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뷔르템베르크

독일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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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뷔르템베르크바이에른작센
자를란트
독일의 도시주
베를린브레멘함부르크
사라진 주
쥐트바덴서베를린뷔르템베르크-바덴
뷔트템베르크-호헨촐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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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州旗)주장(州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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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위치
국가독일
시간대(UTC+1/+2)
주도(州都)슈투트가르트

1 개요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주(州, state[1]).

2 역사

오래전 이 곳은 켈트족, 갈리아족게르만족 연맹체인 알레만니 부족들이 살던 곳으로, 지금도 이 주의 서남쪽 프랑스와의 국경지대는 알레만 지방이라 부른다. 프랑스어로 독일을 뜻하는 Allemagne은 여기서 유례한 것. 이 곳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부터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까지 진행된 정복 사업으로 로마의 지배권으로 들어오게 된다.[2][3]

프랑크왕국이 들어서 이 지역을 점령한 후 496년 슈바벤 공작령이 설치된다. 슈바벤은 동프랑크, 독일의 5대 공작령(작센, 프랑켄, 바이에른, 로트링겐) 중 하나로 유례가 매우 깊은 곳이다. 962년 신성로마제국이 성립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신성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다. 당시엔 호엔슈타펜 가문이 다스렸는데 이 가문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들도 여럿 배출되었다. 지금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문장도 이 가문의 문장을 그대로 따온 것. 하지만 1268년 슈바벤 공작위의 명맥이 끊기게 된다. 1273년 황제가 된 루돌프 2세는 슈바벤 공작령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공작령 영토 전체를 황제의 직할령으로 두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뷔르템베르크 백작령, 바덴 변경백, 스위스 연맹, 브루군디 공작령, 촐레른 백작령, 퓌르스텐베르크 백작령으로 조각난다. 특히 저 브루군디 공작령 때문에 훗날 프랑스와 피터지는 영토 분쟁이 생기게 된다. 알자스라던가 알자스라던가 알자스라던가

뷔르템베르크 백작령과 바덴 변경백은 슈바벤 공작령의 제후령으로서 각각 1083년과 1112년에 설치되었다.

뷔르템베르크 백작령은 슈바벤 공작령이 사라진 후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가며 1495년 공작위로 승격된다. 뷔르템베르크 가문 공작들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영지를 넓혀갔고 30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1803년 나폴레옹의 입맛에 의해 선제후가 되고 1806년엔 뷔르템베르크 왕국이 성립된다. 이 왕국은 1871년에 독일 제국에 합류하나, 역시 1차 대전의 패전 이후 몰락하게 되며 뷔르템베르크에는 자유 주가 성립된다.

바덴 변경백은 체링엔 가문으로 상속되며 프랑스 알자스 지방와의 국경지대로, 바덴-바덴과 칼스루헤를 중심으로 성장해나갔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호헨슈타우펜 가문에 충성하던 영주다. 이 지역에도 오스트리아나 바이에른 령 영토와 함께 군소 영주령들이 난립했던 곳이고 바덴 지역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1803년 바덴이 선제후가 되고 1806년 대공국으로 승격된 이후이다. 그 후 약 100여년의 시간 동안 독일 제국 안의 자치국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던 바덴 대공국은 1차 대전 패전 이후 붕괴되었지만 그 명맥은 이어져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독일 시기 내내 바덴은 연방주(Land)의 하나가 된다.

촐레른 백작령은 호헨촐레른 가문의 발상지로, 뷔르템베르크 공작령 남쪽에서 스위스 국경 일대이며, 결과적으로 뷔르템베르크 공작령의 영토가 되었고, 바덴 공작령 남쪽 스위스 국경의 퓌르스텐베르크 백작령도 바덴 변경백령에 흡수되었다.

2차 대전 패배 이후 이 지역은 미국과 프랑스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는데 하나의 주를 각각 한 나라가 점령한 것이 아니라, 뷔르템베르크와 바덴의 북부 지방은 미국이 점령하였으며 남부 지방은 프랑스가 점령하면서 4개의 점령구가 생기게 된다.[4] 이 점령구들이 세 개의 주[5]를 구성했고, 이것이 1952년 하나로 합쳐져 오늘날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6]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만큼은 이 통합에 거세게 반발하여 이 통합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물론 기각.</ref> 물론 오스트리아 땅이였던 곳 일부, 프랑켄 지역이였던 것 일부, 팔츠 영토였던 곳들도 일부씩 조금씩 조금씩 함께 합병했다. 어짜피 안그랬다면 월경지가 너무 많아졌을 것이고..

