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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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慶새재(鳥嶺)

충청북도 괴산군경상북도 문경시 사이에 있는 고개로, 백두대간(중 소백산맥)에 있는 1017m 높이의 조령산을 넘는 것이 고비이다. 새재조령(鳥嶺)을 우리말로 읽은 것으로, 나는 도 넘기 힘든 고개란 의미이다.[1] 지금도 충북과 경북의 도계이기도 하다. 현재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험준함은 예로부터 유명해서 삼국시대 때는 신라 초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국경선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파견 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문경새재의 지형을 보고 "이 험준한 고개를 지킬 생각을 못하다니 신 총병도 참 지략 없는 사람이다."하고 신립을 비웃었다고 한다.신립이 충주 탄금대가 아닌 이곳에서 결진하여 매복했다면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더 효과적으로 막았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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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동래를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중추로 추풍령(좌로), 죽령(우로)과 함께 낙동강 유역(영남)과 한강 유역(기호)를 잇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그야말로 사랑해 마지않았는데,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데 반해,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듣고(聞慶) 처럼 비상하리라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 후삼국시대 견훤왕건의 격돌이 있었던 격전지 가운데 하나이며(929년 가은성 공방)[2], 상기했듯 임진왜란에서는 신립이 여기를 내줬다가 충주 탄금대에서 대패하기도 했다. 지금도 복원이 잘 되어있어 괜찮은 트레킹 코스로 3개 관문(주흘, 조곡, 조령관)이 있다.

옛날에 세워진 산불조심 표석이 이곳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산불심'이라고 적혀 있다. 이 표석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늦어도 대략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세기 이후 '디, 티'가 구개음화로 인하여 '지, 치'로 바뀌어 갔기 때문. 따라서 이 표석은 '산불심'이라고 쓰고 '산불심'이라고 읽는다. 산불은...됴심해야디

오늘날 충주와 문경간의 교통은 이화령을 지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로 접근할 수 있으며, 3번 국도34번 국도가 지나가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화령을 넘어간다. 향후 중부내륙선 또한 여기로 넘어갈 예정.

덜 유명한 죽령추풍령보다 훨씬 후에 서술되었다(...) 근대에 오면서 지나치게 높은 고도와 기울기 때문에 중요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경새재의 인지도가 워낙에 높은지라 이화령을 지나는 도로에도 문경새재 이름을 붙이고 있다. 과거 매우 붐볐으나 이제는 한산한 자전거 도로이자 트레커들의 코스가 된 3번 국도(신작로)의 이화령 고갯길이 새재 자전거길로 불리며, 중부내륙고속도로의 터널도 이화령을 지나는데 문경새재 터널로 이름지어졌고, 근처에 있는 나들목의 이름 역시 문경새재 나들목이다.

3관문에서 수안보와 충주로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고, 막차가 17:10에 있는데 실제로는 5분 일찍 도착하여 출발하므로 막차 시간에 주의를 요구한다. 그 외 소조령(확장되기 전 2차선 3번 국도)까지 나가면 '신혜원'이라는 정류장이 있는데 여기서 괴산에서 수안보를 오가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

태조 왕건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했는데 CG없이 화공을 동반한 공성전 촬영을 했다가 문화재 훼손크리를 맞기도 했다(...). 이후에도 주된 사극촬영지로 유명하며, 1관문 부근에 사극에 사용된 세트장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세트장 입장료는 2000원. 태조왕건 세트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에 촬영된 사극에 밀려 현재 태조왕건에 사용된 세트장은 그다지 많지 않다.
육룡이 나르샤의 촬영지이기도하다.
촬영장 안에 들어가도 뭐라고 안한다?

듀스 출신의 가수 故 김성재의 화장된 유해가 이곳에 뿌려졌다. 생전에 꼭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 바로 이 문경새재였다고 한다.
  1. '새재'나 '조령'으로 검색해도 모두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2. 흥미롭게도 상주출신이란 견훤은 정확히는 문경새재 출신이 된다. 물론 상주나 문경이나 거기가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