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이, 나는 가수다
미라이 에일린 나가스(Mirai Aileen Nagasu). 일본식 이름은 나가스 미라이(長洲未来). 1993년 4월 16일~
1 소개
일본계 미국인 피겨 스케이터. 1993년 4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이름인 '미라이'는 한자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일본어로 미래를 의미한다.
Foothills 중학교와 Arcadia 고등학교를 거쳐 캘리포니아 대학교/어바인 캠퍼스에 진학했다.
주니어 시절 푸시는 부질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선수, 재능에 멘탈이 뒷받침되지 못할 때 어떻게 좋은 싹이 썩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수이다. 피겨 스케이팅 세계의 역변의 아이콘
2 국적 문제
부모가 일본인[1]이기 때문에, 미라이는 속인주의에 따라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속지주의에 따라 미국 국적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미라이는 이중국적이었다. 일본은 이중국적을 금지하고, 출생에 의한 이중국적은 만 22세 생일 전까지 국적을 선택해야 하므로, 미라이는 미국 국적을 선택했다.
기모노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영화 게이샤의 추억 OST에 맞추어 경기하는 미라이.
미라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간 경기 때마다 미국 선수로 나왔다. 하지만 집에서 가족과 대화할 때는 일본어를 사용하고,[2] 일본 요리를 먹으며, 일본 문화에도 흥미를 보이며, 벚꽃 무늬나 기모노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영화 게이샤의 추억 OST에 맞추어 경기하는 등, 일본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다. 2011 4대륙 대회에서는 미라이가 '일본 대표'로 소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미라이가 피겨 스케이터로 두각을 나타내자 일본 언론도 미라이에게 주목하여, 일본에서도 많은 유명세를 떨쳤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전에는 일본 기업 파나소닉과 후원 계약을 맺기도 했다.
3 가족
미라이의 부모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무남독녀 미라이를 낳았고, LA에서 '키요스즈'라는 이름의 초밥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나가수 롤'이라는 메뉴를 판매하기도 했다. 어머니 나가스 이쿠코(長洲育子)[3]는 2009년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은 바 있어, 미라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4 주니어 시절
2007년, 주니어 시절의 영상.
5세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원래 골프를 배우고 있었으나, 어느 날 날씨가 나빠 골프 대신 아이스 링크를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게 되었다고.
의외로 노비스 시절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유망주 3인으로 꼽혔던 캐롤라인 장(중국계 미국인), 레이첼 플랫, 미라이 나가수는 모두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셋은 어릴 때부터 미국 내셔널 지역 예선에서 경쟁했다. 이미 장과 플랫은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다.
노비스 시절, 나가수가 지역 예선에서 광탈하는 동안, 동갑내기이자 같은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던 캐롤라인 장은 이미 미국 내셔널 노비스 부문에서 4위를 거두었다. 플랫은 이 시즌 미국 내셔널 노비스 부문 챔피언이었다.
1993년생 동갑이었던 장과 나가수와 1992년 7월생이었던 플랫은, 모두 같은 시즌에 주니어 국제무대에 데뷔하게 되었다.[4] 노비스 시절 나가수는 지역 예선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고 장 및 플랫과는 비교도 안 되었던 무명 선수였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이 평가는 역전된다.
주니어 시절의 미라이.
주니어 1년차였던 2006-2007 시즌에는 지역 예선을 모두 1위로 통과하더니, 급기야 캐롤라인 장을 밀어내고 미국 내셔널 주니어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된다. 나가수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가 이 시기부터였다. 그러나 국제 대회 성적은 장이 월등했는데, 이 시즌 장은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를 모두 1위로 제패했다. 2007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미국 대표였던 3인방 애슐리 와그너, 캐롤라인 장, 미라이 나가수가 모두 금은동을 차지했다. 그러나 주니어 월드 챔피언의 자리는 결국 장이 차지했고, 나가수는 은메달이었다. 내셔널에서는 유독 강한데, 국제 무대에서는 약한 나가수의 모습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주니어 2년차였던 2007-2008 시즌, 미라이는 참가했던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들을 모두 1위로 제패하고 주니어 그랑프리 챔피언까지 해먹는 등 캐롤라인 장[5]이 없는 주니어 시즌을 레이첼 플랫과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미라이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쇼트 프로그램 70점을 넘기며 만 14세의 나이로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작년 주니어 내셔널 챔피언이 이듬해 시니어 내셔널 챔피언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미국 선수권 역사상 2번째였다. 이 대회에서 플랫은 2위, 와그너는 3위, 장이 4위였다.
그러나 미국 내셔널 챔피언의 자격을 가지고 출전한 2008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플랫이 1위를 차지, 전년도 주니어 월드 챔피언이었던 장은 2위였고, 나가수는 3위였다. 특히 나가수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높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프리 스케이팅에서 주저앉으며 3위에 그쳤다. 이틀 연속[6]으로 잘 하는 법이 없는 나가수의 이런 모습은 시니어에 진출해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프리 노비스 시절과 노비스 시절은 무명이었지만, 나가수의 주니어 시절은 화려했다. 와그너, 플랫, 장, 나가수로 이어지는 미국의 주니어들은 2006~2008년까지 두 시즌 동안 주니어 국제대회 시상대를 점령했다. 이 4명 중 나가수는 멘탈은 제외하고 재능만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미국 팬들은, 이들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피겨 스케이팅 무대를 이끌 것이고 다시 미국에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를 부흥시키리라 기대했다.
