스트 호에는 한 사람이 더 타고 있었다고 한다. 위의 사고설을 어느정도 차용하고 있는데 조금 다르게 나왔다. 당시 방영내용은 역시 딸을 위해 전용 갑판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선원 두명이 수영 시합을 벌이는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상어떼가 나타났고 당황한 사람들이 갑판에 모였다가 부서져 떨어져서 상어밥이 되었다고 한다. 그 한 사람이 살아남아 죽기 전에 그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11]
서프라이즈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같은 사안인데도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원래 이런 것으로 유명하니 과신은 말자.- ↑ 건조 당시에는 아마존호라 불렸다.
- ↑ 일본식 발음이다.
- ↑ 오늘날에도 뉴욕에서 해운업을 하고 있는 회사의 창업주다.
- ↑ 2개의 마스트와 길이 103피트, 폭 25피트, 288톤급에 다다르는 대형 선박이 되었다.
- ↑ http://en.wikipedia.org/wiki/Peak_halyard
- ↑ 모어하우스 선장과 브리그즈 선장은 서로 친한 사이였고 출항 전날 뉴욕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었다.
- ↑ 실험에 의하면 에탄올은 워낙 낮은 온도에서도 불이 붙기 때문에 드럼통을 전혀 그슬리지 않고도 폭발할 수 있다고 한다(Wiese, 2005). 영문위키 참조: #.
- ↑ 이전 화물에서 흘려져 나와있던 연탄 가루나 공사 후 남은 나무 조각 등. 바로 이전에 연탄을 싣고 있었고 최근에 배를 완전히 뜯어고친 적이 있었다.
- ↑ 그러나 바르바리 해적 자체는 19세기 초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대대적인 공세와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인데다가 위에서 설명한것처럼 선박 상태가 상당히 깨끗한 편이라 신빙성은 낮다.
- ↑ 한국에서는 환상의 섬 아트란티스이란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다. 배우들 연기나 줄거린 허접하지만 수공업으로 만든 괴수들이 상당하며 무엇보다 괴수들이 여러 종류로 많이 나오기에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는 명작으로 호평받는 작품이다.
- ↑ 이 설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세계상식백과라는 책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 책에서는 이 설이 아벨 포스디크라는 알려지지 않은 생존자의 증언이라고 한다. 이 설은 책에 따르면 1913년에 런던에서 제기되었다고 한다. 앞에 나온 또 다른 생존자의 증언이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다만 책에서는 증언에 오류가 있음을 들며 신빙성이 낮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