3 지리

서북쪽엔 라인란트-팔츠 주, 서쪽엔 프랑스, 남쪽엔 스위스,[7] 동쪽엔 바이에른 주, 북쪽엔 헤센 주에 접해 있다.

주도는 슈투트가르트이며 그 외에 카를스루에, 바덴 바덴, 프라이부르크, 만하임 등의 도시가 유명하다.[8] 유명한 모터 스포츠 서킷호켄하임링도 이 주에 있다. 스위스 바젤 시내의 바젤 바디셔 역의 승강장과 대합실 일부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치외법권 지대다.[9] 주의 한 가운데를 넥카르 강이 지나가며, 도나우 강의 발원지가 이곳에 있다. 또한 삼림지 슈바르츠발트가 유명하고 교육쪽에선 세공, 운송기기 디자인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학인 포르츠하임 대학교는 주 내의 포르츠하임 소속 대학교.

4 정치

독일의 다른 연방주가 1인 2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에 비해 바덴-뷔르템베르크는 1인1투표제를 실시한다. 다시 말해 지역구 후보에게 주는 표를 합산하여 정당 의석 배분의 기준으로 삼는다.[10]

오랫동안 기독교민주연합의 아성[11]과도 같은 곳으로, 2016년까지 기독교민주연합이 원내 제1당을 유지하고 있었다. 2011년 선거에서 기민당이 녹색당-사민당에 패배하면서 최초의 녹색당 주총리가 들어서더니, 2016년 선거에서 녹색당에게 1당 자리를 내주었다.[12] 녹색당은 1979년 바덴-뷔르템부르크의 슈투트가르트에서 발기식을 가졌으니, 여기가 안방이나 마찬가지다.

4.1 통합 이전

뷔르템베르크-바덴 주에서는 미군정 시기이던 1945년에 중도보수인 자유민주당 소속 라인홀트 마이어(Reinhold Maier)를 총리로, 기독교민주연합, 사회민주당, 공산당이 모두 참여하는 거국내각를 구성했고, 1946년 선거 후에도[13] 자유민주당 소속 총리와 거국내각은 유지하였다. 1950년 선거에서 제1당은 사회민주당이었지만,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총리는 라인홀트 마이어가 계속 맡았다.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주는 프랑스 군정 시기이던 1946년에 사회민주당 소속 인물을 총리로 기독교민주연합,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했고, 1947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했음에도 총리가 기독교민주연합 소속 인물로 바뀌었을 뿐 기독교민주연합-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의 연립내각은 유지했다. 공산당은 연립내각에서 계속 배제되었다.

(남부)바덴 주는 프랑스 군정 시기이던 1946년에 기독교민주연합 소속 인물을 총리로 기독교민주연합,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공산당이 모두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했다. 1947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이 단독 과반수가 되었으나, 초창기에는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했다가 후기에 기독교민주연합 단독 내각으로 전환했다.

4.2 통합 이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성립한 1952년 선거에서 제1당은 기독교민주연합이었지만, 제2당인 사회민주당이 뷔르템베르크-바덴 주의 총리이던 라인홀트 마이어를 총리로 자유민주당 -사회민주당-전후이주자연합[14]의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1956년부터 2010년까지는 줄곧 기독교민주연합이 주도하여 내각을 구성하면서 이따금 기독교민주연합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 할 때마다 자유민주당이나 사회민주당이 참여하는 형태를 유지하였다.

2011년 지방선거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맞물려 대중의 지지를 크게 받은 녹색당[15]이 전체 의석 138개 중 36석을 획득, 35석을 얻은 사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녹색당 최초로 주 총리를 배출한다. 제1당은 여전히 기독교민주연합(138석 중 60석)이었지만, 자유민주당 의석이 7석에 불과하여 정권을 잡지 못 했다.

2016년 주선거에서는 아예 녹색당이 1당으로 승리했다. 다만 사민당 의석수가 모자라 기민당과 연정을 하게 되었다.