주니어 시절의 푸시는 부질없다는 불변의 진리만 아니었다면.[7]
5 2009-2010 시즌
2009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2년 동안의 주니어 시절을 화려하게 마무리짓고, 시니어로 데뷔한 2008-2009 시즌에 나가수는 체형 변화로 영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다. 캐롤라인 장도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긴 하지만 4대륙 선수권에서 4위를 하며 시즌을 마무리했고, 레이첼 플랫은 훨씬 나아서 세계선수권에서 5위에 올랐다.
그렇게 맞은 시니어 2년차 올림픽 시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가수는 2번의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반면 애슐리 와그너는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진출해 4위에 올랐다. 플랫도 그랑프리 미국 대회에서 2위라는 성적까지 거두었다. 미국에는 여자 싱글에 올림픽 출전권이 2장 있었고, 내셔널 결과에 따라 올림픽 출전 선수가 결정되었다.
2010 미국 내셔널에서
2010 미국 선수권은 수많은 화젯거리를 낳았는데, 애슐리 와그너가 한국 한정 별명인 야망녀의 칭호를 얻은 것이 이 대회였고, 사샤 코헨의 올림픽 복귀는 물 건너갔다(…). 나가수는 플랫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유독 내셔널에 강한 자신의 면모를 과시하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그러나 미국 선수권 직후 플랫과 함께 참가한 기자회견에서, 나가수는 방정맞은 언행과 주옥 같은 인터뷰들로 도마에 올랐다. 국내 언론에야 "We're just going to blow them away!!"라는 발언과 김연아의 세레머니를 따라한 허세 가득한 "bang!! bang!! bang!!"탕탕탕빵만 소개되었지만, 당시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 나가수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뒤집어지는 기자들을 볼 수 있다(…). 덕분에 피겨 스케이팅 전문 기자인 필립 허시(Philip Hersh)로부터 한 소리를 듣고, 국내 누리꾼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피겨 스케이팅은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답게 문화 자체가 보수적이고, 특히 미국에서는 텐리 올브라이트[8]부터 미셸 콴까지 이어지는, 챔피언이라면 가져야 할 일종의 이미지가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나가수가 언행으로 비판을 받은 것이 이 때문이었고, 이는 나가수의 멘탈 문제와 연결되어 직후의 선수 생활 동안 두고두고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올림픽에는 레이첼 플랫과 함께 출전, 훌륭한 경기를 펼치며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쇼트 프로그램 당시에는 스핀을 너무 빨리 돌아서 코피를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결국 밴쿠버 올림픽에서 단 1명의 여자 선수도 입상권에 들지 못하면서, 미국은 46년만에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메달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그래도 남자 싱글 금메달은 건졌다
밴쿠버 직후 열린 2010 세계선수권 대회는 나가수의 첫 세계선수권 데뷔였다. 첫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여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날의 프리 스케이팅에서 제대로 말아먹으며 11위를 차지, 종합 7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그럼에도 나가수는 밴쿠버 이후 활약할 세대로 평가되었기에, 충분히 미국인들이 기대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이때까지가 미라이 나가수의 선수 생활 전성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체형 변화도 덜 끝났다는 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6 언행 및 코치와의 문제
샌디 걸리휴(Sandy Gollihugh)와 샬린 웡(Charlene Wong)을 거쳐, 2009년 여름부터 프랭크 캐롤(Frank Carroll)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을 비롯한 수많은 피겨 스케이터를 양성해 낸 코치이다. 현재는 그레이시 골드의 코치이기도 하다.</ref>로부터 지도받았다. 하지만 2012년 미라이와 프랭크는 결별했고, 미라이는 임시로 몇몇 코치들의 지도를 받으며 혼자 훈련하여 2012 미국 내셔널에 나갔지만 성적은 부진했다.
표면적인 결별 이유는 거리상의 문제였다. 나이가 많은 프랭크는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훈련지를 옮겼고, 그 때문에 미라이는 오랜 시간 장거리를 운전하며 훈련을 받으러 가야 했다. 가까운 곳에 방을 얻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겠지만, 부모가 운영하는 초밥 가게의 매출도 그리 시원치 않고 마땅한 후원자도 없는 등,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미라이가 사춘기를 한창 겪으면서 프랭크를 많이 힘들게 하고 있었다고도. 미라이와 프랭크의 사이는 그리 돈독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거리상의 문제'라는 사소한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전에도 미라이의 "We're just going to blow them away!!"라는 언행이 문제가 된 바 있었지만, 문제가 된 것은 그때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함께 올림픽에 나갔던 레이첼 플랫과 비교되었는데, 학자 집안의 딸인 레이첼이 품위 있는 말씨를 사용한 반면 미라이는 별로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7 2014 소치 동계올림픽
2014 미국 내셔널 결과, 미라이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에 주어진 올림픽 출전권은 총 3장인데, 3위로 입상한 미라이 대신 4위인 애슐리 와그너가 소치에 가게 된 것. 4년 전의 내셔널과 비교해 보면, 두 사람의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9] 미라이 나가수의 '애증의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3위인 미라이 대신에 4위인 와그너가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것 때문에, 일부 미국 피겨 스케이팅 팬들 사이에서는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미국빙상연맹은 '미라이의 대표팀 탈락은 인종차별과는 관계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애초에 최근 4년 동안과 이번 시즌 국제 대회 성적만 놓고 보더라도, 와그너의 올림픽 출전이 당연한 처사였다.
8 소치 올림픽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2014 스케이트 아메리카에 출전했다. 경기 중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점프에서 언더(회전부족) 판정을 받으면서 종합 6위에 머물렀다.
9 이야깃거리
한국 피겨 스케이팅 팬들 사이에서는 역변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라이의 리즈시절이었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나이가 만 16세였고 시니어 2년차였던지라, 대부분이 그때 그녀의 체형 변화가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산이었고(…), 나가수의 멘탈 문제와 성적이 추락하면서 체구도 급속도로 육중해졌다. 현재 위키백과 프로필 키는 163cm로 표기하고 있지만 비공식적 키는 167cm[10]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키가 문제되는 건 아니지만[11], 나가수의 경우 골격이 거대해지고 살까지 불었다. 당연하지만 점프 높이는 더 낮아졌으며, 주니어 때 간간이 뛰던 트리플-트리플 점프를 더 이상 못 뛰게 되었다.
주니어 시절이 평생 가는 줄 알았던 한국 피겨 스케이팅 팬들은, 미국산 유망주들의 몰락을 보면서 설레발을 자제하게 되었더라 카더라
기술적으로는 이나바우어에서 트리플 살코를 연결할 수 있으며[12], 시니어 2년 차에는 김연아의 전매 특허 기술인 이나바우어 + 더블 악셀 기술을 구사했다. 김연아의 이나바우어 + 2A과 다른 점은, 김연아의 경우 레이백 이나바우어 후 상체를 세우고 발은 이나바우어인 상태에서 그대로 더블 악셀로 도입하는 반면, 나가수의 경우에는 레이백 이나바우어 후 상체를 세우고 발을 한번 턴 다음 더블 악셀로 도입한다는 것이다. 포스가 원조만 못하다
비거리가 좋은데 점프 회전 수를 못 채우는(…) 매우 드문 선수이다. 도입 시 회전 각이 좋지 않은 것이 그 이유. 대부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만 해도 이를 선수의 나쁜 습관으로 생각하고 금방 고칠 줄 알았으나, 이 회전 수 부족이 계속되었다.
레이백 스핀과 비엘만 스핀의 평가가 아주 좋으며, 특히 레이백 스핀의 경우에는 규정이 바뀌기 전 캐롤라인 장의 레이백 스핀 + 펄 스핀 + 비엘만 스핀 조합과 함께, 레벨4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갔다. 그러나 체형 변화를 거친 현재에는 체구가 육중하고 유연성이 떨어지고 회전 속도도 많이 떨어져서, 예전만한 포스는 없다.- ↑ 미국 영주권자이며, 미국 시민권은 없다고 한다.
- ↑ 다만 읽고 쓰는 것, 특히 한자에는 서툴다고 한다.
- ↑ 본인 못지않게 어머니도 열성적으로 훈련을 뒷받침했다고 한다. 미라이의 고백에 따르면, 어머니가 매를 들기도 하셨으며 뺨을 때린 적도 있다고.
- ↑ 피겨 스케이팅은 매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시즌을 구분한다.
- ↑ 전년도 주니어 월드챔피언 자격으로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 중이었다.
- ↑ 쇼트 프로그램, 프리 스케이팅
- ↑ 피겨 스케이팅에서, 특히 여자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의 모습이 시니어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체형 변화가 잘못 오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어도 못 한다.
- ↑ 미국 최초의 여자 싱글 부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956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 ↑ 미국의 국가대표 선수 선발은 내셔널 성적뿐만 아니라, 최근 국제대회에서의 성적도 고려하여 이루어진다(단, 내셔널 1위는 무조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애슐리 와그너는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5위에 올라 출전한 미국 선수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으며, 2013~2014 시즌의 트로피 에릭 봉파르와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고,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때문에 미국빙상연맹의 입장에서는 애슐리를 내치기 곤란했을 것이다.
- ↑ 캐롤라인 장의 키가 현재 165cm인데, 공식 사진에서는 나가수가 그보다 훨씬 크다.
- ↑ 대부분의 인식과 달리, 피겨 스케이팅에서 작은 키는 오히려 불리하다. 여자 싱글 선수의 경우 165cm 전후를 가장 이상적인 키로 여기고, 170cm만 넘지 않는다면 장신일 경우에 장점이 더 많다.
- ↑ 주니어 1년차 때 미국 내셔널에서 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