5 사회

5.1 경제

지하자원은 전무하다시피한 편이지만 독일 내에서도 바이에른과 더불어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유명한데,[16] 포르쉐, 자이스, 메르세데스-벤츠, ZF 등의 기업이 이 곳을 연고지로 두고 있다. 다만 대기업보다 제조업 위주의 중소기업이 이 지역의 경제를 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도시 지역은 엄청난 공업화가 이루어진 데 반하여 시골 지역은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 관광업으로도 꽤나 짭짤하게 소득을 올리고 있는 편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는 또한 금융업이 발달로 유명한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처럼 대기업 위주의 금융업보다는 지역, 협회 위주의 금융업이 굉장히 활성화되어있으며, 이 지역 경제를 튼튼히 지탱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이다. 독일의 다른 지역에 살다가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에만 가면 독일의 다른 곳에선 못보던 난생처음 보는 은행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모두 지역 은행들. 보험, 연금 등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다. 독일에서 바덴-뷔르템베르크 사람들은 구두쇠라는 편견이 있다.[17] 이게 되려 금융 분야에 있어서 메리트가 되어서 아예 독일내 다른 지역에 광고를 할 때 바덴-뷔르템부르크 출신임을 강조하는 곳도 있을 정도.

5.2 인구

2014년 기준으로 인구수는 약 천 50만 명 가량이며 여자가 남성보다 약 20만 명 가량 많은 여초 주이다. 출산률과 사망률이 거의 똑같으며[18] 현재 노인층의 인구 비율이 거의 20%에 육박하는 초고령 인구구조여서, 외부에서의 유입이 없다면 조만간 인구가 매섭게 줄어들 듯 하다. 그래서인지 적극적으로 이민을 유치하고 있는 듯 싶다. 인구수의 10%인 100만 가량이 외국인이며 나머지 90%의 독일인 중 30% 가량도 외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5.3 종교

전통적으로 주 내의 북부지방은 루터교 계열의 개신교가, 남부지방은 가톨릭이 우세한데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가톨릭이 살짝 더 많다.[19]. 또한 이민자가 많은 주 특성상 무슬림도 5.6% 가량된다.
  1. 독일어로는 Land이다.
  2. 현재 독일의 영토 중 대부분은 로마의 영토 밖에 있었지만 당시 로마 제국과 게르만 족 세계의 국경이 라인강이었고 이 곳은 라인강보다 서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3. 또한 이곳에 소위 리메스(Limes)라고 불리는 대 게르만 방벽이 세워지면서 로마 제국의 군사적 요충지가 된다.
  4. 북부 뷔르템베르크, 남부 뷔르템베르크, 북부 바덴, 남부 바덴.
  5. 북부 뷔르템베르크와 북부 바덴은 뷔르템베르크-바덴 주, 남부 뷔르템베르크는 호헨촐레른 지방을 합쳐 뷔르템베르크-호헨촐레른 주, 남부 바덴은 바덴 주.
  6. 중앙정부나 점령군이 무작정 밀어붙인 게 아니라 주민투표를 거쳐서 통합을 결정했다.
  7. 프리드리히스하펜과 스위스가 만난다. 남동쪽에 콘스탄츠 호수를 통해 오스트리아와도 간접적으로 접해 있다.
  8. 인구수 기준으로는 슈투트가르트, 만하임, 카를스루에, 프라이부르크, 하이델베르크 순.
  9. 1852년에 바덴 대공국과 스위스 연방이 맺은 조약에 따라 역의 일부를 바덴 대공국의 영역으로 하여 바덴 대공국 철도회사가 운영하게 되었고,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 영토와 독일철도 운영으로 바뀐 것.
  10. 우리나라에서는 15대와 16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이 방식을 썼다.
  11. 통합 이전에 기독교민주연합이 제1당이 되지 못 한 것은 1950년 뷔르템베르크-바덴 주 선거 뿐이었고, 통합 이후에는 줄곧 기독교민주연합이 제1당이었다.
  12. 2016년 선거 기준으로 녹색당 30%, 기민련 27%, 대안당 15% 득표
  13. 제1당은 기독교민주연합이 됨.
  1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영토가 된 지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조직한 정당
  15. 이 해에 실시한 모든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은 의석을 늘리거나 의회에 새로 진출하면서 16개 연방주 전체에서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16. 그래도 1980년대부터 잘살게된 바이에른과는 궤가 다르다.. 여기는 전후부터 잘살았다.
  17. 안그래도 다른 지역보다 저축율도 매우 높은 곳이다. 괜히 지역 은행들이 잘 굴러가는게 아니다.
  18. 통계에 따르면 1000명당 8.61명 출생에 .60명 사망
  19. 가톨릭이 35.8%, 개신교가 31.9%